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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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이 명제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릴 수는 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곳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30도가 오르내리는 여름날 뙤약볕에 공원을 거닐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는 쉽지 않다. 영화를 보든 밥을 먹는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가든 돈이 없으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자.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모든 행동에 비용이 든다. 지독하고 철저한 자본의 정교한 논리가 숨어 있다.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 쯤 해 보았을 것이다. 영화 <이끼>의 마을이장 천용덕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든 가상의 <매트릭스> 세상이든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의 꿈속에서나 겨우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셉션>을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을 바꿀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이 절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다면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보라. 너무나 익숙해서 공기와 물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없어서는 숨조차 쉴 수 없다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시스템! 그것은 과연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고 있는가. 반성적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올곧은 비판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밝은 불빛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부나방이나 집어등을 향해 돌진하는 오징어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한쪽 날개가 불에 타고 있거나 낚시에 걸린 오징어가 된 것은 아닐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고 점점 더 소수의 사람만이 행복해지는 시스템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무수한 당근과 채찍질이 반복되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강신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욕망의 집어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인생을 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라캉의 오래된 분석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욕망이 진정한 내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데 있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처럼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보다 먼저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 하고 남들보다 비싼 물건을 소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자본주의 인생!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소비사회의 물신주의는 인간 소외 현상을 낳았고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기형적인 세상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아니 우리들을 위한 뼈아픈 충고이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상과 짐멜, 보들레르와 벤야민, 투르니에와 부르디외,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링 위에 올린다. 당대의 문제적 작가와 자본주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 온 자본주의의 역사 즉 인간 욕망의 역사를 되새김질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 당신은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담보로 끊임없이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극단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르디외가 염려하는 바와 같이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 자본이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다음세대로 세습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데 있다. 고착화된 계급 사회는 계층 이동을 불가능하게 하며 결국 머지 않아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기 때문에 미래가 단순히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미래가 펼쳐진 것 같은 착시효과 속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자본주의적 삶이 어떤 것이고 내 삶은 어떤 목적과 욕망을 가지고 있길래 이다지도 복잡한 것일까.

저자는 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해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끝없는 욕망과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반성이 왜 필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권장되어야 하며 그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진지하게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태도와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주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주목받았던 벤야민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의 냉정한 통찰력과 이상, 보들레르, 투르니에, 유하와 같은 감각적인 문학가에게 나타난 자본주의적 삶의 징후들을 꼼꼼하게 살펴 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잘 정리된 또 하나의 해설서에 불과하다. 다만 색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비교하고 해석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탁월한 노력과 진지한 고민은 어떤 독자에게든 진정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상처로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더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들이 치료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떠안기 전에, 치유의 노력이 곧 시작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432쪽


10072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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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심리학 -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관한 심리 치유 보고서
수 앳킨슨 지음, 김상문 옮김 / 소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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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하늘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당도하기 전의 ‘푸른 시간’은 산책과 명상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나를 돌아보며 내 삶을 성찰하기 좋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면서 상당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삶은 고통이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반대로 상상한다. - 조지 오웰

본질적으로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까? 조지 오웰의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똑똑하다는 말은 아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거나 오로지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고통은 객관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통에 대해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기도 하지만 ‘우울증’이라고 하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똑같은 불행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한다. 동일한 삶의 무게를 느낀다면 세상 사람들은 불행지수도 같겠지만 행복만큼이나 불행의 모습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그것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우울증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부에 상처가 난 것처럼 마음이 다치고 죽음만큼의 고통을 느끼는데도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간과하기 쉽다. 정신병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한 번씩 지독하게 우울한 시간과 대면하게 된다.

실제 우울증에 걸려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의사나 상담가의 조언과 충고보다 실질적이고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수 앳킨슨은 자신이 겪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우울의 심리학』은 바로 이러한 우울증 치료에 관한 치료과정을 밝힌 보고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심각한 질병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것이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저자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 주변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불행에 관한 보고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속 시간과 깊이의 차이일 뿐 사람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고간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나 불안 그리고 우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하고 고통스런 질병인지 최근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용하, 최진실, 이은주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살은 가장 확실하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리석은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암벽등반’에 비유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만하다.


우울증의 원인은 각종 스트레스가 아닐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사이의 간극 때문이거나 욕망의 좌절, 극단적 슬픔 등 다양한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울증의 원인을 알고 잘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고 현실생활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들에게만 유용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거나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의외로 흔한 질병에 속하는 것이 우울증이다. 감기를 치료하듯이 약 몇 번 먹고 낫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굳은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완쾌될 수 있는 질병이다. 저자는 바로 이 ‘방법론’에 집중하고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행동 처방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론적 접근이나 추상적인 개념 설명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벌컥벌컥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벌컥벌컥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화를 낼 만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목적을 가지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에는 우울증과 무관하게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장면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각 장마다 제시되어 있고 본문에도 인용되어 있다. 특히, ‘화’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화병이 나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또 다른 ‘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는 조그만 일에만 화를 내냐고 물었던 김수영 시인의 말이 떠오른 이유도 개인적 ‘화’가 아니라 사회적 ‘화’를 잘 다스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화든 ‘적절한’ 대상과 목적과 방법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단순히 화를 다스리지 못해서 울화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 말은 우울증과 화병이 겹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을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심약한 상태에 빠지는 것은 순간이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소리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자각증상이 있지만 심각성을 알기 어렵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타의에 의해 병원에 가는 병이 우울증이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암벽등반에 비유했듯이 힘겹고 두렵지만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는 약물치료보다 우선시된다. 화학 성분의 약품이나 지극한 정성과 사랑만으로 부족하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이라도 나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 『우울의 심리학』은 한번 쯤 자기 점검을 위한 책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슬플 때,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서 눈물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에는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 말콤 엑스

우울증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도 좋지 않다. 적절한 화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말콤 엑스의 말대로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화를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화는 가난하고 슬프고 나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화를 내고 산다. 그 화를 겉으로 드러내는지 안으로 삼키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참는다고 착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표현과 생활의 변화가 우울증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암벽등반의 비법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다. 그 깊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며 때때로 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암벽 등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는 행복하고 부유한 범죄자와 슬프고 가난한데 정직한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신이 이러한 것을 허락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수 앳킨슨, <우울의 심리학>, 289쪽


10071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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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 2011-07-21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좀 우울해서 우울증 극복방법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저도 책은 많이 읽지만 아직 소양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렇게 찾아다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맞는 말이네요. 스스로 극복하지 않는 이상 우울증은 계속 뒤를 따라다닐거에요.
잘보고 갑니다.

sceptic 2011-11-16 23:07   좋아요 0 | URL
이겨내시기 바랍니다...세상이 우울한 고로...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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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시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느니라.”(6장 옹야편) - P. 34 


고전, 어떻게 할 것인가 ; 원전과 2차 저작

  책읽기에도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 신간의 숲을 헤매다 보면 고전을 놓치기 쉽다. 현재를 말하는 수많은 책 속에서 고전은 그윽한 향을 풍긴다. 시간을 견뎌낸 책, 고전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다. 실용적 목적만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역설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 대다수 신간은 고전에 대한 재해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권의 책으로 전체를 통찰하고 싶다면 일단 고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안전한 책읽기는 검증된 고전만을 골라 읽는 방법이다.

  그러나 고전은 쉽게 도전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견고한 체제와 정교한 내용이 어우러져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 고전이다. 또한 고전은 기본적인 개념에서 촌철살인의 문장 하나에 이르기까지 칼날처럼 매서운 기운이 서려 있는 책을 일컫는다. 따라서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고전으로 수렴된다. 피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고전은 책읽기의 정수에 해당하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한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고전읽기를 통해 얻고 있다면 이미 고수의 길에 접어든 독서가이다.

  먼저 접근 방법을 살펴보자. 철학과 동양 고전의 경우 독학이 어렵다. 원전을 해석하는 것은 일반인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을 수 없고, 철학 전공자가 아니면 철학적 용어와 개념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2차 저작을 통해 가볍게 몸을 풀고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고전이다. 지난 시대의 책, 어렵고 딱딱한 책,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는 고정 관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클래식’ 시리즈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배병삼이 풀어 쓴『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적절한 2차 저작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시리즈의 여러 가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논어’를 읽어보자.

  2차 저작물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된다. 첫째, 원문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고 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인용과 편집이 이루어진다. 둘째, 원전의 뜻이 훼손될 수 있고 주관적 해석에 따라 오독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셋째,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내용에 집중하다보면 전체를 통찰할 수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넷째, 나만의 원전 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이밖에도 2차 저작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한계는 더 지적할 수 있다. 고전의 해설서에 해당하는 책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자와 편저자의 관점이다. 앞서 언급한 전제 조건을 이해한 상태에서 2차 저작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원전을 읽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고전을 다양한 시각에서 풀어낸 여러 권의 2차 저작물을 참고한 후 원전에 접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의 2차 저작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각 출판사의 고전 읽기 시리즈를 참고해서 청소년에게 적합한 해설서를 골라보자.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논어’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쉽게 풀어쓴 고전,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를 통해 청소년들은 친근하고 재미있는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다. 2,500년 전의 먼지 묻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병삼은 논어 20장의 각 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가려 뽑아 알기 쉽고 친절하게 공자님의 말씀을 풀어낸다. 청소년들에게 한발 다가서는 고전을 위해 어설픈 해설이나 단순한 요약본은 사라져야 한다. 진지하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방법을 찾아 고전의 즐거움을 알려 줄 수 없다면 읽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논어’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읽힐 만하다.


논어, 현재적 유용성 : 정치와 교육 문제

  공자는 ‘관계’속의 인간을 꿈꿨다. 또한,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공존의 가치를 체득하고 인과 예가 실천적으로 운용되는 세상을 그려냈다. ‘논어’는 바로 그러한 공자의 사상을 담아낸 책이다. 한 두 마디로 논어를 요약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 배병삼의 주장이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있어서 공자와 맹자의 말이 자주 인용되기도 하고 비판받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고전이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 김경일의 이야기를 참고하며 읽는다면 색다른 고전읽기가 될 것이다.

  공자를 보는 관점과 논어를 읽는 방법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일단 논어를 알고 접근해야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 해당한다. 특히, 정치와 교육 문제에 관해 논어를 해석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현재의 관점으로 공자의 시대를 해석할 수도 없지만 시대와 상황 맥락만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가진 이상과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는 2차 저작자의 관점과 원전을 통한 확인 그리고 독자의 판단이 선행된 후에 논의될 수 있다. 이 책을 청소년들에게 읽힐 만한 책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공자의 의도 파악, 논어의 관한 해박한 지식, 시대를 고려한 논어에 대한 통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각론이나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중립적 자세가 아쉽지만 논어에 대한 저자의 애정까지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청소년들이 공자의 시대와 ‘논어’에 관심을 갖고 ‘논어’를 살아있는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학생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육자로서 공자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 말씀하시다. “첫째, 나는 학생이 ‘모르는 것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둘째, 학생이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틔어 주지 않는다. 그리고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에겐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7장 술이편) - P. 118

공자 학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열린 학교로서의 면모요, 둘째는 엄격한 교육 과정이요, 셋째는 질문하여야만 대답을 내리는 교육 방식이다. - P. 121



10012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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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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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와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내 책읽기의 등대였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과정과 방법을 배운 책이었다. 깊이와 넓이를 아우르는, 진지한 사유와 성찰이 밑바탕이 되는 책읽기의 세계는 내가 만난 어떤 세상보다도 매혹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

  세상에는 책읽기의 고수가 많다. 하지만,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골고루 책읽기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책읽기에서 ‘성공’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고, 그 목적과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단순히 한 분야의 책 읽기 고수는 책읽기 고수라 하지 않고 그냥 해당 분야의 학자나 연구자 혹은 전문가라고 한다. 정확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한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바탕과 뿌리를 두지 않은 책읽기는 사상누각과 같다.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인간의 삶과 사상의 흐름, 사회의 변화 과정을 인식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면 무릇 책읽기는 그저 고급한 취미와 젠체하기 좋은 겉멋에 불과하다. 그래서 특히 젊은 시절의 책읽기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형성하며 나와 타인의 관계를 조망하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책읽기 고수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성인이 되기 전 이미 책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책과 무관한 분야는 없다. 안철수와 박경철 같은 유명인을 비롯하여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활동 분야를 전문분야와 활동 분야를 막론하고 책은 모든 영감의 원천이며 행동의 출발이고 사상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나이 오십쯤 되어 내 인생의 책을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나에게도 생길지 모르겠지만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는 내내 말할 수 없는 공감과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사람답다. 겨우 열네 권을 추렸지만 그의 책읽기와 글쓰기 내공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고 정교한 그물처럼 짜여있다. 한 사람의 내밀한 영혼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뼛속까지 드러내는 일이다. 작가의 구석구석을 탐욕스럽게 샅샅이 훑어내는 나의 시선이 오히려 섬뜩하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까지 다시 읽어내면서 유시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청춘’이 궁금한 게 아니라 지나온 시간과 흘러간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인간이 지켜야할 진정한 가치와 고전의 눈부신 문장들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수많은 책에 관한 책 중에서도 『청춘의 독서』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바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이성과 날카로운 비판정신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이제 갓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딸에게’ 바쳐진 이 책은 험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딸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면바지 차림으로 국회에 서서 양복쟁이 국회의원들에게 신고식을 당하던 유시민의 어색한 표정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를 조금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가 이제 오십이 넘었고 그의 딸은 스무살이 되었다. 그렇게 옳은 말을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할 수 있는 그의 소신에 박수를 보냈지만 정치적 행보와 색깔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유시민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가 교차한다. 하지만 스물 여섯에 감옥에서 쓴 ‘항소이유서’를 읽으면서 그의 글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 P. 48


지적 활동 중단 선언을 하신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읽고 스스로 던진 질문이 아프게 와 닿는다. 평범한 생활인인 내가 가져야하는 부담과 고민만큼만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을까 싶은 생각을 했다. 오래된 청춘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작가 옆에서 그 지도를 함께 들여다보는 즐거움으로 며칠을 보냈다. 고마울 따름이다.

  읽었던 책은 다시 읽고 미처 읽지 못했던 몇 권의 책은 당장 읽고 싶어졌다.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들을 얼마나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는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직장을 다녀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삶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삶이 되기를 희망한다. 시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보수주의는 사회의 부유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에 영예로운 장식적 가치를 얻는다. 이것이 더 심화되면 우리의 관념 속에서는 보수적 견해를 고수하는 것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대상으로 평가된다. (……) 보수주의는 상층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속(vulgar)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회적 혁신을 외면하게 만드는 그 본능적 반발과 비난의 가장 단순한 요소는 사물의 본질적 비속성(vulgarity)에 대한 관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자(innovator)가 대변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가 치유하려는 악이 시간적 ․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개인적으로 접촉할 가능성이 없을 때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 혁신자는 교제하기에는 불쾌한 인물이며 무릇 그와 접촉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혁신은 나쁜 것(bad form)이다. - P. 244(『유한계급론』, 179쪽)

  읽지 않은 책 중에 가장 읽어 싶어진 책 중의 하나다. 보수와 진보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를 이렇게 적확하게 짚어낼 수 있을까 싶다. ‘혁신자는 교제하기에는 불쾌한 인물이며 무릇 그와 접촉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뼈아픈 지적이지만 ‘혁신은 나쁜 것’이라는 말은 지루한 세상에 던지는 불타는 구두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풍자가 지나치면 눈물을 자아낸다.

  혁명 전사도 투사도 아닌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가슴 밑바닥부터 아려왔다. 지치고 힘들 때, 포기하고 싶을 때, 나약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볼 책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시대를 견딜 힘조차 내겐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두렵고 외로운 밤이 찾아온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중에서)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 - P. 312


0912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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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귀신 죽이기
박홍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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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화는 인간들의 꿈과 환상이 빚어낸 배설물이다.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래가 불안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믿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견뎌내거나 종교적 믿음을 위한 상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모든 부족 혹은 민족에게 신화는 자부심과 긍지를 만들어 주었고 후손들에게 경외감과 존경심을 갖게 해주었다. 실제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신화의 세계는 여전히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이며 먼 과거에 대한 꿈의 세계라고 믿는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삽화 한 장 없이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책장을 넘기며 처음 듣는 신들의 긴 이름과 거의 콩가루 집안인 족보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자니 장난이 아니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믿었다. 어렴풋한 흐름만 이해하고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이후 단편적인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다시 만난 것은 그림을 통해서이다. 중세,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이르는 유럽의 예술은 신화의 시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신화와 종교는 서양 예술의 근간을 이루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지 못하고 유럽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새롭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오게 했으며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초등학생이 부럽기도 했다. 불황을 모르는 학습만화 시장은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읽을 거리가 많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상식과 교양의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를 알아야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없다. 그림에 담겨있는 수많은 알레고리가 마치 수수께끼처럼 풀릴 때의 신기함 정도로 시작된 관심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들이 필요에 의해 읽혀졌다. 하지만 한 번도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로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뒤집고 비틀어보기를 시도한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에 필요한 사람은 그런 영웅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아니라 착하고 성실할 줄 아는 진정한 보통사람들, 즉 신화 밖의 평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를 읽지 않아도 좋지만 꼭 그것을 읽는 경우에는 비판적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 P. 72

  개인적으로 박홍규의 저작들을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 『학교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와 같은 번역서는 물론이고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예술, 정치를 만나다』, 『아나키즘 이야기』,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등 그의 인문학적 저작들은 새로운 시각과 비판적 관점,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들이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반성 없이 ‘교양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신들의 행태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그리스 신화는 끊임없이 반인륜적 폭력의 권력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적대, 경쟁, 전쟁, 정복, 침략, 복수, 음모, 계략, 살인, 절도, 사기, 약취, 유괴, 강간, 간통, 차별 등 온갖 범죄와 부도덕의 결정판으로 볼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접근하게 해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는 데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그리스의 귀신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삼층 차별구조로 그리스 신화 전체를 다시 들여다본다. 신과 영웅에 대비되는 괴물과 인간, 지배자와 남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피지배자와 여성, 서양의 주변에 머물러 있는 비서양이 그것이다. 이렇게 뚜렷한 차별적 구조를 가진 신화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신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성성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신화가 가지고 있는 다른 신화와의 차별점에 대한 이야기다. 부분적으로 각 민족의 신화는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신화를 비판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지배민족=그리스=서양=중심=문명=미와 선=정상
…신과 영웅=왕과 귀족 및 장군=주인=미와 선=정상
…남신-남자영웅-남자인간=정신 지성 문명=공적 정치세계=국가

피지배민족=비非 그리스 =비非 서양=주변=야만=추와 악=비정상
…괴물과 인간=노예 및 외국인=주변=추와 악=비정상
…여신-여성인간=육체 감성 자연=사적 가정세계=사회

이러한 도식화는 세계사를 서양사 중심으로 설정하고, 비서양사를 서양의 비서양 지배사로 날조하게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세계사이지만 아직까지도 비서양은 서양과 관련되는 경우에만 그 객체나 타자로 등장하고, 세계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서양일 뿐이지 비서양이 아니다. - P. 274


  저자의 관점에 대한 다양한 논란과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을 전제하지 않은 맹목적 수용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낯설게 바라보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의 문제로 언제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가지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09112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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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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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2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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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0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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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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