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 세계 경제를 비추는 거울
도시마 이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강호원 해제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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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실제 본인이 한 것인지 많은 의심을 받긴 하지만, 어렸을 때, 최영 장군의 전기 또는 그의 일생을 거론하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던 말입니다. 여기서 황금은 재물 또는 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옛이야기를 보면 '금은보화'라는 말로 부가 표현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영광스러웠던 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던 솔로몬 성전은 황금으로 기둥을 입혔고, 기타 여러 고대 유물이나 왕국의 번성을 이야기할 때, 금으로 만든 유물이나 금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거론되고는 합니다. 현대의 일반인들에게는 황금이 자신의 부에 대한 척도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돌잔치에 등장하는 반지나 여성들이 치장할 때 사용하는 장신구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겠지만, 여하튼 옛부터 황금은 부와 권력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지금의 의미로 말한다면 한 사회의 경제력 또는 번성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근대에 이르러서는 금본위제에 의거한 화폐제도가 실시되면서 금은 말 그대로 경제의 중심 그 자체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서의 황금의 경제적인 의미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젠 자국의 화폐가치를 금에 연동시키는 금본위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어졌고, 흔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달러라는 강력한 기축통화가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그 흔들리는 틈새를 또 다른 통화인 유로나 엔, 위안화가 호시탐탐 노리며 세력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지금, 일반인들이 실생활에서 그 영향력을 느끼기에는 거리가 있지만 세계경제가 출렁일 때마다 금값 폭등이라는 소식이 그나마 아직까지 금이 우리의 경제에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최근의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는 뉴스들같은 소식들이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는 금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IMF 위기때 거국적으로 실시된 금모으기 행사를 통해서 모든 국민이 국가가 처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힘을 모았던 사건은 아마도 금이 가진 경제적인 가치를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몸으로 느끼게한 사건이었던 듯 합니다. 아이의 돌반지,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와 여러 장신구, 그리고 금으로 만든 치아 등등.... 물론 그 중에는 금으로 만든 돼지니 거북이니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국민들의 장롱 구석에서 서랍에서 나온 금은 그런 형태의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고, 그것들이 모여서 -물론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컷을수도 있겠지만- 나라의 중대한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에도 여전히 황금이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에는 떠들썩하게 경제적인 부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소리없이 강하다'는 어떤 차의 선전문구처럼 조용히 자신의 가치를 품고서 중요한 순간순간 내공을 보이고는 하는 황금..... 이 황금이 현대에 이르러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경제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내용입니다. 

  저자는 세계금협회 한일지역 대표로, 스위스 은행의 귀금속 딜러였고, 현재는 세계금협회에서 금에 대해 조사연구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경력을 가진만큼 저자는 서문에서 금시장에는 전 세계의 정치, 경제 동향이 응축되어 있는 '세계 정세을 투영하는 거울이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달러나 다른 통화들의 가치변동, 원유나 기타 원자재, 또는 곡물 등의 상품 가격등에도 동일하게 표현될 수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2000여년간 경제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감당해 오던 금에 대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분명 금에 필적할 만한 다른 것은 없다고해도 될 듯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금이 아직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화려한 매력이 있다거나 주식이나 기타 원자재처럼 현대적인 의미의 투자상품으로서의 일반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위세를 발휘할 때는 뒤로 물러났다가 세계정세가 불안해질 때마다 그 중심에서 묵묵히 가치를 지닌 무게중심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곤 하던 시장에서 금이 가졌던 가치에 대한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사건들에 담긴 금의 경제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독자들에게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즉 투자상품으로서의 매력을 지닌 황금, 또는 잘 투자하면 대박을 안겨줄 수 있는 황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금 가격 변동의 배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시 금이 통화의 기본으로 주목받는 이유, 그리고 금시장을 움직이는 세력들과 나라들이 누구이며, 앞으로 금시장에 영향을 끼칠만한 변수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여전히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금에 대해 그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고 하겠습니다.   

 인류가 '교환을 기반으로 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 뒤 다른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척도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금이, 달러가 시대를 풍미하던 시절에는 경제의 뒷전으로 어정쩡하게 밀려나 있다가 경제적인 위기시에나 겨우 자신의 존재가치를 조금 과시할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세계정세의 변화나 각국의 정책방향에 따라 현재 치솟는 금의 가치가 예전처럼 곤두박질 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 금본위제 시대에 누렸던 화려한 영광은 지금의 어느 나라도 과감하게 그러한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누리기는 어려운 과거의 기억일 뿐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안전자산'이라는 표현에 의문이 생기기도 하지만, 저자가 누차 강조하던 '유사시의 금'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금을 경제의 측면에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차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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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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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의 성대한 결혼식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의 마지막에서마저,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마들렌 성당의 돌계단을 내려가는 신랑 조루주는 자신의 신부가 아닌, 정부 드 마렐 부인과의 은밀한 관계 뒤에 보곤하던 거울 앞에서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세와 성공의 단맛을 알기 시작한 후부터 그에게는 진실이나 정직, 충실함이나 품격 따위의 말들은 그저 출세를 위해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만 꺼내서 자신을 꾸미는데 사용하는 카멜레온의 피부빛과 다를바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오로지 용납되는 삶의 신조는 '오로지 모든 것은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듯 한데, 이리 표현해 놓고도 너무 밋밋한 진부함이 느껴질 뿐입니다.  

 자신의 옛 전우이자 신문사 <라비 프랑세즈>의 정치부장인 포레스티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매달 눈앞에 닥친 궁핍을 해결하고 그때 그때의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며, 세상을 향해 반항과 분노의 눈길을 보내곤 하던 평범한 철도 사무실의 직원에 불과했던 주인공...... 하지만 자신의 친구의 손길에 이끌려 시작한 신문사 생활에서 깨닫기 시작한 성공에 이르기 위한 비열함과 모함, 협잡 등은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 가고,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그의 성공도, 지위도 위로만 솟구쳐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자신의 친구의 주검을 앞에 두고서도 출세를 위한 계단이라고 생각되는 친구의 부인을 유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또한 자신도 뻔뻔하게 정부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유혹했던 자신의 부인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쓰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과감히 이미 인지하고 있던 그녀의 외도를 적발하여 매장시켜버리기를 마다하지 않고, 또 다른 출세의 계단이라 생각한 신문사 사장의 부인을 유혹하여 은밀한 관계를 맺었으면서도 더 높고 원대한(?) 결정적인 출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자 아무렇지 않게 그 딸을 유혹해서 납치하여 신부로 맞이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잡을 마다하지 않고, 그리고 그러한 야망을 이룬 결혼식 에서는 그 신부를 곁에 두고서 자신의 정부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맺은 모든 관계들을 송두리째 성공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그리 활용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분명 일반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분노 또는 구역질마저 느끼게 만드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씁쓸함 또는 허탈함을 느끼게 만드는데도, 작가는 그의 인생에 아무런 징벌이나 어려움을 내리지 않고, 그가 원한대로 성공가도를 씽씽 달리게 만들면서 그의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철저하게 징벌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뻔뻔하게 사는 그의 모습을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묘사하면서, 결국 우리가 매일매일 대하는 인생은 자신의 작품속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과 다르지 않은, 그렇고 그런 것이지 않느냐고 말하는 듯 합니다. 또한 읽는 독자들의 마음 속에도, 아닌 듯하지만 작품속 인물들과 똑같은 속물근성이 숨어있어 자신의 것을 이기적으로 먼저 챙기고 남모르게 모함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남이 그러면 비방을 하거나 모욕을 가하는 그런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조롱섞인 힐난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던 주인공에 대한 마음속 힐난과 씁쓸함은 어느새 내 마음을 파고 들어 스스로에게 의심스런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당신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인공만큼이나 뒤틀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떤 비열한 짓거리도 마다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그런 욕망과 비열함이 당신의 본성 속 어딘가에도 숨죽이고 숨어 있으리라는 누구라도 쉽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아니하고 마음속을 들여다 볼 듯이 확대경을 코앞에 들이대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인공 벨아미, 조루주 뒤루아처럼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정직과 성실함을 모두 뒤로하고 결국은 성공과 출세라는 욕망을 향해 지금도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 당신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니냐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처벌이나 실패가 아닌 성공과 출세를 누리는 모습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눈길은 매우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가십과 괴소문들도 결국 이 소설 속 요지경과 다를바 없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 우리가 어릴 적에 배웠던 것들을 삶속에서 진실로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과 사회가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어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터이니..... 결국 소설 속의 벨아미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내 안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배회하고 있을 것이고, 그러한 스스로의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인간 존재를 생각하면 소설에서 느꼈던 씁쓸함과 허탈함이 오롯이 되살아 나는 것을 어이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인생은 다 그런 것이다라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그 뒤에 묻어나는 아쉬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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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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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호황기를 만나 많은 수입을 올리고 멋진 집과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던 남자, 아이들에게 멋들어진 아빠였고 자신의 아내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남편이었던 한 세일즈맨,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던 삶을 살았던 세일즈맨 윌리..... 한때 희망을 가슴에 가득 안고 꿈꾸는 사람이었던 주인공 윌리는,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든 노인의 모습으로 힘겹게 자신의 세일즈 가방을 들고 무대에 등장합니다. 수십, 수백, 아니 하루 종일을 자동차로 달려가도 그의 세일즈를 반겨주는 사람이 없이 고군분투하는 늙은 세일즈맨으로, 회사에서 월급도 제대로 못받고, 그때 그때 올리는 실적에 따른 커미션과 부족한 부분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성공한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남편으로, 그리고 다 자랐지만 가정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무능력자와 건달인 두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그는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과거의 화려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과 성공을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던 큰 아들 비프에 대한 회상, 고향을 떠나 큰 성공을 거두어 그에게 자랑과 희망과 꿈의 실체가 되었던 형 벤의 환영이, 앞뒤가 꽉 막혀버린 늙은 세일즈맨으로서의 자신의 현실과 교차되며 그에게 닥친 삶의 곤궁함과 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습니다.    

 좋은 호시절이 지나고, 불황이 찾아오고 나이가 들면서 회사에서 냉정히 버림받는 윌리, 그리고 그 여파로 사회와 가정에서 마저 건강한 관계가 무너져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분명 지금 현실속에서 우리가 겪는 직장과 사회와 가정사의 이면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자살을 감행하고, 쓸쓸하게 마감되는 그의 장례식의 모습속에는 한 사회의 조직원으로서 한때를 치열하게 살았지만, 한발짝, 두발짝 중심에서 밀려나 소외되고 버림받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윌리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가 사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충격적이라거나 비인간적이라거나 비도덕적이라기보다는 그냥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밀어내는 사람들도 밀려나는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한 세상사의 이치에, 사람들사이의 애정이나 존경보다는 물질의 가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에 대해 묵언의 동의를 하고 자신의 삶을 그 안에 기꺼이 던지고 살아왔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그러한 동의를 하고 산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몰락 과정에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에 집착하는 윌리의 모습을 보면서 단지 그런 모습이 물질만능시대의 힘없는 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스스로에게 많은 불편감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한 세일즈맨의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이 단순히 이 시대가 우리에게 지우는 짐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기력함만이 아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잘나가던 시절의 외도로 전도유망하던 아들의 장래를 결정적으로 망쳐버렸던 사건, 비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서지 못했던 나약함, 윌리의 기억속에 남겨진 호시절에 물질적인 풍요 이상의 것에 대한 성찰을 가지지 못했던 영혼이 마취된 삶의 모습 등에서, 단지 이 작품을 물질만능시대에 소외당하는 인간에 대한, 허망한 꿈을 좇아 헤매다가 스러진 한 소시민에 대한 비극이라고 단정할 수 만은 없는, 차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더 진지하고 영리하게 삶을 꾸리지 못한 한 인간, 한 소시민으로서의 윌리, 그리고 지금 현실속에서의 삶의 안일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작가의 예리하고 냉철한 지적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 작품 속에 교묘하게 섞인 듯한, 삶에 대한 찬양과 죽음에 대한 진혼곡의 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윌리처럼 현실에 취해서 자신을 세상이 가는대로 흘러가게 만들었을 때, 영혼을 돌보지 못하고 물질의 유혹에 자신의 영혼을 모두 넘겨 버렸을 때, 결국 우리의 삶 역시 그의 마지막처럼 죽음으로 스스로 돌진하여 퇴장당할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조금 더 지혜롭게 생각하고 조금 더 진지하게 삶을 설계하고 가꾼다면, 죽음이 유혹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삶을 향해 더 멋지게 돌진할 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결국 한 사람의 의지보다 시대의 조류가 더 매섭게 느껴지기에, 많은 윌리와 같은 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이 시대를 사는 소시민들의 죽음에 이르는 진혼곡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그 이면을 생각하고 느끼고자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또다른 예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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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심리학 가위바위보 - 일상 속 갈등과 딜레마를 해결하는
렌 피셔 지음, 박인균 옮김, 황상민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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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섬 게임만 아니라면 서로 협력하는 해결책만 찾을 수 있다면, 언제나 쌍방이 승리하는 게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등의 개념은 우리가 서로 협력할 때는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기심의 덫에 빠져 협력을 포기하고 상대를 속이거나, 양측이 모두 서로를 속일 때 발생하는 딜레마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겪는 갈등과 딜레마 상황으로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즉, 가족이나 직장생활, 기타 여러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형성되는 개인이나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갈등 상황들을 게임 이론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또한 게임이론을 통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대면하는 사회적 딜레마의 덫을 일곱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갈등 속에서 발생하는 '죄수의 딜레마', 집단 내 여러 쌍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 사람들이 공동체의 자원에 기여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할 때 발생하는 '무임승차', 벼랑 끝 협상으로 표현되는 '치킨 게임', 나머지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지원자의 딜레마', 각자가 원하는 것을 따로 하는 것보다는 서로 함께 하려고 했을 때 발생하곤 하는 '성 대결', 그리고 집단 구성원이 서로 협력하면 보상이 큰 모험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협력을 깨고 단독으로 행동하면 보상이 작지만 성공이 확실한 경우를 말하는 '사슴 사냥', 이상의 일곱가지 상태를 딜레마의 상황으로 파악하고 먼저는 이러한 덫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우리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뢰와 협력', 저자가 앞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딜레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말하는 해결책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하고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말인데,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발적 이행 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나 상대방이 배반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믿어도 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자발적 이행 전략의 전형이 바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저자는 자연계에 분포하는 절묘한 3의 균형에 대해서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자발적 이행 전략에 의한 균형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의식적으로 협력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각각의 딜레마 상황에서 상대편으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얻어내고, 또한 그러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자는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실제로 상대방에게 우리가 한 약속이 믿을 만한 약속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필요한 전략으로 '변심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을 만들'거나 '빠져나갈 구멍을 계획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을 통해 상대편이 신뢰할 만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대편이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하는 협력 유지를 위한 게임의 법칙으로는 영혼이 없는 가상세계에서는 상대편이 협력할 때는 협력을 유지하고 배반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하는 '맞받아치기 전략' 이지만, 실생활에서 우리의 행동방식과 좀더 가깝고 또한 전략적으로 맞받아치기 전략보다 우세한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 Win-Stay, Lose-Shift'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는 전략과 '맞받아치기 전략'의 중요한 차이점은 이전 상황에서 서로가 배반으로 손해를 보았다면 대립을 유지하기 보다는 다시 협력을 제안하여 상대의 협력을 얻어낸다면 다시 협력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전략 외에 저자가 소개하는 협력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게임을 바꾸는 방법으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것과 양자 게임이론의 적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실생활에서 대하게 되는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한 근본원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저자가 소개한 '일상생활에서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유용한 열 가지 비법' 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기면 머물고 지면 움직이라. 

 2. 다른 참가자를 영입하라. 

 3. 일종의 상호 협력 관계를 형성하라. 

 4. 협력에서 이탈할 경우 손실을 입도록 미래의 선택권을 제한하라. 

 5. 신뢰를 주라. 

 6. 손해보지 않고 혼자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라. 

 7. 추가 보상을 제공하여 협력적 제휴를 구축하고 유지하라. 

 8. 일곱가지 치명적인 딜레마를 알고, 여러 참가자의 이득과 비용을 재구성하여 딜레마가 사라지게 노력하라. 

 9. 재화, 책임, 일자리, 불이익까지 분배하여 불만이 없게 하라. 

 10. 큰 집단을 더 작은 집단으로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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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에릭 J. 카셀 지음, 강신익 옮김 / 들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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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료의 비인간화', 실제로 의료의 본질이 질병을 앓는 환자와 그 질병에 대한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인과의 인간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기에 의료의 비인간화라는 말에서 미묘한 모순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과정이 비인간화 되어간다는 것이 이리 모순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현대의학이 발전할수록 그러한 염려는 더 커가는 듯 합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환자에게서 질병과 병원체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여 취급하고, 결국 각각의 질병을 포커스 삼아 해당 질환의 원인과 병리, 그리고 임상증상과 진행과정, 치료와 향후의 결과나 합병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현대의학은 많은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초래된 필연적인 문제가 곧 '의료의 비인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삶과 환경, 인격 등은 철저히 무시되고 환자가 지닌 질병에 대한 것만이 의료인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버린 결과,  결국 고유한 특성을 지닌 한 개체로서의 환자의 정체성은 무시되어버리고, 물질론적인 관점에서 분해되고 해석된 육체와 질병만이 관심의 대상으로 남겨집니다. 그리고 의사도 간호사도 또한 여러 의료인들은 환자 자신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질병이 우선적인 관심사일 뿐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병원에서는 환자의 눈물과 아픔, 두려움과 분노, 좌절감과 고립감 등은 무시해도 좋을 부수적인 것들도 취급되기 일쑤입니다. 환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통받는 그 환자가 감정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현대의학은 너무 멀어졌고, 지금도 질병과 그 질병을 찾아내기 위하 테크놀러지, 질병을 박멸하기 위한 치료법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의 주된 관심사와 노력들은 그러한 간극을 더 넓히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통의 본질과 의학의 목적'이라는 책의 부제와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이러한 의료의 비인간화에 대한 우려의 눈길을 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근원적인 의료의 본질과 환자-의사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현대 의학이 중시하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행위가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풀려고 하는 문제를 제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임상의사들은 특정한 환자는 특정한 환경에서 특별한 시간에 치료하며, 따라서 그들은 그 개인과 시간에 대한 개별적 정보를 필요로 한다는, 잘 알려진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지만, 결국 질병으로 인한 고통의 중심점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환자가 있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단순히 육체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에게 가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또한 그러한 이해를 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의사가 대하는 환자의 병의 진행에까지 지대한 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객관성과 과학적인 관찰, 물질론적인 관점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 환자의 질병상태와 신체적 기능 이상에만 간심을 가짐으로써 결국을 환자를 소외시켜버리는 것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현대의학이 잃어가고 있는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 감정을 가지고, 고통과 절망, 자기 자신과의 갈등 및 고통에 따르는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환자를 본래의 위치로 복구시켜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주장을 담은 이책은, 실질적으로는 의료현장에 서있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종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 지나온 길을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또한 자신들이 대하고 있는 질병과 환자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 한권의 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겟지만, 이 책이 많은 의료인들에게 읽혀서, 병원에 가면 가슴이 따뜻한 의사, 환자의 눈빛을 이해해주는 간호사, 그리고 고통 당하는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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