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깊은 사랑이 행복한 영재를 만든다
최희수 지음 / 푸른육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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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읽는 푸름이 아빠의 책이다. 건질 점은, 성장단계에 맞추어 교육하라. 학습이 아니라 놀이를 지향하라. 야단치는 것으로 강화하기보다는 무시하거나 주위를 돌려 부정적 행동을 교정하라.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감정을 표현하도록 허용하라. 호기심을 허용하고 야단칠 상황을 피하여 마음껏 호기심을 펼치게 하라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람에 틀림없다. 전략적 접근과 이것을 통한 영재양육에 대한 은근한 소망이야 누군들 없겠느냐마는 여전히 나의 아이들에 대한 관점이 내 자신을 더 많이 향해 있음을 느낀다. [영재를 만들기 위한 배려깊은 사랑]이 아닌 그냥 그들과 잘 어울려 같이 사는 나로 남을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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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동양고전 슬기바다 11
법구 엮음, 한명숙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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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부처의 말씀을 묶은 책의 하나이며, 그 형식에 있어 시적 운율을 지닌 게송이다. 구원이 마음의 선악에 달렸다는 쌍요품에서, 진정한 브라만이란 인연을 끊어내고 삶을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범지품까지 26품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초기불교의 기본적 생각 즉 소승적인 형태의 불교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우주의 질서에 합류하여 윤회의 고리를 끊고 신의 품에 드는 방법으로 현생에서의 올바른 업을 부처는 가르친다. 고통의 세상 가운데 아직 닿지 못한 내 자아 안의 신의 모습을 찾아 혈연과 情의 일체의 얽어매는 것을 풀어버리고 우주의 중심 안으로 소멸하는 자아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인류가 가진 인간과 신에 대한 태도의 한 편을 잘 설명해 준다. 하나는 신이 인간의  외적 조건을 무시한 채 말할 수 없이 사랑하여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로 느껴지듯 고통 뿐인 이 시험의 세계에서 인간은 신을 향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다른 세계를 살게 하고 인간에 대한 태도도 바꾼다. 신이 사랑하는 가장 궁극적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현재를 긍정하고 나의 오류와 약점이 언젠간 사라질 것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갖고 살게 된다. 달리 만약 인간이 우주의 원리로부터 파생되어 나와 일시적 과오의 응어리로서 현재의 인간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면, 우리는 현재를 부정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며 신의 성품의 실마리를 찾아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토록  다른 두 세계는 우리가 [이 고통은 무엇으로 인한 것인가?]라고 물을 때마다 우리 앞에 언제나 등장하는 두 실마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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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말하다
양명수 지음 / 분도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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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수 교수의 이 책은 균형잡힌 욥기 이해의 틀을 보여준다. 교리적 시각에서의 하나님 이해를 거부하는 욥의 편을 들면서, 의인이 고통 당하는 현실과 구속사적 의미를 살아있게 전한다. 욥의 인간적 고통과 절규에 대한 긍정 위에 이 책은 그 고통에 같이 하는 하나님의 부성애적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이런 사랑이 구주를 있게 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맞닿아 있음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하나님 이해의 깊은 곳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이라는 명제가 존재한다. 즉 욥기를 읽어내며 양교수는 사랑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정의를 양면으로 바라보게 만들듯이, 그리스도로 표상되어 나타날 의인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소망을 갖는 존재로서의 인간, 실존은 늘 틀린 결단을 하며 고통 속에 하나님을 원망하더라도 그 마음의 깊은 곳에 그 분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소망을 잃지 않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전망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피를 흘리신 것은 마음을 돌이킬 것을 기대하심이며, 먼저 사랑하시고 부정에 눈감으심은 돌아오리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나는 그 기대를 잊었는가? 내가 진정 잊은 것은 그 분의 눈빛이 아닌가? 그만큼 그 분을 뵙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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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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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특히 자신의 죽음이라면... 처음에 거부하고 분노하다가 점차 죽음 자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화해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으며 죽음을 겪게 되겠지만 모리는 죽음에 이르는 비상한 과정을 보여주며 살아있는 사람에게 삶을 사는 방법을 깨닫게 해준다.

오든의 싯구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파멸하리라]. 가족과 친구, 제자와 동료인간에게 마음 한 가운데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관심,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데서 오는 인생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기를 그는 권한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는 친절은 [자기와 닮은 것에 대해 동정하고싶은 욕망]의 정의에 불과할지 모르나 모리에게는 친절과 사소한 관심은 죽음 앞에 선 유일한 삶의 의미와 존재유지의 길이다.

모리의 죽음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마음을 기울여, 주위의 생활방식, 사고의 틀,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열매였다. 그런 사람의 죽음은 보내는 사람을 마음 안타깝게 하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자식에게 친구에게 과연 나는 삶을 함께 해주는 사람인가? 나는 사람을 수단의 하나로 보는 문화에 습관처럼 살고 있진 않은가? 혹 여전히 아무 의미도 없이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들에 삶이라는 아름다운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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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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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처음가는 아이들이 만나는 새로운 경험은 선생님이라는 권위와의 만남이다. 절대적 결정권, 진위와 선악의 판단자의 아래에서 사는 새로운 삶이다. 이때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두려움과 위축감, 때론 부당함과 소외감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장면을 붙잡아내며 아이들의 감춰진 소원을 드러내 보여준다. 선생님보다 자신이 옳을 수도 있다는거.

[지각대장]이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악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길래 헉헉대며 뛰어가도 온갖 모멸과 눈총이 기다리는가. 존의 매일 아침 등교는 어두컴컴한 이른 아침이나 새벽이다. 하지만 항상 생기는 기괴한 일로 늦을 수 밖에 없고, 항상 거짓말과 말썽만 일으키는 아이로 취급받는 존. 특별한 이유 없이도 맨날 늦던 학교시절 생각이 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자주 반복되는 실수는 사실 무의식 속의 거부감이다. 학교에 대한 거부감. 이것이 사실 존이 매일 만나던 여러 괴물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 괴물을 만든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선생님도 절대 이 괴물을 인정하진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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