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 국어시간에 읽기
충북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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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는 도구교과다. 맛있는 밥과 반찬이 그득해도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으면 곤란하다. 어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듣고 말하고 쓰기 위해서 국어는 꼭 필요하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도구는 언어다. 그래서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을 길러야 하고 언어능력은 바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글을 잘 살려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2002년에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를 엮어낸 충북국어교사모임의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를 엮었다. 현직에 계신 국어선생님들이 만든 책의 특징은 살아 숨 쉬는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그들의 눈높이와 그들의 생각을 잘 담아낸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만든 나라말 출판사의 책들이 많은 국어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주제별로 좋은 글들을 골라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직접 읽혀보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깔깔대는 장면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또 아이들의 생각은 또 얼만큼 자랐을까.

여섯 분의 국어 선생님들이 모여 1년 반 동안 열심히 글을 모으고 아이들에게 읽혀보고 고르는 과정을 통해 나, 우리, 인권, 환경, 역사와 문화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먼저 읽을 만한 글들을 제시한 후 생각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제시했다. 한비야의 글부터 홍세화, 서재호의 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읽을 만한 글들을 엄선하고 그 글을 읽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고 적어보고 말해보고 써보는 동안 간접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 다양한 관점과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을 질문의 형식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배려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물며 아이들의 생각을 한가지로 몰아가거나 똑같은 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글을 쓴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보태고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나의 생각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다만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출발이 되고 나를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하며 주변과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진짜 국어 공부의 시작은 잘 듣고 분명히 말하고 정확히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데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참고서를 외우고 한 가지 정답을 찍어내는 문제풀이 연습으로 국어실력은 늘지 않을뿐더러 생각도 키우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혼자 그리고 다 같이 읽고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1102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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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의인가? -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이택광 외 지음 / 마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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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제 자신의 할 일에 마음을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면 ‘책임’이라는 말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샌델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이택광, ‘정의없는 사회는 왜 정의를 욕망하는가?’, 31쪽

수많은 말들의 향연. 그만큼 2010년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수 있다. 인문서로 8년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단순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스테드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고전이 되는 가장 영광스런 자리를 순서를 밟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한권의 책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는 부제를 달고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이후 급격한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각 언론과 글쟁이들에 의해 이 현상을 파헤쳐왔고 그 이유를 분석했으며 미래를 전망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의’라는 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아전인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교집합과 여집합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찾아내야 하는 퍼즐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를 읽고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존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 분석한 후 11명의 해석과 분석을 따라가며 비판적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제대로 읽는 방법은 길고 지루하게 보이지만 지금까지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배경지식이 조금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 이택광, 장정일, 이현우(로쟈), 이양수, 김도균, 최원, 박홍규, 노정태, 서동진, 박가분, 이권우.

낯선 이름도 있겠으나 글의 내용과 방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필자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공정사회’를 외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살펴보는 글들에 이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들이 이어진 후 우리 사회의 정의를 고찰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쓴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필자들의 글속에 중복되는 이론적 배경과 해석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과 미세하게 차이나는 부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의’를 고민하자는 내용으로 읽힌다. 과거 그리스에서 기원한 ‘정의’와 ‘도덕’이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을 거쳐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끈끈하게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홍규는 직격탄을 날린다.

출판 대국이니, 전국민 대졸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느니, 대부분 대학에 철학과가 있다느니 하는데도 그 유명한 디오게네스를 알 수 있는 책 한 권 없다니 너무 디오게네스하다. 너무 개같다. 개판이다. - 박홍규, ‘정의가 돈이라고?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과 한국사회’, 267쪽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의 계보학 자체를 부정하고 디오게네스 철학을 갈급해한다. 노정태는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에 따를 때 정의롭다’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다른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그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 노정태,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285쪽

두 사람 이외에도 필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 놓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다. 다만 어떤 책에 대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과 과정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으로 나아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국방부 불온서적 『나쁜 사마리안인들』을 쓴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정의와 우리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자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의미와 실현 방법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2011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는 것은 70만부가 팔린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사회현상 때문이다. 이권우의 말대로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까지도 바꿀 수 있을지 책보다 흥미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책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의를 현실에 세울 수 있을는지에 있다.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이권우, ‘‘정의’가 읽혔던 2010년 한국사회의 풍경’<무엇이 정의인가?>, 346쪽


11020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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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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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을 보면 가히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생긴 노하우와 속도가 평범한 사람들을 질리게 할 정도다. 마치 기계처럼 능숙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고 민첩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우물을 판 결과일 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다보면 말콤 글래드웰의 말대로 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되면 누구나 한 분야의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일이 어떤 일이냐의 문제가 남겠지만.

그렇다면 ‘돈’은 어떤가. 우리는 누구나 ‘돈’의 달인이 되고 싶어한다. 바꾸어 말하면 ‘돈’을 잘 벌고 많이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만큼 소비의 욕망도 크다. 버는 돈과 쓰는 돈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많이 벌고 적게 써도 문제고 적게 벌고 많이 써도 문제다. 이때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향락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면 다 된다는 믿음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부의 축적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왜 일하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훈과 감동을 세트로 안겨야 한다. 공감할 수 없다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 책이다. 지식은 내 삶을 바꾸고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데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고 희망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닌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에 대한 고전 평론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미숙은 근대성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현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해 왔다. 그린비에서 펴낸 인생역전프로젝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으로 ‘돈’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흐름을 잇고 있다. 공부와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깨뜨려야 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끔찍한 사건,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천륜을 거스르는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놓여있고,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살기도 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 자신의 일과 직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벌고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저자는 먼저 돈의 천태만상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비틀고 풍자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오직 타인을 지배하거나 누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 그 지식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 교환의 궤도를 벗어난 공부, 그것이 곧 삶의 지혜다. 공부가 지혜로 변주되는 곳에선 늘 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공부와 밥은 ‘하나’다! - P. 185

밥과 공부가 하나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학벌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연계시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공동체’를 제안한다. <수유+너머>에서 밥과 공부와 친구를 해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삶을 꾸려가는 저자에게는 당연한 주장이다.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 돈이 버는 것보다 쓰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주장은 명품에 찌들고 아파트 평수에 목숨거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껴날 수가 없다.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삶을 가꾸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P. 194

시혜적 관점의 기부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를 선물과 증여의 개념으로 치환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록으로 ‘44만원 세대 보고서’,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청년 백수의 촤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젊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도 크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지향하는 사회는 얼마나 지루한가. 이러한 사회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되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비노바 바베의 말은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우고 자라게 할 뿐!

비노바 바베의 입을 빌려 말하면,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의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버리고, 행복하라』, 31쪽)인 것처럼. 지식과 정보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 P. 216


1101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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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5:3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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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의 딸은 공공연한 대한민국의 ‘음서제(蔭敍制)’를 공론화했다. 아버지가 기업을 이루고 그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외교부의 특별채용에 분노하는 이유는 개인기업과 국가기관이라는 차이 뿐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의 범위와 한계는 문화적 토대와 사회, 역사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최근의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보편 타당한 윤리학에 관한 기준과 개념은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특히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평가하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커다란 논란에 휩싸인다. 정치적 성향, 종교,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덕’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지극히 단순 명료한 입장에서 도덕적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수많은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다. 자유주의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의 기나긴 대립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처럼 지루하다.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사람과 세계를 해석하는 기준의 차이로 드러나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why marality』를 통해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신산스런 역사를 돌아보면 철저하게 생존경쟁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 처연하다. 그래서 ‘도덕’보다 ‘생존’이 앞섰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 살아남았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동체의 가치는 생소한 용어이며 ‘가족’이라는 이기적 울타리 안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근대국가가 출발하며 사람들에게 심어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만큼이나 ‘가족’ 단위의 공동체는 강고하기만 하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나와 가족 안에서 매몰되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은 가장의 가족 살해와 자살이라는 끔찍한 신문기사를 양산한다.

1부에서는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정치적 도덕 등에 대한 미국 사회의 현안들을 점검한다. 복권과 도박에서부터 낙태, 동성애, 존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덕적 주제를 다룬다. 2부에서는 정치 이론들을 검토한다. 이 이론들은 물론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적, 종교적 가치는 물론 공동체와 시민의 덕목에 대해 살펴본다. 3부에서는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보여준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 이어 세 번째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적 가치체계에 대한 부재와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문명국과 원시사회를 가르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식, 정의와 윤리, 복지정책, 정치제도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는 무엇인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정치적 성향과 정책의 차이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와 강원도의 차이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의 차이여서도 안 된다.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지향점을 향해 수많은 논쟁을 통해 정의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사회’는 주둥이로 부르짖는 공허한 외침이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와 가치가 되어야 한다. 제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공직사회에 발을 부치지 못해야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짓임을 알게 해야 한다. 개인적인 잣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전 재산 29만원으로 아직도 살아있는 전직대통령 재임시절 국정지표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던 대한민국이다.

미국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 다르듯 정의와 도덕의 기준과 개념도 다르다. 이 책은 오래된 논쟁의 한 페이지들을 넘겨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지만 보편적 가치를 통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한 법 집행, 교육의 시장논리, 사생활 보호, 정치인의 거짓말 등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은 결국 3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인 자유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 시장중심주의의 위험성,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야한다. 나와 무관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나 내가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도덕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이론이나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넘어선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점에 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듯한 책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나를 말해준다. 즉, 우리사회의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책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들의 관심사와 우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와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거래가 공공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들의 생각과 미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1011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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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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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 읽는 즐거움을 모르면 혀의 한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짧은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수많은 즐거움 중에 시 읽기를 놓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힘들고 지친 저녁 무렵 잠시 쉬어가라고 나무 밑에 놓여 있는 의자이며, 서걱이는 모래 바람이 지나갈 때 입안을 헹굴 수 있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며,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멀리 보이는 희미한 등불 같은 것이 한 편의 시가 아닌가.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꽉 막힌 사고의 틈을 열어주기도 하며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시를 읽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소설과 다른 시가 가진 모양과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다가서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언어가 보여주는 진경은 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철학은 고통스럽고 진지한 사유의 결과로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손을 내젓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철학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선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심미적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감각적인 예술과 만나는 일은 대중과 조우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적 직관과 철학적 사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고 그들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대중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랜만에 김남주의 ‘어떤 관료’를 읽으며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과 기성세대에 대한 통쾌한 비난으로 읽었다면 이제는 경험적 깨달음과 성찰의 시선으로 이 시를 보게 된다. ‘관료’가 아니라도 어느 조직에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이 시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와 같은 사람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충성과 봉사의 대상이 누구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오히려 그것을 신념으로 내세우며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의 용기가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어떤 관료’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연결시킨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섬뜩한 말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근면과 정직과 성실과 공정함을 돌아본다. 아이히만은 바로 이런 덕목을 충실하게 지켜온 ‘어떤 관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슈비츠의 원혼에게 진 빚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김남주의 시에 등장하는 ‘어떤 관료’나 혹은 우리 주변에 유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이러한 깨달음과 철학적 관점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 책은 보기 드문 인문학이 된다.

『철학, 삶을 만나다』로 강신주와 첫 만남은 강렬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자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망을 성찰했다면 이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으로 우리 시의 아름다움과 현대 철학의 만남을 지켜 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시 읽기의 즐거움도 아니고 현대 철학의 쟁점 소개도 아니다. 시를 도구로 철학을 보여주려는 책도 아니고 철학을 동원해 시를 해석하려는 책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시와 철학의 진지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한 줄의 시 속에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고 단 한 편의 시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인간을 성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즉 재미있고 진지한 시 읽기가 곧 철학을 하는 것이며 철학하기는 곧 시 읽기와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개념과 이론을 토대로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를 읽고 그와 유사한 철학자나 개념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떤 관계로 놓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구조이다. 전체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가 만나는 장면마다 ‘정-반-합’의 관계처럼 3개의 글들이 모여 각각의 완성된 글이 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은 실제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시를 고르는 과정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리라 짐작된다.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소개되고 철학적 개념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번잡스런 요약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더 읽어볼 책들’이 그런 단점을 보완한다. 책은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철학자들의 개념들이 다시 정리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 도전하고 싶은 책과 철학자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기쁘다.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된 책의 네트워크! 오늘도 그물을 따라 어슬렁거릴 여유가 허락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이란 ‘하나’의 지배가 균열되었을 때 ‘둘’이 생각되는 장소이다. (……)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런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 중에서


10110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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