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지나치게 큰 사랑이 압박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수도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당연하듯 개입하려고 하기도 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옳고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으로 내가 사랑하는 상대 역시 이 길로 가고 바로 이것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 가져온 오만일 것이다. 그 사랑은 상대를 향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향한 사랑일 것이고.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영화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언니는 여동생에게 학교의 킹카인 그 남자아이와 사귀지 말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사귀어봤는데 진짜 영 아닌 남자였다고. 그러나 동생은 언니에게 대꾸한다. '언니도 해보고 알았잖아, 나도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나는 그동안 동생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바로 저 언니 같은 태도로 대했던 것은 아닌지, 그 영화를 보고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 뒤로 그런 태도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또 그런 태도들이 나왔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건 잘못됐어 틀렸어, 이게 더 좋아. 나는 그런 식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했을까봐 두렵다.


나이들수록 그것이 정말로 지양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더 깨닫게 된다. 언제 더 절실하게 깨닫느냐면, 누가 내게 바라지도 않은 조언을 했을 때. 내가 상대에게 조언을 해달라고한 게 아닌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이 낫다 저렇게 살아라 말하는 것은, 듣는 이에게는 강압이고 폭력이다. 그런 일들이 닥칠때마다, '아, 역시 남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려하지말자, 조언은 누군가 요청했을 때만 조언이 될 수 있다' 라고 깨닫고 또 깨닫는다. 내 행복은 당신의 행복과 다르다.




'로라'는 자신의 동생인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로라의 생각은 그저 셜리의 행복, 셜리의 행복. 로라의 좋은 친구인 여성혐오자 '존'은 그런 로라에게 '네 생각을 하라'고 매번 조언하지만, 로라는 셜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다.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너무 셜리에게 집착하나'를 생각한다. 셜리가 데려온 남자가 셜리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로라가 셜리와 셜리의 애인 헨리에게 1년간의 약혼기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자 셜리와 헨리 모두 투덜대고 언니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것이라 한다. 내가 정말 그런걸까, 내가 집착하는 걸까, 내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러는걸까, 내가 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로라가 정말 동생에게 집착하는 것일 수도, 동생을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다 가능성 있는 얘기다.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내 눈에도 헨리는 '아니올시다'의 님자였다. 만약 이 남자를 내 여동생이 데려왔다면... 그러면 나는 어쩔것인가. 아아, 헨리, 내가 너무 싫어하는 캐릭터..



"제대하면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사실 모르겠어. 변호사가 될까 생각해봤지만."

"그런데요?"

"너무 힘든 일이야. 사업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어떤 사업이요?"

"글쎄, 어떤 사업이든 시작을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난 은행에 다니는 지인이 한두 명 있고 실업계 거물도 몇 알아. 내가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그들이 기꺼이 도와줄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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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진짜 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변호사 될까? 아이 그건 힘드니까 안돼, 사업할까? 사람들이 도와줘야지........ 너무 한심하잖아. 이런 생각을 가진 남자가 청혼을 하는데 어떻게 예스를 하나요, 셜리여......... 내가 봐도 너무 쎄한데........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여자 돈 잡아먹을 남자잖아...... 여자 고생시키고 여자 돈 다 긁어갈 남자잖아.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혼자 살자, 셜리여..... 너무 딥빡 오는 것이다. 이런 남자라는 것에 대해.



셜리와 헨리는 결혼하게 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자꾸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서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여기저기 빚을 지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바람을 피고. 게다가 성매수를 하고 성매매 여성을 창녀라고 욕하는 남자들처럼, 헨리는 자신이 바람핀 여자를 '암캐'라고 칭한다. 사업할 때 도와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헨리는 무조건 남탓이 먼저인 사람.



"이 주 정도 수전에게 푹 빠졌지. 잠도 안 올 만큼. 얼마 동안은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얼마 안 가 아주 확실하게 지겨워졌어. 최근에는 완전히 골칫거리가 됐고."

"너무하네요."

"당신이 수전 걱정을 왜 해? 그 여자는 도덕관념도 없는 순 암캐야." (p.144)






게다가 예상한대로 헨리는 처형에게 돈을 빌려 다른 빚을 막고........그리고 불구의 몸이 되어 셜리에게 매달리며 온갖 짜증을 낸다.... 모든 걸 다 잃고 로라의 집에 들어와 살게된 셜리 부부. 하루종일 짜증을 내는 신랑의 옆에 있어주는 셜리를 보며 로라는 너무 슬프다. 셜리는 더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저 불행한 생활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데. 마침 그런 셜리에게 돈 많고 자상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아, 셜리는 저런 남자와 결혼했어야 하는데. 로라는 그런 셜리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 셜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셜리를 저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야 해.




문제는 그거다.

셜리는 그 삶이 언니가 생각한만큼 불행했을까? 셜리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까? 셜리는 로라가 생각한 것처럼 책임감 때문에 계속 그러고 살았던걸까? 셜리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로라는 셜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셜리가 불행할 것이라는 본인의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 결정이 셜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소설의 마지막에야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을 통해 로라는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셜리가 셜리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생각한 셜리의 행복이 셜리가 생각한 셜리의 행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로라는 셜리의 삶을 행복해지도록 본인이 결정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그 일은 로라를 아프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지만, 어쨌든 이제 로라는 자신의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한다.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노르웨이의 산악철도에 대해 보게됐다. 홍콩에 여행가 맛있는 걸 먹는 장도연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조카를 떠올렸다. 저기 타미랑 가면 어떨까, 그런데 저건 맵겠지? 저기 아이들 먹을 만한 메뉴도 있을까? 그랬던 것처럼 노르웨이의 절경, 피오르드를 보면서도 감탄하며 또 타미를 떠올렸다. 저렇게 웅장한 자연이라니, 한 번쯤 보고 싶지만 으앗, 너무 무섭다. 만약 타미가 저기 간다고 하면 나는 가지 말라고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것이다.




(출처: 투어2000 블로그)



너무 무섭잖아, 저기 타미를 보내기엔 위험해,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한 것이다. 이 생각은 한참이나 내게 '그래도 되는가?'를 묻게 했다. 나는 나라는 한 인간으로 '저 곳에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절실히 가고자 했다면 가려고 할것이다. 만약 누군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나는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내 의지대로 할것이다. 그런데 내가 타미에게 '위험하니 가지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미를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지금이야 타미가 혼자 간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성인이 되고 저런 곳을 알게 되고, 나 저기 갈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혼자이든 친구들과 함께이든, 그것이 그 아이의 선택이라면, 그것이 그 아이의 바람이라면, 그 아이가 독립적인 한 존재인만큼, 내가 가지말라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아' 라고 하는건, 상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불안함을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상대가 그런 상황에서 취약할 거라고 내 멋대로 약한 존재로 결정지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로라랑 다를게 뭐지? 나는 타미를 셜리 취급하고 있는 거잖아?




홍콩 디즈니에 갔을 때 그런 경험을 했었다. 아홉살 조카와 롤러 코스터를 탔는데, 타는 내내 나는 한 팔로 아이의 안전바를 잡고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혹여라도 아이가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멈추고 나서야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왔고, 롤러 코스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가 무사히 내려서 다행한 마음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런 나를 모르는채로 조카는 '한 번 더 타자!' 하는거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진짜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이것이 위험하고, 무섭고,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건 내 생각, 내 감정이었다. 아이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좋아해서 바이킹도 네 번씩타고 그러는 아이인데, 나는 아이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아이가 다시는 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더 타기를 원한다. 이게 아이에게는 신나는 일이야.


엉엉 소리내어 한참을 울고, 그런 나를 여동생과 조카가 달래고, 울고나니 기운이 쫙 빠져 있었다. 퍼레이드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조카는 놀이기구를 한 번 더 타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가 한 번 더 타자고 한 건 그런 스피드 있는 게 아니어서, 언제 또 올지 모르고 이 아이를 위해 온것이니만큼, 그래 한 번 더 타자, 했다. 아아..그러나 지나는 길에 더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보였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조카는 방방 뛰며 타겠다고 했다. 이모는 무서워하니 타지마, 나 혼자 탈게, 라고 조카는 말했는데 도저히 혼자 태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기꺼이 같이 타겠다고는 못하겠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여동생이 자신이 타겠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내가 탈게' 라고 나는 도저히 말을 못하겠는 거다. 그렇게 여동생과 조카가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고 나는 제부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일에 대해 말했다. 내가 엉엉 운 것 까지도. 그러자 제부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내게 말했다.



"타미는 놀이기구 타는 거 되게 좋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맞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는 좋아한다. 아이는 좋아하는데, 아이는 신나서 즐기고 있는데 나는 아이가 타는 걸 두려워했어. 내가 두렵다고 아이에게 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잖아. 마찬가지로 아이가 노르웨이에 피오르드 보러 가겠다고 하면, 나는 두렵지만,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아닐까. 내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두려움이 다르고 내 바람과 다른 사람의 바람이 다르다. 우리는 그걸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책의 원제는 '짐The Burden' 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된 제목처럼, 나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작년에는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으려면 더 사랑을 알아야 하고, 더 배워야 해, 생각했던 것. 그러나 애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가족과 조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사랑을 배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조카보다 네 배를 살았는데도,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배울 게 더 많은 것 같다. 여전히 잘 모르고 여전히 부족한 어른인 것 같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랑을 배워야지, 계속해서 사랑을 배워야지.




엊그제 만난 친구와 소설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서로 좋아하며 얘기했었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들이 그 안에 있어서, 나로 하여금 또 생각하게 한다.



배워야지.

사랑을 배울것이다.




"지나친 연민이에요."
"그럴 수도 있나요?"
"네, 그건 현실을 똒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죠."
루엘린이 덧붙였다. "연민은 모욕입니다."
"대체 어떤 의미에서요?"
"바리새인의 기도가 이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죠. ‘주여, 제가 그 사람과 다르다는 데 감사합니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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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르와 마플이 없는 크리스티 소설이라니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코난 도일이 추리소설 작가라기 보다는 역사소설가로 불리우기를 평생 바란것처럼 크리스티 여사도 포와르와 미스 마플에서 벗어나고파서 이름도 바꿔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쓴것이 아닌가 싶은데 작가의 바램과 달리 독자들에게 크게 반향을 얻진 못한것 같습니다^^

다락방 2019-03-21 10:54   좋아요 0 | URL
반향을 일으켰는지 안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읽기에는 이 시리즈가 다 좋습니다.

얼룩말 2019-03-2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다락방 2019-03-21 11:50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시리즈를 네 권 밖에 못읽었는데 며칠전에 갑자기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훗.
 
창비어린이 2019.봄 - 통권 64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차별의 당사자이므로 나는 여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강의를 따라 다니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글을 쓰고. 그렇게 점점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갔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이 알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참에 이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그간 여성혐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었지만, 아동 혐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어린이 역시 약자였고, 이 사회의 혐오는 언제나 약자를 향해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그들이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위치에 그들이 있었다.

아, 나는 이렇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나이들었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그저 사회가 굴러가는대로 내동댕이쳐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구나.



이런 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한편, 이 책속에 글을 실은 저자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처 내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신경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구나. 그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아동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 덕분에 하던 걸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또 다른 일들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어른들이 이 책속의 글들처럼 그렇게 좋은 글을 쓸 순 없더라도 읽으면서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아, 그렇구나'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세상의 혐오는 조금씩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라는 표현보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재차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밑줄을 박박 긋고 가끔 꺼내어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다보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찬성과 반대로 입장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측의 관점이 모두 타당한 명분과 가치를 지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토론은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내가 이끌어 온 수업이 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날 아이들이 낸 결론을 보고 나서야 이제까지의 교실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는 권력자인 어른의 발화에 동조하고 따르는 것으로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났다는 착가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착각은 먼저 나서서 노키즈존을 옹호하는 아이와, 스스로를 '급식충'이라고 칭하며 웃는 아이, "제가 맞을 짓을 하긴 했어요."라며 부모의 체벌을 변호하는 아이를 만들어 낸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3-44, )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과 혐오는 모두 논리적이었고, 타당해 보였고, 정의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되니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운영 방침, 아이는 미숙하니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 널 사랑해서 때렸다는 체벌과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명분이 당사자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4)




어느 작품이든 주연은 서사의 맨 처음부터 주인공이다. 유예 기간을 거쳐 주인공이 되는 등장인물은 없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다. 아동은 어른의 삶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역시 어른과 마찬가지로 '내일의 주인공'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유년기를 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더욱 강력한 관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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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악인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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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놓고는, 길에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그런 요시노가 원하는 건, '마스오 게이고 같은 남자의 차에 타고 시원스레 하카타 거리를 내달리(p.50)'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랄까. 이 책이 국내에 나온 게 2008년이니, '요시다 슈이치'가 써낸 건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 남자 만나서 신분 상승하려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욕망에 있는 여자가 '부자 남자랑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도대체 이 여자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게다가 동료중 한 명인 '마코' 역시, 짝사랑만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생긴 남자랑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하는거다. 도대체 왜 이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걸까. 요시노, 마코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고 거기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지만,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꿈이다. 하아-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죄다 이런 캐릭터들인지... 어쩌면 하나같이 이래, 하나같이.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요시노가 살해당한다. 그녀가 사귄다고 주장했던 '마스오'가 살인범일지, 그녀에게 지독한 쾌락을 주는 '유이치'가 살인범일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몇몇 남자들을 이미 만나봤다고 말했다.

심심풀이 삼아 등록한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사내들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지만, 여자를 살해할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해당했다.

창녀 하나가 사악한 손님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하면 얼마간 틀에 박힌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살해당한 사람은 창녀가 아니다. 밝히진 않았지만, 견실하게 생명보험 영업을 하며 살았던 젊은 여성이다. 창녀인 척했지만 창녀가 아닌 아닌 여자였다. (p.166)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안읽어본 게 아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 이런 사람이었던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건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견실하게 살았던 창녀가 아닌 젊은 여성'은 창녀보다 '더' 죽어서는 안되는가? 초반부터 '머릿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그러나 불쾌함은 책을 읽을수록 더해진다.



소설속에서 언제나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만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혐오를 하는 인물, 나쁜 인물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결국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읽어낼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이든 소설 속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얼마전 읽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를 싫다고 했던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지켜가는 굳은 인물들의 입을 빌어 결국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책, 《악인》이 싫은 건, 작가가 결국은 '꽃뱀에게 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결국 그런 여자들이 남자를 지옥으로 떠밀어버려, 라는 얘기.



'하퍼 리'의 소설《앵무새 죽이기》에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거짓강간 신고'에 대해 얘기해야 했는지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라면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작가는 왜 하필이면 거짓으로 강간 신고를 하겠다는 여자를 그려냈는지, 그래서 남자로 하여금 그 여자를 죽이게 했는지, 천 번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유감인거다. 이 책이 만약 지금 나왔다면, 그야말로 미투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변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소위 말해 '판결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알잖아, 우린 오래 전부터 여관 하는 거"라고 내뱉듯 말했다.

"여관 하는 게 어떻다고?"

"여관에는 여종업원이 많지."

게이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봤다. 아버지가 여관 종업원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땠을까? 그 여자들, 싫었을까? …… 그랬겠지, 분명히 싫어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더라."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게이고는 가게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맛은 영 아니네요."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들의 손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쓰루다는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만 많이 받는 포장마차였다.(p.114)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는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이고는, 식당에서 할 말을 하는 남자다. 그래서 쓰루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놓고서도 '네가 잘못 생각했어' 라는 말이 아니라,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라고 말을 한다. 위의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가장 어이없는 건, 요시노가 살해된 이유다. 요시노는 게이고가 타라는 말에 게이고의 차에 타는데, 게이고는 그런 요시노에게 남자가 타란다고 타냐고 너같은 천박한 여자가 싫다며 한적한 밤에 그녀를 떠밀듯이 차에서 내쫓는다. 요시노와 만날 약속에 요시노를 기다리고 있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자신이 뻔히 기다리는 앞에서 다른 남자 차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고 요시노가 탄 차를 따라갔다가 그녀가 차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자 한다. 그런데 요시노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유이치가 본 게 싫어서 그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강간은 없었는데.



"살인자!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성폭행했다고 신고할 거야! 여기까지 납치했다고!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우리 친척 중에 변호사도 있어! 우습게보지 마! 난 너 따위 남자랑 사귈 여자가 아니야! 살인자!"

요시노가 소리쳤다. 모두 다 거짓말인데도 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떨렸고,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p.345)



부자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던 요시노는,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할거라고 악을 쓰고, 그러다 살해당한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간범으로 신고당하면 자신이 그 다음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유이치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범이 아닌데, 자기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유이치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서 앞까지 찾아간 유이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한다. 결국 유이치는 자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며 보낸다. 유이치를 살인으로 유도한(?) 것도 여자고, 그런 유이치에게 삶의 기쁨을 주며 그러나 벌 받으러 가는 길을 막는 것도 여자고.



작가는 처음부터 왜 요시노를 그렇게 거짓말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는, 그렇게 거짓말하다 살해당하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거짓말은 '성폭행당했다고 (거짓말)할거야!' 일까? 토할뻔했다. 혹여 거짓미투일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트레버 노아'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관객들을 향해 '여기에 거짓 성폭행 신고를 당했던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을 당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변명을 하고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 하는 말은, '응 나쁜 여자들 많아', '응 남자로 팔자 펴려는 여자들 있지', '응, 남자 엿먹이려고 거짓 성폭행 신고하는 사람 있어'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가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던 그 남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게 했던 쾌락을 준 남자이고, 자신의 상반신 누드를 찍었기에 돈을 요구했던 남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를 이용하려는 나쁜년이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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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hinew 2020-04-2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 나쁜여자들많아! 만 외치는게 아니라 악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하나에만 꽂혀 생각하면 큰 줄기는 안보이나봅니다.

다락방 2020-04-2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별 하나준 책 있던데, 별 하나 주면 큰 그림 못본건가요? sunshinew 님이야말로 이책을 제대로 읽으신건지 모르겠네요. 뭐, 어차피 소설은 읽는 자의 몫이니까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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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이라니, 대체 뭐야, 하면서 읽었는데 와- 엄청 신선하다. '김정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읽고 그 줄거리와 감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들은 나름의 흐름으로 움직이는데, 이미 내가 읽었던 작품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만나니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햄릿》이 그러했는데, 나는 셰익스피어의 남주인공들을 유약함의 대표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김정선이 자신의 소설에서 햄릿이 '모든 걸 다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표현했을 때 이렇게나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형식으로도 너무 참신해서, 꼭지마다 다른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게다가 다음 꼭지에 나올 작품과도 연결이 된다. 읽으면서 '오오, 나도 한 번 이렇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김정선이 특히 '우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면, 나 역시도 특히 집중할 어떤 감정을 정하는 것이 좋을 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질투'가 떠올랐다. 질투로 나는 아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기다림' 으로도. 아니, 질투가 더 재미있겠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했지, 질투에 대해 어떤 작품들을 끌고 와 이야기를 진행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김정선 같은 소설가가 아니기에. 게다가 글쓰기 능력(!!)으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정선의 문체가 참 마음에 드는데, 요란하지도 않고 신경질적이지 않아 읽기에 좋았다. 본인은 우울해서 징징댄다고 썼는데, 내 보기엔 전혀 징징대지 않는다. 징징대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우아하지 않다. 징징댄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오히려 징징댐을 안으로 삼키고 있는 느낌이랄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나와는 정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곱씹고 안으로 삼키고 우아하다면, 나는 내뿜는 타입이랄까. 그러니 그는 우울에 집중해 글을 쓸테고, 나는 쓰려고 해도 질투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겠지. 나는 결코 이런식의 글쓰기를 따라잡을 수 없을테고 닮을 수도 없을테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내가 쓴다면, 더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쓸 수가 없다는 데 있다. 킁킁.



신선하게 잘 읽었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기획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우울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가지고 와 이야기 했다면, 다음에는 그리움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다음엔 성장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하는 식으로 리뷰소설 시리즈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시리즈가 나오는 족족 읽어볼 의향이 있다. 그러면서 그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







또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어머니와 그다지 친하지 못했다는 것. 내 잘못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나, 어머니를 부축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의원을 오가는 길목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이구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라며 말을 건네곤 했다. 처음엔 칭찬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이 말은 말하자면 사회적 은어인 셈이었다. 저런 인간들을 효자나 효녀, 효부라고 칭하자. 그래야 우리 맘이 편하니까.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를 간병하는 건 착한 아들이나 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게 만들려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 간에 개인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p.103)

우리 삶에는 시작과 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도 있다. 살므이 시작이 반드시 처음인 것은 아니고 삶의 끝이 반드시 마지막인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봄은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고 꽃과 나무도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듯이, 삶을 살아내는 우리 또한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한다. (p.130)

다음이 언제인지 그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음은 있는 법이다.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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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할 수 있다고 봐 나는.

다락방 2019-02-20 22:22   좋아요 1 | URL
으음... 쇼님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성장과 치유의 심리학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비스 엔트호번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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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첫째 딸이다. 

이십대 초반에 다녔던 첫 직장에서 내 상사는 나에게  '너 맏딸 컴플렉스 있어' 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뭐라고, 나한테 그런 게 있다고?' 하고 놀랐었는데, 확실히 내가 첫째 딸이기 때문에 가졌어야 했던 성격들을 나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훗날 여러번 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첫째 딸들 역시 나랑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 일을 적절히 분배하려고 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원하든 원치않든 리더가 되려고 한다. 손아랫사람을 배려하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첫째로 태어났다는 특성상 부모에게도 처음 부모가 되는 경험이었으므로 나는 온갖 주변 어른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 사랑을 받고 표현하는 데 자연스럽게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당당하다' 는 말을 많이 듣게 했을 것이다. 약한 사람을 보살피고 싶어하고 진지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가진 특징일까? 나는 물어야 했다.


저자들은 네덜란드에서 맏딸들만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 맏딸들이 공통된 자기들 특징이라고 말한 성격들이, 과연 '맏딸이기에'가능한 성격이기만 했을까? 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맏딸이기에 그런 공통된 특성을 가진 것은 맞을 것이지만, 맏딸이기에 응당 그런 성격을 가질 확률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맏딸만의 특징만은 아니라는 것. 배려심, 자상함, 진지함, 이해심, 당당함 등등이 어떻게 맏딸들의 특징이기만 하겠는가. 확률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맏딸들은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고 이 책은 말하는데, 다른 형제들보다 아이큐가 높다거나, 유머감각 대신 진지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특징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맏딸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는데, 하하하하, 나는 아버지를 내가 태어나 처음 겪은 한남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대꾸하고 싶다. '모든 맏딸이 그렇진 않아' 라는 말이 이 책을 읽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렇다고 또 '대부분의 맏딸이 그렇긴 하지' 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고, 그러다보면 이 책을 읽다가 종국에는 '이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이 책 읽는다고 내가 크게 위로 받는 것도 아니고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며, 읽으면서 '어 이건 맞네' 하든가 '이건 아닌데'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부질없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사실 이 책도 자기 방향에 있어서 오락가락 하는게 아닌가 싶은게, 우리가 사람이다보니까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또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소제목이 <막내 출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 꼭지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는 거다.



대부분 맏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맏딸 출신으로 조사되긴 했지만 막내 출신과 각별히 친해지는 맏딸도 적지 않다. (p.147)



위의 문장을 읽다가 나는 여러번 갸웃했는데, 대체 쓰나 안쓰나.. 별 의미없는 문장이 아닌가 싶어진거다. 맏딸은 맏딸이랑 친해,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야... 라면, 뭐 어쩌라고?? 이렇게 되지 않나?


아무튼, 나도 꼽아보니 내가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맏딸이었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모임은 하하하하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다. 물론 한 명이 오빠가 있긴 하지만, 오빠 있는 집의 첫째 딸은 맏딸과 같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이 책은 맏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위로 오빠가 있는 딸인 경우에도 맏딸 역할은 여전하다. 이런 딸들은 "오빠는 아무 일도 안 해요."라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 무슨 뜻인지 알지 않느냐고 눈짓을 해보인다. 알고말고. 맏아들은 제일 먼저 학교에 입학하고 용돈이나 귀가 시간 등 일상생활의 토대를 닦아둔다. 여동생이 남자들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노쇄해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되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이다. 그러면 여동생이 맏딸이 되어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책임을 떠맡기 일쑤이다. (p.14-15)




내 모임 구성원들도 맏딸, 내가 금요일에 만나려는 친구도 맏딸, 내가 중국에 같이 여행가려는 친구도 맏딸... 내 주변은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아무튼 이 책은 맏딸들의 특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면 읽어보면 좋다고 하는데, 이 책 읽는다고 뭐가 그렇게 확 인생의 답이 찾아지거나 하진 않는다. 아버지와의 유대감 부분에서는 진짜 좀 짜증났던 게, 대부분의 모든 첫째 딸들은 자기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맏딸들의 특성이지 않을까. 일전에 페미니즘 공부차 모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강사분도 그 말씀을 하셨던 거다. 한국에서 태어난 첫째딸들에게 아버지는 미움의 대상이라고. 첫째딸이야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왜, 어떻게 고생하는지, 그게 어디에서 오는지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보아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 책은 네덜란드 학자들이 쓴건데, 아마도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는 그런 걸 볼 일이 없었던 거 아닐까... 아무튼 아버지와의 유대감 같은 거, 나는 아닙니다, 아니고요.




재미있는 건 이성애자인 맏딸의 연애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들에게 '누나 있는 남자랑 사귀는 게 제일 낫다'고 말하고 다녔던 바 있다. 여동생 있는 남자랑은 확실히 다르다, 그나마 제일 애들이 좀 인간답게 잡혀있다, 고 나만의 이론을 주장하고 다녔었는데, 이 책에서는 내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자매품으로 '여자상사 밑에서 첫직장생활 시작한 남자가 좀 낫다'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다가. 첫째 딸과 막내아들의 만남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데, 그 막내는 형이 있는 막내랑은 또 다르다. 누나 있는 막내아들이 좋아. 그건 이미 내가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한 바 있는데, 책에서도 말해준다. 하하하하. 누나들 밑에서 자란 남자가 그나마 낫다. 



다시 말해 이성애자인 맏딸은 누나 한둘과 함께 자란 막내아들과 가장 잘 맞는다. 형들이 있는 막내아들도 괜찮지만 더 좋은 것은 누나들이 있는 막내라고 한다. (p.183)



내가 살면서 만나본 남자들을 토대로 해 내가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누나 있는 남자가 반드시 맏딸한테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나는 이성애자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누나 밑에서 자란 남자들과 사귀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튼, 내가 사귀었던 누나 있는 막내 생각 나면서 아련아련해지는 시간이었다. (응?)




리뷰 쓰려고 하다가 뭔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중신없이 되어버렸는데, 이 책 읽는다고 딱히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을 얻고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아아,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맏딸들 대부분이 그러는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또 그것이 다가 아닌게, 그렇지만 또 그렇지 않은 맏딸들도 있지..이것도 동시에 알게 되어버려서. 결론 내자면, 많은 맏딸들이 공통된 맏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도가 아닐까. 뭐, 그렇다는 거다. 



아래 문장은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문장이라 생각돼 인용해둔다.



맏딸인 당신은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남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남들 챙기느라 기진맥진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 없이도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기억하라. 물론 당신이 하면 조금 더 낫겠지만 어떻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p.106)



세상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했다. 난 말도 안 된다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루시 반 펠트Lucy Van Pelt(찰스 슐츠Charles M.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맏딸) (p.25 재인용)

2007년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맏아이가 평균 이상의 지능을 보인다는 내용이 실렸다. 전 세계 IQ 평균은 90에서 110 사이인데 맏이들은 이보다 2~3점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IQ 3점은 별것 아니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결정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p.41)

맏딸들은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 맏딸들은 자기 형제자매보다도 다른 맏딸들과 더 많이 닮았다. 착한 아이, 뭐든 잘 하는 아이가 되어 내 자리를 안전하게 진킨다는 믿음응ㄹ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p.98)

맏딸들은 온갖 잡다한 일들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 자녀나 동료들이 남에게 하는 말이든, 남들이 하는 생각이든, 늦은 밤에 베란다에서 나와 우는 이웃집 고양이든, 기후 변화든 다 마찬가지다. 맏딸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수많은 맏딸들이 책임감을 언급하는 것도 그래서 놀랍지 않다.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부터 남들의 모범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p.105)

형제자매 관계 1503건(인원수로는 3552명)에 달하는 영국 가구 패널 좌를 바탕으로 학업 열망과 성취도를 살펴본 결과,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 지위의 영향을 고려한 상황에서도 맏이들은 동생들에 비해 교육받으려는 열망이 7%나 높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맏딸들은 맏아들에 비해 열망이 13% 더 높았다는 점이다. 맏딸들은 야망이 있었다. 삶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했다. 동기부여가 가장 잘된 집단 역시 맏딸들이었다. (p.33-34)

때로 맏딸들은 그런 성실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오늘은 어떤 일에도 나서지 않겠어, 가만히 앉아서 남들이 나설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고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마감 기한이 다가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 결국 성실한 맏딸이 떠맡게 된다. ‘좋아, 내가 해주지.‘ 라면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의 스포츠클럽이든 친구들 모임이든 마찬가지다. 맏딸이 있는 곳 어디서나 맏딸은 필요한 일을 맡아 훌륭하게 해낸다. (p.107)

경계를 확실히 하고 그 경계를 지켜라. 누가 어머니를 위해 장을 볼지, 산책을 모시고 나갈지,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잠글지 정해라. 무언가 바꾸려는 사람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Yes‘ 만큼이나 ‘No‘라는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운명을 자기 손에 넣은 셈이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성실성은 강력한 자질로 남는다. (p.108)

맏딸들은 전체를 보는 눈과 조직하는 기술을 타고난다. 집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고 곧 일을 분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평이나 질문 없이 맏딸의 지시를 따른다. 그 의견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맏딸의 권위는 인정받는다. 물론 맏딸은 자신이 리더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늘 하던 일을 할 뿐이니 말이다. 늘 총대를 메는 것은 맏딸이다. 아니면 다른 누가 한다는 말인가?
농담조로 자신을 프로 간섭꾼이라고 부르는 맏딸들도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남들 일에 관여를 한다. (p.108-109)

1985년에 출간된 책 [나는 왜 나인가The Birth Order Book)에 소개된 결과를 보자. 외동이나 첫째 집단에서는 예외 없이 누군가가 쪽지를 집어 들고 읽었다고 한다. 둘째나 막내 집단에서는 누구도 쪽지를 먼저 집어 들지 않았다. 둘째들은 늦게라도 그럭저럭 과업을 따라갔지만 막내들은 잡담에 빠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첫째와 외동들은 훌륭한 발표를 한 반면 둘째는 간혹 훌륭했고 막내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내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결국은 모든 참석자들이 자신들이 정확히 출생 순위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맏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과업을 해냈던 반면 막내들은 누군가가 할 일을 알려주기까지 기다리면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p.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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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인데, 언제부터인가 아 내가 맏이라서 가지게 되는 특성이라는 게 있구나 라는 걸 느껴요. 실제로 친한 친구들도 맏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구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가끔, 둘째나 막내면 좋았겠다. 훨씬 자유로왔겠다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맏딸은 맏딸을 알아보는걸까요, 비연님? 비연님 맏딸, 저도 맏딸, 밑에 유부만두 님도 맏딸.. 지금 이 공간의 모두가 맏딸....

유부만두 2019-02-1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 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아아, 제 주변엔 왜 이다지도 맏딸들만 많단 말입니까! 그건 제가 맏딸이기 때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