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도마 - 아프리카에서 온 메신저
말리도마 파트리스 소메 지음, 박윤정 옮김 / 정신세계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문명

서구의 물질문명은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문명을 파괴시켜버린다. 이렇게 한 번 파괴된 문명은 다시 복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욱 가슴아픈 사실은 그 문명의 파괴가 물질문명과 보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 인류로서 살아가도록 운명지워진 창조주의 메세지를 지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는 편리해지고 안락해지고 풍요로워져가는 세상이 내면으로는 다시 돌이키기위해서 많은 시행착오와 무수한 시련을 거쳐서 개척해야 할 황무지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아메리카에 살았던 원주민 인디언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졌으며, 호주의 원주민도 아시아의 원주민의 역사도 그렇게 사라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또 하나의 역사인 아프리카의 다가라 문명도 서구문명의 침투 속에 그 자취를 잃어갔던 우리들의 잃어버린 미래가 되었다.

말리도마, 두 세계의 소통

아프리카 다가라 족의 한 원주민인 말리도마의 이야기는 그가 할아버지의 환생이라는 사실과 그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의 길이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박케 할아버지 아래서 조상의 전통과 자신의 미래 삶의 메세지를 받으면서 자라다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서양적인 삶으로 내던져진다. 거기서부터 15년동안 외부로부터 강요된 서구적 사고방식과 삶을 익히면서도 자신의 내면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한다. 15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그 곳을 탈출하게 될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의 일원으로서 입문식을 거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과 자신의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두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고 자신의 안에서 두 세계가 소통되는 공간을 가지게 된다. 두 세계의 소통은 부족의 세계와 서양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내면적 진리의 세계와 인생이라는 꿈으로 드러난 현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두 세계의 소통은 체험되어져야 하는 마음을 직접 마음으로써 소통하는 세계와 그것을 드러난 글과 언어로서 소통하는 세계와의 소통이다. 사람의 마음이 글로써 모두 표현되고 드러난다는 서구문명의 발상에서 이젠 마음은 사라져버리고 표현하기 위한 포장인 글과 언어의 화려함과 치장만이 남은 세계가 바로 우리들의 문명 세계다. 그렇다고 글과 언어를 버릴 수도 없다. 세상의 변화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에서 드러나 인간의 몸을 받고 생겨난 이 세상과 세상이 나고 들어가는 그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듯 마음의 세계와 표현된 언어의 세계를 소통시키는 것이 현대의 과제다. 그 두 세계에 대한 소통이 그 스스로의 삶의 과제이자 부족의 과제로서 그에게 부여된 과제가 된다.

병든 기억

서구적인 삶은 물질적인 삶에 중심이 있는 삶이다. 외부적으로 마음을 투사시키는 세계이며 자신의 내부와는 단절된 세계이다. 세상 물질의 법칙과 그 지배에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너머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응시하는 데에 두려움과 공포를 갖는 세계다. 우리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고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몸에 강하게 밀착되어 있는 병든 기억들을 떨쳐내지 못한다. 외부로는 끊없는 욕망을 투사시키지만 안으로는 텅 비어 있는 유령들이다. 그 외부로 투사시키는 욕망은 또 욕망을 따르고 그 욕망은 또 더 깊은 욕망을 따르고.... 그렇게 꼬리를 물고 따라간 우리들은 자아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힌다. 그 최초의 자아에 대한 인식은 또 그것을 고형화시키는 기억과 또 기억으로 인해 우리의 존재가 딱딱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에 의해 파악된 세상을 이전과 같이 변함없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도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의문을 버려라

때로는 그러한 진실을 직면하지 못하여 편하게 넘기는 방법이 의문이다. 나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의문을 통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생각을 낳고 우리의 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스스로 완전한 우주를 눈앞에 두고서도 문제투성이의 복잡한 우주를 창조해버리게 된다. 머리로서 진실을 알겠다는 욕심없이 주어진대로 가슴을 열고서 받아들이면 된다. 나에게서 그것은 어떤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안다든지 모른다든지에 대한 일체의 생각을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말리도마가 입문식을 통해서 겪었던 마법적이고도 환상적인 사실들이 바로 그의 마음이 빚어낸 형상들이 아닐까?

과거는 미래다

그는 결국 다시 서양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부족의 명령을 받는다. 두 세계에 대한 이해와 체험 속에서 그에게는 세상을 점점 물들여가는 서구 세계로 다시 나가서 부족민들의 삶과 정신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부족을 지키는 것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는다. 물질적인 삶의 맹목적인 속도에 잃어버리게 된 과거의 정신적 유산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해 인간이 다시 참된 삶의 의미를 묻게 될때 비로소 다시 되돌려야 할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힘들게 그리고 더디게 하나 하나 복원해내어야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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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1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압도적인 서구문물의 유입에 대해 아프리카인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낸다는 것이
현대 아프리카인들에게 숙제일 것입니다.

파란여우 2006-11-15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넘어 21세기 지구의 이야기군요.
경계를 구분짓는 건 서양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 달팽이님과 제가 만날 수 있을까요?
모순의 소리 한 마디 더,
국악방송(라디오)를 즐겨 듣습니다. 오늘 거문고 소리를 듣는데 아, 미칠뻔했어요
전, 왜 이리 거문고라면 껌벅 죽어 넘어갈까요? 전생에 악사출신인게야...푸하하하
보내주신 책은 이불 속에 드러누워 한 장씩 읽습니다.
안녕, 달팽이님. 오늘 밤 별이 총총해요
그럼 나도 총총

달팽이 2006-11-15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sa님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그들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또한 그들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의 교훈으로부터 우리가 얻어야 할 것도 타자를 어떻게 우리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 더욱 성숙함을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가라 문명이 잃어가는 그 영적인 것에 더욱 관심이 있군요.
여우님, 피자와 콜라와 컴퓨터를 외면하고서도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이 여우님이 올려다보는 그 하늘이라고 생각하지요.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또한 그 별이 여우님의 올려다면서 마음의 총총함을 새기는 그 별이라 생각하지요.
은하수의 아스라히 빛나는 별 몇개 이불 속에 넣어서 주무시기를...
 
깨달음 이후 빨랫감 - 깨달음, 그 뒤의 이야기들
잭 콘필드 지음, 이균형 옮김 / 한문화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특정한 종교가 없든지. 그것을 영성이라 하든지, 아니면 삶의 의미와 전체적인 삶의 성숙을 원한다는 사람들은 결국 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형식적으로 수행이라든지 기도라든지 믿음을 가진다라던지 하는 모습은 달라도 말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성숙도와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긋나버린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얘기조차 하지 못한다면 미숙한 우리들은 과연 어느 곳으로 가야할 것인가? 하고 방황으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깨달음 전과 이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깨달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과 신비체험이나 유체이탈, 트랜스, 접신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각 종교의 차이와 심리학적인 또는 미신적인 또는 비과학적인 현상들은 제각각 다르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의 같은 경험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런 체험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방향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생의 특별한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삶의 의미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이런 관점에서 다양하게 접근해가고 있다.

깨달음은 내가 자아라는 것으로 구성되었다는 관념이 타파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아라고 부르는 내가 있다는 환상이 깨지고 내가 전 우주적 존재와 일치되는 체험들을 말한다. 그것을 무아의 경험이라고도 하고 본성으로의 회귀라고도 하며 도니 신의 은총이니 등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지금 여기'로 아주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우선 그것은 깨달음의 과정이 일시적이거나 외부적이고 우연적인 것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내적 수련 과정을 거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깨달음 이후라고 캔필드가 말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영적 지도자들은 최초의 견성 이후에도 여전히 두려움, 혼란, 영적 태도의 상실, 서투른 행위 등이 한동안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고 캔필드는 적고 있다. 물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깨달은 것에도 과정이 있었고,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을 보면 90도 180도 270도 360도 수준의 깨달음이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깨달음은 천차만별의 차이이며 오로지 완전하고도 흠없는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온 종교와 영성을 뭉뚱그려 놓은 이 책은 그 점을 간과했다. 한 명상지도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카톨릭과 불교 사원에서 여러 해를 지내고 나서 혼자서 장기간 흔거 수행을 하던 중에 설명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나는 신께서 나 자신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것을 보았다. 신은 광활한 대양과 같았고, 나 자신으로 익히 경험해온 모든 것은 한갓 얇은 막에 불과했다. 그것은 실체도 없이 수면에 떠다니다가는 사라져버렸다....... 이와 같은 깨달음과 함께 온 지복과 성스러운 열림이 몇 달 후에 지나가버리고 나자, 나는 깊은 무기력감과 두려움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지옥기간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곳을 떠나 청소부 일을 했다. 나는 후두염과 천식을 앓았다. 끝없는 내면의 고통과 상실감이 나를 절망감에 빠뜨려 놓아서, 나는 겉으로는 정상인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거의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한 라마승의 회고도 들어보자

"집으로 돌아오자 인도와 티베트에서 보낸 12년의 경험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서구의 가족과 일터로 돌아와서 겪는 문화적 충격 속에서 그 초월적인 경험들의 기억과 가치는 가물가물한 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낡은 습관들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돌아왔다. 나는 짜증이 나고 혼란스러워졌다. 몸을 돌보지 않고, 돈과 애인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상태가 나쁠 때는 내가 배운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 것이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지나간 깨달음의 기억 속에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영적 수행이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그것임이 분명했다. 그밖의 모든 것은 환상이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도 옛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분노가 일때가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빨랫감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아주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명상지도자의 체험은 자신이 아마 처음 체험한 영적인 경험이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체화된 경험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라마승의 이야기는 자신의 12년의 수행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진 현실에서 바로 적응할 힘을 갖추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육화된 깨달음이 되지 못한 것은 그의  내적인 수행의 문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의 분노는 ,물론 금방 자비와 연민으로 바뀌었지만, 자아에서 비롯된 분노가 아니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민족과 동포의 고통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분노...

물론 궁극적인 깨달음이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모든 수행자와 종교지도자들 역시 깨달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인지도 모른다. 깨달은 자가 이르는 곳은 "지금 이 곳"이다.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 모두가 지켜야 하는 자리도 바로 여기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어떠한가? 머리를 굴리는가? 모를뿐인 마음으로 돌아가는가?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사는 것인가? 이 말에 대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다른 마음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외부의 완전성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내부로 돌아가라는 의미이다. 나는 이것이 외도와 정도를 구분하게 하는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믿음과 공부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만드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스승의 조언이나 도움도 값매길 수 없는 은혜이지만 자신 스스로의 탐색과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모습으로 권위로 맹목적 믿음으로 가면 스승도 필요하고 종교적 형식도 필요하고 그러다보면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얻을 것이 없다. 바로 그런 생각이 자신의 공부를 그르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책도 빨랫감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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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7-3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가에 놓고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는 책이지만
달팽이님이 이리 성찰 깊게 써 주시니 읽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책이 주인을 잘 만난것 같아 안심입니다^^

달팽이 2006-07-31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을 인연으로 만났던 책이 그래도 더운 여름날을
마냥 더위 속에 허덕이지 않게 해줍니다.
고맙습니다.

어둔이 2006-07-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달음이후의 빨랫감은 다림질을 해야하고
다림질을 한 옷은 멋나게 입어야죠. 입고나서 더러워지면
또 빨아야하고 계절바뀌면 바꿔입어야죠. 근데 그옷을 누가 빨고 다리고 누가 입죠?

하루입어난땀냄새
벗어빨기잦은여름
손수비벼세탁한옷
햇살내음말려보네
새날되면입으려나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잭 캔필드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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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돌이켜보면 나의 이십대는 늘 마음 속의 고민과 방황투성이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열정은 가슴에서 올라오는데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서 그저 공부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난 한 여자가 있고 그 여자는 오늘도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와 나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생활에서 늘 놓치고 사는 그녀의 중요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그녀에게도 해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그녀는 내가 젊은 방황의 시절을 보내며 늘 생각해오던 그런 여자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났던 장소(그 장소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처음 가보았던 장소이며, 이 곳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이 곳이 아주 중요한 곳임을 느꼈었다.)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비록 내 심장을 정신없이 뛰게 하며 나를 들뜨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편안하면서도 친근한 느낌과 분위기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말 못하는 나를 그래도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하였고 2차에서 술을 마시고는 적당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그녀 집에 데려다 주었던 일,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소개시켜준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던 점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 다음 만남에서인가 그녀는 9년 전에 친구와 함께 우리과 모임방에 들어오던 이야기를 했으며,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기타를 치던 후배들과 소란한 틈 속에서 한 신입생과 함께 들어왔던 그녀를 지켜보았던 짧았던 기억...그러고 보면 10여년 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가끔씩 마음 속으로 되뇌이었던 기억들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성도 없이 그저 이름만 되뇌이며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와 만나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을 말이다. 이런 허전하면서도 그리워지는 가슴을 품은 내 젊은 날에 날 좋아했던 여자들에게는 내 마음이 가지 않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던 여자는 늘 인연이 어긋나고 있음을 내 속의 나는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그 모든 과정의 끝에서 한 여자가 내 곁에 있다. 나는 그녀를 그렇게 가슴찡하게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담담하면서도 은은한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에게 있어 생활으로 갈등하는 사소한 일들의 이면에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말없이도 안다. 이 책에는 피해갈 수 없는 너무나도 운명같은 그런 사랑들의 이야기가 많다. 그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큰 재난과 어려움 속에서 피워올린 사랑의 이야기로 가슴을 울리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시선 뒤에 그들의 영혼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서 그 영혼의 끈이 그들 사이를 이어주고 만나야 할 것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믿음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이 있다. 당신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을 하는 순간, 그 마음은 사라진다. 당신이 사랑을 하는 순간,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가 아닌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에 조건을 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영혼이 느끼는 바이며 어떤 조건으도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을 채워내는 것이다.

  그녀가 나의 영혼의 동반자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와 내가 이 생에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영적인 성숙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가만히 우리 관계를 되돌아볼 때 서로간의 몸의 생활을 넘어서 우리에게 끌리는 이유이며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이유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리버 웬델 홈즈의 멋진 말을 인용할 것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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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1-1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네요. ^-^ 어제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글과 그 영화가 주는 느낌이 너무 비슷하네요. 정말, 사랑... 잘은 모르지만. 좋네요!

어둔이 2005-11-1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너와 헤어져야할 이유
너만을 반드시 꼭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누가 누구가 아니라도
가슴뛸 수 있는 삶이 가능한 이유
사랑만큼이나 이별을 견뎌야 생명이 완성되는 이유
만나도 그 만남으로 만남의 삶이 다 이루어 지지 않는 이유
기다리는 이유, 그리운 이유,...다 떠나야하지 않으면 않되는 이유
그 모든 이유 뒤에 얼마나 더 큰 삶의 그림이 버티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유까지...
누구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더욱 사랑에 빠질 때 다시 만나야할 이는 누군가의 그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그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다면
인연이란 그져 한번 지나가는 계절의 사건이거늘..
마른 꽃잎 물들었다 다시 마르고
여린 봉우리 색이 바래서 바람에 질때
그는 그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생명이라는 것
시공을 넘어선 우주 그 너머의 빛으로 생명받아 온 존재임을..

.................

가을 햇살에 비추어진 그림자
작은 바람에 자주 흔들림을 오늘 나는 보았다

달팽이 2005-11-1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너와 꼭 만나야 할 이유
너만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이유
그게 꼭 너야만
가슴 떨리는 삶이 가능한 이유
이별을 생각하기 전에 사랑 그 자체로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
만나면 만남에서 모든 것을 풀어내야 하는 이유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떠나가도
기다릴 것도 그리워할 것도 떠나갈 것도 없는 이유
그 이유를 묻기 전에
그냥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살아가는 것
사랑이 있어 그대가 있고
그대가 있어 사랑이 있네
인연이란 그저 한 번 지나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할 것 아무것도 없네
꽃물든 나뭇잎이 빛이 바래 떨어져
땅위에서 빗물과 함께 썩어갈 때
그것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리서 생명의 자리를 볼 때
나 역시 그 생명으로 숨쉬고 있는 존재임을...

나는 한자루 피리
가지 사이로 불어온
바람에 마음은 선율...

가시장미 2005-11-1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어쩜 이렇게 시적이세요? 주옥같은 시어들이.. 너무 와닿네요. ^-^
사랑하시나봐요? 전 솔직히 사랑에 대한 시에 대해서는 요즘 참 무감각해졌어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제 남자친구가 알게되면 서운하겠지만. 사실이예요. ㅠ_ㅠ
그래도 시는 잘 읽고 갑니다. ^-^*

달팽이 2005-11-1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글쎄요...
저의 서툰 글이 장미님 가슴에 가닿았다니 기쁘군요..
때로는 그 사랑에 노력도 필요하답니다..
물론 알고계실테지만...

가시장미 2005-11-1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노력이 필요하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마음이 일상에 묻혀.... 잔잔해 졌다고나 할까요? 그런 느낌이예요. ^-^
솔직히 저는 사랑의 요소중 열정에 가장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는데. 그 열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가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열정의 빈자리가 조금 느껴지지만서도... 그 만큼 신뢰가 바탕이 되고 있으니... 흔들리지는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겠죠. 무엇이든 지켜가는 것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

tuwoo 2010-03-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 1학년 때 지금 이 사람을 처음 만났던 느낌을 아직 기억합니다. 스물다섯에 사귀기 시작했을 때, 탐색과 다름에 대해 남아있던 어떤 생각들이 극복되어 확신으로 나아간 듯 합니다. 이 사람과의 시간을 통해 삶을 계속 계속 행복과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구요. 삶의 어느 순간에서라도...이 사람을 떠올리면 금세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고이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한 나에게도 벅찬 감사의 마음이 들구요.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네요. 달팽이님 좋은 글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두분이 행복한 여행해나가시길 빌게요 :)

달팽이 2010-03-11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그 사랑의 결과물이 만든 세상에서 나는 살아갑니다. 두 아들 녀석과 그녀 그리고 내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늘 주어진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삶의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님께서도 행복한 인생수업 받으시길..
 
가이아 프로젝트 - 당신을 안내하는 마지막 메시지
장휘용 지음 / 대양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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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주의 성장 프로젝트로서의 가이아 프로젝트는 우주 속의 특별한 행성으로서의 지구라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성장계획이고 우주의 성장계획이다. 영혼 성장의 특별한 체험장으로서의 지구에서 태어난 내가 가이아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5차원의 세계로 바뀌는 지구에서 나는 나의 별을 찾아 떠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 지구에 남아서 나의 영혼의 여행을 계속해나갈 것인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은 늘 내 인생에 걸쳐 풀어지지 않는 그렇다고 목으로 넘겨 삼켜지지도 않는 수수께끼였다. 나아가 이 지구라는 별의 존재 의미와 죽음 후의 세계 그리고 우주라고 하는 거시적인 세계에 대한 물음은 때로 나의 의식을 오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몸의 차원에서 벗어나 더욱 넓고 깊은 존재로서의 나의 바탕을 묻게 했다. 그동안 읽었던 몇 권의 책으로 다 답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 가이아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야기로서 모두 풀리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황당무계하다거나 무협지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아주 특별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미래예언가들이 지구의 물질적 삶의 종말을 예고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적 종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지각변동과 함께 많은 인류의 희생과 지구적 삶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책도 지구의 생성 의미와 인간 존재의 의미, 우주의 생성과 변화 발전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이처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책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물질적 삶이 얼마남지 않은 절박한 상황으로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에너지로 나를 빨아들였다.

  20세기 후반에서 와서 지구상에서 많고 다양한 영성서들이 대량으로 출판되고 이것이 물질적 삶에 치우친 지구인들에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메세지로서 갑자기 쏟아져나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 인류역사상 오래된 문명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는 미스테리들이 비공식적이고 은밀하게 전수된 내용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공통점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얼마남지 않은 우리들의 마지막 삶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모든 종류의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존재에 대해, 우주에 대해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모르는 마음은 몸에 갇히거나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사념체에 의해 갇혀지는 것이 아닌 우주끝까지 펼쳐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대하고 인식함을 말한다.

  그것은 선심초심에서 말하는 선심이고 그것이 또한 가이아 프로젝트의 마지막 경험에서 우리가 체험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의식의 질적 비약의 방법이다. 설령 그것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의 종말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그것에 의한 경험이 이 지구라는 특별한 별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에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기쁨이고 고마움이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 또한 하나의 맹목적 신념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절박한 메세지마저 버릴 수는 없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내가 지구에 남든 나의 별로 돌아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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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보람의 창조
이이다 후미히코 지음, 김종문 옮김 / 자유문학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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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의 아픔으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 자신이 병에 걸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들처럼 보다 많은 부와 높은 지위를 가지지 못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 하루하루의 생활이 그저 무미건조하고 아무런 활력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가치에 대해 눈뜨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 누구든 각각의 삶은 자신에게 있어 꼭 필요한 배움의 과정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사는 보람이라는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생에 들어서기 전 이미 계획되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된다.

이이다 후미히코 교수는 경영심리학자로서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그가 자칭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보람있고 멋진 삶을 살게 해주는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에 기뻐하고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최면요법을 통한 자료를 통해서 먼저 보여주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윤회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더불어 인간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물음도 던지게 된다. 그것은 내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서 그것을 경험하며 그 기억을 간직하는 무엇인가가 지금 내게도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넘어가는 인생의 구조에서는 생과 생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최면요법을 통해서 얻은 자료들 중 객관적인 것을 추려서 모아놓았다.

사실 객관적이다, 과학적이다 하는 것이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 중 드러난 현상을 파악하는 방법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언어적 표현 자체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후미히코 교수는 드러나지 않은 영적 세계를 드러난 현실의 역사에서 검증가능하고 최면요법의 피험자 중 다수의 사례로 나타난 경우를 지극히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의 유명도가 있는 정신의학자(우리나라에도 김영우박사 등이 있다)들의 연구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 인생의 구조와 삶의 의미에 대해 아주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정리를 잘 해놓았다. 그리고 내용이 좀 충분치 못하긴 하지만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결론으로까지 잘 도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학자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내린 결론은 스피리추얼한 인생관(인간의 본질이 정신 또는 마음이라고 가정하여, 정신적인 풍요함을 추구하는 관점)을 가지고 break through적 사고방식(모든 것에는 의미와 가치가 있고 표면적으로는 실패, 좌절, 불운과 같이 보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는 순조로운 시련이다는 신념을 가짐으로써 그 시련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뛰어넘는 것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인생의 시련을 마음편하게 뛰어넘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한계도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자신의 전생이나 영혼의 마스터를 인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없을 뿐더러 그런 기회가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온전한 내면적인 체험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내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기의 존재에 대한 스스로의 체험이 있어야 비로소 삶과 세상의 의문들이 비로소 해결되어지고 그런 해결이 자신의 삶의 의미도 보람도 제대로 찾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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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1-1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글샘 2005-01-1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보람은 창조하는 사람에게 있는 거 같네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달팽이 2005-01-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글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