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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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나는 한겨레를 신뢰한다. 금요일자 북섹션 <18.0°>을 꼼꼼하게 읽고 소개되는 책이나 고전 중에 메모해서 읽어보게 된다. <과학 콘서트>의 저자 정재승의 리뷰를 읽고 로렌 슬레이터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를 주문했다. 손꼽히는 좋은 책으로 남는다. 좋은 책이라는 판단 기준은 내게 몇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새로운 앎의 세계를 얻었는가? 둘째, 익히 알던 사실들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는가? 셋째, 가슴이 미어지도록 감동을 받았는가? 넷째,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는가? 다섯째, 실천의지와 삶의 태도와 방법을 새롭게 했는가?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지만 겹치는 부분도 있고 뭔가 빠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게 이중에 한가지 정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책이라면 독서의 즐거움을 얻고 좋은 책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스키너의 심리 상자>는 교육심리학을 공부할 때 수박 겉핥기로 지나쳤던 이론들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이론이 주는 시사점이나 일상 생활과 개인의 행동 또는 인간 관계의 상관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에는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답게 충격적인 실험과 실제 사건들이 담겨 있다. ‘보상과 강화, 처벌과 소멸’이라는 행동주의를 낳은 스키너의 심리 상자 실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38명의 증인들,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기계를 통한 권위와 복종의 심리 분석 등 실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 접했던 실험과 내용도 있지만 해리 할로의 철사 원숭이 실험을 통한 스킨십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을 통한 인간 기억의 허구성 등의 이야기는 흥미롭기만 하다. 실제 생활에서 논란이 되고 의심을 품었던 일들을 심리 실험이나 과학의 잣대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집단의 내부에서 자기가 속한 집단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눈물겹기만 하다. 그것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일 것이다. 더구나 실험이나 약물, 과학적 증명방법으로 유의미한 결론들이 얻어지지 않는 심리 실험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숭이나 동물 실험을 통해 증명되더라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물론 모니즈처럼 용감하게 세계 최초로 인간의 뇌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정신과 수술을 개발한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정신과 심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나 명확하게 이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며 마치 유물론과 관념론의 집요한 대립과 싸움으로 읽힐때도 있다. 같은 분야의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끼리도 하나의 사건과 실험을 대하는 태도나 입장,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하다. 인간은 그만큼 복잡하고 불가해한 존재라는 반증일 것이다.

  엽기 살인과 침묵하는 38명의 방관자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보다 강하고, 두려움보다 원초적이다. (본문 111페이지)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는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에 관여한 보상으로 사소한 것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믿음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인간 기억의 허구성을 증명한 로프스터 교수의 말을 재인용하면,

  “하나는 이야기 진실, 또 하나는 실제 벌어진 진실이지요. 우리는 실제 벌어진 진실의 앙상한 뼈대 위에 살과 근육을 덧붙여 우리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관념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 진실이 사라지고 이야기 진실이 시작되는 곳에서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문 247페이지)

  “때때로 진실은 언어를 거부할 정도로 포착하기 힘듭니다. 평범하지만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표현해낼 단어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명백한 줄거리로 그것을 대신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이야기를 날조합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희생자라는 정체성?주니까요.” (본문 248페이지)

  어쩌면 과학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큼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일 수 밖에 없다. 저자 로렌 슬레이터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하だ?노력일 뿐이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때로는 끔찍하고 비윤리적인 실험들이나 실제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들을 분석하는 일들과 결과들에 대해 일반인들이 흥미로워 할 리가 없다. 저자는 심리 실험을 주도한 과학자들의 삶과 의식이 어떻게 실험에 반영되었는지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인다. 일일이 그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가족들과 피실험자들까지 만나는 과정을 전해준다. 그래서 때때로 주관과 감정이 앞서고 이성과 감정은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저자 특유의 감상적 문체와 주관적 해석이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진지하고 깊이있게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문제와 사건 그리고 심리 실험들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찾고 싶었던 의미는 다음 말로 갈음할 수 있겠다.

  우리가 탈근대를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탈인간이 될 수는 없다. 어떠한 과학 분야도 우리가 육체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빛은 꺼지고 우리는 암흑 속으로 다시 들어가리라. (본문 296페이지)



200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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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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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적인 책읽기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책에서 저자와 대화를 나누며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대한 애증은 영원히 계속되겠지만 좋은 책에 대한 열망만큼은 쉽게 가시지도 않을 것같다. 그래서 더더욱 목마르고 갈증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하드보일드 하드럭>으로 첨 만났다. 순전히 남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조금 다른 시각이나 특별한 애정으로 남미를 살펴 볼 수 있을까 싶어 그녀의 소설 <불륜과 남미>를 읽었다.

  책 뒤에 여행 일정표를 부록으로 실어 놓을만큼 그녀의 여행 경험이 철저하게 소설에 반영되어 있어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의 말에서 실제 여행 경험을 소설속에 녹여 낸 장면들도 발견된다. 여행하는 모든 인간들이 부럽다. 평생 세상을 떠돌며 책만 읽다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사랑한다. 그래서 부럽다. 200여페이지의 짧은 분량속에 그림과 사진을 삽입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한 남미에 대한 여행 욕구만 잔뜩 부풀려 놓는다. 그래, 가고 싶다.

  이 여행 에피소드 단편들은 7편을 묶었다. ‘전화, 마지막 날, 조그만 어둠, 플라타너스, 하치 하니, 해시계, 창밖’이 그것이다. 물론 제목처럼 불륜에서 오는 열정과 고뇌,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해석은 꿈도 꾸지 마라. 지루하고 나른한 일상처럼, 받아본 적도 없는 남미의 가을 햇살처럼 노근하게 온몸의 긴장을 풀어놓는 편안함과 여유가 오히려 독자를 긴장시킨다. 뭔가 있을 텐데 싶은 조바심도 생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허무하다.

  이국적인 풍물과 분위기 낯선 곳에서의 상상과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책이 될 수 있을까? 문체로 승부하기에도 내겐 너무 지루하게 느껴진다. 오감을 충족시키거나 이성의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어정쩡한 책을 골라내는 힘은 언제 생기려나.

  회색빛 하늘 만큼 우울한 날이다.



우울

어떤 형태로든
우울하다.

- 시 : 서정윤



200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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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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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영희 선생님과의 대담 <대화>를 읽으면서 형언하기 힘든 정신과 이성의 힘에 압도당한다. 그 숙연함은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이라 불릴만한 리영희 선생님의 깨어 있는 의식과 올곧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경건함에서 비롯된다. 한 시대와 민족에게 있어 참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전 존재로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세기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영희 선생님이신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신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은 이 책은 나에게 올해 최고의 책이 될 듯하다.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성장하신 선생님은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한다. 그 무렵에 해방을 맞고 해양 대학을 졸업한 후 안동중에서 영어교사 재직하던중 6 ․ 25 전쟁이 발발한다. 군에 입대한 선생님은 최전방에서 통역장교로 3년을 근무하고 후방 군의학교에 전속되어 근무하다가 7년 만에 소령으로 전역한다. 합동 통신사에 첫 발을 내딛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와 세계사적 흐름을 주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와 연구를 시작한다. 60년 4 ․ 19와 61년 5 ․ 16을 겪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의식을 무장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나간다. 이후, 196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옮겨 11월에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안 기사로 구속 기소. 69년에 베트남 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제 1차 언론사 강제 해직. 군부독재 ․ 학원 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으로 제 2차 언론사 강제 해직. 76년에는 제 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1차 교수직 강제 해임. 77년에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내용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 80년 광주교도소 만기출소. 사면과 복권 되어 해직 4년만에 교수직으로 복직되던해 5월 16일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의 한 사람으로 날조되어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지만 한양대에서 2차 로 교수직에서 다시 해직됨. 84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주관 ‘각급학교 교과서 반통일적 내용 시정견구회’ 지도 사건으로 다시 구곳 ․ 기소되었다가 2달만에 석방(반공법 위반혐의). 한양대학교에 해직 4년만에 2차 복직. 이후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 공동초청 초빙교수.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주도적 참여후 이사 및 논설고문 역임. ‘한겨레신문’ 창간기념 북한 취재기자단 방북기획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 ․ 기소(당시 환갑). 추후 사면 복권. 95년 한양대학교 정년퇴직. 2000년 집필중 뇌출혈로 우측 반신마비. 이후 건강회복에 전념.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 보다도 감동적이다. 딸 미정씨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대학시절 아버지는 수정주의자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7년간의 군복무중 17살 어린 동생의 죽음과 77년 11월 27일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한 인간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와 사회적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참된 지식인이 한 사회에서 담당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어렵고 힘든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가족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따뜻한 남편의 역할을 포기한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독재정치와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리영희 선생님의 태도는 물론 차이가 있다. 외신부 기자로 본격적인 논문과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의 선생님은 주로 중국의 공산당 혁명과 베트남 전쟁,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의 해방과 독립을 목도하며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일관된 연구를 거듭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패권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엔과 미국 정부의 비밀 문서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밝히고 전지구적 차원의 미국의 힘의 논리를 밝혀낸다. 중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시대 이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포기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흐름을 짚어낼 수 있다.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를 발간한 이후 우리 사회는 리영희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여전히 그러하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관련 대학생들은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의 영향을 언급한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본문 554)”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의 영향력을 웅변한다. 노신을 존경하여 그의 사상과 태도 글쓰는 방법론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은 우리 사회의 노신으로 여겨지게 한다. “‘개인은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본문 268)”는 말 속에 인간 리영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리 속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입장과 태도마처 비이성적이라면 분명 통탄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한 시대의 선각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스승으로서 한 평생을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살아오신 선생님의 이 말이 비단 글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에게 경건한 자기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서문중에서)” - (본문 675)


   리뷰의 분량이 3200자로 한정되어 덧붙이는 사족.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향을 더듬어 볼 필요는 있겠다.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얼하다고 확신해요. (본문 687)

   촘스키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나 사르트르를 대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있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삶과 사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 삶의 태도와 이성적 판단력에 영향을 줄만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꼽으라면 우리에겐 누가 떠오를 것인가?

   쉽사리 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거나 탁상공론에 빠지거나 지식과 이성이 삶의 태도와 현실의 모순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내가 배운것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적어도 선생님에게서 그 작은 빛과 희망을 본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살아남아 지성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책을 읽어가며 군데 군데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지만 이 몇개의 밑줄이 오히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오해할 요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만의 독서법이니 내 안에서 소화된 내용을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여 자서전 형식의 책을 위해 대담을 맡아 성실하고 적절한 대화를 이끌어 낸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 임헌영 선생님의 역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책을 추천하거나 권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지만 이 책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0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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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이야기 - 자유.자치.자연
박홍규 지음 / 이학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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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의식과 신념은 하루 아침에 바뀌거나 형성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 경우를 접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외부의 충격이나 경이로운 삶의 변화를 겪지 않은 다음에야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는 저자의 오랜 기간에 걸친 자신의 세계관을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유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깊은 연구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지식의 차원이나 이론적 접근 방식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노력하면 너무 쉬워 우리 밑에 지옥도 없다고 우리 위에는 하늘 뿐이라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그건 어렵지 않아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또 어떤 종교도 없다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 존 레논의 ‘이매진’중에서


  노래 속에 아나키즘으로 가볍게 시작해 보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생각과 이념을 확인하지 않고 살아왔거나 발전된 형태의 주의나 주장들을 외면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잘못된 편견과 시선으로,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아나키즘’을 거부하지는 않았는지.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이해된다. 폭력적이며 비현실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아나키즘에 대해 저자는 하나하나 그 오해와 진실을 풀어나간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지금 이 나라에는 국가주의가 너무 과도하여 인간의 자유와 자치 그리고 자연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파괴되고 있으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즘이라는 생각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뿐이다."고 말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이념과 이론이 등장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필연처럼 다가왔다. 저자가 얘기하는 아나키즘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근대에 등장한 개념으로 우리에게 잘못 이해되어 부정적 이미지와 의미도 모른 채 소외되었던 개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래속의 아나키즘을 보여주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들을 해명하며 필요성을 역설하고 기원과 유형을 보여준다. 핵심적인 아나키스트들을 소개하며 핵심 사상들을 정리해 준다. 마지막으로 예술과 교육 측면도 점검하고 있다. 그간 저자가 얼마나 깊이있게 아나키즘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것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태도 변화이다. 삶의 태도와 고정관념에 대한 생각의 변화 말이다. 그냥 그저 그렇게 거기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왜’라는 질문에 인색했던 나에게 많은 질문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만든 책이다. 평소 피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아나키즘’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준 책이다.

  저자는 아나키즘을 ‘자유 ․ 자치 ․ 자연’이라는 개념의 삼자주의(三自主義) 개념으로 풀어낸다. 이론과 개념 속에 갇혀 관속의 시체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아나키즘은 저자에 의해 현실 가능태로 탈바꿈한다. 우리의 삶에 투영된 잘못된 믿음과 생각을 바꿔나가고 새로운 생활습관과 태도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실천 전략이 없는 이데올로기는 그 어떤 것도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실천 전략들을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한다. 역사적 배경과 그간의 논의를 통해 독자들의 생각을 바꾸고 인식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저자의 개념은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인간은 그런 모든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스스로 자치를 해야 자신이 사는 터인 자연에 합치된다. 우선 부모와 교사 그리고 종교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나아가 기성의 도덕과 윤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권위와 절대, 관념과 사상, 조직과 전체, 편견과 허위 등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자유는 당연히 반항과 부정을 내포한다. (본문 47)

  이렇게 당연하고 신선한 이념을 우리는 실천전략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현실속에서 실현되지 않거나 막연한 관념 속에 묻힌 이론들은 공허하다. 아나키즘을 실천한 대표적 아나키스 중에서 쿠닌에 대해 저자는 “아나키스트는 항상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했으며 타협을 거부했다고 했다. 그야말로 지식인으로서, 사상적 대결의 가장 철저한 모범으로서 그들은 평생을 두고 원칙에 충실하고자 집요하게 싸웠고 진지?정신적 고투를 경험했으며 철저하게 결단했다고 했다. 그 가장 순수한 원형이 바로 바쿠닌이었다. 그는 그 어떤 아나키스트보다도 더 아나키스트다운 아나키스트였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를 보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사상도 실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원칙에 충실하고 철저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정신적으로 깨어있는 일이 어려운가? 사회적 합의와 개인적 실천이 부족한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직업병처럼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 상징자본과 상징권력으로서 계급을 재생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교사가 달라져야 한다.

  피교육자에 대한 강제나 조작은 교육자의 우월성과 피교육자의 의존성으로 성립되는 상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에 비해 피교육자에 대한 강제와 조작의 배제는 교육자가 피교육자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정하는 양자의 ‘평등한 인간관계’를 전제로 한다. (본문 267)

  성인은 청소년 자녀를 여전히 아이로 취급하거나 부당한 권위를 강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평등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Godwin, 1965:118) (본문 267)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다. 자유롭게 놀게 하고, 즐겁게 말하며 읽고 쓰게 하고, 그리고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권위를 버리고 학생과 평등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교사의 독재는 사회의 독재, 정치의 독재를 허용하는 기반이다. 학교의 비민주화는 사회와 국가 전제의 첩경이다. (본문 285)

모든 아나키스트가 교사일 필요는 없지만, 모든 교사는 아나키스트여야 한다.


200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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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과 매혹
레이첼 에드워즈, 키스 리더 지음, 이경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랑슬랭은 친구들과 브리지 게임을 하고 아내와 딸과 함께 사위의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현관문은 굳게 잠긴 채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더욱이 하녀들이 있는 다락방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다. 두 시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경찰서에 가서 세 명의 경관과 함께 집 뒤쪽의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2층으로 가는 계단위에 극심하게 난타당한 채 허벅지와 다리가 처참하게 잘린 랑슬랭 부인과 딸 주느비에브 랑슬랭을 발견한다. 정말 끔찍한 일은 두 모녀의 숨이 붙어 있을 때 맨손으로 뽑아낸 안구가 계단 양탄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처참한 살해 현장을 확인한 경관과 랑슬랭 씨는 입주 가정부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의 시신을 확인하게 위해 2층으로 향한다. 하녀들의 방은 굳게 잠겨 있고 열쇠 수리공을 불러 방문을 열자 파팽 자매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살아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두 모녀를 살해할 때 사용한 망치가 놓여 있었으며 두 자매가 바로 살인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순순히 살인을 인정했고 살인에 사용한 칼은 랑슬랭 부인의 시체 밑에서 또 다른 도구인 양철 물병은 계단에서 발견되었다.

  이 엽기적인 살인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위한 설정이 아니라 1933년 2월 2일 프랑스의 르 망 시 브뤼에르 가 6번지에 벌어진 세기적인 살인 현장의 모습이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은 경악했으며 냄비처럼 들끓었다. 훨씬 더 끔찍한 살인 사건과 연쇄 살인범과는 비교되지 않는 특수하고 대체 불가능한 힘을 부여한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재생산되는 문화의 코드가 되고 있다.

  레이첼 워드워즈와 키스 리더가 공저한 <잔혹과 매혹>은 이렇게 단 하나의 살인 사건이 가져온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살인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사실fact에만 집중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라깡과 데리다, 들뢰즈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관심과 저작을 중심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3장에서는 ‘매혹당한 작가들’이라는 부제로 해석과 분석을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영화 속의 자매 살인자의 모습들을 분석하며 수없이 많은 영화로 최근 2000년까지 재생산 되고 있는 두 자매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살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사건은 계급 간의 갈등, 즉 주인과 하녀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두 자매는 근친상간의 동성애자였던 사실이 밝혀지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같은 생활을 했던 유년시절 등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논란은 증폭되었다. 언니 크리스틴 파팽은 단두대 형을 언도 받았지만 대통령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복역중 1937년 정신병원에서 사망한다. 동생 레아 파팽은 10년 노역형을 치르고 최근까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독특한 범죄행위가 주는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맨손으로 뽑아내고 한 집에 거주하던 여주인과 딸을 망치와 칼로 두 자매가 협력해서 살해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르트르의 <벽>, 장주네의 <하녀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륜의 힘> 등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로렌스 하비의 영화 <의식>, 니코 파파타키의 영화 <심연> 등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2000년에 제작된 <살인의 상처>, <파팽자매를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두 자매에 관한 관심을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학문적 관점과 정신분석이나 예술적 관점에서 두 자매의 삶을 재해석하고 분석하는 것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왜, 도대체 왜 그런 방식으로 두 모녀를 살해했으며, 두 자매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라깡의 문구를 빌리자면 ‘샴 쌍둥이 영혼’을 지닌 인간에 대한 보고서인지도 모른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와 비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미스터리가 숨어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지나치게 간접적인 서술과 지금까지 출판된 책과 영화를 통해 2차적이고 종합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본질에서는 한발 물러선 느낌까지 전해준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주는 ‘잔혹’과 그 잔혹이 불러일으키는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작가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된다. 21세기에도 사람湧?삶은 이어지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는 이어질 것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처참한 살인 사건이 주는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증폭되는 의문들이 이 책이 내게 건네는 의미이다.

  하늘은 회색이어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되겠지만……


200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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