수풀이 우거져 있구나!
이것이 어느 숲속 풍경인고?
얼른 누구인지 고하렸다!
네, 저는 가을산 창가의 잔디입니다.
제가 숲풀로 위장하고자 한 바 없는데,
가을산이 제 사진을 허락도 없이 저리 올렸나봅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저희들, 알고 보면 불쌍하옵니다. 인정머리 없는 가을산은 팥빙수 먹고 난 플라스틱 뚜껑이란 척박한 장소에 흙도 없이 거즈를 깔고 저희를 심었나이다. ㅜㅡ
저희에게 주는거라곤 이틀에 한 번 물 몇방울이니, 이 어이 악독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옳습니다!!! 저희 말씀도 들어주세요.
저희는 그나마 지금은 팥빙수 그릇에 흙 속에 심어졌지만, 가을산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었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흙에 심겨졌지만,
지난 봄에 저의 형제들은 가제에 물만 담가서 키워졌답니다.
어떻게 식물이 물만 가지고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가을산이 비록 지금 속죄하는 마음으로 저희를 흙에 키운다 하지만,
먼저 간 형제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흐릅니다.
저는 돈나물입니다.
봄에 술잔에서 키워지던 그 돈나물요.
제가 워낙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 식물이었으면 더운 여름을 견디지 못했을겁니다.
젊어서 고생한 덕에 지금 조금 편히 살고 있습니다.
가을산은 식물의 맘을 너무 몰라요.
저희는 이름 모를 풀인데요,
저희 형제 씨앗 30여 개 중에서 저희만 살아남았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 주말, 퇴근하면서 저희를 창가에 그대로 두고 가는 바람에
일요일 아침 햇빛에 저희 형제들이 그만.... 흑흑,,,
저흰 연약해서 직사광선을 오래 쏘이면 안돼요...
저는 이름 모를 양치식물입니다.
가을산은 공중도덕, 자연보호도 모르나 보옵니다.
제 원래 집은 산좋고 물 좋은 계룡산의 갑사 산길 옆이었는데, 가을산이 저의 미모를 시기하여 저를 업어 왔습니다.
당연히 저는 몇일 못 버티고 시들어버렸답니다.
그런데, 가을산은 제 이파리 뒤에 있던 홀씨주머니를 보고는 아직도 미련을 못버리고 새로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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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흑흑, 쓰고보니 너무 슬픈 글이 되어 버렸슴다.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