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81 | 582 | 58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사이동과 맥도날드로 시작하는 처음의 단편은 진부하고, 두번째 단편은 <필경사 바틀비>를 생각나게 한다.

표제와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단편까지 다 읽어도 특별한 건 없었다.



작년에, 회식하다가 한 남직원이 내 애인과 내가 함께 있는 걸 봤다고 해서, 아 볼 줄 몰랐네, 했었는데, 그 직원이 

"너무 낮에 다니시던데요" 했더랬다. 



그 생각이 너무 나는 제목이다. ㅎㅎ

But it's over now.




십육 년전, 연애는 아니더라도 연애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과 재회해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앞으로 어쩌냐는 말이지, 아내에게는 큰 불만이 없는데 아들은 소중한데. 그러니까 안 되었다. 필용이 양희를 볼 수는 있어도 양희가 필용을 봐서는 안 되었다.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너무 한낮의 연애, p.28)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6-08-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칭찬 일색이라 샀는데 저도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다락방님 의견 반가워요. 호호^^

다락방 2016-08-23 09:38   좋아요 0 | URL
끝까지 다 읽고서도 뭔가 확 오는 게 없더라고요...

시이소오 2016-08-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ㅋ 별루셨군요.

다락방 2016-08-23 09:38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별로더라고요. 쇼코의 미소 안읽어보셨다면 추천합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8-23 09:46   좋아요 0 | URL
쇼코의 미소 읽어야겠어요 ^^

다락방 2016-08-23 09:48   좋아요 0 | URL
네, 읽으신 후 리뷰 부탁드립니다!!

아애 2016-08-22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한국 소설집들이 너무나도 좋아서 읽으려 했는데 읽기는 하겠지만 다락방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예감이 드네요.

다락방 2016-08-23 09:39   좋아요 0 | URL
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제 주변엔 이 책 별로라고 한 분들 좀 계시거든요. [안녕, 주정뱅이]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지도 않았지만...곧 사서 읽어보려고요.

잠자냥 2016-08-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었는데... 그토록 크게 상찬받을 작품인지는... 고개가 갸우뚱...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ㅎ

다락방 2016-08-23 09:39   좋아요 0 | URL
제목은 정말 근사하죠? 저도 제목에 완전 마음을 빼앗겼더랬어요. ㅎㅎ

루쉰P 2016-08-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애인하고 대놓고 다녀야죠 ㅋ 연예인도 아닌데 ㅋㅋㅋ

다락방 2016-08-23 09:40   좋아요 0 | URL
네, 그래봤자 이젠 대놓고 데리고다닐 남자가 없네요. 남자란 무릇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법.. 인생...

루쉰P 2016-08-23 09: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ㅋㅋㅋ 아 갑자기 눈에서 땀이 나네 ㅠ
다락방님은 예쁘시니 곧 생기실(?)거라고 믿어요....
두 주먹 불끈쥐고 화이팅!!! 오늘도 몹시 더워요 점심 시원한 거 드세요 ^_^

다락방 2016-08-23 09:45   좋아요 0 | URL
노노 당분간은 연애 금지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스스로 연애 금지 정해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위먹지말고 잘 지내요, 루쉰님!

루쉰P 2016-08-23 09:47   좋아요 0 | URL
그게 사람 맘처럼 쉽게 되나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항상 연애금지라고 정하고 있지만 여자분이 말만 걸어줘도 사랑에 빠져요 ㅋㅋㅋㅋ
다락방님도 더위 조심 ㅋ
 

작년이었던가, [꽃보다 청춘]이란 프로에 최지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맞나? 이서진하고 그리스로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평소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다가, 그 프로를 시청하던 애인이 최지우 좋다 그래서 어쩐지 발끈 하는 마음에 봤더랬다. 내가 본 회차에서는 호텔에 도착하고 짐을 푸는 장면들이 나왔는데, 최지우는 자신의 캐리어에 전기포트를 가지고 왔더라. 나는 그 장면에 대해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전기포트는 좀 오버 아닌가? 저건 그냥 어딜 가도 다 있는데 왜 가지고 다니는거지?' 라고. 나는 그 당시에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다녔던 국내의 호텔과 모텔에 모두 전기포트가 있었고, 그동안 다녔던 해외호텔에도 전기 포트는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걸 잊고 지내다가 작년에 포르투갈을 갔는데, 포르투갈 호텔 방에 전기포트가 없었다. 읭?????


나는 호텔 프런트로 내려가 열심히 설명했다, 전기로 물을 끓이는 주전자....어쩌고 하면서. 직원은 잘 알아듣지 못했고, 결국 나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서 캡쳐한 뒤에 이런 거 없냐고 물은 거다. 직원은 레스토랑에 있는 걸 가지고 올라갈 순 없지만 저기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서 니네가 사용할 수는 있고, 다음날 아침에 너네 객실에 가져다주겠노라 답했다. 나와 일행은 사발면을 먹고 싶었던 거였고, 그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늦은 밤이었으므로, 알겠노라 답을 하고 레스토랑으로 가 뜨거운 물을 받아 사발면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외출했고, 돌아오니 객실에는 주전자가 있었다. 주전자와 놓여있던 큰 받침대에는 각종 차(tea)의 티백도 종류별로 있었다. 아, 유럽 호텔에는 전기주전자가 없기도 하구나, 그런데 말하면 갖다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서는 바보같이, 그때의 일을 잊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미국에 갔다.



오, 그런데 뉴욕의 호텔에도 객실내에 물을 끓이는 주전자가 없었다. 호텔에 짐을 푼지 이틀째였나 삼일째였나, 내내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아 사발면이 간절하다, 오늘 저녁엔 두 개씩 사발면을 먹자, 하고 주전자는 있지? 둘러봤더니 없는 게 아닌가. 헐... 이것은.... 뭐여???? 이번에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말고 편하게 묻자 싶어 또 캡쳐를 해가지고 프런트로 내려가 이거 달라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물었다. 커피머신이니? 하면서....



....

....



나는 이것은 전기로 물을 끓이는 것이고 차를 마시는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차를 마실 건 아니지만, 사발면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 같아 차라고 말했다. 직원은 '우리는 물은 있지만 이런 거는 없어' 라고 말했다. 친구와 나는 멘붕에 빠졌다. 아... 이게 없을 수도 있다니. 나는 작년에 보았던 최지우의 여행장면이, 캐리어에서 전기주전자를 꺼내던 장면이 생각났다. 친구에게 말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최지우가 알고 그런 거네, 여행 많이 다녀서 없는 데가 많다는 걸 알고 준비한거네.... 친구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구나.



우리는 사발면을 제법 많이 가져왔고, 이걸 먹고 싶었다. 게다가 우리는 앞으로 계속 여행을 다닐 거였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그냥 이번 참에 작은 걸로 하나 사서 앞으로 계속 가지고 다니자' 로 결론을 내렸다. 그거 얼마 비싸지도 않고, 작은 걸로 사면 되니까, 하고서는 오전에 미술관에 갔다가, 오늘 오후에는 우리가 쇼핑하고 싶었던 거 슬렁슬렁 쇼핑하고 주전자나 사가지고 일찍 들어가자, 했다. 그리고 전날 들렀던 전자용품가게에 들어갔다. 전자용품 잡화점 같은 곳이었는데, 핸드폰과 컴퓨터에 필요한 용품들도 있었고 주방에 필요한 제품까지, 가전제품이 다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거 있냐 물었다. 직원은 지하에 내려가보라고 했다. 지하에 내려가니 다른 건 다 있는데, 커피 메이커도 있는데, 이건 없더라. 다시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이번에 직원은 자기네 가게에는 없지만 <Duane reade>에 가면 있을 거라 했다. 우리는 고맙다고 말하고 나와서 구글 지도로 duane reade 를 검색했고,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약국도 같이 붙어있고 술이며 청과류 과자, 샐러드까지 다 파는 곳이었기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직원에게 물어봤다. 한 직원은 이런거 본적 없다고 했고, 다른 한 직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런 걸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아니, 주전자를 ... 안팔아? 이거 그냥 우리나라에서는 홈플가도 있고 이마트가도 있고 하이마트 가도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좌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종류별로 뜨는데?????????


이미 한참 걸었던 친구와 나는 다리가 아프고 몹시 피곤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호텔로 가기 위한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근처에 백화점이 있다는 걸 기억해내곤, 그 백화점에 한 번만 더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백화점을 향해 걷다가 다른 백화점을 먼저 만났고, 그곳에 들어갔더니 1층이 샤넬 향수 매장이었다. 나는 마침 향수를 사기로 했던 터라, 거기에서 실컷 직원과 이 향수 저 향수 시향하며, 그렇지만 이건 내가 너무 오래써서 나는 이제 변화를 원해, 했고, 그렇게 마음에 쏙드는 향수를 샀다. 직원이 가장 좋아한다는 향수를 추천해줬지만, 내가 망설이다 내가 고른 걸 사니, 직원은 내게 '내가 추천한 향수도 니가 최종적으로 마음에 들어했으니까, 좀 써봐, 내가 덜어줄게' 하고는 작고 빈 케이스를 꺼내 거기에 덜어주었다. 오! 땡큐라고 말한 뒤에, 나는 스맛폰을 보여주며, 근데 여기에 이 주전자를 파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그 사진을 보더니 '여기엔 없지만 메이시스 백화점엔 있을거야' 라고 하더라. 아..지쳐..힘들어.... 우리는 웃으며 땡큐라고 말하고는 구글로 메이시스 백화점을 검색했다. 십일년전에 가보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너무 멀었다. 우리는 지쳤고 피곤했고 배도 고팠다. 친구는 호텔후기를 검색해보았다. 누군가가 '여기는 주전자가 없지만 끓는 물을 갖다달라 하니 가져다주었고 그래서 팁을 줬다'라는 후기를 썼더라. 그래 우리 이제 지쳐서 힘이 없어, 이제 그만 숙소로 들어가 끓는 물 달라고 하고 팁을 주자, 고 최종적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너무 지쳐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셔틀 타는 곳으로 갔다가, 눈앞에 있는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보았다. 저기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가보자, 하고는 친구와 들어갔다. 1층에서 직원에게 이런 거 파냐 물으니 6층이 키친용품을 다 팔고 거기에 있을거라고 하더라. 우리는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거 사려고 돌아다니고 예기치않게 반나절을 다 주전자를 위해 썼는데, 이렇게라도 사게되면 충분히 만족한다며, 부푼 희망을 안고 6층에 갔다. 정말 부엌 용품들이 많았고, 우리는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 발 to the 견!!


찾았어!!



하고 내가 외치고 친구가 어디어디? 하면서 내게로 왔다. 정말 그곳에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반나절이나 찾아 헤매던 주전자가 있었다. 그런데 다 사이즈가 크더라. 흐음... 이렇게 큰 건 캐리어에 넣기도 불편한데..이렇게 큰 건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여기서 쓰다 놓고 갈까...라고 생각하고 하나를 들어 가격을 보니 $80.00 이 넘더라. 어머. 무슨 이게 8만원이 넘어!! 옆에 있는 다른 모델을 들어보니, 그건 $100.00 이 넘었다. 어머. 다른 것들도 들어보니 다 그 가격대고, 제일 처음에 본 8만원대가 가장 저렴한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그냥 끓는 물 갖다달라고 하고 사지말자, 했다. 반나절을 주전자를 사려고 내도록 돌아다닌 게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10만원이나 주고 주전자를 여기서부터 사갈 수는 없지. ㅠㅠ 


백화점을 나오니 밖은 이미 어둑해졌고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 또다시 저녁이었다. 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고 싶었는데, 또 몸이 부서지도록 걸었어. 그날 우리는 28,000보를 걸었다 ㅠㅠ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호텔 앞에 내려서, 프런트에 들러 뜨거운 물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직원은 반 층 내려가는 레스토랑을 가리키며, 저 곳에다 말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내려가서 뜨거운 물을 가져다줄 수 있냐 물으니 그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마치 우리나라 편의점 어디에나 반드시 있는,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커다란 주전자가 있다. 그걸 주전자라고 해야하나, 암튼 엄청 큰 뜨거운물통이 있어서, 니네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때에 받아가도 된다는 거다. 아니, 이런 게 여기 있었는데, 반층만 내려오면 있었는데, 친구와 나는 이 뉴욕 한복판에서 반나절동안 대체 뭘한거지??????????????????????????




몸이 부서져라 걸으면서도 구하지 못한 것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 하아- 파랑새는 언제나 곁에 있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친구와 나는 정말 지치고 피곤했다. 우리 사발면 두 개씩 먹자! 하고는 사발면 네 개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커다란 맥주를 한 캔씩 땄다. 680미리 정도 되는 큰 맥주였다. 친구 하나 나 하나, 우리는 건배를 하며, 오늘 주전자 사러 돌아다니느라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몫으로 앞에 놓여진 사발면 두 개를 흡입했다. 꿀맛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주전자를 검색했다. 하나 사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또 여행을 갈거니까.




이거봐, 내가 원하는 작은 사이즈의 주전자들은 2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살 수 있다규!!!!!!!!! ㅜㅜ





친구와 나는 레고매장에 가서 이미 조카들의 선물을 구매했었다. 그런데 친구는 조카들에게 옷도 사주고 싶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GAP> 매장에 들어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쇼핑한 것들로 가방이 무거웠던 터, 친구는 티셔츠 두 개를 고르기 위해 아동복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1층에서 짐을 지키며 친구를 기다렸다. 잠시후 친구가 몇 벌의 옷을 가지고 내려와 어떤 것이 더 예쁜지를 물었고, 그렇게 두 벌을 최종선택했다. 두 벌의 가격은 40달러가 넘었는데, 친구는 20프로 할인하는 티셔츠들이라며 32불 정도에 샀다는 거다. 음...32불에 티셔츠 두 벌... 나도 갑자기 조카들에게 옷을 사주고 싶어졌다. 32불로 두 벌인데... 조카들에게 똑같은 옷을 사서 입히고 싶다는 욕망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구에게 네가 기다려, 라고 말한 뒤에 내가 2층으로 올라갔다. 나 역시 20프로 할인하는 매대에서 옷 두 벌을 골랐다. 친구에게 내려가 이렇게 살까 하는데, 했더니 친구가 '작으면 못입지만 크면 입을 수 있다, 한 치수 더 큰 걸로 바꿔와라' 고 해서, 그 현명한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다시 올라가 사이즈 큰 걸로 바꿨다. 그리고 마침 저 쪽에 직원이 보이길래 가서는 물었다. "이거 저기 20프로 할인한다고 되어있던 매대에서 고른건데 할인되는 거 맞니?" 라고. 직원은 내게 "네가 갭가족이라면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어" 라고 하더라. 아니 나는 갭가족이 아니야, 나는 여행객이야, 라고 하니, 직원이 무언가를 내민다. "그렇다면 이걸 가져가, 이건 40프로 할인쿠폰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건가??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그 쿠폰을 가지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서는 20프로 할인을 해 계산을 해주더니, 내 쿠폰을 보고는 거기서 또 할인을 해준다. 결과적으로 40불 이상의 티셔츠를 20불도 안되는 돈에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세상은 나한테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직원한테 묻기를 잘했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나 주는 쿠폰인 것 같긴 했는데, 친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쿠폰은 두 장이었고, 거기에는 '하나는 당신의 쿠폰, 하나는 당신의 친구에게 선물해요!' 이런 식으로 쓰여있었고, 나는 얼른 친구가 있는 데로 돌아와서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말하고, 이 쿠폰 줄테니까 너도 다시 계산가능한지 물어보자, 해서는 우리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시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직원에게, 이 친구가 아까 계산했는데 이 쿠폰을 뒤늦게 사용해서 재계산이 되느냐 물었고 직원은 단호하게 "No!" 라고 말했다. 친구와 나는 풀이 죽어 알겠다고 돌아서려 했는데, 갑자기 직원이 빵 터지며 "농담이야, 카드 줘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가 니가 농담을 하는지 아닌지 모른단 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도 그래서 덩달아 할인받았다. 나는 칭찬 받고 싶은 강아지처럼, 계속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 잘했지, 잘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



친구와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국에 가면 꼭 속옷을 사오자 얘기했었다. 친구도 나도 가슴이 큰 편이라 국내에서 딱히 예쁜 브라를 사기가 어려운거다. 일전에 어느 잡지에서 누군가 그런 경험을 쓴 걸 보았다. 남자친구가 "너는 왜 미운 속옷만 입냐"고 타박했다고. 그래서 "내 가슴이 커서 국내에서 예쁜 브라를 찾을 수가 없어!" 하고 성질을 버럭냈더니, 그다음부터 남자친구가 해외출장 갔다 올때마다 예쁜 브라를 사다준다는 거였다. 오, 외국에는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많고, 그래서 브라도 더 다양하구먼... 하고는 내내 벼르다가, 이번에 뉴욕 간김에 빅토리아 시크릿에 가보자! 했던 것. 사실 가면서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미국 사이즈로는 내 가슴 사이즈를 알지도 못하는데 무작정 산다고 맞을지도 모르겠고, 입어 보면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어쩐지 좀 쑥스러울 것 같고..수줍을 것 같은데.....






일단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속옷이 너무 많아서, 2층까지 속옷이 있어서 뭔가 신나기 시작했다. 이 예쁜 속옷들.. 아항, 너무 좋아.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하나라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이것 저것 둘러보고 이거 예쁘다 저거 예쁘다 이러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와서는 너네 사이즈가 몇이냐 물었고, 우리는 한국사이즈밖에 모른다 답했다. 그랬더니 줄자를 꺼내며 재줄까? 묻는다. 우리는 좋다고 재달라고 했고, 직원은 나를 먼저 잰 뒤에 너 사이즈는 뭐야, 하고는 자신이 가진 종이에 사이즈를 적어준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사이즈를 재주고는 너의 사이즈는 뭐야, 하고는 안내장 같은 종이에 사이즈 체크를 해준다. 우리에게 그 종이를 주면서, 매장에 너희들 도와줄만한 사람들한테 니네 사이즈 얘기하면 잘 골라줄거야, 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그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예쁜 브라 앞에 멈춰 서 있으려니 직원이 다가오고, 네 사이즈 뭐니? 물어 종이를 내미니 맞는 사이즈를 찾아준다. 그렇게 몇 벌을 골라들고 직원을 따라가면 착용해볼 수 있는 곳에 안내해주고, 열쇠를 열고 들어가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준다. 몇 벌 입어 보고 있으려니 직원이 너 어떠니, 괜찮니 묻는다. 나는 나와서 이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며 마음에 안든다고 말을 하니 알겠다며 다른 것을 추천한다. 나는 내가 눈여겨 봤던 브라 앞에 서서는, 이것도 줘봐, 했더니, 이건 되게 타이트하게 나오는 거니까 컵을 하나 작게 하고 둘레 사이즈를 하나 늘려서 착용해야 해, 내 말을 믿어, 하고는 브라를 찾아준다. 그래서 나는 또 탈의실로 갔다. 그리고 지금 가져온 브라 두 개를 해본다. 와- 짱좋아! 너무 좋아! 완전 내 스타일이야!!!


직원은 이번엔 어때, 네 마음에 드니? 하고 바깥에서 묻는다. 나는 안에서 비명을 질렀다. 너의 추천은 완벽했어, 이거 너무 좋아. 직원은 니가 좋다니 나도 너무 좋아 이러면서 덩달아 웃었다. 그래서 나는 총 브라 세 개를 골랐고, 직원이 추천해준 팬티들을 입어보다가 팬티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고는 거절했다. 친구도 몇 개의 브라를 샀고, 우리는 정말 신이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매장을 나서기 전에 나는 나를 도와준 직원에게로 가 나 이제 갈게, 오늘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라고 얘기했다. 친구와 나는 거기 한참을 머물렀던 것. 그녀는 자신도 기뻤다면서 나를 포옹하고는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입술이 닿은 건 아니지만....나.....이런 거 처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여태 해외를 다니면서, 아니 국내도 통틀어서, 아니 인생 전반에 걸쳐서, 가장 많이 영어로 대화한 사람, 가장 오랜 시간 나와 영어로 대화한 사람이 뉴욕 빅토리아 시크릿 직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름다운 나의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숙소에 돌아와서 다시 해보는데, 아, 뭔가 이건.... 인생 브라다....인생 브라야......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친구도 내가 산 걸 사고싶다고 했고, 나는 내가 산 걸 '더' 사고 싶었다. 마침 동생 선물도 샀는데, 사이즈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내일도 빅시에 가자' 약속했고, 그렇게 다음날 빅시로 향했다.


나는 새로 더 살 거라 괜찮긴 했지만, 동생 것을 바꾸는 게 문제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꿀 생각 안하고 영수증을 박박 찢어서 버렸던 것. 어제 나를 도와줬던 직원을 찾아서 사정을 설명해보겠지만, 그래도 영수증도 없는데 교환이 될까... 싶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던 거다. 


다음날 도착한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서 어제 나를 도와준 직원, '라쟈'는 보이지 않았다. '트레시'(기억이 가물..이 이름이 맞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직원이 무얼 도와줄까 묻고, 나는 라쟈를 찾는다 말했다. 그녀는 오늘 휴가라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테니 말하라고 했다. 나는 어제 내가 선물로 브라 하나를 구입했는데 이거 교환하고 싶다, 그런데 영수증이 없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너 어제 카드로 계산했니 현금으로 계산했니'를 물었고, 나는 카드라고 답했더니, 그렇다면 노 프라블럼이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니가 원하는 사이즈는 뭐니?  s 사이즈! 그러자 직원은 기다리라며 내가 원하는 사이즈를 가지고 와서는 내가 샀던 사이즈와 교환해주고 새로운 영수증을 발급해주었다. 오! 좋구먼!! 또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전날 샀던 브라를 하나씩 더 샀고 친구 역시 그러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쇼핑의 여왕으로 살다왔다.




그런데 이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산 것은, 후유증이 길게 남아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안정이 되질 않고, 다시 뉴욕에 가서 몇 벌 더 사고 싶어지는거다. 그렇지만 다시 뉴욕에 가는 건 십년 뒤로 약속했으니, 인터넷으로 좀 구경해볼까, 하고 친구랑 다시 구경하다가....우리는...............인터넷으로 또 샀다!!! 여기서 인생 속옷을 또 사자!!!!!!!! 아직 도착 전이지만, 우리는 기다리며 두근두근하고 있다. 아 속옷이여... 넌... 뭐니?



인생브라...





자, 나는 이제 작은 주전자를 주문하러 가야겠다.

가을에 뉴욕에 갈 예정인 친구에게 이 페이퍼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한국에 돌아와서 문득 생각해보니, 뉴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짧은 영어로 인생브라도 사고, 사발면에 물도 부어먹고, 티셔츠 할인까지 받았다. 비행기에서 비행기로 환승하는 것도 문제없이 했고, 어딘가로 이동할 때 길을 물어 걷기도 했고, 지도를 보며 걷기도 했으며,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실, 영어공부....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할 거 다 할 수 있을만큼 영어 하는데...뭐하러 공부를 또한담? 영어 공부하려고 책 사놨는데, 그냥 다시 팔아야겠다. 한 번도 안 펼쳐봤으니....


영어, 이만큼만 해도 충분하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aviana 2016-08-2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아들이랑 유럽 여행갔을때 여행가방에 그 큰 주전자 들고가서 얼마나 잘 썼는지를 이야기하려 하다가, 가슴이야기에 앞에 글들이 다 페이드 아웃 되었어요. ㅎㅎ

아 부러워라....가슴도 크고 영어도 잘하고 인생브라도 사오시고...ㅎㅎ

다락방 2016-08-22 13: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파비아나님 말씀 들으니, 저 다 가졌네요. 가슴도 크고 영어도 잘하고 인생브라도 찾고...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가슴 큰 건 매우 불편하고 ㅠㅠㅠㅠㅠ 영어는 딱 저만큼 까지만 하고 ㅠㅠ 인생브라는 찾았지만... 뒷얘기는 생략.
주전자는 앞으로 챙겨가지고 다녀야겠어요. 다른 나라에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해서 되게 당황했어요. 역시 사람은 경험이에요, 경험. 사발면과 주전자를 꼭 챙겨야겠어요. 흣.

유월 2016-08-22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내에서도 딱 맞는 브라 브랜드와 사이즈, 디자인 알아내는데 10년은 걸린것 같네요. 요즘엔 대충 눈대중으로도 내꺼일지가 감이 옵니다만 ㅋ 완전히 맞는걸 찾기란 쉽지 않죠. 그때의 카타르시스 공감합니다 :)

다락방 2016-08-22 13:29   좋아요 1 | URL
저는 제가 찾을 수는 없는 사이즈(?) 라서, 비너스 매장가서 직원이 사이즈 재주고 브라 추천 해주고 해서 아아, 그간 잘못하고 살았구나, 하고 그 뒤로는 비너스 매장만 가서 샀거든요. 이게 큰 사이즈는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게 아니라서요. 그런데 비너스가 단가가 너무 쎄요 ㅠㅠ 나는 어쩔 수 없다 단가 센 브라를 할 수밖에...라고 생각했는데, 빅토리아 시크릿은 비너스 한 벌 살 돈으로 두 벌 살 수 있더라고요!! 어떤 건 세 벌도 가능하고!! 다음에 또 미국가면 잔뜩 사와야겠어요. ㅎㅎ

유월 2016-08-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미국에 가고 싶단 생각해본적 없는데.... 정말 놀러가고 싶네요. 뉴욕.... 왠지 제 발 영어도 받아줄 것 같은 그 곳... ㅋ

다락방 2016-08-22 13: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정도의 영어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게 너무 짜릿하고 기뻐요. 대신에 앞으로 영어공부를 안해도 되겠다는 이상한 만족감 같은 게 생겼지만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월 2016-08-22 15:32   좋아요 0 | URL
저도 비너스만 입다가 ㅋㅋ 빅토리아시크릿은 디자인이 너무 화려해서 주저했는데 과감하게 시도해봐야겠어요. 일단 뉴욕에 가서....

다락방 2016-08-23 09:41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제나 화려한 브라를 입고 싶었는데 국내에선 제 사이즈에 화려한 브라를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ㅠㅠ 그런 참에 빅토리아 시크릿 가니 천국천국 ㅋㅋㅋㅋㅋ 그치만 정작 제가 입어보고 구매하게 된 건 그렇게 화려하진 않은 것들이에요. 완전 화려한 거는 역시 제 사이즈엔 무리... 였어요. Orz

hellas 2016-08-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브라를 찾으시다니 부럽네요. 저도 인생브라를 위해 뉴욕엘 가볼까.......;ㅂ; 가장 긴 영대화가 빅토리아시크릿인것도 왠지 되게 비밀스럽고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08-23 09: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헬라스님. 생애 가장 긴 영대화가 빅토리아 시크릿 직원인 사람이... ㅋㅋㅋㅋㅋㅋㅋ 뉴욕 한 번 다녀오시죠, 인생 브라 찾으러! 고고씽!!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8-22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브라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인생브라 할 수없는 성이라는게 속상하고 억울하네요. 아, 부러워요

다락방 2016-08-23 09:42   좋아요 1 | URL
빅토리아 시크릿이 남성 속옷이 없죠? 시이소오님은 남성 속옷 파는 매장을 검색한 뒤에 인생팬티를 찾으세요! 화이팅!! ㅋㅋㅋㅋㅋ

망고 2016-08-2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주전자가 없을수도 있군요 저는 서부쪽으로 다녔는데 가는 숙소마다 주전자가 있었어요 밤마다 사발면을 먹고 옥수수를 삶아먹었던 추억이 있네요ㅎㅎ 주전자 사러 다니셨다지만 그것도 큰 관광이고 재밌는 경험이셨을듯 합니당^^ 그나저나 다락방님 후기덕에 뉴욕도 너무 가보고 싶습니다 ㅜㅜ

다락방 2016-08-23 09:43   좋아요 0 | URL
옥수수까지 삶아드셨다니, 대박입니다, 망고님. 댈러스 호텔에서도 하루 잤는데 댈러스 호텔에도 주전자는 없었어요. 유럽도 그렇고 미국까지 없는 곳이 많은 것 같아요. 작은 주전자 하나 사서 앞으로는 캐리어에 넣어다녀야 겠어요. 이렇게 또 하나 배웁니다. ㅎㅎ
네, 몸은 부서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주전자 사러 이 골목 저골목으로 다닌 것은 큰 즐거움이었어요. 뉴욕은 어딜 보나 너무 번화해서 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도시거든요. 어딜 봐도 보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이곳 저곳 걷는 게 전 참 좋았습니다. 여건이 된다면 다시 와서 한달이나 두달쯤 더 머무르고 싶어요!!

야홍이 2016-08-2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으로 스페인에 머물렀을때 사발면이 먹고 싶어서 호텔로비에 내려가 뜨거운물을 원한다고 하니깐 ˝ 왜 뭐할려고?˝ 이러더라구요 그래서 우린 사발면을 보여줬지요 . 이거 먹고 싶다고 여기에 물 부워서 먹고 싶다고 ~
호텔 직원이 OK!! 내가 주방에 이야기 해줄테니 레스토랑에 앉아 있어! ~ 오오~~ 뭔가 잘풀리는 이기분 ~
레스토랑에 앉아서 사발면 기다리는데 음식 안시키고 그냥 앉아 있으니 뻘쭘하더이다.~~
그때 마침! 호텔직원이 쟁반에 그릇 4개를 들고 우리에게 걸어오더라구요!
그 순간 우리 네명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 뭔가 잘못됐어` 라는 눈빛을 교환했고 그 쟁반엔 따뜻한 물에 담겨있는 퉁퉁부어있는 면들이 떠있더라구요 ^^ ㅋㅋ 우리 사발면 그릇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있고 ㅋㅋ
호텔직원은 ˝ 어때 만족해?˝ 이런 눈빛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더라구요 ㅋㅋㅋ
우린 서로 웃으면서 ok! thank you ~~라고 말하고 따뜻한 사기그릇에 스프를 풀고 퉁퉁부은 라면을 포크로 연신히 먹어댔지요
한쪽에선 고객감동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지켜보던 호텔직원의 미소가 생각나네요 ^^
해외에서는 이런저런 이벤트가 늘 무용담처럼 기억이 나네요
저도 조그만 주전자나 사렵니다 ^^

다락방 2016-08-23 14:04   좋아요 0 | URL
아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잊지못할 사발면이 되었겠어요. 눈물 젖은 사발면이라고 해야하나 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의 출장을 위해 야홍이님도 작은 전기 주전자 하나 사두셔야겠어요. ㅎㅎㅎㅎㅎ 호텔 직원의 친절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물만 줬으면 더 고마웠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자, 주전자 사러 갑시다! ㅎㅎ

비연 2016-08-23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년에 가려고 하는데 저도 뉴욕 전에 주전자부터 사야겠군요 ㅎㅎㅎ 락방님의 팁, 완전 감사~
그나저나 인생브라.. 라는 말에 부럽기도 하고 게다가 빅토리아 시크릿. 가야 해 가야 해..

다락방 2016-08-23 14:05   좋아요 0 | URL
네네, 뉴욕에 갈 분들을 위해서 꿀팁입니다. 작은 주전자 준비하고, 뉴욕 한복판에서 화장실이 급해지면 호텔을 찾아가라!!!
비연님, 빅토리아 시크릿은 한 번 들어가면 헤어나올 수가 없어요. 오, 그 브라천국이라뇨. 아무쪼록 인생브라 득템하시고 후기 들려주세요. ㅎㅎㅎㅎㅎ

[그장소] 2016-08-27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브라 중요해요! 우리나란 좀 불편하게 따라다니는데 거긴 낯선곳여서 그랬을까요! 넘 활기있어 보여요. 정말 편한 건 계속착용하게되는데 ..그쵸! 그런걸 정말 드물게 찾곤해서 속옷만 한가득 이라는! 잘 쓰지도 않고..사놓고 처박아두는 ..식! 급한대로 싼값이면 커피메이커에 그냥 물내려서 주전자처럼도 쓰는데 ...^^ 그걸 가지고 다니긴 영 ..그렇죠!^^ㅋㅋ

무스탕 2016-08-27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메일로 오는 서재뉴스레터에서 제목만 보고 다락방님 글이닷-!! 하고 왔다면 믿을라우? ^^
 















또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9년전에 비해 확실히 더 나이들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의 관계도 변했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빠지고 온 몸에 살이 찐 것 말고도,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안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이 정말로 당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나온 말은 아니다.


18년전, 기차에서 우연히 처음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고 서로 연락처도 모르는 채로 지내다가, 9년후, 그들은 기적처럼 재회한다. 비포 시리즈의 두번째 편인 《비포 선셋》에서는, 9년후 재회한 그들에게 열린 결말을 제공하고 끝나는데, 세번째 시리즈인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제시(에단 호크)'가 그동안 썼다는 세 권의 책을 통해 그 후를 짐작할 수 있다. 제시는 비행기를 놓쳤고, 셀린느의 방에 커튼을 친 채로 몇 번이고 섹스한단다. 크- 좋구먼. 그런데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커튼을 다 닫고 몇 번이고 섹스를 반복하는 일, 혹은 호텔에서 한 번도 안 나가고 며칠을 섹스하는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어쩌면 평생에 한 번도 안 일어날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 어쩌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경험이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만약 그렇게 호텔에서 한 번도 안나가고 며칠을 섹스하면서 지내다가도, 그 둘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더이상 그런 일을 하기가 힘들어지니까. 


영화속에서 셀린느가 제시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제 더이상 모닝섹스를 하지 못한다고. 아, 모닝 섹스....그걸 할 수 없다니..... 그러니 젊은 커플들에게 어쩌면 당연했을 것, 이를테면 영화에서 셀린느가 제안했던 것처럼 '밤새 자지 말고 섹스하자'는 것은, 그저 로망이 될 확률이 크다. 인생이여..


핵꿀맛 모닝섹스..



어쨌든, 둘은 이십년전 젊은 시절에 만나 서로에게 반했고 그런 서로를 잊지 못했으며 그래서 재회에 이르렀고, 그리고 지금은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단 하나뿐이었던 사랑을 현실에까지 연결시켜서 잘 지내기도 하는 것이다! 선셋에서 'you'를 자꾸 '자기'라고 번역해서 좀 오글거렸는데, 미드나잇 에서는 '참사랑'이란 표현이 나와서 또 헉 스러웠다. 참사랑... 참사랑? 나중에 나도 써먹어봐야지. 당신은 나의 참사랑이에요.



둘은 여전히 대화를 한다. 이제 생활에 찌들어졌고 둘 사이가 단지 둘만의 사이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그리스에 여행와서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마치 젊은시절인 것처럼 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리워하며 서로에게 예전 같던 애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던 것도 잠시, 금세 현실로 돌아와 싸우고 화내며 '너를 누가 견뎌!'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함께 지낸 시간이 오래된다면, 결국 서로에게 지치게 되는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과 함께 오래 살게된다면, 열정과 설레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생활에 찌든 지친 모습만 남을까. 제시와 셀린느는 누가 봐도 낭만적인 사랑을 했던 사람들인데.


그러나 제시는 셀린느와 앞으로 56년을 더 살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시의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70년 이상을 살았다는 얘기 끝에 나온 거였다. 만약 지금 기차안에서 처음 봐도 반했을 거고, 내리자고 했을 거라고 한다. 이들에겐 다른 부부들처럼 어느 한 쪽이 양보해야만 끝나는 문제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일 때문에 자꾸 싸우고, '이것이 우리의 이별의 징조일까'하는 두려움도 갖게 되지만, 공통의 경험과 함께 겪어나갔던 중요한 일들이 많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들이 많다.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그것이었다. 나는 너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20년전에는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사람들이, 한 번 보고 9년이나 떨어져 지냈던 사람들이, 어느 틈에 이렇게 '너를 누구보다 잘 알아' 라고 말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너무 좋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는 것이. 



첫만남이 반드시 낭만적이거나 특이할 필요는 없지만, 첫만남은 그 자체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만남이 그토록이나 특이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꾸 떠올리게 되니까. 


제시는 이전보다 확실히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아마도 셀린느와 함께한 시간들이 그를 그렇게 만든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있을까. 


《비포 미드나잇》에서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건,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섞여든다는 데 있다. 아직 그들이 연인이 되기 전, 서로를 향한 설레임이라든가 기대 또 그리움으로만 가득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대화를 지속하는 것만으로 영화 한 편이 시작되고 끝났다. 그러나 미드나잇 에서는 다른 연인들이 등장한다. 제시와 셀린느보다 더 어린 커플들이, 그리고 조금 더 나이 든 커플, 그리고 아주 나이 든 커플. 그들은 각자가 사랑하는 방식과 또 지금 삶의 모습, 오래오래 함께 했던 연인이 죽고난 후의 모습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하기 전에는 서로의 얘기만이 중요했지만, 그 두사람이 함께 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섞여들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는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이 내내 함께 걷는 장면, 그리고 그리스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술마시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수다 떠는 장면.



얼마전에 생일선물로 여행기를 잔뜩 선물 받았는데, 함께 보낸 메세지에는 <너의 여행하는 삶을 응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여행 하면서 살고 싶다. 낯선 곳에 가고, 길을 묻고, 예상하지 못한 일 때문에 당황하다 그걸 해결하고, 맛있는 걸 먹고, 이곳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장면을 맞닥뜨리는 일은 정말이지 즐겁다. 이걸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또 그만큼의 즐거움이 추가되는 일인 것 같다.


제시와 셀린느가 그리스 아름다운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 함께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사람의 인생은 반쯤은 성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단 하룻밤, 그리스의 아주 좋은 호텔로 찾아간다. 방해하는 사람 없이 둘만 있을 수 있는,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테이블에 선물로 놓여진 와인을 맞닥뜨리는 그들을 보는데, 내가 다 두근두근하더라. 와- 이게 뭐야, 너무 좋아! 나는 호텔을 좋아하고 와인을 좋아하고 함께 호텔에 갈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지금 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바로 몸소 실천하고 있어! 자, 커튼을 닫아, 호텔문을 잠가, 이제 이 하룻밤이 온전히 당신들 몫이라고! 하얗게 불태워, 뼈와 살을 불태워!



그러나 그 둘은, 오전에 싸웠던 문제로 다시 그 좋은 호텔에서, 와인을 앞에 두고, 큰 침대를 앞에 두고, 옷도 반쯤은 벗었다가, 다시 싸우고 만다.



아, 인생이여...........

아, 사랑이여...........




너무너무 좋은 영화였다. 이 시리즈 전체가 싹 다 좋다.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비포 선라이즈가 존재해야만 했다. 그들이 만나야만 그 다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누가 누군가를 만났다면! 


이미 그것은 하나의 작은 시작이라는 것이다.

괜히 만난 게 아니라는 거다.




당신은 왜 하필 그 날, 그 시간에 거기에 있었으며

어쩌다 나는 그런 당신을 만나게 된걸까.


그러려고 그런 거다. 

우리가 만나려고.


 






아니, 이런 게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살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6-08-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이 좋아하니까 저도 덩달아 더 좋네요. 흐.
오래전, 이혼을 해야 하나...고민하는 중에 콕 짚어 어떤 외부적인 문제라고는 말할 게 없다면서 상담을 하자, 어떤 아저씨가 그랬어요. ˝너희에겐 너희만의 추억이라는 게 있니?˝ 그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고, 바로 깨달았죠. 아, 이 순간 즉답이 안 나오는 나에겐, 우리만의 추억이 없는 거구나...
셀린느와 제시에겐 그게 있었죠, 그것도 아주 극적으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별로 믿지 않지만, 한 평생을 버틸 만큼 소중한 추억을 둘만이 공유할 수 있어야 커플이 해로할 수 있다는 점 만큼은 그렇지 싶어요. 그리고 비포미드나잇이 그걸 너무나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수많은 대화로 보여주어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다락방 2016-08-18 08:59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저도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일전에 지금은 헤어진 애인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어디서 어떻게 처음 만났느냐가 의외로 꽤 중요하다고요. 반드시 처음 만남이 인상적일 필요는 없지만, 나중에 돌이켜 그 장면을 자꾸 함께 떠올리게 되는 건 관계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축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함께 오래 관계를 유지할 사람들이라면, 그런 중요한 첫만남이 없었어도 일상 속에서 굳건함을 충분히 쌓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인상적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는 거, 너무 좋더라고요. 결국 그 둘이 싸우다가도 화해하는 방식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 방식은, 그 둘에게만, 서로에게만 통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 둘은 첫만남이라는 아주 중요한 요소를 함께 갖고 있고, 그 만남에서 갖게된 인상적인 장면들을 계속 가지고 있죠. 아직도 제시의 붉은 수염을 얘기하는 거, 그거 너무 좋아요. 첫 만남에서 제시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기억 안나거든요. 후훗.


저는 제시와 셀린느가 진짜 사랑에 빠진 순간은 9년후 재회하고 나서인것 같아요. 다시 만난 그들이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는 호감과 호기심이었던 것 같고요. 그러나 그 인상적인 만남으로 인해 잊지 못하고 재회를 꿈꿨다가, 재회하고나서 서로 상대와 얘기하며 그때 더 깊이 빠져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관계로 만들 수 있게한 선라이즈가 좋아요. 그들이 만나게 된 거요.

이 영화 너무 좋아요!
디브이디 다 살까..고민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2016-08-18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8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8-1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깤..에서 완전 하트 뿅뿅..저는 락방님 책 샀습니다~!!지르세요 지르는게 인생♡♡

다락방 2016-08-19 09:29   좋아요 0 | URL
결국 지름이 답인겁니까? ㅎㅎ
어쨌든 클래비스님은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16-08-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려고 그런거다...
아놔 이런 미친 명문ㅋㅋㅋ짱 좋아요 락방님 좋은거 마니마니 드시고 좋은곳 마니마니 가시고 늘늘 행복해지셔서 우리에게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마니마니 주세요 책 읽는 기쁨.기다리는 설렘..아이 좋아ㅋㅋ

다락방 2016-08-22 13:17   좋아요 0 | URL
우후후후 네네, 클래비스님. 제가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서 더 행복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만세!!!
 

(내가 이렇게 페이퍼 쓰고 있으면 안되는데.. 일이 많은데.....)



뉴욕에 간다면 먹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건 스테이크였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주말에 스테이크 사진을 올릴 때마다, 나는 언제나 의문의 1패를 했던 것.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패배자... 나도 미국 가서 스테이크 먹겠어! 그런 마음으로 갔다. 사실 내 여행은 대부분 '먹는'게 테마였고, 뉴욕 여행이라고 다를 바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에 스테이크 말고는 기대하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 기대는 참.. 현명했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댈러스에서 환승할 비행기였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그 비행기는 두 시간 지연이 되었고, 환승이 불가하므로 댈러스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야한다고 하더라. 호텔과 저녁식사 그리고 다음날의 아침식사 모두 항공사가 제공한다고 했다. 우리가 원래 뉴욕에 도착하는 게 밤이었으니, 반나절쯤 일정이 늦게 되는거지만, 덕분에 댈러스에서 하루 묵어보겠네 하고는 우리는 큰 불만을 갖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미국식 아침식사를 너무나 갈망하고 있었으므로 ㅋㅋㅋㅋㅋㅋ 다이너에 가서 먹게 될 아침 식사를 기다렸다. 그렇게 먹게 된 아침식사, 우리가 주문한 것. 물론, 정말 2인분이다!!



일단 베이컨이 너무 짜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전날 저녁에도 베이컨을 먹었는데, 여기 베이컨은 짠 게 그냥 기본인듯. 그냥 짠 게 아니라 완전 짜다 ㅋㅋ 아니 근데 양이 너무 많아. 메뉴에 있던 핫케익, 달걀, 베이컨을 주문하면서, 달걀을 스크램블로 바꿔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가능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단 내 몫으로 나온 게 이렇게 두 접시다.




아 난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친구가 시킨 건 이것.



이거 빵을 무슨 버터에 튀긴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깨무는데 왕고소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너무 맛있어서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미국에 가서 먹고 싶었던 게 스테이크와 랍스터 롤이었다. 그래서 도착한 바로 다음날이었나, 랍스터롤을 먹으려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서 도착해 주문했는데!!




사이즈가 진짜 너무 작은 거다. 너무, 너무 작아. 아무리 두 개라도 진짜 너무한 사이즈! 위에가 랍스터롤 밑에가 크랩롤. 맛이 딱히 기대한만큼 뛰어난 것도 아닌데.....근데 너무 작아! 배를 채우려던 친구와 나는, 끼니로 먹으려던 친구와 나는 당황해서, 다른 식당을 또 찾느니, 그냥 여기서 배터지게 먹자, 하고는 크램 차우더를 주문했다.



맛은 있었지만 너무 짜고, 이래봤자 배 부르는데 영향이 1도 없어.... 다른 메뉴가 뭘 있나..하고 보다가 랍스터 샐러드를 시켰다.



야채야채..하고...좋았지만......랍스터롤은 나를 크게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실망이야, 랍스터롤.. 이건 뭐 앞으로 굳이 안먹어도 될듯 ㅋ

랍스터롤, 너는 디저트인거니? 메인이 아닌거야?




미국에 사는 친구들이 있다. 그곳에서 사는 친구들은,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과도 당연히 친구. 뉴욕에 있다는 말에,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매그놀리아>의 컵케익을 추천해주었다. 아주아주 맛있는 디저트라고. 마침 이곳은 함께한 친구도 가고 싶어했던 곳인데, 워낙 디저트에 관심이 없는 나는 심드렁 했던 거였다. 그러다가 모마를 갔을 때 모마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 가게에 새벽 세시인가 네 시에 가게 문 두드리면서 i really need cupcakes!!! pls pls!!! 이러는 사람도 볼 만큼 맛있는 가게, 관광객들보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잘 아는 가게' 라는 게 아닌가! 그래, 새벽 세시에 문 두드리며 달라는 컵케익이라니, 그런 컵케익 먹어보자, 하고는 매그놀리아로 갔다.



컵케익이 종류가 엄청 많았다. 역시 유명한 가게라 그런가.. 사람도 엄청 많았다. 우린 줄서서 컵케익 세 개를 샀다. 이건 분명 달거야, 그러니 아메리카노도 잔뜩! 아메리카노도 주문했다. 계산하기에 앞서 푸딩은? 하고 친구와 눈을 마주쳤지만, 둘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새벽 세시에 사람을 찾아오게 한다는 그 컵케익!!을 포장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길 한복판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오른 쪽에 있는 밑에가 붉은 컵케익이 '레드벨벳'인데, 이건 맛있게 잘 먹었다. 상대적으로 덜 달아서. 그런데 왼쪽 두 개는 그냥 설탕덩어리야 ㅠㅠ 아메리카노가 없다면 도무지 먹을 수 없는 맛. 우리는 커피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컵케익을 다 먹지 못했다.. 아..역시 내 스타일 아니구먼...



한국에서도 두 시간 줄서서 먹는다는 쉑쉑버거는 어떤가. 나는 그것의 맛이 1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온 김에 먹어보고 싶다고 했고, 마침 센트럴 파크에 갔다가 지도를 검색해보니, 우리가 있는 곳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 해서 찾아가 포장을 했다. 나의 주문 실수로 햄버거가 세 개가 나왔고! 맥주와 커피와 함께 우리는 우리의 로망을 실현하자며, 포장해들고 센트럴파크 안으로 향했다.



친구는 알라딘에서 받은 돗자리!! 를 깔았고, 우린 거기에 쉑쉑버거를 놓아두었다. 여긴 센트럴파크고, 알라딘 굿즈이고, 쉑쉑버거다!! (맥주는 걷다가 다 마셔버림 --;;)



아아, 그런데 쉑쉑버거도 맛이 별로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깜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런 걸 줄서서 기다려서 먹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나원참 ㅋㅋㅋㅋㅋㅋㅋ 친구에게 너는 어떠냐 물어보니, 친구는 '너랑 강남역 수제버거집에서 먹었던 수제버거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나 이거보다 맛있는 버거 많이 먹어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랑 나는 다 먹고 돗자리를 접으며 '이제 쉑쉑버거 사 먹을 일은 없을듯' 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루클린 책자를 본만큼 하루는 브루클린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고. 브루클린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걷기에 한가한데, 우리는 초콜렛 가게에 갈거였고, 그 초콜렛 가게에서 가까운 스테이크 가게가 어디인가 지도를 보면서 한 군데를 콕 집었다. 그래, 여기야, 여기는 두 사람 가면 둘이 먹을 스테이크로 안심과 등심을 고루 내어준다네? 좋았어, 가자! 하고는 스테이크 집으로 향했다.



이건 스테이크 집을 향해 걷던 한 낮의 브루클린. 여기는 길거리 레스토랑인데(우리가 간 곳은 여기가 아니고 여긴 그냥 지나친 곳),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걷다 말고 찍어 봤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넘나 사랑해!


사실 이 스테이크 집은 전날 저녁에 갔다가 자리가 꽉 차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해, 다음날 낮으로 예약해두고 다시 간 거였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날이었던가, 전전날이었던가, 우리는 매일 2만보이상 걷고 정말 지쳐있었다.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거다. 정말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사실 스테이크보다 잠이 더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야 해!! 하고 찾아간 거다. 오오, 이 곳의 클라스는 다른 곳과 달라!



식전빵도 양을 듬뿍 주는데, 하우스와인을 시켰더니 저렇게 한 잔 가득 따라준다. 맙소사! 나와 친구가 지쳐있지 않았다면 소리를 지르다가 감동해서 울었을거야!!



사람이 워낙 많은 이곳에서는 고기의 굽기를 묻지 않는다. 그냥 자기들이 미디엄 레어로 구워서 갖다준다. 웨이터는 접시를 똑바로 들고 오지만, 테이블에 놓는 순간 받침대에 한쪽을 받쳐두고 기울인다. 그러면 저렇게 기름이 아랫쪽으로 쏠리는데, 이미 뜨거워진 접시에서 기름은 팔팔 끓고 있고, 웨이터는 그 기름을 숟가락으로 퍼서 고기에 한번 쫙악- 뿌려준다. 그러고는 한 조각씩 집어 각자의 접시에 놓아준다. 아... 그 뜨거움과 끓는 소리, 고기 냄새........ 그리고 내 앞에 놓여진 고기!! 넘나 좋은것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맛있었지만, 친구와 나는 다 먹지 못했다. 우리 이거 남기면 후회할거야, 라고 연신 말하면서도 다 먹지 못했다. 진짜 너무 지쳐서 코피 터질 것 같았어 ㅠㅠ 내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그건 다음 이야기에 계속)



그러나 이 곳의 스테이크가 처음이 아니었으니, 사실 처음의 스테이크를 진짜 기똥차게 맛있게 먹었다. 그곳은 분위기부터 황홀해서!!


여행책자를 가져오지 않은 우리는, 모마 미술관을 구글 지도에 찍어두고 확대하면서 근처에 어떤 레스토랑이 있나 봤다. 그러다 스테이크란 이름을 보고 내가 '여길 가자!' 하고 꼭 찍은 것. 그래서 거길 목적지로 삼아 걸었다. 그러다 똭- 만났다!!



점심 시간이었고 거리엔 점심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대부분의 음식점에 사람들이 줄 서서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엔 아무도 줄서지 않았어...들어가기 전에 '으음, 맛이 없나...그래서 줄을 안섰나' 하고 잠깐, 아주 잠깐 갈등하다가, 그래도 여기 오려고 온거니까 들어가자! 하고 들어갔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여긴... 업무를 보다가 점심 먹으러 들르기엔 너무나 고.급.한 레스토랑이었던 거다. 헐..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그러나, 가격이야 어쨌든 우리 스테이크 먹으러 왔으니까! 하고 그냥 마음껏 주문했다. 비싼 곳이라 그런지, 구글 지도보고 꼭 찍어 와서 그런지, 우리 같은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다들 비즈니스 하는 것 같은 분위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와인을 주문했고, 스테이크와 양고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사이드메뉴를 고르려는데, 아무래도 포테이토는 너무 흔해, 주문을 받는 웨이터에게 '넌 뭘 추천하니?' 물어보니, 알 수 없는 영어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는데..뭔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친구에게도 '뭔지 모르겠지만 이걸 먹어보자' 했다. 친구는 그러자고 했고. 그래서 나온 사이드는 이것!




우엇, 너무나 맛있어. 핵좋은맛! 이것은..내가 먹어본 것 같아. 어딘가의 레스토랑에서 이런 거 먹어봤어. 이건 시금치 같아! 하고는 내가 알지 못했던 메뉴판에 쓰여있던 그 단어를 찾아보니, 시금치가 맞았다. 오오, 맛있어! 아니, 당근 맛있어야지. 이 사이드메뉴 하나가 10달러가 넘었는데!!


그리고 스테이크!



우걀걀걀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앙 ㅋㅋㅋㅋㅋㅋㅋㅋ미디엄 레어로 할까...먹으면서 살짝 고민했지만, 나의 친구들은 미디엄레어까지는 좀... 이런 반응들이라 그냥 미디엄으로 했더니 ㅋㅋㅋㅋㅋㅋ 미디엄 레어로 할걸..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미디엄 레어가 진리인듯! 어쨌든 히죽히죽 좋아서 웃고!! 생애 처음 양고기!!



꺅 >.< 병아리콩과 함께 나온 양고기! 나는 병아리 콩도 좋아하고  ㅋㅋ 여기 어떤 향신료가 있는지 친구가 약간 힘들어했는데, 나는 어? 괜찮은데? 이러면서 병아리콩 막 퍼먹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애 처음 양고기는 맛이 좋았다. 저렇게 나온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할지 몰라 그냥 족발 먹듯 들고 뜯어버리고 말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오, 먹을만한데? 양고기 냄새난다더니, 꼬치가 아니라 그런가, 괜찮네, 하면서 먹었다. 그래봤자 스테이크, 소가 최고!


이런 음식들의 한상 차림!



와인이 떨어찔 때쯤 웨이터가 와서 한 잔씩 따라준다. 스테이크와 양고기와 시금치와 와인에 취해, 이 분위기에 취해, 진짜 이 날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레스토랑도 마음에 들고 음식과 술도 다 마음에 들고. 난 여기가 좋아, 여기 사랑해! 고기도 사랑해! 하면서, 우리, 내친김에, 돈 쓰는김에, 커피도 그냥 여기서 마셔버리자!! 하고는 커피까지 주문했다.



럭셔리와 사치의 결정판....


그래도 우리가 뭐 매번 이랬나, 쓰는 김에 쓰는거지, 하면서 즐겁게 먹고 마시는데, 내가 앉은 쪽에서 보이는 맞은편에, 어어, 줌파 라히리 닮은 사람이 있다. 내가 뉴욕에 오기도 전부터 줌파 라히리를 길가다 만났으면 좋겠다고 너무나 원했던 탓인지, 우주가 도와줬나, 저 사람은 줌파 라히리인가...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을 보며 대조를 다시 해보려고. 그런데..긴가민가 하네...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아무리 내가 원해도 그렇지, 여기서 줌파를 만날 수 있겠어? 그리고 지금 이탈리아에 있지 안나? 아니, 이탈리아에 있어도 여기 잠깐 들러서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지? 그렇게 갈등하다가 내가 친구에게 '저 사람.. 줌파 라히리 같은데..' 라고 말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보여주니 친구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거다. 크..


서양 사람들이 아시아인들을 중국인,일본인, 한국인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걸까..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워낙 안면인식 장애니까..라는 생각도 들고. 아아 어쩌지. 내가 고민하니 친구가 뭘 고민하냐는 거다. 그래서 줌파 라히리면, 인사 하고 싶어, 라고 하니 친구가 너무나 놀라며 '아니면 어쩌려고!!' 하는거다. 친구와 나는 바로 여기에서 극명하게 성격이 갈리는데, 뭐랄까, 나는 그냥 막 나대는 스타일이고, 친구는 조심조심 내성적인 스탈이랄까. 나는 '아니면 어쩌지' 라는 걱정보다는 '맞는데 내가 그냥 넘기게 되면 이 순간을 얼마나 후회할까'하는 생각이 더 강해서, 훨씬, 훠어어어어어얼씬 강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너 진짜 갈거냐고 물어보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 다음에, 친구가 말릴 겨를도 없이, 그 테이블로 향했다. 마침 그 여자분과 함께 온 일행이 잠시 자리를 비워, 그 여자분 혼자 있었다. 이 때밖에 말을 걸 기회가 없어!!


나는 그 자리로 걸어가서, 실례합니다, 라고 먼저 말을 한 뒤에, 당신은 혹시 줌파 라히리인가요? 물었다. 여자는 처음에 잘 못알아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줌파 라히리, 작가에요. 라고. 당신은 줌파 라히리 같아요, 라고. 그러자 여자는 깔깔깔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한테 줌파가 아니어서 쏘리라고 하는 거다.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비록 그녀가 줌파가 아니었고,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그 날 친구와 나는 스테이크와 양고기, 시금치, 와인, 커피의 값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팁만해도 30달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취해서, 취기에 또 기분이 좋아서 헤롱헤롱, 그러다 화장실도 자주 가고 싶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다음 일정인 모마를 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포기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모마는 다음에 가자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라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가 뉴욕에 가기 전에, 우리는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십일년 전에도 가보았지만 꼭 다시 가자고 했었더랬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서 유명한 옥상에 올라가니, 뉴욕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더라. 너무나 아름다운 야경이! 나는 친구에게 여기 야경이 이렇게 좋으니, 우리 피자 사들고 여기서 피자 먹으면서 야경 보자, 엠파이어까지 굳이 올라가지 말자, 라고 제안해보았다. 친구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뉴욕 시내를 걷다가 비싸지 않은 델리에 들어가 피자를 포장했다. 이름도 모르는 커다란 피자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함께 들고는 옥상으로 올랐다.



사진에는 야경이 내가 눈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답게 나오지 않지만, 옥상에서 보는 야경은, 이 숙소의 많은 단점들을 잊게 해주었다. 친구는 연신, 이 야경 하나만으로도 다른 걸 다 잊을 수 있다고 감탄했다. 우리는 옥상에 꾸며진 바의 의자에 앉아 가져온 피자와 맥주를 먹었다. 그러다 이걸 혼자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창원에 있는 친구에게 페이스타임을 걸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뉴욕의 야경을 보여주었다. 친구는 자신의 룸메와 함께 뉴욕의 야경이냐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친구가 있는 곳은 낮이었다.


이 좋은 걸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 아름다운 걸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걸 보면서 누군가 생각난다는 것도 좋았다. 피자와 맥주와 그리고 이 아름다운 뉴욕의 야경을 앞에 두고 몇달전에 헤어진 애인 생각을 오래 했다.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부질없이 몇 번이고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여전히 다정한 연인 사이라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 낮을 살고 있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있는 곳의 밤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봐요, 여기가 지금 이렇게나 아름다운 밤이에요, 나는 여기서 피자와 맥주를 먹고 있어요, 이 좋은 곳에 와서 당신 생각이 났어요, 라고.








친구와 미국에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는 십년후에 여길 또오자고 말했던 터였다. 나는 뉴욕이 너무 좋고,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이곳에 오고 싶고, 뉴욕의 구석구석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먹방은 베트남이 진짜야!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야, 베트남 가자, 내가 황홀한 미식의 세계로 안내할게. 뉴욕에선 '어떤' 먹을 것만 황홀함을 선사하지만, 베트남에선 모든 국수가 그래. 매 끼니가 황홀해, 하다못해 호텔 조식의 '퍼'만으로도 천국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는 혹하는 눈치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8-17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7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08-17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마지막 사진
압권이에요^^
헌데 좀 슬프기도 한 야경이었군요!
보여주고 싶은 이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으니ㅜㅜ
그래도~~~십 년후를 기약할 수있는 친구가 있어 좋고,야경사진을 보내주니 진심 같이 기뻐해주는 친구가 또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사진으로 스테이크를 눈으로 너무 퍼먹어 지금 헛배가 아주 부릅니다ㅜ
10달러가 넘는 시금치 샐러드 같은? 사이드메뉴랑 고급진 스테이크는 한 점씩 먹어보고 싶네요
어떤 맛인지??^^
그리고 줌파 라히리 닮은 사람 얘기엔 저 또한 숨죽여 기대했더랬어요!!
좀 아쉬웠네요ㅜ

그리고 행동하는 다락방님을 보면서 제친구 하나가 생각났어요
제친구 하나가 행동으로 바로 옮기는 스타일이고 전 좀 뒤로 물러나 있는 스타일이라 늘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온 친구더러 ˝뭐라든?˝해요ㅋ
지난주말 부산에 내려 왔대서 만났는데 그날도 친구는 궁금하면 즉각 가서 묻고 다녔고 전 또 앉아서 관찰?하면서 웃어줬구요ㅋㅋ

다락방 2016-08-17 17:05   좋아요 0 | URL
모든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 모두 기쁨을 불러왔다면 슬픔도 불러오겠죠. 왜, [인사이드 아웃]에서 결국 아이가 기뻐지는 건, 그 전에 슬프고 우울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슬픔과 기쁨은 늘 공존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야경을 본 건 분명 기뻤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순간도 나쁘지 않았어요. 흐흣.

전 뉴욕에서 돌아오면 스테이크 질려서 먹기 싫을 줄 알았는데, 웬걸, 또 먹고 싶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ㅠㅠ 그래서 또 먹었어요. 아아 ㅠㅠ 스테이크여, 너는 무엇이냐, 너의 존재는 대체 내게 무엇이냐 ㅠㅠㅠ

맞아요, 책나무님. 제 경우에는 길을 물어서 찾고, 저랑 같이 여행한 친구는 지도 보고 찾아요. ㅎㅎㅎㅎㅎ

사각양배추 2016-08-1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팅만 하다가 뉴욕에서의 글이 너무 좋아서,글 남겨요.
님 글을 읽을 때마다 공감하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매일매일 글 기다려져요!
글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

다락방 2016-08-17 17:0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하하하. 저는 눈팅 하다가 존재를 드러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답니다. 이 글이 사각양배추님으로 하여금 댓글로 존재를 알리게 했으니, 이 글을 쓴 제가 좋아집니다 ㅋㅋㅋㅋㅋ

매일매일 기다려주신다니, 제가 열심히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히힛. 고맙습니다!!

2016-08-17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7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아의서재 2016-08-1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갑자기 저 메뉴들에 지불했을 금액이 궁금해지네요. 저도 여행가서 저렇게 질러보고싶다는! ㅋㅋ 암튼 재미있게 읽고가요.

다락방 2016-08-17 17:17   좋아요 0 | URL
30달러의 팁을 줬던 식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를 제외하면 지불 금액들이 크진 않았어요. 그 식사 한 끼가 진짜 엄청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각오했지만...

친구랑 저는 이번엔 아끼지말자! 라고 다짐하고 갔거든요. 십일년전에 너무 아껴가지고 ㅠㅠ 숙소도 아끼고 식사도 아끼고 ㅠㅠㅠㅠ 그 좋은 데에 가서 맛있는 것도 못먹고 오고... 그래서 이번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오자, 좋은 데 가보자! 했어요. 그래서 미술관도 두 군데나 가고(입장료가 둘다 25달러 씩이에요!!), 자연사 박물관도 가고 그랬어요. 으흐흐흐흐.


할부는 돌아온 자의 몫...Orz

새아의서재 2016-08-1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그래도 직장인이시면! 잠깐 한국왔는데 주부라고 은행 담보대출도 막혀있고 신용카드발급도 잘 안되고 ...갑자기 돈 못버는 자의 설움이. ㅠ ㅠ

팁이 30달러면, 식사는 300달러쯤.ㅋㅋㅋ 결혼하기전에, 혹은 애 낳기전에, 혹은 애가 학교들어가기전에 지르십쇼. 그 이후엔 돈이 있어도 못 씁니다요.ㅠ ㅠ

다락방 2016-08-18 08:48   좋아요 0 | URL
할부가 끊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할부가 끝날라치면 저 할부가 튀어나오고, 저 할부가 끝날라치면 갑자기 여러개의 할부가 좌르륵 쏟아지고... 물론, 다 제가 한 일입니다만... 제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할부의 삶고 가능했겠지요. 휴...

팁을 포함해서 300달러쯤 됐어요. 이 사람들 팁을 많이 받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5%쯤 되는 팁을 준 것 같은데.. 어휴, 음식 값이 비싸니까 팁 값도 비싸서 ... 좀 쫄았네요. 아무리 `먹자!` 하고 들어갔어도 말이지요. 아하하하하.

꽃보다금동 2016-08-18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뉴욕다녀왔는데 달면서도 짜디짠 맛을 견딜수가 없더라고요~ ㅎ 그래서 매일 밤 한국스러운 짠 맛 신라면으로 속을 달랬었지요 ㅎㅎ

야경, 피자, 맥주 조합은 너무 멋지네요^^ 저도 다시 가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네요 ㅎ

다락방 2016-08-18 08:49   좋아요 0 | URL
크, 저희랑 똑같네요. 저희도 돌아오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사발면 흡입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끝무렵엔 더이상 미국 음식이 먹기 싫어져서 ㅠㅠ 한국음식점 찾아가서 김치찌개 먹었어요! 그렇게 짠 거 단 거 싫다!! 해놓고서 `그런데 한국 짠 맛 너무 좋아!` 이러면서 김치찌개랑 김밥이랑 라면이랑 먹으면서 좋아 죽을 뻔 했어요. ㅋㅋㅋㅋ

저도 다시 갈거에요, 꽃금동님. 우리, 다시 갑시다!! ㅎㅎㅎ

헤스티아 2016-08-1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뉴욕다녀오셨어요? 완전 멋져요 ^-^
저두 작년겨울에 하와이에 일주일 다녀왔는데 엄청 짜더라구요 ㅋㅋㅋ
연어요리는 소금덩어리를 먹는줄 ㅋㅋㅋ짜다는 말에 200%공감해요~

스테이크 사진 보니 고기 넘 땡기는걸요 ㅎㅎㅎ
간만에 들어왔다가 잘 구경하구 가요 ^^

다락방 2016-08-18 14:38   좋아요 0 | URL
헤스티아님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아이도 이제 많이 컸을 것 같은데요. 독서 생활도 계속 열심히 하셨나요? ㅎㅎ 종종 만나요~

유월 2016-08-2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든가 말든가 둘 중 하나만 해야죠. 저도 일단 먹으면 가격따위 .. ㅋ 언제떠날지 모르는 여행리스트에 뉴욕을 올립니다. 돈 벌 의욕이 생기네요 :)

다락방 2016-08-22 13:36   좋아요 0 | URL
그럼요! 또 언제 올지 알고 참습니까. 눈 딱감고 먹어버려야 해요! ㅎㅎㅎㅎㅎ
돈 벌 의욕이 생긴다니 좋네요. 돈 벌어서 아주 맛있고 재미있게 쓰세요. 좋은 데 가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사고!!
 
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예순이 넘은 수학교수 '리'가 '폭탄 테러범'으로 의심 받는다. 자신의 옆방 교수가 우편 테러로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옆에 있었고, 그 일이 있고나자 그런 테러를 가한 놈은 벌을 받아야 한다며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옆 방에 있었던 그를 위로하고 그런 인터뷰를 멋지게 해낸 그를 응원했었는데, 어느틈에 그는 '요주의 인물'이 된다. 폭탄 테러범과 그가 '아는 사이' 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자신이 '폭탄 테러범'일 수도 있다는 것을 주변인들과 FBI 는 의심한다. 그가 요주의인물임이 매스컴에 드러나자, 그의 직장인 학교와 그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그를 따돌린다. 애초에 사람들과 많이 대화 하지 않았고 딸과도 사이가 좋지 않은 그였지만, 이 따돌림을 견디는 게 몹시 힘들다. 이 과정에서 그가 범인이 아님을, 그가 생각하는 범인이 정말 범인인지 드러내면서 그의 과거와 지금까지의 시간이 교차한다. 기억은 왜곡됐을 수 있고, 오래전에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그게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것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리 교수는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툭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누군가가 '너는 툭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잖아' 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다시 버럭 성질을 내는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그 신경질이, 소리지르는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그렇지만 그가 테러범으로 의심받고 모두로부터 따돌림당하는 걸 보는 것도 싫었다. 딸을 사랑하지만, 그런 딸을 기억하려고 하면 딸리 어릴 때 뿐이었던 것을 깨닫는 것도 싫었다. 아내의 평생 소원을 입밖으로 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싫었다.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아주 길었음에도 아이사인이라는 편견에 갇혀 수사를 받는 것도 싫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그가 의지할 데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걸까, 하는 초조한 마음이 되어, 그렇다면 이 사람이 세상으로부터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단 말인가, 내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집 밖에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는 테러범이 아니란 말이야!'라고 인터뷰를 하자고 해야할까, 그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방송국에 전화해 내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해야할까, 그것 역시 사람들이 믿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했다. 그렇기에 그가 수사 요원들을 도와 테러범을 직접 맞닥뜨리고자 했을 때, 그 마음을 이해했다. 봐, 진짜 테러범은 이 사람이었고, 나는 이 사람을 잡는 데 도움을 줬잖아, 나는 그가 그렇게 항변하길 바랐지만, 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이름이 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소." 자기 접시를 또한 말끔히 끝낸 리는 모리슨의 말을 끊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허기가 졌다.

"이 사건에서 내 이름을 다시 언급하지 마시오, 짐.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 왔다는 말조차 하지 마요."

모리슨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리가 지성 폭탄 테러범 체포를 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요?"

리는 헨들리가 폭탄을 받았던 그날 병원 보도에서 자신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연설을 기억했다.

"텔레비전이나 그런 것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교훈을 얻었소. 정말로 흥미가 없어요. 난 여전히 작다리 양귀비로 남고 싶소. 당신이 내 말뜻을 알진 모르겠으나." (p.571)



결국 이 힘없고 약하고 외로운 노인은, 자신이 직접,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문제 해결하는 데 뛰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아니, 세상의 전부가 여전히 그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 거기엔 이십년간 연락이 끊겼지만 자신을 믿어주었던 친구가 와있었고, 오랜 시간 소원한 딸로부터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는 엽서가 도착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빠에 대한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래서 언제 도착할건지 적어놓은 빼곡한 엽서에,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 놓았다.



이 신경질적인 교수의 이야기를 내내 초조하게 읽으면서, 이 사람이 이렇게 외롭게 지내는데다 심지어 조용하기까지 한 성격이라면, 이 사람의 억울함이 어디가서 풀어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사랑해요, 라는 말에 무장해제되는 기분이었다. 아, 사랑은 뭘까, 사랑이 뭐길래, 내내 초조하고 불안하고 답답해하던 나를 이렇게 만들까. 이 말을 직접 들은 리 는 어떨까. 자신이 평생 살아온 것보다 더 긴 것 같은 시간을 최근 며칠 사이에 보냈는데, 자신의 모든 체력이 마치 여기에 쓰여져야 했다는 듯 이제 지쳐버렸는데, 집에 돌아와 마주친 '사랑해요'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어쩌면 사랑은, 정말 진부하지만, 사람이 무너지기 직전에 붙잡을 수 있는 단단한 밧줄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만 있으면 사실 낭떠러지로 떨어지려다가도 온 몸의 힘을 내어 자꾸 위로 위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그런 밧줄이 아닐까. 



긴 독서였다. 여행 후에 좀처럼 책이 읽히지 않았고, 게다가 책이 너무 무거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고, 들고 다니면서 읽기가 힘에 겨웠다. 이제 이러고 싶지 않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에, 어느 날엔 들고 다니지도 않았고 읽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주아주 긴 독서가 되었다. 띄엄띄엄 리 교수를 만났는데, 그렇게 띄엄띄엄 만났음에도, 사랑해요, 앞에서 무장해제 되어버리다니, 사랑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단 하나의, 소수의 사랑이기만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 걸려서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었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게 되었다. 


"전 제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몰랐어요." 마크는 흐느꼈다. (p.596)


뭘 잃어버렸는지 몰랐던 마크, 리가 그토록 부정하고 잊고 싶었던 존재가, 자신이 잃어버린 걸 찾았다. 너무 늦었을 수도 있지만, 이만큼의 시간이 있었기에 리와 함께 공항에 나갈 수도 있게 되었을 것이다. 각자의 외로움이 길었지만, 이제부터는 좀 괜찮아질 것 같다. '내'가 무얼 잘못했고, 무얼 보지 못했었는지를 깨달은 뒤의 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살아서 가장 멋진 점 중 하나는," 그는 조심스레 말을 시작했다. "자네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내가 온 나라에서는 그런 말을 했다간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지만 리는 모욕당한 기분은 아니었다.
"아, 농담이 아니네." 그는 온화하게 반박하고 다시 모두들 미적분학 수업으로 돌아갔다. (p.582)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6-08-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이.. 마음에 와닿다니... 이 죽일 무더위보다 더 지치게 되네요...

다락방 2016-08-17 14:43   좋아요 0 | URL
네, 리 교수가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이란 설정이거든요. `내가 온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clavis 2016-08-2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 몸의 힘을 내어 자꾸 위로 위로..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있는게 사람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6-08-22 13:22   좋아요 0 | URL
네,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죠. 그렇지만 한 명은 부족해요. 조금 더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클래비스님.

2016-08-22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81 | 582 | 58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