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하여 - 왜 사과는 생각보다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가
아론 라자르 지음, 윤창현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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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베어 문 자국이 선명한 사과. 나의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 3 애플apple 로고를 한참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분명 소비자에게 사과apology를 떠오르게 할 리 만무하나 한국어의 동음이의어는 기묘하게도 시원하고 단맛이 나는 과일과 미안하다는 의미의 사과는 같은 소리를 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사과는 죽음을 면하게 할 수도 있다. 칭찬은 쉽고 사과는 어렵다.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런 정서와 욕망과 행동에 대한 연구 결과는 늘 흥미를 끈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되면 타인과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뿐만 아니라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르겠으나 칭찬을 한 사람에게는 대체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손해보다 이익이 많다. 의외로 가성비가 뛰어난 처세술이다. 이에 비해 사과는 대체로 잘해야 본전이다. 오히려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상황과 관계가 악화되기도 한다. 최근에 불거진 ‘개 사과’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이 개인에게, 개인이 집단에게, 집단이 집단에게 하는 사과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후폭풍이 거세지고 반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사과로 관계가 단절되거나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에 대한 독일의 사과, 종군 성노예에 대한 일본의 사과 등 국가 간의 사과는 여전히 진행형인 국제 문제다. 이렇게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사과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칭찬과 처세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사과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일독을 권하고 싶은 주제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아론 라자르는 우선 사과의 가치에 주목한다. 왜 우리가 사는 시대에 사과가 더욱 중요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계급과 계층, 나이와 관계, 성별과 친소에 따라 사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사과하는 방법과 의미도 달라진다. 아론 라자르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심오한 행위는 사과를 주고받는 것이다. 사과는 피해자의 모욕감과 원한을 해소하고, 복수에 대한 욕구를 제거하며, 상한 감정의 용서를 이끈다.”라는 말로 사과의 가치를 정의한다. 상식적 사과의 기본은 진정성이다. 거짓 사과는 오히려 부작용을 부른다. 그러면 사과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잘못에 대한 인정 ②해명 ③후회, 수치심, 겸허함, 진심 등을 포함한 태도와 행동 표현 ④보상이다. 개별 사과에 따라 사과 과정의 부분별 중요성, 필요성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인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사과의 기본이고 시작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인정하지 않고 모호한 말로 회피하거나 조건을 붙이거나 변명으로 시작되는 사과를 요즘 뉴스에서 자주 접한다. 자초지종을 해명하고 마음을 담은 태도와 행동을 보이며 그에 합당한 보상과 책임이 뒤따를 때 사과는 마무리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사과가 가진 치유의 힘을 ‘1.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 회복 2.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믿음 3. 피해자가 잘못 없다는 확인 4. 미래의 안전에 대한 확신 5. 가해자의 심적 고통을 목격 6.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 7. 상처를 표현할 의미 있는 대화’라고 정리한다. 학문적 이론과 실험결과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 숱한 사례를 통해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다.

잘못에 대한 인정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요소는 ‘1. 사과를 받아야 하는 피해자, 피해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 또는 관련자들을 정확히 판별하는 것 2. 잘못된 행동을 소상히 인정하는 것 3. 이러한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끼친 영향을 인지하는 것 4. 피해가 당사자 간의 사회적 혹은 도덕적 계약을 침해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단추가 잘 끼워지면 후회 → 해명 → 보상으로 이어지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공적 사과에서 잘못의 세부 사항을 따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과하는 쪽이나 사과 받는 쪽이 다수, 때로는 몇백만 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이 세세하게 적시되지 않을 경우, 훗날 상충된 해석으로 인해 파국에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과는 문서 형태로 성문화되어 당사자 모두의 역사에 편입되기 때문에, 가해자는 모호함 없게, 상호 이해된 바가 추후 정정될 여지가 없게끔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라는 지적에 공감했다. 개인적인 사과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진심’이 통할 수도 있고 거절될 수도 있으나 공적 사과는 그 형식과 방법에 따라 무거운 결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사과하는 방법, 우리가 사과하는 이유와 사과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사과하는 타이밍에 대해서도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뭔 사과 이리 복잡하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세하게 짚는다. 우리는 사과의 교과서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가 무엇인지 알 필요는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부딪치는 서로 다른 생각들, 이성의 영역과 감정의 충돌, 숱한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어쩌면 ‘사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과를 개에게나 줘버리는 정도로 생각하다가 스스로 개가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만우절’도 있는데 그 많은 ‘~절’과 ‘~데이’ 중에 왜 ‘사과절’이나 ‘미안하데이’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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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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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신화가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첫 번째 소설 『페터 카멘친트』의 첫 문장이다. 태초에 빛이 있듯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신화를 갖고 있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싱클레어에 몰입한 사춘기, 헤르만 헤세는 내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권했다. 신열에 들떠 골드문트가 되어 불면의 밤을 보내기 시작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했다. 스무 살 무렵 헤세의 마지막 소설『유리알 유희』와 함께 오랫동안 헤세를 잊고 지냈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을 읽은 적이 있으나 헤세는 여전히 내 삶의 첫 신화에 온기를 불어넣은 작가다. 이제, 그의 첫 소설을 읽으며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랐으며 열병을 앓던 사춘기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 그땐, 그랬었지.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길을 떠나고 친구의 죽음과 실연의 상처로 방황하다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사랑과 연민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페터 카멘친트. 그는 모든 너고 오로지 나다. 체험의 깊이와 넓이가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신화’에 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삶의 목적과 가치가 제각각인 건 근대 이후의 일이다. 전통 사회와 달리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거나 자유의 현기증인 불안을 두통처럼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피터 카멘친트는 과거의 인류 혹은 현재 진행형으로 읽힌다.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죽음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성자 프란체스코에 감동하는 유형의 인간에게 몰입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 DNA에 새겨진 자연선택과 성숙의 과정은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 기질과 개체의 고유한 특성에 기인한다. 인간은 비슷한 존재이면서 서로 다른 생명체가 아닌가.

페터 카멘친트는 목공의 딸과 불구자 보피를 통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들의 죽음을 수용하며 삶을 긍정한다. 젠알프스의 니미콘에서 태어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전형적 원점회귀형 소설이지만 길 떠남은 단순한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한 인간의 도전과 용기를 상징하며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에 대한 항변으로 읽힌다. 여전히 치유할 수 없는 외로움에 부들거리는 21세기 네트워크형 인간도 1904년에 발표된 소설의 주인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인물과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유년 시절(어머니) → 첫사랑(뢰지 기르타너) → 만남(리하르트/에르미니아) → 우정(리하르트) → 우울(엘리자베트) → 향수(아버지/나르디니) → 죽음(목공의 딸) → 우정(보피) → 귀향(아버지)’ 내용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 보자. ‘니미콘 → 취리히 → 파리 → 바젤 → 아시시 → 취리히 → 니미콘’으로 순환한다. 타인과의 만남과 교류는 번번이 어긋난다. 사랑은 남의 일이다. 페터의 진심과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보피와의 만남으로 인간애를 느끼지만 그 역시 죽음으로 끝이 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가족, 친구, 연인 등등. 긴 여행길에 스치는 사람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들은 각각 다른 의미로 타인을 규정한다. 기억도 다르고 판단도 상이하다.

헤세는 그의 첫 소설에서 전통적인 교양소설Bildungsroman을 문법을 철저히 따른다. 괴테에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으로 이어지는 성숙한 인간에 대한 갈망이 헤세로 이어진다. 물질문명이 발달과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지구인이 하나로 접속해 있으나 우리는 페터 카멘친트가 느낀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 인간에 대한 이해와 겸손으로부터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닐까. 싱클레어와 골드문트의 방황과 고민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세상은 그런 곳이라고 사람은 그런 존재라고 믿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꽃 같은 아름다운 시절도

덧없이 사라져버린다.

좋은 일이 있거든 마음껏 즐겨라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이어니.

- 로렌초 메디치,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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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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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1988)에서 내게 꼽는 명장면은 고향에 돌아온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돌려보는 장면이다. 검열 아닌 검열로 관객들은 볼 수 없었던 영화의 숱한 키스 장면들. 엔니오 모리꼬네를 통해 OST를 듣기 시작했고 영화에 깊이 빠지는 계기가 된 영화였다. 지나간 모든 게 아름답게 기억될 순 없으나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남은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두근거림’을 상기시키는 최승자의 산문이 시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에 눈 뜬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마치 프로이트의 마들렌처럼.

현실 밖으로 걸어 나간 최인훈처럼 신비주의에 빠진 최승자는 가늠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된 산문을 아껴 읽으며 빛바랜 흑백사진을 더듬었다. ‘이 시대의 사랑’을 읽던 청년의 눈으로. 시인에게 부여된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며 이 시대를 살아온 그녀의 삶에서 현실은, 그리고 그 너머에서 찾고 싶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젊은 시절의 일기장 같은 산문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얼굴이 따뜻해질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 정해진 길을 오차 없이 걷는 즐거움, 정해 놓은 목표에 도달하는 성취감, 성공을 향한 맹목적 질주 등과 거리가 먼 낭만과 치기, 냉소와 허무로 가득했던 청춘이 없는 사람의 인생은 부럽지 않다. 현실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경계인으로 살아갈 숙명 같은 게 존재할 리 없으나 시인은 적어도 빼어난 외모나 솜사탕 같은 부드러움으로 승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최승자 정도의 카리스마가 없다면 표지에 얼굴을 드러나지 않았으면 싶은 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 조지오웰을 ‘나는 왜 쓰는가’를 오용하는 사람처럼 최승자를 낭만적 연시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나름의 방식이 있을 터. 시인의 산문은 남다른 통찰이나 미려한 문장 읽는 재미와 거리가 멀다. 시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이나 기웃거릴 만한 시인에 대한 존경과 팬심 정도면 충분하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지 않고 이 산문집을 읽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인은 “그만 쓰자 끝”이라고 선언했지만, 나는 이제 조금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깊이 읽고 한 번 생각하며 ‘목적’과 ‘태도’를 돌아본다. 불확실한 희망보다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선택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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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인본주의 1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김희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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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하늘에 별을 보며 저 별은 어디서 반짝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아마 일곱, 여덟 살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겨우 수백만 년 전 털 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던 호모사피엔스가 현대 문명을 이루며 사는 2022년이지만 모든 인간은 ‘개체 발생은 계통 발생을 반복한다.’는 진화 과정을 단기간에 증명한다. 부모의 보호와 양육 없이 생존할 수 없는 느릿한 인간의 성장 과정은 슬프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돌이 지날 무렵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호모 에렉투스의 삶을 시작한 순간의 환희를 선물한 기억으로 부모는 평생 자식을 바라본다. 애착 관계를 지나 사춘기에 접어들며 독립된 개체로 세상 속으로 나아갈 무렵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자각하고 세계에 눈을 뜬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왜 태어났을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은 어떤 곳이며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너무나 자연스런 생각의 갈피를 접으며 인간은 조금씩 성장한다. 밤하늘의 별이 뜬 곳이 궁금하다가 어둠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저 어둠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반짝이는 별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네 언어의 한계의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 한마디에 발이 묶여 아주 오랫동안 비틀거렸다. 결국, 한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오감에 의한 감각적 세계가 아니라 언어로 명명된 대상 너머로 확장될 수 없는 것인가. 언어가 없는 세계는 인지할 수 없다는 말인가. 눈 앞에 맹점에 존재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세계를 구성하는 범위와 한계를 밝히는 과학 이론은 증명할 수 없는 실재 세계를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세계 너머에는 어떤 어둠과 빛이 있을까. 진화론, 양자역학, 불확정성 원리, 엔트로피 법칙이 말하는 세계의 진실은 생명의 미시적 영역부터 세계의 구성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호기심과 존재론적 의미를 말해주진 않는다.

명민한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당신과 우주에서 시작해 유물론과 구성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이제는 새로운 리얼리즘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라는 요구는 낯설지 않다. 철학사의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만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이야기도 아니다.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응답은 철학적 증명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과 확인에서 비롯돼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본다고 해서 정답을 얻을 수도 없다. 종교와 예술의 측면에서도 이 문제에 접근하지만 이제 모든 철학의 제문제를 해결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발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적 삶이 가능하도록 ‘나도 너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반성과 성찰의 삶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살 더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현명해지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을 거라는 착각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편협한 세계에 갇히고 자기만의 기준이 더 단단해진다. 의심과 질문이 없는 삶은 쓰레기가 된다는 발언에 반감이 생긴다. 바로 저것이 문제라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 ‘just look up’이 아니라 《돈 룩 업don′t look up》을 외치며 현실에 안주하고 선악을 판단하며 선전선동에 속는다. 강물에 손가락으로 금을 긋듯 지나가는 시간을 구별하기 위해 나이와 연도를 새기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삶을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살펴보면 엄청난 희극이다. 가까이 다가가 각자의 비극을 확인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원근 조절에 실패하고 거리 두기를 평생 몸에 익히지 못한다. 진화심리학이 안내하는 자연선택과 변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오늘도 각자 발밑에 땅바닥만 툭툭 차기 일쑤다. 그러다 어느 순간‘툭’하고 끈이 떨어진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실제로 인간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오류와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함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무얼 모르는지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뼈에 사무치는 이유다.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행복은 매우 단순하게 세팅되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선택의 명령은 너무 단순하고 확실해서 반감을 일으킨다. 존재론적 질문과 철학적 사고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너무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어진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타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은 오만에 불과하다. ‘인생의 의미는 인생 그 자체, 곧 무한한 의미와 대결을 벌여 가는 일이며,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운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고 인생의 무한한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길을 잃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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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과학자의 사고법 - 더 나은 선택을 위한 통계학적 통찰의 힘
김용대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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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성취와 대중적 글쓰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 애정을 갖고 꾸준하게 몰입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아우라는 스스로 포장하거나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어눌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꾹꾹 눌러쓴 글들은 독자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가슴에 담는다. 감상에 치우쳐 호들갑을 떨고 달달한 설탕만 듬뿍 뿌려 차린 보기 좋은 다과와 차이가 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과학은 읽을만한(?) 읽고 싶은(?) 책이 많지 않다.

 

전문 지식을 늘어놓은 책은 대학교재로 쓰이거나 연구성과의 정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갖는 의미와 그 과정에서 길어 올린 생각,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과 유용성을 찬찬히 설명하는 책은 만나기 쉽지 않다. 더구나 국내 과학 서적은 아쉬움이 더 많다. 그런 면에서 김용대의 데이터 과학자의 사고법은 주목할만하다. 흥미로운 사례 중심의 서술로 일반 독자에게 어필하고 실제 우리 삶에 적용 가능성을 설명한다. 데이터과학이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래 사회를 전망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데이터과학의 목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즉 데이터과학은 데이터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2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합리적 의사결정은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결여된, 아니 인간에게 가장 부족한 DNA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타고난 본능에 반하는 합리성, 논리적 사고, 이성적 판단 능력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기를 수밖에 없다. 이를 돕는 보조 장치가 통계다. 숫자 없는 통계학을 읽어내는 안목이 바로 데이터 리터러시다.

 

우리는 평균의 함정, 표준편차의 의미, 일상시험의 과정, 인공지능의 부작용 등 골치 아픈 제목으로 가득하지만 이 책에는 숫자나 통계 공식과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데이터과학이라는 바탕 그림 위에 펼쳐진 인간의 삶과 세상의 작동원리가 퍼즐처럼 놓여 있을 뿐이다. 개별적 존재로서 한 인간이 자신의 사고 과정을 살피고 타인과의 관계를 조망하며 세계를 탐구하는 능력은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허명을 떨치고 세속적 성공을 거두는 일도 중요하지만 독서의 본질은 그 이면에 숨은그림찾기와 비슷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의 성이라고 해서 그림자의 빛깔이 다르지 않다. 데이터과학은 찬란한 희망만큼 인간의 삶에 짙은 그늘을 만들 터. 행간에 숨은 위험성과 우려를 읽어내는 건 아마도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D = I + N

D는 데이터Data, I는 정보Information, N은 잡음Noise

 

데이터는 결국 세상의 넘치는 정보에서 잡음을 제거한 결과물이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그러니까 데이터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학이다. 우리는 정보와 잡음을 정확하게 걸러낼 수 있을까. 그 기준과 차이는 무엇일까. 매일 쏟아지는 뉴스부터 사건 사고뿐 아니라 일상에서 들려오는 상품광고에서 지인들의 가십에 이르기까지 정보와 잡음은 구별조차 힘들다. 데이터 과학 이전에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이 우선이다.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을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기만의 정답을 외치고 언제나 진리를 외치며 정확히 선악을 구분하는 태도는 오만이다. 아니 그걸 인정하는 태도만이라도 갖출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코로나 시대의 백신부터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오해까지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은 데이터과학자의 사고법이 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지 웅변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아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체로 현실은 과정과 태도보다 목적과 결과를 중시한다.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안목은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가린다. 어쩌면, 데이터과학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기 멀리 내일을 향한 손가락이다.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법하다.

 

세상에는 놀라운 사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절충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데이터과학을 이해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일반인이 데이터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과학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는 선진화됩니다.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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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과학의 목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즉 데이터과학은 데이터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2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6

 

야구통계학자로 명성을 쌓고 미국 대선 예측으로 유명해진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그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정보를 신호로, 잡음을 소음으로 표현합니다. 데이터 자체는 정보가 아니며 데이터에서 잡음을 제거해야 정보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 49

 

D = I + N

D는 데이터Data, I는 정보Information, N은 잡음Noise

 

요약본능은 생존을 위해 타고나는 본능으로 시작해서 후천적 교육으로 강화되고 있습니다. - 63

 

앙상블 방버론에는 매우 흥미롭고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현상이 숨어 있습니다. 앙상블으 예측 성능을 높이는 데에는 개별 예측 방법의 정확성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주어진 문제에 대해 모두 비슷한 답을 주는, 성능이 우수한 10개의 예측 방법보다 성능 은 좀 떨어지지만 다양한 답을 제공하는 10개의 예측 방법이 앙상블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우수한 인재 10명보다 다양한 의견을 내는 평범한 10명의 의견이 훨씬 유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앙상블 방법은 사회의 발전에는 효율성보다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 141

 

빅데이터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분야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검색시장을 휩쓸고 있으며, 무인자동차를 시작했고, 유튜브로 미디어시장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인 구글은 빅데이터의 창시자이자 리더입니다. 검색 서비스와 유튜브 콘텐츠 추천은 빅데이터의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 173

 

주어진 정보에 대한 진위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결과 자체뿐 아니라 결과를 얻는 과정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터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 179

 

빅데이터로부터 찾아내는 새롭고 유용한 지식이 빅데이터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여기서 새로운정보와 유용한정보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입니다. 대체로 새로운 정보는 유용성이 떨어지고 유용한 정보인 경우 이미 알려진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 180

 

1956년에 개최된 다트머스 학회Dartmouth Conference에서 존 매사키John McCarthy가 이 연구 분야의 이름을 인공지능’AI, Artficial Intelligence이라고 최초로 명명해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 330

 

인공지능 번역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너무 단순합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문장을 숫자 700개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장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장은 달라도 의미가 비슷해서 생기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언어학자도 이 현상을 보며 놀랐습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의 지능을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알려주는 시대가 왔습니다. - 359

 

데이터과학으로 나오는 모든 결론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데이터에 기반하든 논리로 추론하든, 모든 판단에는 오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완벽한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1931년 독일의 수학자 괴델에 의해서 증명되었고, ‘불완전성 정리’Theory of Incompleteness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떠한 골리 체계도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항상 존재하며, 따라서 스스로 모순성이 없음에 대한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자신이 한 증명이 맞았는지를 자신이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380

 

세상에는 놀라운 사건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고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절충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데이터과학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데이터과학을 이해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집니다. 일반인이 데이터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과학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사회는 선진화됩니다.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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