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선택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고 그렇게 크고 작은 선택들을 마주치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와있는 것이다. 어떤 선택은 쉬웠을 것이고 어떤 선택은 다소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가장 힘든' 선택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온다.


로빈에게는 일과 사랑이 그랬다. 이 두가지가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일은 현재 그녀의 삶을 유지해줄 수 있도록 그녀가 매달려온 모든 것이고, 사랑은, 잃은 줄 알았는데, 끝난 줄 알았는데, 5년만에 다시 돌아온 바로 이 남자, 애덤이 다시 불러 일으켰다. 물론, 일과 사랑을 두 가지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을 고른다면 이 선택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 놓여있지 않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고민없이, 무리없이 앞으로 지금처럼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하필, 그녀는 애덤을 사랑했다. 5년전에 사랑했던 그를, 5년만에 다시 만나, 여전히, 사랑한다. 사랑은 끝났다고 내뱉어봐도 다 소용없다. 하필이면, 그다. 하필이면 애덤이다. 자신의 일, 바로 그것의 대척점에 놓여있는 사람. 



"한 가지 설명할게요. 당신은 나를 두고 떠났어요. 알겠어요? 나를 내팽개치고 떠났다고요. 내게 남겨진 건 일밖에 없었어요. 지난 5년 동안 내가 가진 건 이 직장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여자 경찰관 가운데 형사가 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세 명이에요. 불과 세 명밖에 안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경찰서 역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형사예요. 당신은 고향에 돌아온 지 불과 며칠밖에 안 됐어요. 알겠어요? 당신이 나를 떠났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갖추게 됐어요. 이건 내 인생이에요.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어요. 당신은 내가 이 일을 그만두길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선 안돼요.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고서 그러면 곤란하죠." (p.246-247)



로빈에게 놓인 '일'의 자리에 다른 것을 놓아도 마찬가지이다. 로빈에겐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일은 아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하고 나를 지금의 나로 있게 한 것, 그것과 사랑이 함께 갈 수 없다면, 나 역시 로빈처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은 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가장 최선이겠지만, 사람의 앞에 언제나 최선의 것만 놓이는 것은 아니니까. 아니, 최선은 굉장히 드물게 놓이는 것이니까. 그럴 때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반드시 한쪽을 '아프게' 포기하는 선택일 것이고, 그 아픔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 때문에 그 선택은 '용기 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간혹 돌멩이 하나로 새 두 마리를 때려잡을 수도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는 매우 작아 보였다.

"그럴 때도 있겠지. 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영원히 가질 수는 없어. 얼마 안 있어 당신은 무엇이 자신에게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해야 할 거야. 나와 일 중에서 말이야."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내가 말했죠? 당신은 나를 떠났어요. 나는 5년 동안이나 이 일에만 매달렸어요. 난 알아요. 분명 언젠가 선택을 해야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빈, 지겨워." (p.250-251)

   

그리고,


로빈은 선택을 했다. 그녀가 선택한 건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겨우 여기까지가 절반이다. 물론 이 책의 줄거리가 로빈의 사랑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용기 있게 선택을 하고, 힘들게 고민하며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녀는 선택을 '해야'했고 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었다. 



"애덤, 나는 그동안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길가에서 어개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큰 갈등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 로빈에게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경찰직,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그 둘을 모두 지키려고 그동안 노력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간신히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시간이 닥쳐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선택을 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나였다.

그녀는 추운 곳에 벌거벗긴 채 내팽개쳐져 있었다. 나는 로빈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도 거기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렸다. 그녀는 마치 나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듯이 내 품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p.268)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책장을 넘기며 두고두고 곱씹어봐도 쉽게 결론이 내려지질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포기한 쪽에 대해서 크게 후회할 것이다. 내가 여태 나를 지켜온 것을 포기하느냐, 혹은 이쪽의 가치에 더 매달리느냐. 어쩌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사치일런지도 모르겠다. 만약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만약 내가 로빈이라면, 나는 일을 선택할까 애덤을 선택할까. 나는, 그녀처럼 애덤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 애덤이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그런 사람이라면, 그를 놓친 걸 평생 후회하겠지. 그렇지만...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해준 게, 앞으로의 나를 버텨줄 것이 바로 그간 내가 매진해온 일, 이라면, 역시 애덤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안전'하지 않은가.



존 하트는 역시 존 하트. 이 책 재미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 읽으면서 으윽, 재미있다 다 읽고 잘까 싶었지만, 간신히 절반만 읽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잠을 자야 하니까... 그래서 이 책 정가제 시행되기 전에 어서들 사라며 재촉하고 싶었는데 오늘 보니까 품절..이다. 


품절

품절


.

.

.

절.


품절이라니. 로빈의 선택이 어떠한 방향으로 애덤과 로빈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었는지 이제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겠구나....아쉬워라. 


로빈, 행복하게 살아줘요, 부디.
















오늘은 조카를 주기 위해 백희나의 달력을 선택하고 책을 구매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언젠가 사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20프로 할인이더라. 그래, 정가제전에 넣자.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1,2권이 모두 반값이다. 마찬가지로 내내 보관함에 있던 책이다. 이때 넣자. 《스웨덴 라이프》는 언젠가 스웨덴에 이민갈거라(뻥입니다) 궁금해서 넣어둔 책이었는데 지금 30프로 할인이니 이번 장바구니에 포함되었다. 《속죄》는 사실 몇 년전에 읽고 중고샵에 팔았는데 요즘 왜이렇게 다시 읽고 싶어지는지...정말 다시 읽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다시 읽고 싶어진 책이니 30프로 할인일 때 사두자, 싶어 넣었다. 《핏빛 자오선》은 '코맥 매카시' 니까 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코맥 매카시는 내가 다 가질 거니까 20프로 할인일 때 넣어두자. 《개더링》은 지금 현재 4천원이라 장바구니에. 이만큼만 결제하려고 했었는데, 크, 신간중에 저 《모나코》를 너무 읽고 싶은거다. 왜냐하면, 몇 주전에 경향신문에서 읽은 책 소개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책 띠지에 실린 작가가 훈남...인듯해서 사고 싶어졌다. 작가 '김기창'은 1978년생 마산 출신. 이제는 작가로 데뷔하고, 상을 받고 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나보다 어리구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뤄낸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질투이기도 할 것이고. 여튼 훈남에 대한 호기심, 질투와 시기 등등의 복잡한 마음으로 선택한 책이 되시겠다.




일하기 싫은 마음이야 어제와 같고 지난달과 같고 십년 전과 같은데, 오늘은 특히나 사무실을 탈출하고 싶다.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서 그게 어디든 가서 앉고 싶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따뜻한 커피 향이 가득한 까페여도 좋겠고, 조금은 춥지만 바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바깥의 벤치여도 좋겠다. 아무래도 나, 가을 타는가 보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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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1-1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력을 선택하고 책을 구매했다`ㅋㅋㅋ 5만원짜리 달력에 책이 많이도 딸려오네요? 존 하트는 <라스트 차일드>의 그 존 하트입니까? 그 책 다락방 님 호평 보고 사 두었는데. 희희 비록 <다운 리버>는 없지만 아직 읽지 않은 <라스트 차일드>가 곁에 있어 든든합니다. 어차피 품절이니 <다운 리버> 결말도 나중에 알려주시면 좋겠어요.ㅎ 예보에 없던 비가 마구 쏟아져 너무 좋아 여기 왔습니담. 좋은 밤+잠+꿈- 다락방 님(+건배).

다락방 2014-11-12 14:18   좋아요 0 | URL
책이 벌써 왔습니다, 에르고숨님. 아아 저는 어쩌면 좋아요. 자, 이제 새로운 책을 사야 합니다. 아직 받아야 할 달력이 남아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이 존 하트가 그 존 하트 입니다. 후훗. 에르고숨님 취향에도 맞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에르고숨님과는 취향이 비슷한듯 하면서 또 갈리기도 하니까요. 물론 모두의 취향이란 것이 늘 그렇지만 말입니다.
어제는 술 마시느라 책을 한 장도 못 읽었어요, 에르고숨님. 결말은 나중에 네, 어딘가에든 알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비가 마구 쏟아질 때 깨어 계셨군요! 저는 아마 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핫. 자, 점심 건배!!

2014-11-12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3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4-11-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책읽는 명화 달력도 엄청 예뻐욧 >.< 책베개에 이어 달력 때문에 책을 사재기하는 요즘이에요. ㅠ_ㅠ; 다운리버의 결말은 제게도 좀 알려주세욤. 품절이라니. ㅠ_ㅠ;

다락방 2014-11-14 09:34   좋아요 0 | URL
책읽는 명화달력도 곧 받을겁니다! 엄청 예쁠 것 같아요!! 다운 리버의 결말은 아예 스포로다가 구매자100자평 썼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난 나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에는 여동생 집에 다녀왔다. 여동생이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먹고 또 여동생이 만들어준 닭볶음탕을 맛있게 먹고 여동생과 함께 커피를 마시러 여동생이 추천하는 까페로 향했다. 가끔 우리에겐 오롯이 우리 둘만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대화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조카에 대한 것 부모님에 대한 것 친구들에 대한 것 그리고 오로지 우리 자신에 대한 소소한 일상들로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웃거나 함께 빡쳐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또 기분이 좋은지를 얘기했었는데 이번에 만나서는 내가 우울했던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여동생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텔레비젼 본 얘기를 해줬다. 가족이 함께 모여 텔레비젼을 보는데 텔레비젼에서 출산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낳는 장면이 보여지고 산모가 힘을 주고 또 아이의 머리가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장면이었는데, 자연분만을 했던 동생은 그 장면에서 자신이 아이 낳을 때 아팠던 것을 비롯해 그 출산 당시의 경험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그러다 혹시 이사람도 그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엪에서 텔레비젼을 보는 신랑을 보니 신랑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여동생의 출산에 제부는 함께 들어가 아이를 받고 탯줄을 잘랐던 경험이 있던터라 출산의 경험, 고통을 눈 앞에서 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 얘는 자신의 가장 특별한 경험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고 그래서 공유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결혼인거구나, 하는. 그렇다면 이들은 함께하는 추억이 생기는 거구나. 출산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고서도 이런 일은 무수히 많이 쌓이겠지.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함께 늙어간다는 건 이렇게 공유하는 추억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이런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살고 싶어하고 또 결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러자 이내 줄리언 반스의 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그녀는 늙는다는 개념을 증오했다. 이십대부터 자신이 마흔을 넘기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둘이 함께 이어나갈 삶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고 고요해지기를, 함께하는 옛 추억들이 늘어나기를 고대했다. (p.111)


















여동생의 특별한 순간에 여동생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그 경험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여전히 함께 하며 같은 추억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고 또 좋게 여겨졌다. 여동생은 자주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지만, 그만큼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다른 것들이 여동생의 삶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옷을 입고 미끄럼틀을 타는 조카의 사진을 찍으며 언제 저렇게 컸지, 라고 생각하고 내게 전송해주는 그 마음, 그 안에 삶을 단단히 버티게 해주는 것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내가 눈물나는 데 이 사람은 어떻지, 하고 돌아보았을 때 마찬가지로 눈물흘리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는 것, 바로 거기에 삶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게 아닐까. 


많은 호감은 쉽게 불발로 끝나고 더 많은 연애들이 쉽게 지쳐서 흩어질 때, 

어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가져갔던 신문을 여동생 집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펼쳐보다가, 오 마이 갓, 필립 클로델의 새로운 소설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로 말하자면, 그의 번역된 소설 모두를 읽어보았으므로, 기꺼이 새 책을 살 의향이 있다.




아아- 그러나 11월 20일 까지 나의 도서 구입은 구간으로만 채우기로 스스로 약속했었는데, 이렇듯 매력적인 신간 소식이 나오면 약속을 어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크-

당장 읽을 책이 없는 것도 아니고(아주 많지), 그래, 21일에 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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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리는 흰 눈 같던 아카시아, 아침마다 아버지에게 젊음을 되돌려주던 메낭 스킨, 떨리던 첫 키스의 순간으로 안내하는 허브 향, 산책하던 숲에서 만난 동물의 사체에서 느끼는 폭력의 기억, 계절을 알리는 강물과 숲의 냄새, 사랑하는 삼촌이 남기고 간 낡은 스웨터, 노동의 숨결이 배어나는 담배 냄새, 선크림과 야외 수영장에 깃든 태양과 여름의 기억, 최고의 간식이었던 구운 베이컨과 마늘 향…

달콤한 과자의 풍미를 더하는 계피 향, '추위를 타는 이웃처럼' 빽빽이 꽂혀 있는 책에서 풍기던 묘한 곰팡내, 방금 새로 간 침대 시트의 포근하고 청결한 향기, 이국의 도시에서 맞는 밤과 정열의 냄새, 가장 평안하고 숭고한, 잠든 아이의 살냄새…. 향긋하고, 알싸하고, 달콤하고, 시큼하고, 고소하고, 매콤하고, 씁쓸하고, 퀴퀴하고, 때로는 후각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려낸 듯 재탄생된 추억과 향기의 목록들.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면서도 정신성이 깃든 필립 클로델의 표현과 세계관에는 낭만주의와 상징주의를 이은 시인 보들레르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프랑스 최고 문예비평지인 「리르」가 그를 두고 '영혼까지 그려낼 줄 아는 작가'라고 했던 표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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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르지 못하고 있는 신간은 또 있다! 황, 정, 은!!



게다가 이 책도 애써 잊고 지내고 있는데, 하필이면 경향신문에 또 나왔어. 필립 클로델하고 황정은이 같은 날 같은 신문에 나와서...호두 타르트 먹던 내가 좀 흔들흔들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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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미풍과 모두를 숨죽이게 하는 태풍이 공존하는 곳. 황정은이 한국문학에서 획득한 새로운 영토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진단을 더욱 확신하게 해줄 새 장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통해 놀랍도록 부드럽고 확고하게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황정은 특유의 단정하고도 리드미컬한 문장의 점층은 시처럼 울리고, 상처 입은 주인공들이 감당해가는 사랑은 서툴지만 애틋하다. 그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할 한권의 책이 독자의 서가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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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덧붙여야지. 박연준을 빼먹었네. ㅎㅎㅎ 박연준의 시집이 새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무슨 산문집이란 말인가!




시인이 쓰는 산문은, 그 단어나 문장에 압축과 은유가 가득할 것 같고,

압축과 은유가 가득한 글은 내 취향이 아니므로 패쓰할까 했지만,

그래도 박연준, 인데..하며 읽어보고 싶어졌다.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의 그 박연준이란 말이다.



여기, 묵묵히 응원하는 팬이 한 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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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집어내서는 껍데기 없이, 거짓 없이, 부끄러움 없이 '날 것'의 언어로 그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발견한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노라면, 읽는 이의 마음도 다시금 소란해진다. 이를테면 자신에게도 그런 '순간'과 '언어'들이 있었음을 발견하는 것.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려서 잊어버려서, 잃고 잊은 줄조차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는 것. 독자는 거울을 보거나 오래된 일기장 혹은 사진을 꺼내어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맨 얼굴을 보게 되고, 그 소란스러운 발견은 삶을 다시 살아내게 만드는 밑알(소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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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로 인해 사재기를 하는 건, 어차피 그동안 책을 사던 사람들의 몫이다. 회사 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도서정가제 얘기를 했는데 나를 빼고 나머지 직원들이 그게 뭔지도 모르며, 말해줘도 자신과 상관 없는 걸로 생각을 하더라. 어차피 안사던 사람들은 정가제가 되든 안되든 안산다. 나같은 사람만 정가제 되기 전에 구간 모으자, 이러면서 장바구니를 계속 비워내고 택배 박스를 계속 받아내지...또한 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하면 여전히 책을 살 사람도 나같은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책을 너무 많이 사놔서 한동안 잠깐 주춤할지도 모르지만...내가 어디 가겠는가. 그래봤자 금세 잊고 또 사겠지..그러므로 지금의 사재기는 사실 그다지 의미가 없다. 또 책을 쌓아두는 것 밖에 안되는 게 뻔한데..뻔하지만.....킁. 


신간 나오지마!!




여동생과 찾아간 까페는 수제 타르트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테이블이 몇 개 안되는 작은 곳이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커피를 주고 이내 남자 사장님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새로운 쿠키나 타르트 혹은 케익을 만드는 중인 것 같았는데 뭔가를 젓고 부수고 따르고 하면서 높다란 받침대를 두어 서있는 데도 눈높이에 맞게 설정해둔 아이패드를 연신 들여다보며 요리를 하더라. 아마도 요리 방법이 거기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타르트를 두 개 포장하려고 카드를 긁는데 카운터에 놓인 아이패드에 카드 리더기가 연결이 되어 있어가지고 본인이 보던 아이패드를 그대로 뒤집어 우리에게 내미니 거기에 서명란이 있는 게 아닌가! 서명을 하고 다시 뒤집으니 사장님은 결제를 완료할 수 있더라. 와- 그 순간 아이패드가 얼마나 똑똑해 보이는지! 아이패드를 사고 싶어졌다. 포장된 타르트를 가지고 나오면서 여동생에게 나 아이패드 살까? 하고 말했고 여동생은 내 말을 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패드를 검색해봤다. 뭐 얼마가 됐든 할부 긁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한 것. 그러나 막상 고가의 금액을 눈앞에 보고나니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이성이 돌아오더라. 왜 사고 싶은가? 카드 결제 똑똑하게 하더라. 그렇다면 나는 카드결제를 할 일이 있는가? 없다. 그렇다면 사서 무엇에 쓰겠는가? .....쓸 데가 없다. 쓸 데가 없는 데 살 건가?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아이패드를 결제하지 않았다는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참 이상도 하지, 카드 결제하는 거 보고 꽂히다니...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암튼, 계속해보겠습니다.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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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11-1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는 어제 교보에 갔다 저 <향기>라는 책을 들춰봤어요. 저는 저 작가를 잘 몰라요. 그래서 놓고 왔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당장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출산은...음...아직 저는 더 시간이 흘러야 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패드로 서명을 ㅋㅋ 저는 아직 그런 광경을 못봐서 저라도 완전 신기하게 느꼈을 거예요. 저는 지금 아이폰 용량이 꽉 차서 사진도 앱도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지경이라 아이폰6가 부러운 시점이지만 1년 더 참으려고요.(가능할까요? ㅋ)

도서 정가제는 다락방님 얘기가 십분 공감 갑니다. 뭐랄까, 누가 채근하는 것도 아닌데 막 책을 이고 집에 들여 놓아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생깁니다.

다락방 2014-11-11 09:30   좋아요 0 | URL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블랑카님? 최근에 [차가운 장미] 였나 하는 영화까지. 그 영화들의 감독입니다. 그 감독이 소설가이기도 해요. 저는 필립 클로델의 소설을 참 좋아해요. 그 작가의 책이 나왔다니 정말 기쁩니다. 에세이라 살짞 망설여지지만...왜냐하면 그의 책들이 다 좋았지만 [아이들 없는 세상]은 대실망을 했거든요.. 하하하하하.

저는 오늘 책을 또 지를겁니다 블랑카님. 시간이 얼마 안남았어요! (응?) 오늘은 구간으로만 질러볼텝니다!!
도서정가제가 우리에겐 좋지 않네요 진짜. 이게 뭐여..사재기에 열중하고.. ㅠㅠ

레와 2014-11-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패드, 왜 쓸데가 없어욧!!!!!!!!!!

아애패드를 사서 레와에게 선물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11-11 09:30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레와님.
나는 아이패드를 사 줄 정도로 레와님을 좋아하진 않아... =3=3=3=3=3=3=3=3=3=3=3=3=3=3=3=3

Mephistopheles 2014-11-1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제하시고 배송지는 제 회사로...

다락방 2014-11-11 09:31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메피스토님.
저는 아이패드를 메피스토님 회사로 배송할 정도로 메피스토님을 좋아하진 않아요... =3=3=3=3=3=3=3=3=3=3

Mephistopheles 2014-11-11 10:00   좋아요 0 | URL
네 그럼 말죠 뭐.(너랑안놀아)

다락방 2014-11-11 10:11   좋아요 0 | URL
어떻게...
아이패드대신 소주 정도로 쇼부를 치는건 가능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14-11-10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산 책은 한권빼고 다 신간...신간, 나오지마에 심히 공감을^^;

다락방 2014-11-11 09:31   좋아요 0 | URL
저 오늘 구간으로만 살건데 [모나코] 넣고 싶어서 미치겠어요. ㅠㅠ

서니데이 2014-11-1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는 소비자 입장에 한정하면, 책 사는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지금 산다고 해서, 이후에 안 살 것도 아닌데, 지금도 너무 많이 샀나, 가끔 그 생각도 합니다. ^^;;

다락방 2014-11-11 09:3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서니데이님. 어차피 책 사는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책 안사는 사람들에겐 그게 뭐여..같은...그런게 된다고 해도 별로 신경 안쓰더라고요. 어차피 일년에 책 한 권 살까말까해요~ 라더라고요. 어떤 동료는. 하하하하하.

저도 지금 산다고 해서 앞으로 안 살 것도 아닌데 지금 뭐하고 있느느 짓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가 반값이래요 ㅠㅠ

dreamout 2014-11-1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므로 저는 패스,
이번주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와 그림을 본다는 것(이 책은 반값 세일 ㅋ), 소설이 필요할 때. 이렇게 세 권은 주문할 듯. 도서 정가제 시행하고 나서야 새소설들이 많이 나올런지... 황정은과 제발트를 제외하고는 확 잡아끄는 게 없네요.

다락방 2014-11-11 09:33   좋아요 0 | URL
제가 필립 클로델의 소설은 다 좋아했지만 [아이들 없는 세상]은 읽고 어처구니 없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망설여지기는 하지만...그래도...필립 클로델이니까....나온 거 다 읽자! 하는 마음으로다가 ㅎㅎㅎㅎㅎ

전 신간 중에 모나코 관심 가던데요. 그거 한 권 넣을까 어쩔까 하고 있어요. 오늘 지를건데 말이지요. ㅠㅠ

dreamout 2014-11-1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해럴드 프라이~는 구입. ㅋㅋ

다락방 2014-11-11 09:33   좋아요 0 | URL
틀림없이 좋아하실 거에요. 좋습니다, 드림아웃님. 흐흣

단발머리 2014-11-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문장>

도서정가제로 인해 사재기를 하는 건, 어차피 그동안 책을 사던 사람들의 몫이다. - 다락방님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도서정가제 D-9 이다. - 단발머리

다락방 2014-11-11 09:3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제가 그래서 초조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오늘 지르려고요. 지금 장바구니에서 머리 싸매고 고민중입니다. 신간 한 권 넣을까 말까..모나코를 너무 넣고 싶은데...아니야 넣지말자...이러면서요. 달력은 제일 처음 뭐로 받을까요? 피터 래빗? 아웅 어쩌지... ㅋㅋㅋㅋㅋ 백희나 그림으로 받을까요? 다음주에 조카 오는데. 조카 주게.. 아잉... 저는 어쩌면, 도서정가제를 핑계 삼아 지르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혜윰 2014-11-11 22:0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두분은 어떤 구간들을 사신 겝니까?? 풀어놓으시지요...ㅋ

다락방 2014-11-12 14:19   좋아요 0 | URL
일단 오늘 온 책들의 리스트를 풀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기창, 모나코 (신간입니다)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2
앤 앤라이트, 개더링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고지연, 스웨덴 라이프 (신간인듯요)
코맥 매카시, 핏빛 자오선
이언 매큐언, 속죄

그렇게혜윰 2014-11-12 22:39   좋아요 0 | URL
신간은 어제 <소설가의 일>과 <해변 빌라>를 샀으니 잠시 쉬어가겠어요 ㅋㅋ

다락방 2014-11-13 10:12   좋아요 0 | URL
저는 며칠후 또 살건데요 그때도 신간을 한두권쯤 넣어야 겠어요. 아무래도 박연준의 [소란]이 눈에 밟혀서 말이죠. 읽어볼래요. ㅎㅎㅎㅎㅎ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서 메신저를 켰을 때, 저쪽에서 J가 '보고싶었다' 라고 말을 하는 순간, 아, 나는 이게 필요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다정한 말이 내게 필요했어. 나도 몰랐지만 나는 이런 말이 지금 절실했던 거야, 하는 생각에 왈칵 감정이 솟구쳐 '나도 ㅠㅠ' 라고 대꾸했다. 그날은 온종일 보고싶었다는 친구의 말에 기댔다. 가끔 이렇게, 내가 무엇이 필요한 지 모를 때에, 내게 닥치고 나서야 '아 나는 이게 필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날의 치즈파이처럼.
















오늘 출근하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답게 말랑말랑하다. 주인공 32세 신희수는 십년간 충실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현재 백수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좀 울었고, 집 안 가득 모아둔 여행책을 들여다보며 여행을 꿈꾼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장의 두부가게에서 따끈한 두부를 사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그녀는, 간혹 두부가게에서 마주치게 되는 남자에게 호감을 품는다. 언제부턴가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왜 저렇게 쳐다볼까 의아하지만, 차마 그에게 왜 그러느냐 묻지는 못한채로 일종의 설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연을 라디오에 보낸다. 


공교롭게도, 아니 우연히도, 어쩌면 필연적으로,

이 사연을 읽어주는 새벽의 디제이는, 바로 그 두부가게 남자였다. 일명 '두부남' 


그는 그 사연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고는 아, 이토록 놀라운 우연이라니, 한다. 사실 그는 두부가게에서 보았던 희수를 결혼식장에서도 마주쳤는데 이렇게 자기의 청취자가 된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무딘 여자 희수는 그저 자신을 두부가게에서만 보았다고 생각한다. 눈썰미 없기는.

우연도 세번이면 필연이라는데, 이제 디제이 은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그녀의 사연을 읽어준 후, 자신의 이런 의견을 덧붙인다.




그나저나, 두부남. 음, 5466 님 입장에선 상당히 난처한 일이겠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쳐다보는, 그것도 힐끔힐끔이 아니라 빤히 쳐다보는 남자를 만나셨으니. 그런데 아무 이유도 없이 상대를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남자는 없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두부남이 갑자기 5466 님을 쳐다보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혼자만의 긴장과 설렘을 즐기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한 번 용기를 내 보시면 어떨까요? 또다시 두부남을 만나게 되면 용기를 내서 물어보는 거죠. 그렇게 쳐다보는 이유가 대체 뭔지. 어쩌면 두부남도 5466 님과 같은 이유로 말을 걸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거든요. (p.60)




하하하하. 야심한 밤에, 희수는 디제이의 이런 말을 듣고 으응, 정말 그런가?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가? 하고 휘청휘청 흔들리는데, 디제이는 아예 쐐기를 박는다.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만약 그 산책길에 두부를 사 들고, 행복해하는 얼굴로 걸어가는 여자분을 본다면 눈길이 갈 것 같아요. 모르기는 몰라도 두부남이 5466 님에게 눈길을 주는 게 부정적인 이유 때문은 아닐 거예요. 아침부터, 별로 기분 좋지도 않은 일에 일부러 관심을 기울일 리가 없거든요. (p.60-61)



아이쿠야. 희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한창 직장 생활이 너무 무료하고 재미없어서 직장내에 누군가를 짝사랑하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라는 말을 친구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아침마다 짝사랑의 상대를 보기 위해 회사에 나오는 게 즐거울 수 있을테니까. 얼마나 재미 없었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을까. 어쨌든. 아침 일찍 두부를 사러 가서 마주치는 남자라니. 아니, 그건 둘다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는 상황이니 가능한 설정이 아닌가. 일어나자마자 오분만 더 자고 싶다고, 이분만 더 눈감고 있고 싶다고 찡얼대며 엎어져있다가 간신히 눈비비며 일어나 세수를 하고 부지런히 다다다닥 화장을 하고 후다다닥 밥을 먹고 다다다닥 뛰어서 버스를 타고 후다다닥 지하철을 타는 내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



희수가 희수인줄 모르고 은세가 은세인 줄 여전히 모르면서 희수가 처음, 자신의 외로움을 문자메세지로 사연 보냈을 때, 디제이 은세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위로의 곡으로 선곡해 들려주었다.



5466 님도, 우리 뮤직 트리 식구들도 모두 자신을 위로하는 나만의 방법을 꼭 찾으셨으면 좋겠네요. 오늘 마지막 곡으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 들려드리며 이만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클로징으로 꼭 이 곡을 틀어야겠다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는데, 오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네요. 그럼, 내일 다시 만나요. 기다릴게요. (p.36)



양재역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리며 책을 가방에 집어 넣고 아이폰을 꺼냈다. 내 폰에 선인장 쯤은 이미 저장되어 있던 터다. 오랜만에 다시 듣는 선인장이, 참 좋구나. 이런 노래가 나의 아이폰에 있다. 내가 넣었지만 내 아이폰을 사랑하고 싶어지는 마음. 가슴속에 사랑이 왈랑왈랑 거리고 물결치고 파도를 친다. 이 사랑의 파도로 당신의 싸다구를 날리고 싶다. (뭔 개소리야..)



늘 5번 출구로 나가다가 오늘은 시간이 조금, 아주 조금 더 걸리는 8번 출구로 나가기로 한다.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다. 계단을 올라 8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니 저기, 스타벅스가 보인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는 곳. 흐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까. 며칠전에 회사 동료가 책 빌려준 걸 돌려주면서 스타벅스 카드를 선물로 준 게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동료인가!(응?) 그래, 카드도 있으니 들어가자, 싶어서 스타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그만 풋- 웃어버렸다. 하하하하. 카운터에 낯익은 남자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회사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언젠가부터 새로운 남자직원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어주는데 너무 맛이 없는거다. 두유를 넣은 캬라멜 마끼아또에서는 단 두유 맛만 나고, 두유를 넣은 녹차라떼에서는 두유 맛만 나는 것. 아, 짜증나, 신참이라 잘 못만드나? 라고 생각하고 자주 그곳에 들르는 e양에게 말하니, e 양도 정말 맛이 없어졌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우리는 내심 우리끼리 그런 대화를 했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 좀 걸리겠지? 그때까지 가지 말아야겠다. 아니면 아침에 가서 저 직원 있으면 아메리카노만 시켜야겠어, 라고. 그런데 어제였나 그제였나, e 양이 '이제 그 신참 직원 안보이던데요?' 라고 하는거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요즘 안보이네? 관뒀나? 하는 대화를 했었는데, 그가, 바로 여기, 새로 오픈한 지점에 와있었던 거다. 하하하하하.


우리가 목례라도 가볍게 한다던가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었다면, 나는 반갑게 '여기 와있었어요?' 라고 활짝 웃으며 인사했을텐데, 그를 아는 게 나 뿐이라, 그저 나혼자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숏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시켜두고는 e 양에게 문자를 보냈다.


'스벅 신참 여기 와있네. 8번출구 앞 스벅에 ㅋㅋㅋㅋㅋ'


e 양과 나는 같이 웃었다. 하하, 재미있는 우연이다. 마침 책 속 은세가 반복되는 우연에 이건 혹시? 하던 생각이 나, 나도 이 우연이 한 번만 더 반복되면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관둔다. 이런 일을 하기에 나는 정말이지 늙고 지쳤다. 휴...


음료가 나오는 데에 가서 기다리다가 내가 주문한 숏사이즈 아메리카노가 나와서 냉큼 잡았는데, 내 오른쪽 옆에 있던 여자 사람이 '제가 먼전데요' 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커피를 쥔 손을 놓았다. 에잇, 옥의 티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금세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고, 나는 선인장을 반복 청취하며 까페를 나왔다. 그러다가 또 푸핫- 했는데,


거기 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인 남자사람들 떼거지가 달리고 있는거다. 간혹 올림픽 공원 가는 길에 체대 학생들이 뛰는 걸 보았지만, 여긴 체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피트니스 센터에서 나와서 뛰는건가? 일전에 이쪽 길로 퇴근하다가 퇴근 길에도 뛰는 남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은데 짧은 소매의 옷도 그랬지만 다들 한 근육들을 하는거다. 뛰는 데 짧은 바지 밑으로 다리의 근육과, 짧은 소매 밑으로 팔 근육이 다 드러난다.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모르겠지만 저만큼 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 이쪽으로 뛰어 온다. 그러더니 또 얼마큼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 저쪽으로....



당신들 뭐하는 거에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역시 이런 일을 하기에 나는 너무 늙고 지쳐서...관둔다. 다만, 나는 역시 근육이 좋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근육은 삶의 생생한 증거, 활력 처럼 느껴진다. 역시 근육이 짱이다. 나도 근육녀가 되어야 겠다, 고 어제 했던 결심을, 작년에 했던 결심을, 오년전에 했던 결심을, 다시 했다. 내일 또 하겠지?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봤습니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바꿔 생각하면, 이런 말도 될 것 같아요. 용기를 내면 모든 게 달라진다. 
5466 님, 용기를 내 보세요. 또 모르죠. 용기를 내면 모든 게 달라질지도.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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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4-11-0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났어요.
아침 일찍 신촌으로 출장을 갔다가 10시쯤 다시 돌아오려고 직원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50대 중반정도의
머리숫이 별로 없는 중년의 아저씨가 팬티 바람에 런닝은 입었고 와이셔츠 팔은 꿰고 단추는 잠그지도 못하고
양 손에 양복이랑 구두를 들고 뒤를 돌아보며 허겁지겁 뛰어가는거에요.
이 장면이 어떤 상황인거 같으세요?
아무리 아침 일찍이라지만 그래도 신촌인데 보는 눈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20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

이 책 아직 못 본 책인데 찾아봐야겠어요. 재미있을것 같아요 :)

Mephistopheles 2014-11-06 10:11   좋아요 0 | URL
바람피다 걸렸군요.

다락방 2014-11-07 08: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제가 생각하기에도 바람피다 걸린건데, 이 경우엔 여자쪽 남편한테 걸린 경우라고 보면 되겠네요. 자기 와이프한테 걸린거면 그렇게 옷도 못입은 채로 도망가진 않을 것 같거든요.

이 책은 재미있어요 무스탕님. 남자가 너무 완벽한 게 흠이지만 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4-11-06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터가 후라이팬 위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감성충만해지셨군요....

다락방 2014-11-07 08:14   좋아요 0 | URL
저는 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버터이지만 아직 달궈진 후라이팬을 만나지 못했....( ˝)

아무개 2014-11-0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보고싶어요 다락방님 *^^*

2.<8번출구로 나가기로한다....5번출구로 나와 조금걸으니..> ㅎㅎㅎ

3.허경환의 허닭 맛잇습니다. 함께 건강한 근육녀가 되어봅시다.
`우리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지만
작게 속삭여 봅니다.... ㅠ..ㅠ

다락방 2014-11-07 08:16   좋아요 0 | URL
1. 전 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3=3=3=3=3=3=3=3=3

2. 댓글 보고 수정했습니다. ㅋㅋㅋㅋㅋ

3. 허닭이란 게 있어요? ㅎㅎㅎㅎ 처음 알았네요. 전 닭가슴살 안좋아합니다, 아무개님. ㅎㅎ 세상엔 맛있는 게 널리고 널렸어. 그치만 맛있는 것만 먹으면 근육녀가 될 수 없지...하아- 근육녀가 되기엔 너무 늙고 지쳤...하아-



2014-11-06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07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4-11-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후, 지금 들어도 좋네요.
`선인장`

후흣. 사과도 먹었다요. 딱좋다. 일상이 이만큼만 진행(!)된다면 살 수 있을거 같아..

다락방 2014-11-07 08:18   좋아요 0 | URL
응 요즘은 계속 에피톤 노래만 들으며 다니고 있어요. 좋아...선인장 좋지...

일상이 나는, 좋았다 안좋았다 해요. 뭐, 언제나 그랬지만....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 술마시고 기절해버려욧!!

열매 2014-11-0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이란 노래는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첨 들어봐요~
노래도 좋고 글도 좋고 다락방님의 일상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져요.ㅎㅎ
저 책을 보니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떠오르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다락방님 : )

다락방 2014-11-10 08:51   좋아요 0 | URL
오, 사서함을 읽으셨군요!
저도 사서함을 떠올렸답니다. 조용하고 은근한 그러나 설레이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두 소설은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저는 산드라 브라운 식의 열정적인 사랑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지요. 아하하하.
주말이 끝났네요 꿀이님 ㅠㅠ
 














[SNL 코리아] 를 보면 샤방샤방한 분위기에 나오는 백뮤직이 있다. 지난주에 신성우 편을 보았는데, 신성우를 처음 보게 된 안영미의 마음을 표현할 때도 그 곡이 나왔다. 무슨 곡인지 잘 모르겠고 가사도 잘 못들었는데 여튼 그 분위기가 상당히 므흣므흣하고 상대에게 반한 마음을 잘 표현한다. 샤라라라라라라라~ 뭐 이런 곡인데. 여튼,


오늘 받은 문자메세지가 그랬다.


<소설이 필요할 때> 오늘 구매하시면 2,000원 신간적립금 응모권 증정



오! 백뮤직이 들려왔다. 샤라라라라라라라~ 그러나 이 책을 지르기에 앞서 신중해지도록 내 자신에게 명령한다. 기다려. 며칠 있다가 사자. 조금만 참아. 지금 사면 신용으로 사야 해, 며칠 기다리면 현금으로 살 수 있잖아. 기다려. 그리고 그때 5만원어치를 채워서 달력을 받자. 피터 래빗과 백희나 그림은 조카를 주자. 책읽는 명화는 내가 갖자. 그래 이번 달력은 삼종을 다 가지는거야! 기다려, 참아. 나는 이를 악문다.


젠장 삶은 왜이렇게 어려워. 나는 왜 맨날 이를 악물어야 해. 쓰벌.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트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어떤 노래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 그러면 라디오 노래는 그대로 둔채로 나는 내가 생각한 노래를 계속 생각하는데, 오늘 아침 내가 생각한 노래는 '이아립'의 <누구도 일러주질 않았네>와 '김광진'의 <편지>였다.

출근길 내도록 편지를 생각하려니, 오래전에 보았던 토요드라마 [무동이네 집]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아마 무동이네 이모 였던가 고모 였던가...여튼 '김은정'은 '손지창'과 사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손지창은 정말 젊은 여자들 휘몰아칠 정도로 멋있었는데....뭐, 이건 그냥 넘어가고 어쨌든. 김은정은 손지창과 사귀면서 손지창이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마음을 가득담아 편지를 보낸다. 그당시는 핸드폰이 없었던 상황. 문자메세지로 마음을 전할 수 없었다. 삐삐도 없었을 때다. 반드시 집전화나 손편지, 만나서 전하는 마음이 가능했다. 김은정은 그렇게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편지에 담아 우체통에 넣는다. 

편지가 상대에게 가 닿기 까지는 며칠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김은정은 손지창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채로 손지창을 만났는데, 손지창은 김은정에게 이별을 고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던가, 하는 이유로 김은정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 김은정은 집에 돌아와 펑펑 운다. 그리고는 자기가 보낸 편지를 어쩌면 좋으냐고 더 운다. 그때 김은정의 동생이 언니의 사연을 알고 손지창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언니가 보낸 편지가 곧 도착할텐데, 오빠 그거 읽지 마. 뜯지 말고 읽지 마.

손지창은 힘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전화를 끊은 그의 손엔 이미 김은정이 보낸 편지가 들려 있었고 물론, 다 읽고난 후였다. 손지창이 김은정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그녀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던 것. 만약 김은정의 동생이 좀 더 빨리 전화했다거나, 손지창이 하루 전에 헤어지자고 했다면, 그랬다면 손지창이 김은정의 편지를 읽지 않았을 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인간의 호기심이 작동해, 편지가 더 늦게 도착했다 해도 읽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그 사이의 시간차가 야속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을 적어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편지가 상대에게 닿기 전, 상대는 내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별에 가슴아파하는 나는 내가 며칠전에 보낸 편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상대는 이별을 통보하고 씁쓸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내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그 안에는 사랑의 말들이 가득하다.



그 사랑의 말들을 읽었다고 해서 그가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해, 내가 전에 말한 우리의 이별은 번복할게, 라고 할 수 있을까? 이별이, 번복이 될까? 이미 나는 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혹은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 라고 말했던 게 나한테 와 닿아 가슴을 후려쳤는데, 이제와서 '너의 마음이 이렇다니 그 모든걸 없던 일로 할게' 라고 말한다 해도 그게 가능할까? 그런 말을 이미 이별을 말한 상대가 할 리도 없겠지만, 설사 한다 해도 내가 달갑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


내 고백은 공중에 흩어지고 너에게 닿지 못했으며
너의 이별의 말만이 나에게 와 닿았다.

그 사이사이, 마주하지 못한 시간이 있었다.



아래 곡은 그 당시 [무동이네 집] 에 삽입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던 두 곡.













사과 몇 개가 사무실 내 자리에 있다. 며칠전 회사에 사과 몇 박스가 생겼는데, 그걸 전 직원이 몇 개씩 나눠가진 것. 당연히 집에 들고 가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 미루고만 있다가, 며칠전 오후에 배가 고파 먹었더니 너무 맛있는거다. 그래서 그냥 내 자리에 두고 배고플 때마다 먹자, 라고 생각했다. 빵보다는 사과가 나을테니,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아침부터 사과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과를 씻으려 가려는 데 청소 아주머니가 바깥에 보인다. 나는 얼른 커다란 사과를 하나 더 집어서 바깥으로 나갔다. 아주머니, 사과 드세요. 제가 씻지 않았으니 씻어서 드셔야 해요, 라고 말씀드리며 사과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어휴 뭘 이렇게 맨날 줘요, 라고 고맙다고 하셨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의 주머니를 벌리셨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계셨던 터라. 나는 그 주머니에 쏙- 사과를 넣어드렸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내 몫의 사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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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05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4-11-0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바다 -별빛이 내린다.

다락방 2014-11-05 11:05   좋아요 0 | URL
아항. 맞아요. 그 가사가 별빛이 내린다 였던 것 같아요.

별빛이 내린다 샤라라 라라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낭만인생 2014-11-0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 향기 가득한 글입니다.

다락방 2014-11-05 11:05   좋아요 0 | URL
어제 출근길에 지하철 안 옆자리 남자 향수 냄새가 아주 좋았습니다. 후훗

비로그인 2014-11-04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필요한 달력이 뭐죠? 말만 해요~~ ㅎㅎ
책을 다 사버리자 달력이 떴는데 살 책들이 또 생겨버렸어요 ㅠㅠ
그나저나 난 왜 백뮤직이 들려오는 문자를 못 받는거지? ㅠㅠ
편지. 저도 무지 좋아하는 노래예요^^

다락방 2014-11-05 11:39   좋아요 0 | URL
저 다 갖고 싶거든요. 음...책읽는 명화요! 그건 제 책상에 놓을거에요! ㅎㅎ 나머지 두 종류는 받아서 조카 갖다 줄거에요. 히히히히히

편지, 좋죠. 가슴에 바람이 부는 노래에요, 아른님. 흑흑.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되돌리지는 않겠소..

유부만두 2014-11-04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나누는 다락방님.
참 예뻐요! 착한 어른이 도장 찍어드릴게요. ^^

다락방 2014-11-05 11:39   좋아요 0 | URL
착한 어른이 보다는 예쁜 어른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제게 예쁜 어른을 허락하지 않네요. ㅠㅠ

네꼬 2014-11-05 14:30   좋아요 0 | URL
예쁩니다 다락님. (참견)

다락방 2014-11-05 15:28   좋아요 0 | URL
네꼬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4-11-0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동이네 집이라니. 전 엄청 좋아해서 보던 드라마인데 왜 저 김은정과 손지창 부분은 생각이 안 날까요???? 그런데 그 둘이 그렇게 헤어진건가요? 난 왜 기억이 안나지? ㅠㅠ 최민수와 김혜선만 생각나~~~~

다락방 2014-11-06 09:15   좋아요 0 | URL
저는 최민수와 김혜선이 생각 안나요 ㅋㅋㅋ 최민수가 무동이네 집에 나왔다니 뭔가 안어울려요 ㅋㅋㅋㅋㅋ 최유라는 생각나네요. ㅋㅋㅋㅋㅋ
그 뭣이냐, 거기에, 이재룡이 미술선생으로 나왔던거요. 그림 그릴때마다 퍼햅스 러브 틀어둬서 막내 김민희를 설레이게 했던...이재룡도 그때 멋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음식 사진 보는 걸 즐긴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내가 원하는 식단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즐겁다. 그렇다보니 여러가지 일로 지쳐있던 지난주를 보내고 맞이한 토요일, 이 책을 꺼내드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하고 이 책을 꺼내서 아무데나 펼쳐 보았다. 이건 뭐, 음식을 이용한 점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런 사진을 처음 만났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영어로 쓰여졌다는 것인데, 그래서 나는 정확히 저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진짜 이 사진을 보자마자 완전 너무 좋아서 울뻔했어...마치 몇해전 아주 힘들때 친구가 보내준 케빈스파이의 치즈파이를 한입 깨문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 치즈파이 맛이 고마워 왈칵, 눈물이 차올랐는데. 아, 저 크림 좀 보라지! 나는 커다란 포크로 크게 한 입 베어물고 싶어졌다. 뜨거운 커피나 와인과 함께여도 좋을 것이다. 한 입 베어물다가 그 맛에 놀라 연신 입에 넣고 결국은 저거 하나를 나 혼자 다 비워내고 싶어졌다. 그래, 커피보다는 와인이 낫겠다. 저걸 다 먹을 동안 와인을 마신다면 나는 아마 크게 취하겠지. 취해서, 기절해버리리라.


열여덟시간 정도를 기절해 있다 일어나면 내 모든 혈관들 틈틈이 눅진눅진 칼로리가 쌓였겠지. 자, 그럼 그 칼로리를 빼러 가자. 싸우나로 가자. 다섯시간 동안 싸우나를 들락날락 거리며 몸 안의 땀을 배출해내자. 등산 두시간으로 빼낼 수 있는 칼로리가 아닐테니.


아,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일거야.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거야, 저 넘쳐나는 크림은. 



아, 좋다 좋아. 너무 좋아서 나는 또 아무데나 펼쳐봤다. 그리고 이런 사진들을 보게 된다.










아..아름답다. 사람은 심신이 지칠수록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어야 해...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채워지는 것 같다.. 좋아..♡



















영화 《밀크》를 보면 마지막, 하비 밀크가 자신의 연인과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연인은 그에게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밀크는 크게 감동한다. 그 장면에서 나도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네가 자랑스러워'라는 말을 든는건, 결국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얼마전에 트윗에서 주진우 기자의 글을 보았다. 이승환의 세월호 동조단식에 대한 기사였다. 그 기사를 보다가 당연히, 이승환을 좋아한다는 M님 생각이 났는데, 그런 이승환의 행보를 보는 M님은 그 순간, 이승환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나보다 먼저 더 깊이 실천해주고 있다는 데서 오는 믿음과 신뢰. 그리고 자랑스러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이승환을 좋아하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걸 최근에 신해철에게서 느꼈다. 나는 그를 아주 많이 좋아했고 존경했지만 사실 그의 행보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다. 그의 음악만을 들었고, 어릴적에 라디오를 들은 게 거의 전부라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의 사망후에 들려오는 그에 대한 소식은 내가 아는 것, 이상이었다. 그가 생전에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자꾸만 크게 훅훅- 나를 후려 갈겨서 더 미칠것 같은 기분이 되었고, 나는 매시간,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내가 이 사람을 괜히 좋아한 게 아니야, 라는 마음. 아, 이 사람을 좋아하길 잘했어.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달라, 부터 시작해서 내 안에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차고 넘쳤다. 그의 장례식에 내 중학교 동창도 갔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도 갔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람들이 그의 장례식에 가서 국화를 한 송이 놓고자 찾아드는 걸 보면, 그는, 아주 잘 살아냈던 게 틀림없다.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나는 그가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네가 자랑스러워'라는 말을 듣는 삶을 살겠다고, 삶의 방향을 정해놓는다.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는 계속 가방에 넣어두고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한꼭지씩 읽고 있다.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하게 되는건,


사랑에는 미래가 없다


는 것이다.



사랑에 미래는 없지, 라고 생각하다 보니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중학교시절 주말의 명화인가 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영화인데 제목이 기억안나.. 여자 세명이 주인공인 영화였는데, 소녀와 소녀의 엄마, 소녀의 이모가 각자 자신만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소녀의 엄마가 어떤 사랑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고, 소녀는 외국인 여행객인 소년과 사랑에 빠졌더랬다. 그들은 서로에게 반했고,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누군가의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소년소녀의 사랑 마지막 장면에 둘이 같이 보트를 타던가 했는데, 그때 노를 젓는 사람이 통역을 해주다가 소년과 소녀가 키스를 하자 '이제는 통역이 필요없겠군' 하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사실 그보다 더 기억에 남은 건 소녀의 이모의 사랑이었다. 이모는 한 락가수를 좋아하고 있었다. 엄청 좋아해서 락가수의 공연에 찾아가는데, 가수의 가까이에서 환호하고 같이 뛰던중, 락가수의 눈에 띈다. 락가수는 그녀를 무대 위로 들어올려 같이 노래하고 같이 춤을 추고, 이모가 믿을 수 없을만큼, 그 뒤로도 얼마간 다정한 행동으로 이모의 연인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 시간을 짧았던 것이, 그 다음 공연에서 그 락가수는 다른 여자팬이 던져준 팬티를 자기 바지주머니에 접어 넣고, 그녀를 무대위로 들어올려 이모에게 했던 그대로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걸 보고 이모는 깨닫는다. 이 사랑이 끝났음을.


소녀의 소년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락가수는 다른 팬과 사랑에 빠졌다. 소녀는 자신의 사랑을 잃었고 이모 역시 자신의 사랑을 잃었다. 사랑에 빠지는 현재는 존재하지만, 사랑에는



미.래.가. 없.다.



저 영화의 제목이 기억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보고싶은데...저걸 처음 볼 때 내가 너무 어렸어가지고...ㅠㅠ



어제 자기전에 읽은 《사랑의 미래》는 이런 말을 내게 하고 있었다.



사랑은 무거운 생을 송두리째 들어 올리는 축제의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한 시간으로부터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에너지 같은 것. 세상의 모든 축제는 일시적이고, 얼마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축제는 그 안에 방탕과 폭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 그것은 죽음과 맞먹는 삶의 폭발적인 낭비를 의미한다. (p.107)





오늘 출근길에는 날씨가 많이 춥더라. 어디다 처박아 두었는지 모르는 장갑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머플러도 하나 사러 가야겠다. 예쁜 머플러로 사야지. 따뜻하게 목에 둘러야지.

점심에는 짜장면을 먹고 싶은데, 어쩌지. 그냥 짜장면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으면 밥을 못먹고, 밥을 못먹으면 이내 허전해지는데...에라이. 짜장곱배기나 먹을까. 


삶은 어차피 짜장면이나 짬뽕이냐, 짜장면이냐 밥이냐를 선택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에 메세지로 내게 도착한 음악. 

사실 누군가 보내주는 음악을 잘 듣지는 않는다.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취향의 것이라 생각하므로. 그런데 어제는 the park 란 제목에 이끌려 들어보게 되었고, 그렇게 듣게 된 음악이 좋았다.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노래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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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4-11-0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어차피 짜장면이나 짬뽕이냐, 짜장면이냐 밥이냐를 선택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이 말이 마음에 닿네요...

다락방 2014-11-03 17:19   좋아요 0 | URL
네, 매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니까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가는거죠..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비연님.

단발머리 2014-11-04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저 첫번째 크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너무 아름답고도 아름다워요. 찐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카하~~~
처음은 크림이요, 마지막은 짜장곱배기네요. 아름다운 시작, 푸근한 끝입니다.

다락방 2014-11-05 11:40   좋아요 0 | URL
완전 황홀하죠! 저거 진짜 같이 먹으면 소울 메이트가 될 것 같지 않아요,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
아 또 짜장 먹고 싶다... ㅠㅠ

Mephistopheles 2014-11-0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다락방님이 자랑스러워요.

다락방 2014-11-05 11:40   좋아요 0 | URL
고..고...고맙습니다???

버벌 2014-11-0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다이어트중이에요.... 저는 지금 다이어트중이에요.. 저는 지금.. .ㅠㅠ

다락방 2014-11-06 09:19   좋아요 0 | URL
저도 다이어트 중이에요. 어제처럼, 작년처럼, 십년전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