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늄



펠리체 판티노에게




부엌에는 마리아가 생전 처음 보는 옷차림을 한, 키가 매우 큰 남자가 있었다. 그는 신문지로 만든 종이배를 머리에 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하얀 장롱에 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얀 페인트가 어떻게 그리 작은 통 속에 담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아는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남자는 가끔 파이프를 장롱 위에 올려놓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다가 휘파람을 멈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따금 쓰레기통 쪽으로 가서 침을 뱉은 뒤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쉽게 말해 그는 너무나 이상하고 낯선 행동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를 지켜보는 일은 정말 흥미로웠다. 장롱이 하얗게 칠해지자 그는 페인트 통과 바닥에 널려 있던 신문지들을 주워 모두 찬장 옆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찬장도 하얗게 칠하기 시작했다.

장롱이 너무나 윤이 나고 깨끗하고 하얘서 그걸 꼭 만져봐야 할 것 같았다. 마리아가 장롱에 다가가자 남자가 알아차리고 말했다. "만지지 마라, 만지면 안 된다." 마리아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왜요?" 그 질문에 남자가 대답했다. "만질 필요가 없으니까." 마리아는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왜 이렇게 하얀 거에요?" 무척 어려운 질문이라는 듯 남자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티타늄이니까."

마리아는 괴물이 등장하는 동화책을 읽을 때처럼 두려움으로 인한 전율이 기분 좋게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마리아는 주의 깊게 남자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 칼이 들려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 어디에도 칼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딘가에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제 뭘 자른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티타늄의 이탈리아어 발음 '티나니오'를 '티 탈리오'(너를 잘라버리겠다)로 잘못 알아들었다.) 이 질문에 남자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거였다. "네 혀를 잘라버리겠다."하지만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널 자른다는 게 아냐. 티타늄이라고."

결론적으로 그는 매우 힘이 센 남자가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인자하고 친절해 보였다. 마리아가 물었다.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남자가 대답했다. "펠리체." 그는 입에서 파이프를 빼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할 때면 파이프가 위 아래로 춤을 췄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남자와 장롱을 번갈아 쳐다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의 대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왜 이름이 펠리체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절대 이유를 물어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친구 알리체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이름이 알리체(알리체는 여자 이름이지만, 작은 멸치인 '앤초비'라는 뜻도 있다. 알리체와 펠리체의 발음이 비슷해서 이렇게 생각한 것.) 였다. 이 남자 같은 어른의 이름이 펠리체라는 게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차츰차츰 이 남자를 펠리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펠리체가 아닌 다른 그 어떤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칠을 한 장롱이 너무 하얘서 부엌에 있는 다른 물건들이 누렇고 더럽게 보일 정도였다. 마리아는 장롱 옆에 가까이 가봐서 안 될 것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만지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가 발끝으로 살금살금 장롱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갑자기 돌아보더니, 마리아와 두어 발자국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다. 주머니에서 하얀 백묵을 꺼내더니 마리아가 서 있는 바닥에 둥근 원을 그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 원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그러더니 성냥을 켜서 입술을 이상하게 비틀며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찬장을 칠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쪼그리고 앉아서 오랫동안 둥근 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원에 출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문질러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백묵 자국이 지워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남자가 이 방법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원은 분명 마법의 힘이 있었다. 마리아는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가끔씩 발을 뻗어 발끝으로 원을 건드려 보았고 거의 균형을 잃을 정도로 몸을 앞으로 내밀어 보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장롱이나 벽에 닿으려면 아직도 한 뼘 이상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찬장이, 의자들과 식탁이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하얘지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 뒤에야 남자는 붓과 작은 통을 내려놓고 머리에서 신문지 종이배를 벗었다. 모자를 벗자 다른 남자들과 똑같은 머리가 드러났다. 잠시 후 남자는 발코니로 나갔다. 마리아는 그가 뭔가를 뒤적이는 소리를 들었고 옆방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리아가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저씨!" 처음에는 조그맣게 그러다가 점점  크게 하지만 지나치게 크게 부르지는 않았다. 사실은 혹시 남자가 그 소리를 들을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가 부엌으로 돌아왔다. 마리아가 물었다. "아저씨 이제 나가도 돼요?" 남자는 마리아와 둥근 원을 내려다보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말들을 했다. 하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물론이지. 이제 나와도 돼." 마리아는 당황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자 남자가 걸레를 집어 마법을 풀기 위해 원을 깨끗이 지워주었다. 원이 사라지자 마리아는 일어서서 깡총깡총 뛰어 밖으로 나갔다. 마리아는 아주 행복했고 기분이 좋았다. (pp.240-244)





















이 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티타늄 편의 전문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이 티타늄편이 생각났고 나는 내일 출근길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장에서 꺼내어 침대 옆에 두었다. 출근준비를 하고 나가기 전, 이 책을 가방에 챙겨 넣었고, 티타늄편을 보기 위해 책을 펼치려다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어, 이건 뭐지? 포스트잇은 수소 편에 붙어 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수소편을 읽었다. 좋았다. 그리고 티타늄편. 짧은 이야기이고 지하철 안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마음은 놀랄 정도로 따뜻해졌다. 새삼 소중한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들이 읽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이 이야기를 읽고 그들도 나처럼 웃게 되면 좋을텐데! 여동생에게는 매일매일 조금씩 문자로 찍어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 수고하자, 손으로 전문을 치자, 생각했다. 그리고 알라딘에 올리자. 그러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글을 읽고 기분 좋아질 수 있다. 그리고 링크를 여동생에게 줘야지.




다 읽고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출근길, 늘 놀이터에서 운동하는 아저씨는 오늘도 한결같이 거기 계셨고, 요쿠르트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마찬가지로 거기 계셨다. 어제는 두 손녀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던 할머니가 오늘은 나오질 않으셨네. 매번 큰 길로 가다가 며칠전부터 골목으로 찔러가는데, 골목길을 싫어하는 나지만, 그 아침의 풍경이 좋아 그 뒤로 자꾸만 골목으로 간다. 오늘은 저 쪽에서 마주 걸어오던 여자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아이쿠. 웃으면 안되는데, 나는 이 모든 풍경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프리모 레비 덕이고, 티타늄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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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3-06-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었어요!

다락방 2013-06-27 15:32   좋아요 0 | URL
수소도 좋아요! 물론 티타늄이 으뜸이지만요. 다시 읽어도 기분 좋아요. 헤헷.

알케 2013-06-27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아시겠지만 프리모 레비 할배 책의 좋은 짝지는 샘 킨의 <사라진 스푼>이죠.
<주기율표>가 전기라면 <사라진 스푼>은 열전 ...
아포리즘으로 가득 찬 잠언집 대 살짝 드라이한 엔트리급 대중 과학서.

병독하면 시너지가..

다락방 2013-06-27 15:32   좋아요 0 | URL
아뇨, 알케님. 저 사라진 스푼 몰랐어요. 지금 이 댓글 읽고 검색했다가 보관함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런데 병독하면 시너지..란 말씀이시죠? 오케바리. 접수요!

Forgettable. 2013-06-2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사랑에 빠진 삘이 ㅋㅋ

다락방 2013-06-27 15:32   좋아요 0 | URL
네?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13-06-28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도 티타늄과 수소 편을 찾아서 볼래요. 다락방님 눈에 걸린 정겨운 아침풍경을 따라 저도 씽긋~~^^

다락방 2013-06-28 09:1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읽어보세요. 정말 좋아요. 주기율표를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흐흣 :)

레와 2013-06-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다. ♡


나에게 티탸늄이란 값비싼 카메라 바디의 소재, 등산 스틱의 소재,
단단하고 무거워 보이는 그 무엇이 티타늄이란 이름을 달고 있으면 놀랍도록 가볍지만 고가의 그 무엇이였는데..
이토록 예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니... ㅎㅎㅎ

이 책이 그렇게 좋단 말이죠!? 앙?! ㅋㅋㅋ


다락방 2013-06-28 13:45   좋아요 0 | URL
응 그렇지만 빨리 읽히지는 않는 책이에요. 천천히 읽어야 되는 책이죠. 어제 여동생도 이거 읽고 정말 좋다고 너무 예쁘다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남동생은..........하아- 나오지 말라고 원 그린게 뭐 그리 대수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다시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그렇게 받아들여야 되냐?" 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응, 이라고 했더니 "그럼 이젠 그렇게 받아들여보지 뭐." 라고 ..............................orz
 

금요일 밤에 조카가 왔다가 토요일 오후에 돌아갔다. 토요일 오전에는 외출을 하기로 했는데, 트레이닝복을 입었다가 방에 들어가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오자 조카는 제 엄마에게 자기도 옷을 갈아입겠다며 떼를 썼다. 이미 외출한다고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그랬다. 너 옷 입었잖아, 갈아 입었잖아,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를 보며 '이모처럼 예쁘게 입을거야' 라고 울상이다. 아..이 아이를 어쩌면 좋아. 결국 네가 입은 옷도 충분히 예쁘다, 정말 예쁘다 등등 여러가지로 설득해서 외출할 수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샌들을 신는다. 굽이 낮은건데도 그저 신어보고 싶었는가보다. 외출후에 돌아와 쉬고 오후에 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조카는 내 품에 안기더니 이모랑 살거야, 라며 집에 안 간다고 또 울상이다. 아, 미치겠다. 너무 사랑스러워. 결국 토요일 오후 조카는 돌아갔고, 조카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조카가 그립다. 보고싶다. 흑흑. ㅠㅠ 내게 이런 사랑은 처음이다. 자발적 구속과 돌아선 뒤의 그리움을 모조리 가져오는 이런 사랑. 아, 내게 이런 사랑은 조카야, 네가 처음이야. 나는 한 번도 이런 식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단다. 흑흑.

 

 

 

 

 

 

 

 

 

 

 

 

 

 

 

 

배우로 살아가는 여자들이 일과 사랑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던 '로잔나 아퀘트'는 배우들을 찾아다니며 질문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모르는 배우들이 나와 일과 가정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고 토로한다. 가진게 많은걸로 보였던 그녀들도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었다.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역시 그녀들도 하고 있었다.

 

-영화를 찍는다는 건 오랜 시간 아이 옆에 있지 못한다는 걸 뜻했고, 그렇게 일을 하기로 선택하면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를 선택하면 자신이 놓친 작품에 대해 후회가 들었다.

-좋은 감독이 좋은 상대 배우와의 촬영을 제안했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아빠는 '너는 언제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잖이. 이번에는 감독도 배우도 모두 좋은데 왜 거절을 하니. 아이 때문이라면 아이는 문제가 아니다 잘 클거다, 문제는 너다' 라고 말했다고 했다.

-언제나 작품을 하는걸로 선택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것이 늘 후회가 됐다. 그러나 내가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상황은 더 나빠졌을거다.

-44세에 영화를 찍었다면 십 년후에는 54세의 영화를 찍는것이 맞는거다. 계속해서 44세를 연기하는건 자연스럽지 못하다. (성형에 대해 말하면서)

-살아가면서 내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가 관찰하고 싶다. 그래서 성형을 할 생각이 없다.

-45세가 되었을 때야 아 내가 나이가 많고, 이제 나에게 남은건 쳐진 가슴과 불은 엉덩이 뿐이구나 했다. 엉덩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아무리 뛰어봤자 나는 계속 여기있을거야! 너가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어 라고.

-젊었을 때만 감독들이 좋아하는데 그럴 때 맡는 배역이라야 고작 '누군가의 애인' 이다. 나는 누군가의 애인이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고 사춘기소녀의 엄마 역할을 맡았을 때 나는 정말 괜찮았지만 주변에서 자꾸만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게 뭐가 어때서.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 속에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좋은 작품을 연기하고 싶다.

-일과 양육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너무나 힘들다.

 

그녀들의 모든 말들이 다 인상깊었지만, 샤론 스톤은 그 말들 사이에 '역할을 맡을 때 후배들의 입지를 생각한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샤론 스톤은 그녀들이 입지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단단한 역할을 맡고 싶어했다. 반면 기네스 팰트로에 대해서는 별로 좋진 않았다. 자신은 부모님들이 조언해줘서 형편 없는 영화에 출연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다고. 다른 배우가 '이 일을 하고 유지하는 이상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가 있다'고 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그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기네스 팰트로는 별로 좋아할 만한 여지가 없는 그런 배우였다.

 

어쨌든 일과 사랑(양육과 가정이라고 써도 된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가 보면 좋을 것 같다.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도. 그리고 앞으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도. 지구 반대편에서도, 여기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도, 나보다 훨씬 예쁘고 곱게 늙어가는 사람들도, 나보다 훨씬 돈이 많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위로가 됐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다들 이렇게.

 

 

 

 

 

 

 

 

 

 

 

 

 

 

 

 

어느날 페넬로페 크루즈가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죽어있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자신이 찔렀다고. 부엌에 있는 아빠가 자기를 덮치려 했다고, 이러지 말라고 했더니 강제로 덮치려고 했고 나는 네 친아빠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고. 그러지말라고 칼을 빼들었지만 너는 나를 찌르지 못할거라며 아빠가 덮치려길래 찔렀다고 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딸을 안아준다. 그가 한 짓은 몹쓸 짓이었다고.

 

아, 이제 저 모녀는 어쩌나 싶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딸에게 이 사람은 내가 죽인거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거다, 라고 말했고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감옥에 가는 것도 끔찍하지만 엄마가 가는 것도 끔찍하긴 마찬가지. 엄마가 살인으로 감옥에 가 있는 동안의 그 세월, 그 세월이 엄마에게도 딸에게도 지옥같을텐데, 대체 어째야 하나. 어째야 조금이라도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걸까. 결국 모녀는 시체를 처리한다. 아무도 그의 사망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막이 오르고 나서야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딸에게 '네 눈동자는 외할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나'라고 말을 할 때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그럴때마다 .........

 

 

 

와, 그런데 페넬로페 크루즈가 너무 예쁘다. 옷을 입은 그녀의 자태도 예쁘지만 그녀가 한 번도 빼지 않던 그 목걸이는 정말이지!!

 

 

 

 

 

 

 

 

 

 

 

 

 

 

 

 

 

 

 

 

목걸이가 예뻤다는 게 아니라 목걸이를 한 그녀가 예뻤다. 나는 목걸이를 잘 안하지만 하더라도 짧은 목걸이를 하지 저렇게 가슴까지 오는 목걸이를 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가슴까지 오는 긴 목걸이를 한 걸 봤을 때는 모두 옷 위로 흘러내렸었다. 그런데 저렇게 피부위에 긴 목걸이가 올려진 걸 보는데 너무나 매혹적인거다! 보면서 내내 나도 저런 목걸이 하나 사서 해볼까, 싶었지만, 저렇게 하는 게 아무나 다 예쁠것 같지는 않았다. 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예쁘고, 그녀의 피부가 예쁘고, 그녀의 몸매도 예뻐서 가능한거란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왼 쪽의 사진은 속옷만 입은건데, 정말 예쁘다. ㅠㅠ 하든 안하든 나도 목걸이를 하나 사야겠...........................( ")

 

 

 

가만있자, 저런 목걸이는 어디를 가야 있나.............

 

 

 

 

 

 

 

 

 

 

 

 

 

 

 

이 책 속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는 남자가 나온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어 밤에는 고깃집에서 불판 닦는 일을 한다. 역할대행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 그가 틈틈이 책을 읽는데 마르케스의 책이, 귄터 그라스의 책이, 르 클레지오의 책이 언급된다. 책이 많이 나오는 구나, 하면서 읽다가 이런 부분이 나오자 호기심이 일었다.

 

 

타락한 무희 타이스의 영혼을 구하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정작 자신은 신앙을 잃고 만 수도사처럼 나는 궤도를 이탈했다. (pp.101-102)

 

 

응? 뭐지? 책인가? 나는 무희 타이스를 넣고 검색해봤다. 그리고 '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란 책이란 걸 알게됐다.

 

 

 

 

 

 

 

 

 

 

 

 

 

 

 

수도사가 탕녀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정작 수도사 자신은 파멸에 이르는 소설이라는데, 이 책은 품절이고 책소개도 나와 있질 않다. 아...궁금하다. 품절이라니까 더 궁금해. 중고도 등록되어 있질 않다. 하아... 그런데 서울대학교출판부..라니. 나는 대체 이 책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읽고싶다. 흑흑흑.

 

 

 

 

 

 

 

 

 

 

 

 

 

 

 

 

 

무슨 책을 사서 줬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단편들중 한 편만 소개된 비매품을 받았다. 아까 문득 생각이 나 읽게 되었는데, 그 단 편 하나는 「깜짝 우동 」이었다. 이거 읽어보고 괜찮으면 이 책을 사야지, 생각하고 읽었는데, 그 단편 하나 읽는데만도 온갖 짜증이 몰려들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어떤 캐릭터가 나와도 잘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캐릭터는 좀처럼 수긍이 되질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인생의 목표나 목적이 다르다는게 알지만, 여자 일생의 아름다운 희망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남자 생겼다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가진 자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노처녀 동료에게 웃어주는 데 좀 어처구니가...

 

우동에 대해서라면 내가 술 취한 길에 돌아오며 혼자 먹는 우동에 대한 얘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확실히 그 쪽이 더 내취향이었다.

 

 

 

 

 

 

그나저나 벌써 일요일 밤 열 시를 지났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다. 내가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요일은 계속 지나가고 있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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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6-2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를 읽다보니, 영화도 있다는 걸 알았는데, 모드 역을 기네스 팰트로가 맡았었네요. 갑자기 생각나서. ㅋ
벌써 6월의 마지막 주네요.

다락방 2013-06-25 09:5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 읽고 영화 보고 싶어서 비디오 테입 사뒀었거든요. 비디오테입이니 아주 오래전이죠. 그런데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사오면서 비디오 테입을 죄다 버렸네요. 하핫. 저는 다시 한 번 읽고 영화를 봐도 봐야겠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읽는 소유는 분명 다르겠죠.

아, 시간 정말 빨라요, 드림아웃님.

단발머리 2013-06-2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다락방님이 읽고 싶어하는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이 있다면,
대강의 줄거리라도 살짝쿵 가르쳐 드릴텐데,
천만다행인지, 백만불행인지, 제가 읽은 책이 하나도 없네요.

얼른 수중에 넣어, 즐겁게 읽으시고, 페이퍼로 내용 좀 알려주시길.....T.T

다락방 2013-06-25 09:52   좋아요 0 | URL
수중에 넣을 가능성이 없어요, 단발머리님. 품절된 책을 무슨수로 ㅠㅠ
서울대학출판부는 또 뭐야 ㅠㅠ
저기에 전화 한 번 해볼까요, 서울대학 출판부? ㅠㅠ 하아- 전화해봐야겠다. 그래야겠어요.

Mephistopheles 2013-06-2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저 목걸이는 말이죠....

그만큼 가슴부분이 깊게 패인 옷을 입었을 때야 진정한 매력을 발산하는 악세사리인데....

일단 그런 옷을 먼저 구비하는게 순서일꺼고....

구비한다 손 치더라도.. 그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신감이 먼저 있어야 하고..

에또에또.....암튼 그래요...

다락방 2013-06-25 10: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사실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그겁니다. 저 옷을 사는것도 할 수 있고 입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옷을 입고 바깥에 나갈 수가 있느냐......................................................없죠. 그렇다면 바깥에 나갈 수도 없는데 이 모든걸 사는건 무슨 의미가 있느냐..............................없네요. 역시 사지 않고 영화 보며 감상만 해야하는 걸까요. 하아- 외국에라도 여행가게 되면 여행지에서 해봐야겠어요.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말이지요. 하하핫.

아무개 2013-06-24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그때 강신주의 신간도 같이 했어요. 그런데
강신주 책 초반부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우오옹 신기해 신기해~ 이런거 너무 좋아요. ^^

페넬로페 크루즈 참 매력적인거 같아요. 뭘 걸쳐 놓아도 저 몸에는 다 멋지게 보일듯.


다락방 2013-06-25 10:09   좋아요 0 | URL
오, 친구가 다 읽은 강신주 책을 제게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저는 이미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봤으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네요!! 신납니다! 유후~

그러게요. 저런 몸이라면 박스티를 입어도 예쁘겠죠. 전 박스티 입으면 정말 박스 같은데요. orz

아무개 2013-06-25 12:26   좋아요 0 | URL
깊게 언급되는건 아니고...자신이 정말로 사랑을 해봤던 사람은 베르테르의 괴뇌를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다. 뭐 그런 거에요......우야둥.....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여기에 나오거든요. 지금 읽고 있는데
이 사람 주변에 친구도 많겠지만 적도 무지무지 하게 많겠다....그러믄서 읽고 있습니다.

Mephistopheles 2013-06-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은 "고기"가 빠진 페이퍼...

다락방 2013-06-25 10: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고기를 안 먹은것도 아닌데 그러게요 고기 얘기가 빠졌네요. 제가 고기에 열 올리는 사람은 아니라는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증명됐네요. 하하하하하

BRINY 2013-06-2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크루즈랑 그 여동생은 정말 예뻐요. 그 둘이 망고 모델 했었을 때 카탈로그 꼬박꼬박 받아왔었는데.

다락방 2013-06-25 10:10   좋아요 0 | URL
여동생이 있는줄은 몰랐어요. 이 댓글 읽고 검색해봤더니 동생도 정말 에쁘네요! 망고 모델은..뭘까요. 망고 모델로 다시 검색해봐야겠어요. 불끈.

BRINY 2013-06-25 12:07   좋아요 0 | URL
MANGO라고, ZARA처럼 알려지진 않았지만, 스페인에서 온 그렇게 비싸지않은 패션브랜드가 있어요. 크루즈 자매에게 자알 어울리는 치렁치렁한 롱 원피스 그런 옷들이 많았어요.

관찰자 2013-06-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목걸이는 우선 가슴이 파여 있어야 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
가슴이. 가슴이.
그 풍만함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ㅠㅠ

저는
절대, 결코, 저런 핏으론 하지 못할 목걸이.ㅠㅠ
에잇!!!

다락방 2013-06-25 10:11   좋아요 0 | URL
저게 가슴 풍만하다고 다 소화할 수 있는것도 아닌지라..그러니까 저런 옷을 입고 어떻게 출근할 것이며 어떻게 외출하겠습니까, 관찰자님. 저는...저는....못해요. 흑흑.
물론 저런 핏이 나오지도 않지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감정적 자극을 좀처럼 제어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를 경계한다. 물론 경계하는 것은 그 외에도 많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보험, 퇴직 연금, 예금 계좌, 경품 쿠폰, 시계, 신문, 담보 대출, 설교, 기적의 신소재, 탈취제, 체크리스트, 시급제, 정당, 공공 도서관, 텔레비전, 여배우, 청년 상공회의소, 가장행렬, 진보, 천명론(옮긴이주:19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유행한 이론. 신의 명령을 받들어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만들어 온, 반짝이는 것 말고는 볼 게 없는 머리만 비대한 사회 구조. 난 이처럼 쓸쓸히 죽어 가는 구조화된 쓰레기 전체를 경계한다.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되는 야만적인 관행들도. (pp.17-18)




지금은 가벼운 연인들의 시대이다. 그리고 그들은 명백하게 속임수를 쓰고 있다. 섹스를 기분 좋은 사회적 친절이라 여기는, 사랑스러울 만큼 의식이 없는 토끼들이 들끓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운 문화다. 이런 이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만나 볼 수 있으며, 진저리가 날 만큼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들은 기이하리만치 무미건조하다. 스스로를 소중히 지키지 않는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껴주지 않는다. (pp.23-24)




내가 취한 독신남의 생활 방식은 너무 많은 규칙과 습관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사랑스러운 작은 손님이 며칠 머무는 것 정도야 괜찮다. 선상 파티를 벌이는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멀쩡한 숙녀가 배에 상주한다는 건 잠재적인 방해가 된다. (p.81)



















어제부터 시작한 책인데, 히융, 트래비스 맥기..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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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6-2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이슨, 트래비스...락방 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군요.

다락방 2013-06-21 16:05   좋아요 0 | URL
오, 자작나무님 트래비스 맥기 아세요?

Forgettable. 2013-06-2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끼의 의미가 이 와중에 궁금

다락방 2013-06-24 11:03   좋아요 0 | URL
우리가 아는 그런 토끼(응?)의 의미는 아닌듯. 걍 작고 약한 동물? ㅎㅎ

단발머리 2013-06-22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쩡한 아줌마가 배에 상주해도 방해가 되는지 알고 싶네요. ㅋㅎㅎㅎ호

다락방 2013-06-24 11:03   좋아요 0 | URL
됩니다, 단발머리님. 저랑 그 배에서 파티하고 놉시다. 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13-06-22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다락방 팟캐스트 듣다가 마태님이 다락방님을 불러서 반가웠어요 ~~~~~

다락방 2013-06-24 11:0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들으셨어요, 프레이야님? 부끄럽네요. 하하하하핫.
책다방 때문인지 최근에 방문객이 늘었어요. 하핫. 뭔가 이젠 좀 조심해야하나 싶어지기도 하고요. 하핫
 

어제. 출근길에 들고 왔던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조금 남아서, 점심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집에 가는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읽을 책이 없다!! 책이 있어도 안 읽는거랑 없어서 못 읽는 건 다르다. 회사에도 늘 책 몇 권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게 하나도 없담. 할 수 없다. 시간을 보니 열두시 조금 전. 나는 당일배송을 시키기로 한다. 그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으로 당일배송을 시키자. 오면 그 책을 퇴근길에 읽으면 되고 안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둘러봤다. 사고싶은 책이 많았지만 내게는 알사탕도 없고 적립금도 없다. 광고비로 고작 3천원이 들어온 게 전부. 그래, 책 안 질러. 딱 한 권만 사자, 했다가 읽고 싶었던 『여우의 전화 박스』를 중고로 사고, 이건 그림책이라 휘리릭 넘어가니, 소설책을 한 권 샀다. 세 시가 좀 넘은시간, 경비실에 내려가봤다. 혹시 택배 온 거 있나요? 라고. 경비아저씨는 있다며 박스를 내미셨다. 꺅. 왔다, 당일 배송이 왔어! 내가 알라딘 박스에서 꺼낸 소설책은 이것이었다.


















두근두근. 줄거리가 흥미진진해, 지하철안에서 읽는데 꺅, 너무 재미있는거다!!!!!!



덕 시티에서는 1인분 도넛양이 스무개다. 오래전에는 한 개 혹은 두 개였지만 이 도넛공장 사장이 그 후에 열 개로 만들어 버렸고, 지금은 스무 개로 만들어버렸다. 도시 전체가 뚱뚱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냥 뚱뚱한 게 아니라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당뇨를 앓고 있고, 공장에서 일하며 돈 대신 인슐린을 받을 정도이다. 포르노 클럽에서는 벌거벗은 거대한 여자들이 관객들 앞에서 생크림 케익을 퍼먹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역겨우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넛 공장의 사장은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밀가루를 만들었다. 도넛공장을 포함한 그의 기업은 도시 전체를 장악한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비만을 관리하기로 한다. 뚱뚱한 사람을 태우는 택시는 딱지를 떼게 되고, 매일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집을 노크해 허리 치수를 재고 체지방을 측정한다. 줄지 않을 경우 수용소로 보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후원하는 것도 도넛 공장 사장이다. 살 빼라고 종용하는 정부와,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밀가루를 만드는 재벌이 한 곳에 공존한다. 국민들은 갈팡질팡하며 아침마다 찾아오는 정부 요원들 때문에 무섭고, 그럴수록 일인분에 스무개나 되는 도넛을 먹어야 한다.......



아주 무서운 소설이다.



어제는 집에 가서 배가 너무 고파 김치에 밥을 먹을랬는데, 냉장고에 비엔나 소세지가 보이는 거다. 나는 마늘과 양파를 썰어 넣고 비엔나 소세지를 넣은뒤 살짝 볶아서 후추를 뿌린다. 근사한 요리가 완성됐다. 악. 이걸 이대로 밥 반찬으로 허비할 수 없지, 나는 냉큼 방에 들어가 옷장에 숨겨둔(응?)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꺼내온다. 이제 남은 와인은 이게 전부다. 밥 한 공기와  비엔나 소세지와 와인을 앞에 두고 엄마랑 결국 와인 한 병을 다 비워냈다. 하하하하하. 그러다가 엄마가 감자를 구웠는데 뜨끈뜨끈하다며 두 개를 꺼내서는 손으로 호호 불며 쪼개는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무척 맛있어 보인다. 나는 취하고 배부른데도 그걸 보고 또 참을 수가 없어서 냉장고를 열어 치즈를 꺼낸다. 그리고 치즈를 잘게 찢어서 뜨거운 감자 위에 올려두었다. 사르르~ 치즈가 녹아갈 때 감자를 먹었다. 맛있었다. 아아, 나란 인간은 어쩔 수가 없는걸까. 


그렇게 배가 부르자 갑자기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던 책 덕 시티가 생각나는거다.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체지방이 72프로 나가고 그러면 어떡하지, 이 책 속의 도널드처럼 200킬로가 넘어가면 어떡하지, 갑자기 나는 무서워진다. 안되겠다. 이대로 잘 순 없어. 나는 먼지가 뽀얗게 싸인 스텝퍼를 거실에 꺼내둔다. 그리고 컬투의 베란다쇼를 틀어두고 스텦퍼 위에 올라가 잇차 잇차 움직인다. 마침 베란다쇼의 주제는 다이어트....................





아직 저 책의 절반도 채 읽지 않았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다.





오늘 아침에는 그다지 색다른 반찬이 없었다. 열무김치와 총각김치(사실 집에서는 딸랑무라고 부른다), 갓김치와 김치찌게가 반찬의 전부였다. 어젯밤 잠을 잘 못주무셨다며 엄마는 밥은 니가 퍼먹어, 하고는 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는 커다란 그릇에 밥을 퍼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훗. 오늘 반찬은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 나는 그릇에 고추장을 넣고 열무김치를 넣고 슥슥 비빈다. 아, 너무 맛있어서 밥이 금세 없어졌다. 출근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밥만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 그러면 나는 덕 시티의 시민이 되겠지.. ㅠㅠ





도널드뿐 아니라 다른 근로자들도 임금으로 인슐린을 받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나오는 불량품들을 공짜로 먹었다. 당뇨병 환자들에겐 돈보다 인슐린이 훨씬 더 중요했다. 12세 이상 덕 시티 시민들 중 92퍼센트가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을 앓았다. 그래서 근로자들에게 돈 대신 인슐린을 지급하는 것은 존이 운영하는 기업의 인본주의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었다. 존은 생것으로 먹기보다 튀김옷을 입히든 그냥 튀기든 튀김을 먹어야 인슐린이 더 적게 들어간다고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기름으로 튀겨야 소화 시간이 길어져 혈당이 더 천천히 오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몇몇 저명한 영양학자들이 그의 이론에 이견을 밝혔지만) 그의 제품들이야말로 덕 시티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 즉 나라 전체를 땅 밑 암흑으로 끌어내리는 혈당 상승에 대항하는 무기였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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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6-1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

다락방 2013-06-19 13:34   좋아요 0 | URL
아..점심은 카레 돈까스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역시. 우후훗

아무개 2013-06-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두달간 꽤 지속적인 우울상태에 있었는데
엊그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두달만에 책을 사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네요.
저....쇼핑중독인가봐요 .......

전 어제 치킨에 소주로 달리고 아침엔 푹 익힌 삼양라면으로 해장하고 도착할 책들을 기다리며 느긋한 휴일을 보내고 있답니다. 우헤헤헤헤헤헤

다락방 2013-06-19 13:35   좋아요 0 | URL
전 정말 가진 게 너무 없어 책 사는 거 보류입니다...하앍-
이러면서 고기랑 술은 끊지를 못하네요. 툭하면 먹어대니 이거야 원..orz

아니 그나저나 오늘 도착할 책들은 어떤것들입니까? 어려운 책 산거에요, 또?

아무개 2013-06-19 22:14   좋아요 0 | URL

아하하 어려운 책 안 샀어요. 이미 충분히 많이 쌓여 있습니다.ㅠ..ㅠ

제주도 여행에 관한 책 세권(제가 요즘 제주도 가고 싶은 생각에 빠져있어서요)
오직 독서뿐, 최후의 유혹, 공산당 선언. 이렇게 6권 입니당 ^^

blanca 2013-06-1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건 너무 웃기잖아요. 그리고 ㅋㅋ 또 저에게 음식의 영감을 ㅋㅋ 오늘 저녁에는 감자를 구워 치즈를 얹어 반찬 하나를 추가하겠어요. 저는 그래도 요새 밥공기에 밥을 적게 담는 것만으로 더 이상의 체중 증가를 막고 있답니다. 효과가 있네요.

다락방 2013-06-19 13:36   좋아요 0 | URL
전 이 책 때문에 영감을 얻어 이 세상에 엘레베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듯 살자, 라고 마음먹었는데 오늘만 해도 툭하면 타버리고 말았네요. 아놔..작심삼초......orz

마노아 2013-06-1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 급식은 새싹 비빔밥이었어요. 참치를 얹은~ 아, 정말 맛나게 먹었어요. 맛탕도 있었는데 1인당 4개로 정해져 있었어요. 정직하게 4개 들고 왔는데 다들 듬뿍 떠오는 거예요. 더 떠올 것인가 고민하다가 먹지 않았어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살짝 아쉬워요. 후식으로 요구르트도 나왔어요. 전반적으로 아주 맛있었어요. 근데 급식이 날마다 맛있어요. 새학기 들어 살이 더 찐 게 아무래도 점심 급식 때문 같아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여기 샘들이 다 그렇게 말해요. ㅎㅎㅎ

레와 2013-06-20 09:29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급식짱 좋네요!!!! 부럽다.............ㅡ.ㅜ

마노아 2013-06-20 15:56   좋아요 0 | URL
급반전을 해서 오늘 급식은 좀 별로였어요. 부실하게 먹어서 지금 많이 배고파요.ㅜ.ㅜ
그치만 내일은 부대찌개에 치킨이에요. 오징어는 안 먹으니까 필요 없고, 감자전도 들어 있네요.
내일 급식 기다리고 있어요.^^ㅎㅎㅎ

다락방 2013-06-21 09:01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이 맛나게 먹었다니 다행이지만, 저는 새싹이 싫어요. 새싹 넣으면 샐러드도 비빔밥도 별로 맛이 없더라고요. 새싹이 아닌 야채들이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급식이 날마다 맛있다니, 진짜 다행이네요. 대부분의 급식 먹는 사람들은 급식 맛없다고 불평하잖아요. ㅎㅎ

그런데 부대찌개에 치킨..이라니. 오늘 점심이 기대됩니다. 멋져요. 인증샷이라도 올려주삼, 마노아님!!

그린브라운 2013-06-1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엄마가 해주신 밥먹고싶네요 전 유부녀다락방 ^^;; 맨날 눈팅만 하다 글 한번 남겨봅니다

다락방 2013-06-21 09: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한테 처음 남기시는 거 아니신데요. 그런데 유부녀신줄은 몰랐어요. ㅎㅎ
결혼한 제 여동생도 늘 저한테 그렇게 말해요.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살아서 정말 좋겠다고요. 전 결혼하지 말까봐요.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6-20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 덕시티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요...

다락방 2013-06-21 09:03   좋아요 0 | URL
음..그것도 방법이군요. 음......저 진짜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이어트 할겁니다. 흥!!

Mephistopheles 2013-06-21 09:29   좋아요 0 | URL
이번주인걸로 기억하는데...기억하는데..기억하는데.......데...데..데에데데데데

다락방 2013-06-21 11:08   좋아요 0 | URL
네? ( ")

(" )( ")(" )( ")

유부만두 2013-06-2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오늘 도서전 가서 이 책 샀어요!

다락방 2013-06-21 09:04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요, 유부만두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관찰자 2013-06-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도넛양이 나오면서부터 '흠. 이거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사려고 했는데,
왠걸. 이 책. 제 책꽂이에 이미 꽂혀있어요.-_-a

전 그저 이제 그냥 읽기만 하면 되겠네요.(근데, 왜 몰랐지?)

6월은 내내 카라마조프의 삼형제 이야기를 읽느라 다 갔네요.
아.
고전은 한번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면 또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게 두려워(내용을 잘 까먹는 1인)
결국은 한번 잡으면 죽이 되는 밥이 되는 끝까지 읽고는 하는데,
삼형제 이야기가 이렇게나 길어서야 원.
정말 힘들게 다 읽고 나니, 이제는 좀 가벼운 책을 읽었으면 좋겠네요.(실제로 무게도 가벼운.)

그런면에서 이 책은 알맞은 책 같아 보여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3-06-24 11:06   좋아요 0 | URL
오오 관찰자님, 이 책을 가지고 계신다고요?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이 알지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관찰자님은 이미 가지고 계시군요! ㅎㅎ
지금쯤이면 시작하셨을까요, 어쩌면 다 읽으셨을까요?
재미있게 그리고 무섭게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무척 흥미롭지 않던가요. 저는 푹 빠져서 읽었었어요. 도스트예프스키는 천재인가, 막 감탄하면서요.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관찰자 2013-06-24 13:16   좋아요 0 | URL
저는 책 앞에 구매한 날짜를 써 두는데,
심지어는 이 책 2012년 12월에 구매한 거였어요.ㅋㅋ
아무튼 다락방님 덕분에 다른 책들 제껴두고, 이책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근데,
재밌어요.ㅠㅠ

섬뜩한데도, 읽으면서 왜 식욕이 돋는 걸까요.;;;

이번 여름은 힘들어서 포기했던 각종 책들(다락방님은 그런 책, 뭐 있는지 갑자기 궁금..)을
다 꺼내서 책꽂이 앞으로 전면배치 했네요.

인고의 여름이 될 것 같아요.ㅜㅜ

다락방 2013-06-26 09:43   좋아요 0 | URL
저도 포기하는 책들이 많긴 많은데, 힘들어서 포기한다기 보다는 잘 안읽혀서 포기하게 돼요. 문장이 몇 번읽어도 뭔 뜻인지 모르겠다거나 아무리 아무리 읽어도 좀처럼 재미있질 못하다든가 하면요.

아,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의 내용이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아 읽다 덮어뒀네요. 아, 이건 뭔가 정신 멀쩡하고 컨디션 좋을 때 다시 시도하자, 하고 말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이 책을 엄청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럼 이 책 안에 분명 뭔가 있을텐데, 그러니 다시 꼭 읽어보자, 하고 말이지요. 하핫.
 




브랜든의 여동생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 오빠의 직장 상사와 술을 마시고 섹스를 했고 그녀는 그에게 매일 연락한다.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는 일이 없고, 그녀의 음성 메세지에 대답해준 적이 없다. 그녀에게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부남이고 아이들도 있다. 하룻밤을 그녀와 보내고 난 뒤에는 다시 자신의 직장과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오빠가 보기에 여동생은 한심하기만 하다. 자신을 원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매달려 징징대는 꼴이라니. 그러면서 여동생에게 정신차리고 살라고 말한다. 나는 집이 있고 직장이 있지만 네게는 뭐가 있냐고. 나는 내 앞가림 하며 살고 있지만 너는 대체 사는게 그게 뭐냐고.



안정적인 직장과 집을 가지고 있지만 브랜든은 섹스 중독이다. 회사의 노트북엔 포르노를 다운받아 놓았고 집에 돌아가면 화상채팅으로 섹스를 한다. 여자를 불러 돈을 주고 섹스를 하고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길에서도 섹스를 한다. 여자를 부르지 않을 때는 화장실에 가 자위행위를 하는데, 회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건 그만의 은밀한 중독, 누구도 알지 못하는 중독이다. 술집에서 여자들에게 지저분하게 접근하는 건 그가 아니라 그의 직장 상사다. 그는 외려 점잖다. 말도 별로 없고 간혹 살짝 미소 짓는게 전부. 


그런 그가 평범한 데이트를 하고자 시도하지만 그 평범한 데이트에서 오는 성관계에서는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만다. 


어떤 상처가 그들에게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여동생 말대로,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 받은 사람들이다. 그 상처를 극복해내기 보다는 여전히 그걸로 인해 앓고 있는 사람들. 여자는 쉽게 사랑에 빠짐으로써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고, 남자는 섹스중독으로 매일을 견뎌낸다. 남자가 여자 둘을 불러 그들과 한 공간에서 격렬하게 섹스를 할 때 그의 눈빛은 한없이 공허하다. 세상에 저 눈동자보다 더 공허한 것이 있을까, 뚫어져라 정면을 바라보는, 관객인 나와 눈을 마주치는 그의 공허한 눈동자는 어쩐지 울고 싶게 만든다. 그 눈빛이 내내 기억나고 그래서 이 영화가 내내 기억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앞으로는.



영화속에서 그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한 밤에 조깅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아, 그 장면이 완전 멋있어서 반해버렸다. 멋진 남자는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멋지고 뛰는 모습도 근사하구나. 아니, 뛰어서 더 근사한지도. 사실은 19금스러운 얘기를 하나 덧붙이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영화속에서 그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캐리 멀리건의 헤어스타일이 너무 예뻐서 아, 나도 당장 미용실가서 저렇게 잘라달라고 할까, 라고 이백번은 넘게 생각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효리처럼 앞머리 잘라달라고 했다가 절망한 기억이 떠올라, 이 역시 참기로 한다.





























영화속에서 존 트라볼타는 전(前)영문과 교수 '바비'로 나온다. 그의 방엔 책이 가득하고, 그의 조교였다가 지금은 그와 함께 살며 그와 함께 알콜중독인 '로슨'은 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바비가 대화도중 툭, 하나의 문장을 던지면 로슨은 그게 누구의 말인지 알아맞힌다. 이 영화속에는 그가 영문과 교수였던 만큼 대문호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헤밍웨이와 프로스트..밖에 지금 내가 기억을 못하겠는데;; 여튼 그렇다.


남자친구와 함께 살던 십대소녀인 퍼시(스칼렛 요한슨)는, 엄마가 돌아가셨단 말에 엄마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엄마의 유언에 따라 바비, 로슨과 함께 살아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그녀가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바비와 로슨은 돕는다. 퍼시는 엄마가 늘 가지고 다녔다는 책을 읽는다. 빵을 먹으며 또 샌드위치를 먹으며 앉은 자리에서 그 책 한 권을 다 읽어낸다. 그 책은 바비가 엄마에게 준 책인데, 다 읽고 그에게 왜 우리 엄마에게 이 책을 준 거냐고 묻는다. 그 책은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이었다.



 
















그는 이 책속에는 패배자들이 많이 나와서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게 있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메세지를 적은 책을 선물했을 때, 그 책 속에는 선물한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이 들어있었을 테니, 나는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속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엄청 먹어댄다. 내가 기겁한 장면은 그녀가 티븨를 보면서 간식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맙소사, 피넛버터의 뚜껑을 열고 거기에 숟가락을 푹 담궈 잔뜩 묻힌 뒤에 그 숟가락을 그대로 알초콜렛(아마도 엠엔엠즈 같은)봉지 속에 또 푹 담그는 거다. 그러면 그 숟가락에 초콜렛이 잔뜩 묻혀 나온다. 스칼렛 요한슨은 티븨를 보며 그 숟가락을 빨아 먹는거다. 와- 대단하다. 팝콘도 샌드위치도 빵도 엄청 먹어대는데, 그녀가 먹는 건 거의 나랑 맞짱 뜨는데, 그녀는 왜 스칼렛 요한슨이고 나는 왜 다락방인가...................................


그녀가 빵을 먹으며 책을 읽는 장면에서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빵을 사오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새벽 한시반이었고, 하아- 나는 참으며 괴로워했다. 흑흑. 




토요일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전날 포장해갔던 치킨을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사 둔 와인도 있으니 맥주만 조금 더 사가서 치킨을 따뜻하게 데워서는 와인과 함께 먹자, 고 생각했던 거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지하철안에서 남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동생은 토요일이면 거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가니 오늘도 아마 나갔겠지, 싶어 어디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집이란다. 오, 아직 안나갔네, 했더니 이따 밤에 약속이 있단다. 그렇구나 나는 한 시간 후 집에 도착할 예정이다, 라고 했는데 남동생으로부터 이런 문자가 날아들었다.



내가치킨먹어치웠다

상할까봐 ㅋ



하아- 이게 뭐야. 아 너무 허무해.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거 와인하고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놈의 돼지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후에 덧붙였다.


치킨 생각하며 지하철 탔는데

돼지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허무했다, 너무. 완전 허무해. 그 때의 내 눈빛을 누가 봤다면, 영화 [셰임]의 브랜든 눈빛보다 더 공허하다고 말했을거다. 


결국 오리고기와 스파게티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셨다. 맥주 까지 마시고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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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6-1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몇년전에 읽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
한번 들춰보면 금방 생각날텐데, 알라딘 중고매장에 팔아버렸네요...힝....
두달동안 책 한권도 안 읽었어요. 니체를 읽다가 졸다가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 읽다가 졸다가 그렇게 두달 넘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다락방 2013-06-17 11:18   좋아요 1 | URL
단행본은 품절이고 슬픈 카페의 노래와 합쳐진 것만 있네요. 중고알림등록 해놨어요.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그나저나 니체, 피터 싱어..라뇨. 아무개님.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살고 계신겁니까.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 거에요!!

2013-06-17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3-06-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손에 꼽는 책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ㅠㅠ 마음이 많이 아파요, 근데.

다락방 2013-06-17 11:19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슬픈 카페의 노래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스칼렛 요한슨이 원서로 읽는 거 보니까 어찌나 근사하던지..하핫;;

Mephistopheles 2013-06-1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칼렛 요한슨과 다락방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그녀는 빵을 먹으면 피넛버터를 찍어 먹어며, 다음 컷을 생각하지만...

다락방님은 치킨을 먹으며, 순대국을 먹으며, 다음 먹을 것을 생각하는 차이일껍니다.

다락방 2013-06-17 11:20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출근하면서 점심 뭐 먹을까 계속 생각했는데 지금 유력한 후보는 순대국과 짬뽕 입니다. 그런데 짬뽕은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져요..제육볶음 먹을까...

역시 스칼렛 요한슨과 저는 다를 수 밖에 없겠네요. ㅠㅠ

Mephistopheles 2013-06-17 11:51   좋아요 0 | URL
짬뽕을 먹고 공기밥을 말아 먹으.....아..다이어트..!

다락방 2013-06-17 11:52   좋아요 0 | URL
악!!!!!!!!!!!!!저 오늘부터 다이어트였나요? 오 마이 갓!!

레와 2013-06-1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머리 금발로 염색할까??


다락방 2013-06-17 11:52   좋아요 0 | URL
나도 저렇게 자를까? 너무 자르고 싶어 ㅠㅠ

레와 2013-06-17 14:07   좋아요 0 | URL
댕강 자르고 나니, 좀 긴 단발머리 파마가 너무너무너무 하고 싶고..

다락방 2013-06-17 14:18   좋아요 0 | URL
난 긴머리 예쁜 여자들 보고 긴 머리 해야지 참고 길러야지 했는데 캐리 멀리건 보는 순간 뒤엎어짐. 잘라버리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3-06-17 14:30   좋아요 0 | URL
인증삿 플리즈~~

다락방 2013-06-17 14:34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님, 일단 얼굴도 좀 바꾼 다음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dreamout 2013-06-17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고 전에 끄적거렸던 짧은 메모를 보니, 지향성. 이라는 말을 썼더군요. 제가.
읽고나서 외롭고 쓸쓸했던 기억은 바로 떠올랐는데, 지향성. 이라는 낱말을 보니 더 기억이 생생해지네요.
사냥꾼 말이예요.. 늘 사냥감을 지향할 수 밖에 없으니까..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요.

다락방 2013-06-18 11:04   좋아요 0 | URL
저도 반드시 읽어보겠어요, 드림아웃님.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까페의 노래]에서도 곱추와 덩치 큰 여자와 잘생긴 젊은이가 나와서 사랑이 엇갈리는데,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은 대체 어떤 외로움을 보여줄까요. 저도 꼭 읽어볼래요.

blanca 2013-06-1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위대한 개츠비 보며 생각했어요. 바로 저 머리다! 캐리 멀리건 머리. 그러나...저도 예전에 동료가 하도 꼬드겨 앞머리 만들었다 멘붕 온 전력이 있어 접었지요. 하지만 지금 엄청 길어 당고머리하면 너무 크게 되는 이 지긋지긋한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를 예정입니다. 기대되요^^;; 다락방님 남동생 제 남동생이랑 하는 짓이 너무 닮았어요. 갸도 돼지이거든요 ㅋㅋ 장점은 먹을 것만 사주면 모든 심부름을 시킬 수 있다는^6^;;

다락방 2013-06-18 11:06   좋아요 0 | URL
당고머리하면 너무 크게 될 정도로 엄청 긴 머리를 가지고 계시군요, 블랑카님! 저는 머리가 길고 예쁘게 풀어헤친 여자들을 보면 반드시 머리를 길릴것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캐리 멀리건을 보니 정말 저 머리가 진리야 싶어져요. 그런데 과연, 저처럼 얼굴이 큰 사람에게도 저 머리가 어울릴까 생각하니....자신이 없네요. 미용실 가서 원장님께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 얼굴 사이즈에도 이 헤어스타일이 어울릴까요? 라고 물어야겠어요. 하아-

ㅎㅎ 저는 어제 남동생이 원하는 순대를 사다주고 사과를 깎아오라 시켰습니다. 남동생은 제가 먹기 좋게 사과를 깍아서 잘라 접시에 담아주었죠. 신나게 먹었어요. 히히.

라로 2013-06-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셰임 봤는데 좀 충격적인 영화였다고 기억해요,,,주인공인 브랜든역의 마이클 패스벤더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에요,,다른 사람은 가이 피어스라고,,,암튼 패스벤더 연기력이 엄청 좋아요!! 거기서 나온 캐리 멀리건도 연기 정말 잘했어요,,,,전 그 영화를 보면서 남매의 관계가 불행하다고 느꼈어요,,어떤 상처인지 확실하게 나오지 않아서 더 궁금,,,,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은 남편이 가장 예뻐라 하는 여배우,,섹시하다나요,,ㅎㅎㅎㅎㅎ다락방님의 페이퍼를 읽기전 남편과 배우들에 대한 얘기를 했었거든요,,,어쩐지 데쟈부 같은,,,,ㅎㅎㅎ글고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어보고 싶다며 저도 보관함에,,,그런데 중고 알림 신청은 어떻게 하는거에요????( ")

다락방 2013-06-18 15:51   좋아요 0 | URL
되게 공허하고 허무한 영화였어요. 공허함 때문에 울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영화요. 아, 저 배우 잉름이 마이클 패스벤더에요? 저도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트레이닝복 입고 한 밤에 조깅할 때, 와 정말 멋지다, 하고 감탄했어요. 마지막에 쓰리썸하는 그 공허한 눈빛을 보면서 저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더라고요. 저 행위에 저런 눈빛이 동시에 이루어지다니, 하면서요.

중고알림 신청은요 일단 원하는 책을 클릭하시고 장바구니와 보관함담기 옆에 우측으로 보시면 알라딘에 팔기 신청 뭐 이런 문구가뜰 거에요. 그 밑에 보시면 [중고알림등록신청] 이 있어요. 그거 누르시면 중고 알림을 몇 번 받을건지 이런거 선택해서 등록할 수 있어요. 전 이거 알고나서 좋다고 신났는데 흑흑, 이러니까 알림 올 때마다 누가 사갈까봐 자꾸 잽싸게 주문을 하는 부작용이 생겨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