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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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은 한국을 떠난다. 왜? '한국이 싫어서' 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자신은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서...한국은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키고 그 속에서 다른 동료를 딛고 서야만 성공하는 사회이고 사회적 약자일수록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받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또 대한민국이라는 전체만 신성시하고 아끼고 위하고 나머지 국민에게는 관심이 없는 나라이고 그래서 대한민국으로 위해 소모품처럼 살다가 언젠가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마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나는 잘 살아갈 수가 없어서 호주로 이민을 떠난다.

 

  "사람은 가진 게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 단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없으면... 그런데 한국에서의 삶은 가진게 조금 있어도 더 많이 가져야 하고 그래서 자꾸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커지는 사회야 나는 이런 곳에서 내 미래를 행복하게 영위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한국에서의 익숙한 불행보다 낯선 곳에서의 행복을 선택하는 거야. " 현재 가진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노마드 청춘은 이렇게 한국을 떠나 살 수 있다. 물론 이 조차도 언어능력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극복하고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호주에서의 삶이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한국인 부부에게 사기 비슷한 걸 당하고 어려운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쓰는 간이침대에서 편한 수면을 방해당하고 외국인 체류자에게 보이는 바깥 시선을 견디면서 살아야 하고....그러면서도 낯선 행복이 주는 자유로움은 한국에서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맛볼 수 없는 황홀이었을 수도 있다. 여성으로서의 한국인의 삶은 적령기가 되면 결혼해서 출산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맞벌이를 해야 하고 가족과 친족의 형식 속에 숨막히는 역할들을 다 해야 하고 그렇게 그저 그렇게 나이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월호든 국가적 재난에서 국민은 국가로부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신의 노후도 보장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 그 사회로부터 받는 배신감은 이 곳에서의 삶을 더욱 싫게 만든다. 어린 학생들이 아무 잘못없이 재난을 당해도 그를 구하지 못하는 나라. 국가를 위해 살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국가, 아직도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유골과 넋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뜻있는 민간단체에 의해 그나마 초라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들이 보살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역할을 하려했기에 그런 대우에 관심조차 없을테지만...이런 국가는 그 자신의 복을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이 조국이 외세에 의해 유린당했을 때 목숨바쳐 이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무언가 가슴 속 꿈틀거림이 인다. 조국이 그들에게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버렸던 사람들....그들 앞에 드는 죄의식은 무엇일까? 그저 이 나라가 싫다고 나가서 살기에는 그들에게 조국이란 이름은 너무나도 절실하고 갈망하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 분들이 남긴 이 나라에서라도 사람들이 떠나고 싶어하는 사회적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사회가 젊은 청춘들에게 더 자유롭고 살기좋은 곳으로 떠나게 하는 배출요인이 있다면 사회가 그것을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회의 미래세대가 보다 살기좋은 사회로 만들어가는 데 주인공같은 이민자의 행동이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래도 조금 노력하면 이 곳에서도 단란한 행복을 꽃피울 수 있다고 느끼게끔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이 책은 성공한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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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9-13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녹색 passport에 대한민국 국민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하는 ( 비슷한 ) 문구가 있는데 , 이걸 볼 때면 그래도 내 나라지 하는 뭉클한 마음이 들때가 있어요. ㅎㅎ 점점 태어난 나라를 떠나 살아갈 나라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듯 싶어요.

이 책 관심이 있었는데 , 함 읽어봐야겠네요.

달팽이 2015-09-1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 반갑습니다. 몬스터님.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 저는...
 
발원 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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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다. "나는 춤이다", "내 입 속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내 무한한 혁명들에게"를 보았을 때에도 희망버스로 세상의 부조리한 일들에 마음을 함께 한 곳에서 그녀를 발견했을 때 나는 알아보았어야 했다.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를...그리고 처음 내 마음을 떨리게 했던 그녀의 작품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원효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게 했으니 원효스님에 대한 국내의 역사서에 실린 대중매체의 왜곡을 어느정도는 걷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한다. 삼국유사의 "요석공주와 정을 통해 설총을 낳다"라는 부분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원효 스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점만 하더라도 이 소설이 가진 소명은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원효스님의 책을 이미 두어 권 사두고 언제 제대로 읽어볼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이 '발원'이란 소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다시 읽어보아야겠구나 하고 나름의 '발원'을 하게 되었다. 그 책에 담긴 원효스님의 진실한 뜻을 알고 싶다는 발원 말이다.

 

  2권에서는 나제전쟁의 한 복판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가져간다. 그 속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며 많은 죽음을 접했을 원효스님.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본래모습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진실. 마음의 깊은 곳에서 자신의 껍질을 모두 벗어던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절벽에서 두 손을 놓아버리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혜공스님과 선덕여왕의 죽음과 함께 서라벌의 정치판도는 변화되고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그렇게도 마음깊이 신뢰했던 요석은 원효와 아미타림을 볼모로 한 정략결혼에 이르게 된다.

 

  바닷가에서 가족을 모두 죽이고 생명을 거두려는 한 남자의 영혼을 보살피며 깊은 선정에 든 원효스님은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열어가고 국사의 약조로 귀족들의 불교를 책임질 의상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을 재촉하면서 두 사람의 길은 갈라진다. 두 사람의 동행이 서로에게 미쳤던 영향 중 의상은 원효를 만나면서 달라진 불교에 대한 시각과 깨달음은 진정한 불교적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은 가파르게 카타르시스를 향해 치닫는다. 과연 원효와 요석은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나는 소설을 읽어가고 있었다. 요석공주를 품게 되는 원효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이다. 결국 정략적인 결혼의 실패와 김춘추의 정치적 야망 속에 아버지를 배신하고 반대하는 요석공주의 풍전등화 속의 운명을 살리기 위한 설정으로 원효는 요석과의 만남을 계약한다. 자신의 모든 명성과 스님의 지위를 버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요석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김춘추가 펼쳐놓은 덫을 원효스님은 더욱 큰 지혜로서 헤쳐간다. 승려의 신분과 모든 명예를 떠나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에 의지해 사는 선각자였으니까. 실제 정치에서도 정권이 성골에서 진골로 넘어가면서 원효의 반정부사상을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이용하고자 하였을 테고 원효스님에게는 그 모든 대중적인 지지와 명예 그리고 승려의 자격까지도 박탈하는 음모가 요석공주와의 사통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눈 앞의 한 여자와 그 태아를 살리기 위한 부처님의 자비로 원효스님은 그 길을 홀가분하게 걸어갔던 것이라 생각한다.

 

  경주에 이틀동안 다녀오면서 서라벌의 한 가운데 놓인 대릉들 그리고 선덕여왕릉과 첨성대를 둘러보았다.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북적했던 신라의 수도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의 삶의 아픔과 전쟁의 상흔을 치료하며 부처님의 세계로 이끌려고 하였던 눈밝은 수행자를 만난 듯 하였다. 그래서 '발원'이란 책 두 권을 들고서 경주를 돌아보는 내내 내겐 소설 속의 풍경들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눈 앞에 나타났던 것일까? 나도 책을 덮으며 작은 발원을 하나 생각한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의 뜻을 진실로 알고 싶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영화 한 편처럼 원효의 일대기와 요석공주와의 보다 깊은 사랑의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한 여자를, 또는 한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려면 우선 그 마음에 깨끗함과 경건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아에 대한 욕망으로는 결국 업장을 짓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보다 성숙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세상의 보다 성숙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던지는 그녀의 물음에 우리는 삶으로서 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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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1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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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밤의 꿈같은 신라의 꿈 이야기

 

그 이야기가 되살아난다. 김선우 시인의 가슴을 거친 사랑의 서사시

원효와 요석의 사랑이야기가 더 큰 사랑의 이야기로 승화된다.

인물 하나 하나에 불어넣는 생명력의 숨결이 그 인물을 움직인다.

원효!

자신을 출산한 엄마의 죽음의 댓가로 태어난 아이, 새벽

새벽이 오기 전의 시간이 가장 암흑의 시간이라는 말처럼

그의 성장은 삶과 죽음이 함께했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풀어내는 과제를 짊어지고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던 숙부와의 이별이 남겨놓은 그의 앞날...

원효는 결국 화랑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길은 부처님의 길을 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길이 된다.

부처님이 결혼과 가정을 이루고 난 후 출가를 결심한 것처럼.

속세로 출발한 그의 삶이 결국은 그 영혼이 이끄는 삶으로 절실하게 방향을 튼 계기를 만든다.

신라인 백제인 고구려인 구분없는 부처님을 향한 인간의 삶과 삼국전쟁 속에 휩쓸린 반도의 운명 사이의 갈등이 결국은 이 소설을 풀어가는 주된 모티브가 된다.

속세를 떠나 진리의 길을 추구할 것인가?

속세 속에서 부처님의 길을 걸어가고 그 속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가?

원효의 고민과 수행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대척점에서 요석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각 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전체적인 밑그림을 큰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원효의 공부를 방향지으며 그의 수행과 깨달음을 깊은 지혜의 눈으로 살피는 혜공스님과 대안 스님.

원효의 길 중 하나가 상구보리의 길이라면 그 속에 두 분 스님이 존재하고

하화중생의 길 속에 선덕여왕과 아미타림 그리고 신라의 운명이 놓여져 있다.

그 둘 사이를 요석은 원효의 마음과 하나되어 같이 움직이고 성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신라 귀족과 여왕의 권력 갈등 속

삼국의 전쟁과 백제와의 처절한 전쟁 속

요석과의 작은 사랑과 부처님을 향한 큰 사랑 속

 

여러 개의 갈등 구조 속에 그 밑에 흐르는 큰 하나의 본류를 구성해놓고

이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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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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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나는 뫼르소를 조금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내가 읽었던 이방인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그의 성격과 가치관에 대해 아니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방인을 읽었지만 그것이 왜 사람의 감정을 울리게 하는 것인지 몰랐고 왜 그렇게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고 감동을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정서님의 이방인을 읽고서야 비로소 나는 뫼르소란 사람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뫼르소는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복잡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한 군상이 아니다. 그는 친절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평범하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말을 불필요하게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래서 자신의 표현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행동이나 말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사람들이 그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두리뭉실한 또는 어렴풋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의 행동의 동기와 마음에 대해 오해하게 한다. 그러나 글을 따라 읽어갈수록 그가 마리나 레옹 그리고 살라마노 영감을 대할 때 그의 마음이 그들에게 따뜻하게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만나는 모두가 그에게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꼈고 또 사랑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을 사로잡던 강렬한 태양은 그 사람의 칼을 통해 그에게 왔고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그가 우발적 살해를 한 것은 이 이야기의 본격적인 전개의 출발점이 된다.비록 그가 사람을 죽였지만, 표현을 싫어하는 그가 세상과 사람을 얼마나 내면으로 깊이 수용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일면이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사회적 필요나 권력적 필요에 따라 이용하기 쉬운 사람이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재판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시키고 또 한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켜 결론을 엉뚱한 곳으로 이르게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그가 사제의 행동과 말을 거부했던 점. 그리고 항소를 포기하고 잘못된 판결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그가 보여준 내면적 과정은 그가 인생의 끝에서 어쩌면 삶과 죽음을 교차하는 어떤 깨달음을 가진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삶의 마지막에 가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응시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서 비로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죽은 결과는 이미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비로소 종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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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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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은 아픔을 만나면 서로 위로가 되는가보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197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가진 각각의 아픔들이 만난다. 그들의 아픔은 서로의 상처를 핥듯이 서로에게 힘이 된다. 살아온 삶이 달랐지만 그들이 사는 위치도 다르지만 그 아픔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하나로 그들은 친구가 된다. 전쟁은 기성정치인들이 편안한 방안에서 결정을 하지만 젊은이들의 피를 뿌려야 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그 어느 곳에서든 자행되어 왔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삶에서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산다. 그러나 그 아픔과 상처가 삶의 아름다움을 갉아먹지만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아름다운 것...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며 또 삶과 죽음이 동시에 혼재하는 그런 마음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74년 필리프 프티라는 프랑스인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 줄을 매고 그 줄 위를 걸었다. '20세기의 예술적 범죄'라고 불리웠던 사건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그 내용을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그가 18분 동안 했던 강연이 동영상으로 나와 있었고 그의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가 있었다.

"한 쪽은 거대한 산처럼 제가 아는 인생입니다. 다른 쪽은 구름 속이죠.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찼을 것 같지만 비어 있는 거죠...." 그렇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다.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인생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이 소설 속의 뉴요커들은 제 각각의 삶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한 번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것이 우연처럼 소설 속 어느 공간에서나 화제가 되고 있는 세계무역센터 위를 걷는 사람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110층 400미터 상공 위에 줄 하나가 눈 앞에 놓여진 길을 걸어야 한다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죽음' 이다. 그리고 그 눈 앞의 죽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삶'이겠다. 삶과 죽음이 교차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 사람들을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줄을 타는 사람이 그들에게 주는 메세지가 아닐까? 그러니 관습이나 과거에 의해 굳게 묶여 있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과거에 얽매인 거대한 굴레를 벗고 현재를 살기 위한 노력은 그야말로 거대한 지구를 굴려내어야 하는 삶이 아닐까? 그것은 제 각각의 상처와 역사 속에 살고 있느라고 주변을 현실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데 모으는 것이고 그 모은 시선에 삶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삶은 또 다시 흐른다. 상처가 시작된 것도 사람이고 그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 사이에 난 사랑의 길이 그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 위에 만난 사람들.... 기억을 환기시키는 물건들.. 그 기억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마음들....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길들...그것이 서로를 소통시키는 길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속에 모든 것을 서로 섞어서 받아들이고 소화시켜서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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