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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ㅣ 라루스 서양미술사 7
장-루이 프라델 지음, 김소라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긴 호흡으로 시작된 책읽기였다. 지난 가을 '한국사 이야기' 22권보다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라루스 출판사에서 발간된 서양미술사 일곱권을 생각의 나무에서 지난 연말에 번역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고 중세미술부터 읽기 시작했다. 한 번에 읽지 않고 한 권이나 두 권씩 읽는 방법을 취했다. 전체 분량은 7권 1,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지만 시대별로 중세미술,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낭만주의, 19세기 미술, 근대미술, 현대미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그저 단순한 미술사를 개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문화와 사회사 그리고 사상사의 흐름까지 결합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물론 그 깊이와 폭이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지만 나름대로의 커다란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미술사의 흐름을 사회, 문화사와 더불어 이해하고 풍부한 도판을 통해 개별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책 뒤에 사회, 문학, 예술 분야의 연표를 제공해서 대략의 흐름들을 정리해 놓은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적절하다.
1946년부터 그러니까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의 미술을 현대 미술로 분류해서 20세기말까지를 정리하고 있는 마지막 현대미술은 익숙한 작가들보다도 현대 사상의 흐름 속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흥미있게 오히려 고전적 의미의 예술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작품들이 결코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피카소의 ‘궁녀들’, 마티스의 ‘왕의 슬픔’을 필두로 장 뒤뷔페의 조각, 프랜시스 베이컨의 ‘울부짖는 교황 또는 이노켄티우스 10세’가 주는 색다름도 미래의 예술을 예견하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
소련의 스푸트니크호의 충격으로 미국은 교육 정책의 기저마저 뿌리채 재정비했고 드리핑 기법의 충격을 던지며 대중에게 다가선 잭슨 폴록의 그림만큼 도발적인 모습으로 뉴욕은 이제 세계 예술계의 무게 중심을 파리로부터 이동시켰다. 콜라주 기법으로 대중들을 또 다시 당혹시키는 앤디워홀의 ‘아홉 명의 재키’등 일련의 작품들은 미디어의 발달과 광고, 사진등 우리들 일상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상들과의 결합으로 예술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미니멀 아트, 키네틱 아트와 팝 아트 등 이름만큼 다양해진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유희는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누보 리얼리즘이 부활하여 아르망의 ‘쇼팽의 워털루’같은 충격적인 아상블라주가 탄생하고 구상이 부활하는 것도 다양성 측면에서 당연해 보인다. 핸슨과 위클뢰의 극사실주의는 사진과 미술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혼란스럽다. 추상이 부활하고 대지 미술이라 명명될 수 있는 작품들도 등장한다.
세기말의 불안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설치 작품들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현대 미술의 또다른 성과로 표현된다. 해프닝, 퍼포먼스 등 고전적 의미의 미술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것만 같고 관객은 혼란스럽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건축분야의 눈부신 발달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기능적, 미학적 측면에서 공간의 건축을 예술과 결합시켜나가고 있다.
20세기의 철학자들의 분석대로 미래 사회는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를 뭐라 명명할 수 없을 것이며 진행형의 예술을 규정짓는다는 것은 더욱 무모해 보이기도 하니까. 다만 현실을 넘나드는 다양한 표현 방식들과 예술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흐름들을 즐길(?) 수 있는 안목과 태도를 갖추는 것만도 쉽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결국 미학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또다시 바보 같은 질문과 생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반복되는 어리석음(?)을 시작한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미술은 다원적이고 모호하고 유동적이었다. 도처로 몰려든 이 시기의 미술은 미추의 구분 너머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이 시기의 미술은 삶 자체와 대립 관계 속에서 삶을, 어쩌면 존속까지를 누렸다. 외견상 점점 더 특수화되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나아가 경제적 영역의 볼모가 된 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산되고 미디어화되고 대중화되었다. 이 시기 동안, 미술은 그 긴 역사를 통틀어 접했던 대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규모의 다양한 대중을 사로잡았다. 지적, 정치적, 경제적 공론의 대상이었던 미술의 다양성과 영향력은 장 둔감한 무관심을 극복하여 어떤 이들을 매혹하고 또 다른 이들을 선동했으며, 격렬한 논쟁의 촉매제가 되었다.” - <현대미술, 서문>중에서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겠으나 이것으로 길지만 행복했던 미술사의 여행을 끝마친다. 기약할 수 없으나 하루 빨리 유럽으로 날아가 실제 그림과 건축들을 하나 하나 뜯어 먹으며 감상의 시간들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잠시 뒤로 미룰 수 밖에……
200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