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감 - 음식.옷.집의 모든 것
오치 도요코 글, 하라노 에리코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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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는 어머니들이 대부분의 살림살이를 꾸려 나갈 것입니다. 부부간이라면 남편보다는 부인이 더 많은 일들을 할 것이고, 좀더 시간이 지나 자녀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남편들이나 아이들이 더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와주지 않느니만 못하다거나, 돕고 싶어도 할 줄을 모른다는 말을 듣기 십상일지도 모릅니다.... 살림을 해 본적인 없어서..... 이건 어떻게 할 줄 모르겠어서 등등..... 

 물론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멋진 그림이 있는 도감을 생각하고 아주 큰 책을 생각했는데 보통 보는 책보다도 더 작아서 조금 놀랍기는 합니다. 하지만 내용만은 아주 꽉차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생활도감이라는 제목이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린이 책인데, 몇가지 내용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서 주섬주섬 챙겨 놓고 말았으려니 하는 생각을 한것이 사실이었는데, 실제 책을 펼쳐보면 그런 안일한 생각이 싹 가시게 됩니다. 단지 아이들이 읽을 거라고 봐주고 시늉만 낸 것이 아니라, 어떤 한가지 주제를 다룬다면 그 일은 우리 어머니들이 하는 것만큼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세세하고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실제로 해보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각 내용을 읽어보면, 실제로 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음식편에서는 요리의 기초인 전기밥솥에 밥하기부터 시작하여 간 맞추기, 음식 궁합 등을 소개하고 있고, 요리도구 부분에서는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 칼, 그릇 등 각종 기구를 사용하고 다루는 방법을, 요리재료에서는 여러가지 고기와 생선, 달걀, 채소, 통조림, 빵 등을 선택하고 조리하는 법을, 요리 만들기에서는 재료를 썰고 굽고 볶고 찌고, 튀기고 얼리는 법 등을, 그리고 식사시의 예절에 대한 상식들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옷편에서는 세탁과 다림질에 대한 기초부터 완성까지, 각종 옷을 손질하고 정리정돈하는 방법, 바느질과 재봉틀 사용법과 단추달기 등의 수선법, 옷을 멋지게 골라서 입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집편에서는 청소의 시작에서 마지막 정리까지, 집안의 여러가지 것들을 고치고 때우고 바르고 수리하는 법과 말끔하게 정리정돈하는 법, 사고시의 대응방법, 기타 쓰레기 수거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을 보면 생각보다는 방대한 내용에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집안일을 그리 띁어보니 이리도 다양한 종류의 노동과 기술이 섞여 있음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리 다양한 종류의 집안일을 제대로 알고 도울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충분히 준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면에서는 아직도 살림에 서툰 어머니들-부분적인 약점이 분명이 있을-에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살림의 지혜를 배울 수 있게 도울 수도 있겠고, 아직도 굼뜨거나 몰라서 집안일을 돕기가 두려운 남편 또는 아버지들에게는 기초(?)부터 착실히 다질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자료의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해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아이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나름 흥미롭게 들여다 보면서 배울 것이 많은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나부터 읽고 솔선해서 도와야 한다는 말인데....^^ 도울거면 열심을 내서 제대로 알고 돕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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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 2009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생각하는 책이 좋아 6
인그리드 로 지음, 김옥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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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밉스네 가족에게는 정말로 특별한 비밀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13살 생일이면 생기는 특별한 능력-초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지진을 일으켜 땅을 넓히고, 할머니는 공중에 떠다니는 전파를 잡아 병에 잡아넣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고, 큰오빠 로켓은 몸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능력을, 그리고 작은 오빠 피시는 물이 있는 곳이면 비구름과 태풍을 몰아오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가 열세살 생일이 되면서 생긴 능력들이고 그러한 능력들을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고 다스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가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오빠가 아직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피해 바다나 호수 강과 멀리 떨어져 있고 마을과도 멀리  외떨어진 곳에 살고 있고, 13살만 되면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런 가족의 일원인 밉스가 열세살 생일을 맞이하기 이틀전에 시작됩니다.  

 열세살 생일을 맞아 자신에게도 멋진 능력이 생기기를 기대했을 밉스에게 생일 이틀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족과의 멋진 생일파티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은 당연하고,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생일날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밉스는 아버지를 건강하게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을 바라게 됩니다. 열세살 생일 아침, 동생의 죽은 줄 알았던 거북이가 깨어나고. 잠꾸러기 동생이 일찍 깬 것처럼, 자신에게 누군가를 깨울 수 있는 초능력을 기대하며 생일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초능력으로 아버지를 깨우겠다는 생각으로 몰래 레스터 아저씨의 버스에 올라타고 아빠가 있는 병원에 가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 갑니다. 함께 버스에 탄 밉스와 피시, 샘슨, 목사님의 딸과 아들(?)인 바비와 윌, 그리고 레스터 아저씨와 릴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아버지를 깨우기 위해 병원으로 가려고 했던 밉스의 여행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듯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밉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그리도 고대하던 아버지를 깨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나 그림 등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망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 아버지 앞에 서서 자신들에게 있는 초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에게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삶에서 중요한 것은 번개를 일으키고, 폭풍을 일으키는 그러한 눈에 띄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관심과 사랑과 같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러한 것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더 특별하고 의미있는 비밀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겉으로는 밉스가족의 특별한 초능력과 관계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밉스 어머니의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재주가 있거든. 하지만 그런 재주가 왜 생기는지 정확히 몰라. 어떤 사람은 딸기 잼을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잘 만들어. 또 어떤 사람은 언제 씨를 뿌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서 곡식이 한여름 뜨거운 볕에 설탕처럼 달콤하고 맛있게 영글게 한단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초능력이 있고, 그것은 어떤 비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서는, 번개를 치거나 폭풍우를 몰아치는 등의 공상소설속의 초능력 인간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읽는 이들에게 모두가 조금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밉스의 아버지가 깨어나고  완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한가족을 이루고 단란하게 사는 모습을 통해, 이 가족의 진정한 비밀이란 로켓오빠의 전기나 피시 오빠 폭풍우, 할아버지의 지진이나 엄마의 완벽함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빠의 삶의 자세, 그리고 아빠를 향한 밉스와 가족들의 간절한 사랑과 같은 것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대단한 초능력자들이 모인 밉스네 가족에게도 정말로 비밀스러운 것들은, 우리가 가족을 이루며 단란하게 가꾸어가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들이고 진정으로 그것들이 중요한 것들임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그런 초능력을 지닌 훌륭한 존재라는 사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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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4
이솝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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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꼭 바르고 곧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때로 센바람이 불어오면 갈대처럼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적들 앞에서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일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방편을 삶의 중심에 놓고 매번 그리 산다면 그것 또한 지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으로 각인된다면 사회생활에서 '왕따'가 되기 십상일테니 말입니다. 결국 세상살이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중용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대쪽같이 한평생을 살아내서 존경을 받는 위인들도 있지만, 결국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삶의 중심은 유지하되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들여본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우화들은 평범한 이들에게 삶속에 담긴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고, 지혜롭게 사는 방식을 짧지만 강렬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을 마냥 선하게만, 정직하게만 살라고 하지 않고, 때로는 다른 이의 어려움 앞에 냉정하게 돌아서라고 하기도 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결국 화를 초래하는 근원이 될수도 있다고 하고, 본래 고약한 성품을 바로잡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인 삶속에서의 진실, 또는 지혜를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솝 우화>에 대해서라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몇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새에게 접시에 담은 음식을 대접하였다가 황새로부터 목이 긴 병에 담긴 음식을 대접받는 것으로 대갚음 -사전에는 되갚음이라는 말은 없답니다^^- 을 당한 여우 -어렸을 때 이 장면을 보면서 황새는 어렵겠지만 꾀많은 여우가 왜 병을 뒤집어 나발을 불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내기를 하는 북풍과 해님, 시골쥐와 도시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그물에 걸린 사자를 구한 생쥐 등등. 그래서 우화집이라면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어울리는 그런 책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굳이 이리 읽노라니 어른인 내게도 얻을 만한 이야기들이 보입니다. 선악을 떠나서 인간 본성을 이리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는 없겠다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다시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이들이 자랄때 꽤 길게 각색되었던 동화들이었다는 기억인데, 단 몇줄로 서술된 원문을 보면서는 이 간단한 이야기를 뼈대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살을 붙인 각색자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감탄사도 발하게 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세상사의 이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도 보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볍게 나눌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거리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개된 우화들이 세상사의 핵심을 간결하게 풀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어렵게 읽어내던 책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안겨주기도 하고, 머릿속에 많은 지혜를 더해 주는 듯도 하여, 나이가 들어서도 곁에 두고 짬을 내어 읽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항상 <유클리드 기하학>과 <이솝 우화집>을 끼고 살았다고 하니 아마도 이러한 즐거움과 이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벌써 꿰뚫어 보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솝 우화>와 무관하게 이 책 자체에 대한 한두가지 불편함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원문 아래 덧붙여진 해설(?)에 대한 것인데, 본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해석과 이해의 여지를 없애버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뚱맞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작품해설을 보면 이 책의 원본-펭귄 판 핸드포드 번역-에 해당되는 책자체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어차피 그러한 번역본들도 다른 원본을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몇가지 판본을 사용하더라도 세계문학전집에 어울리는 편집의 묘를 살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번역상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면입니다. 새 문학전집을 펴내면서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읽는 도중 곳곳에서 느껴지는 문체의 부자연스러움이나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의 낯섦이 읽는 묘미를 많이 감소시킨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암여우가 암사자를 비웃었습니다. 새끼를 한 마리밖에 낳지 못한다고 말이지요. 암사자가 대꾸하였습니다. "한 마리지만, 사자란 말일세." -p28, 양보다 질 

 개가 토끼를 숲에서 쫓았습니다. 익숙한 사냥개였지만 재빠른 발에 뒤지고 말았지요. 염소지기가 개를 비웃었습니다. "저렇게 조그만 것이 너보다 빠르구나!" 개는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얼 잡으려고 달리는 것과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리는 것은 전혀 다르지요." -p147,  큰 차이 

 임종을 앞둔 농부가 자기 아들들이 훌륭한 농사꾼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들을 불러놓고 말했지요. "애들아, 나는 곧 이승을 뜬다. 너희들은 내가 포도밭에 숨겨놓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줄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아들들은 포도밭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땅 구석구석을 팠습니다. 감추어둔 보물은 찾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깊은 골을 판 포도 넝쿨은 굉장한 수확을 올렸습니다. -p197, 귀중한 발견 

 좁은 길을 걸어가다가 헤라클레스는 사과처럼 생긴 것이 땅 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부수려고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아까보다 곱쟁이로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더욱 세게 밟고 또 몽둥이로 쳤습니다. 그것은 더욱 커져서 온통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를 내던지고 놀란 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테나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하고 아테나는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싸움과 말다툼의 정신입니다. 도발하지 않는 한 그것은 처음 모양으로 있지요. 그러나 더불어 싸우면 그건 한없이 불어나요." -p 199, 바늘이 몽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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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스토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11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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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름지기 어떤 책이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읽어낸 이에게 저자가 자신의 책을 통해 무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한 부분 -실제 내용이든, 아니면 단촐한 느낌이라도-을 남겨 조그마한 경의라도 표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다 읽고 나서도 그냥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지지 않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르 끌레지오의 <조서>가 그랬고, 아득한 학생 시절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리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이 그랬던 기억입니다. 분명 읽었는데, 때로는 열심히 밑줄을 그어보기도 하였는데, 머릿속에는 그저 몇가지 단어만 맴돌뿐, 하얀 백지장 위에 아무것도 쓸말을 찾지 못하였던 책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내 삶의 순간순간에 나타나곤 하면서 무언가 강렬함을 또는 거기에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회상을 가지게 만들던 책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그런 종류의 책을 이리 만나서, 앞에 놓아두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기억되는 독일의 통일 후에, 흡수당한 동독의 한 작은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 책소개를 보면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갈등과 감동과 스릴을 기대하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통일의 과정에서 생겨난 혼란과 갈등 그리고 그것들을 헤쳐나가는 멋진 사람들 또는 낙오자들..... 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식의 이야기들과 그런 식의 스토리의 전개를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익숙한 것들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너무 단순해서...... 아니면, 역설적으로 너무 복잡스러워서...... 아마도 둘다라고 해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 형식은 너무 단순하지만 서로 얽힌 사람들과 그들의 삶,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저자 나름의 의도 등은 평범하게 다가선 독자에게는 너무도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게 느껴집니다. 책속의 사람들, 그리고 책을 쓴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리 우둔한 독자를 만난 저자의 운없음을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9편의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통일을 맞이한 후의 동독의 한 작은 도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위조여권을 만들어 이탈리아로 몰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새 화폐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변화된 사회에 흡수되지 못하고 낙오자가 되고, 가정이 무너진 사람들, 든든한 직장에서 밀려나 변변한 직장을 얻지 못하고 사회의 한 구석을 배회하는 사람들.... 소설 속에서 누군가는 죽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별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외로움에 눈물을 쏟기도 하는데, 그 누군가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또 서로 이리저리 얽혀서 서로의 삶의 부분들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한데 저자는 그러한 삶들을 29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 둘 그려나가지만,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 듯 하여 조바심을 가지고 읽어보더라도 결국은 서로가 무심하게 덧붙여진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얽혀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관계를 이루며 지역사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결국 개개의 이야기들은 거기에 언급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나 생각일 뿐, 좀 더 그럴듯하게 이웃에게 전달되거나 다른 이야기와 어울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일관성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파편화되어 버리는 느낌입니다. 통일 후에 이 작은 작은 도시에 경제와 문화, 각종 법률과 제도 등의 급속한 변화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의 조류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을 법 한데도, 소설속의 이야기들은 그리 격렬하게 흐르지 못하고, 등장하는 인물 각 개인의 삶과 경험에 한정되어 이야기될 뿐입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러한 변화라는 것이 결국은 모습은 다르지만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의 삶의 연속이었을 뿐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책소개에 보면 귄터 그라스는 저자를 '새로 등장한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그리고 <슈피겔>은 이 소설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새로운 스타일의 통일소설'로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을 마저 다 읽기 전까지는 '새로운 이야기꾼'이라거나 '새로운 스타일'이라는 말의 의미를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리 말한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가 격동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그러한 변화를 겪어냈을 사람들에 대한 너무나도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낸 이 소설이, 한편으로는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모습에 대한 너무나도 섬뜩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용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가 말하려는 것들에 대해서는 하얀 부분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고, 책 제목을 단순하다고 속인(?)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려면 4차원(?) 독자가 되든지, 아니면 저자의 말처럼 '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는' 법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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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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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읽고 좋다고 떠들고, 연말을 맞아서 여기저기서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며 떠들썩 한 가운데 앞자리에 이름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서도 꿈쩍하지 않던 마음이 어느 날인가 동하였습니다. 이전에 저자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을 접한 적이 있고, 자신의 글속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슬며시 잡아끄는 매력을 느꼈던 적이 있지만, 결국 투병생활을 접고 고인이 되어버린 저자를 생각하면서 왠지 손이 쉽게 가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 카페의 올해의 좋은 책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서는 문득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아는 사람과 서로 좋은 책을 교환하자는 약속을 하고서는 결국 이 책을 내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환할 책으로 이 책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에서..... 

 .... 그래서 나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제목을 정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적을 원한다. 암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더 크고, 확률에 위배되는 것이 기적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 비가 되고 싶다'를 제목으로 추천한 독자처럼 나의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 p10-11, 프롤로그 

 장애와 암투병, 이 두가지 만으로도 저자의 삶은 우리에게 특별한 모습으로 각인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저자도 자신의 글에 그런 생각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서 묻어나는 향기는 그러한 특별한 모습에서 풍기는 것이 아님을 느낍니다. 차라리 그러한 특별한 모습속에 담겨 있는 평범함들, 그리고 솔직함, 사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과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고 삶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서 즐거워 하는 모습 등.....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자신의 글에 녹여내어 그러한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겸손함과 진솔함이 저자의 글속에 담긴 향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p128

 저자는 '오늘이라는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자신에게 있었던 유방 종양의 검진을 위해 겪었던 기다림과 고통, 외로움 등을 이야기하며, 조직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2001년 12월호 샘터에 실었던 글의 내용이지만, 실제는 악성종양으로 판정되어 지난한 치료과정을 시작하던 당시 자신이 암에 걸리고 다른사람들의 동정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그리 시작했던 암투병에서 돌아오면서는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독자들과 삶의 더 많은 기쁨을 누리려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라, 그냥 장영희가 좋다. 촌스럽고 분위기 없으면 어떤가. 부르기 좋고 친근감 주고, 무엇보다 이젠 장영희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말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어떤 이름으로라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을." 맞다. 향기 없는 이름이 아니라 향기 없는 사람이 문제다. p187

 아마도 저자는 스스로의 향기를 '부르기 좋고, 친근감 주고, 무엇보다도 장영희'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자신의 삶 자체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아니 그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향기가 무엇이고 어떤 향기를 뿜어낼 것인가를 의식하지 않고, 어려움을 헤치고 당당하게 나서서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격려하며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람들과 친근하게,그리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결과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단지 이름에 향기없음을 서러워하는 가식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히 다루고 정성껏 살아가고자 하였던 모습 말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것이다, 라고. .....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좋은 운명, 나쁜 운명이 모조리 다 깨어나 마구 뒤섞인 혼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흑백을 가리듯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을 가리기는 참 힘들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지는가 하면 나쁜 일은 다시 좋은 일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운명행진곡 속에 나는 그래도 참 용감하고 의연하게 살아왔다. .........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학생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p232, 235, 에필로그 

 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고 자신의 싸움터, 병원으로 돌아와 있다는 저자는 살금살금 조심조심 삶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는데, 큰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걸어서 다시 나쁜 운명이 깨어난 모양이라고 말하며 치료 과정에서의 고통을 되새기지만, 또한 새봄을 맞고, 이전처럼 병을 훌훌 털어내고 의연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삶의 기쁨을 나누고자하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 그러나 이왕 덤인 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덤이 아니라, 없어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입 아프게 말해도 이 모든 것은 절대로 말이나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몸으로 살아 내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먼 훗날, 내가 이 땅에 사라진 어느 가을날, 내 제자나 이 책의 독자 중 한명이 나보다 조금 빨리 가슴에 휑한 바람 한 줄기를 느끼면서 "내가 살아 보니까 그때 장영희 말이 맞더라"라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내가 덤으로 이 땅에 다녀간 작은 보람이 아닐까. -p121

 저자가 자신이 기다리던 새봄에 고인이 되어 이젠 독자들 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순간, 저자가 더 이상 '살아갈 기적'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없게 된 순간부터 아마도 저자가 말한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기적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저자의 바람대로 '내가 살아 보니까 그때 장영희 말이 맞더라'라고 고백하며, 여전히 살아있는 그녀의 향기를 삶속에 간직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의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장영희라는 사람의 이야기였지만, 이제부터는 나와 우리들이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 이야기를 멋지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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