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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만나다 -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 지승호의 인물 탐구 1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이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싫든 좋든 우리 모두는 매 순간 정치적으로 행동한다. 그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열정 혹은 냉소와 무관심은 개인적 성향일 뿐, 모두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온몸을 휘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에 대해서도 같은 공식이 성립될 수 있겠다.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라는 부제를 단 <유시민을 만나다>는 지승호의 인터뷰를 통한 ‘인물 탐구’라는 이름에 값한다. ‘지승호의 인물탐구 1’이라고 했으니, 이후의 책들 또한 기대된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유시민이라는 코드를 정혜신, 한홍구, 김정란, 유시춘을 통해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으며 2부에서 본격적으로 여섯 번의 인터뷰를 시기별로 나누어 싣고 있다. 마지막 부록이 압권이다. 스물여섯 청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정본(?)’이라는 이름으로 달고 있다. 본인이 직접 당시 복사본의 오류를 바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재밌다.
2002년 여름 유시민은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다시 서는 심정”이라는 격문을 날리며 정치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전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등의 저술가로, 칼럼니스트로, ‘100분 토론’ 진행자로 알려진 그는 가장 선동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입문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의 당의장 선거에서 집단 이지메 수준의 비난과 수모를 겪어가며 침묵을 지킨 유시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분파주의자이며 분열적이고 독선적인 개혁론자라는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토론의 달인, 정치 천재로 불리며 노무현 정권 창출의 특등 공신으로 미래의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행복한 역할과 소임을 저버리고 불행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 그를 더 이상 비판적 지성인으로 만나기는 어렵다. 싫든 좋든 그는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이 정치 환경에 적응하며 우리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모든 유권자에게 중요하다. 김영춘 의원의 발언대로 “저렇게 좋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할 수 있냐?”는 정서의 문제로 그를 대할 수는 없다고 본다.
2002년 대선을 통해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 노빠 주식회사 대표, 노무현과 영혼의 샴쌍둥이’라 불리며 민주세력에게 사표 선동을 통해 비판적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신념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했다. 그것은 개인적인 신념일 뿐 민노당 지지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앙금을 남겼고 여전히 노회찬 의원을 비롯한 좌파세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논리와 신념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로 열혈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 이유를 민언련 최민희 사무총장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첫째 과거의 정통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둘째 일정 시점에서 현장과 거리를 두면서 학습할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사회를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자세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점, 셋째 제도권 정치인으로 변신하되 그 방식이 순수하게 개혁을 바라는 세력들을 모아서, 그 세력의 대표성을 가지고 정치에 입문했다는 점을 들었다.
물론 이런 이유들 뿐만 아니라 정통 TK 서울대 출신으로 지역, 학력 컴플렉스가 없고 과거 화려한 민주화 경력은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점을 추가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열성 지지자만큼 그에 대한 비판적 정치인과 혐오 세력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후배들인 386의원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은 당의장 선거에서의 모습은 ‘그토록 유시민이 그들에게 상처를 줬을까, 어떻게 말을 싸가지 없이 했길래 후배들이 저렇게 들고 일어나는가, 유시민은 옳고, 그들은 전적으로 틀렸는가’하는 자성을 누나 입장에서 했다는 유시춘의 말처럼 현재의 그를 돌아보는 거울이 될 것이다.
유시민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원한 자유주의자’라고 지승호는 말한다. 항소이유서에서 인용한 네그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처럼 그는 슬픔과 노여움이 많은 ‘소셜 리버럴리스트’라고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이름으로 우리에게 정의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향력 있는 한 명의 정치인이 우리 삶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비판과 지지를 함께 보내야 한다. 지역주의와 낡은 정치를 청산해야한다고 믿는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양비론이나 특정 정당과 물에 대한 맹목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방법이다.
아무리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노무현과 유시민을 정치적 야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위험 인물이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스트로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이란 ‘나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두 사람을 후자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일까?
유시민이라는 한 정치인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국민들 각자의 몫이다. 홍세화가 유포시킨 ‘똘레랑스’의 개념이 한국 정치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처음 갖게 한 정치인이 유시민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이나 강준만, 진중권, 한홍구, 하종강, 박노자 등의 말과 글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노회찬의 정치스타일을 가장 선호한다. 적과 아군들을 모두 웃겨버려 할 말을 없게 하는 그의 스타일은 지나온 경력과 앞으로의 가능성, 정치인으로서의 역량과 민노당의 미래만큼이나 궁금하고 기대된다.
말과 글이 적확하며 상식적이던 지식소매상에서 자유주의 메신저의 상징으로 그가 보여줄 한국 정치가 그리 어둡고 답답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안 되면 어때요?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그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 또 다른 부분에서 제가 할 일을 찾으면 되죠.”라고 자주 말하는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보다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국민들에게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며 책장을 덮는다.
200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