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실
야마와키 유키코 지음, 김현희 옮김, 엄효용 사진 / 웅진주니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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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아이들은 끝없는 지옥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섬세하게 가져 살피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하루하루 얼마나 지탱하기 힘든 삶을 버텨나가는지 모르게 된다.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에게 눈물로서 추천할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가장 잔혹한 비밀이야기, 바로 집단따돌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돌림에는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다?

 

  따돌림을 당할 때에는 그 피해자가 그럴만한 성격적 결함이나 행동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호히 말한다. 그렇지 않다. 집단따돌림은 아주 우연적이고 아무런 이유와 근거없이 가해자의 심리에 의해 집단적으로 하는 행위다. 거기에는 뚜렷한 이유도 원인도 시작도 없다. 다만 학교와 교실이라는 공간이 왜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성격을 비뚤어지고 악마의 얼굴로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교육체제와 학교현실을 놓고 깊이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어쩌면 성적위상주의라는 과제에 직면한 아이들이 갖는 스트레스와 진학과 진로에 대한 압박과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학교와 교실을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학교에 만연한 노스페이스 계급현상도 학교의 주류사회에 편승하고자 하는 고달프고도 절박한 아이들의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무작정 개입하여 가해자를 처벌하면 해결된다?

 

  그럼 내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여 식욕도 없고 구토증세도 있고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고 깨던지 갑자기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던지...학교의 통신문을 가져오지 않고 숙제노트나 과제노트를 보여주지 않던지...물건이 자주 파손되던지...할 경우 당장 학교에 찾아가 담임교사에게 따지고 학교를 뒤집어 놓고 교실에서 큰소리치며 협박을 하고 오면 될까? 그렇다면 일종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암묵적인 계약을 위반한 배반감에 더욱 지독한 따돌림에 시달리기 쉽다. 우선 이 문제의 접근법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의사에 반해서 학교를 찾아가지 않기, 학교를 찾아가 불평과 협박을 하기보다는 건설적인 방법에서 그 해결책을 찾기, 해결책 찾기와 별도로 학교배상책임에 대해 제 3자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 등이다.

 

 일단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면 전학보내는 것이 제일 좋다?

 

  아이가 집단따돌림을 당한다면 우선 아이의 심리적인 상처와 그 흔적은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그 장면을 회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태에서 학교와 학부모 교사 학생이 유기적으로 협동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 해결과정에서 집단따돌림을 극복하면서 배운 의지가 그 아이에게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상처를 거의 아물게 해준다. 그러나 상황파악을 잘못하여 극도의 절망과 위험 속에 빠진 아이에게 정신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근거없는 용기나 희망을 불어넣는 것은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미 피폐해져 삶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학교를 쉬게 하면서 가정에서 최대한 안정감과 사랑을 통해 아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학교에 가야한다고 말해도 그 아이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설득시켜 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집에 있을 때도 외출시에는 반드시 동행하여 따돌리는 학생들과의 접촉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상담전문기관을 통해서 아이를 치유하는 한편 학교와는 이에 책임을 가진 교장 교감과 생활지도부장 담임과 함께 이 문제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학교에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서 이후에 있을 더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식시켜서 학교적 차원의 노력을 촉구하고 될 수 있으면 자신의 감정을 자제시켜서 이성적으로 학생이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그 상황을 이겨내도록 건설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우리 어른들은 자신의 자녀가 혹시 집단따돌림을 당하지 않는지 마음의 눈으로 세심하게 관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분명히 아이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다.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응급구호의 메세지를 우리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일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다음은 책에서 정리한 구조신호이다.

 

 - 최근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 공책과 교과서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 부모님 앞에서 숙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 요즘 들어 부쩍 돈을 달라고 떼를 쓴다. 부모님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친 적이 있다.

 - 학교에서 행사가 열릴 때는, 부모님에게 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 잘못했을 때는 곧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 학교에서 유인물이나 안내물을 받아왔으면서도 부모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 자꾸만 멍하니 있고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다.

 - 억지로 밝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 요즘 학교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면 "별로에요", "그냥 그래요"라고 얼버무린다.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물어보면 벌컥 화를 낸다.

 - 친구들 이름이 화제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 학교에 관한 푸념이나 불만 사항을 말하지 않는다.

 - 학부모 모임이나 담임선생님과 개인 면담에서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 잠을 잘 못잔다.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자주 깬다.

 - 권태감, 피로, 의욕 저하를 보인다.

 - 원인 불명의 두통, 복통, 구역질, 식욕 저하, 체중 감소 등의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 무슨 일을 해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한다.

 - 예전에는 열중하면서 즐기던 게임이나 놀이를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 이유없이 짜증을 낸다.

 -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진다.

 - 신체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부모님하고는 절대로 같이 목욕하지 않는다.

 - 부모님 몰래 옷이나 체육복, 신발 등을 직접 빨 때가 있다.

 -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했다.

 -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비행을 저지른다.

 -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신경을 쓴다.

 - 돈 씀씀이가 커졌다.

 - 성적이 떨어진다.

 - 건망증이 심해졌다.

 - 자해 행위를 한다.

 - 메모 또는 일기장에 '죽음'을 암시하는 문구가 있다.

 

이런 증상이 보여 집단따돌림으로 판단되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숙지해야 한다.

 

 - 당분간 학교를 쉬게 한다.

 - 부모로서 메세지를 전달하라.

 - 아이 혼자서 외출시키지 말라.

 - 따돌림에 대해서 억지로 질문하지 말라.

 - 집 안에서는 밝고 즐겁게,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자.

 - 아이의 말은 전부 진실로 받아들여라.

 -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한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 따돌림에 맞서게 하지 말라. 무조건 참으라고 말하지 말라.

 - 아이의 허락없이, 무조건 학교에 상담을 청하지 말라.

 

  가장 순수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야 할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런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도 절망적인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더욱 자세히 세심하게 쳐다보고 카톡으로 더욱 많이 소통하여 적어도 내 교실에서만이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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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 감정 코치
존 가트맨 지음, 남은영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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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음식점이나 공중공간에서 아이의 투정은 난감할 때가 많다. 집에서라면 여유를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일들도 상황이 달라지면 당혹스러워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때로는 강압적인 태도로 일단 발등의 불을 끄려고 한다. 아이들의 감정적인 행동이 어떨 때에는 수용해야 하고 어떨 때에는 그냥 간과해서는 안될 때인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정답을 책이 줄 수 있겠는가? 그 아이의 영혼을 보살피는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아이의 마음과 교류한다면 교과서의 정반대의 행동이라해도 아이에겐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교과서적인 대답이라고 할지라도 무익한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해서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대한 방향제시가 무익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수많은 아이들의 사례들을 조사하여 일반적으로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도움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본 나의 행동유형에도 반성할 바가 많았다. 축소지향형과 방임형과 강압형이 혼재되어 조금씩 나타났던 점 때문이다. 감정코치형으로 아이를 대한다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여 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선 아이들의 감정에 서서 동조함으로써 어떤 경우에서든지 나의 편이 되는 부모가 있다는 안도감과 신뢰감이 아이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성격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감정코치형의 장점은 아이의 문제를 그대로 방임하여 두는 것이 아니라 해결에 일정한 방향은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의 영혼이 걸림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는데 있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아이들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유아기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다면 아동기부터는 아버지의 역할이 조금씩 확장됨을 지금 나는 느끼고 있다. 물론 두 아들을 둔 부모라서 그런 점도 있지만 아이들의 자아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역할 배우기가 골고루 이루어지는 것이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운동을 하거나 놀 때 때로는 책을 읽을 때에도 나에게 온다. 물론 늘 아이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책읽는 것은 하루에 한 권씩 30분 정도로 정해두고 같이 노는 것도 30분 정도로 정해둔다. 추가적인 몫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이다.  

  둘째 아이는 엄마에게 늘 붙어다니고 잘 때에도 깨어있을 때에도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증세를 보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좀 커서 형과 놀고 나와 같이 자전거도 타고 공도 차고 하면서부터 이제 그런 증세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특히나 녀석은 운동감각이 형보다 뛰어나 가끔씩 싫은 레슬링도 한판씩 해줘야 할 태세다. 그런 아이들의 삶 속에서 나의 비중이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귀찮은 면이 없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통해 부자간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기쁜 마음도 있다.  

  사실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기술만으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인격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며 아니면 그것을 공부삼아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내가 공부삼아 해야하는 것은 사실인 것이며 그러니 그만큼의 각오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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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달팽이님이 아들들과 노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고 있답니다.
아이들 어렸을 적에 책 읽어주기, 나중에는 번갈아 가며 책 읽기..
같이 놀기, 손잡고 걷기, 공놀이 하기 , 레고.. 건담 조립하기.
그저 딩굴거리기, 같이 웃기 하하
아이들하고 아빠가 할일 놀일이 무한히 많습니다.

책에는 답이 없습니다. 달팽이님
저의 말이거나 다른 책이거나, 그것은 다른 아빠와 다른 아들들의 이야기일 겁니다.
달팽이님과 아들들의 이야기는 달팽이님 가족들이 새로 쓰는 이야기이므로.. 하하

저는 저의 아버지에게 아이들과 노는 것을 배웠답니다.
저 어렸을 적에는 어린 아들과 노는 아버지가 거의 없었지요. 저는 운이 좋았지요.
여전히 아버지가 그립답니다..


달팽이 2010-06-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말씀 고맙습니다.
한사님의 자녀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느꼈는데...
역시 남다른 아버님을 두신 덕에 그 유산도 있군요..
한사님의 말대로 제 인연대로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잘 하지는 못하겠군요. ㅎㅎ

글샘 2010-06-1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애들이랑 노는 건 잘 합니다. 레슬링도 잘 하고, 말잇기도 잘 하구요. ^^
포켓몬스터 이름 외우기 같은 것도 옛날에 많이 하곤 했는데...
애가 고딩이 되니깐, 같이 못 놉니다. ㅎㅎㅎ
이제 제 살 길 찾아 가겠지요.
건강하게 잘 사시죠?

달팽이 2010-06-17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잘 지냅니다. 읽으시는바와 같이...ㅎㅎ
부럽습니다. 벌써 고딩이라니...ㅋㅋ
앞날이 구만리같네요.
빨리 제갈길 찾아가야 할텐데...ㅎㅎ
 
침묵으로 가르치기 -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핀켈 교수의 새로운 교육법
도널드 L. 핀켈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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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가에서는 화두라는 것이 있다. 말의 낙처가 떨어지는 곳을 바라보아야만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말이다. 가르쳐주지 않음으로써 가리켜주는 것...그러면 결국 의문을 가진 자가 스스로의 의문을 녹여서 풀어야 할 일이다. 침묵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가르치는 자와 배움을 받는 자가 마음으로 만나는 공간의 일인 것이다. 그 두 마음이 만나 한 마음이 되는 일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지 않는 한 그 비밀은 여전히 세월의 지층 속 어딘가로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와 세상이 분리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교육목표를 세우고 수업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대로 또 교사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학생들에게 인식의 틀과 내용을 주입시키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일체의 노력들을 중단할 것을 주장한다. 교사가 의도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탐색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하고 먼저 물어야 한다. 고기를 줄 것인가? 낛싯대를 줄 것인가? 아니면 낛시하는 방법을 가르킬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 왜 사는가? 하고 물어야 할 일은 아닌가?  

  이상적인 모습일런지는 모르지만 선가의 깨달음이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교육자가 아니다. 배우고 성장하려는 학생이다. 아니 교사와 학생의 구분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만 오롯하게 진행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비가 내려 나무와 풀이 자라듯 빛이 비춰져서 꽃이 피고 잎이 돋는 것처럼 말이다. 꽃 한송이를 들고 말없이 서 있는 가운데 말없이 주고받는 미소라면....어쩌면 가장 배움에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다시 땅 위로 내려와보자...교실에서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주로 지시적이고 폐쇄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단정적인 말과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언어 사용은 아이들의 진정한 학습과 열린 사고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 쉽다.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교육이 아니다. 침묵으로 가르친다는 표현은 침묵이 어떤 배움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수업을 계획하고 방향짓고 일정한 교육적 효과를 의도한 준비와 상황을 제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학생의 학습의 과정에서 주어진 길을 안내하지 않으며 또한 해결방법에 대한 제한된 틀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학생들의 수동적인 학습습관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딛을 수 있도록 보다 큰 사랑으로 침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다. 침묵한다는 것이 교육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일정한 교육적 환경을 필요로 한다. 어떤 배움의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뭔가 학습자의 마음 속에 어떤 배움과 성장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과제처럼...이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과 알고 싶다는 의지...욕구.... 그런 것 말이다. 과연 어떻게 그들의 가슴 속에 씨앗처럼 그것을 심어주는가가 문제란 말이다. 그것만 갖추어진다면 침묵으로 가르치든 말로써 가르치든 이미 교육적 효과는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나 교육의 효과니 학습력 향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요즈음...정말 학생들로 하여금 배움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학교교육이 그 성장의 모든 몫을 하려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 욕심같은 마음을 놓아버린다면 어쩌면 새롭게 다시 교실과 학교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그들이 살아나가야 하는 사회적 삶과 개인적 삶 그 자체가 성장이요 교육이 아닐까?  

  깊어져가는 봄 속 햇살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는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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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간히 달팽이님께서 의미심장한 글을 써주시는군요.

아이들 네명을 키우며 느낀 바로는
아이들이 각기 타고난 자질이 있더군요.
그런 자질을 벋어나가게하는 환경도 필요하고요.
자질이 한 80%, 자라는 환경이 한 20%쯤..

한국의 학교교육은 참 바보같지요.
아이들의 자질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억눌려 죽입니다.
저는 학교의 바보교육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 노력했지요.

사실 바른 길을 제시해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공부하고 저절로 성장합니다.
억지로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 공부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똑똑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합니다.


달팽이 2010-06-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말씀이 고맙습니다.
힘이 됩니다. ㅎㅎ
저절로 공부하고 저절로 성장한다는 말...
다시 생각해봅니다.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로테 퀸 지음, 조경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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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둔 부모치고 아이들의 감정곡선을 타고 울렁거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둥, 사는게 정말 싫다는 둥 절망적인 말들을 뱉어낼 때에 부모의 가슴이 미어지고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더더욱 학력서열화되고 점점 더 저학년의 아이들이 지나친 학습과 과외에 내몰리면서 우리는 이러한 교육의 구조적이고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해 분노가 솟아오르면서도 그 방향을 어디로 분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독일의 한 학부모로서의 그녀의 비판을 읽는 내내 교사라는 신분의 옷을 입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과 동정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쏟아지는 교사에 대한 불신과 거침없는 비판의 일부분은 받아들이고 수긍하며 스스로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음도 고백한다. 그것은 그녀의 비판 한 가운데에는 아이들의 관심과 이 땅의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특히 교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지배적 권리와 그 권리의 남용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교사의 양심과 상식에 맡겨지는 현실을 제외하고는 외부의 다른 견제나 조정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교육 현장을 먼저 둘러보게 되었고,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하는 마음과 내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이 우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미성숙한 아동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일에 보람을 가진 성인들의 선택에 의해 그리고 많은 준비기간과 엄청난 경쟁의 과정을 거친 결과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아이들의 인지수준에 맞춘 수업과 노력, 새롭게 변화하는 아이들의 의식의 변화를 포착하고 수용하여 교육에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이 교육전문가로서 요구되는 자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리고 그녀가 상처받은 깊은 문제는 한 사람으로서의 교사의 인격과 됨됨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든지간에 도덕적인 인격과 마음 씀씀이가 제대로 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은 심각하다. 특히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 부모들로부터 그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부모의 권리를 위임받은 학교일 경우에는 그것이 더 심각해진다. 사실 그 중요성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는 것처럼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나의 경우도 헛점 투성이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분이나 사적으로 있었던 안 좋은 일을 타인에게 특히 약자에게 전가시키지 않는 것은 교사나 부모로서나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도 인격의 닦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자신의 아침에 있었던 기분나쁜 일을 아이들에게 풀어내고 정신적 상처를 갖게 된 아이들은 동급생에게 하급생에게 하교 후에는 동생에게 또는 부모에게 풀어내고 그렇게 전가된 화는 부부간의 다툼으로 가족 갈등으로 나아가 여러 사회문제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우리 마음 속에 다스려지지 않고 표출된 화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우선 내 마음의 화가 다스려지면 나에게서 시작되는 우주의 불화가 멈춤을 의미한다.

  교사라는 지위에서 특수하게 요구되는 인내심과 특수한 전문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신뢰는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능력을 전제로서 요구한다. 교육현장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생각과 주장이 때로는 지나치고 이처럼 '발칙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강자(학교와 교육에서의 권리를 많이 가진 자로서...)의 여유로서 포용하고 철저히 자신을 반성하면서 고쳐야 할 것은 고치는 것이 순리이다.

  나아가 더 큰 관점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참된 교육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쟁지상주의 교육이 우리 미래세대들 전체에게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저자같은 부모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때로는 부분적으로 보아 미시적인 교육주체가 스스로 반성하고 행동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때로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아가서는 거시적으로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안정성을 가지지 못하고 몸이 아프거나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어 일의 능률이 없다는 이유로 바로 해고되어야 하는 현실이 인간적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때로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한 사람의 성장과정으로서 존중해주고 다시 일에 복귀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많은 생산성을 가져올 지 누가 알겠는가?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몇 번의 실수로 낙인찍히지 않고 그 아이가 가진 잠재능력에 대한 신뢰로 언젠가 제 적성에 맞는 것을 찾으면 놀라운 정열과 노력으로 많은 성취감을 보일 수 있다는 인간적 신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떤 삶이 우리들에게 있어 행복한 삶인가? 교사에게나 학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우리는 서로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전장의 적이 아니라 한 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도록 노를 Š고 지도를 살피고 먹을 것을 구하는, 단지 역할이 다른,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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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10-0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알라딘을 들락거리며 좋은 점은 이렇게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는 일인 듯.
달팽이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달팽이 2007-01-2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관심에 감사합니다.

공자모 2007-07-2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너는 나의 하늘이야 - 바보 선생님 문경보가 전하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 풍경
문경보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옳고 그름과 바르게 사는 삶을 가르쳐야 하는 것도 중요한 교사의 사명 중 하나이지만 그것에 앞서 우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정서적인 상처들을 그저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교사가 있음은 그들에게 있어 행복이다. 물론 그런 교사라면 어떤 아이들이 그 앞에 놓여져 있어도 자신의 행복임을 알고 있겠지. 예전에 난 그의 이름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쓴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책을 만들기 위해 정리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교단에서의 일기를 자신의 마음을 담아 써내었고 또 같은 교사로서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갖는 그 애정이 깊어서 아이들도 마음으로 소통될 수 있다면 때로는 옳고 그름이 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떤 감정의 말을 풀어놓든 사실 아이들은 제각각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달리 받아들인다. 그럴 때에 내가 어떤 감동적인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 내 마음씀이 더욱 중요하다. 인격의 성장과정에서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 말도 자기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나쁜 말도 그에게 약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결국엔 그 말과 행동을 아이들에게 쏟아붇는 나의 마음의 동기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비록 그보다 적은 나이의 나지만 그가 실천한 여러 가지 학교에서의 행동을 내가 따라하지 못할 것이 많다. 아이들 발이나 손을 씻어준다든지(물론 특별한 상황에 인연이 닿으면 몰라도 행사처럼 모든 반 학생들을 씻어주는 행동은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해내는 그의 마음만은 배워야겠다. 그가 여러 아이들을 대하며 그들 앞에서 흘린 많은 눈물들처럼 아이들에 대한 진실한 내 마음을 스스로가 속이지 않는 학교생활이 필요하겠다. 사실 교단에 있다보면 눈물 흘릴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참아내며 외면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눈물 흐르는 때와 장소가 어떠하든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가진 순수함이다. 내가 교단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그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그 앞에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는 나의 첫 교단 생활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일들...

  아이들에게 문제 상황을 가지고 상담하고 그 아이에게 조언해주는 것은 인간적인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인생의 길은 누구에게나 다르지만 그 인생의 길을 통해 영혼의 성숙을 지향한다는 점은 인간 누구에게나 같다. 그래서 그 제각각 다른 길들이 성숙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일이든지 제 길이 있기 나름이다. 그 길을 미리 보고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생을 좀 알아야 선생노릇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내가 좀 더 익어서 인생을 좀 알 수 있어야 비로소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편해지고 좀 더 아이들을 배려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나이든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삶에 대해 고민하고 삶과 인생의 바른 길을 공부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해보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와 같이 교단 생활을 통해서 그것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적인 믿음을 통해서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그것을 얻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건 삶의 과정을 거쳐가며 성숙해가는 아이들을 바르게 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그 길을 걸어가야 하고 될 수 있으면 좀 더 일찍 걸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보면 아이들 대하는 것이나 자식 대하는 것이나 세상 사람들 대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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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정말 저는 타성에 젖어 사는데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은 것 같아요.

달팽이 2006-07-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도 그 마음씀만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이겠지요..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심도 괜찮을듯...

RashBoy 2007-04-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나의 하늘이야 전에 출판된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어 감명받은적이있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 또한 저의 가슴을 적셔줄지 기대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