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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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Don’t take the world at face value”

50cm, 사회적 거리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이 프라이빗한 거리 안으로 허용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거나 허락받지 않은 신체 접촉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증명한다. 가족, 친구, 연인은 물론 선후배, 동료, 지인 사이에도 적용되는 일반적 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친근감을 포장한 무례와 범죄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라는 변명에 불과하다. 관계는 물리적 거리로 입증되며 친밀함은 온기로 전해지는 법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와의 거리에 대한 연구가 인류 전체에 적용될 순 없으나 이와 같은 일반론에 현대인의 일상은 대체로 포섭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욕망하지 않으면 비난 가능성도 낮아진다. 사랑받는 대신 사랑하라는 에리히 프롬의 조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자기 욕망의 반영에 불과하다. 대개 사랑으로 포장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배 욕망, 배타적 소유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대상을 비난하기 일쑤다. 관계의 기본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싫다는 것만 조심해도 인간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된다. 하지만 대체로 틀어진 관계로 상대를 비난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는 걸 차단된 후에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결과들을 공부하거나 익히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처세술, 자기계발서의 얄팍한 술수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증요법과 임기응변의 기술 연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까.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빙 고프먼의 이 책은 사회학 고전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아를 연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사회가 내재한 연극성 때문이다. 저자는 연극적 관점과 접근법으로 우리의 사회생활을 톺아본다. 현미경으로 나를 직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개인의 타고난 성품이 인자하고 위엄 있으며 거들먹거리거나 착하고 난폭하고 합리적이거나 고지식하고 방탕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사람일까 상황일까』에서 때와 장소, 즉 맥락에 따라 인간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말과 행동이 동일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 인간에게서 배신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는 하나의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은 이제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사회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손에 고문 기구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나 아우수비츠 죽음의 수용소 바로 옆 주택으로 귀가한 독일군 장교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표정은 그들이 특별한 괴물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연출하는 사회적 가면의 일부가 아닐까.

공연자는 현재 공연의 관객이 나중에 자기가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게 될 공연에는 들어오지 않아야 편하고, 또 과거 자기의 공연을 본 관객은 그와 상반된 현재 공연을 보지 않아야 편하다. 현저하게 지위가 상승했거나 추락한 사람들은 단호하게 고향과 절연함으로써 관객을 분리한다. 공연자는 관객에 따라 배역 연기가 달라야 편하고, 같은 배역 연기라도 관객을 분리하는 게 더 편하다. - 175쪽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자아를 연출한다. 고프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넘어선 견고한 실체라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실현, 유지, 변형되는 것이다. 10년 전 부모와 자식은 현재와 다른 모습이다. 친구와 연인은 물론 부부와 동료, 지인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공연을 하는 데 같은 사람이 들어오거나 같은 공연을 하는 데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자아는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각각의 관객에 맞는 연출과 연기가 다르다. 고프먼은 우리의 삶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인생을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극에 비유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면서도 탁월하다. 실제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 혹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통해 실제같은 연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표정과 말과 행동은 관객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아 만족감과 성취감을 통해 보상받는다. 그러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서도 균열이 발생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반복 실험과 검증된 이론들은 모두 불가역적 사건과 시간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에 불과하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허망함이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일 수도 있으나, ‘그래서?’, ‘어떻게?’에는 답을 주기 어렵다. 그 결과를 예측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다양한 개별 독자, 각각의 자아를 위한 분석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만하다. 결국, 모든 텍스트의 종착역에서는 ‘나’가 놓여 있다. 거울을 바라보는 일,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성장을 도모하거나, 지금 이대로를 외치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고집을 부려도 각자의 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어떤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을지 ‘선택’은 모두 ‘나’에게 주어진 숙명 혹은 노력의 결과다. 점점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해가 저문다. 서로 다른 조건이지만 자아 연출 능력은 얼마든지 변화, 발전, 성장 가능하다. 성별, 외모, 국적, 인종, 부모 등 어차피 주어진 조건이 같지 않더라도 드라마,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서로 다르지 않은가.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가 주연과 조연, 여성과 남성, 외모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지 않거나 애써 외면할 뿐. 그것이 이 책이 우리, 아니 나에게 던져 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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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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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나면 코끼를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쯤 된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은 인간의 인지적 무의식에 관한 탁월한 대중서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대중의 지혜』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주춤거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합리적인가.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하자면 지혜로운 성자는 못 돼도 어리석은 군중은 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우리는 대체로 필터 버블에 갇혀 착각 속에 살아간다.

겸상도 힘들다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속고 의식에 또 속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한계다. 문화인류학자, 인지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이제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다 시끄럽고 내가 ‘과학’으로 증명해 줄게!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이글먼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들은 건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으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충고가 뇌과학에 기반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감각을 인지하는 뇌의 착각과 한계는 여러 분야에서 검증이 끝났다. 독자들에게 남는 의문은 “그래서?” 세 글자다. 뇌과학은 어떻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지만 개별 독자의 생각과 현실 변화 가능성 앞에서 매번 냉소를 날릴 수는 없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인식할 수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난망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위로를 주고받다 죽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비 오는 토요일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물잔과 콜라잔도!)

그것이 숭고한 대의나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삶의 변화와 타인과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한 이기적 목적일지라도 확증편향을 의심하는 눈빛,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차피 죽을 거지만 피자에 꿀을 찍어 먹어도 무알콜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던 기억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과학이 곧 사실일 수도 없고 실험 결과나 통계 분석도 주관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저자들에게 경의를! 허나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탄생과 소멸에 대해, 아니 각자의 삶에 자유 의지와 의식이 미치는 영향의 한계를 점검하는 정도면 넉넉하다. 보니 엠이 다들이불개고밥먹으라던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 소리가 아련한 일요일 아침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기쁨과 슬픔을 감당하며 인지적 무의식에 속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선택과 방향이 비록 원하지 않는 길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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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잠깐 창비시선 5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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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개 아쉬운 일들을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기억과 망각은 인간의 현존재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이지만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정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았으며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일 년을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이유는 하루, 한 달을 조금 더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송구영신하는 마음을 다독여 보는 12월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일상이 바쁠 때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시 몇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인의 눈을 빌어 사물을 관찰하고 익숙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새해를 맞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현실을 닮은 허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면 시는 개별 독자에게 그려지는 마음의 무늬다. 그 이미지를 따라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좋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대개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서 비롯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과 세상, 사랑과 이별, 하늘과 별에 관한 정호승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온 독자들은 편의점에서 잠깐 스치듯 읽어도 좋을만큼 따뜻한 시들이 반갑다.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패배에 대하여」 중에서) 이 시집의 서시는 ‘패배’로 시작한다. 바라는 대로 세상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하다면 시인은 아마 시를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고독과 슬픔이 인생의 기본값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무렵인 사람들에게 정호승의 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쓴 소주 한 잔만큼 진하게 가슴에 닿는다. ‘희노애락애오욕’을 거치며 한 생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위로를 건네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의 상처에서 흐르는 분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인가”(「당신이 아니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나간 인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많은 ‘당신’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의 말대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마음속에 그리운 것 하나씩 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공감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고 착각하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만 시인은 그 폭과 넓이를 세상 전체로 확장하려는 사람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과 반짝이는 언어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시가 될 수도 있으려면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 이기적 욕망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고 했던 정호승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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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움직인다 창비시선 51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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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

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

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

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

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

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수국은

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

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

작위의 찬란이여

헛것이라면 참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

고봉 같은 것이 있어

수국은 피어난다

나의 삶도 가설

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

지는 것이 꽃이라고,

아닌

꽃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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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백서 - 오늘도 귀여운 내향인입니다
김시옷 지음 / 파지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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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한다. 이성은 자신이 감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교집합은 언제나 ‘합리’와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가족, 연인과 친구 등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착각에 불과하다. 2차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혈연, 지연 관계로 맺어진 1차적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은 감정으로 뭉갤 수 있으나 대개는 잘잘못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매 순간 고민한다. 감정의 영역인지 이성의 문제인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렇게 누적된 태도가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삶의 무늬를 만든다.

4년째 연재 중인 화성문화재단의 「주간 책편지」 모임에서 직접 뵌 김시옷 작가의 책을 천천히 읽었다. 『소심 백서』는 대문자 I 성향들을 위한 위로와 조언과 거리가 멀다. ‘나’를 중심에 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유년부터 대학 시절, 직장생활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돌아보며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놀랍다. 생각보다 어렵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사람의 글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든다. 어설픈 감동이나 공감이 아니라 메타인지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AB RH+, INTJ, HSP, Misophonia... 심리학부터 뇌과학까지 다양한 책들을 뒤적였다. ‘예민함’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아니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책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경험과 추측 혹은 뇌피셜 등 각자의 도그마를 만들어 가는 건 관심 없으나 객관적 이론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일은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지녔으나 둔감한 후각을 가졌고 특정 분야에는 몰입과 기억이 뛰어나지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감성과 이성을 경계 지어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상관 관계에 머물지라도 인간은 자기 성찰을 멈추는 순간 낡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늙어도 낡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콤플렉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 건이 어디인지 알고 공격하는 이의 잔인함을 파악하는 건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김시옷 작가처럼 자기의 소심함을 무기로 내세우거나 핑계 삼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깨 겯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책과 사람은 다르다. 일상에서 작가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심함과 조금 다른 예민함 덕분에.

단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그림, 반려묘의 이야기, 무해한 표정의 캐릭터, 재치 있는 대사와 감각적인 표현들이 잘 어우러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무뎌졌다. 소심해도 괜찮아, 예민하면 어때, 우울해도 힘을 내, 귀찮아도 일어 서,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쓸데없이 울컥하다가 겸연쩍게 킥킥거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1월의 마지막 가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다시 돌아왔다. 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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