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같은산길속

어드메쯤걷고있나

봄햇살물별의연등

가는곳곳보는곳곳

봄의향연

 

            -달팽이-

 

 

사월의아지랑이

꿈틀대는사랑의땅

그위네가심어

꽃으로피어난

나의인생을만난다

 

            -어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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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0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문자시 좋은데요.
어둔이님은 부인이신가요?


달팽이 2008-04-0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닙니다. 한사님.
저의 벗이자 스승입니다.

파란여우 2008-04-0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는 살금살금
어둔이는 엉금엉금
파란여우 슬쩍슬쩍
매화꽃잎 천의무봉
꿀벌조차 황홀한봄
달팽이도 어둔이도
파란여우 한잔하세
삶은짧고 봄꽃향기
영원하니 어와둥둥

파란여우 2008-04-07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둔이님 서재는 여전히 빈 방입니다.
아직 같은 학교에 계시는지도 궁금하고
강녕하신지도 더불어 살곰 묻고 갑니다.

달팽이 2008-04-0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의 댓글이 너무 반갑습니다.
어둔이님 무탈이 같이 잘 있습니다.
다만
이리 저리 몸은 쓰일데가 많고
마음은 한가롭답니다.

비로그인 2008-04-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화꽃잎 천의무봉
..
삶은짧고 봄꽃향기

파란여우님 댓구도 좋은걸요. 하하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두어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시인의 6년 전의 시 한편과 올해 나온 시 한편이다.

왠지 그는 이제 뿔과 낙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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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3-0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대 중반이후 뜸뜸이 시를 읽고 있습니다.
시의 힘이라니..
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된답니다.
세상의 시인들께 많은 신세를 지고 있지요.
고맙답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도 물론 좋아합니다. 달팽이님.



달팽이 2008-03-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 다 되서야 저도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단어라도
마음 속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글귀 있습니다.
내가 비록 쓸 순 없어도
읽고서 공감하는 글귀가 있어 감사합니다.
한사님.

2008-03-24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5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 달은 훤하게 밝은 보름달이 정취가 있는가? 빗속에서 보이지 않는 달을 그리워하고, 좁은 방에 들어박혀 봄이 가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직접 꽃이나 달을 보기보다 더욱 깊은 정취가 느껴진다. 이제 막 봉오리가 터지려는 가지나, 벚꽃이 흩어진 마당이 오히려 정취가 있다. 와카 머리말에, "벚꽃 구경을 갔더니 이미 다 져서"라든가, "사정이 있어 벚꽃 구경을 못 가고"라고 하면, "벚꽃을 보고"라고 읊은 것보다 정취가 없을까? 꽃이 지고 달이 기우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특히 풍류를 모르는 사람이, "이 가지 저 가지 꽃은 다 졌구나. 이젠 무엇을 볼꼬?"라고 하던가?

   모든 일은 처음과 나중이 멋있다. 남녀간의 사랑도 그저 만나 밀회를 나누는 것만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못 만나서 그리워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탄식하며, 긴긴 가을밤을 혼자 지새며, 멀리 있는 연인을 그리며, 연인을 만나던 허름한 초막에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정취를 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천리 멀리까지 비치는 보름달을 하염없이 보는 것보다, 오랫동안 기다리다 새벽녘에야 겨우 올라오는 새벽달을 보는 것이 더욱 정취가 있다. 특히 깊은 산속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달빛, 소낙비가 오고 구름 사이로 숨은 달은 더욱 감동적이다. 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반짝이는 잎에 달빛이 빛날 때,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눌 친구를 생각하며, 교토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대체로 달이나 꽃은, 꼭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 것인가? 봄에는 집에 들어 앉아, 달밤에는 잠자리에 누워서, 벚꽃이나 달을 마음속에 그려 볼 때야말로 한없는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멋을 아는 사람은, 깊이 빠지는 것 같지 않으며, 감상하는 모양도 담백하다. 교양없는 사람들은 무엇이나 요란하게 즐긴다. 꽃을 볼 때도 사람들을 비집고 바싹 다가가, 꽃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술을 마시고 렌가를 짓기도 하며, 흥에 겨운 나머지 꽃가지를 함부로 꺾는다. 여름에는 더위를 피한답시고 샘물에 손발을 마구 담그고, 눈을 볼 때도 뜰에 내려가 일부러 발자국을 남기는 등, 무엇이나 멀찌감치 두고 감상할 줄을 모른다.

  그런 촌놈들이 가모 축제를 구경하는 꼴이란 실로 가관이다. "행렬이 참 더디 오는군. 그 동안 관람석에 있을 필요가 없지"하며, 집안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며, 바둑을 두거나 쌍륙을 치며, 관람석에는 망보는 사람을 둔다. "축제 행렬이 지나갑니다"하면, 모두 허둥지둥 관람석으로 나와 난간 밖에까지 몸을 내밀고,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려 든다. 그리고 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다가, 행렬이 다 지나가면 다음 행렬이 올 때까지 또 먹고 마시며 논다. 그들은 그저 축제행렬만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교토의 지체높은 분들은, 행렬을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다. 젊은 하인들은 윗사람들 시중드느라 바쁘고, 옆에서 모시는 사람은 꼴사납게 몸을 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억지로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주변이 온통 접시꽃으로 꾸며서 우아하고 아름다운데, 날이 밝을 무렵이면 여기저기서 조용히 모여드는 수레 주인을 알고 싶어서, 누구일까 하고 보노라면, 아는 소몰이꾼이나 하인이 보인다. 우아하고 꾸민 수레가 오가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지루하지 않다.

  해질 무렵이 되면, 쭉 늘어섰던 수레와 꼭 찼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곧 한산해진다. 사람들이 뜸해지면 관람석의 발이나 못자리를 치우고, 어느새 한산해지는 모양은, 이 세상의 덧없음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러한 큰 길 풍경을 보아야, 축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축제 관람석 앞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제법 많은 것을 보면, 세상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죽은 다음에 내가 죽는다 해도, 그 때는 곧 닥쳐올 것이다. 큰 그릇에 물을 담고 작은 구멍을 뚫으면, 구멍으로 새는 물이 지금은 조금이지만, 계속 샌다면 물은 곧 다 없어지고 만다. 장안의 이 많은 사람들이 하루도 안 죽는 날이 없다. 그것도 어찌 하루에 한 두명 뿐이겠는가. 화장터나 공동묘지, 그 밖의 야산에 장례가 많은 날은 있어도 하나도 없는 날은 없다. 그래서 관을 파는 사람은 묵힐 틈이 없다. 나이나 건강에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오늘날까지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온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니 어찌 잠시라도 이 세상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겠는가?

  마마코다테(같은 수의 흑백 바둑돌을 둥글게 늘어놓고, 몇 번 째 되는 돌을 치워 나가다가,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돌이 흑백인가를 맞히는 놀이)에서 쌍륙 돌을 늘어놓고, 잡히는 것이 어느 돌인지 모르지만, 맞혀서 돌을 하나 치우면 다른 돌은 잡히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씩 차례로 지우는 사이에, 돌은 모두 치워진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다. 무사가 전쟁에 나갈 때는, 죽음이 닥친 것을 알고 집이나 자기를 잊는다. 속세를 떠난 사람이 암자의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서, 죽음이 닥친 것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적한 산골이라고, 죽음이라는 적이 갑자기 달려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은, 싸움터로 나가는 무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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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잘 타기로 유명한 남자가 사람을 시켜, 높은 나무에 올라가 가지 끝을 자르게 했는데,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아무런 말도 안하고 있다가, 작업을 다 하고 내려올 때, 거의 지붕 높이만큼 내려왔을 때야 "헛디디지 말고 주의해서 내려오게"라고 했다. "그 정도까지 내려왔으면 뛰어내려도 되는데, 왜 그런 주의를 하십니까?"하고 물으니, "바로 그것이지요. 높아서 눈앞이 아찔하고, 나뭇가지가 휘청거려 위험할 때는, 스스로 주의하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실수란 방심할 때 꼭 일어나는 법이지요"라고 하였다.

미천한 사람의 말이지만 성인의 가르침과 같았다. 게마리(가죽으로 만든 공을 제기처럼 차고 노는 귀족의 놀이)에서도 어려운 공을 잘 차낸 뒤, 안심하면 반드시 공을 잘못 차서 땅에 떨어뜨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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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하고 심심한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혼자 조용히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세상사를 따르다보면, 마음은 세상 명리에 이끌려 흔들리기 쉽고,

남과 사귀다 보면 남을 의식한 나머지 내 마음을 잃게 된다.

남과 어울려 웃고 즐기며, 이익을 다투고, 원망하거나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

갖가지 생각들이 자꾸만 일어나, 득실을 따져야 하는 고민이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홀린 데다 또한 취한 것이며, 취중에 꿈을 꾸고 있다.

세상의 명리를 바쁘게 쫓아다니다, 모두 멍하니 자기를 잊어버렸다.

아직 불교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였더라도, 속세의 인연에서 잠시 벗어나 몸을 조용히 하고,

세속 잡사에 상관하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면, 잠시나마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 세속의 교제, 솜씨나 취미, 학문 등 모든 세속적인 인연을 끊어 버리라"고, <마카시칸>(중국 수나라때 씌여진 천태종의 경전)에도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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