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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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호기심과 질문의 동물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 작은 호기심이 과학기술 발전의 바탕이며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 인류가 찬란한 문명을 이뤄 현재에 이른 과정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앎을 향한 욕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는 대체로 현실에 적응하며 하나둘씩 질문을 잃어버리고 산다.

주입식, 강의식 학교 교육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공부’는 인내와 고통에 가까웠다. 경쟁과 점수로 각인된 공부는 암기와 동의어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평생 배움의 연속이다.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부터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일까지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은 나이와 무관하게 매우 소중한 기쁨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지겨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재밌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공부의 시작은 관심이다. 인생의 목적지와 방향에 맞춰 사람들의 관심사는 계속 변한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자녀 교육, 부동산과 주식, 건강과 죽음 등 나이와 삶의 단계에 따라 현실적인 관심도 바뀐다. 생애 주기별 평생 교육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 자기에게 맞는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을 찾고, 학위를 받고, 승진을 위한 공부 등은 우리가 경험하는 매우 현실적인 공부다. 이런 종류의 공부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유망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20년 넘게 대학교수로 일하던 제나 히츠는 순수한 지적 욕구가 넘쳤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위계와 경쟁에 익숙해져 ‘배움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학계를 떠나 캐나다 동부 외딴 숲속에서 노동과 봉사를 수행하며 ‘작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실천한다. 그리고 성공이나 생산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기 성찰과 진정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을 향한 관심이 인간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진짜 공부가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금전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배움, 나를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가 아닐까. 중년을 넘어 은퇴한 이후에도 내면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지,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충고가 떠오르는 저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레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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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세계 15개국 헌법으로 본 민주주의의 얼굴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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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임명직이 아니다. 자격시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은 유형, 무형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레거시 미디어는 비판과 감시 기능 대신 행정, 입법, 사법 혹은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뤄, 아니 기생한 지 오래다. 인터넷과 함께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하는 현실에서 필터링은 이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듯하다. 필터 버블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는 길들어진 관점으로 살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체적인 삶을 위한 필수 도구다. 생각의 근육은 헬스장에서도 기를 수 없다. 학력과 상관없는 사유 능력과 판단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사법부의 부패는 공화국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들의 거대한 카르텔은 진영의 논리로 해결하기 어렵다. 감시와 처벌은 요원하고 제 기능을 상실한 공권력의 해악은(아니 그 제도를 운용하는 자들이 스스로 권력기관이라 착각하는)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흔들고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쩌면,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기득권의 공고한 암묵적 카르텔보다 무서운 건 그 카르텔에 편입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경쟁이 아닐까. 상식과 공동체의 질서는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대체로 상식과 진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변화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온건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충돌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영을 넘어 삶의 태도와 방향으로 나타난다. 직업과 나이, 성별과 지역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성적 판단 능력과 논리적 사유의 문제다. 허나 현실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인과 관계가 엇갈리면 더 이상 토론과 합의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정과 법치는 보이지 않는 ‘선line’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다. 오프사이드offside 룰을 어겼는지에 관한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오프 사이드 라인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를 수는 없다. 타인과의 갈등,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범죄를 ‘해석’의 문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질서를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일 확률이 높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근대 국가의 틀을 형성하면서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합의한 하한선, 마지노선, 최저선이 헌법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합의에 해당한다. 링 위에서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도 있고, 박치기로 상대 선수의 코피를 터트린 축구 선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패배자가 되고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해진다. 현실이 스포츠와 같을 수는 없으나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과 갈등 국면에서 각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헌법이 그 판단 기준이라면 현상과 사건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또다시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환원되는 걸까.

온 국민이 헌법을 공부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각자 ‘해석’해 보자. 이 문장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일까. 유행처럼 출판된 헌법 관련 책들이 차고 넘친다. 법과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어 온 사람도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겠으나 ‘파시즘’이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15개국의 헌법을 살피면서 다시 한번 정치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현실을 점검해야 한다. 법은 법률가들의 소유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합리성을 바탕에 둔 법률이 아니라면 언제든 수정 가능한 약속에 불과한 법의 적용 문제는 무지의 베일이 적용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을 각자 점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숨 쉬는 공기는 물론 내 몸의 뼛속까지 정치적이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언제든 바꿀 수 없다면 자기 도그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비교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적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고, 이로써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여러 가지에 내재하는 공통된 보편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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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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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 이후로 어떤 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다.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5%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개, 고양이, 물고기, 거북이, 새…….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들의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진화했다. 이 ‘친화력’은 생존에 필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특히 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특화돼 있다. 노력보다 본능에 가까운, DNA에 새겨진 ‘다정함’은 무엇일까. 이해와 배려, 친절과 웃음을 넘어 희생과 이타적 태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우리 편을 향한 다정함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와 다름을 확인하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돌변하는 선택적 다정함도 본능일까.

그러나 인간과 달리 맹목적 다정함 덩어리처럼 보이는 강아지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 해제되곤 한다. 격일로 가는 헬스장에 소설의 주인공 비숑 프리제를 똑 닮은 강아지 한 마리가 회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않고 멀리서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 눈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고개를 들어 눈길을 주는 그 강아지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헬스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말없이 게으르게 엎드려 조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그녀석을 속으로 이시봉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만나는 실제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면 이 소설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은 흑백으로 실려 있어 이시봉을 구체적 이미지로 떠올리기 쉽지 않다.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스페인 카를로스 4세와 왕비와 재상 마누엘 고도이 그리고 알바 공작 부인 등 실존 인물과 역사를 속에 스며든 이시봉의 족보 추적기 그리고 만 스무 살 알콜 중독자인 이시습과 정채민의 앙시앙 하우스 등 대한민국의 현재 이야기. 소설에 한 번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에 어울리는 소설 속의 소설을 읽는 액자 구성은 익숙하지만 또 하나의 재미다. 500쪽이 넘는 장편의 지루함을 덜고 색다른 서사에 힘을 보탠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과 재미는 언제나 글 쓰는 이의 몫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부터 『눈감지 마라』에 이르기까지 이기호가 보여준 재치 있는 문장과 대상을 향한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있어 평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넉넉하고 흐믓하게 즐기기 충분하다.

스페인 왕가의 치정극, 비숑 프리제와 얽힌 비화는 고야와 알바 공작 부인의 실제 관계를 알지 못해도 정채민과 박유정과 김상민의 관계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일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시봉의 주변 인물들인 이시습, 정용, 수아, 리다는 정채민과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과 다르다. 한발 떨어져 나를, 아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은 불가능할까.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 언제나 상징과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 충분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거나 현실 속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면면이 드러나며 다채롭게 반응하지만 소설에서 만나는 입체적 인물은 반갑지 않을 때도 많다. 소설에서는 일관된 캐릭터가 오히려 마음 편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작가는 책으로 만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이기호가 키우는 이시봉을 확인하거나 다른 호기심을 충족한다고 해서 소설이 더 재밌거나 감동이 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할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으나 문학은, 아니 예술의 목적과 역할은…….

명랑한, 짧고 투쟁 없는 삶이라는 이시봉에 대한 규정이 반려견을 향한 일반적, 아니 ‘다정함’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지 싶었다. ‘개새끼’라는 욕설부터 ‘개 같은, 개만도 못한’ 혹은 접두사로 쓰이는 ‘개~~’ 등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개’는 반려견이나 강아지와 달리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시봉은 이씨 성을 가진 집안의 가족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인간 삶에 대한 깊이와 무게를 느끼거나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다. 각각의 소설은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 좋다. 이시봉이 사형집행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마치 점심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제까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급식실을 향해 돌진하는 고등학생처럼”이라고 묘사하는 이기호의 유머와 재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808년 스페인 민중봉기에 관심을 갖고 유럽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도 나쁘지 않다. 소설은, 아니 모든 책은 각각의 독자에게 전혀 다른 모습일 테니. 다만 나는 ‘그것’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이기호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성석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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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1~2 세트 - 전2권 - 완결
산호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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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산 것보다 살아남은 것들이 더 많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해.

마음이 흩어지려 할 때, 말을 문진 삼아 내리누른다.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종목’을 선물(先物) 이라 한다. 한자가 다른 의미의 선물(膳物, present)는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매매 계약은 아니지만 선물(膳物)은 어쩌면 일정 부분 선물(先物)의 의미도 담고 있다. 돌려받을 목적으로 선물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으나 받는 사람은 어느 정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생일 선물, 100일 기념 선물, 결혼기념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입학과 졸업 선물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 감사, 축하, 위로 등을 담은 선물은 관계를 공고히 하거나 때로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로 마음을 잘 전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주려(?) 선물을 지정해서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주고받는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선물을...

책은 상대방의 취향, 지적 수준, 관심 분야, 독서 이력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많은 선물이다. 관계에 따라 권위, 조언, 충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내용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읽히기도 해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선물이다. 물론 모든 선물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출판사, 편집자, 저자를 제외하면 책 선물을 받아본 지 참 오래됐다. “이 책 참 좋다, 읽어봐.”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아주 오래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이 책은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기도 하는 선한 분의 마음을 닮았다. 창밖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그렇게 수집한 문장이 서랍 속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내 상상 속에서 오가는 대화의 끝에 당신은 닿지 못할 말들을 가여워하지 않으며 여전히 숨 쉰다.

슈피겔만의 『쥐』나 안토니오 알타리바와 킴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처럼 사회성 짙은 그래픽 노블을 읽은 적은 있지만 게임과 만화를 즐기지 않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산호의 글과 그림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본질적이고 고유한 성질이 있다. 본성에 반하는 삶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 대상은 스스로 무언가 의도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환상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이야기와 그림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언제 위기 아닌 상황이 있었으랴. 마녀들의 이야기가 모든 순간,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이 아닌지 싶었다.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를 비난하고 난도질하거나, 개인과 조직을 싸잡아 주관적 해석으로 악마화하거나, 개발과 발전을 위해 희생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거나, 사회적 기회와 우연의 결과를 오로지 자기 능력과 성공으로 착각하거나......그렇게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한 채 정해진 답과 길이 있거나...

그렇게 많은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혹은 환상적인 상상력과 공상에 가까운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는 게 아닐까. 매우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다룬 사회 소설에 가까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오독하든 그 또한 독자의 권리일 테니까.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죽은 무화과나무와 오천삼백 원짜리 애호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오늘과 맞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행간의 의미를 확장하고, 여백을 채우는 상상력은 읽은 이의 몫이다. 그것이 책이 아닌 무엇이더라도.

그러니 비록 전할 수 없다 해도 당신의 모서리를 더듬기 위해 쓴다.

초원.

여름이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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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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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정보가 신이 된 세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결’, 즉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넥서스nexus』는 컴퓨터와 AI가 만나는 네트워크 세상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진실이 사라진 시대,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역사학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지식과 정보는 특정 계층이나 지식인,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공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정보는 더 이상 지혜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담아 현실을 살피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역사, 즉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살피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와 AI로 인해 달라질 세상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쉽게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책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물음표를 남깁니다. 호기심과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지 않는다면 글쓴이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며 누군가 정해준 길을 걷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현상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꼼꼼하게 살핍니다. 대안과 해결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입니다. 미래는 개별 독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논쟁과 토론이 가능한 책은 지식의 축적 수단이 아니라 현실 개선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과학기술의 미래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위협을 극복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한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정치인과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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