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모래시계 안에서조차 영원히 시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아니 삶은 어떤가.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공시적 상상력은 저절로 만들 수 없다. 삼십 대 초반의 한국계 미국인 김주혜는 아홉 살에 이민 간 이방인이다.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으나 역사를 들여다보며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낸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국인에게 다소 식상한 호랑이라는 문학적 알레고리는 오히려 세계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여전히 동방의 작은 나라, 그 전통과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이야기에 주목한 사람들보다 그 이야기를 잘 풀어낸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 사람이 아니라면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 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었다. 시대순으로 나열된 역사적 사건들, 익숙한 이름으로 번역된 인물들의 성격, 이야기의 구조와 스토리 전개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끌지 못했다. 이제 너무 많은 책들 사이를 헤매며 중첩되고 반복되는 사실, 구조, 캐릭터에 노출됐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새로움보다는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책들이 반갑다는 점에서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국인의 여집합에 해당하는 독자들에게 적당해 보인다. 아니다, 이 시대를 들여다보지 않은, 이제 막 역사와 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당대를 들여다보게 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겠다.

1918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연대기적 서술에 부합하는 사건들은 꼼꼼한 고증과 디테일에 신경 쓴 흔적이 눈에 띈다. 87년생 미국인이 쓴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몰입을 방해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2024년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을 담아낸 소설이다. 1964년을 그린 4부는 후일담처럼 읽힌다. 수많은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에서 반복하는 시대라서 식상한 게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시간, 다시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그때, 그 사람들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계속 변할 것이다. 무용하고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는 말에 매혹됐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이나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 같은 책들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퍼즐을 맞추고 시간과 공간을 재현하며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다리를 잇는다.

인간의 삶이, 아니 인류의 역사를 거대한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모든 텍스트는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자리에서 유기적인 고리를 형성한다. 그것이 문학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예술이든.

김주혜는 한 겨울 흰 눈과 호랑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한반도의 고난과 시대적 비극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각각의 인물이 누구를 닮았든 중요하지 않으며 외교관의 아내가 남편 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혜석의 이야기가 뒤섞여 등장해도 사실과 픽션을 구분하는 대신 하나의 커다란 변화와 흐름으로 읽어내는 정도면 충분해 보인다. 실존 인물과 작은 시기적 오류를 따지는 건 소설을 재미없게 읽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유미리의 『가족 시네마』, 이민진의 『파친코』처럼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낸 소설들은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는 유럽 작가들의 상상력과 차이가 많다. 건널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현실적 비극과 닿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은실과 단이, 옥희와 연화, 정호와 한철, 김성수와 이명보, 야마다 겐조와 이토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오늘을 만든 근원을 확인하는 실존적 고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겨우 백여 년 동안 우리에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아니, 지금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루가 일생인 하루살이만큼 찰나에 불과한 각자의 생은 무엇을 향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소설가는 시간의 갈피를 접어 새로운 공간과 인물을 창조하여 독자들에게 녹슨 청동 거울을 들이민다. 흐릿한 형체를 둘러싼 배경 혹은 확신에 찬 자신을 다시, 오랫동안 들여다보라고. 어떤 형태로든 시간은 흐르고 모든 사람은 무덤을 향해 전력 질주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앞으로 나아가며 밤이 찾아오고 또 해가 뜰 것이다.


하늘은 하얗고 땅은 검었다. - 첫 문장

언어 자체가 옥희를 유혹했다. 옥희는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나열하면 자기 내면의 모습도 마치 가구를 옮기듯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마리 춤추는 나비처럼 언어 속을 누볐다. 내면에 쌓이는 단어들이 계속해서 그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가는 데도 외부에서는 누구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없었다. - 68쪽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한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아의 상승과 확장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 388쪽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중 몽상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몽상가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본다. 소수의 몽상가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달, 강, 기차역, 빗소리, 따스한 죽 한 그릇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도, 몽상가들은 여러 겹의 의미를 지닌 신비로운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진이라기보단 유화여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색깔만을 바라볼 때 이들은 영원히 그 아래 감춰진 색깔을 바라본다. 몽상가가 아닌 사림이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을, 몽상가들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셈이다. - 415쪽

연화는 거침없이, 결의에 차서 울었다. 다시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려야 하는 사람처럼 울었다. - 536쪽

옥희는 생각했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작별을 고한다 해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가 수평선 너머 점이 되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상대를 향해 멈추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 540쪽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552쪽

삶을 위해 지불하기에 죽음은 아주 작은 대가였다. - 552쪽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 603쪽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 마지막 문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마크 그레이엄.제임스 멀둔.캘럼 캔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트 AI 시대로 넘어간다. 극소수 과학기술 종사자들이나 개발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의 대중화를 넘어선 파도가 밀려온다는 희망 섞인 기대 혹은 일자리에 대한 공포가 혼재한 현실은 산업 혁명 시절 러다이트 이래 반복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 마크 그레이엄과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현실 적응 문제는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취향과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생활의 문제로 진입한 AI 이야기다. 우간다의 데이터 주석 작업자, 영국의 머신러닝 엔지니어, 아이슬란드의 기술자, 아일랜드의 예술가, 영국의 물류 노동자, 미국의 투자자, 나이지리아의 노조 활동가 등 일곱 명의 ‘노동자’의 삶을 밀착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이유는 자명하다. 곧 나와 너, 우리들의 모습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직종과 세부적인 업무가 달라도 AI가 미치는 거대한 파고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류가 지난 200여 년 동안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왔다면 이제는 AI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르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은 대표자가 아니라 사례에 불과하다. 전문직부터 단순 노무직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회 변동은 인류의 삶, 인간의 생각과 태도를 일순간에 바꿔버린다. 전통적, 아니 각자의 세계관, 인간과 세상은 그러할 것이라는 일종의 관성적 태도와 믿음에 균열이 발생하는 건 오랜 학습과 사유의 과정을 거치기보다 충격적 경험과 하나의 사건 때문일 수도 있다.

원제는 ‘Feeding the Machine’는 AI가 인간을 먹고 자란다는 제목만큼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일종의 사회적 경고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노동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와 기능은 이 역사적 변화를 모두 견디며 잉여가치를 몰빵 해왔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듯하지만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겪는 고충, 우리가 겪어야 할 미래, 변화에 대처하는 태도가 모두 개인의 몫일 수도 없다. 다만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비판적 사고는 언제나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기본적 덕목이다.

장밋빛 전망, 디스토피아적 경고를 넘나들며 조금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과 실천의 문제라면,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생각하고 준비하고 실천한 만큼 자기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다.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자본론』을 완역한 김수행 교수가 정년 퇴임한 후 서울대에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임용하지 않았고, 경제학과에 과목조차 개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류동민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척박하지만 새로운 시선과 활력을 불어넣는 관점이 유지된다고 생각한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일명 ‘서마학’에서 여름학기에 개설한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입문 강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다음 주에 종강이다. 메시지만큼 메신저의 매력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아주 조금 아쉽지만, 오랜만에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현실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다시 곱씹는 중이다.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조합을 비난하거나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간과하는 사람들은 AI와 무관하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나 해결책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거나 내일을 꿈꾸는 우리에게 AI와 카를 마르크스는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주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 책에 등장하는 AI 관련 노동자들도 어디에서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결국 비슷한 상황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혐오와 배제를 무기로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넘치게 된 이유를 정치 유튜버에게만 돌리는 것은 매우 손쉬운 진단이다. 저자들은 마지막 8장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전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AI와 무관하게 인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기계가 아닌 사람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바탕을 이룬다. 그들의 결론과 나의 결론 그리고 너의 결론이 다를 수는 있으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mc²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희봉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통과 구토로 이틀을 앓았다. 2개의 모임과 캠핑 여행을 취소했다. 인간의 몸은 때때로 내, 외부적인 힘의 작용으로 에너지를 소진한다. 질량에 속도가 결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E=mc²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 인생이다. 당황스러운 타인의 정신적, 신체적 가해, 예측하기 어려운 교통 사고, 미리 알 수 없는 건강 이슈, 뉴스 같은 지인들의 인생사가 직, 간접적으로 현재를 만들고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인간과 세상에 관한 이 불가해한 일들에 대한 호기심과 질문이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선언하며 저항하고, 또 누군가는 저 머나먼 별빛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궁금해하고, 또 누군가는 휜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원자 폭탄 등에 관한 영화 『오펜하이머』, 다큐멘터리 영화 『아인슈타인과 원자 폭탄』등이 E=mc²에 대해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이론 물리학이 어떻게 현실을 지배하는지, 인간의 삶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될 뿐이다. E=mc²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숫자와 기호로 환원되어 자연의 질서가 밝혀지든, 원시 시대처럼 온갖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든 사실 하루하루 우리가 사는 인생에 그 영향을 성찰하거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짐작보다 무지하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론 물리학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서 재밌다. E=mc²그 자체의 자서전에 가깝다. E, =, m, c²각각이 탄생과 성장 그리고 이들의 결합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으며 또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는지 살피는 과정이 노잼일 리 없다. 스토리텔링은 식욕, 성욕 다음으로 강한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뒷담화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E=mc²에 관한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끈적한 후일담은 독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TMI(to much information) 본능을 충족시킨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김상욱의 『울림과 떨림』,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등 기억할만한 과학 서적들이 가진 각각의 특징과 개성만큼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글쓰기 방법은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리처드 파인만과 스티븐 핑거,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장대익, 슈뢰딩거, 제임스 크릭 등 과학자들이 쏟아내는 팩트fact가 문학에 절여진 픽션fiction의 뇌를 깨웠다. 천상 대문자 F인줄 알았으나 누구보다 강렬한 T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게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변하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 누군가 과학의 재미를 알려줬더라면 아마 다른 길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자기 취향과 성향과 전공과 직업을 충분히 알아본 후에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한민국에서 특권 계급으로 정부에서조차 인정을 준비 중인 의사나 판사 등 특정 직업의 선택에서부터 문, 이과 선택, 직종과 직업 선택의 순간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문과형 혹은 이과형 인간으로 불과 10대에 결정한 다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다. 마치 여자라는 이유로 리제 마이트너, 마리 퀴리 같은 여성 과학자들의 탁월한 성취가 묻힌 이야기들처럼. 아니 어떤 여성들은 과학에 접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초점과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주인공 아인슈타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권위에 의심을 품고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과학적 태도는 아인슈타인을 고립시킨다. 교수 자리를 얻고 안정적인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면 아인슈타인 뇌도 제도에 순응하며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아인슈타인이 혼자 E=mc²를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올렸다는 신화 혹은 영웅담과 거리가 먼 책이지만 결국 이 간단한 여섯 개의 기호를 나열하는 데 관여했던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나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질문들이 이 책 곳곳에서 미로찾기처럼 연결되어 있다. 수천 피스의 퍼즐을 맞추듯, 그렇게 역사는 수천 조각들의 우연과 필연이 결합한 사건이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인물들의 후일담은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미에 재미를 더한다. 좋은 책이 갖춰야 할 요소들을 꽉찬 육각형 모양으로 채운 듯하다. 과학은 지루하지 않다. 다만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가짜 결핍 - 욕망의 뇌가 만들어 낸 여전히 부족하다는 착각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재경 옮김 / 부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고민할 예정이다. “을마믄 되겠니?” 원빈이나 송혜교에게 관심도 없고 그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는데 저 유명한 대사는 가끔 곱씹게 된다. 이수일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넘어간 심순애에게 던졌을 법한 대사의 세기말 버전. 찾아보니 2000년 드라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변함없는 자본주의 작동 방식은 인간의 뇌 구조를 자주 리셋한다. 법정 스님도 떠나고 풀 소유 스님도 떴다 가라앉았다. 종교와 정치도 ‘조금만 더’를 외치다 망가진다. 일상을 사는 평범한 우리들도 ‘만족’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주머니에 얼마가 있든 아쉽고 부족한 게 ‘본능’이라는 마이클 이스터의 『Scarcity Brain』의 번역판 제목은 『가짜 결핍』이다. ‘배신’ 시리즈에 이어 ‘가짜’ 시리즈를 염두에 뒀을지 모르나 원제와는 거리가 먼 제목이다. 저자의 말대로 결핍에 집착하는 마음을 다시 설계하면 충분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진화 심리학과 뇌 과학이 들여다보는 인간의 ‘본능’은 개인 차를 무시한 모든 인간의 교집합 부분일 것이다. 누구나 그러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에게 적용돼야 설득력이 있다. 특히 ‘욕망’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분야의 핵심 주제다. 철학과 문학은 물론 경제학과 사회학, 과학과 예술 분야까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그들이 모여사는 세상 그리고 자연을 향한 호기심이 우리가 읽는 모든 책의 주제라면 마이클 이스터가 들여다보는 주제나 관심 분야는 너무 식상하거나 뻔하다. 특별한 결론이나 비법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이런 종류의 책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을까. 세상에 수백만 가지의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예정이지만 사랑 이야기를 외면하거나 재미 없을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메타인지metacogni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모든 인간이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던 것처럼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왜 ‘결핍’을 기본값으로 세팅되어 태어났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다. 부단한 노력과 인간으로 불가능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모든 걸 내려놓고 비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생존과 번식’을 위해 DNA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유전 정보라고 결론 또한 너무 쉬어 보이니 계속해서 새로운 해석과 주장이 난무하는 걸까.

우선,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당신의 진짜 결핍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최종 목적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과정일 수도 있다. 가짜 결핍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충분함, 즉 ‘만족’을 모르는 뇌의 착각 혹은 부족하지 않은데도 결핍을 느끼는 습관적 태도 등이 그렇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본능이라면 차라리 내가 특히 ‘결핍’을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살펴봐도 좋다. 콤플렉스 혹은 아킬레스 건에 해당하는 결정적 약점 혹은 결함? 아니면 낮은 자존감으로 아무도 모르지만 자기만 아는 열등감?

그것이 무엇이든 저자는 거꾸로 ‘중독’에서 출발한다. 카지노에서 그 해답을 찾아 나간다. 결핍의 고리는 ‘기회의 발견 + 예측 불가능한 보상 + 즉각적 반복 가능성’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중독이 가상의 세계에서 극단적 쾌락을 느끼는 웹툰과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 등이 모두 비슷한 구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핍의 고리 속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장기적인 보상, 성장, 의미를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결핍의 고리를 벗어나는 건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어쩌면 마이클 이스터는 지치고 힘든 세상에서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즐거움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건강하게 살려면 술, 담배 끊고 고기 먹지 말고 채식 위주로…… 의사의 이야기를 듣던 환자가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결론은 ‘행복’으로 모아진다. 당연히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행복’을 만난다. 조금 삐딱하게 이 책을 읽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그 숱한 ‘행복’에 관한 철학과 문학과 심리학과 뇌과학과 예술적 태도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은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읽으면 좋다.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훌륭한 자기계발서지만 저자는 두 발로 글을 썼다. 그 진지함과 노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실제 사례와 구체적 상황들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전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디에 갈 것인가 고민하는 일보다 ‘누구’와 문제가 관건이듯 어떤 책들은 주제와 키워드, 해법과 노하우 보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7주년 기념 개정판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인간에 대한 거부 반응을 갖게 되면 여러 가지 곤란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 이를 테면 ‘고슴도치 딜레마’로 알려진 갈등 상황이 그것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전혀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상대와 너무 가까워지면 여러 가지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짜증이나 불만으로 시작하여 점차 비난, 공격, 험담, 고집, 괴롭힘, 말싸움, 폭력으로 번진다. 온갖 마찰과 충돌을 일으킨 결과 상대방과 자신 모두 상처를 입는다.

역세권, 초품아, 숲세권을 넘어 언제나 ‘책세권’을 강조해 왔다. 힘들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도서관 재건축이라니. 밀리의 서재 요금제로 변경했지만 적응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처음 만나면 사람이든 기계든 다 그렇다. 탐색과 관찰이 필요하고 거리 조절이 관건이다. 혼자 친해졌다는 착각이 관계를 망친다. ‘나’는 ‘너’와 다르다, 아니 너는 내가 아니다. 종이책의 손맛은 대체 불가능이다. 새책이 도착하면 표지를 쓰다듬고 휘리릭 넘기며 바람을 일으키면 옅은 잉크 냄새가 난다. 오감으로 즐기는 독서는 시작부터 두근거린다. 어떤 책은 서문이 너무 좋아 본문에 실망할까 싶어 책꽂이에 몇 주를 꽂아 둔 적도 있다. 어떤 시집은 뒤 표지부터 읽고 묵혀두기도 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그렇게 세상 곳곳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온몸으로 즐긴다. 전자책에는 그게 없다. 버스와 지하철은 기다리면 온다. 물론, 막차를 놓칠 수도 있지만. 도서관도 기다리면 재건축을 끝내고 최신식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다 예전 살던 동네 재건축이 끝나면 다시 그리로 이사가야 하나. 대한민국은 이래저래 재건축의 나라다. 전자책을 넘어 오디오북까지 대세가 이동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2023 국민독서실태」) 그러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습관은 무섭다. 그것이 생각이든 행동이든 감정이든.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바꾸려는 노력보다 뒤엎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헤매다 비율과 방법을 적절하게 조절하겠지만 한동안 혼란은 피치 못할 사정이다. 어쩌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를 골랐는지 생각하다 기억이 나지 않아 여기 저기 뒤적거린 이야기를 하려다 그만...

‘인간 알레르기’라는 원제에 딸린 부제다. 부제가 더 자극적이고 직관적이다. 얄팍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처세술과 관계 기술 혹은 상황별 대처법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없다.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책을 믿지 않아야 하는 것은 ‘개별성 결여’ 때문이다. 80억 인구가 다 다르다. 인간의 일반적 속성과 공통점에 기반한다 해도 그렇다. ‘나’는 ‘너’와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해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제안이 소용없다. 다만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보려는 태도를 가진 저자의 이야기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개 인간은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뿐 아니라,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독서라고 다를까. 읽고 싶은 것만 읽고, 읽고 싶은 대로 이해한다. 같은 책을 서로 다르게 읽는다는 의미와 다르다. 벽을 넘으려고 기어오르는 담쟁이처럼 책을 읽는 태도는 가르치거나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그 너머를 향한 안타까운 까치발을 나는 많이 본 적이 없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대개 ‘의견(해석과 주장)’을 확정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일상생활, 각종 매체의 뉴스, 한 다리 건너 들은 가십, 가족과 친구와 대화 혹은 업무 추진 과정에서도 빈번하다. 다른 생각, 다른 감정에 대한 수용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몇몇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불편할 수도 있다. 대개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MBTI나 혈액형으로 가늠하기도 한다. ‘관계 지향형’도 스타일이 각자 다르지만 원하는 거리는 더더욱 천차만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미워한다. - 순자(荀子)

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리학이 ‘과학’이냐는 의심이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실험심리학이 꽤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나 표본 수의 문제보다 실험 조건과 대상에 따라 매번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우니 일반적 성향으로 이해하거나 정규분포곡선의 중앙값 80% 정도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철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뇌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접근이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감정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앞서 언급했듯 그렇다고 해서 정답을 제시하거나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원제 그대로 ‘인간 알레르기’ 증상 있다는 전제로 개별 독자는 ‘나’를 점검할 것이다. 이 책이 그걸 요구한다. 어제까지는 좋았는데 오늘은 싫어지는 이유, 인간 알레르기의 역사 등이 그렇다. 다만 마지막에 ‘이유를 아는 순간 인간관계의 봉인이 풀린다’라는 주장은 좀 의심스럽다. 5장 “나는 나를 조종할 수 있다!”라는 저자의 권유는 인류 역사에서 가능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아 그렇다. 읽는 사람마다 속이 시원할 수도 있고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하겠으나 답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한 번쯤 들여다보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 대인 기피증, 성격장애, 적응장애 같은 단어보다 ‘인간 알레르기’라는 메타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혹스럽겠지만, 자극적인 표현보다 이면에 숨은 저자의 의도와 개별 독자의 상황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앞부분의 잔인한 처형 묘사에 책장을 덮는 사람도 있고, 오징어를 씹으며 심드렁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다르다. 인간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은 ‘악인’이 아니다. 괴벨스, 아이히만, 노덕술도 따뜻한 아버지였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상황이 인간을 지배한다. 개인적인 대인 관계도 그렇다. 상대방의 거친 말과 성난 얼굴은 때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사람이 ‘악인’이라서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만 악인일 수도 있다. 그 정도까지 생각이 열린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의미를 만들 것이다. 다만 부록으로 ‘싫어하는 사람 대응 매뉴얼’ 같은 걸 적어 놓은 건 ‘나’에게는 무의미한 “착하게 살자”는 선언처럼 들린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아도 실천할 수 없는 게 있다.

우리는 종종 사소한 일을 계기로 방금 전까지 친밀함과 애정을 느꼈던 존재에게 결코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느끼곤 한다. 일단 그 사람에 대한 거부 반응이 나오면 접촉할 때마다 경멸이 가득 차고 혐오감이 솟구쳐 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인내하면서 살거나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 이 두 가지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