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블루슈머 - 미래를 지배할 12가지 골든 마켓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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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슈머(Bluesumer)란 경쟁자가 없는, 잠재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뜻하는 블루오션(Blue Ocean)과 소비자를 뜻하는 Consumer의 합성어로 경쟁이 없는 시장의 새로운 소비자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여기저기 검색해 본 결과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콩글리쉬랍니다.^^-  2007년 통계청에서 '한국의 블루슈머 6'로 이동족, 무서워하는 여성, 20대 아침 사양족, 피곤한 직장인, 3050 일하는 엄마, 살찐 한국인 등의 6개의 소비자 그룹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여 유행어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하고, 2009년에는 다시 통계청에서 '국가통계에서 찾아낸 2009 블루슈머 10'이라는 자료를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백수 탈출, 똑똑한 지갑족, 나홀로 가구, 녹색 세대, U-쇼핑시대, 내나라 여행족, 자연愛 밥상족,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 거울보는 남자, 가려운 아이들 등 10가지 소비자 그룹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통계청 자료가 우리나라 안에서의 블루슈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이 책은 시선을 나라 밖으로 돌려서 세계 시장에서의 트렌드 변화를 살펴보고 그 안에서 블루슈머라고 할만한 12가지 잠재가능성이 높은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시장, 또는 신흥국 시장 등 지역적인 구분에 의해 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트렌드를 보이는 소비자 그룹을 하나의 시장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이슬람의 여성들과 베트남 신세대의 경우를 예로들며 경제적인 주도권을 쥐고 실제 소비에 있어서도 중심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내고 선호하는 시장, 일본의 초식남이나 영국과 대만의 싱글족이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 골든 싱글족 등.... 비슷한 트렌드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의 독특함을 지닌 소비집단을 열두가지 주제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습니다. 애완동물 시장이나 실버 세대, 아름다움을 찾는 남자, 맞벌이 부부를 겨냥한 시장, 건강과 다이어트 시장 등은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우리에게도 어느정도 익숙하고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알려진 것들이지만 아직까지 가능성만큼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또는 아직도 틈새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종교시장 같은 경우는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휴대폰에 코란을 읽을 수 있게 해서 히트를 친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부분이기도 하고, 이국적 문화도 시장이 된다는 부분은 한류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고, 아마 그러한 경험과 자신감이 일과성으로 몇몇 지류에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준비와 소개로 꾸준히 이어진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외에 날씨를 이용할 수 있는 시장, 미국의 히스패닉 등의 성장하는 비주류의 시장, 일본이나 네덜란드 등의 즐기는데 돈을 쓰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시장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이 언급하는 블루슈머 시장은 개인들이 읽고 실제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가능성 있는 시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경영자들이나 기업의 담당자들에게나 어울린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들어가는 말에서 언급한, 미국에서 히스패닉 인종의 모습을 한 인형이 대박 상품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대형 가전 제품에 대비해 싱글족들을 겨냥해 만들어낸 미니 가전 제품들이 꾸준히 팔리며 짭짤한 재미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존재하는 시장이 아닌 트렌드를 읽고 창의적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시장에 대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블루슈머 시장에 대한 실마리를 담고있고, 그러한 실마리가 각 개인에게는 세상의 트렌드에 대한 안목과 주변의 세상의 흐름에 대한 열린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갖을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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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터 - 집으로 쓴 시!, 건축 본능을 일깨우는 손수 지은 집 개론서 로이드 칸의 셸터 시리즈 1
로이드 칸 지음, 이한중 옮김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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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화장실이 막히면..... 배관공을 부릅니다. 이번에 전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전등을 갈아보고 안되면 전기 수리업자를 불러야지요. 현관문 자물쇠가 고장이네요..... 그러면 열쇠업자를 불러야 겠네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럴수록 자립능력은 떨어지겠지만 어찌 되었든 현대라는 사회의 틀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입니다. 한데 거기에 대고 "집 지어 봤니? 아님, 고쳐는 봤어?"라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쳐다보겠지요. 한데 이 책이 그리 말하네요. "집 한번 지어 보실래요. 많이 어렵지는 않아요." "집에 문제가 생기면 한번 고쳐 보세요. 옛날에는 다 그렇게 하고 살았잖아요." 

 그러고 보니 나의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집안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곤 하면 직접 연장을 들고 뚝딱거리고 하였던 기억입니다. 요즘처럼 아파트나 빌라 등의 공동주택이 주된 주거형식이 아니라 대부분 단독 주택에서 마당 가진 자기 집에서 살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활동이 더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집안일의 대부분을 누구를 부른다기 보다는 스스로 똑딱이며 해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똑딱이며 살던 시절에 대한 본능을 일깨우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이고 원시적이기까지 하던 동굴과 오두막, 천막이라는 주거지 형태의 소개에서 시작하여 여러지역의 주거지 형태의 발달과정을 살핀 뒤에 작은 집 짓기에 들어갑니다. 터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뼈대를 얶고, 지붕을 얹고 문을 달고 창은 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또한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사용되는 연장들에 대한 소개도 있고, 건축에 사용되는 여러 재료들을 자연에서 얻고 만들고 다듬어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한 집짓기를 가르쳐주는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집짓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굴이나 천막 등의 주거의 초기형태에서부터 시작하여 자동차집이나 트럭집, 캠핑카나 배집, 나무집 등의 다양한 주거형태에 대한 관찰 및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주거지에 대한 의미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직접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자립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리브레 공동체나 아난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부분은 집이라는 단순한 건축양식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서의 주거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 시공업자를 불러! 자동차 수리공을 불러! 농부를 불러! 배관공을 불러! 전기기사를 불러! 그럴 게 아니라 직접 하시라, 게으름뱅이들이여! 하면 된다!" 현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리브레 공동체가 말하는 이와같은 비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저자는 아마도 우리의 부모세대가 자신의 주거지의 관리를 다른사람에게 무심하게 의지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직접 몸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인다면 직접 집을 짓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삶에는 기쁨과 자유와 해방감이 넘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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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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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앵카레의 추측, 웬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푸앵카레의 추측이 클레이 연구소가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밀레니엄 문제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 푸앵카레의 추측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는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이 책은 바로 100여년간 해결되지 않은 채 많은 천재적인 수학자들에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열정을 품게 했지만, 이러저런 상처만을 남기고, 결국 푸앵카레 병이라는 쓰라린 질병만을 남겼던 '푸앵카레 추측'이 천재적인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이한 인물인 페렐만에 의해서 풀리고, 그의 증명이 완벽한가를 재증명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는 수학 100년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따로 떼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한편의 장대한 드라마로 읽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수많은 수학자들의 열정과 수고와 좌절, 그리고 극적이랄 수 있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마침표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마침표에는 페렐만이라는 한 천재적인 수학자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업적에 당연히 따라 붙을 명예와 부에 대해 초연한 모습이 덧붙여지고, 그의 그런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에 대한 신선한 반역까지 담고 있습니다.   

 푸앵카레의 추측은 1904년 출판된 위치의 분석에 대한 다섯 번째 보충 논문의 마지막 단락에 쓰여있던 "어떤 다양체의 기본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이 질문은 우리를 너무 멀게 헤매게 할 것이다."라는 푸앵카레의 말처럼 지난 100년간을 많은 수학자들에게 푸앙카레 병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게 만들며, 많은 이들에게 담대한 도전과 쓰라린 실패를 안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의 일부는 부분적인 성공을 그리고 페렐만이 등장하기 전까지 또 그 중의 일부는 증명에 이르기 위한 토대를 훌륭하게 다듬어 내고, 2002년에 페렐만에 의해 그 먼길이 끝나고, 2006년 스페인의 국제수학자대회에서 푸앵카레의 추측은 페렐만에 의해 풀린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은 푸앵카레의 등장에서부터 여러 수학자들이 도전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이 난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며 난관을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페렐만이 앞서간 이들의 어깨에 올라타고 완벽한 증명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 페렐만의 논문들이 검증받고 인정받기까지의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러사람들의 도전과 실패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도전하고 풀어나가던 수학적인 내용들과 그러한 내용의 의미들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일반적인 역사에 대한 기록과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겠고, 또한 이 책을 독특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수학적인 내용들을 독자가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결코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도록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다양체의 기본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 푸앙카레가 자신의 논문에서 물었던 이 내용은 저자가 현대적인 추측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거기에 있는 모든  고무 밴드들이 한 점으로 축소될 수 있는 그런 3차원 물체들은 구면으로 변형될 수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라면 이 내용의 참과 거짓을 떠나 여기 씌여진 용어들에 대한 개념부터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것은 더더욱 아리송해집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러한 아리송함이 해결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고 어렵다거나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뭔가의 매혹적인 유혹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많은 수학자들이 앓았던 푸앵카레 병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수학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깨달음 뒤에 따르는 이 학문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수학병에 전염된 때문일 듯 합니다.  조금만 관심이 있고 인내가 따른다면 많은 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는 다른 수학에 자체에 대해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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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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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과 외로움.... 이러한 시간들이 낭만이 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던 듯 합니다. 물질적으로 그렇게 풍요롭지는 않았을지로도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삶에 여유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기억입니다. 언제 어디서쯤엔가 잃어 버린줄도 모르고 내 삶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버린 것들인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내게도 기다림을 가슴에 새길 줄 알고, 외로움 또는 혼자있음을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모두가 문명의 발전을 말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는 이 시절에 저자는 다시 그러한 것들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 있지 않느냐고 이 책을 통해 물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얻은 것들을 단순히 발전이나 진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말 한 사람의 존재로서 세상을 더 살만하게 해주던 어떤 것들을 포기한 댓가는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책에서 말하던 만큼의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비틀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이 책을 통해서도 저자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의 삶에서 빠져나가버린 것들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지 않는 친구, 아니 이제는 다시 곁에 올 수 없는 친구를 기다리는 것,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그리고 미래를 쫒다 과거를 잃어 버린 친구에 대한 단상 등....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인생에 켜켜히 쌓여가는 손때 묻은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 또는 소중함에 대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또한 도주를 꿈꾸며 기차에 오르는 것, 조용히 술집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소란함을 느끼는 것, 선술집에서 함께 텔리비젼 보기 등에서는 세상에 함께 휩쓸려 조용히 눈길을 보내고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소통과 융화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효율만을 앞세워서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이 시대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한 흑인 여성의 에피소드는 부모가 또는 누군가가 알려준 자신의 생일이나 고향에 매여 사는 우리 삶의 피상성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내 삶에 시가,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가 담긴 에세이들이 풍요로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삶속에서도 시가 보이고 에세이들이 풍요롭게 담겨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삶속에서도 그들의 삶속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입니다. 미래만 바라보고,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과 깔끔함과 편리함 만을 누리다가 과거속에 묻힌 손때 묻은 시간의 소중한 흔적들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그것들이 소중했다는 사실마저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내 삶의 과거를 만지작거리며 되새김질 할 수 있는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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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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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 황야도 천국이 되니" 

  인생을 살며,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만으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세상에 둥지를 튼 많은 영혼들이 자신의 삶 어느 순간엔가는 그러한 충만함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얻고, 자녀를 얻고, 간절히 소망하는 무언가를 이룬 순간에..... 아마도 많은 이들은 마음속에 그러한 충만함도 함께 지닐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을지라도, 자녀가 품을 떠나버렸을지라도, 그리고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더라도 시집 한 권과 빵 한 덩이, 그리고 포도주 한 잔으로 천국의 기쁨을 누리노라고 고백하는 영혼이 있다면, 우리의 눈에 아마 그 영혼은 대단히 불행하거나 대단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는지..... 그래서 결국 첫머리에 언급한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가 있으면, 사랑이 없더라도 황야도 천국이 되니”라는 말은 삶의 지난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 인생의 쓰디쓴 뿌리를 소화시켜 본 적이 없는 영혼이 인생의 겉멋을 그럴 듯하게 과시하기 위해 읊조릴 말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멋져 보이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의 시인이 사랑하고, 그 시인을 키웠던 시들을 모아놓은 시집. 이러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작품집을 읽는다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일입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고된 노역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삶 어느 구석에 박혀있었을 가시를 치료하고 보석들을 닦아서 빛낸 앞서간 선배들의 선물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또한 같은 글이라도 읽는 이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깊이와 넓이의 차이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덧붙여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여로에서 함께 보듬고 살며 반복해서 되새기던 시어들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루 또는 며칠 만에 후다닥 읽고 나서 감상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될 듯합니다. 그의 말과 느낌을 듣고, 시인이 이 시들을 골라 모은 사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것이 시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보여야 할 예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한 사람이 시를 읽고, 그 안에서 삶의 감춰진 충만함을 얻으며 걸어가기에는 너무 바쁘고 각박한 것일지 모릅니다. 내일 양식을 걱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미래를 힘겨워하는 현실에서는 시 한 구절을 읊조리는 여유가 사치라고 여겨질 만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바람처럼 그녀가 차린 '언어의 성찬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더 깊고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된다면, 사치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힘겨운 현실을 보듬고 일으켜 세우는 지주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직접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시를 알아보는 맑은 눈들이 늘어’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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