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친구
엘렌 그레미용 지음, 장소미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나 많은 사랑들이 틀어지고 숨겨지고 어긋나게 되는걸까. 얼마나 많은 사랑들이 제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채 사라져버리는 걸까.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작가가 너무 많이 개입했고, 그런 점이 내심 못마땅해 나는 흥미로울지라도 그녀의 책을 또 고를거라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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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02-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해서 보관함에 넣어놓았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_+;
다락방님 덕분에, 안 읽어도 되겠다는 결론입니다. ^^

다락방 2014-02-24 17:39   좋아요 0 | URL
ㅎㅎ 문나잇님, 이게 다른 분들은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이고 저도 한 번 손에 들으니 쭉쭉 읽어나갈 만큼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 다만, 저는 작위적이란 생각이 한 번 딱 들고나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더이상 애정이 생기질 않더라고요. 초반에 작가가 지나치게 '너무 많은 우연'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가 아무리 재미있었어도 좀...여튼 그렇답니다, 문나잇님. ㅎㅎ

페크pek0501 2014-02-2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평을 읽으니 제가 읽었던 한 부분이 떠올랐어요.
소설 속 각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는 내용이었죠.
그들이 말하는 걸, 작가는 그저 옮겨 적는다는 뜻 같았어요.
작가와 인물의 거리를 말함이기도 하겠죠. ^^

다락방 2014-02-24 17:41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그대로, 저는 소설 속 각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소설이 좋아요. 그렇지만 그로 하여금 독자가 그 안에 빠져들어가고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요. 작가가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혹은 이야기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끼어들었다는 생각이 딱- 드는 순간 저는 이미 마구 점수를 깍아버리곤 하죠. 다 읽기도 전에 말예요. 이 책, 비밀 친구가 제겐 그런 책이었고 몇개월전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해리 쿼버트도 그랬어요. 저는 그렇게 작가가 심하게 힘을 휘두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독자입니다. 하핫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 보고서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2주전이었나. 영화가 상영되길 기다리는 극장안에서 '프리페민'이란 약의 광고를 보게됐다. 생리전증후군을 치료해주는 약이라는데, 평소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리던 나로서는 당장에 메모를 했고 바로 다음날 약국에 들러 구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약국에선 그런 약을 알지 못한다고 했고, 좀 더 큰 약국에 가봐야하나 싶어 그 다음날 들른 약국에서는 있다며 그 약을 내게 꺼내주었다. 하루에 한 알씩 먹는 약이라고 했는데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려던 나는 그 약의 가격이 60,000원, 육만원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 가격이 정말 맞는거냐고 물으니 약사는 이 약은 3개월분이고 치료제라며 그 가격이 맞다고 대답했다. 생리전증후군은 내게 꽤 심각한 증상을 종종 불러왔고, 나는 그 증상들에 기꺼이 육만원을 투자하자 싶어 계산을 하고 약국을 나왔다. 그래, 이 약을 먹고 나아진다면 그게 더 낫잖아, 라는 생각에. 그러나 몇 걸음 걷다 다시 뒤돌아 약국으로 향했다. 이 약이 들어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려해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 어떤 약에 대해서는 부작용을 가진 내가 이 약을 그냥 무조건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들고 실제 이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 이 약을 복용해도 늦지 않을 거였다. 이 고통을 오래도록 참아왔는데, 몇 개월 더 못참겠는가 싶어 나는 약국으로 가 환불을 요청했다. 몇 개월쯤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그 약을 먹기로 생각을 바꿨다.



나는 가급적 약을 먹고 싶지 않고 약들이 내 몸에 들어가서 무슨 작용을 할까 사실은 좀 두려워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니 생리전증후군을 치료하는 약 하나에도 이렇게 벌벌 떨기만 한다. 이 약을 철저한 검증을 거친 약일까?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 약을 먹기를 꺼려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먼저 먹고 얘기해주기를 바랐다. 확실히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내 자신을 더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인가보다. 이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약에 있어서는 더더욱 동물실험을 거친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나 역시도 그것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동물 실험을 반대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만약 인간보다 더 똑똑한 개체가 나타나 자신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만들고자 하고, 거기에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쓴다고 하면 아마 나는 앞장서서 그 일에 반대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고통스런 병에 걸리고 그 약을 발명하는데 있어 동물 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하면, 나는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는, '윤리'란 말이 제목에 들어간 탓인지 매 기업의 보고서를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그래서 이 책은 '재미있다'. 그것이 유쾌한 재미를 뜻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고민할 부분들을 끊임없이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나는 애플과 삼성전자를 보기 위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노바티스 보고서를 보고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제약 회사의 또 다른 특수한 문제는 실험과 관련되어 있다. 동물 실험은 동물 보호 단체의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반면에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을 사람에게 실험하려면 더 큰 윤리 문제가 불거진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실시하는 실험은 아주 민감한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나 현지의 느슨한 규정을 악용한다는 비난이 즉각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비판에서는 가끔 한 가지 사실이 간과된다. 현대 의학만큼 삶의 질을 개선한 분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중병에 걸린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현대 의학의 이런 유용성을 인지한 사람은 제약 회사가 받는 비난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노바티스는 무엇보다 이런 이유에서 별점 셋을 받았다. (p.78)



도덕적으로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채로 중병을 고치는 약을 만드는 다른 방법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이럴 때 바로 멘탈에 붕괴가 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안돼, 라고만 외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이런 면에서 제약회사는 비난을 면키 어렵지만 나는 마냥 비난만 하지는 못할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묵묵히 외면하는 쪽이 되겠지. 동물 실험에 대한 문제는 제약 회사를 다루는 게 아니어도 이 책에서 여러번 언급된다. 그러면서 밝힌다. '의학적 목적을 위한 동물 실험은 전반적으로 용인된'다는 사실을.



특히 동물 애호가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다른 괜찮은 대안이 없을 경우 의학적 목적을 위한 동물 실험은 전반적으로 용인되는 반면 화장품의 용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피부 관리는 그 중간 정도로 볼 수 있다. 사치품은 아니지만, 의료품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어스도르프, p.151)




모든 사람 개개인이 문제를 가지고 있듯이 모든 기업들 역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동물 실험, 노조 탄압, 환경 오염 등을 비롯하여 자꾸 언급되는 것이 '아동 노동'에 대한 부분이다. 이 아동 노동에 대해서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그 아동에게서 노동을 떼어놓았을 경우, 그 가족 자체의 앞으로 살아갈 길이 차단되어버린다면, 그것을 과연 떼놓는 것 만으로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동 노동 문제도 상세히 적혀 있다. 가령 취직을 위해 생년월일을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고려해서 실제 나이가 의심스러울 때는 의사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길거리로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때로는 그 아이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다른 나이 많은 형제자매를 고용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고 충고한다. (H&M, p.281)



사실 아동 노동만큼 일반적인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대개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의 가족에게 충분한 수입을 제공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추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타벅스, p.181)



대부분의 아동 노동은 기업들의 하청업체에서 발생한다. 그 하청업체 사람들이 과연 의심되는 아이들을 의사에게 보내고,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게될까? 애초에 더 적은 임금을 들여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하는데? 충고한다고 그것이 기업에게 먹힐까? 281페이지의 방법이 언급되지만, 그것이 궁극적 해결은 되지 못할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아동을 노동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그러나 아동을 노동으로 내몰 수 밖에 없는 그들 가정의 궁핍함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한 대안 역시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기업을 보나 저 기업을 보나 고민할 것 투성이다. 어디 하나 백프로 만족할 만한 기업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로부터 별 다섯을 받은 단 하나의 기업이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그것인데, 그 별다섯 역시 그 기업 자체가 아니라 빌 게이츠 재단을 보고 주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일전에 서민 교수의 책에서 빌 게이츠가 말라리아 백신을 만드는 데 지원을 한다고 했는데, 빌 게이츠 재단은 별 다섯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라는 회사 자체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음이 명백하고.



이러한 경쟁 체제에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고객의 습관의 힘과 그로 인한 결과다. 다시 말해 다수의 고객을 차지한 기업이 시장의 표준이 되고(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프로그램), 표준이 된 기업이 다수의 고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게이츠 재단의 재산이 결국 게이츠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거둔 천문학적인 수익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은 맞다. 그러나 독점적 지위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기업은 그렇게 번 돈을 재단에 기부하지도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p.139)



이 책 자체의 모든 평가는 온전히 저자의 것이기 때문에 물론 그가 내리는 평가가 절대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기업에 대한 비난과 칭찬은 그의 자체적 평가에서 나온것 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평가의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동물 실험과 아동 노동을 만나 묵직해졌는데, 그는 사치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치품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주는 그 묘한 거리감, 사치라는 말이 주는 위화감, 누군가로부터 사치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죄를 지었다는 뜻인것 마냥 당당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들이, 사실은 가지지 않아도 좋을 느낌은 아닐까. 




사치란 비도덕적일까? 중세에는 분수를 넘는 모든 종류의 과도함을 라틴어로 ,룩수리아>라 불렀고, <인색함>이나 <질투>나 매한가지로 죄악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사치스러운 생활뿐 아니라 지나친 절약이나 남의 사치에 대한 질투도 죄악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개신교의 영향이 큰 지역이나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과도한 사치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비난받을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배경에 깔린 논리를 보자면 이렇다. 많은 사람이 힘들게 사는데 혼자만 너무 티 나게 잘사는 것은 옳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한 면으로서, 사치품을 제공하는 기업보다 그것을 사는 소비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자. 사치품을 생산하는 사업 모델은 윤리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결과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사치품은 비교적 환경에 대한 부담은 적은 반면에 가치는 높기 때문이다. 시계를 예로 들어 보자. 비싼 시계는 값싼 시계보다 환경에 더 많은 부담을 주지는 않지만, 10배에서 심지어 100배가 넘는 가치를 창출해 낸다. 그만큼 더 좋은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일구어 낼 수 있다. 또 다른 비교를 해보자. 최고급 시계 수집이 취미인 사람은 그 돈으로 큰 차를 몰거나 장거리 여행을 다니는 것보다 환경에 훨씬 부담을 적게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치품은 사회적 관점에서도 이익에 따르는 비용이 결코 과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중략) 또한 비싼 시계나 보석만큼 수명이 긴 것이 있을까? 이런 제품은 원칙적으로 영구적이고, 지속 가능성 그 자체이다. 따라서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사치품은 결코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리슈몽, pp.133-134)




원칙적으로 사치라는 주제에 윤리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금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남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요할 근거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불평등과 불공정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사치는 기껏해야 그런 불평등의 욎거 현상이지 원인은 아니다. (LVMH, p.284)



물론, 저자 역시 사치품중에서 다이아몬드는 문제가 되는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어떤 다이아몬드가 안정된 정국으로부터 나오는지도. 토요타와 BMW 같은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 대해서도 당연히 이 책에 등장하는데, 자동차는 환경오염에 정말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하이브리드 차는 그렇지 않지만 심지어 전기로 가는 차까지도 많은 오염을 불러온다고. 문득,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쪽으로 환경 오염의 부분을 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이 직장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기업이 가치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도 들질 않는다. 나 개인으로도 마찬가지. 내가 남들처럼 면생리대를 쓰는 것도 아니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고작 내가 하는거라곤 가급적 일회용품 안쓰기가 전부라고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더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금은, 이만큼의 나 자신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잠깐 '지속 가능성'이란 용어가 언급됐는데, 레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지속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개념은 원칙적으로 미래의 희생 없이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뜻으로, 단기적 번영이 아닌 장기적 성공을 강조한다. (p.27)




레고는 별 다섯을 받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실상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별은 넷이지만 그것이 기업에 대한 것이라고 볼 때, 이 책을 통틀어 아마 가장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다.



레고는 어떤 것이든 서로 딱 맞을 수 있는 원칙을 지켜 왔다. 그래서 더 큰 듀플로 조각도 레고와 조합할 수 있고, 기계 부품에도 거의 비슷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레고 블록으로 주로 건물을 지었다면 요즘은 상상으로 가능한 온갖 세계를 만드는 제품이 나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해리 포터처럼 유명한 테마와 관련된 상품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레고의 세게는 컴퓨터 게임에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지속 가능성과 아주 관련이 많다. 오래된 레고 블록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가정에서 레고 장난감은 조각이 거의 파손되지 않은 채 세대를 거쳐 전해진다. 때로는 이베이를 통해 부품을 따로 구입할 수도 있다. 이런 생산 방식은 새 제품과 시스템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구제품은 최대한 빨리 <낡은 것>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전자오락의 발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바람직한 대척점을 보여 준다. (레고, p.111)



위 부분을 읽다가 지속 가능성과 가장 머리가 먼 제품은 핸드폰이겠구나 싶어졌다. 요즘은 누구나 2년을 채 채우기도 전에 핸드폰을 새로 사니까. 물론 중고폰은 어딘가에 가서 쓰여질 예정이지만, 소비자 한 개인이 하나의 상품을 그토록 쉽게 낡은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건 핸드폰만한 게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완벽한 개인이 없는것처럼 완벽한 기업도 없다. 어떤 기업이든 어딘가에서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는 숨기고 싶다고 해도 숨겨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그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에 대해 소비자들은 사지 않을 권리, 사지 않겠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또한 그 기업에게 그 부분을 시정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 기업들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을 먹고 입고 착용하는 모든 것들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책의 많은 기업들 역시, 대부분 외부에서 말해주는 문제점들을 시인했다. 빠르게 고쳐가는 기업도 있고 미적지근 흉내만 내는 기업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말했으며, 고치겠다 약속하며 시.인.했.다. 그러나, 별 셋을 받은 삼성은 별 하나나 둘을 받은 둘 보다-다시 말하지만 이 별은 절대 평가가 아니다- 구렸다. 삼성은 시인하지 않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을 나몰라라 하고, 그것이 삼성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이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쪽팔린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고칠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반복될 뿐이다.




삼성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가가 그룹을 운영하는 재벌 기업의 전형이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속의 국가처럼 돌아간다. 1987년부터 삼성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힘은 막강해서 1996년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곧 특별 사면을 받았다. 

그와 함께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이런 성공의 그늘은 과연 무엇일까? 종종 <요새>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기업의 경우에는 그것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삼성은 모든 영역에서 국제적인 기준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인상을 준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비난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별점 셋이라는 중간 정도의 평가는 여러모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무튼 『차이트』지는 ,노동조합과 다른 민간 기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삼성을 권위적이고 무자비한 기업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썼다. 2012년 초에는 그린피스와 베른 성명이 거센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삼성이 노동자들에게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주거나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생산 과정에 유독 물질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로 인해 적어도 140명이 암에 걸렸고 그중 5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삼성은 독일 IT 잡지 『하이제 온라인』을 상대로 이런 비난을 반박했다. 여러 학술 연구 결과 그런 질병이 작업장의 유해 환경에서 발병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p.167)






기존에 고민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고민해보기도 했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새삼 생각해보게 된 몇몇 부분들을 마지막으로 인용해보겠다.



독일 환경청에 따르면 1년에 한 번만 장거리 여행을 떠나도 시민 한 명이 1년에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것과 비슷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달리 말해, 장거리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평소에 아무리 채식을 생활화하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해도, 스테이크와 자동차를 즐기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캠핑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보다 생태발자국이 훨씬 더 크다. 이 대목에서 환경 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심한 갈등에 빠진다. 대개 환경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낯선 나라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TUI-독일국제관광유니온, p,290)



보험 상품 판매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왜곡을 낳는다. 정상적인 시장의 경우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이 가장 인기가 많은 법인데, 보험에서는 정반대로 돌아갈 위험이 상존한다. 판매원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많은 수수료를 남겨 줄 수 있는 상품을 우선적으로 판매하는데, 그런 상품이 대개 가장 비싸다. (알리안츠, p.200)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유익한 책읽기였다. 사실 기업의 윤리보고서로 들어가기 전의 저자의 말들은 잘 읽히질 않아 애를 먹었는데, 보고서들을 읽는건 의미있는 일이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기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업들이 가진 브랜드들은 죄다 유명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례로 LVMH 는 겐조, 겔랑, 지방시, 루이 비통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이 모든것들이 내게는 모두 다른 것들이었는데, 하나의 기업에서 파생된 것들이었다니. 우리는 기업과 기업과 기업과 기업들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기업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할 이유가 될 터이다. 어떻게해야 기업과 기업과 기업과 기업들 틈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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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2-2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무언가에 소속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진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지금 다니는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단체는 존속 혹은 확장을 위해 알게모르게 비리를 저지를 수 밖에 없고...암튼
프리페민은 왠지 좋을 것 같은데 효과만 놓고보면 기존약에 비해 그닥 크지 못해요. 생리전증후군치료를 위해 약을 먹는게 효과가없는건 아니지만 식사 수면 운동의 3박자 관리를 함께 하지않으면 약만으로 기대하는 정도의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요. 일단 술을 끊으시고 고기도 좀 줄이세요. 점심식사 하시고 30분 정도 걸으시구요. 원래 만삼천원 내야 이런말 해주는데....

다락방 2014-02-20 12:2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생리전증후군 혹은 생리통 증상에 대해 검색해보니 스트레스도 원인이지만 알코올과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원인이더라고요. 아이쿠야, 이걸 어쩌나 싶어지고.. 술을 끊을 수 없다면 계속 데리고 가야 하는걸까요, 이 고통을? ㅠㅠ 슬프다.. 걷는건 퇴근후에 하고 있어요..
하하하하 만삼천원 내야 해주시는 말씀을 거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나무님. ㅋㅋㅋㅋㅋ 점심은 드신겁니까? 시간이 애매하네요. 전 오늘 한 시에 먹으러 가거든요. 식사 아직 안하신거라면 맛있게 드세요!!

자작나무 2014-02-20 12:32   좋아요 0 | URL
전 원래 점심 안먹어요 바빠서...

다락방 2014-02-20 12:37   좋아요 0 | URL
어므낫. 밥도 못 먹을 정도로 바쁘시단말입니까!!!!!

자작나무 2014-02-21 08:21   좋아요 0 | URL
밥 안먹고 일하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지요.

다락방 2014-02-21 08:32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당사자였다면 마찬가지로 도망을 선택했겠지만, 도망도 방법들 중 하나이지만, 역시 제삼자의 눈으로 보게되니 왜 싫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는지 좀 답답하다. 수짱의 동료도, 아카네의 애인도 다 짜증나는 캐릭터. 아카네도 좀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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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02-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렇군요. -_-; 이 책 아직 못 봤는데, 저도 대놓고 말 잘 못 하는 성격이라... ㅠ_ㅠ; 공감이 가면서도 엄청 답답할 듯. ㅠ_ㅠ;;;;;;

다락방 2014-02-18 15:18   좋아요 0 | URL
네, 실상 당사자면 사실 저도 수짱이랑 아카네랑 별다를 바 없을것 같은데, 그래서 좀 답답해 보이는것 같아요. 하여간 직장마다 저런 짜증나는 캐릭터 한 명씩은 꼭 있는듯요. -0-

다락방 2014-02-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용~ 샤라라랑~~

2014-02-18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8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고 2014-02-18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좀 그렇죠 ㅎㅎ
제 친구 역시 이거 보더니 수짱도 짜증난다고 ㅋㅋㅋ "우리 과는 아닌 거 같아~" 뭐 이런 말을;;;

다락방 2014-02-19 08:06   좋아요 0 | URL
수짱도 별로라고 처음에 썼다가 음, 내 평가가 너무 쎈가 싶어 뺐네요.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4-02-18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이미 보셨군요!

다락방 2014-02-19 08:07   좋아요 0 | URL
어제 동료가 샀다며 보여주더라고요. ㅎㅎㅎㅎㅎ 조만간 그 뭣이냐 결혼 어쩌고 하는 제목..의 책도 빌려준대요. 헤헷.

아무개 2014-02-1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한테 싫은 소리 잘 못하는데
그 이유가
나 자신도 변변치 못하면서 남한테 뭐라고 할처지가 아니다 라는 생각때문이에요.
뭐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심 그런 긍적적인 이유라면 좀 나을텐데 ^^::::::::

다락방 2014-02-19 09:03   좋아요 0 | URL
배려가 뭔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대부분의 배려는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뻑에서 나온 경우가 많은것 같거든요. 이 책에서 수짱이 상대방에게 말하지 못한건 상대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해코지 당할까봐 였던것 같아요. 이를테면 쉽게 이런거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고. 그런데 싫은 소리는 사실 하기 쉽지 않죠. 상대의 기분을 건드리면 그 상대도 똑같이 나에게 맞설테니까요.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대부분 참는거겠죠. 싸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걸 피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책의 싸가지는 아마도 계속 그렇게 사람들 기분 건드리는 말을 해대는 것 같고요. 나쁜년...흥! (얘기하다 흥분함)

가넷 2014-02-1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에 구입했어요!...

만화적 재미는 별로 없는 편이기도 하고, '여자공감만화'라지만, 남자인 저에게도 공감되는 측면이 커서 재미있게 보고있어요.ㅎㅎ 보니까 수짱 시리즈가 나오면서 수짱도 한권에 1년씩 나이를 먹더라구요. 나온지 20년이나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다섯살이라거나, 초등학생 1학년이라거나 하는 것보다는 공감하기에는 좋은 설정인 것 같아요.ㅋ

다락방 2014-02-19 12:5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아직 두 권밖에 못읽어봤거든요. 그런데 한 권에 일 년씩 나이를 먹는군요! ㅎㅎ

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들을 보면 공감이 되지요. 여자공감만화 라기 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만화인것 같아요. 누구나 가슴속에 싫은 사람 한두명 쯤은 있는거니까요. -0-
싫은 사람은 참 그래요, 하는 짓이 다 밉죠.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매일 직장에서 마주쳐야 한다면 정말 끔찍해요. 뭐, 저도 그러고 있긴 합니다만...Orz
전 도망치지도 못하고 있어요. 참고 있다능...

레와 2014-02-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싫은 사람에게서 내 모습이 보일때는 끔찍..ㅡ.ㅜ

다락방 2014-02-20 16:42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 싫은걸지도.. ㅠㅠ
 
에르크의 햇빛의자 - 그림책과 어린이 12
올리버 베니게스 글 그림, 유혜자 옮김 / 계림북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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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읽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내가 먼저 읽었는데 난 이 책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게 어린이책을 읽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듯. 내가 이해를 못하니 조카에게 읽어줄 자신이 없다. 이걸 어쩐담. --;; 읽으면 조카에게 뭔가 상상력의 날개를 심어주는걸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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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02-1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 아이들 책 어려워요. ㅠ_ㅠ;;;;;;

다락방 2014-02-17 16:38   좋아요 0 | URL
그림책 읽기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0-
 
2013 제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종옥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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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밸런타인 데이에는 회사 동료직원들에게 시집을 한 권씩 선물했었다. 올해도 시집을 할까, 하다가 늘어난 직원들 탓에 시집 한 권의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퍼뜩,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게 떠올라 검색했고, 역시나 이 책은 한 권당 4,950원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오, 놀라운 가격이다. 이 책은 밸런타인 데이 선물로 초콜렛 대신 주기에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맞춤한 책이 아닌가! 그래도 직원 수대로 사기는 당연히 부담스러웠던 터에, 마침 해외며 국내 다른 공장으로 출장간 직원들은 빼버리기로 하니 열다섯 권만 구입하면 되었다. 그래, 눈 딱 감고 열다섯권 주문하자. 자꾸만 내 돈, 하고 돈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지만 다른 직원들로부터 초콜렛을 받아 먹고 가만 있기도 거시기하고, 그렇다고 나 역시 초콜렛을 줘 의미없게 몇 분간의 달콤함을 선물하긴 싫고, 애초에 이 책의 낮은 가격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자' 낮은 가격으로 책정됐던만큼, 그래, 나도 거기에 한 몫을 하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며 아울러 책을 읽지 않았던 동료 직원들에게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읽도록 하자, 하고 선택했다.


이 책을 선물하며 작은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일 년에 한두권도 채 읽지 않는 직원들이 선물받은 이 책을 읽고 내게 말하는거다. 읽어보니 황정은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읽어보니 정용준의 작품이 좋았어요, 라고 말하게 되는.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여라도 주말에 이 책을 읽고 온 직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러나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이 책이 그다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은의 작품 <上行>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 물론 좋았다. 그리고 제목에 이끌려 읽은 박솔뫼의 작품 <우리는 매일 오후에>는 난해했다. 나는 상징과 은유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 사람이고, 박솔뫼의 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 힘이 딸렸다. 그 상징과 은유들이 벅차 아, 이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인거냐,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게다가 대상을 수상한 <거리의 마술사> 역시 이해될 듯 하면서도 내 손에 잡히기엔 좀 먼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좀 더 단순하게 현실을 말해주면 좋을텐데, 무엇이 사실인지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정용준의 단편, <당신의 피>는 읽으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생각나게 했다. 경계를 갔다온 느낌, 그 느낌을 정용준 단편의 주인공이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정용준의 다른 책들을 한 번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가에서 읽은 작품인데 그게 어디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작품은 읽고나서 크게 기억에 남는다던가 하는 단편이 아니었던지라 제목 조차 까먹고 있었는데 첫 줄을 읽자 바로 떠오르면서, 이 작품에서 아마도 라식 수술하고 비행기 타면 안구가 터진다고, 그래서 파일럿이 되기를 포기했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읽었는데, 오, 역시나 맞았다. 지난 주말 만난 친구는 수영으로 몸매를 끝내주게 만들었는데, 그 친구가 『안나 까레니나』에서 등장인물이 피로를 풀기 위해 잠깐 수영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 기억하냐며, 그 말이 자기에게도 들어맞는다고 했더랬다. 나는 그 장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아 역시 사람은 자신이 관심있는 걸 기억하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이장욱의 단편에서 안구가 터지는 건, 나 역시 라식수술을 했기 때문에 등장인물과 같이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김미월'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과, '손보미'의 <과학자의 사랑>은 괜찮았다. 다만,


이 책이 '밸런타인 데이 선물' 이라는, 다시 말해,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으며 다른 작가에 대해 호감을 표하고 혹은 한 작품에 대해 푹 빠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을 지원해주고 싶은 내 의욕이 앞서, 책을 잘 안읽는 사람들에게 좀 부담이 되는 책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박솔뫼의 글과 김종옥의 글을 읽으며 동료 직원들은 뭐지 뭐지 갸웃하게 될 것 같았다. 그들을 책에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책과 좀 더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선물했는데,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좀 더 쉬운, 좀 더 '재미있는' 책을 선택해야 했었는데... 그러나 이 모두는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니 실제 그들이 읽으며 어떤 느낌을 받게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가장 높은 확률은 그들이 올해가 가기전에 이 책을 읽지 않는다......에 걸어야 하겠지만. (내년엔 읽게될까? 단편이니 읽기에 괜찮을텐데..)





시골에서 살면 좀 나을까 싶어서 알아보러 내려온 거거든. 나, 도시에서 사는 건 이제 싫다. 육 개월 단위로 계약서 써가며 일해봤냐. 사람을 말린다. 옴짝달짝 못하겠어. 마땅하지 않은 일이 생겨도 직장에서 한마디할 수 있기를 하나. 눈치만 보게 되고 보람도 없다. 계약서 갱신할 날이 다가오면 가슴만 이렇게 뛴다. 다 때려치우고 이런 곳에서 한적하게 살아볼까 싶었는데 만만치 않네. 시골에서도 뭐가 있어야 산다잖냐. 내가 참, 뭐가 없는 놈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고, 괜히 왔다. (황정은, <上行>, p.152)




남자는 여전히 자고 있고 자고 있는 몸은 작아서 내가 잘못 뒤척이면 내 몸에 깔려버릴지도 몰랐다. 내가 너를 깔아뭉개면 안 되는데 너는 살아 있고 사람이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웃다가 갑자기 몸이 작아진 네가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고 동물도 아니고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해도 너를 깔아뭉개는 것은 잘못이다. (박솔뫼, <우리는 매일 오후에>,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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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2-1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가 그렇게 재미있다던데.. ( ")
내년 발렌타인데이엔 이 책을 선물해봐요!!!

다락방 2014-02-17 11:4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아무래도 선물을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로 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물씬 들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

moonnight 2014-02-1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정말 친한 사람 아니면 제가 선택해서 책 선물은 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선택해서 주는 책이 좋았던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ㅠ_ㅠ 저는 명절 때 직원들에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게 해서 사 주는데요. 가끔 너무 비싼 책을 고르는 직원들이 있다는 슬픈 현실이. -_-;;;;;;;;;;;;;;;;;

다락방 2014-02-18 14:39   좋아요 0 | URL
아니 그 직원들은 왜 비싼 책을 고르는거죠? -0-
명절에 책을 주는 직장 상사라니..멋지네요 ㅠㅠ 문나잇님은 멋진 분이십니다!!

저는 책 선물을 잘 하는 편인데요, 특히나 직장 동료들은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꼭 책을 사서 주고 싶어집니다. 뭐, 사준다고 다 읽는건 아니지만요 Orz

꿈꾸는섬 2014-02-1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데인 초콜릿대신 책선물은 좋은 생각인것 같아요. 초콜릿처럼 달달한 책 찾아서 저도 내년엔 책으로 할까봐요.ㅎㅎ

다락방 2014-02-18 14:40   좋아요 0 | URL
초콜렛보다 책이 더 낫다고 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초콜렛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인원이 많을 경우에 말이지요. 내년부터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엉엉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