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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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인류가 존재한 시간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단어이다. 그 숙명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 없이 인류는 그 발자취를 이어갈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쨍한 사랑의 기억은 늘 우리가 확실하게 붙잡아두고 싶어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 구름같다. 늘 욕망하면 할수록 텅 빈 허공처럼 허무해지는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목놓아 울기도 하고 가슴아린 기억으로 묻어두고 가기도 한다.

  젊은 날의 쨍한 사랑은 늘 우리에게 보다 많은 쾌락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그 쾌락과 기쁨의 깊이만큼 좌절과 고통의 얼룩을 남기는 법이다. 그 좌절과 고통의 얼룩이 베이고 또 베이어 우리는 때로는 이런 집착에서 생기는 마음의 얼룩들을 지워버리고 싶어하게 된다. 사랑, 숙명적인 그 사랑이 이젠 숙명적인 고통이 되고 그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삶의 전부다. 그것이 없다면 인생은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을 테니까.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늘 고통의 구멍이 뚫리고 그녀의 부재는 지워지지 않는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서 나는 더욱 외로워지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공은 늘 나의 삶을 더욱 잿빛으로 물들인다. 무엇일까?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더욱 부풀어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드는 사랑의 신비로움.

  사랑은 때로는 집착으로 눈덩이처럼 불고 불어 어느듯 자신의 연약한 두 어깨로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워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은 그 사랑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 때로는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잊었던 날들이 어느듯 그 사랑으로 인해 우주보다도 더 무거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숨쉬기조차 버거워질 정도로....

  그래서 우리는 처음 시작된 사랑의 신비함 속에서 집착과 욕망의 때를 벗겨내고 싶어한다. 그 두꺼운 껍질들을 벗겨낸 다음에야 비로소 사랑은 우리를 보다 성숙하게 하고 보다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욕망과 집착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낼 수 있을까? 단칼로 내려치기엔 그 속에 있는 나역시 베일것이 분명하다. 조심스럽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허울에서 불순물을 걷어낼 마음의 눈을 길러야 한다. 마음의 칼을 벼려야 한다.

  그 눈으로 쳐다본 세상, 그 칼로 내리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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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7-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징한 사랑과 찡한 사랑과 쨍한 사랑의 차이점을 알고는 있을까?
사랑에도 무지개빛깔처럼 여러 가지 삧깔로 자신의 땣깔을 가진다는 것을...

달팽이 2005-07-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한 사랑의 기억은 한 번을 만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랑
쨍한 사랑의 무게는 가벼워서 스치듯 지나가는 사랑
징한 사랑은 무거운 몸을 끌며 어쩔 수 없이 버티어가는 사랑
우리는 찡한 사랑의 기억을 쫓아 산다.
하지만 젊은 날의 가벼운 쨍한 사랑은 우리를 땅에 닿지 못하게 하고
집착과 욕망의 사슬에 묶이어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버림받은 영혼, 그 영혼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징한 사랑이 아닐까?
 
옛 시 읽기의 즐거움
김풍기 지음 / 아침이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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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팍한 인생살이를 살아가건 여유롭고 넉넉한 인생살이를 살아가건 우리는 인생의 희비애락의 감정곡선을 타고 세월의 선율을 탄다. 그러다가 때로는 가슴 속에서 울리는 감정들을 언어로서 표현하는 때가 있다. 때로는 감정의 생멸에서 그것이 끝나는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과 인생을 조명해주기도 하고 그 의미를 담아내기도 한다. 나아가서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언뜻 내비칠 때가 있다. 비록 시간적으로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 잊지 못할 짧은 경험이 때로는 삶의 모습을 뒤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우선 현대인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뿐더러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드물다. 늘 자신의 속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부끄러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상과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상의 많은 것들과 단절되어 사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은 그런 것을 격물해도 자신의 가슴에서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외적 조건에만 맞추어 살다보니 자신의 내면적인 소리와 느낌에 귀기울이는 감각 자체를 상실한 탓이다.

  우리 옛 조상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알았고, 때로는 그것을 미적 감각으로 되살려내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의 심성을 건드려서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아니 그들 스스로의 감정을 갖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하거나 우회적인 표현 방법을 빌어서 표현하는 데에도 아주 능수능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옛 글을 읽을 때에는 단지 글자를 따라 읽기만 한다면 지은이의 마음을 놓치기가 쉽다.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려면 그 마음을 쫓아야만 알 수 있는 언어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선율을 타지 못한다면 옛 시를 읽지 못한 것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이러한 인생살이의 희비애락을 겪으면서 갖게 되는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이 가져오는 인간 존재의 깊은 깨달음에 관한 절창의 시들이다. 이 시들이야말로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고도로 농축되고 집약된 언어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로 옛 스님들의 선시라고 할 수 있는 이 글들은 사물과 자신과의 경계, 자연과 자신과의 경계, 자아와 참나와의 경계를 어느 순간 훌쩍 넘어서서 경계없는 존재의 진실에 대한 체험을 글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 글들만으로 그 마음의 경계를 짐작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쫓으면서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

  삶은 언제나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글들없이 나는 언제쯤 내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아직은 글들이 내겐 필요한가 보다. 글을 통해서 나는 보다 고양되고 보다 마음을 바로세우게 되고, 보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을 떠나려면 우선 글에 대해 자유자재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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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0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검색했는데, 목차를 보니 너무 좋아요. 보관함에...덕분에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5-07-0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우님 덕분에 요즘 새로운 책도움을 많이 받고 있답니다. 아시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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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잠언 시집이다.

유명한 사람들의 유려한 사고와 상상력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삶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눈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일종의 깨달음같은 것을

짧은 한 줄의 글로 남겨 놓은 것이다.

때로는 그런 글들이 모여 긴 시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그런 시도 단 한 줄로 줄일 수 있다.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의 삶의 이치를 깨닫는 사람들이라면

농부든, 어부든 글자를 모르는 문맹이라도

자신의 온 삶을 녹여내어 한 줄의 잠언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가슴에 녹아드는 한 편의 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시란

내 몸과 자아를 녹여내리는 단 한 편의 시

그것이 목적이 된다.

단 한 편의 시면 족하다.

내 온몸을 녹여 삶의 진실을 순간에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시

한 편이면 모자람이 없다.

류시화 시인이 이 시집을 엮은 이유도 그러하다.

비록 이름없이 세상의 어느 한 조각 땅을 밟고 평생을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담아내는 단 한 줄의 말

또는 단 한 줄의 글

그것이 시인에게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비추는 단 한줄기의 빛과도 같은

시..

단 한 번의 떨림

하지만 온 세상을 녹여내는

단 한 번의 시가..

시인으로서 그가 꿈꾸는 모든 것인 그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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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04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시화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류시화의 시집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는데. 저도 이 시집을 집에 소장해 두었지요. 어렸을 때는 잠언시집이라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님의 말씀대로 깨달음을 전해주는 시집이더군요.
삶은 단 한번의 기회만을 허락하니,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을 되네이게 되곤하지요. 그래서 오늘도 생각합니다. 언젠가 다시 이렇게 되네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무엇을 깨달아야 한다고요. 그렇게 매일매일 깨닫다보면 그런 말을 하지 않게되는 날이 올까요? 의문입니다.

달팽이 2005-07-0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과정으로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더 지혜가 생기게 되면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삶의 의미를
그냥 알아지게 되는 때가 생깁니다.
머릿 속에 지식이 쌓여서가 아니라
삶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겨서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그런 말이 필요없는 경우도 생길 것이고
여전히 그런 말이 필요한 경우도 생기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우리들의 의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험난하고 거친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결국 그것은 우리들을 더욱 성숙하고 지혜롭게 만들것이니까요...

비로그인 2005-07-0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험난하고 거친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결국 그것은 우리들을 더욱 성숙하고 지혜롭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단 한번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우리들의 의지가 아닌가... 님의 뎃글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힘을 얻어갑니다. 뎃글도 굉장히 성의있게 남겨주시니..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네요. ^-^ 머리 속에 지식이 쌓여서가 아니라 삶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기게 되는 날이 오겠죠?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요? 조금은 두렵기는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리라고 믿어봅니다. 살아가는 것은 정말 신비함의 연속인가 봅니다.
 
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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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는 한자로 쓰여진 시다. 그것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한시가 주는 느낌을 최대한 살려내어야 비로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표현언어가 다름으로써 생기는 미세한 맛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번역문을 실어놓았다 하더라도 원문을 따로 실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한자로 쓰여진 시는 우리말로 옮긴 것보다 더욱 간결하고 운율이 살아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따라서 한시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한문에 빨리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한시를 읽으면서 시와 한문 둘 모두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욕심만큼 책을 덮고 난 후 만족스럽지는 않다. 아직 문맥속에서의 한자를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하고 있고 옛 사람들이 자연을 보고 대하며 느낀 시정 역시 단번에 내 가슴을 파고 들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룩들지는 않았다. 비록 수백년 수천년 전의 시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슴속에서 느꼈던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봄꽃이 만발한 숲에서 한잎 한잎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느낀 감정들, 바람불어 잎새는 떨고 있는데 대지위로 무수히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느끼는 가슴떨림은 비록 그것이 언어적 표현으로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이전의 가슴떨림의 기억으로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어찌 다 말로 하랴. 늘 그대로 있던 세상이 어느 순간 별안간 내 마음에서 새로운 것으로 바뀌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때의 느낌을 어찌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가슴떨림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고는 해도 어찌 글조차 남겨두지 않고 떠나보낼 수가 있겠는가?

  모든 대상은 마음 속으로 반영되고 그 마음의 빛깔을 통해 다시 가슴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 속으로 들어가서 이루어진 일들은 때로 다시 어떤 마음을 만들어내고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언어로 표현되기도 하며 음악과 그림 등 예술적 형태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마음에 있다. 우리가 격물하는 순간의 마음포착이 이후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온갖 감정들과 느낌들이 빚어내는 결과물로서의 세상을 대하면서 우리는 다시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내 젊은 날의 마음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변하지 않은 정서가 하나 있다. 그것은 기쁨과 행복감, 즐거움에서 느끼는 가슴떨림도 물론 좋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 속에서 애잔하게 울리는 떨림을 더욱 선호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새디스트나 매조키스트가 아니다. 쓸쓸함과 애처로움이 그 자체만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작용이 내 가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쓸쓸함과 고독함이 방울방울 혈관을 타고 굴러 내 온몸을 그것으로 채우는 동안에도 그것을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의 내성은 삶의 슬픔 밑바닥에서부터 깨닫게 되는 삶의 비밀의 문을 찾게 한다. 그 문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지혜를 추구하게 되고 그때에야 비로소 누구나가 꼭 거쳐야만 하는 그 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표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됨을 알게 된다.

  한시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뼛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슬픔, 눈물없이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을 울리는 문학양식이란 것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 존재의 심연 그 보이지 않는 바닥에는 어쩌면 슬픔의 강이 흘러 그 물로써 삶의 기쁨과 행복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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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번에 주문할 책이었어요. 앞선 어느분의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넣었는데
님도 읽으셨군요.

달팽이 2005-06-18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요즈음 전 한시, 옛시에 빠졌나봐요.
뭐랄까, 옛시를 읽고 있으면 그 풍경속으로 내 몸과 마음이 쏙 들어가는 느낌...
아무래도 난 우리 나라에서 선비로 살았던 기억이 있나봐요. ^^

어둔이 2005-06-18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友人會宿

滌蕩天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宜淸談
皓月未能寢
醉來臥空山
天地卽衾枕

-李白

꽃들의 웃음판을 읽은 기념으로 달팽이님에게 번역을 구함!!!
전생에 선비로 글공부하며 살았던 시심을 되살려 ^.^


달팽이 2005-06-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겁 윤회의 시름이 씻어지도록
연거푸 백 잔의 차를 들이키네
좋은 밤 맑은 문답은 깊어만 가고
밝은 달은 미망에 빠지지 말라 하네
어지러운 마음 허공 속에 묻으니
천지 모두가 부처님 법문 아닌 것 없구나

어줍잖은 솜씨로 어둔이님의 요구에 응해봅니다.
어둔이님도 생각하고 계신 번역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어둔이 2005-06-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벗들 모여 이 밤에

오래 쌓인 시름
모두 씻어버리고자
연거푸 백 병의 술을 마신다
이 좋은 밤
때묻지 않은 이야기로 밤을 새니
휘영청 밝은 달도 아직
잠을 못 드네
거나하게 취한 뒤
벌렁 누워버린 이 빈산
아! 하늘이 이불이고
땅은 배게로다

-이백의 시를 어둔이 옮기다

로드무비 2005-06-1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번역 모두 좋네요.(앗, 실례!^^)
존재, 심연이라는 단어에 끌려 왔습니다.

달팽이 2005-06-18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무비님...요즘 잘 지내시죠? 서재 마실 한번 가야겠군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 깨달음의 노래, 이현주 시집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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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말이 많아지면 보통 우리는 그 말이 꼬리내리는 곳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 속에 꼬여 있는 부분이 많을수록 말은 많아진다. 그래서 때로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말이 좋을 때가 있다. 말이 단순히 자신을 묘사하는 것으로만 그 역할을 다하는 때가 있다. 화려한 치장도 필요없다. 없는 가식도 필요없다. 모든 수식을 벗어버린 그 속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말이 정직해진다.

  시는 언어의 압축성을 통해 세상의 진실과 존재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의 마음 속에 담겨진 삶과 자연의 모습은 그것을 담아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각양각색이다. 이현주 목사님은 시를 산문쓰듯 한다. 별다른 기교없이 별다른 비유없이 일상의 담담하고 사실적인 글들을 적어내려간다. 하지만 그렇게 적어내려가는 것 역시 하나의 기교요 비유며 기법이다.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면서 물을 물 그 자체로서 느끼려고 하는 마음이 포착해내는 세상에 대한 표현이이다.

  물 스스로와의 교감을 통해 드러나는 글들, 거기에서 우리는 삶을 허공을 바라보듯 한다. 존재의 빈탕을 바라보듯 한다. 인생을 살며 쌓여가는 경험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음의 창, 그는 그 창을 통해 생활을 보려 한다. 그 창을 통해 생활을 인생이라는 직물 위에 엮어 놓으려 한다. 모르는 마음 속에 우리는 늘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물을 접해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태도가 우리를 보다 성숙하게 한다.

  이 목사님의 글을 읽은 것도 이젠 몇 해가 되어간다. 그의 글들이 처음 내게 남겼던 파장을 잊지는 못한다. 하지만 글들이 단순히 표현하는 바를 떠나 그 마음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할 숙제는 독자들 각각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개님의 익숙해지고 늘 대하는 표현방식에 무디어져 간다. 뭐랄까 그의 글에서 좀 더 확 가슴이 열리는 경험들을 찾고 있는 것일까? 표적을 향해 쏜 화살과도 같은 날카로운 명중을 바라는 것일까? 왠지 가랑비같이 젖어오는 촉촉함의 맛도 맛이지만 때로는 장대같이 쏟아지는 몸에 확실하게 느껴지는 시원함의 느낌도 그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장대비만 맞으면 빨리 싫증이 날 것도 역시 안다. 그래서 완급의 모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때로는 목사님에게서 화두와도 같은 긴박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직설의 미학이 보고싶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언뜻 언뜻 보이는 그의 시에서 가끔씩 갈증을 해소하듯 보는 그런 표현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소리 "뎅"하는 그 한자만으로 가슴을 울려 오는 그런 직설, 어쩌면 이것도 지금 내 마음의 욕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그와는 별다른 부족함을 보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내게서 보는 스스로의 부족함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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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님과 이오덕, 이현주 ,전우익 이 클럽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분의 글을
읽지 못했어요. 간간이 잡지에 실린 글만 읽었을뿐 정식으로 만난게 없는데
이번에 님 리뷰로 보관함에 들어갑니다. 저처럼 말많은 여인네에게 필요한 책이군요.

달팽이 2005-06-1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소를 남겨주시면 남도의 끝 멀리서도 책 한 권 보내드릴까 하는데요...

2005-06-13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6-1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여우님에게 나의 흔적 하나를 남겼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