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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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처음 나온 이 책은 과학의 발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사의 접근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으며 과학자와 관련학생 뿐 아니라 다른 특수분야의 역사에 대한 고찰에도 영향을 미친 책이다. 과학의 발전을 점진적 누적이 아닌 대안적 체계(패러다임)로의 교체로 보는 저자의 견해는, 현재에 밝혀진 사실 혹은 심미적 믿음에 근거한 대안이 새로운 세계관을 창출하며 이것이 기존의 것에 대한 실용적 우위를 증명할 때 급격한 개종(conversion)이 발생하여 과학구조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과학의 진보란 점점 베리타스(truth)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 해결되는 문항수를 늘리는 풀이법으로 교체해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로 보자면 자연을 상대하는 과학자에게 진정 필요한 혁명적 성격은, 결국 이런 개종의 위기를 인식하고 기존에 의지하던 정상과학을 해체하며 수많은 다른 관점에 마음을 열고 자기 눈을 바꾸어보는 여유가 아닐까?

그의 관점은 진화론적이라는 점에서 참신하게 와 닿는다. 이 책은 결국 과학의 현재 모습을 목적론적 관점에서가 아닌 비목적론적 관점의 진화의 산물로 본다. 즉 특정 패러다임 종(species)의 생존을 자연선택의 결과로 봄으로써 과학의 발전에 대한 최고 목적 지향의 신화를 깨뜨리고, 과학자 사회의 환경요소에 의한 적자 생존의 연속으로서 과학사를 규정한다. 이것은 다윈적 모델의 과학사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의 단속적 진행이 지속적 진보의 모습으로 보이는 후향적 착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선 무작위적이며 보이지 않는 선택이 과학자 사회의 기호(忌好), 가치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통찰은 도리어 무작위 안에 항상 내재되어있는 목적론적 방향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현재 주어진 나의 과학자로서의 위치에서 선행 표준예제를 따르며 진행하고 있는 과제의 상대성을 알 수 있었으며, 우연히 현재는 다른 패러다임 그룹안에 와 있으며 그 견해에 대한 해석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지금  현재는 패러다임 미탑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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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
캐롤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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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알콜 중독하면 떠오르는것은 복수가 차고 위생 상태가 엉망이며 직장도 처자식도 버린 일용노동자의 정신과 병동에서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또다른 알콜중독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알콜중독을 철저히 은폐한 채 자신이 일으키는 법적 문제, 사고, 직장의 어려움을 요령껏 잘 넘기며 살아가는 줄타기하는 삶을 사는 엘리트 지성인이다.

그들에게 술은 공사판의 육체적 괴로움을 덜기 위한 소주가 아닌 신분과 어울리는 고급스런 술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이 주는 각종 혜택, 사회관계, 연애, 분위기, 기분을 맘껏 고조시키는 경험을 통해 술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처음 와인은 이제 점차 독주로 변하고, 과시하듯 마시던 술도 이제 남들이 보면 지나치다 싶을까 몰래 먹는 술이 되어간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피하는 공식과도 같은 쉬운 도피처가 술로 굳어져간다. 점차 다른 해결방법을 알지 못할 정도로...

이 책은 이런 알콜중독의 모습을 바로 작가 자신의 삶의 고백을 통해 통렬히 보여준다. 술이란 사실 결국 우리의 행복과 성숙과 생명을 아주 천천히 앗아가는 가장 은근한, 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지금껏 술에 대한 책 중 이렇게 솔직하고 사실적이며 라디칼한 책을 보지 못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인생의 마수와 맞닥뜨린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잘 깨닫게 해 준다. 자신의 음주에 혹 문제가 있다고 어렴풋 느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기를 권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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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Pony / The Pearl (영어 원문, 한글 각주) 신아사 영미문학시리즈 81
존 스타인벡 지음 / 신아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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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Pony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은 우연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 그것은 어떤 희생도 감수케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 망아지의 죽음과 그로 인해 주어진 빌리의 책임, 그는 그것을 지켜야 했다. 그 약속은 어떤 어려움과 피를 뚫고도 이루어져야 했다. 선물은 거져 주어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것은 사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책임감의 산물이다. 그것을 위해 묵묵히 그들은 삶이라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재료를 갈아 바쳤다. 모두 끝나고 그 책임이라는 것이 어처구니 없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칠지라도 그들은 현재의 우리 삶을 만든 선물을 준 사람들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꿈꾸었던 것은 굶지 않는 나라였다. 그리고 그들은 손에 더러움과 피를 묻히며 그 약속을 지켰다. 누가 그들을 욕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자기가 맡은 책임을 다 했을 뿐.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들의 삶을 무슨 더러운 죄인양 모욕했었다. 그리고나서 물러받은 우리가 꿈꾸던 것은 억울하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면 이제 눈물이 없을 줄 알았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알고 있었고 그 일을 우리 힘껏 이루어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우리 책임을 우리 아버지만큼 다 했는가? 아직 시간이 더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 올 세대는 그 세대의 환경과 할 일이 있을 것을 안다. 땅은 다시 물려지고 그들은 이 땅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선물은 잊고 또 힘든 그들의 삶을 꾸려갈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숙제와 같은 할 일이 있을까.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그 때에 그들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산 우리를 모욕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러러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도 같은 우리의 아버지를 무시하는 일을 그치고, 혹 우리가 하는 책임이 삶에 영원한 가치를 주는 잣대에 혹 어그러지지 않기를 노심초사할 일이다. 그건 그리 거창치 않게, 하루의 일상을 조금 더 열심히, 생각하며 사는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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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ttle Prince (어린왕자) - 영문판
생 텍쥐페리 지음 / 반석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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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읽고 두번째가 영어다. 언젠간 불어로 볼 날도 있을까?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을 소중하게 만든다는 삶의 깊은 깨달음이 마음에 사무치는 나이가 되니 다른 의미의 책으로 다가온다. 믿음, 기도, 헌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구성요소다. 우리가 인간다울 수 있는 것, 우리가 소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인간이 될 수 있는 때문인지 모른다. 상대가 나에게 소중한 인간이 되는 까닭은 상대의 가치에 있지 않고 내가 그를 위해 한 헌신에 달려있는 까닭이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곧 인간 누구나에게 있는 신의 형상이다. 그 존재만으로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희생하며 섬길 수 있는신의 모습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 더욱 소중하다. 이 생의 바쁨과 자기 자신밖에는 우주에 없는 삶이 아닌 다른 인종, 다른 문화, 다른 교육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인간의 모습,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삶. 그것이 우주적 창조자를 알고 사는 삶이다. 인간 안에 하나님을 보는 자, 그 사람만이 사실 진정 하나님을 본 자인지도 모른다.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

.....It is the time you have wasted for your rose that makes your rose so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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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RL : 진주 - 영한대역시리즈 13
J.STEINBECK / 조은문화사 / 198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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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분노의 포도]의 성공 후 1944년 뉴욕에서 고향 몬트레이로 돌아온 스타인벡은 옛 동료들에게 오히려 그의 작품에 대한 혹평과 냉대를 경험한다. 그는 그가 얻게된 행운에 친구들이 같이 기뻐하고 그 가치를 더 높여주리라 기대했는데 이는 어찌된 까닭인가?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설화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 흑과 백, 좋은 것과 나쁜 것만이 있음을 본다. 인간의 안에 있는 상대의 기쁨에 대한 질투와 파괴하고픈 욕구, 서로를 적으로 만들게 하는 공통요소인 악에 대한 이해없이 인간을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악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감정인 억울함이란 참으로 가슴 아픈 것이다. 삶의 조건으로 인해 이런 억울함의 분노와 고통을 고스란히 참아야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그 마음을 이해할까? 최근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억울함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 약자이며 약자란 이런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차림새, 피부색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한다면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억울함은 지식에서 시작하고 구조로 굳어져 외형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의 통로는 이미 어떤 사람들에게는 닫혀있고 외형적으로 받는 차별은 한 세대에는 즉 내가 살 동안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곳 미국에서 요즘 느끼는 것은 외국인으로서 받는 권리없음이다. 사회의 일원인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감정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호받고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런 억울함을 더욱 크게 한다. 이때 할 수 있는 선택은 억울함을 내려놓고 하늘에 맡기는 것, 또는 끝까지 그것을 바꾸어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부딪히면 깨지는 것은 개인이다. 억울하여도 참고 그러나 끊임없이 냉정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무방비한 편견의 주체를 설득과 사랑, 기도와 헌신으로 무너뜨리고 마는 것. 요즘은 이런 억울함과 대안을 고스란히 겪어보는 시간들이다. 혹은 이것은 오직 진주를 버릴때만 사라지는지도 모른다. "네 진주를 버려라. 인간과 같이 어울려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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