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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황동규,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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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이미 범람해버린 강물이

지루하게 제 수위를 회복해가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사랑이 어루만진 부위에

홍수가 휩쓸고 간 잔해가 남았다.

 

3

사랑은 그렇게 왔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기포가 떠오르고

말할 수가 없다.

 

 

              - 채호기 '수련'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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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7-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을 지나서

갔는지 왔는지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사랑이었더라

 

뱃속 연못가

개구장이 녀석들

듬성 듬성 둘러 앉아

손에 쥔 돌멩이를

연못으로 던질 때

여기저기서 터지는 물폭죽

수백 수천으로 일어나는 물꽃

전쟁났다

메스껍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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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7-1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언자

술에 대하여

술에 취한 한 사내가 말하였다. 우리에게 술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는 말하였다
너희가 마시는 술은 음식이 아니다 그냥 물이 아니다
술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이니라
술은 너희가 마시지만 알고보면 술이 너희를 마시게 하는 것이니라
술을 마시면 너희는 너희로 있지 못한다. 가고 싶은 생명의 강을 건너게 한다
너희는 술에 너희를 맡겨라. 그러나 몸을 맡기지 마음까지 맡기지 마라
술은 잠시 너희를 데려가지만 영원히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술을 마시는 몸을 위해 몸을 아껴라. 그러나 마음까지는 아끼지 마라
몸은 술이 살아야 하는 집이지만 마음은 술속에 있는 생명의 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의 혼은 술의 집에서 살아야 하는 생명의 도취이자 황홀이니라.
생명의 황홀은 뒤로 물러나는 법도 없고 어제에 머무는 법도 없다
술은 너나가 없는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길로 인도한다
너희는 술취하여 오는 그 뒤의 고통정도는 즐거움으로 받아라
순간의 취함으로 얻은 도취를 위해서 견뎌야할 당연한 댓가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술의 괴로움이 있거든 술을 탓하지 말고 언제나 자신을 탓하라
탓함 뒤에 또 술잔을 들 너희들이 아니더냐
그러면 그 술이 너희를 또 거듭나게 하지 않더냐
그러나 인생에 취함이 덧없듯이 술에 취함도 덧없음을 분명히 알아라
그것이 술에 몸은 맡기되 마음까지 맡기지 말라는 뜻이니라
딱한가지 그래도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간혹
술로부터 도망하여 집에 일찍 들어가야 살 길이라는 것도 알아두라
 

너의 숨결

내 볼을 간질러

하루를 열때

살아있는 모든 것들

너의 숨결 따라

미풍을 만들고

너를 향하는

내 가슴은

풍선으로 부풀어

푸른 하늘 위로

미풍타고

날아오를 때

너는 아니?

내 꿈은

네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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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1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얼굴을 그려 보시나....
반딱반딱 시윤이의 얼굴..^^

달팽이 2005-07-1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다만 네 몸 안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싶네

얼음 속에서 헤어지고

환한 꽃 속에서 다시 만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맑은 술, 꽃잎이 지네

누구든지 한 번은

자신의 그림자에 매혹당한 적이 있네

지상에 닿기 위해

나는 얼마만큼 더 무거워져야 하는가?

재 되어 날려가는 이 가벼운 날들의 생

나는 어린 산양처럼

 

고공의 절벽에서 스스로 몸 던져지며 어리둥절한 수컷들과

흰 덧니의 암컷들이 고통과 쾌락의 밤을 보내는,

사라지는 생의 마지막 꼬리를 보았네

누가 나에게 저 비밀한 구루의 노래를 들려주겠는가?

 

당신과 나 사이

빈 항아리를 울리는 작은 모래 먼지들의 울림처럼

지는 해의 찬란한 몰락을 보고 있네

첫사랑의 여자와 만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후로도 많은 가슴 아픈 연애

내 생은 안주하지 못하네

이 폐허가 주는 바다의 환상

나는 세상의 끝에 서 있었네

어두워라, 어두워라 저 허구한 날의

태양이 잠긴 고원의 호소는

내 머리칼은 눈 녹은 강에 풀어져

푸른 보리밭길

흰 산 사이의 쇠락을 홀로 가네

아직도 나에게는 융기할 수 없는 침잠

아, 나는 다시 불처럼 가벼워지고

노래처럼 흘러간다네

 

 

 

                                     -함성호, 성 타즈마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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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07-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둥 떠다니는 햇살 속에서의 슬픔
하얀 겁질같은 푸른 하늘 아래서의 외로움
아지랑이 솜털같은 언덕 위에서의 괴로움
빗물에 낙화 짓이겨진 돌담에 기댄 서러움
비단결 펼쳐놓은 물결로 떠도는 그리움

이 모든 것 속에서도 먹고 사는
알 수 없는 인생의 가벼움

달팽이 2005-07-13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한 가슴 긁어대는 바이올린 선율 위에 선 애절함
고요한 아침을 찢는 산새 울음 끝에 매달린 처량함
희뿌연 강안개 뒤로 몸을 숨기는 갈매기의 아련함
해저무는 길가에 풀잎을 눕히며 지나가는 바람의 덧없음
머물지도 못하면서 구태여 나누는 사랑의 가슴시림

이 모든 것 속에서도
살아지는 구름같은 삶의 몽환

파란여우 2005-07-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워.서...
보.고. 싶. 어. 서....
오늘 밤하늘엔 별도 안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