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처음 생각나는 노래는 매번 다른데, 대체 왜 그 노래가 생각나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아주 뜬금없게 생각나니까. 오늘은 오전 내내 '토니 브랙스톤'의 <breathe again>이 생각났다. 브릿 어겐 브릿 어겐~ 하는 가사가 자꾸 떠올라서, 으응, 근데 왜 다시 숨을 쉰다고 말하는 걸까, 하고는 인터넷으로 노래의 가사를 검색해보았다. 나는 네가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뭐 이런 내용의 가사더라. 그렇구나. 그러다가 양현석 생각이 났다. 오래 전에 친구가 이 노래에 맞춰 춤 추는 양현석을 보았는데 진짜 멋있었다고 한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춤을 본 적이 없었던 바, 아, 그거나 한 번 찾아봐야 겠다, 하고 유튭에 넣어 검색해봤는데, 내가 찾는 양현석 춤 동영상은 안보이고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가 나오더라. 어? 이 영화에 이 노래가 삽입됐던가? 하고 재생시켜 봤더니 다른 노래였다. 어쨌든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나는 갑자기 그레이의 오십가지 그림자 영상을 보게 된거다. 오랜만에 보노라니, 와, 아나스타샤가 너무 예쁘다. 아, 진짜 예쁘다. 예전에도 영화 보면서 느꼈지만 정말 예쁘다. 눈도 예쁘고 입술도 예쁘고 앞머리도 예쁘고 뒷머리도 예쁘고 원피스도 예쁘고.....



나는 앞머리가 있는데 이 앞머리 때문에 참 언제나 고민이다. 아예 길게 두어서 뒤로 넘겨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언제나 어정쩡한 그 시점을 참아넘기질 못하고 다시 자르는 거다. 지금은 내가 집에서 잘라가지고 머리가 쥐가 파먹은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오늘 아나스타샤 보고 나니,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이 똭- 보이더라. 나는, 그러니까, 앞머리를 계속 자를 것이다. 아나스타샤처럼....뒷머리는 기를 것이다, 아나스타샤처럼..... 자꾸 보다보니까 내가 아나스타샤인지 아나스타샤가 나인지 잘 모르겠더라. 내가 한 쪽 눈만 마저 쌍커풀지면, 아나스타샤랑 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은 거다.







막 아나스타샤도 예쁘고, 아나스타샤가 막 사랑을 시작하고, 아나스타샤가 막 긴장하고 그러는 게 갑자기 너무 보기 좋아서, 그레이 영상을 보는데 막 두근거렸다. 아 좋으네. 그래서 나는 아래의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동료가 여름에 쌍커풀수술 같이 하러 가자고 했는데, 으음, 그 손을 내가 덥썩 잡아야 하는걸까.... 쌍커풀 수술하면, 그러면 리얼 아나스타샤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점심먹으러 가는 길, 같이 가는 동료에게 내가 아나스타샤를 닮은 것 같다고 하자 빵 터지며 "지난번엔 그 누구지? 아 그래, 재이슨 스태덤 애인이요, 누구더라, 아, 로지 닮았다고 했잖아요!" 라더라. 아, 맞다. 그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야, 아나스타샤를 더 닮았어, 아나스타샤 보면 그냥 나같어, 나 보는 것 같어, 했더니 동료가 말했다.


차장님이 아무리 아나스타샤 닮았다, 로지 닮았다 해봤자, 현실은 스티븐 시걸이에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티븐 시걸 얘기하지 말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괜히 대학때 별명이었다는 얘기는 해가지고 이럴 때 스티븐 시걸 나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탓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오늘은 그레이와 아나스타샤 때문에 가슴이 떨린다. 덕분에 내가 지난번에 써둔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사랑합니다> 페이퍼를 다시 읽어 보았고, 어쩐지 더불어 생각나는 <잘생긴 개자식> 리뷰도 다시 읽어 보았다. 와.... 잘생긴 개자식 리뷰는.. 참 잘 썼더라. 명문이야.... 감탄하면서 읽었다. 




일전에 ㅇ 님이 내게 '글 쓰는 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알라딘 서재 말고도 다른 개인 블로그도 가지고 있고, 거기에도 자주 글을 쓴다는 걸 알고 한 말이었다. 진짜 부지런히 글 쓰는데 그걸 보면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응, 그렇구나. 요즘엔 진짜 그렇구나 싶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그냥 막 다다다닥 쓰는 걸 보면, 나는 글 쓰는 게 정말 좋은가보다. 아니, 좋다기 보다는 뭐랄까, 글 쓰는 것 말고는 다른 전달 혹은 다른 소통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게 글로 써내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에 알라딘에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을 때, 그때 조차도 나는 아예 글을 쓰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알라딘에 쓰지 않는 동안, 온라인 상에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나의 다이어리가 매일 빼곡하게 채워져나갔다. 지금은 4월초인데, 나는 벌써 7월까지 침범해서 거기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이러다가 6월이 되기전에 다이어리를 다시 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다이어리에 적은 글들을 읽어보다가, 아,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습관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대체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싶었다. 새삼 글이,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졌다.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글 쓰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잘생긴 개자식의 리뷰가 그렇게나 뛰어난 것 같다. 우하하하하.




일상은 구질구질하다. 가슴이 아프고 찢어져도 다음날 어김없이 눈을 떠 회사에 출근하고 억지로 앉아 있어야 하는데, 집에 간다고 또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어제의 나는 일어나자마자 스팸과 야채를 썰어 넣고 밥을 볶아 먹고 출근을 했다. 퇴근후에는 친구를 만나 등갈비찜에 곤드레밥을 먹고 양재천에 가 밤벚꽃을 구경했다. 여기에 이렇게 벚꽃이 많이 폈을지 미처 몰랐다고, 여긴 생각도 못했다고, 친구와 걸으며 내내 감탄하고 즐거워했다. 그런 틈틈이 '얼른 집에 가서 빨래 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 더 늦으면 안되는데, 더 늦으면 나 잘 시간이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흐드러진 벚꽃을 보는 게 참 마음에 좋은 거다. 빨래를 포기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랬다가는 금요일 저녁에 오시는 엄마가 빨래를 돌려야 할 것 같아, 안되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을 포기하더라도 빨래를 돌리자!! 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 오금역에서는 열차가 13분후에 도착한다길래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빨래를 하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 우선 후다닥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 전날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진짜 엄청 피곤했다. 입밖으로 소리내서 말했다. '아 개피곤하다'라고. 그러면서도 세탁기를 돌렸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틈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밥통을 열어보고 밥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밥을 했고, 아침에 먹고 갔던 그릇들 설거지를 했고, 다음날 아침에 밥 볶아 먹을 파프리카를 썰어 두었다. 빨래가 다 되어서 널고나니 금세 밤 열두시가 되더라. 와.... 일상.... 뭐 이래?? 뭐가 이렇게 힘들어? 빨래까지 다 널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고 내 방에 들어가 내 침대에 누웠는데, 와, 눈물나게 편안했다. 진짜 좋구나. 역시 세상에서 내 침대가 짱이야. 




여자1이 몇 년전의 전남친으로부터 요새 자꾸 연락이 와서 짜증이 난다고 했다.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연락하고 살자' 라고 했다면서 뭐 이딴 놈이 다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러더니 급기야 어제는 이런 메세지가 왔다고 했다.


<발신번호제한.......너니?>



자기한테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왔었는데, 그게 혹시 너 아니냐, 했던 거다. 하아- 이걸 보고난 여자1은 너무 화딱지가 나서, 자기는 살면서 욕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온 마음의 에너지를 모아 '네가 싫다'를 보여주고 싶어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너 존나 가지가지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아 나 완전 빵터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자1을 그동안 봤을 때 진짜 욕을 할 줄 모르는데, 저 '존나'를 하기까지 얼마나 빡이 쳤을까. 그리고 저 남자 너무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남친이란 건 <자니?> 로 표현되는 줄 알았는데, 아하하하하하, 참신하다.



발신번호제한...너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 진짜 이 얘기 듣고 너무 웃었네. 발신번호제한.... 너니? 뭔가 중2스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내가 잘라놓은 내 앞머리, 쥐가 파 먹은 것 같은 내 앞머리, 빨리 자라야 미용실 가서 제대로 잘라달라고 할텐데...하아. 일상은 진짜 쉽지가 않다. 오늘 점심은 부대찌개를 진짜 겁나 맛있게 먹었는데, 함께 먹던 동료가 그랬다. 아나스타샤는 부대찌개 안먹을걸요? 라고...... 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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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항상 재미있게 읽는 1인입니다. 덕분에 이번 주말도 유쾌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다음에 또 봐요, 스티븐 시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04-10 19:40   좋아요 0 | URL
언제나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덕에 기운이 납니다. 힛. 제가 항상 좋아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

몬스터 2016-04-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과 아나스타샤의 교집합이 뭘까 생각해보네요 ㅎㅎㅎ 섹시함?!?! ㅎ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ㅎ

다락방 2016-04-10 19:40   좋아요 0 | URL
스티븐과 아나스타샤의 교집합이라면 그러니까...아마도 포니테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핫;;

유부만두 2016-04-0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더 이뻐요!!!!!

다락방 2016-04-10 19:40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유부만두님. 그리고 전화도 고마웠어요!
:)

비로그인 2016-04-0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개;;피곤하시겠어요 ㅠㅠ 저도 매일매일이 개피곤 ㅠㅠ 밤에 뻐근한 몸을 누이는 순간 아, 오늘도 힘들었다 생각이 절로 ㅠㅠ
스티븐 시걸 얼굴이 급떠오르지않아 찾아봤더니 ㅋㅋㅋㅋ 빵터졌어요 다락방님은 당근 아나스타샤죠~~첫번째 사진에서 딱 다락방님이 떠오르는 걸요~ㅎ

다락방 2016-04-10 19:42   좋아요 0 | URL
일상은 진짜 개피곤이에요 ㅜㅜ 지금은 그때그때 되는 가족들이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있긴 한데, 저는 만약 혼자 살게 된다면 일하시는 분 부르고 싶어요 ㅠㅠ 회사에서 일하고 와서 집에서 또 일하려니 진짜 개피곤 ㅠㅠ 세상이 온통 일투성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걸까요? ㅜㅜ

그쵸? 저 아나스타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아른님. 저는 아른님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으하하하핫!!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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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을 이렇듯 경쾌하고 다정하게 전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좀더 무겁게 해주는 걸 선호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해줘야 세상이 균형을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곳에서 낡은 나사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려앉는 그런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p.247)




경쾌하다고, 다정하다고, 가볍다고 말해놓고서는 인용문은 이런 것만 가져왔네 ㅠㅠ




조금만 더 있어, 말하고 싶었지만 은영은 칙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은영은 웃는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는데 잘되지 않았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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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8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마치 해돋이나 창문 색깔처럼 상실감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상이 물려준 세상이 갑자기 끝장났을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종말과 맞서야 했다. 내게도 상징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세탁이었다. 리넨 천을 빠노라면 어딘가 차분하고 일상적인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행군 중에는 당연히 깨끗한 리넨을 볼 수가 없었다. 방식이 색다르긴 해도 줄푸가에게는 그 대상이 옛날 차였을 뿐이다. (p.142)


















e 의 고양이가 죽었다. e 는 어제 장례를 치러주었노라 내게 말했다. 많이 아팠고 병원에서는 오늘 밤이 고비다, 라고 했는데 새벽에 별이 되었다고 했다. e는 고양이 두 마리와 오래 함께 지냈고, 그 중에 한 마리가 어제 작별을 고한거다. 나는 그 마음이 어떨지, 그 상실의 고통에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몰라 토닥토닥만 해주다가 물끄러미, 내 책상위의 꽃을 보았다. 지난주부터 책상위에 꽃을 두기 시작했는데, 이걸 들여다보는 게 좋더라. 내가 꽃을 사고 싶었던것처럼, 예쁜 꽃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처럼, 어쩌면 e 에게도 꽃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e 양에게 꽃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며칠전 읽은 먼 북쪽의 저 문구를 메세지로 넣었다. 



누군가를 향한 상실감이 너무도 혹독해 그 고통에 허리를 부여잡을 때가 있다.



는 문장이 책을 읽다가 콱 박혔더랬다. e 에게도 분명 지금 상실감이 너무 혹독하게 느껴지리라. 고양이와 작별한 친구에게 위로의 꽃을 보내고 싶다 했더니, 이렇게 고요하고 우아한 꽃바구니를 하이드님이 만들어주셨다. 






저기 메모에 꽂힌 나비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고양이 두 마리중 혼자 남게된 고양이의 이름이 '나비'인데, 어떻게 저렇게 나비가 저 메모를 전할까. 마치 살아있는 e의 고양이 나비가 제 집사를 위로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마음이 담기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나비 찝게라니 말이다.





꽃바구니를 받고 e 는 눈물이 또 난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아무에게도 고양이의 죽음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가는 길, 이 고양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는 게 고양이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오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 자신에게 정말 위로가 됐다고 했다. e 양은 내게 말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보냈을텐데,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면서 달라졌다고. 



차장님은 슬픔도 기쁨도 솔직하게 다 말씀해주시는데 그거 보면서 저도 배웠어요, 차장님이 제게 그런 말씀들을 해주실 때 저 좋았거든요, 아직 멀었지만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다정한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요즘에는 이렇게 다정한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냥 바로 눈물이 난다. 이것도 노화의 한 증상인가? 피부가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지고 생리양이 줄어드는 것만이 노화의 증상인줄 알았는데, 눈물이 많아지기도 하는건가 보다. 이게 다 내가 늙어가기 때문인가보다. 다정한 말에 눈물이라니.



나는 이렇게 매일 늙어가고 있지만, 잘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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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04-0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사람 다락방님.

다락방 2016-04-08 08:1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ㅠㅠ

꽃핑키 2016-04-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ㅠ 폭풍공감해요 다락방님ㅠ 저도 늙어서 그런지 툭하면 눈물바람ㅠㅠ 어쩔땐 부끄러워 숨어서 울게돼요ㅋㅋ
아. 따뜻한 페이퍼 넘 좋아요♡
꽃사진 딱 봤을때부터 누구 솜씨인지! 한눈에 알아봤어요! 저런 꽃과 메시지라묜, 아무리 커다란 슬픔도 거침없이 꿋꿋하게 잘 헤쳐나갈 힘 생길거 같아요♡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흑흑 꽃핑키님. 꽃핑키님도 눈물이 많아요? 전 예전에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왜이렇게 되어버린건지... ㅠㅠ 이제는 서러운 말이 아니라 다정한 말에도 울어요. 확실히 비정상인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어려움과 고통을 가지고 있고 또 저마다의 상실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힘을 주고 애정을 주면서 버텨나가야 할 것 같아요. 핑키님, 숨어서 울지 말고 드러내서 울어요, 그리고 손 잡아달라고, 위로해달라고 말해요. 덜 아플 수 있게요.

아무개 2016-04-0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래서 형씨를 애정해 마지않소!

다락방 2016-04-08 08:20   좋아요 0 | URL
그 애정 변치 마시오. ㅠㅠ

보슬비 2016-04-0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정한말, 다정한눈빛.다정한몸짓에 눈물이 나고 위로를 얻어요.

다락방 2016-04-08 10:08   좋아요 0 | URL
어제는 문득 다정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의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노력해야 겨우 다정해질 수가 있어요. 다정하다는 게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만큼, 다정한 말과 몸짓에 위로를 얻고 또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레와 2016-04-0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이 내 친구인게 참 고맙소..


다락방 2016-04-08 11:49   좋아요 0 | URL
무슨소리. 나의 기쁨이오!
 
















영화 『루시아』에서 여자는 남자와 이별을 한 후에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간다. 그녀는 '빠에야'를 달라고 식당 직원에게 말하는데, 직원은 그녀에게 '빠에야는 2인부터 주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애인하고 헤어진 것도 서러운데 먹고 싶은 건 둘이 와야 먹을 수 있다니. 너무해. 그녀는 운다. 빠에야를 먹을 수 없어 운다. 애인하고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그가 과거의 여자를 잊지 못했다는 걸 그녀가 몰랐다면, 그녀와 그가 여전히 다정한 애인이라면, 그렇다면 둘이서 사이좋게 빠에야를 먹을 수 있을텐데. 애인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다거나 섹스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하는 문제로만 끝나지가 않는다. 애인이 없다는 건,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루시아에게 빠에야를 1인분만 해서 팔란 말이다, 식당들아!!!!!



(아..근데 나 진짜 글 잘 쓰는 것 같다. 뭐랄까. 키보드에 손만 가져다대면 생각지도 못했던 글들이 막 튀어나와.. 나는 글 쓰는 천재.... 내 글은 손이 쓴다........)



'파스칼 키냐르'의 『신비한 결속』도입부 에서 '클레르'는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서 고향을 찾다가 배가 고파 혼자 식당에 들어간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탐탁지 않아 한다. 그 장면을 읽는데 영화 『루시아』 생각이 나더라. 여자 혼자 식당을 간다→ 생각대로 순조롭게 잘 먹을 수가 없다의 과정으로 진행되면 나는 그냥 루시아 자동연상...



클레르는 평생 한 남자만 '진정으로' 사랑했다. 아니 방점은 '사랑했다'에 찍히는 거라고 봐야겠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었지만, 결혼한 남자도, 자신의 아이들도 사랑하지 않은 채로 그들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어릴 적에 그가 사랑했던 '시몽'을 찾아왔고, 사십육세에 다시, 시몽과 사랑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얼마 가지 않아 끝나버리고 만다. 이미 아내가 있던 시몽은 아내와 아이들을 떠날 수 없었고, 그렇게 클레르에게 헤어짐을 말한다. 클레르는 절망한다. 절망 정도가 아니다. 아, 클레르...


아니 근데, 사십육세에도, 사십칠세에도 사랑 때문에 울고 절망해야 한다면... 세상은 뭐지..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도 사랑 때문에 힘들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십세쯤 되면 사랑하나 잃었다고 우는 건 그만해야 되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사십 오세를 넘어가도 또 울고...그렇게 육십에도 울고 칠십에도 울고..그러는건가... 어쨌든 그녀는 사십육세에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절망을 하고...그리고 죽을때까지 평생, 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생 그를 그리워한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일도 손에서 놓고 먹는 것도 마다한다. 그녀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걷는다. 계속 걷는다. 그녀가 부지깽이처럼 말라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녀는 눈만 뜨면 일어나 걷고 걷고 또 걷고 먹는 건 마다하고 또 걷고 계속 걷고 가끔 바닷물에 얼굴을 박고 그 물을 마시고 걷고 또 걷고 잘 때만 집에 들어온다. 그녀에게서는 이제 자연 모든 것들의 냄새가 난다. 아아, 여자여... 어느 부분에서의 클레르가 나 같았다. 물론 열시간 이상을 걷고 일도 팽개치도 식음도 팽개치는 부분에서는 절대 나같지 않고. 다른 부분에서는 나 같았는데, 그걸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존재가 있는 것 같다. 결코 자신의 삶에서 아웃시킬 수 없는 존재. 필연적으로 맺어진 인연인 가족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이었음에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 만나고 헤어져도, 내 삶의 축에 늘 부재로 존재하는, 그런 존재. 클레르에겐 시몽이 그랬다. 시몽과 헤어지고난 후에도 늘 시몽의 뒤를 좇았고, 시몽을 바라봤다. 시몽이 퇴근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시몽도 그걸 알고 있었다. 클레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시몽이 죽고난 뒤에도 클레르의 삶에는 계속 시몽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옆에 살거나 숨쉬는 게 아님에도, 그녀의 인생엔 언제나 시몽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닌 사람.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마음 속 성소'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부재의 존재는 마음 속 성소에 그 사람을 두었다는 표현과 같은 뜻인 것 같다. 



그 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민음사, p.324)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고 헤어지고 또 누군가와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성소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누군가를 간직하며 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대상은 언젠가부터 입밖으로 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이겠지만, 클레르에게 그 대상이 시몽이었음은, 클레르가 살고 있는 곳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나는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는 클레르를 알고 이해한다. 어떤 절망은 그렇게 계속 걷게 만드는 거다.



걷고 

또 걷고

계속 걷고...





그가 가는 곳에 나도 가리라.

그가 사는 곳에 나도 머물겠노라.

그가 죽는 곳에 나도 묻히리라.


「룻기」 (파스칼 키냐르, 『신비한 결속』에서 재인용)







누나의 눈이 갑자기 반짝이면, 시몽과 관련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였다.
시몽을 생각할 때만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토록 그를 생각하기 때문에 누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p.123)

하지만 그 역시, 바위들 위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바다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역시, 헤매고 다니며 자신을 지켜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하루 온종일 시간대별로 그녀를 눈으로 뒤쫓았다. 누나도 마찬가지로 바다에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바다가 지겨운데도 낚시를 하는 척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맺어지길 원치 않는 그를. (p.156)

"하느님께서 슬퍼하십니다. 슬프다고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어요. Tristis est anima mea(내 마음이 슬프도다). 그런데 단지 슬픔만을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죽고 싶을 만큼 삶에 환멸을 느낀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너무나 슬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프도다.`" (p.261)

그녀가 건방지고 냉담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어느 누구의 비위도 맞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시몽을 사랑하므로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했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들의 스토리를 쭉 지켜본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거의 처녀였다. 오직 한 가지 명분, 즉 시몽에 대한 사랑만이 그녀의 삶에 동기를 부여햇다.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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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6-04-0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락방님 오늘 글 좋고요... (다락방님 손에게 경배!)

다락방 2016-04-06 13:46   좋아요 0 | URL
건배! ㅎㅎ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6-04-0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정말 글을 잘쓰는거 맞는거 같습니다... 술... 드신건 아니죠? ㅋㄷㅋㄷㅋㄷ

다락방 2016-04-06 13:46   좋아요 0 | URL
어제 마신 술이 안깬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6-04-0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원래부터, 예전부터, 처음부터 다락방님 손을 좋아했어요.

하나는 이렇게 좋은 글을 쓰는 손이라서구요.
또 하나는 너무 부드러워서....
아이 같은 손, 다락방님 손은 여름에도 핸드크림 발라서 그 촉촉함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손이예요.
너무 부드러운 손, 고운 손...

다락방 2016-04-06 13:47   좋아요 0 | URL
오케이. 그렇다면 저는 이제부터 여름에도 핸드크림을 사용하도록 하겠어요. 불끈! 단발머리님 말씀에 충성!!

단발머리 2016-04-06 13:50   좋아요 0 | URL
우리 만나서 손 잡는 그날까지 내가 느꼈던 그 퀄리티~~~ 그대로 유지해야 돼요!!!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갑자기... 뒤통수가 뜨겁네요...
여러분이 생각나지만서도 아무개님...
아무개님이 보셔야 하는데..
아무개님~ 저 아무개님 형이랑 손 잡을거예요~ 메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04-06 16: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오늘은 아무개님이 조용~ 하시네요.
제가 나이들면서 노화로다가 손이 거칠어지고 있는데 ㅠㅠ 여튼 최선을 다해서 손을 보호해보도록 하겠습니닷. 필승!!

시이소오 2016-04-0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성소, 공감이네요
순수의 시대를 읽어야겠군요 ^^

다락방 2016-04-06 16:59   좋아요 0 | URL
순수의 시대는 좋은 소설이에요, 시이소오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

시이소오 2016-04-0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앞부분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어볼게요. 저런, 죄송합니다 책은 이미 사놔서 땡스투 불가하네요. 아무튼 땡스입니다^^

다락방 2016-04-06 18:01   좋아요 1 | URL
ㅎㅎ 땡투 못받으면 어떻습니까. 시이소오님께 순수의 시대가 재미있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으하하핫

건조기후 2016-05-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다락방님 이 달의 당선작 보다가 이 페이퍼 다시 읽어 보는데 무서운 한 줄을 발견했어요.

고 죽을때까지 평생, 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생 그를 그리워한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일도 손에서 놓고 먹는 것도 마다한

다음 줄로 가야하는데 어쩌다 `먹는 것도 마다하고` 로 이어지는 건 줄 알고 읽다가 놀랐어요. 그리움이 무한반복돼요...
다락방님 손은 정말 엄청난 손이네요!

다락방 2016-05-16 08:09   좋아요 0 | URL
그리움이 무한반복되는 시간에 써서 그런걸까요. 제가 그런 타이밍에 있어서 그런건가봐요. 제 손이 제 마음을 알고... 흙 ㅜㅜ

젤리곰 2016-05-1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귀여워...귀여워... 너무나 귀여우심... 세상에 귀여워... (숨이 넘어간다...) #아_저는_김오키


다락방 2016-05-18 16:1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제가 귀엽다는 말씀이시죠? 맞죠?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설 [제인 에어]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남자주인공 '로체스터'였다. 그는 아직까지도 내게 인상이 강해서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는데, 소설의 끝에 그는 눈도 멀고 팔도 못 쓰게 되는데, 제인 에어를 만나서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뜨겁게 고백을 하는 거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혹여라도 내가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편이고, 또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잘난점을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하는데, 그런 나였다면 아마 내가 눈이 멀고 팔을 못쓰게 되었을 때, 위축됐을 것 같은 거다. 상대보다 내가 불편함을 갖고 있단 사실에. 나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도 약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그의 앞에 반드시 멋진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걸까? 사실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숨기는 것 보다는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 훨씬 건강한 것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실제로, 나는 내가 혹시 알츠하이머 초기증세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때, 신경정신과에 방문을 하면서, 그 당시 사귀던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라고 한다면, 그렇게 결론이 난다면, 그에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가 나보다 더 건강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그를 편하게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만약, 그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면-난 아프니까 우린 헤어져-, 나는 대체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아-

결론적으로 나는 알츠하이머가 아니었고, 닥터는 내게 '알츠하이머와는 아주 거리가 먼'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었다. 길가면서 책 읽거나 핸드폰 보지 말라는 조언만 듣고 돌아왔었지....

어쨌든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상황이 되는 게 싫었고, 그런 나의 상황 때문에 상대가 불편해할까봐 염려했는데, 로체스터는 일단 그 모든 걸 제쳐두고 '나는 너를 사랑해'를 외치는 거다. 와, 진짜 너무 멋진 거다.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이렇고, 내 상황이 이렇고, 어쩌고 하고 뒤로 숨는 게 아니라, 감추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밝혀야 한다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주하면서 나는 로체스터 생각이 났다. 로자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깊었는데, 단순히 똑똑한 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마주한 사랑에도 늘 당당했다. 요구할 게 있다면 요구했고,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다 읽고 하루를 지내면서 생각한 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마음이 따뜻하기만 해서도 안된다는 거였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학시절 성적이 좋았고(우리는 이미 시사인에서 그녀의 대학시절 성적표를 본 적이 있잖은가), 증명된 바는 없지만 몇 개의 외국어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실 정말 대통령이 똑똑한지 어떤지 증명된 바는 없지만, 어쨌든, 똑똑하다고 쳤을 때, 그러나 대통령은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몰랐다. 지금도 모르고 있다.

로자가 노동자들의 편에 서고, 전쟁을 반대하고, 사람들 앞에서 뜨겁게 연설하며, 경제를 연구했던 이 모든 것들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었고 사랑이었다. 로자는 채찍으로 맞으며 일하는 물소 앞에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건 녀석의 눈물이었죠.

루마니아의 그 아름답고 자유롭고 보드랍고 푸르른 초원은 이제 얼마나 멀어져 버렸으며 얼마나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 
그리고 여기, 이 낯설고 추악한 도시, 음울한 축사, 구역질나는 것들, 썩은 지푸라기들이 섞인 더러운 건초더미, 기이하고 두려운 인간들,
-온통 구타와 상처에서 흐르는 피...
아, 이 가엾은 물소, 내 가엾은 사랑하는 형제!
우린 둘 다 할 말도 잃은 채 무력하게 여기 서 있고, 똑같은 통증과 무기력과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p.144)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더 나은 곳으로 이곳을 바꿔야 한다는 강한 열정, 이 모든 것들이 그녀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지식과 더불어 그녀를 자꾸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게다가 인상적인 건,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면서, 사랑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뜨겁게 사랑했고 뜨겁게 이별했다. 그녀가 사랑하고 이별하며 그 모든 감정들에 충실했던 것들은, 그녀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녀 자체도 자신이 성숙해졌음을 느낀다. 어쩌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모습은 지성과 사랑할 줄 능력-비단 연인을 향한 것만이 아니라-을 모두 갖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어느 한쪽만 가까스로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하는 대신, 코르셋을 벗어던져 허리 둘레가 넓어진 자신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다.



그녀가 많은 책을 읽고 이해를 하고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연구를 하는 모든 행위들을 하는 것도 분명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지만, 그런 그녀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건, 그녀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그 모든 행위에 있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했다는 거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걸 알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모든 감정들을 솔직히 인정하며, 그 감정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린 평생 함께할 계획이 천 개는 있었어요. 인생을 만끽하고, 여행을 다니며, 좋은 책을 읽고, 지금껏 못해봤으니 다가오는 봄을 경이로운 눈으로 맞아보고 싶었죠. (p.142)


실행될 수 없는 천 개의 계획에 대해 마음이 무척 아프다. 그녀와 함께 울고 싶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궁금해져서 그녀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맨 처음의 책이 '평전'이란 이름을 달고 있어서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지은이가 '막스 갈로'라서 망설여진다. 내가 막스 갈로의 책을 읽고 뭔가 되게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뭐였지? 검색 좀 해보자..나폴레옹 이었나??









아하하하. 그래, 나폴레옹이 맞았어! 내가 저 다섯 권 읽느라 진짜 얼마나 힘들었는지, 원. ㅠㅠ

아 머리 아프다 히융.



최근에 읽은 이 책 [레드 로자]와 주말에 본 드라마 [아이가 다섯](제목이 이게 맞나??), 영화 [나이트 인 로댄스], 그리고 지금이 선거철 이라는 것 때문인지, 이 모든 것들이 섞인 복잡한 꿈을 꿨다. 꿈에,


나는 아들 둘의 엄마였다. 나는 사회생활이 굉장히 바빠서 아이들을 돌볼 짬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어쨌든 그 날도 집에 갔는데 어린 둘째 아들이 엄마는 항상 바쁘다며, 그런데 엄마를 봐서 너무 좋다며 안겨드는 거다. 나는 아이에게 폭풍 입맞춤을 해주고 잘자라고, 완전 사랑한다고, 내일 아침에 네가 자고 일어나도 엄마는 있을 거라고 말해준 뒤에 아이를 재웠다. 그리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고 금세 잠이 들려는데, 잠이 들려는 시점에서 나에게 남편이 있는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거다. 나 남편 있나? 아이들 혼자 키우나? 그래서 벌떡 일어나 두리번 거렸는데, 저 쪽 침대에 남자가 혼자 자고 있더라. 아, 남편 있구나, 그런데 왜 저기서 자지? 우리는 별거중인가? 아니면 그냥 침대 따로 쓰나? 하고 갸웃하다 다시 잠들었고, 그렇게 아침이 되었는데,


아이가 둘인지 셋인지 여튼 하나는 아닌 여동생이 우리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 거다. 자신은 너무너무 바쁘다며 아이들을 좀 봐달라고. 그래서 나도 겁나 바빠 네 아이들을 돌볼 짬이 없다, 우리 애들을 네가 봐라, 하며 티격태격 하고 있으려니, 왜때문인지 하루종일 아무 할 일도 없는 나의 남편이 나와서는 걱정말라며, 아이들 모두를 본인이 보겠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러라며 고맙다고 우리는 각자 나갔다.


그런 여동생과 나는 한 동네에서 마주친다. 여동생은 선거운동 중이었다. 아하하하하. 동네 어른들은 여동생과 악수를 하고서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며 칭찬들을 해댔다. 나 역시 선거운동중이었는데, 나를 뽑아달라는 건지 내가 지지하는 자를 뽑아달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네 사람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내가 속한 정당은 내 여동생이 속한 정당과는 달랐는데, 동네에서 인사를 나누는 분들은 나를 보고는 '동생도 훌륭한데 언니는 더 훌륭하다'며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아하하하. 내가 이런 사람이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함께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남편을 마주쳤다. 동네분들은 그를 잡고서는, '당신 와이프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그걸 당신이 꼭 알아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음... 아이들하고 놀아주지 못하고 이렇게 바깥에만 나와있는데 내가 훌륭한걸까...라고 잠깐 생각하며 빨리 끝내 나도 아이들하고 놀고 싶은데..... 생각을 했다.



이게 로자와, 아이가 다섯인 드라마와, 당신을 가진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하는 영화를 봐서 꾼 꿈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책 [람세스]에서, 이집트 왕 람세스는 왕비 네페르타리와 함께 정치를 한다. 왕비는 지혜롭게 그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름답고 우아하며 게다가 정치적 안목까지 있는 그녀는 감히 내가 따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야, 나는 왕비는 못하겠고, 그냥 왕의 세컨드나 해야겠다, 정치 같은 건 다른 사람이 하게 두고 나는 사랑이나 하고 살아야겠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보면 지혜로운 왕비와 그 왕비를 의지하는 왕을 보며 질투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내가 속 편하게 살려면 나는 그냥 사랑만 하고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아, 나란 인간은, 로자와 정말이지 얼마나 다른가... 나는 이렇게나 소박해서 민중 앞에 서서 이 모든 걸 뜯어고치자고, 일어서자고 말하는 대신, 초콜릿에 커피나 마시며 서초구 양재동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로자는 로자의 할 일이 있었고 나는 나의 할 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지만, 사실, 내가 할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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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04-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레드 로자 그냥 책표지만 봤을때는 만화인줄 몰랐는데, 다락방님 페이퍼를 보고 만화라는것을 알았어요. 그냥 글이었다면 못 읽을텐데, 만화라 좀 더 쉽게 접근할수 있을것 같아 읽어보고 싶어져요.^^

다락방 2016-04-06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만화인 줄 몰랐다가 만화인 걸 알게된 후에 구입했어요, 보슬비님. 만화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만화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으로 시작했다면 아마 다 못읽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좀 더 알고 싶어져서 평전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쪽수가 어마어마해서 확 지르진 못하겠지만요. 으흐흐흐.

읽어보세요, 보슬비님. 이 책 좋더라고요.
:)

2016-04-06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06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4-0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 로자, 정말 멋진 여자였네요.
사랑에서도 일에서도요.
자기 앞의 남자를 사랑할 줄 알고 종으로서의 인간도 사랑한 사람이네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만화라서 읽는 거 아니예요.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내용이 궁금해서 읽는거예요.

그리고 동생분 학교 선생님 제안.... 잘 진행되고 있죠? ㅎㅎ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뭐 이래.... 나, 다락방님 매니저예요? 내가 스스로 막 생각해보나요?ㅎㅎ)
좋은 기회 같아요. 다락방님도 다락방님이지만 아이들에게도요.
조금만 용기내 보세요~~
전에, <순수의 시대> 페이퍼에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거 있잖아요.
그것만해도 한 시간은 족히~~ (뭐래.... 나 내용도 생각하고 있어요? )

다락방 2016-04-06 09:39   좋아요 0 | URL
네, 로자는 너무나 근사한 사람이었던 거에요. 종으로서의 인간도 사랑하고 또 물소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여자였죠.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니, 정말 멋진 여자였던 거에요!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고 저같은 사람도 있고...(응?)

동생 학교는 얘기가 한 번 더 나오면 그때 한 번 만나서 `나한테 뭘 원하나요?` 물어볼 작정인데, 아직 그 뒤로 얘기는 없어요. 이대로 저는 묻힐지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영화 얘기로 시작해서 소설 무시하는 병신들에 대해 얘기해야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