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2 - 에우리피데스 편
에우리피데스 지음, 여석기 외 옮김 / 현암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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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는 신을 별로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수많은 불행과 비참한 결과의 원인은 항상 신들에게 있었다. 히폴리토스에게 아프로디테가 그러했고 이피게네이아에게 아테네가, 트로이의 여인에게 헤라와 여러 신들이, 펜테우스에게 바코스, 디오니소스가 그러했다. 신이 만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계는 경험적으로 없다는거다. 그가 근대적이었다는 평가도 이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그 모든 일들은 모두 여인들을 매개로 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헬레네,메디아, 아가베, 파이드라 모두 불행을 잉태하는 원천으로 그려진다. 신에 의해 사주된 불안정한 이성의 소유자인 이 여인들은 비극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런 점은 근대적인 것과는 무척 관계 없어 보인다. 모든 이야기의 틀이 그러다보니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신의 사주, 여인의 악의, 비극의 희생, 씁슬한 신에 대한 존경표시. 결국 근대적이라는 표현보다는 당시의 종교에 냉소적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그의 경향을 읽어내는 지표가 아닐까. 에우리피데스는 여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여성이 자신의 운명 모든 것을 다 포기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여자는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것. 나누어지지 않는 유일한 사랑을 영원히.

그리스 비극중 다른 비극과 차별화되는 그의 이런 특징이 메디아와 트로이의 여인들, 바코스의 여신도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라는 제목만으로도 다른 비극작가들과 헛갈리지 않게 하는 그만의 분위기를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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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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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에 손을 댄 까닭은 이 책이 올해 들어 읽어온 그리스 비극, 서사시에 대한 귀납법적 연구의 시작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유리피데스, 호메로스를 막 읽고 읽는 [시학]은, 감칠 맛 나는 영화평만큼이나 지적, 유희적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존재하던 많은 비극을 통해 공통적 요소들, 장점들, 감동을 일으키는 기법들을 찾기 원했다.

그 해답은 플롯에 내재한 자연스런 반전과 발견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현실적 설득력을 갖는 줄거리 속에 갑자기 발견되는 급격한 반전과 발견.그리고 이로부터 분명 수 많은 서양문학의 연역적 적용물인 명작들이 쏟아져 나온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 분명 [시학]을 통해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는 연결되고, 소포클레스의 비애와 괴테, 쉴러가 만나고,에우리피데스에게서 라신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제야 수 많은 그리스비극의 주석과 해설에 왜 [시학]이 등장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시학]을 읽으며 내내 떠오른 것은 [매트릭스]와 [식스센스],[졸업]과 [에덴의 동쪽]이다. 근현대의 문학 흐름이 바뀌어도 여전히 영화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떨치는 [시학]의 세계를 이 책을 읽고 다시 되씹어보는 재미도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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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영웅들 - 신이 선택한 나라
플루타르크 지음, 임명현 옮겨엮음 / 돋을새김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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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원래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나란히 대비하여 쓴 영웅이야기였다. 즉 저자 자신의 목적이 뚜렷이 개입된 작품인 셈이다. 하지만 그 양과 읽기 위한 배경지식이 일반인에게 벅차므로 여러 축약본과 이야기 형식의 재미본들이 있다. 사실 읽고 싶었던 부분은 리쿠르고스와 솔론이었으므로 플루타르크 원래의 의도를 접고, 비교적 쉽고 여러 설명과 그림이 있는 이 책을 고르게 됐다. 청소년 권장도서답게 읽기 편하게 쓰여져 있고 책의 편집도 돋보였다.

스파르타의 아버지,리쿠르고스는 공산주의의 원형을 서양사에 심은 사람이다. 공동생활과 배급, 집단노동과 사상학습, 폐쇄적 경제 운영과 군운영의 강조. 그리스인에 둘러싸인 도리아인의 소수지배 체제의 견고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혁명이었으나, 과연 모든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사는 정체가 가능한지는 20세기에 인류가 실험한 바 있다.

다른 한편에는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이 있다. 그는 중재자다. 기득권자와 신흥중산층 및 노동자의 욕구를 토지분배를 제외한 정치참여안으로 참여민주주의의 원시형태를 고안한 셈이다. 비록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진 못했으나 분명 이 체제는 사회의 안정화와 입법 사법의 공론화를 이루어 법질서를 정착시킨 큰 발전임에 틀림없다. 21세기, 그로부터 2500년을 지나 우리는 이제 참주 정치를 끝내고 참여적 권리를 요구하는 국민과 호민관 출신의 대통령하에서, 원로원과 여러 행정관의 반대를 중재하며 나라를 꾸려야 하는 형편이다. 페리클레스보다 지혜롭고 공정한 솔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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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케이리디온 - 도덕에 관한 작은 책
에픽테토스 지음, 김재홍 옮김 / 까치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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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대표적 저술인 [담화록]의 축약본이다. 스토아 철학의 후기 대표적 인물 중 한명인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토아철학자인 로마황제 아우렐리우스나 중세 기독교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준 인물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에픽테토스에게 인간의 가장 이상적 상태이다. 그에게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이성스럽다]라는 말과도 통한다. 다시 이것은 [신(神)의 의지와 일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삶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고 자기영향권  안에 있는 일들에만 집중하는 상태이다. 그리고 자기영향 아래에 있는 일을 이성에 따라 판단한다.
 
또한 외부적 환경이란 것은 나를 어쩌지 못하고, 오직 그에 대한 반응이 나를 좌우하는 것이므로 결코 일어난 사건 자체에 대한 성급한 판단으로 격동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질병이든 사고이든 배신이든 이런 상황을 신적 결정 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판단은 냉정한 이성 (부동심) 위에서 하라는 것이다. 결국 자연이 운행하는 연극 안에 우리는 한 배우일 뿐이므로...

고통의 삶은 누구에게든 마음을 휘저어놓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체념, 그리고 의연함을 위한 나름대로의 세계관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실제적인 삶에 대한 이해조차도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가보다. 에픽테토스 자신도 일반인은 좀처럼 도달할 수 없고 왠만하면 애시당초 시작도 말라고 권유할 정도니까...소수만이 환경과 천성적 성품에 의해 가능한 삶의 방법인지 모른다. 바가바드기타의 아트만에 이르는 사람이 크리슈나에게 사랑받는 몇몇에 불과하듯이...

헬레니즘이란 유럽문명과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충돌이 가져온 산물이다. 아시아의 지혜와 그리스의 철학은 인생에 지혜의 빛을 찾고자 했다. 스토아 후기에서 불교적 인생관이나 무념무상의 가치를 발견함은 큰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구분하여 생각하는 인도, 유대의 지혜와, 그리스, 중국의 철학들이 이미 한데 녹아 로마 안에서 하나의 이론체계를 이루고 내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동의하는 공통적 윤리의 해결책은 서로 공감을 주는 모양이다. 그렇게 살 수 있느냐? 그건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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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났다 그러므로 죽음은 더이상 없다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해누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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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인생의 모델인지 모르겠다. 유복한 가정, 사회적 성공, 정직과 공평, 거기에 능력까지. 그리고 가정적이어서 어려운 아내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성공의 정상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왔다. 아마도 암 같은 것이었으리라. 몰라보게 수척해진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죽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죽음 앞에선 인간의 발가벗겨진 모습, 실존에 대한 적나라한 고통의 고백들...인간실존의 가장 큰 문제인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고뇌, 그리고 인간의 허위에 대한 분노.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사는 것이 모토였던 그는 이제 죽음의 무거운 진실 속에서 자신을 보았고, 그가 여태까지 의지하고 살았던 모든 것의 허망함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목표들이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모두 덮어 가려버리는 무서운 기만이었다. 사랑했어야 했다. 진심으로...죽음은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인생은 물러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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