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평소에 회사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니 지각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급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밥을 먹고 방에 들어와 어제 배달온 기모스타킹의 포장을 뜯으려 했는데 잘 안 뜯어지는거다. 난 이렇게 언제나 닥쳐셔야 행동하는 기질이 있다. 어제 뜯어 놓았으면 좀 좋아.. -_- 여튼, 그래서 칼을 가지고 포장을 뜯으면서, 설마 병신같이 스타킹을 찢어버리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포장과 함께 스타킹이 찢어졌다. 


.........스바...



이것을 신을것인가 말것인가 오래 갈등하고 싶었지만, 난 지금 몹시 바쁘니 오래 갈등할 시간이 없다. 다행히도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뜯어졌으니 걍 신자, 라고 생각하고 신었다. 집을 나와 엘레베이터를 타면서 버스가 오는 시간을 조회해보니 앞으로 이 분 뒤. 앗, 이거 타야돼! 나는 아파트 입구를 나가면서 다다다다닥 뛰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무단횡단을 하면서 또 다다다닥 뛰었다. 내가 뛰어 버스정류장으로 도착하는 그 즈음, 버스도 저 쪽에서 오고 있었다. 다행. 탑승.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다리가 포근하고 따뜻하다. 캬. 역시 기모스타킹이 짱이야. 이건 바지보다 따뜻해. 지상 최고의 발명품이야. 크. 따뜻해. 이러면서 만족만족 하고 있다가 지하철 역에 내려서 또 다다다닥 뛰었는데 지하철이 막 출발해버리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책을 꺼내들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하철이 와서 탔는데, 사람들이 몇 없는 지하철안, 내가 앉은 자리의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었고, 여성용 지갑이 떨어져 있는게 보였다. 헐.



나는 책을 읽으려다 틈틈이 그 지갑을 노려봤다. 분명 지금 이 안에 저 지갑의 주인은 없다. 누군가 주인을 찾아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누군가 저 지갑을 들고 간다고 해도 저 지갑의 주인을 찾아줄 거란 걸 보장할 순 없다. 그래, 내가 내릴 때까지 아무도 저 지갑을 들고 가지 않으면 내가 들고가자, 내가 들고가서 지갑의 주인을 찾아주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정직하지 않을거야, 나만이 저 지갑안의 물건을 건드리지 않은채로 주인에게 돌려줄 사람일거야,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지갑 안의 현금은 빼겠지, 그래, 내가 하자, 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내리는 오금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아무도 그 지갑을 건드리지 않더라. 할 수 없이 내가 그 지갑을 주워 들었다. 내가 그 지갑을 줍는 걸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보셨는데, 그 눈길이 도둑을 보는 것 같았는지는 모르겠다. 주인 찾아줄거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것 같아 걍 아무말도 안하고 그 지갑을 들고 서 있었고, 그 할머니는 자꾸 나를 쳐다봤다. 아씨...줍지 말걸...괜히 주웠나...이제와서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자니 그게 더 이상하고.



그리고 오금역에서 3호선을 타고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 찜찜하고 걱정이 쌓이는거다. 지갑을 뒤져서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낸 뒤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 나에게 받으러 오라고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을 것 같은데, 그랬다가 괜히 뭔가 나를 의심하면 어쩌나 싶으니 찜찜하고....그래, 경찰서에 갖다 주자. 라고 생각하다 보니 마침 양재역에서 내려 5번출구로 나가면 지척에 파출소가 있지 않은가. 그래, 바로 거기야, 거기다 가져다 주자. 그러면 주인을 잘 찾아주겠지, 경찰아저씨들은 그 지갑안의 내용물을 가져가지 않겠지, 그래, 바로 그거야! 라고 생각하고 안심한것도 잠시, 그렇지만 내가 양재역까지 가는 동안엔 그 지갑이, 남의 지갑이 내 가방 안에 있다. 나는 주인을 찾아줄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만약 지갑 주인이나 혹은 다른 사람이 지금의 나에게 남의 지갑이 있다는 걸 알고 내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면, 나는 그 물건을 훔친 게 되는건가? 이런 걱정이 또 생겨버리는거다. 그러니까 나는 어쨌든 그 파출소에 가서 지갑을 제출할 때까지는, 훔친...뇬 인건가. 만약 지금 누가 내 가방에서 그 지갑을 꺼내어 '이건 네 지갑도 아닌데 왜 가지고 있지?' 라고 캐묻고, 내가 '경찰서에 가져다 주려고 했어요, 주인 찾아주려고 했어요' 라고 했을 때 과연 상대는 내 말을 믿을것인가, 를 생각해보니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은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갑자기........김기덕의 <나쁜 남자> 가 생각났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 무서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바. 이 미친 오지랖. 괜히 주웠어. 이제와서 그렇다고 꺼내어 버릴 수도 없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안주웠다면, 다른 사람이 주워서 그녀의 신분증이 타인에게 노출된다면, 지갑 주인이 험난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을테니 잘한거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자꾸 김기덕의 나쁜 남자가 생각나서 ㅠㅠ 그 여자가 서점에서 남의 지갑을 주웠던 게, 그러다 결국 나쁜놈들에게 끌려가버렸던 게, 자꾸 생각나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책을 읽으려고 펼쳤지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아, 이 재미있는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아. 나는 자꾸만 지금 도착한 역이 어디인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드디어 양재역. 내가 양재역에서 내려 파출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으면 돼, 그러면 돼. 라고 바쁘게 걸음을 옮겨 파출소로 향했다. 파출소로 가는 길의 버스정류장 안내판을 보니 내가 타야할 버스가 앞으로 3분 뒤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래. 파출소에 가서 이 지갑을 주고 돌아나오는 데에는 2분정도면 충분하다, 저 버스 탈 수 있어. 



그리고 파출소에 도착해 지갑을 주웠다고 하며 경찰의 손에 건넸다. 경찰 아저씨들이 많았고 젊고 잘생긴 경찰은 그들중 아무도 없었다. 저 이제 가도 되나요? 라고 돌아서 가려는데 경찰아저씨 한 분이 내용물을 같이 확인하자고 했고, 한 분이 내게 아가씨 연락처를 적으라며 무슨 노트를 내밀었다. 거기엔 어디서 주웠는지를 써야했다. 그 과정을 마치고 가도 될까요? 저 출근해야 해요, 라고 물으니, 아 출근하시는 중이구나 네 가셔도 돼요, 라고 한다. 나는 바쁘게 움직여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마침 버스가 온다. 꺄울. 나이쓰. 버스를 탔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거다. 그건 지갑의 주인을 찾아주게 되어서가 아니라 경찰아저씨가 '아가씨' 라고 했기 때문. 지난 주말에 산에 가다가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아줌마 길 좀 물읍시다' 라고 했었는데, 그 상처가 아직 지워지지 않고 깊이 깊이 남아있어서.........그랬는데...............아가씨라고 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회사에 도착했는데 타부서의 직원 한 명이 모카번이라며 빵을 준다. 나는 그 직원에게 말했다.



내가 우리회사에서 당신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나요? 라고.






나도 눈동자 이런 색이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런 색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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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3-11-0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동자만요???

다락방 2013-11-05 09:01   좋아요 0 | URL
네?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작나무 2013-11-0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좋은일 하셨으니 나중에 복 받을거예요 근데 찢어진 스타킹이라니...웬지....

다락방 2013-11-05 14:00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로또 한 번 사볼까요.. 찢어진 스타킹이 왜요. 아무도 몰라요. ㅎㅎ

세실 2013-11-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스바~~~ 시원해라!
스타킹만 찢어져서 다행이예요~~~~
참 착하고 반듯한 다락방님^^
그나저나 '내가 우리회사에서 당신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나요?' 라는 멘트를 받은 그 분 하루종일 행복했겠다.

다락방 2013-11-05 14:01   좋아요 0 | URL
전 별로 착하지도 않고 반듯하지도 않습니다, 세실님. 착하고 반듯하면 스바- 이런걸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겠습니까. ㅋㅋㅋㅋㅋ 불량한 여자사람인 겁니다. ㅋㅋㅋㅋㅋ

그 동료직원은 조만간 다른 빵도 또 사와서 준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게 일 년뒤가 될 지도 모른대요. 므흐흐흐

레와 2013-11-0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프겠다.
(모카번 하나로는 부족할텐데... ( ") ㅋㅋㅋㅋㅋㅋ)

난 니콜 키드먼 같은 사파이어+블루로다가..ㅎㅎㅎㅎㅎ

다락방 2013-11-05 14:02   좋아요 0 | URL
님하..왜 하나일거라고 생각해요. 두 개 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두 개 번개같이 흡입! 동료가 커피 내려준다고 했는데 내리는중에 이미 흡입완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3-11-05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5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3-11-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이렇게 험난한 출근길이라니요. 오늘 점심은 고기를 꼭 드셔야 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낮술도 한잔 곁들어서요.^^

2.저는 지갑을 가끔 줍는데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는것만 줏었어요.
아마 볼일 보신 분들이 다 끝나고 그냥 휙~버린 지갑들인듯. 아쉽게도!

3.이제야 <참을수 없는~>읽기 시작했어요. 첫 문장부터 니체의 영원회귀라뇨.
이건 기대하던 바가 아닌데요. ㅜ..ㅜ

4.너무 투명한 눈동자는 제가 촌스러워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좀 징그럽드만요.
저는 따뜻해 보이는 다락방님의 갈색 눈동자가 좋던걸요*^^*

5.참...모카번 따위로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직원이라면...
저는??????

다락방 2013-11-05 14:07   좋아요 0 | URL
1. 점심은 잡채밥 먹었는데 오늘 잡채가 다 불어있어서 별로 맛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살아야 하니까 싹싹 긁어 말끔하게 다 먹었습니다.

2. 지갑을 줍는다는 건 선의로 하기 참 껄끄러운 행동인 것 같아요. 아마도 김기덕 감독의 영향 탓이겠지만-_- 참..또 이런일이 생기면 또 이래야 하나...고민스럽네요. 에휴.. orz

3. 아, 그 책의 첫 문장에 그런 말이 나오나요? 전 읽던 도중 베토벤에 대한 얘기 나왔던 게 기억나네요. <꼭 그래야만 했나?> 라는 그 문장요. 거기에 대해서도 쿤데라가 아주 길게 말했던 것 같은 기억이....나중에 제가 다시 읽게 되면 또 다시 얘기해요.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쿨럭.

4. 아무개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끄럽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잉 몰라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아무개님은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기대하는 분입니다. 앞으로 엄청 크게 되실 거에요. 그정도를 통크게 쏘시는 분이시라면(!!) 크게 되실 게 분명해요!!!!!!!!!!!!!!!!!!!!!!!!! >.<

에르고숨 2013-11-0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는 무슨 범죄물의 후기인줄 알았어요. 파출소와 눈동자의 이런 조합은 정말 다락방 님밖에 쓸 수 없는 따듯한 페이퍼, 에긔! 좋아요. (댓글 아직 20개 아니지요..? 아임인.)

다락방 2013-11-05 14:08   좋아요 0 | URL
파출소와 눈동자......라니 생뚱맞네요(라고 마치 내가 쓴 게 아닌것처럼 외면한다).
에르고숨님은 다락방의 페이퍼를 좋아하고 다락방은 에르고숨님을 좋아하고.
므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흣

관찰자 2013-11-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이 버스 잡으러 뛰는 내내,

'저러다 스타킹 올이 계속 밑으로 내려가서 결국 다 보이는 위치까지 내려오지 않을까'

괜히 조마조마 했네요.

그치만 이야기는 해피엔딩. ^^V

다락방 2013-11-05 14:09   좋아요 0 | URL
이게 기모스타킹이라서 그런지 올이 풀려서 밑으로 내려오고 그러진 않네요, 다행스럽게도. 사실 저도 그 부분을 약간 걱정했었거든요. 희희희희. 집에가서 꾸매가지고 신어야겠어요. 기모니까 가능하겠죠? 홍홍홍.

네꼬 2013-11-05 23:31   좋아요 0 | URL
꼬매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실 무게 때문에... (근거는 없습니다만..)

단발머리 2013-11-0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입니당 ㅋㅎㅎㅎㅎ

오늘은 11월 5일입니다.

다락방 2013-11-05 14:22   좋아요 0 | URL
일단 제 댓글은 갯수에서 빼야되는 거고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 ")

단발머리 2013-11-05 14:29   좋아요 0 | URL
아? 그러는 거예요?
11월은 30일뿐이란거 잊지 마세요~~~~~ *^^*

다락방 2013-11-05 14:30   좋아요 0 | URL
네? ( ") 네...............( __)

네꼬 2013-11-0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헝 다락님, 나도 오늘 힘든 하루였어요. 으헝헝헝헝.

다락방 2013-11-07 12:22   좋아요 0 | URL
으응. 그래도 짜장면하고 탕수육이 있었으니까. 같이 먹어줄 사람도 있고. 따뜻해져요, 네꼬님.

2013-11-06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1-07 12:22   좋아요 0 | URL
므흐흐흐흣
네네 좋아요, 좋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3-11-0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같아요.
대사도 들리고 졸리가 막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여요 ㅎㅎㅎ

다락방 2013-11-07 12:22   좋아요 0 | URL
하아- 실제로 보면 졸리가 아니라 돼지가 뛰어다니는 걸텐데...하아-

아지라엘 2013-11-09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일이 와서 우연히 들어왔다 갑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른글도 읽다갈게요~~~

다락방 2013-11-11 17:09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게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포오브 2013-11-1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일이 와서 첫대목이 평소에 출근-지각 어쩌고 하는 말에 호기심이 와닿아서 클릭해봤다가 읽게 되었네요.. *_~
(제가 소시적에 지각대장이였던 관계로;;)
후훗.. 다락방님, 글 잼나게 자알~ 읽었어요.. 착한 일 하셨네요.. 복 받으실 거예요.. 짝짝짝 ))))) ^^*
글 잼있게, 실감나게, 잘 쓰셨네요 ㅎㅎ 남의 서재에다가 댓글 달아보기는 알라딘을 따랑하면서도 첨이네요..^^*
언제나 일이 닥쳐야 행동하는 기질이 있다는 거 어쩜 저하고 똑같으세요..^^; ㅋ_ㅋ
(아.. 나도 찔려..ㅋ 그래서 언제나 일상생활에서 정신없이 허둥댈때가 많지요?! 긁'적')
아만다 사이프리드 좋아하시나 보네요.. ㅎㅎ 사진도 잘 보고 가요.. ~_~

다락방 2013-11-11 17:10   좋아요 0 | URL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눈동자 색깔이 좀 특이하고 예쁜 색깔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만.. ㅎㅎ
 










'니콜 모니스'의 <칸지의 부엌>을 읽으면서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주 조금, 정말이지 아주 조금 알게 됐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대해 엄청나게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 작가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하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했으니 전혀 엉뚱한 내용을 쓰진 않았겠지만, 중간에 매춘하는 여자에 다룬 부분에 대해서는 '흐음' 하며 약간 찜찜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동양인들이 매춘을 하는 약자 혹은 수동적 인간으로만 보이는건가 해서. 그러니까 중국의 매춘을 다룬 것 자체가 편견과 어긋난 시선, 그런걸로 보인 탓이다.


그러나 그 찜찜함이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작가는 얼마나 오랜시간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중국이 그 책 안에 있었다. 가난하고 후지고 짝퉁만 만들어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건 중국에 대한 극히 일부이며 편견이었다. 짝퉁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데 왜 그걸 그렇게 죽일듯이 생각하냐는 중국 대학생들의 토론 장면은 인상 깊었다. 중국에서 먼저 만들고 다른 나라들이 따라한 것도 많은데. 게다가 중국의 역사는 깊고도 깊었고, 그 인구는 실로 방대해서, 성매매에 나선 여성만도 1억이 넘는다고 되어 있었다. 이것이 중국의 현실이라고 봤을 때, 니콜 모니스가 본 자신의 남편과 원나잇을 한 상대는-그 여자가 성매매에 나선것도- 드문것도 아니었고, 편견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 살아오며 봐왔다면 그런 여자들을 보는 것도 역시 어렵지 않았을터다.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내가 <정글만리>를 먼저 읽고나서 <칸지의 부엌>을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사전>을 읽으면서 <정글만리>가 도움이 되었다. 연결된 독서란 이런것일까, <정글만리>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던 '마오주석'의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는 건 여자' 라는 말이 <연인을 위한 외국어사전>에도 나왔고, 당에 소속된다는 것, 거기에서 개인은 사라진다는 것 등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거다. 크~ 이것이야말로 연결된 독서로구나.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이는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진다. 이해도 쉬워진다. 멋진 경험이었다. 



그러다 중국 여성들의 성매매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글만리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대학까지 졸업한 여자들이 부자 남자들의 '얼나이'(첩)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게 어딘가 모르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손가락질 한다고 그만일까, 하면 그것도 아닌것이, 애초에 '대학까지 가서 학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더 나은 직장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부자 남자의 얼나이가 되어 자신들이 먹고 싶은 걸 먹고 입고 싶은 걸 입고 산다는 데, 거기에 대해서 그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인생의 목표 자체가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었다면, 누군가의 얼나이가 되어 노동하지 않고 부유하게 사는 게, 그 사람에게는 목표의 달성이 아닌가 말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얼나이가 대학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린다. 그것은 그들에게 힘을 준다. 열심히 공부해서 누군가의 얼나이로 안착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사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어딘가 삐끗한 느낌을 주는데, 그걸 과연 비난하는 게 옳은가 하면, 대체 그 비난은 누가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도 잘 모르겠다. 흐음..역시..잘 모르겠다.






금요일에는 H를 만나 종로에서 술을 마셨다. 2차로 간 술집에서 우리는 돈까스 안주를 주문했는데, 15,000원이나 하는 돈까스는 이런 모양새로 나왔다.



헐. H와 나는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이 하얀거, 잔뜩 위에 뿌려진 이 하얀 게... 마요네즈...는 아니겠지? 설마 돈까스 위에 마요네즈를 뿌리진 않겠지? 에이, 말도 안돼. 그리고 포크로 살짝 찍어 먹어 보았다. 헐. 마요네즈였다. 우린 당황했다. 아니..돈까스에 이렇게 잔뜩 마요네즈를 뿌리다니, 이게 뭐지? 왜 돈까스에 마요네즈를 뿌리지? 도무지 이걸 먹을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종업원을 불렀다. 마요네즈를 먹을 수 없으니 바꿔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몹시 꺼리는 표정으로 가져가면서, 이건 사장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고, H 는 그러라고, 사장한테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후,


무섭게 생긴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나는 겁이 났다. 그는 뭐라해야하나, 깡패같은 포즈로, 돈까스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아..완전 무서웠다. 우리를 한 대 칠 것 같았......벌렁벌렁하는 가슴으로 앉아있는데 내 앞에 앉은 H는 '그렇다, 마요네즈 뿌려진 돈까스를 먹을 수 없다, 바꿔다오 '라고 했다. 그러자 사장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다, 소스를 따로 드리면 되겠냐' 고 묻는거다. 우리는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은 '미리 말을 하면 따로 줬을것이다' 라고 한다. 에라이, 모르겠다. 나는 말했다. '돈까스에 마요네즈를 뿌려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라고. 나는 아직 한 번도 돈까스에 마요네즈 뿌려주는 음식점(혹은 술집)을 가본 적이 없는데, 이게 참... 어쨌든 잠시후 소스를 따로 덜어서 돈까스를 새로 나왔다. 아 깜짝이야. 완전 두근두근했어. 너무 무서워서 닥치고 먹어야 되나 잠깐 생각했는데, H는 본인도 무서웠을 것 같은데, 쫄지 않았...어휴...무서워... 혹시 모르니 다음엔 H 한테 싸움 잘하냐고 물어봐야겠다. 쿨럭.




어제 일요일엔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었다. 남동생은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팔 아픈데 무슨 부침개냐고. 나와 엄마는 동시에 말했다.


"내가 하면 되지."

"누나가 하면 되지." (이건 엄마가 한 말)


그러자 남동생이 말했다.


"그럼 맛이 없잖아!"


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린 다들 빵터졌고, 결국 부침개를 해먹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요리란 걸 해본답시고, 어제 한 계란말이. 그게 이런 꼴이었다.



이게 (계란)말이야 덩어리야....쩝. 나는 왜 뭘 해도 이모양이냐...

어릴 적에는, 내가 뭐든 잘하는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못하는 게 없는 아이.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해서 도대체 뭘 더 잘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아이. 그러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니미. 현실의 어른인 나는,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심지어 계란말이조차 저렇게 지저분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쩝..피아노도 못치고 요리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고 게으르고....




아침엔 김치와 시금치된장국 고추장아찌등를 반찬으로 해서 밥 한그릇을 뚝딱 비워냈는데, 어제 남동생이 저녁에 포장해 온 피자를 먹지 않았던 게 생각나, 그걸 한 조각 데워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는 데워줬고, 나는 그 한조각을 또 말끔히 먹어 치웠다. 와...배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 분명 오늘 아침 출근길엔 뒤뚱거렸을거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소화가 다 되어버리고 말았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슬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배고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책 살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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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4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3-11-0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책감상에서 소소한 일상생활로 쉬프팅후 먹거리로 마무리되는 포스팅이 가히 천의무봉의 경지로다!

다락방 2013-11-04 17:06   좋아요 0 | URL
천의무봉: 하늘나라 사람의 옷은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시문 등이 일부러 꾸민 데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무결하여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 일부러 꾸민 데가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 완전무결하여 흠 잡을 데가 없다.

천의무봉 사전 찾아봤네요. ㅎㅎㅎㅎㅎ

가연 2013-11-0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앙.. 돈까스... 저는 어제 피자 1판을 몽땅먹어버렸습죠. 덕분에 오늘저녁은 굶었는데.. 슬슬 라면이 먹고 싶네요

다락방 2013-11-05 09:01   좋아요 0 | URL
으악 저도 라면 먹고 싶네요. 지금 배가 터지는데 ㅋㅋㅋㅋㅋ 라면은 너무 매력적이에요 ㅠㅠ 이 세상에 모든 몸에 나쁜 음식은 전부 매력적인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듯이...(읭?)
 

성당에 도착했을 때 결혼식은 끝나고 성당 뒷마당에서 기념 촬영이 한창이었다. 성당으로 오르는 길 양옆에 놓인 강렬한 원색의 팬지들 너머로 녹색 잎으로 뒤덮인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수많은 하객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한 신랑, 신부의 뒤쪽으로 절정에 오른 색색의 철쭉들이 한껏 축제 분위기를 냈다.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멈추어 섰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당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 갔지. 오늘 아침에 분명히 넣었는데. 거칠게 손을 놀렸지만 선글라스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몇 번 더 헤집다가 백을 뒤집으려는데 뒷마당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아 들고 성당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달려가는 신랑의 동선 뒤로 한층 강해진 햇살이 찬란히 빛을 내뿜었다.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일어서서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봄의 명동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전에 보았던 결혼식의 환한 아우라가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결혼식. 한 타인과 영원히 인생을 함께할 것을 서약하는 자리. 그 끝이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영원을 서약하는 예식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가. 흐물이 비판을 일삼던 종교에 귀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흐물에게 전화해서 '흐물!' 네가 왜 하느님 품에 안겼는지 알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튈 것처럼 생생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나는 멈추어 섰다. 흐물과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었던가. 흐물과 있을 때, 나는 찬란히 빛났다. 만방에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흐물과 나, 둘 중 누가 누구를 이끌었던 것일까. 흐물이 나를 이끌어주었을까, 내가 흐물을 이끌어주었을까. 일방적으로 흐물을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했던 그동안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pp.283-284)

 

 

 

 

 

 

 

 

 

 

 

 

 

 

 

 

 

결혼식은 축하해주러 가야 하는 자리이지만, 행복을 빌어주어야 하는 자리이지만, 그 결혼식에 참석해서 내 기분이 항상 좋으리란 법은 없다.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입맛이 쓴 경우도 더러 생긴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전. 나도 한 결혼식의 하객으로 참석했다. 사실 그때 나는 결혼하는 당사자를 축하하러 가는 것이 본 목적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반드시 하객으로 올 M 을 보러 가는 거였다. 우리는 헤어졌고 오랫동안 못보았지만, 그 결혼식엔 반드시 올 것이고, 그 결혼식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터다. 나는 그를 그렇게, 보고싶었다. 그 자리에서 하객대 하객으로 만난다면 우리는 그저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게 전부겠지만, 이제 나는 그와 부러 만나는 사이가 아니니 그렇게 보는 것 말고는 그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버렸지만, 그 당시엔 내가 좋아했던 원피스를 입고, 향수를 뿌리고,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온 J의 차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아는 몇몇 얼굴들과 인사를 하고 틈틈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J 가 분명 M 이 여기에 온다고 했는데, 오면서 통화도 했다고 했는데..

 

예식을 채 보지도 않고, 당연히 식사도 하지 않은채, 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식장을 나왔다.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걷게될지 모르지만, 혹여라도 늦게 M 이 도착한다면 이렇게 걷다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걷다가 참지 못하고 M 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오랜만의 통화였다. 여보세요, 그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그에게 왜 예식장에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온 김에 얼굴좀 보려고 했는데,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덧붙이며. 그는 거의 다 도착했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느라 좀 늦었노라고.

 

아.

 

식장에서 그를 기다렸다고한들, 그렇게 그와 마주쳤다고한들,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긴 껄끄러웠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숨이 나왔다. 내가 굳이 여기를 올 필요는 없었는데. 결혼하는 당사자와 내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내가 올 줄도 몰랐을텐데. 욕심이 화를 불렀네. 나는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예식장은 우리 집에서 차로 삼십분 거리에 있었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서 결국 집까지 갔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의 시장에 들러 피자를 한 판 포장해갔다. 누군가의 결혼식은, 아주 쓸쓸한 게 될 수도 있는거였다.

 

 

이 책속의 여자는 남자를 '보험같은 이성친구'라고 생각했다. 먼 곳에 살면서도 자기가 부르면 언제나 다가와주는 그를 언제까지고 옆에 있을 상대라고만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되었을때에도, 어디 감히 나를 넘봐, 라는 생각으로 그를 무시했다. 그를 만나다가도 자신이 공을 들이는 다른 남자의 전화를 받고는 그를 버려두고 가버리기도 했다. 그 후에 연락이 잘 되지 않던 남자가, 글쎄, 결혼을 한다고 한 거다. 자신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여자는 그 결혼식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가 결국 가기로 마음을 바꾼다. 삼십만원을 축의금으로 내려다가 십만원으로 바꾼다. 결혼식에 갔지만 아는척하지 않고 돌아간다. 가야했을까 가지말아야했을까. 왜 누군가의 결혼식엔 하객으로 참석하는 게 이다지도 쓸쓸하고 고독하고 입맛이 쓰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허해지면서 영화 <사이드웨이>가 생각났다.

 

 

 

 

 

 

 

 

 

 

 

 

 

 

 

교사인 마일즈는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앞두고 그 친구와 둘이 총각여행을 떠난다. 이혼을 했고, 교사로서 돈벌이도 좋지가 않고,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지만 어느 출판사도 그의 책을 출판해주려하지 않고, 호감이 가는 여자와는 잘 되질 않는다. 그런 그가 사랑하는 게 바로 와인. 와인을 맛보고, 와인을 수집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커다란 기쁨이다. 그 순간들이 그에겐 무척이나 소중하다.

 

 

"수집한 것중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뭐예요?"
"61년산 슈발 블랑이요."
"와우. 그걸 어떻게 마시지 않고 두고만 있을 수 있죠?"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시고 싶어서요."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인거예요." 

 

 

여러가지 일들을 겪고 여행에서 돌아와, 마일즈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이제 결혼을 하는 것만으로도 쓸쓸한데, 그렇게 혼자 하객으로 왔던 그는, 그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전(前)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새로운 남편을 소개시켜주고 임신 소식을 알린다. 마일즈는 그녀에게 축하를 건네고, 친구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많은 하객들 중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도 못한채로 결혼식장을 빠져나온다.

 

이 때의 마일즈가 떠올랐다. 보험같은 이성친구를 떠나보내는 여자를 책으로 만나면서, 그녀가 식장에서 뒤돌아 혼자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마일즈가 생각났다. 그러나 마일즈에겐,

 

61년산 슈발블랑이 있었다. 마일즈는 특별한 순간에 마시고 싶었던 그 와인, 61년산 슈발블랑을 챙겨들고 소박한 식당으로 간다. 식당에 간 그는 햄버거 하나를 시켜서 그 햄버거를 앞에 두고 61년산 슈발블랑을 꺼내 식당의 플라스틱 컵에 따른다. 그는, 혼자서, 소박한 식당에 앉아, 그토록 소중하게 아껴온 61년산 슈발블랑을 마신다.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인거예요.

 

 

그는 자칫 비참하고 외롭고 절망에 빠져들 수도 있었을 그 순간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버린다. 수많은 영화의 수많은 장면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나의 사이드웨이 DVD 는 어디에 있지? 누구에게 있는거지? 기억이 나질 않네 ㅠㅠ

 

 

 

퇴근길에는 우체통에 두 개의 편지를 넣었다. 하나는 부산으로 갈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서구로 갈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그립다 썼고 다른 하나에는 시를 한 편 적었다.

 

 

여름의 끝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쓸쓸하게 돌아서야했던 결혼식장과, 보험같은 이성친구를 잃어버린 여자와, 61년산 슈발블랑을 혼자서 따라 마셨던 마일즈가 생각났던 날, 이 시를 읽으니, 쥐약같았다. 여름, 내가 여름에 잃어버린 사랑이 떠올랐다. 여름에 시작되고 여름에 끝냈던 사랑이. 겨울에 시작됐고 여름에 끝났던 사랑이. 여름에 잃었던 그 두 사랑이, 내게는 가장 찬란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가장 가슴 떨렸었다. 여름에 헤어지면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고질적인 병인가보다. 사랑을 잃고난 후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었지만, 그러기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마찬가지로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맨발에 수없이 많은 고통이 가해졌을 것이다. 날카로운 돌을, 깨진 유리를, 고인 물엉덩이를 그 발로 디뎌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단단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름에 사랑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그전보다 더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에 사랑을 잃는 걸 권하고 싶진 않다. 그런식으로 여름의 끝을 맞이해서는 안된다.

 

 

 

 

나도 와인을 마셨다.

마일즈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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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31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10-3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sideways..ㅎㅎ

다락방 2013-10-31 08:45   좋아요 0 | URL
아이참 가연님도..부끄럽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

아무개 2013-10-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생각해보니 저는 주로 봄여름쯤에 연애를 시작, 슬슬 추워질때즘 헤어졌던거 같아요.

좀 더 강해졌을진 모르겠지만 좀 더 추웠던거 같습니다.
그 이별이 있던 겨울들은요.

다락방 2013-10-31 09:36   좋아요 0 | URL
물론 겨울에 헤어진적도 있지만, 저는 여름에 헤어진 두 남자가 유독 기억에 남네요. 그 헤어짐이 엄청 힘들었어요. 그 두 남자를 제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기도 했고요. 그들은 제게 환상적인 존재였어요. 크-
그 여름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어휴, 그 눈물들.. ㅠㅠ

아무개 2013-10-31 09:45   좋아요 0 | URL
자면서 울고 밥 먹다가 울고 전절에 서서도 울고 길을 걷다가 울고.....
참 많이도 울었었네요.

나중에 만나면 실연이야기나 잔뜩 해볼까요?
아마 그날은 누구하나쯤 인사불성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락방 2013-10-31 09:48   좋아요 0 | URL
실연이야기 ㅎㅎㅎㅎㅎ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ㅋㅋㅋㅋㅋ 뭔가 소주가 술술술 하면서 넘어갈 것 같아요. 하하하

아무개 2013-10-31 09:52   좋아요 0 | URL
담번 모임의 주제는 내인생 최악의 연애와 최고의 연애입니다.

흠...어디 방이라도 잡고 술마셔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3-10-31 09:56   좋아요 0 | URL
전 이거 지금 말할 수 있어요.

내인생 최악의 연애는 '사랑하지 않았던 상대와 했던 연애' 이며
내인생 최고의 연애는 '해보지 못했던 게 많았던 연애' 입니다. ㅎㅎㅎㅎㅎ

자작나무 2013-10-3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 님과 무개 님의 화려한 인생과 풍성한 기억에 슈발 블랑을.
난 살아오면서 왜 기억나는게 별로 없을까요? 연애조차도.

다락방 2013-11-03 22:29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일들과 만나게 될 사람들이 기억되지 않을까요?

2013-10-3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03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10-3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우리 사이드웨이를 플레이 시켜놓고 밤새 와인을 마셔봅시다.

다락방 2013-11-03 22:29   좋아요 0 | URL
캬- 좋죠. 아름다운 영화에요. 난 이 영화가 몹시 좋아요!

에르고숨 2013-11-0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우체통에 넣은 편지 이후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으려나요... 다락방 님이 안 계신 마지막키스서재가 참 쓸쓸합니다.

다락방 2013-11-03 22:30   좋아요 0 | URL
어머. 에르고숨님, 저 기다리신 겁니까? 움화화화핫.
일요일 밤이라 여기를 안 올 수가 없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 어떻게 보냈어요?

에르고숨 2013-11-04 00:58   좋아요 0 | URL
예. 슬픈 글을 남기고 ‘멋지게’ 잠깐 부재해주시니 그러지 않겠어요?
주말에 술 마시고 책 읽었어요, 물론 여기도 들락거리고요. 역시, 새 독후감을 갖고 와주셨네요. 또 한 주 무탈하고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13-11-04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주말에 술 마시고 에르고숨님 서재에 들락거렸어요! 흔적은 안남겼지만 말예요. 헤헷.
^_________________^
 


포르노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야한 영화를 본 적은 많다. 내가 말하는 야한 영화란 극장에서 개봉하는 류의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가게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가만있자, 제목이 뭐였더라, <동물적 본능>도 있었고..또...

<동물적 본능>도 친구의 집에서 봤고, 그 친구가 한 번은 포르노를 보자고 불렀는데 가지 않았다.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었다. 어쨌든, 내가 야한 영화를 보고난 후의 감상이란 게 별 게 없었다. 재미가 없었으니까. '야하다'고 느껴지고 '재미있다'고 느껴지기 위해서는 그들이 옷을 벗고 끌어안아서만 되는 건 아니었다. 옷을 벗기 전, 끌어 안기 전의 남자와 여자(혹은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라도)의 긴장과 설레임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영화는 영화로서 재미를 더했고 그래야 내가 그 영화속의 누군가가 될 수 있었다. 어릴적(고등학생)에 봐도 별로 재미가 없었으니 어른이 된다한들 취미가 붙을 리 없었다. 나는 재미있는 영화가 야하기까지 하면 완전 좋아했지만 그냥 벗는 영화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그러니 포르노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포르노란 내게 그저 남자들이 혼자 보면서 연구하는 영화,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포르노 산업의 폭력적인 면에 대해 갑자기 확 와닿고 말았다. 포르노 배우들과 감독들 관계자들이 폭력적이란 얘기가 아니다. 돈이 없는 집에서 태어난 여자들이라면 폭력에 노출되기 쉬웠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딸들은 얼마나 많이 돈에 팔려가게 되는가. 그들이 파는건 성이다. 성을 팔아도 되는가 안되는가 그것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어도, 그들이 일단 돈에 '팔려가게 된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행위이든, 내 의지에 반한다면, 그건, 폭력이다.


영화 [러브레이스]의 주인공인 '러브레이스'는 스무살에 사랑에 빠졌고, 그남자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그러나 남자는 마약에 중독됐고 섹스에 중독됐으며 돈이 없었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가르쳐서 오랄섹스를 아주 기막히게 잘하는 자신의 아내 러브레이스를 포르노 영화에 주연으로 내보낸다. 그녀가 얼마나 잘하는지 오디션장에서는 그녀와 자신의 섹스장면 비디오테입을 틀어주고. 영화는 이때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러브레이스는 그 영화를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틈틈이 남편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자신이 찍은 포르노가 극장에서 개봉하고 대박을 터뜨리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 자신의 몫을 받지 못하고 또다시 폭력에 노출된다. 남편은 그녀를 포르노 배우로도 모자라 매춘으로도 팔아넘긴다. 남자들 여러명이 있는 호텔에 남편이 여자를 몰아넣었을 때,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그 떼거지의 남자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음이 분명할 때, 그 때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과 수치심은 얼마만큼일까. 이 모든것들이 싫다고, 그만두겠다고 하면 남편은 총을 들고 협박한다. 내 말을 들어.



아직 그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때, 그녀는 남편을 피해 친정으로 도망을 왔었다. 엄마, 며칠만 여기 있게 해주세요. 엄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너의 남편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그녀는 울면서 엄마에게 말한다. 그가 나를 때려요. 그러자 엄마는 니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가 너를 때리니, 라고 오히려 그녀를 나무란다. 착한 아내가 되라, 남편의 말을 잘 들어야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맞으면서도 순종적으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받았을까.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장소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그런 삶을 살아온걸까.


결국,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리고 자신이 포르노를 찍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자서전으로 풀어낸다. 세상에 그 일을 고발해낸 그녀는 그 뒤로 죽을때까지 포르노영화를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며 살다가 53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 후에 또다른 포르노스타와 결혼했다는 데, 그 자막을 보는 순간 그 여자 역시 폭력적으로 그 앞에 서게 된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러브레이스 주연의 영화 [목구멍 깊숙이]는 실제로 있는 영화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더니 저 영화 역시 진짜였다. 그러나 러브레이스에 대한 의견은 좀 갈리는 듯했다. 그녀가 남편의 폭력 때문에 포르노를 찍은 게 아니라 스타가 되고 싶어 찍었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긴 했지만 그건 남자배우와의 사이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폭력을 당했다는 자서전을 쓴 건 자신이 헐리우드의 스타가 되겠다는 야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1. 남편은 그녀에게 어쨌든 폭력을 휘둘렀고

2. 포르노 산업은 폭력앞에 아주 쉽게 노출될 수 있다


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가진 게 없고 그래서 힘 없는 여자들을 간혹 가족들이 매춘으로 내몬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는데, 더 많은 돈을 벌어다줄 포르노는 그들을 착취하기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예고편을 보았을 때도, 그리고 이 영화 [러브레이스]의 포스터만 봐도 유쾌발랄상큼 코미디로 보이지 않는가. 젠장. 그런 영화인줄 알고 룰루랄라 극장을 찾았다가 결국엔 눈물을 흘렸다. 아..이런 영화인 줄 몰랐어 진짜. 

















아놔...이건 뭐.....참............할 말도 없고 재미도 없다. 내가 본 우디 앨런의 영화중 가장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인 듯.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아무 생각도 안들어. 참...아! 페넬로페 크루즈는 참 이쁘다. 끝.




나의 엄마는 입병이 자주 생긴다. 간혹 병원에 갔을 때 물어보면 그때마다 '피곤해서' 생기는 거라고 해서 그래, 그렇겠지, 하고 말았는데, 그래도 너무 자주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베체트병'이라는 증상이 입병이 자주 생기다가 실명의 위기에 처하고 한다더라. 무서워서 엄마한테 병원에 다시 한 번 가서 물어보라고, 그건 안과에 가서 물어봐도 되고 한의원을 찾아도 될 것 같다고 했는데, 며칠전 엄마가 눈이 아파서 안과를 찾은 김에 물어봤더니, 그건 피곤해서 생기는 거고, 이 눈의 염증은 늙어서 생기는 거라고, 나이들면서 점점 눈꺼풀이 쳐져서 그런다고 했다며 약을 처방해주었단다. 흐음. 그리고 입병도 다 나았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입병이 아주 오랜 시간 낫지 않는다는 데, 그건 아니고, 또 눈이 안보이거나 성기에 염증이 생기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 베체트병이 아니긴 아닌것 같다 싶으면서도 좀 신경이 쓰인다. 여동생이 엄마 드시라고 이것저것 비타민을 챙겨드려서 그거면 괜찮겠거니 하고 난 무심했는데, 며칠전에 검색해보니 입 병에 좋은건 비타민 B 군 이라더라. 앗, C가 아니고? 그래서 또 검색해보니 비타민 B군은 토마토 등푸른 생선에 있고 그리고, 돼지고기에 아주 풍부하단다. 돼지고기 먹으면 비타민 B군을 섭취할 수 있다고. 오! 좋았어!! 나는 당장 엄마한테 문자를 보내 돼지고기를 많이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요일 오전, 여동생 집에 가 있는 엄마와 통화.



입병은 다 나았어?

응 다 나았어.

돼지고기 먹어.

응. 나 집에가면 너랑 돼지고기 먹으러 다녀야겠다. 갈비도 먹고 삼겹살도 먹고.

그래. 나 봐, 돼지고기를 맨날 먹으니까 입병따위 안생기잖아.



아, 그런데 이렇게 말하자 엄마가 내게 이러는거다.



대신에 넌 뚱뚱하잖아.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난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얘기를 친구에게 하자 친구가 물었다. 뭘 선택할 거에요? 입병 생기는 거랑 뚱뚱한 것 중에? 하아- 둘 다....싫은데? 우짜지. 쩝. 


오늘 아침 동료가 아이유식단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하자 아침 사과 한 개, 점심 고구마 두개, 저녁 단백질 쉐이크 란다. 헐. 그거 다 합쳐도 한 끼로는 스트레스 받는 식단인데, 그걸 하루에 나눠서 먹는다고? 얼라리여. 너무한거 아니야? 그런 대화를 하다가 문득, 아, 나도 이제, 단백질 쉐이크로 저녁을 먹을까.........하는 생각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생각부터 우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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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10-2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타민B는 돼지고기가 아닌 정제로 섭취해도 됩니다. 삐콤정 같은거 말이죠. 문제 해결.

다락방 2013-10-29 10:30   좋아요 0 | URL
저는 돼지고기로 섭취할겁니다. 불끈!! ㅎㅎ

야클 2013-10-2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중 이토록 첫문장이 와닿지 않는 글은 처음이네요. ㅋㅋㅋ

농담이고, 간만에 알라딘 왔는데 왕성한 글쓰기는 여전하시군요. ^^

다락방 2013-10-29 1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계속 기억을 더듬고 있어요. 포르노 본 적 있나? 하고요. 그런데 있다면 생각이 나겠죠? ㅎㅎㅎㅎㅎ<동물적 본능>, <터보레이터>이런건 포르노가 아니죠? ㅎㅎㅎㅎ(왜 야클님에게 묻는걸까요, 전..)

아무개 2013-10-2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푸하하하핫
터보레이터!!!!! 비됴방에서 보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나요.
만나는 여자마다 응응하던 영화 맞죠? 크흐흐흐흐

2.역시 고기는 돼지고기죠. 하지만 돼지고기로 단백질 B군 섭취를 끝까지 고집하시니....
그럼 뭐 돼지고기 단백질 쉐이크로 저녁을 드심이........(생각만해도 토 쏠림 ㅜ..ㅜ)

3.가난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력적이게 만들거나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만들죠.
그래서 무서운거에요.가난이.......
벗어날수도 없으니까요. 이젠.

다락방 2013-10-29 11:16   좋아요 0 | URL
1. 아..아...아니! 아무개님도 <터보레이터>를 보셨단 말입니까! 꺅 >.<
비됴방에서 보다가 친구가 토할것 같다고 나가자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ㅎㅎ
남자주인공의 등장이 인상적이었죠.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알몸으로... ㅎㅎㅎㅎㅎ

3. 네, 가난이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가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라고 다 똑같이 행동하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해서는 안될 생각도 하게 되곤 하니까요. 가난에는 폭력이 따라오고, 그래서 가난이 무서운 것 같아요. 어떻게해야 할까요, 어떻게해야 벗어나게 될까요? 가난에서도 폭력에서도 말입니다.

아무개 2013-10-29 12:34   좋아요 0 | URL
엥? 2번 댓글은 아예 없는겁니까? 돼지고기 쉐이크~쉐키~쉐키~

그런데 우리 이런거 봤다고 이렇게 막 쓰고 이래도 되는걸까요?
ㅡ..ㅡ::::::::::::::::::::::::::::::::::::::::::::
그런데 또? 혹시? <원초적 본능>의 아류작인 <원죄적 본능>은 안보셨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3-10-29 12:58   좋아요 0 | URL
돼지고기 쉐이크는 상상도 하기 싫으므로 패쓰.......

<원죄적본능>이라고요? 제가 <플레이 게임>이란 영화는 봤는데 ㅋㅋㅋㅋㅋ지금 <원죄적 본능> 검색해봤는데 포스터 보니까 보고싶어요! 재미있어요? 다운 받아 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3-10-29 13:23   좋아요 0 | URL
헛뜨 뭘 검색까지 ㅋㅋㅋㅋ
영화는 완.전. 재미없습니다!!!!!!이것도 보다가 중간에 졸았나 뭐 그랬던거 같아요.
차라리 터보레이터가 낫습니다요~

다락방 2013-10-29 13:26   좋아요 0 | URL
터보레이터는 중간 넘어가면서부터 아예 자막도 안나오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죄적본능 이라니 뭔가 잼날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지만 터보레이터보다 재미 없다면 패쓰.(이러고 몰래 보기)

아무개 2013-10-29 13:32   좋아요 0 | URL
아...끝났어....
다락방님 서재 방문자 수도 많은데
아무개의 이미지는 아마도 터보레이터나 원죄적 본능으로 굳어지겠지...
끝.났,어. 흐흑.........ㅠ..ㅠ


다락방 2013-10-29 13: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터보레이터를 모를것 같은데요. ㅎㅎㅎㅎ 무슨 얘기 하는지도 모를것 같아요. ㅋㅋㅋㅋ

아무개 2013-10-30 08:1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이것봐 아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네.
터보레이터가 이렇게나 유명한 영화였네~~ 하.하.하.핫

다락방 2013-10-30 08:22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어요. 많이들...아시네요. 전..저만 아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자작나무 2013-10-2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보레이터를 알고 계시다니 70년대생이시군요. 터보레이터 포르노 맞아요. 국내 들여오면서 상당 부분 삭제했죠. 근데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다락방 2013-10-29 14:04   좋아요 0 | URL
오, 자작나무님은 어떻게 그런것까지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
터보레이터 포르노 맞습니다. 70년대생이 아니더라도 80년대 생들도 터보'를 모를 리 없습니다.

터보레이터'는 포르노의 금자탑입죠.
제가 명색이 포르노 박사 아닙니까 ( 자랑자랑자랑 ~ )
터보레이터'는 원래 포르노인데 국내 비디오'로는 전부 삭제했습니다. 예를 들면 미디엄 샷이나 풀샷을 불로우업 작업을 해서
부분만 엄청나게 확대해서 실제 장면은 안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린다 러브레이스의 < 목구멍 깊숙이 > 는 미국 영화 걸작 100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포르노'입니다.
이 영화 한 편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러브레이스는 자서전에서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포르노 반대 운동을 펼쳤지만
사실은 그녀는 포르노 스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라는 것이 정설이 되고 있어요.
남편에게 폭력을 당했던 것 또한 사실이고, 남편 때문에 포르노를 찍기 시작했지만
포르노가 돈과 명예를 준다는 사실에 매혹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후에도 꾸준히 포르노를 찍었지만 다 실패했고 결국은 포르노 반대'로 돌아섰다고 하더군요.


다락방 2013-10-29 17:43   좋아요 0 | URL
저는 그것이 음지의 영화인지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옥보단>같은 류의 영화와는 또 다르니까요. 포르노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딱히 뭐랄까, 거부감있는 장면이 눈 앞에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디오방에서 떡하니 빌려주는 영화이기도 해서였거든요. 물론 내용이 완전 허접해서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 터져나오지만, 그래도 비디오방에 있는건데...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들은것도 같네요. 원래 포르노로 만들어진건데 우리나라에서 비디오방에 들여 놓을라고 많이 삭제했다는 식의 말이요.


영화속에서 그녀가 반대 운동을 펼친건, 포르노산업이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인걸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검색해보니, 그녀가 그걸 계기로 헐리우드의 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또 그 다음 포르노를 찍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포르노반대 운동을 하면서 이슈를 일으켰다고 하더라고요. 뭐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포르노는 폭력에 아주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목구멍 깊숙이>는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영화에요. -_-

2013-10-2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3-10-29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아주 좋아해요. >.< 너무 예뻐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배우예요. 특히 그 긴 금발은.. ㅠ_ㅠ 이 영화에서는 실화의 이미지를 살리려고 갈색 머리에 주근깨도 그리고 나왔다더군요. 그래도 예쁘네요. 헤블레. +_+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영화 찾아봐야겠어요. ^^

터보레이터라니. 제목 굉장하네요. ㅎㅎ

다락방 2013-10-29 17:49   좋아요 0 | URL
이 영화에서 주근깨가 되게 매력포인트로 나오거든요. 전 그래서 원래 주근깨가 있는 줄 알았지 뭐에요. 그리고 나온거구나...아직 극장에서 상영중일것 같긴한데 상영하는 극장이 얼마 없더라고요. ㅠㅠ

터보레이터는, 문나잇님, 보시지 않기를 권합니다. 네, 그럼요.

단발머리 2013-10-30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분위기에서 돼지고기 애기 좀.... ㅋㅎㅎㅎ
충격고백!
입병이 자주 나서 이것저것 안 해 본 것 없는 사람입니다.
돼지고기보다는 비타민 B 정제가 효과있고요(ㅋㅎㅎㅎ), 비타민 B 보다는 홍삼이 효과있어요.
전 "ㅈ관장 홍삼정환" 먹는데 이것 때문인지 근 일년간 괜찮았구요.
그리고.......
입병이 날려고 할때, 따뜻한 맹물로 입을 자주자주 행구시는것도 효과있어요.
이상, 입병 전문가의 소박한 조언... 휘리릭~~

다락방 2013-10-30 10:17   좋아요 0 | URL
아, 홍삼이 괜찮아요? 집에 홍삼 있는데..엄마한테 홍삼도 부지런히 드시라고 해야겠네요. 비타민 B 정제라니, 약국가서 또 상의해봐야겠고요. 드시는 비타민이 너무 많아서.. 히잉.
따뜻한 맹물, 오케이 알았어요. 그것도 꼭 전할게요.

입병 전문가라니..그런거 하지마요, 단발머리님 ㅠㅠ

아무개 2013-10-30 11:33   좋아요 0 | URL
정관장 제품에 홍삼이 아닌 수삼 세뿌린가...것도 완전 연식 딸리는...
그딴거 들어있다고 얼마전에 기사난거 봤어요.
저도 홍삼하면 정관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흠...흠....
울 엄마도 이거 먹으니까 안피곤하다며 열씨미 드시는데 흠흠.........

다락방 2013-10-30 12:08   좋아요 0 | URL
헐..이 나쁜것들. [정글만리] 읽으니까 중국에 짝퉁이 판치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관장도 별 수 없나보군요. ㅠㅠ

레와 2013-10-31 13:34   좋아요 0 | URL
저기, 쓰시는 치약도 한번 체크해봐요. 불소 함유된거 말고 되도록 자연 성분으로 된 순한 치약 쓰시고 양치할 때 깨끗하게 헹구는 것도 중요하더라구요. ^^

프레이야 2013-11-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어머니도 참 ㅎㅎ
돼지고기엔 비타민 B가 많아서 입병 안 걸리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맞을 거에요 ㅎㅎ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예쁘죠. 동감^^ 로마위드러브,에서 귀엽지 않던가요?
지난 주 서울 간 김에 마리오 테스티노 전을 봤는데요, 페넬로페가 있지 뭐에요^^
매혹적이었어요. 기네스 펠트로우의 다른 모습들도 좋았고요.

다락방 2013-11-03 22:31   좋아요 0 | URL
페넬로페 크루즈는 [귀향]에서도 생각했지만, 참 가슴이 이쁜 배우인 것 같아요. 언제나 옷을 입으면 가슴이 돋보여요. 예뻐요. ㅎㅎ
앞으로 엄마 모시고 돼지고기 좀 많이 먹으러 가야겠어요. 불끈!
 

 

 

 

 

"계속 여기 있을 것 같아 다시 문을 열었네."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네루다는 마리오의 팔꿈치를 움켜쥐고 자전거를 대놓은 외등 쪽으로 단호하게 끌고 갔다.

"생각을 하려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는 말인가? 시인이 되고 싶으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혹시 존 웨인처럼 걷는 것과 껌 씹는 걸 동시에는 못하는거야?" (p.29)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언덕이라 불러도 좋을 산이 있다. 그러니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코스인데, 나는 주말이면 곧잘 그 산에 오르곤 한다. 산의 정상에 올라 '정상에 올랐다'고 하면, 그 때마다 식구들은 그게 무슨 산이냐며 퉁을 놓지만, 어쨌든 산에 오르락 내리락 산책을 하고나면 두 다리도 뻐근하니 운동을 한 기분이다. 식구들과 함께 산책을 할 때도 있지만 나는 혼자 다녀오는 걸 즐긴다. 걷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멈춰 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기도 한다. 아주 많이, 산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사실은 그 시간동안 생각하는 걸 즐긴다. 숙취를 해소하고 싶을 때도 산책을 택하지만 생각을 하고 싶을 때도 산책을 택한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두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을 걸으면서, 그 시간동안은 충분히 머릿속으로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생각을, 상상을 머릿속에서 마음껏 펼쳐나간다.

 

오늘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현빈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보냈다. 그가 너무 잘나서(!) 내가 힘겹겠지, 우리는 그저 소울메이트로만 지내야지 결코 바디메이트가 될 수는 없을것이다, 바디메이트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로 내가 지쳐버릴 것이고 그에게 이별을 통보하겠지. 그러나 이별한다한들 그를 생각하는 시간들, 그와의 추억을 곱씹는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소울메이트로 그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지만. 현빈과 소울메이트가 된다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가 나의 소울메이트란 사실을 비밀에 부칠 수도 있다. 끝내주는 의리로 우리의 소울을 안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단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거듭하다보니, 나는, 나란 사람은, 대상 보다는 그 대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고 웃고 술을 마시고 손을 잡고 안는 그 모든 행위들을 사랑하지만, 그 상대를 만나기 전에 그를 생각하는 시간, 그를 만나고 난 후에 그를 생각하는 그 시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혼자' 있으면서 한 대상에 대해, 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산드라 브라운의 소설에서 이런 부분에 아주 크게 공감을 한 것이다.

 

 

 

 

"방해해서 미안해요. 외출 준비하고 있는 줄은 알아요. 이 파일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더라면 금요일 밤에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월요일에는 심각한 인터뷰가 두 개나 있고, 그 중 하나는 주제가 낙태 문제거든요. 당신도 그게 얼마나 논쟁거리인지 잘 알죠? 그래서 꼭 필요한 관련 자료를 담은 파일을 ‥‥‥."

"사랑해, 브린."

브린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심지어는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 그가 자기 몸에서 흘러내린 물이 괴인 한가운데서 서 있는 모양이 우습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담긴 진실함에 넋이 나가, 그저 멀거니 서서 듣기만 했다.

"외출 준비하고 있던 거 아냐. 집에서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이었지. 매일 매 순간마다 그래 왔던 것처럼." (pp.115-116)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 이라는 그의 말이 백프로 이해가 됐다. 나 역시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상대를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혼자 있는 조용한 집에서라면 가만히 앉아 자, 이제 그를 생각해야지, 한 적 있었고,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남겨졌을 때 좀 있다 나가자 잠시만 그를 혼자서 가만히 생각하고,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 어디에서든 잘 적응하며 잘 지내고 살아남을 사람이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외로움과 그리움에의 상태에서도 잘 견뎌낼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할지,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견뎌내야 할 지를 점점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내 자신한테 아주 관심이 많고 내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강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줄 수 있다. 나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신경 쓰이게 하는 일들을 없도록,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들에게 돈을 주고 보석을 주고 고기를 사 주는게 아니라, 나로 인해 염려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게 하는 일들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나는 그걸 아주 잘 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고기를 사주는 건 좀.. 좋지만.

 

 

 

아, 그런데 내가 처음에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인용할 때는, 역시 생각은 걸으면서 하는게 짱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는데, 그렇게 해서 나 역시 '생각하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말로 끝맺고 싶었던 건데, 왜 결국 내가 강하다는 잘난척으로 끝맺게 된걸까.

 

어쨌든 지금은 일요일 밤 아홉시가 다 되어가고 있고, 나는 이제 곧 맥주를 마실 것이다. 아니면 우울하니까. 이 우울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맥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세탁기가 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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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3-10-2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아치 만나서 한 대화랑 비슷. 상대방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or 상대방을 사랑하는 내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 ㅎㅎ

다락방 2013-10-28 09:28   좋아요 0 | URL
난 나이들면서 확실히 깨달아요.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내가 이런 사람인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는데 말예요. ㅎㅎ

아무개 2013-10-2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첫사랑 이후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감정에 사랑에 빠지는거라고들 합디다....

2.정말 강한 여자는 외로워도 술 안마시는겁니다요....

3.저는 어제 소주 한병반 마셨어요........흠....

4.참 그리고 요새 "아름답다"라는 게
내가 아름답다 라고 '생각'을 하는건지
아름답다 라고 '느끼는'건지...
본능인지 교육인지...헷갈려요..

다락방 2013-10-28 09:36   좋아요 0 | URL
1. 저는 '사랑에 빠졌'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적이 되게 오래전인것 같아요. 사랑에 빠졌다는 건, 뭔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느껴져요 이제는.

2. 저는 외로워서 마시는 게 아니라 취하는 게 좋아서 마셔요. 하하하하하

3. 저는 어제 500짜리 맥주 세 캔..

4. 아, 저도 헷갈려요. 아름답다라는 게 교육인지 본능인지. 성형 미인들을 보면 확실히 교육인 것 같아요. 다 똑같잖아요. 쌍커풀 오똑한 코 같은거 말예요. 그렇지만 음악이나 그림 영화 소설들을 접하고 아름답다고 감동하는 건 본능적인 것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 2013-10-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현빈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보냈다."

저는 어제, 그리고 오늘, 내가 소지섭과 소울메이트라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난, 너무 세속적인가봐요. 자꾸 그의 어깨가, 튼튼하고 단단한 그의 어깨가, 어깨가 생각나요.
난 소지섭이랑 소울메이트는 어려울것 같고. 그 어깨만, 잠깐 빌리고 싶어요. 백만원이던가요? *^^*

"혼자 조용히 당신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참, 이라는 그의 말이 백프로 이해가 됐다. 나 역시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상대를 생각해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난 이 단락이 너무 좋아서요, 내가 다락방님 책을 가졌다면 좋았을걸, 이게 다락방님 책이라면 여기에 보라색 색연필로 밑줄을 쫙쫙 그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이 없으니 (책을 내세요~~) 마음에다가 밑줄을 쫙쫙 그어요~~~

다락방 2013-10-28 10:07   좋아요 0 | URL
오늘 누군가 식당에서 현빈을 봤다고 말을 해줘서 저 지금 멘붕이에요. 왜 그 식당에 내가 없었는가..회사 그만두고 그 식당에 취직할까..하고 말이지요. 아놔. 식당 주인 아저씨는 현빈인 줄 모르고 그냥 키크고 인물 훤한 청년으로 생각했다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미춰버리겠네요. ㅠㅠ

2013-10-28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3:54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9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0-29 10:33   좋아요 0 | URL
비밀....이야기니까요.... ( ")

2013-10-2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