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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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피를 묻힌 검을 얼음 위에 꽂아두고 기다리는 거예요.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온 늑대가 칼날에 묻은 피를 핥아 먹습니다. 그러다가 제 혀를 베여 피를 흘리죠. 하지만 차가운 금속에 이미 혀의 감각이 마비된 늑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칼날에 계속 묻어나는 자신의 피를 핥아 먹고, 그것을 핥느라 또 피를 흘리고, 또 핥아 먹고……그러다가 쓰러져 죽는 겁니다. 저도 빙판에 꽂힌 칼날 같은 기억 한 조각을 핥다가 제 피인 줄도 모르고 흐르는 피를 핥고 또 핥다가 마침내 쓰러졌습니다. - 113

 

술이 깰 만하면 다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마지막에 그 담배로 다음 담배에 불을 이어 붙이듯 책을 읽다보면 전혀 무관한 분야의 책에서 같은 책을 인용한 것을 발견하거나 유사한 이야기를 예로 드는 경우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에스키모의 늑대 사냥이 그랬다. 그 우연이 반복되고 미세한 차이가 발견되면 그것은 필연이 되거나 결정적인 운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리얼리스트이기만 한 시인도 시인이 아니라고 말한 네루다의 이야기를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에서 읽고 얼마 후 이시영 시인의 강연에서 그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맥락에 따라 텍스트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된다. 텍스트의 의미는 컨텍스트가 규정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의 유사한 텍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은 강렬하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다가 말하자면 수없이 기시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사성에 기초한 지루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고 불안한 긴장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스테리 소설이 가진 두근거림과 불안정한 긴장이 뒤섞여 독특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처음 읽는 최제훈의 소설이지만 주목할 만한 작가와의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산장에 여섯 명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초대된다. 첫 만남이고 각양각색의 나이와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연쇄살인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들의 만남은 평범하게 시작된다. 이들을 초대한 주인만 나타나지 않은 채.

 

해설을 쓴 정여울의 말대로 스포일러가 하나도 없는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떠오를 만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최제훈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종류만 다를 뿐 영원히 풀 수 없는 미스테리, 무한 반복되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이야기를 욕망했을까.

 

집에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어둠 속에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보았네

내가 키우는 새끼 고양이는 세 마리뿐인데

하얀 고양이, 까만 고양이, 얼룩 고양이

나는 차마 불을 켜지 못했네

 

그 하나의 눈동자를 찾기 위한 소설을 읽는 재미를 스포일러 없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여섯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등 네 편의 중편이면서 하나의 장편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각 중편들의 내용이 겹치고 스미고 가로질러 평면이 아닌 입체를 만들어 낸다. 각각의 중편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최제훈이 무엇을 의도했던 각각의 중편이 어떤 내용이든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본 후의 아쉬움이 다른 중편에서 아주 조금 해소되기도 하고 그 만족감은 또 다른 미스테리로 이어진다.

 

유사한 방식의 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의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또 다시 소설이 이어지기도 하는 등 창조적 상상력이 얼마든지 발휘될 수 있는 문학의 매력은 다양할수록 좋은 일 아닌가.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에서 벗어난 장르 소설들이 나름의 매니아들을 거느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제훈의 소설이 해리포터나 본격 미스테리를 표방한 소설과 구별되는 지점은 단순한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탄탄한 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표현과 문장이 뛰어나다. 작가의 땀이 손에 잡히는 소설에 환호하지 않을 독자는 없다. 더구나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각 중편마다 QR코드가 붙어 있어 최정우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소설을 위해 작곡과 연주가 함께 하니 듣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 -179

 

출구를 위해 미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풀 수 없는 엉킨 실타래만큼 폐쇄된 미로는 끔찍하다. 그것이 우리 삶의 알레고리가 아닌 한 희망 고문은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망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미로에 가두기보다 여러 군데의 출구를 마련해도 좋지 않을까. 완벽한 미스테리보다 다양하게 해석되는 텍스트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영화 <메멘토><인셉션>처럼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꿈 속의 꿈 같은 현실은 보는 즐거움과 읽는 재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금 더 내밀한 고통과 깊은 한숨까지 품은 최제훈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120229-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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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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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자를 자신의 소설에 취하게 할 의무가 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한 작가를 가슴에 품게 되고 오래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 그것은 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 등 독특한 개성에 기인한다. 여러 작품을 통해 점점 빠져들게 되는 작가도 있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첫 눈에 반해 버리는 작가도 있다.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 펼쳐지는 그 다양하고 내밀한 반응이 궁금할 때가 있다.

 

거기, 당신?으로 처음 만난 윤성희의 소설은 따뜻함이었다. 차마 긴 이야기로, 거짓 소설로 담아낼 수 없어 짧은 시의 언어가 지배했던 80년대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90년대 소설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까. 거대 담론의 소멸과 여성 작가들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미시적 관점과 내면의 문제에 대한 섬세한 관심은 여성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과 1차적인 관계망을 실핏줄처럼 상세하게 그려냈다.

 

2000년이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적 충격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자유경쟁 질서의 고착은 삶의 양상과 태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문학 외적 조건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듯하다.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볼 만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정도상의 모란시장 여자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소설은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 머물며 때로는 독자들을 칙릭(chic-lit)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문학의 위기는 가리타니 고진의 근대 문학의 종언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다양한 통신 매체의 발달과 흥성거리는 볼거리와 놀거리 때문이 아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주변인들에 대한 위무와 개인의 슬픔과 아픔에 호소하는 일관된 방식 때문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윤성희의 소설은 거대한 흐름 바깥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웃는 동안이 보여주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고 현실 안팎이 뒤섞인 만화경을 연상케 한다. 가령 ‘340분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문장에서는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인다. 감정은 메말랐고 익숙한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찾아낸다.

 

우연이란 한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을 첫사랑에게 배웠다고 적으리라. - '부메랑' 중에서

 

해설에서 강동호는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는 모호한 문장을 낳았지만 윤성희의 우연은 기적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기대하는 모든 희망을 조롱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죽은 사람 혹은 유령 들은 현실 바깥에서 현실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하지만 그 현실이 특별히 뒤틀리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 혹은 관찰자가 이물스럽다. 그것은 정교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집에는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이후에 오랜 만에 만난 그녀의 소설들은 무미건조한 물맛이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커피향처럼 은은하지도 않고 찬 냉수처럼 마시는 순간 감각을 깨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스민다.

 

투명 인간처럼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단편과 단편들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소설을 위해 탄생한 개성적 인물들이 아니다. 특별히 이 시대 밖으로 쫓겨난 소외된 이웃도 아니다. 평범에 기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목 받는 인생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라서 뭐라 명명하기도 어렵다. 주변인?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주 재미있고 나름의 특징을 가진 듯 보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모두 투명인간이 아닐까. 그래서 놀란 라이언처럼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가 아니라 아주 느린 공을 던지는 은 투명인간이다.

 

형의 최대의 무기는 느린 공이었다. 너무 느려서 아무도 치질 못했다. 형이 공을 던졌다. 나는 그 공이 날아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느린 공이었다. 아주아주 느린 공, 나는 손바닥이 아픈 것처럼 엄살을 피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볼이야.“ -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281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스토리는 사라지고 이미지와 밋밋한 문장의 뼈다귀만 남는다. 형체없는 주인공들과 유령들도 사라지고 헛된 일상과 현실 바깥일이 궁금해진다. 소설을 읽는 일은 현실의 메트릭스 안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비춰보는 일이다. 열정도 냉소도 없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멀건 눈으로 창밖을 보는 일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인생처럼 덧없다. 소설을 해석하려는 헛된 노력처럼.

 

우리의 삶은 필연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필연처럼 움직이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우연의 무질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삶의 진실은 아닐까.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묵묵하게 오르고 다시 올라야 하는 시찌프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등산객처럼.

 

필연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기보다, 우연이라는 무질서의 너울 위에서 표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인간의 삶이다. - 강동호, 해설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첫 문장.

 

 

2012011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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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1
최승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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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시가 되고 시가 노래됨을 어렴풋이 알려준 광석이형 16주기.

 

시는 노력만으로 쓸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타고난 감수성과 언어의 활용 능력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를 만날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눈빛에 감전된 것은 감수성의 백열등이 깜빡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황지우와 이성복의 시를 처음 만나던 순간, 김영승의 반성과 김승희, 최승자의 시를 읽던 느낌, 나른한 5교시 박노해를 낭송해주시던 선생님의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뒤적이던 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먼지 묻은 책장의 앨범처럼 가슴에 남아있거나 무턱대고 과거로 회귀하거나. 아주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 그리고 가끔씩 오래된 친구의 소식을 기웃거리듯 빛바랜 시집을 꺼내들거나 근황을 궁금해 하거나.

 

최승호의 시집 아메바는 낯설다. 기존에 썼던 시들에 대한 반성적 고찰 혹은 그림자 연습.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시집은 일종의 문체 연습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언어와 이미지를 먹고사는 아메바 같은 시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낯선 시집을 읽으며 예전의 시들과 다시 만나고 변형된 이미지, 생경한 리듬, 낯선 의미와 부딪친다.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에 해당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된 자신의 시 문제를 풀었다가 모두 틀렸다는 항변으로 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던 최승호는 이제 대학교수다. 상황이 변했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그의 시를 추동할 만한 내적 긴장과 감수성이 증발되고 있거나.

 

아주 오랜만에 최승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몇 편을 옮겨본다. 그의 실험이거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거나. 혹은 살아있는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쓸쓸한 뒷모습이거나.

 

 

03 나의 두개골

 

나의 두개골 안에

불타는 가시덤불의 거센 불길이

느껴지는 이 싱싱한 밤

 

03-1

 

밤이면 흐느적거리는 시의 촉수들,

뜨거운 두개골의 창문 밖으로는

오월의 장미넝쿨이 흘러내린다

 

 

04 문자

 

문자에 스민 그의 피, 그의 숨결, 그의 고통, 때로 얼음의 책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여온다. 그는 아직 얼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04-1

 

방산 속의 허연 유령처럼

밖을 내다보는 희미한 얼굴,

얼음의 책의 저자

 

 

14 붕괴

 

붕괴된 백화점

철거되지 않은 거대한 벽면이

폐허 위에 기우뚱하게 서 있던 것과

전봇대를 삼키듯 휘감아버렸던 나팔꽃덩굴을 너는 기억한다

 

14-2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붕괴된 벽에

누가 언어의 사다리를 걸어놓고 기어오를 것인가

 

 

19 우리는

 

우리는 거대한 증발접시 안에서 속이 타는 물방울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19-4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36 연중강우량 1mm

 

연중강우량 1mm

아이쿠 사막에선

모래에 뿌리 박은

가시 돋친 혀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면서

뚱그런 철퇴 모양 번쩍이는 해 아래 이글거린다

 

36-1

 

아이쿠 사막에선

태어날 때도 아이쿠!

죽을 때도 아이쿠!

 

 

40

 

벽에 머리를 대고

혼자서 가만히 우는 아이가 있다

 

40-2

 

절벽에서 돋아난

마애불(磨崖佛)의 얼굴을

지우개도 없이 지우는 것은 바람이다

 

 

43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43-4

 

뜨거운 무의 목욕탕

거기 들어앉았다 나온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49 한낮의 골목

 

한낮의 골목 텅

빈 골목을 꾸부정하니

지팡이를 짚은 늙은 고독이 지나간다

 

49-2

 

골목, 골목, 골목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사막에는 골목이 없다

 

 

58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58-1

 

물감을 베고 누운 화가처럼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시상에 잠긴다

 

 

2012010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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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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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경우, 책을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경로에 따른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마찬가지 경로를 따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작가의 명성, 전작의 우수성, 출판사의 홍보, 각종 문학상 수상, 주변의 추천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인의 경우 평론집을 통해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구나 한국 문학 전체의 흐름을 읽고 신진 작가와 기성 작가의 작품을 두루 읽고 그들의 신작을 적절하게 선택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몇몇 통계를 보면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부익부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읽는 사람은 1인당 평균 독서량이 작년보다 증가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더 줄었다. 10명 중 6명은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으며 베스트셀러의 집중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는 책 읽는 사람 입장에서 쉽지 않은 고민이다.

 

재와 빨강으로 처음 만난 편혜영의 소설 저녁의 구애는 주목할 만한 작가의 발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와 빨강에서 보여준 작가 색깔과 문장이 작가 고유의 것으로 육화될 것인지 중간에 힘을 잃어버릴 것인지 지켜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독자는 언제나 여러 선택지 중에서 최선을 희망한다. 합리적인 소비에 버금갈 만큼 책의 선택은 자신의 시간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소설 한 권 읽는데 뭐 그리 복잡할 것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분야별로 제대로 읽어나가고 즐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려할 만한 사항이 많다.

 

편혜영의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집은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일정기간 동안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이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내적 변화와 외적 상황에 따라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믿는다. 이 소설집은 편혜영의 한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설집일 것이다. 그것을 무엇이라 평가하든 말이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문장 혹은 몇 개의 키워드로 작품 세계를 드러낼 수도 있다. 김형중은 해설에서 그것을 동일성의 지옥이라고 표현했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낼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지라는 신현림의 말대로 그것은 시대와 무관하게 반복되는 일상성에 대한 도전이며 그 간극을 뛰어넘는 한숨이다.

 

동일성과 일상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며 시찌프스처럼 무한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 일이 인간의 삶이라는 비극적 인식은 편혜영 소설의 기본 전제이다. 하지만 그 일상은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다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생활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수 있다. 편혜영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비틀어보아야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충실한 듯하다. 기다릴 무언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한단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소설가는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허망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소설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편혜영도 마찬가지다. 넓은 의미에서 편혜영의 소설은 희망 없는 시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김은 누구나 이기적이므로 누구에게든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 40

 

우정이라는 것은 애정의 정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자신에게 헌신적이거나 유익할 때에만 유효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모든 지나간 일을 되새기는 과정이 그렇듯 과거의 어떤 일이 미친 결과나 상처는 아무런 파동 없이 떠올랐고 그러는 과정에서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에 대한 서글픔과 뻔한 회한만 남았다. - 40

 

표제작 저녁의 구애의 몇 문장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은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는 일은 때로 우스꽝스럽게 여겨진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생을 사는 사람들, 현실보다 밋밋한 소설들, 사람과 책 사이에서 현실과 허구의 매트릭스를 경험하는 우리에게 책읽기는 현실에 대한 확인이며 꿈이다. 그래서 때때로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는 말의 홍수를 견디는 일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얘기를 하는 동안 김은 여자에게 말한 것들이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말은 모두 어디서 읽거나 누구에게 들은 얘기 같았다.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는 말이었다. 반면에 그래서 진심처럼 들리기도 했다. - 61

 

토끼의 묘동일한 점심산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루함과 건조함, ‘저녁의 구애에서 보여주는 허망함과 피곤함, ‘관광버스를 타실래요?’정글짐의 낯설음과 불분명함, ‘크림색 소파의 방을 통해 확인되는 안타까움과 불안, ‘통조림 공장의 그로테스크함과 우울한 전망.

 

스타카토처럼 짧게 던져지는 문장과 모래바람이 불 듯 서걱이는 건조함은 희망없이 미래를 바라보아야 할 우리들의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의 아이러니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시니컬하게 비틀고 무미건조하게 툭툭던지는 문체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생의 비의(悲意)를 확인하고 싶다면 편혜영의 소설이 제격이겠다.

 

전화를 끊으면 그는 누군가 자신을 낯선 도시로 내몰았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공교히 음모를 꾸몄으며 자신은 순진무구하게도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늘 구군가에 의해 설계된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화가 났다. 자신을 통제하는 대상이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 통제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 때문이었다. - 167

 

 

2011122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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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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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서평 사이

 

문학 연구자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 결과는 학문이 될 것이다. 문학사와 문학 이론은 물론이고 사회학과 역사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은 비평은 어느 작가의 비유처럼 소 잔등위에 앉은 파리처럼 귀찮기만 할 뿐이다. 이론적 기준에 입각한 정치한 글쓰기는 일반 독자를 쉽게 설득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은 비평을 읽을 만하지 않은 그들만의 언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그러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품의 안과 밖을 두루 살피며 객관적인 검증 절차로 받아들이느냐 개별 비평가의 주관적 평가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늘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비평의 시대를 넘어 서평의 시대가 도래했다. 평론가들의 비평 기능과 역할이 2000년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능동적인 독자들의 참여가 결정적인 이유 때문이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에 소설을 발표하는 시대에 문학 비평의 역할은 설 자리가 좁아졌고 문단 권력과 주례비평에 대한 반성과 비판들은 일반 독자들과 비평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평의 역할과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로서의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 혹은 창작되는 작품들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해석은 여전히 평론가와 학문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온라인 시대의 문학에서 서평의 의미와 위치는 애매~하다.’ 개별 독자들의 단순한 독서감상문으로 보기에는 그 깊이와 영향이 상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과 서평을 큰 틀에서 볼 때 객관적일 수 없다고 본다면 백락청과 김현 같은 스타 평론가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 기능의 상당 부분은 신문 서평란의 전문 기자와 서평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평가들은 전문 연구자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출판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전문 직업군이기도 하다. 기존의 작가들이 겸업하는 경우고 있으며 일반인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김미월의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읽으면서 비평과 서평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신진 작가에 대한 접근 경로와 판단 때문이었다. 평론가는 최근에 출판된 한국 소설을 두루 읽고 그 흐름을 파악하며 한 작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작품세계를 꾸준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경우에는 어떤 작가가 주목할 만한 작가인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전체 작가의 작품을 고루 읽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많이 팔리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지만 김애란의 초기작에서 느꼈던 발랄함과 감각적인 언어, 즐거운 상상력은 첫 번째 장편소설에서 실망으로 바뀌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겠으나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음 소설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 코너만 기웃거리고 영화를 보고 책을 구입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처음 만난 김미월

 

책과 무관한 이야기로 시작한 김에 한 가지 더! 시집과 소설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학력표기는 필요한가? 중졸 학력이나 박사학위를 가진 작가의 이력이 작품을 읽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가 살아온 내력, 개인적 관심사와 취미, 집안 분위기, 인상 깊은 성장과정의 에피소드, 정치적 성향,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이 아닐까? 천편일률적인 학력 소개와 펴낸 책 소개는 표정 없는 증명사진처럼 의미도 재미도 없다.

 

강릉에서 태어났다, 는 소개는 강릉에서 태어나서 몇 살까지 성장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소설 곳곳에 배어있는 서울에 대한 느낌과 서울 살이에 대한 생경함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작가의 관찰과 경험인지 잘 설정된 주인공의 몸에 어울리는 상상력인 궁금했기 때문이다. 소설집과 장편 소설을 각각 한 권씩 펴내고 두 번째 소설집으로 처음 만나는 김미월의 소설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보인다. 9편의 단편들이 가진 각각의 얼굴은 따로 또같이 잘 어울린다. 조금씩 다르면서 어우러져 화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발표한 단편들을 묶어낸 소설집의 경우 내용이 다양하다는 즐거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일관된 성격이나 흐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표제작에 나오는 표현을 차용하자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오르긴 힘들지만 그 뒤편 서가 구석에 꽂혀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인지망생이었던 편집자, 가난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여고생, 불법취업 외국인, 다문화가정, 취업준비생 등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이웃들과 있어도 표나지 않는 개성도 특징도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로 가득하거나 개성이 뚜렷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기막히고 놀라운 사건이나 인상 깊은 장면으로 독자를 사로잡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미소 짓게 하는 상쾌한 비유,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 어색하고 딱딱하게 관념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 황망하지 않는 결론 등 김미월이라는 작가의 분명한 빛깔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분명함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유였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처럼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생각들을 문장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다수 평범한 우리에게 작가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는 따뜻함을 확인하게 한다.

 

흔히 희망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말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겨우 ‘29200’일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영원을 살 것처럼 욕망하는 사람들이나 아무도 펼쳐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을 쓰고 있는 작가의 심정이나 달리할 것도 없는 사람의 미래를 담담하게 들여다 볼 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닌 작가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공감과 소통이 시대의 키워드로 떠올랐으나 그 말 또한 언제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언제나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소설을 꿈꾸겠으나 그것은 지금 여기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치밀한 관찰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비록 누추하지만 희망혹은 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멈추지 않기를. 모든 것이 우중충하지만 쨍쨍한 햇볕에 잘 마른 빨래처럼 팽팽한 내일을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모든 것이 우중충했다. 저 남자애는 곧 학교에 도착할 것이다. 곧 졸업을 할 것이고 저 아저씨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레깅스를 신은 아가씨들 중 한 명과 결혼하겠지. 두 남녀는 아파트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낮밤 없이 일할 것이다. 주말에는 주중에 밀린 잠을 자기 바쁠 것이고. 드디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면 아마 나이 쉰쯤 됐으리라. 그때쯤이면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당뇨나 허리디스크, 우울증도 피해갈 수 없겠지. 아아, 정말이지 너무나 우중충한 미래였다. - ‘292001’, 45

 

 

2011121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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