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4
박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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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붉은 빛을 토해내며 서산마루에 걸린 태양은 죽음과 좌절, 소멸과 허무를 떠올리는 법이다. 그것을 푸른 시간을 예비한 빛의 굴절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밤의 시작을 알리는 황혼처럼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아이러니한 공통점은 망각이다. 언젠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것은 항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시골, 원형적 삶의 공간에서 퍼올리는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공동체에 대한 기억. 박형준의 시의 토대는 그의 유년 시절과 농촌에서의 삶이다. 이제 얼마나 더 우리에게 농촌 공동체의 따스한 기억이 ‘추억’으로 혹은 ‘낭만’과 ‘아쉬움’으로 여겨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기억의 원형은 안타깝지만 지속적으로 전수되리라 믿는다.


황혼



아버지 삼우제 끝나고

식구들, 산소에 앉아 밥을 먹는다



저쪽에서 불빛이 보인다

창호지 안쪽에 배어든

호롱불



아버지가 삐걱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


박형준의 새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그간에 시인이 보여준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황혼’이 서시가 되었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떠나는 것들과 남은 것들의 아쉬운 결별보다 보이지 않는 간격에 관심을 가져보자. 창호지 안쪽에서 흔들리는 그것은 누구인가.

독특한 감수성은 시인에게 필수아이템이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을 개성이라고 하지만 시인 나름의 빛깔과 무늬가 독자에게 수놓아질 수도 있고 불편하고 어색한 남의 옷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박형준의 그것은 어떠한가.



당신의 팔



당신의 팔 속에서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사람이 사랑을

사랑이 사람을

못 믿고

사랑을 사람이 두고

못 믿고



강물 속에 고기가

고기 속에 고기가

흐린 불빛 떠다니는

정육점 같은 팔 속에

나는 있고

고기 같은 강물 속에

당신은 있다



물살이 저녁 강 연안 지대에 부서진다

저녁 강물의 테이블엔

식빵 가루 점점이 흩어져 있다

어디선가 날려온 은빛 깃털이

물살에 떠밀려간다

울음 한번 짧게 울곤,

다른 데로 날아가는 두루미 부리같이



나는 당신의 팔 속

강물에 떠다니는

부스러기를 찍어 먹고

살 속의 창에

가슴속에 두고 아껴온

입맞춤을 하고 나는 언제나

당신의 팔에서 타인을 사랑한다

언제나 당신의 팔 속에서 죽는다


보통 보이지 않는 대상을 표현하려는 자들의 몸부림만큼 처연해 보이는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낯섦과 새로움에 반하고 기꺼이 당신의 팔 속에서 안기고 싶은 것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로부터의 탈주 혹은 외면.

동물의 왕국에서나 눈여겨 볼법한 황제 펭귄의 생태가 갑작스레 따뜻하게 전해지는 것은 옆으로 누운 활자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쓸려가지 못하는 운명 때문은 아닐는지. 삶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고단하게 북풍을 견디고 눈보라를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아닌지. 그래서 시인은 봄은 ‘의지’로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황제펭귄



얼음이 단단해지는 남극의 겨울이 오면 황제펭귄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이동한다. 포식자를 피해 짧은 다리로 빙산을 타고 얼음길을 걸어 바람막이의 안전한 평지를 찾아 100km를 이동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제의처럼 짝짓기를 끝내고 암컷은 알 낳기에만 몰두하여 몇 주 후에 주먹 크기만 한 알을 낳는다. 암컷은 힘을 모두 소진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알을 품을 수 없어 수컷에게 넘긴다. 암컷은 수컷에게 알을 넘기기 위해 수컷에게 최대한 몸을 밀착시키고 신속하게 알을 건네준다. 수컷의 짧은 두 다리 사이에는 주머니가 있어서 이 속에서 알은 안전하게 부화의 과정을 거친다. 암컷들은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다. 그때부터 수컷들의 순례의 행진이 시작된다. 눈보라와 영하 60°C의 강추위 속에서 수백만 마리의 수컷 펭귄들이 다리 사이에 알을 끼우고 암컷들이 떠난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알을 지키기 위해 둥그렇게 뭉쳐 서로를 보호한다. 온몸이 눈보라에 뒤덮인 채로 어둠 속에서 백야의 무덤이 되어간다. 바깥에 있는 펭귄들은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는 펭귄들은 다시 바깥으로 나오면서 그들은 그렇게 2개월 이상을 보낸다. 드디어 순례의 정점에서 새기들이 부화하고 수컷들은 되새김질한 먹이를 새끼에게 먹여주지만 그들 역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이내 한계에 도달한다. 바로 이때 저 멀리 바다에 가 있던 암컷들이 입안에 가득 먹이를 지닌 채 아침 해를 등에 지고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는 암컷들의 실루엣에 커다랗게 원을 이루면서 움쳐 있던 수컷들의 대오가 무너지고,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짝을 부른다. 2개월 이상의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암컷들은 자신의 짝의 목소리를 정확히 기억한다. 입에 가득 문 먹이를 품은 채 뒤뚱거리는 다리로 수컷고 제 새끼에게 안겨든다.


이 도보승들에겐 흔히 Emperor라는 칭호가 붙는다.

이 피안의 황제들은 자신을 침묵 속에 열어놓고

자신의 고독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봄은 의지로 온다.


희망은 미래를 위한 일종의 환각이다. 그것은 이루어지짐과 무관에게 모든 것들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한다. 펭귄은 무엇을 바라 2개월 이상의 긴 시간동안 바다를 바라고 있었을까. 시인은 우리가 사는 일도 황제펭귄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기도 하겠지만. 과거로 단단하게 뭉쳐진 빗방울처럼 그렇게.


빗소리



내가 잠든 사이 울면서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여자처럼



어느 술집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거의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손으로 만지기만 하던

그 여자처럼

투명한 소주잔에 비친 지문처럼



창문에 반짝이는

저 밤 빗소리


그리하여 어느 날 투명한 울음을 울기도 할 것이다. 낯설게 다가오는 자신의 모습과 차창에 비친 또 다른 누군가와의 대면. 어색하기보다 차라리 객관화된 외로움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투명한 울음으로 가득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부대끼며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오늘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투명한 울음



그런 날이 있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가는 여자가

차창에 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고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날이 있다

그녀의 눈에 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운 적이 있다

그런 날에는 깨진 사금파리에 빛나는

시려운 빛이라도 그리워진다


사라진 사람들은 저녁 빛을 받으며 돌아온다. 빛의 세상을 살아내고 어둠의 세계를 견디기 위하여 불빛을 찾아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 위로는 인간의 몫이 아니다. 시인은 사물들이 보여주는 형상들, 소리들에 주목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 차갑고 단단한 것 그리고 빛과 그림자.


저녁 빛



사물 속에 빛나는 고통처럼

또 저녁이 온다

버드나무 꽃가루 자꾸 날아와

다래끼를 나게 하는 바다



선창가 외진 술집

금 간 담벼락 밑에 핀 질결이꽃처럼

먼지투성이의 삶을

눈빛으로나마 바다에 빠뜨리며 걷는다



시간을 들여다보느라

한 개의 초점만 남은 눈먼 시계공

수평선에 잔해를 이루며 노을은

시간의 땔감들을 한 단씩 태우며 저문다



새살이 돋아나는 통증인가

부서진 초침과 분침 들

부드러운 상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들로

또 하나의 성좌를 이룬다

수평선이 빛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


모든 고통이 사라진 후 잠에서 깨어난 듯 어두워지는 사위를 둘러본다. 부박하고 처량한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젊은이에게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힐 무렵 찾아온 사랑처럼 누군가에겐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나마 시인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나지 않아서 울고 생각나도 울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은 박형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그 젊은이는 맨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11110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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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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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 시인의 말



심심하여 시인의 말을 패러디.
 
사랑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세상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시집을 들추니 ‘Mundi에게’가 눈길을 끈다. 라틴어로 세계, 세상이라는 의미의 ‘Mundi’. 현존재인 ‘나’의 시점으로 존재자인 대상을 통찰하는 것은 시인의 의무가 mundi를 거쳐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데 심보선은 그것을 ‘들’과 ‘둘’로 나누었다. 거칠게 ‘들’은 ‘野’, 즉 사회를 말할 것이고 ‘둘’은 ‘人’ 즉 기대고 선 두 사람의 관계 혹은 사랑을 의미한다. 한 권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싶은 시인의 욕망과 무관하게 이 시집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좋은 일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작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언어[言]로 지은 집[寺]. 시(詩)의 한자어는 문학의 성격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다. 말은 수많은 형태와 빛깔을 지닌 건축물을 만들고 사람들은 말없이 그 안에서 숨을 쉰다. ‘나’와 ‘너’ 그리고 세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지만 때때로 암흑처럼 어두운 세상은 침묵한다.



텅 빈 우정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우연에 대하여

먼 훗날 더 먼 훗날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처럼

나는 대체로 무관심하답니다.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입술이 하염없이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당신’은 2인칭에 머물지 않고 3인칭 극존칭으로 존재한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한 독백이어도 좋고 마주앉은 ‘너’여도 좋다. 부재하는 제3자이면 어떤가. 연시(戀詩)에 기대어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방법이다. 주관적 경험의 객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말[言]은 나름의 기능[寺]을 획득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된다. 그것이 ‘낙화’할 때까지.



낙화



어느 지상에 가을이 임하고 있다.

처음 보는 낯선 빛이 만인(萬人)의 발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낙화의 순간

누군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 넘어지고

무언가 잘못된다

아직은 인간인 고아(孤兒)가

가족과 이웃

좋은 이와 나쁜 이를

구별할 수 없어 모두가 그리웁다

떨어지는 꽃이여

찰나의 귓바퀴를 맴도는 시간의 방랑이여

누군가 급히 거둬들인 시선이여

무언가 슬피 가리키는 손가락이여

지상의 어느 문에도 맞지 않아

허공에서 영원히 헛돌고 있는

고단한 열쇠여


그 고단한 열쇠는 세상의 모든 ‘처음’을 기나리고 그러다, 그러다가 ‘첫 줄’을 기다린다. 세상의 모든 첫 줄은 다음 줄로 인도할 뿐이다. 첫 줄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슬픈 조문(弔文)에 불과하다. 그것이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우리를 늘 미래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이 별에는 ‘이별’이 존재한다.



이 별의 일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멸망이 이별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위해 멸망을 열망한다. 멸망이 쉽지 않다면 이별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별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별은 그러나 너무 쉽다. 제2부 ‘둘’의 서시는 이렇게 이별보다 멸망을 두려워하며 시작된다.



노스탤지어



유물론자들은 일찍 죽는다

그들은 모순을 설파하지

자기 영혼에 불꽃을 던진 방화범

판관은 고민한다

후회는 양심의 증거인가

죄의 증거인가

法은 만졌을 때 더 차가운 것을

좋은 물증으로 택하지

그러나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감미로운 이끼가 풍미하는 절벽

하품과 하품 사이에서 나고 죽는

산양의 일생

평생 되새김질할 만큼

뱃속에 가득한 無

기억의 치외법권에서 들려오는

영원한 헛구역질 소리

뒤돌아보지 않으리

이 삶은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았으니


여기까지 옮기고 나니 동갑내기 시인 진은영의 해설, “하이데거는 ‘눈앞에 있음’(Vorhandensein, 현전하는 존재)과 ‘손 안에 있음’(Zuhandensein, 도구적 존재)을 구별하면서 한 사물이 도구적 용도 속에서 파악되는 한,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는 부분이 떠올랐다. 결국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공기가 사라져버렸을 때의 답답함을 통해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즉,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그래서,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시인들은 언제나 뒤표지에 실린 시인의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미래의 모든 부재를 예언하는 세상의 존재들이여.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11102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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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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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한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면 분명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형태가 포착되고 미세한 동작이 감지된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착시(錯視) 현상이라고 치부하지만 실제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대해서 상상해 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과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 너머의 울림들은 좀체 전해지지 않는다. 그것을 포착하려는 불온한 시선이 바로 소설가의 그것은 아닐까.

현대소설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근대의 개념을 포괄하며 단순한 서사의 힘을 넘어 선 소설이고, 또 하나는 시간적으로 과거와 대립되는 개념의 소설을 의미한다. 19, 20세기는 그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눈부신 ‘속도’와 ‘변화’의 굴곡을 보여주었다. 역사 발전의 한 과정이라고 하기엔 울렁증이 생길 정도로 혁명과 전쟁을 겪으며 전 인류가 그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눈에 보이는 적이 사라지고 대립과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를 상실했다. 일본의 가리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했다. 소설은 여전히 읽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인지 그리고 어떤 소설이어야하는지 독자들은 스스로 반문할 필요가 있다.

김경욱의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읽는 동안 단정하고 반듯한 모범생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형식과 문법에 충실한 단편들이라는 느낌이었다. 흠결을 찾아내거나 한편, 한편 분석하다보면 나름의 특징이 드러나겠지만 9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뒤에 붙은 권희철의 해설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의 표제작처럼 ‘신’에게만 손자가 없는 게 아니라 ‘작가’에게도 손자가 없다. 전지전능한 소설가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인물을 창조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폭풍 같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그러한 욕망의 극단을 참지 못하면 소설을 쓰는 것이다. 김경욱의 전작들과 이번 소설집의 차이는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기이한, 특별한, 평범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그려진다. 할아버지와 손녀, 취업준비생, 광고기획사 대리, 전직 권투선수, 소설가와 사진작가, 주유소 알바생, 관광가이드, 평범한 가장 등 소설의 중심에는 넓은 범주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작가의 몫이다. 독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아니라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어떤가.

분명하고 흥미진진한 ‘서사’ 중심의 소설이 있고 수려한 문장과 잠언들로 가득 찬 소설이 있다.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담아내려는 것이 작가의 욕망이겠으나 어느 한 가지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작가도 있다. 아홉 편의 단편 중 ‘러닝 맨’과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이 인상 깊에 읽히는 이유는 알레고리와 욕망 때문이었다. 쉼 없이 일정하게 달리는 사내에게 쫓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의 착각일까 아니면 음험한 경쟁사회의 시스템일까. 전직 복서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하지도 않은 삶을 자서전이라는, 누구나 한번쯤 써보고 싶어하는 책의 대필작가의 눈으로 바라본다. 시간이 많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있게 읽힐 것 같다.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을 말한다.

“나약한 소리 마시오. 한번 링에 오른 자는 영원히 내려올 수 없소. 발 딛고 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링이기 때문이오. 흔히 말하지, 세상은 링과 같다고. 말은 언제나 쉽소. 세상이 링이라면 언제나 링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세상이 일종의 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오. 링이 왜 사각형인지 아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머무는 곳이 십중팔구 사각형이기 때문이오. 방, 교실, 사무실, 엘리베이터, 길, 버스 등등. 요람부터 관까지 모두 사각형이니 결코 사각형에서 벗어날 수 없소. 운명은 사각형이오. 작가 선생.”(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 - 114쪽

네모난 링에 오른 것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야 하는 세상에서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듯 한 허리케인 조의 이야기는 작가선생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에게 남기는 유언처럼 들린다.

소설과 현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놓여 있다. 작가는 그 틈새를 들여다 보려고 엎드려 눈을 대고 독자들은 하늘을 향한 작가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그것은 작가가 본 현실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욕망하는 세상의 또 다른 이미지이며 상징이고 외면하고 싶은 누추한 삶의 진경이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모래사장을 홀로 걷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을 담은 표지는 별로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11101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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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유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89
이재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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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말하거나 시간의 거리와 어둠의 깊이에 대해 진지한 눈길을 던진다. 이재무의 『경쾌한 유랑』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간극과 사물의 서늘한 표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연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를 부리는 힘과 삶에 대한 어렴풋한 해석이 가능해진걸까. 언제나 그렇듯 그 깊이와 넓이가 부럽고 불가해한 힘의 근원이 궁금하다.

목적 없는 발걸음인 ‘저녁 산책’은 그래서 행복하다. 그러나 시인의 저녁 산책은 단순해 보이지가 않는다.


저녁 산책


숲 가운데 앉아 서산낙일 바라다본다

저 곳은 내 미래의 거처

누군가 부르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밭 일궈 골라낼 돌 아직 수북한데

벌써 홑이불 되어 고랑 덮어오는 산그늘 서늘하다

삶은 여윌수록 두껍게 죽음을 껴입는다

달군 쇠처럼 뜨겁던 속도 다 한때,

불 떠난 굴뚝처럼 식어가는데

그토록 오래 떠돌았으나

결국 나 또한 붙박이 나목에 지나지 않았던 것

맨살 추워 보이는 건초들아

너희도 사랑 잃고 추워 떨며

신음처럼 낮게 노래 불러본 적 있느냐

오고 가며 요란한 것들아,

사람의 한평생

산밭 산개한 자갈 두어 삼태기 골라내는 일밖에 무엇 있으랴



“이게 최선입니까?”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최선’이 ‘최선’일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과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듯 살아온 인생을 비교할 수는 없다. ‘간절’은 욕망의 극한을 말한다. ‘열정’은 또 하나의 한계가 된다. 그러나 적절한 ‘간절’은 없다. 그래도 시인은 ‘간절’을 이렇게 말한다.


간절

삶에서 ‘간절’ 빠져나간 뒤
사내는 갑자기 늙기 시작하였다

활어가 품은 알같이 우글거리던
그 많던 ‘간절’을 누가 다 먹어치웠나

‘간절’이 빠져나간 뒤
몸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달아오르지 않으므로 절실하지 않고
절실하지 않으므로 지성을 다할 수 없다

여생을 나무토막처럼 살 수 없는 일
사내는 ‘간절’을 찾아 나선다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아야 한다



‘간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가벼워지고 욕망도 원망도 분노도 사라진다. 우리가 ‘똥파리’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헤아릴 필요는 없다. 다만 똥파리의 욕망과 생활의 빨대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그 빨대를 어디에 꽂고 있는지.


똥파리

너는 욕망의 암벽 기어올라
마침내 정상 등극에 성공하여
날개 달게 되었다
바야흐로 너는 구질구질한
바닥을 버리고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똥파리여,
너는 끝내 천출 벗지 못하였다
붕붕, 부산한 몸짓으로
진동하는 부패에 생활의 빨대 꽂고 있구나

지하철 칸칸마다 들어찬,
벽 기어오르고 있는 구더기들이여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모든 생명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무와 숲을 향한 열망만큼 뜨거운 시인의 욕망이 또 있을까. 순간과 영원 사이에서 유한과 무한 사이에서 우리를 자극하는 건 결국 나무 한 그루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사랑’을 읽고 아픔을 배운다. 한 줄이 한 행(行)이 아니라 한 연(聯)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푸른 거처

나무 속으로 내 사랑 들어갔네

나무 속으로 들어간 내 사랑

잎으로 돋고 꽃으로 피어나

사계를 살았네

나무 속에는 푸른 방이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마당이 있고

나무 속에는 푸른 창이 있다네

어느 날은 서럽게 울고

어느 날은 환하게 웃고

어느 날은 명주 올보다 더

가늘게 귓속 골목을 파고드는 노래

저 나무 속 내 미래의 거처엔

오래전 내 곁을 떠나간

사랑이 살고 있다네 

 

숲 속의 나무와 길가의 가로수. 그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상황과 위치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차이를 말한다. 일렬종대로 세워진 균질화된 나무의 생태는 인간의 왜곡되고 조작된 기억만큼이나 슬프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재앙일 수 있다’는 시인의 전언이 아픈 까닭은 그것이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도 절망도 썩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혹한 운명이라고 말한다.


일렬종대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한 실물로 보여주는 저 가로수들

올해도 지루하게 동어를 반복하고 있다  

선천성 일급 장애로 봄이면 버릇처럼,

악착같이, 수평 향해 가지를 뻗어보지만

번번이, 욕망은 잔인하게 진압되고야 만다

지쳐 쓰러져, 탕진의 바닥에 누울 때까지

썩지 않을 희망, 썩지 않을 절망

저 가혹한 운명의 슬픈 우리 자화상



11100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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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독일로 간 그녀는 인간의 시원을 밝히고 있을까. 고대 동방문헌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허수경의 시인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을 아껴가며 읽었다. 떡제본이 아니라 실로 제본하고 표지까지 풀로 붙여 정성을 들였다. 노트만한 크기의 시집을 눕혀 위로 넘기면서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니 제법 색다른 맛이 났다.

시인을 처음 만난 건 『혼자 가는 먼 집』이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 넓어졌다. 차고 뜨거운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은 심장의 몫이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직관과 감성적 본능이 앞설 때가 많다. 장정일은 젊은 날 시를 썼던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만 시는 여전히 자신의 몫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허수경의 시는 그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크다.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문득 나는 한 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도심의 가을 공원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저녁에 지는 잎들은 얼마나 가벼운지
한 장의 몸으로 땅 위에 눕고

술병을 들고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 술에 짙어져갈 때
그 옆에 앉아 상처 난 세상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다른 이름으로 나, 오래 살았던가
여기에 없는 나를 그리워하며
지금 나는 땅에 떨어진 잎들을 오지 않아도 좋았을
운명의 손금처럼 들여다보는데

몰랐네
저기 공원 뒤편 수도원에는 침묵만 남은 그림자가 지고
저기 공원 뒤편 병원에는 물기 없는 울음이 수술대에 놓여 있는 것을

몰랐네
이 시간에 문득 해가 차가워지고 그의 발만 뜨거워
지상에 이렇게 지독한 붉은빛이 내리는 것을

수도원 너머 병원 너머에 서서
눈물을 훔치다가 떠나버린 기차표를 찢는
외로운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나는 몰라서
차가운 해는 뜨거운 발을 굴리고
지상에 내려놓은 붉은 먼지가 내 유목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술 취해 잠든 늙은 남자를 남기고
나는 가을 공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5월 밤 선선한 저녁 공기가 살갗에 닿는 시원함. 푸른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다. 그래봐야 아파트 단지 사잇길과 단지 앞에 공원이나 탄천이 대부분 흙을 밟을 수 없는 길들이지만 그나마 야트막한 언덕과 산길이 이어져 있긴 하지만 콘크리트 숲 속에 고립된 섬처럼 애처롭다. 뜨거운 태양과 달리 차가운 달빛이 교교한 밤이 되면 또 하나의 세상과 조우하는 느낌이다.

시인은 유목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기에 없는 나를 그리워했고 술 취해 잠든 늙은 남자를 남기고 돌아선다.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리는 동안만.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내밀한 고백.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 정현종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작은 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중얼거렸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한 몸이면서도 나뭇잎은 뿌리와 단 한 번도 소통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허당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자명한 인식.

웃음이 사라진 사람에게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음을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프다. 말의 갈피 사이에서 의미가 부서지고 이미지 대신 신음소리만 웅얼거리는 듯하다.

입술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내 봄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네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입술만 기억하는 사랑에 대한 시 한 편. 감각적이고 관능적이어서 슬픈 장면들이 수많은 이미지를 오버랩 된다. 말하지 않았고 입술만 있었던 시간을 추억하며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오고 그 입술은 말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은 얼어붙은 심장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에 대한 회한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인간에 대한 공포이거나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을 심장이거나.


11060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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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1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말을 한 시인이 정현종 시인이군요. 저는 최근에야 정현종 시인을 알게 되어 시집을 사려하는 중이에요. 사람 사이의 섬. 눈에 보이는 듯하면서 어느새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섬.
허수경의 시는 유적을 발굴하는 느낌처럼 오래되고 버석거리는데도, 불타는 심장이 느껴지는 신기한 시 같애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인식의 힘님. ^^

sceptic 2011-11-16 23:0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