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아냐 아저씨 청목정선세계문학 43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성호 옮김 / 청목(청목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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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냐 아저씨는 오랫동안 대학교수인 그의 전 처남을 위해 살아왔다. '나는 네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너만을 위해 살아왔어!' 그러나 되돌이켜 볼 때 이는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모 없는 인생의 낭비였던가? 그는 분노하고 그 수혜자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다시 진정한 삶인 그의 노동과 순수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그를 용서하기로 한다.

포맷은 몰리에르의 타르튀프를 연상케 한다. 분명 표현코자 한 바는 다르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과 어쩌면 필요없는 군더더기로 보이는 의사 선생과 교수부인의 사랑고백은 분명 타르튀프를 연상시킨다. 결론의 내용자체는 캉디드와 닮았다. 순수한 노동으로서의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 작가 자신이 한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의사였던 걸 보면 분명 그는 의사로서의 그의 삶이 혐오스러운 면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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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드
버질 지음, 김명복 옮김 / 문학과의식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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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기원에 대해 신화적 해석으로 쓴 서사시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오딧세이아로 시작해서 일리아드로 끝난다고 요약할 수 있다. 트로이에서 패전한 아이네아스가 백성을 이끌고 고생고생하다가 이탈리아로 들어와 마치 에게해 연합군이 트로이를 무찌르듯,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듯 그 땅을 점령하여 로마의 시조를 이루게 된다는 줄거리.

예시적 형태로 과거사를 포장하고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트로이에서 찾으려 한다. 심지어 그리스와의 적대관계와 카르타고와의 악연조차 신화적으로 창조해 낸다. 한 나라의 건국에는 입심 좋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그 후 그 국민들의 민족 주체를 형성하는 걸 보면 문학이라는 인간 창조물이 갖는 힘을 다시 느끼게 한다.

기번은 로마 쇠망사에서 여러번 특히 마지막 결론부에서 길게 버질의 이 작품을 언급한다. 어거스틴도 그의 고백록에서 그가 어린 시절 읽었던 이 책에 대한 술회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회상한다. 그만큼 로마와 그 후 중근대 문학을 이해하는데는 필수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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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튀프. 서민귀족 동문선 현대신서 54
몰리에르 지음, 백선희 외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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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튀프는 몰리에르가 그리는 17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악한이다. 악한 중 가장 혐오스럽고 비웃음거리인 것은 선인을 위장한 악한이다. 위선은 발각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찬사받으며 악을 행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기꾼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파하나 보다. 이런 종류의 악은 보통 그 사회의 주도적 종교의 탈을 쓰고 등장한다. 신을 경외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사는 것보다 안전한 도피처가 어디있을까? 주도적 종교에 기생하며 사람들의 선의를 이용하여 불노소득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들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종교도 멀리해야할지 고민스럽다. 우리의 신중한 몰리에르는 그리 단순한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그는 현명한 클레앙트의 말을 빌려 [사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진정한 신앙을 모욕해서도 안된다네. 한쪽 극단을 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기에 걸리는 편이 나을걸세] 사기를 당하더라도 진정한 신앙을 찾아 가는 것과, 사기는 안 당하지만 진정한 삶의 표준도 얻지 못하는 것. 지혜는 결국 삶에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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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 그림과 함께 읽는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엮음, 황건 옮김 / 까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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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기번은 그의 12년에 걸친 로마멸망 역사의 저술을 마쳤다. 책제목에서도 보이듯이 이 책은 로마의 흥망사가 아니다. 즉 로마의 역사가 아니다. 어떻게 로마가 망해갔고 그것을 막아보려는 노력들이 어떻게 소진되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주제는 인류역사 전체를 걸쳐 중요한 관심이 된다. 로마가 그랬고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쳐 당시 프랑스, 또 언젠가는 영국의 순서가 올 것이었다. 로마의 경험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휴머니즘적 국가의 존망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는 루소의 관점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내부의 종교와, 외부의 강력한 도전.
 
기번은 이 이야기를 복잡다단한 역사의 사건을 꿰뚫으며 펼쳐보인다. 그는 다만 로마의 역사, 지리, 법률, 기술에만 정통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와 인근 지방의 역사, 철학,문학 모두에 꿰뚫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뿐만 아니고 나아가 로마이후 서양 철학, 문학, 역사 전반에 걸쳐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그는 로마의 멸망을 서술한다. 그의 장점은 일사천리로 내닫는 입담이다. 이는 아마도 그가 한 chapter를 머리속에서 남에게 이야기 하듯 모두 표현한 후 써내려갔다는 그의 집필 방식 때문일 것이다.

열권에 달하는 원본에 대해, 일반인으로서 접근 가능한 통로인 이 발췌본은 흐름을 놓치지 않고도 기번의 원래 서술을 크게 해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각 장마다 논의의 핵심이 잘 드러나고 너무 건너뛴다는 느낌이 없는걸 보면...대략 앞 부분은 자세하고 동로마 부분은 많이 축약하여서 유럽의 역사로 연결하여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오히려 축약본 안에, 천년의 대국이 빠르게 가라앉는 것을 보며 인간 영화의 덧없음과 그 역사가 지금 우리 시대에도 또한 진행되고 있음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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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최명관 옮김 / 서광사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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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치학의 서론이다.윤리학인 이 책의 말미에서 그는 선천적으로 꽤 괜찮은 사람만 이런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나머지 변변치 않은 사람들은(나같이) 말로는 안되고 법으로 다스려야 나아진다고 한다. 그러니 윤리학은 뭐냐고요..

이 책은 종교철학과 이와 연관되거나 상충되는 서양철학(사실 서양철학 전체다)에 관해 더 깊이 이해코자 하는 사람은 꼭 읽어볼 책이다. 읽는 내내 아퀴나스의 대작, <신학대전>의 기독교적 페인팅 이전의 골격이 곳곳에 드러난다. 아퀴나스를 모르고 가톨릭의 완덕을 알 수 없고, 그 이후 루터, 로크, 칸트, 키에르케고르 를 알 수 없듯이,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문을 지나야 보이기 때문이리라.(우리 와이프: 그 얘기 고등학교 윤리책에도 나온다네요)

이 책은 윤리를 실천하고자 읽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은 신선노름해도 썩을 도끼자루가 없거나 쇠 도끼자루 가진 사람이란다.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신적 수준의 '이성 유희'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정신적 자족감으로 행복해 진다는 말씀. (나하곤 정말 상관 없는 책이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꼭 추천하고픈 책이다. 나만 고생고생하고 읽어서 억울해서 그런건 아니고, 애들러 말처럼 분명 이 책을 덮을 때 정신의 새로운 지평 하나가 다가 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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