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과 탈주>를 리뷰해주세요.
추방과 탈주 트랜스 소시올로지 2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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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돌아보면, 외환위기와 IMF의 구조금융과 함께 우리 사회에 강요되었던 여러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단순한 경제적인 난관의 극복을 위한 경제 분야에 한정된 변화의 요구가 아닌, 우리 사회전체, 경제적인 면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교육 등의 분야에까지의 광범위한 변화의 태풍을 동반하고 있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눈앞의 위기극복이 당면과제였기에,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숙고해 볼만한 여유가 없었겠지만, 그리 한번 둑을 무너뜨린 신자유주의적 접근방식은 이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회적인 약자들이- 미처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환경변화의 피해자가 되었고, 뭔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느꼈을 때쯤엔 이미 그에 대항할 변변한 무기하나 가지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한 상태, 바로 그런 상태가 지금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 계속해서 자기가 가진 것마저 잃어가는 이들이 있었고, 또한 우리 사회가 가진 미덕마저도 냉랭한 경제논리에 밀려나기 일쑤였다는 것도 분명 기억해야 하겠지요.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신자유주의의 팽창과정에서 끊임없이 외면당하고 밀려나던 사회적인 약자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일정부분 사회에 소망과 빛을 던져줄 수 있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으로서 강요당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이 아직 준비가 안된 사회적인 약자 -농민, 어민,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들에게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과정을 주변화와 소수화, 그리고 국가의 추방과 대중의 탈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주변으로 밀려나 소수화된 약자들이 이제는 민주주의라는 형식적인 제도에서마저 배제 당하는, 국가내의 비국민 또는 난민의 상태와 비슷한 처지로 몰리게 되고, 그런 상황은 그들이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접근자체가 어려워 결국 비합법적인 난입이나 수동적인 국가로부터의 탈퇴를 시도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적인 불안은 증가되는데 정부나 권력자가 준법을 외치게 된 현 상황의 배후에는 그러한 사회적인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08년을 뜨겁게 물들였던 촛불시위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국가로부터, 또는 권력자로부터 배제당하고 추방당하고 스스로 탈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귀환한 것으로, 자기 주장을 가지고 광장으로 난입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시위를 통해 사회적 흐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추방되고 배제되고 탈주하던 소수들이 사회적인 소통을 통해, 파편화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시각을 가지고 당면한 문제들에 목소리를 내고 새로이 접근할 수 있는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무척이나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식인과 인문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두번째 장은, 저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촛불시위의 주인공이었던 주변화되고 소수화된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어떤 삶과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기반사회라는 구호아래 지식마저도 경제적인 가치로 평가되고, 현장성이 없는 지식인 -운동하지 않는 또는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과 더욱 세속화되고 계급화 되는 대학내의 지식과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지식인의 죽음을 상정하는 저자는, 그 대안으로서의 지식과 지식인의 모습으로 실천을 통해 현장에서 함께 하는 인문학과 인문학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평화 인문학'이라는 안양 교도소에서 함께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의 경험을 통해서 사회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배움을 통해 촛불시위를 통해 보았던 그들의 자각의 목소리와 당당한 주장의 가능성,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저자가 바라는 코뮨주의 실현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을 법하고, 바로 저자는 그 지점에서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흐름을 새로이 할 수 있는 희망으로서의 인문학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 현재도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 전체가 어렵다는 말들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강도는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들에겐 아무런 완충지대 없이 연속해서 밀어닥치는 어려움들은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아래로 추락할 수 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은 더많은 이들-그러한 과정이 가속화된다면 언젠가는 나 자신마저도- 저자가 말하는 강제적인 추방 또는 자의적인 탈주에 이르게 만들겠지요. 그러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현장에서의 활동성을 굳게 붙든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저자의 의견들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문학을 통한 돈이 아닌 장미를 기꺼이 안겨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 낙망하고 있는 이들, 경제위기의 먹구름 속에 밀려드는 두려움을 묵묵히 삭히고 있는 이들, 우리 사회를 답답함으로 들여다보는 이들 또는 아무 생각없이 세상이 밀고 당기는 대로 끌려가는 이들까지도, 한번쯤 이 책을 손에 들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민할 수 있다면, 서로를 배려하고 도울 수 있는 좀 더 훈훈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는지..... 상아탑안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에서는 더 많은 인문학적인 소양들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우리사회의 아픈 부분을 감싸안고, 그 부분을 치유하고자 현장에서의 노력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는 점.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우리 사회의 모든 젊은이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주변화 소수화 되어가는 모든 이들.... 그리고 바로 당신.....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고,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민들 사이의 지적인 공감이 중요합니다. 아니 공감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지적인 소통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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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07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하나님 임재 연습 월드 클래식 시리즈 2
로렌스 형제 지음, 배응준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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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과 물질적인 성공.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제적인 능력이 중요시되고, 그러한 경향이 더 강화되는 사회적인 흐름속에서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독야청청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닌 이상은, 큰 용기와 결단과 인내가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부의 축적이나 세상에서의 성공, 질병의 회복이나 일의 성취 등을 들어가며 그러한 경향을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분명 성경을 보더라도 신실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물질적인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욥과 아브라함, 야곱과 요셉, 그리고 그 이후의 다윗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축복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모두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얽매는 일이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러한 축복이 주어졌을 때 감사를 드렸겠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축복 이전부터 그들은 삶의 순간순간을 하나님 앞에 깨어서 마음과 귀를 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로렌스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런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중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생 수도원의 평수사로 지냈고, 주방에서 접시를 닦고 음식을 만들고, 샌들을 수선하면서 살았던 사람..... 바로 주인공 로렌스 형제의 이력입니다. 그는 남들이 하지 못한 고행을 한 것도 아니고, 학문적인 업적을 이루거나 물질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는 수도원의 주방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것보다 더 비천(?)하거나 하찮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하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눈여겨 보거나 관심을 가지거나, 그의 말에 귀기울여 줄만한 구석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향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연습을 통해서 다른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니지 못한 하나님의 향기를 자신의 삶속에 지닌 사람 말입니다. 영적 거인이라는 표현이 요즈음 식으로 말하는 버릇에 물든 내겐,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느끼게 만드는 면이 있지만, 그러한 편견을 조금만 뒤로 한다면 그를 진정한 영적 거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더라도 남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고, 기도를 하더라도 거창한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은연중에 고집하는 내게는,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내용이 어찌되었든지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감당하는 단순한 믿음에 바탕을 둔 로렌스 형제의 모습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말로만 너무 쉽게 살았던 건 아닐는지..... 

 오래된 신앙서적에 붙이는 상투적인 표현일수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본다면, 수도원 생활을 하며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산 로렌스 형제의 삶을 문자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분명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의 모양새는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그 삶을 채우는 중심 -하나님 한분만으로 자족할 수 있는 마음-만큼은 신앙인으로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근본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거기에 비추어 본다면, 이 시대를 사는 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신앙인들이 그 마음속에 너무도 많은 자신의 계획과 요구 목록들을 담고 있어서 정작 하나님이 거할 중요한 공간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물어볼 일입니다.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집안 벽장이나 베란다 끝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옹색한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고, 믿음을 고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찌보면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현대의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염려의 목소리가 더 많아지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중심의 변질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과 함께한 이 기록들은, 비록 현대의 신앙서들이 지닌 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문구들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밋밋하고 지루함(?)마저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 그리고 현재의 삶속에서 누리는 천국의 삶 등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귀한 모범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나 격려, 위로가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으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질 수 있기를..... 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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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차별의 경제학 - 가격 속에 숨은 소비심리의 비밀 18가지
사라 맥스웰 지음, 황선영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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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을 사들고 한번쯤 실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보다 더 유용하다거나 만족스러움에 기쁨을 느꼈던 적이 없었던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실망이나 환호가 단순한 가격에 대한 반응인 것은 아니지만, 가격에 대한 고려도 그러한 감정들 안에 충분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질이 떨어지더라도 생각보다 저렴했다면, 우리의 감정은 그에 상응하여 눈높이로 조절될 것이고, 생각보다 비쌌더라도 충분한 효용가치를 느낀다면 만족을 얻을 수 있겠지만, 비싸기만 했지 가격 값을 못한다거나 싼게 비지떡이라고 품질이 형편없을 때면 그에 상응하는 실망이나 불평들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품 가격의 적절성이라는 측면이 그러한 느낌과 감정 변화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러한 가격의 적절함 또는 공정함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서 그러한 제품의 가격들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때가 많을 것입니다. 특히 물가가 치솟는 시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즘같은 시기에는 더더구나 그렇겠지요. 적절한 가격을 이 책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아마도 공정한 가격이라고 바꿔 말해야 할 것 같고, 여기서 공정한 가격이라는 것은 단지 싼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공정한 가격이란 단지 값이 저렴하다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공정함'이란 얻는 만큼 주는 것이며 소비자를 존중하는 태도이며,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공명정대하고 정직한 자세로 거래에 임' 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권력을 악용하지 않는'것을 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책내용의 주된 포커스는 바로 각각의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한 공정한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항들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 판매자가 비용과 노동을 투입해서 만든 것이니 만큼 판매자가가 원하는대로 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와 이유를 가지고 정해야 하며, 그러한 공정한 가격결정이 결국은 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런면에서 이 책의 우선적인 타깃이 되는 독자는 일반 소비자들이라기 보다는 물품이나 서비스의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될 것 같고,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얼마로 표시되는 것이지만, 소비자와 판매자가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고려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제학 콘서트'나 '괴짜 경제학' 등의 교양서에 어느 덧 익숙해진 이유로, 이 책을 처음 대하면서는 그런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일반인에게 가격결정이나 아니면 일상적으로 우리가 대하는 여러가지 가격정책들에 담긴 술수(?)들을 파헤쳐주고, 그러한 판매자들의 가격정책에 우리가 속아넘어가는 것이 어떤 면에서인지를 속시원하게 드러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은 지금은 그러한 소비자로서의 독자의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경제학 이야기가 아니라, 판매자의 입장에서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에 대한 일련의 충고가 담긴 책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 자체도 일반적인 것보다는 원론적인 면에서의 분석이 많이 담긴 것 같고, 글의 전개면에서도 일관성보다는 이리저리 조각들을 이어놓은 산만함을 느끼게 되는 면이 상당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대한 내용과 다른데서 오는 집중력 저하가 원인이 된 산만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뿐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가격이라는 주제에 대한 여러 장에 걸친 내용들과 마지막 장의 공정한 가격결정을 위한 전략으로 제시된 '4C 전략' -관습 기반, 경쟁 기반, 비용 기반, 고객 기반 전략 -에 대한 내용 등은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싸다 비싸다, 또는 만족스럽다 불만족스럽다 등의 단편적인 판단만을 일삼던(?) 내게, '공정한 가격'이라는 훨씬 그럴듯하게 유용한 판단의 틀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가격 결정자들에게는 소비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격결정의 기술을 소개하고 있고, 나같은 소비자들에게는  공정한 가격이라는 틀을 가지고 여러 제품들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안목을 안겨주고 있다고 해도 될 듯 합니다.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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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별이 서툴다 - 죽음에 대한 어느 외과 의사의 아름다운 고백
폴린 첸 지음, 박완범 옮김 / 공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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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이 얼마나 자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하게 될까요?..... 여기서 죽음을 대한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죽은 사람의 조문을 위해서 상가에 가는 행동을 포함한다면 어느정도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일년에 몇 차례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대면을 제외하고, 오로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아마도 일년에 한 차례도 없었던 이들이 부지기수가 아닐는지.....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과정을 가장 많이 대면하는 사람은 ..... 아이러니칼하게도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살려보겠다고 하얀 가운을 입고 동분서주하는 의사들이겠지요. 요즈음 우리 사회의 임종의 많은 부분이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사망에 대한 판정 역시 대부분 의사들의 손을 거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할 때, 대부분의 죽음의 현장에는 의사들의 손길이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의사들을 병을 치료하고 고쳐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냉정하게 또는 아무 감정의 흔들림 없이- 배웅해 주는 사람이라는 설명도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은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의학에 입문하여 파릇파릇한 학생 시절을 거치고 직접 의료현장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많은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것인지 실감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는 가망없는 환자들이 생기고 그들도 역시나 의사가 책임져줘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이 책은 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현장에서 저자가 마주하게 되었던 그런 모순에 대한 혼란과 자책, 그리고 죽음을 인정하고 그 과정을 의사답게 품고 따뜻하게 환자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하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감동스럽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은 멋지게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을 해내는 것이 의사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치료와 완치라는 환상 너머에 있는, 어찌보면 의사의 입장에서는 치욕스러운 사실일 수도 있는 '치료 가망 없음'과 '죽음에 이르고 있음'이라는  딱지를 달게 되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해야 하고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하고 이있는 저자의 모습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이들의 말못할 고뇌의 한자락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기술, 더 나은 치료법, 최신의 장비..... 아마 현대 의학의 발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외침의 다른 편에는 의료의 탈인간화라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분명 환자를 전인적인 위치에 놓기보다는 질병을 가진 객체로 놓고 질병을 타깃 삼아 치료를 시도한 현대 의학은 여러가지 면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과는 갈수록 의술의 적용이 더 많은 검사를 더 많은 장비에 의존해서 실시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경향에 물든 현대 의학이 갈수록 환자라는 한 사람의 인간은 철저히 외면하고, 객관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과정의 정당성만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당당함은 언젠가는 한 인간이 이르게 될 '가망이 없거나 죽어가는 상태'에 이르러서는 많은 회의와 자책을 남기고, 의사들에게는 '기술적인 지식에 매료되고 파묻히는 데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적절한) 마음가짐, 숙련된 솜씨, 행동 양식'을 배웠어야 함을 깨닫게 만들겠지요. 저자가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다음은 저자가 그러한 상황에서 고통을 제거해 줄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인간적인 교감이라며 인용한 하시브 아운의 글과 그런 상황에서 처한 의사들의 입장에 대한 저자 자신의 솔직함을 담은 글입니다.

 - "좋은 의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우리'는 함께 그것에 대처해 나갈 것입니다."..... 절망적이거나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치료 방법이 적은 환자일수록 의사가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료 방법이 없다면 고통 완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 삶의 마지막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미련을 해소하고 해법을 찾으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 아파서 치료받을 때만큼 이런 감정이 잘 표출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런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표는 곧 사랑의 징표이자 희망의 징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사들조차 희망에 이끌려 시행한 치료에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많은 의사들은 동료나 자신이 기술에 심취해 내린 진료 결정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를 직접 목격하고 나서 스스로를 과잉 치료 때문에 절망에 빠진 환자처럼 여긴다. 만약 의사가 가망 없는 환자로 진단받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과연 어떻게 할까? 의사들의 십중팔구는 생명 유지 요법을 제한하거나 거부한다. 따라서 이런 의사들은 진료 중단을 요구하는 환자의 의견을 당연히 들어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사들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수 있다. 

 두번째 글에는 환자 보호자나 의사가 환자를 쉽게 보낼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의사들이 가망이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끝까지 매달리는 이유의 한 측면을 드러내 주는 글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결국 이러한 이유들은 삶이라는 한 측면에서만 환자를 바라 보았기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배려(?)를 배운 저자의 마지막 글에 담긴 '나는 그들의 삶을 위해, 그리고 죽음을 위해서도 존재했다.' 는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죽음까지도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는 의사, 결국 그런 의사가 정말 좋은 의사라는 사실과 그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하고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얀 가운을 걸친 모든 이들이 이제라도 알 수 있기를..... 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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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바이오 사이언스 : 유전과 생명공학 -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쇼, 유전의 비밀 하리하라 사이언스 시리즈 2
이은희 지음 / 살림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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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DNA 감식을 통한 범인의 식별, 복제 동물의 탄생...., 지금의 우리 세대에겐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그리 낯설지 않은 용어들입니다. 그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 말인지, 그리고 미래에 어떤 희망을 말하는 것인지 등을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비록 한여름밤의 꿈처럼 어느 날 갑자기 우르르 무너져내린 황우석 박사의 행적이, DNA나 염색체라는 용어정도를 이해하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사건의 요란스러움만큼이나 크게 생명공학의 최첨단에 나서있던 용어들을 각인시켜 놓았을 뿐더러, 인기있는 미국드라마 CSI가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들을 통해서 정말 환상적으로 범인을 잡아내는데 사용되던 감탄을 자아내던 방법들의 주축이 바로 생명공학과 연관된 분야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린 학생들조차도 이러한 용어들이 유전학의 처음을 알렸던 멘델이 주창한 우열의 법칙이나 분리의 법칙, 독립의 법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보다도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기초없이 모래위에 지은 집은 미래가 뻔한 법..... 유전학이나 생명공학에 대한 기초가 없이 그러한 개념을 안다는 것은 아주 멀리서 또는 텔리비젼의 모니터를 통해서 방송되는 단풍을 바라보며 아주 멋있다고 감탄하는 것과 다를바 없지 않을는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러한 안타까움을 해소해 주는, 즉 단풍이 든 숲을 마음껏 거닐어 보면 알수 있듯이, 유전학과 생명공학에 대한 기초와 시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발전 과정과 현주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절망에 대한 내용까지 이 분야에 담긴 줄기를 따라가며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진면목을 가늠케 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전과 생명공학, 그리고 생명체를 논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DNA 일 것입니다. DNA의 역할이 규명되고, 구조가 밝혀지면서, 생명공학이라는 분야의 매력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DNA에 대한 자유로운 조작과 이해가 더해지면서 이 분야는 이제 인류의 미래의 한 축을 책임지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순전한 지적 호기심에서 바라본다면, 개인적으로는 멘델에서 시작한 유전학이 더디게 발전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며 생명의 신비를 하나씩 벗겨가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왓슨과 크릭, 윌킨스와 프랭클린, 그리고 폴링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기까지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고 극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 이후의 PCR법의 발견이라든가, 유전자 치료의 시도와 성공 등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도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들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 분야들은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 되어버려 따뜻한 사람의 온기보다는 딱딱하고 차가운 테크놀러지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는 편견이 그러한 생각의 근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로 DNA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멘델 이후 유전학이 태동하고, 외면받던 DNA가 유전물질로 규명되고, 그 구조가 극적으로 밝혀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염색체와 돌연변이, 유전자속에 숨은 질병들과 우생학이라는 괴이한(?) 학문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더디지만 꾸준한 발전과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과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면과 해악들에 대해서 반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유전자가 약속한 미래'를 통해서는, DNA가 RNA를 만들고, RNA를 통해서 단백질이 생성되는 과정에 대한 이론인 센트럴 도그마의 확립과 함께 유전자 조작이 시작되고, 그러한 기술적인 진보를 통해서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의 배양 등에 대한 가능성이 하나씩 현실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희망과 절망의 메시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DNA 라는 줄기를 따라가며 유전학과 생명공학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기초지식의 차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난이도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는 하겠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렵지 않게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을 알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는 DNA 감식, 유전자 치료, 줄기세포치료, 유전자변형식품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삶 가까이에 다가온 생명 공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사실 뿐 아니라, 조금더 생각해 보면 우리의 근원인 생명 자체에 대한 비밀과 의미,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가질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전과 생명공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많은 이들-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통해서 생명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신비로움을 깨닫고, 그 소중함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알찬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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