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드보일드(hard boild)형: 비정파, 냉혈파 추리소설
이는 비정파, 냉혈파 추리소설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포우가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면 이 장르는 영국으로 건너가 유럽에서 꽃을 피운 뒤 다시 하드보일드라는 스타일로 미국으로 돌아온다.
반 다인이 기초를 닦고 하메트가 시작했으며,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하는 장르이다. 한국에서는 김성종(1915~1945)이 이에 분류된다. 하드보일드란 계란을 익히는 방법 중 딱딱하게 완숙시키는 방법에서 따온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립 탐정이나 수사관들은 더 이상 머리만 짜내는 사색형 탐정이 아니라, 권총을 들고 거리로, 우범지대로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총을 쏘고, 육탄전으로 치고받으며 범인을 잡는 맹활약을 한다.

(3)도서형(倒叙型): 범인이 먼저 등장
정통파 추리소설을 거꾸로 나열한 형식이다. 범인이 살인하는 장면이나 트릭을 처음에 자세하게 보여준다. 독자는 물론 누가 범인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탐정이 어떻게 범인을 꼼짝 못하게 증거를 들이대서 체포하느냐 하는 것을 그린다. 한국에서도 20여 년 전 텔레비전 연속극으로 관심을 끌었던 <형사 콜롬보>(1968)가 이 장르에 속하는 추리 드라마다.
추리소설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형사 콜롬보>에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형사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함부로 다루거나 구속하거나 위협하는 일이 없다. 인권을 최대한 존중해주면서 조심스럽게 수사한다. 함부로 연행해서 고문하거나, 자백을 강요하다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풀어주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과거 공산 국가 같은 독재국가에는 추리소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에도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에는 추리소설이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된 러시아에는 지금 추리소설이 문학의 꽃을 피우고 있다.
북한에도 추리소설이 없다. 그들 사회에는 공식적으로는 범죄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범죄가 있다손 치더라도 고문 같은 수법으로 자백을 받아내면 되는데 어렵게 <형사 콜롬보>가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4) 스파이 소설: 007 시리즈가 대표적
추적형 추리소설이라고도 한다. 스파이, 비밀기관의 비밀공작 활동 등을 소재로 한 장르이다. 우리가 잘 아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스토리 등이 이에 속한다. 톰 크린즈의 <붉은 10월호>(1990)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동서 냉전이 사라진 후 이 장르가 이미 쇠퇴했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동서 냉전을 주제로 한 스파이 소설이 사라져가는 대신에 다국적 기업 같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산업 스파이 소설이 등장하여 이 테마를 대신하고 있다.


(5) 범인 검거형: 형사의 활약상을 강조
추리보다는 형사의 행동을 따라간다. TV극에 자주 나오는 형사 스토리, 수사 소설 등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흑백 텔레비전 시절에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 왔던 최불암 주연의 <수사반장>(1971~1989)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 스토리의 전개 방법이나 범인 설정이 평이하기 때문에 정통 추리만큼 재미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닌 장르이다.

(6) 사회파 추리: 사회 모순과 갈등을 심도 있게 다뤄
사회의 모순과 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 현상을 심도 있게 파헤쳐 주제가 비교적 무거운 추리소설이다. 대체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문예 소설보다 훨씬 강렬한 주제를 들고 나온다. 일본의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 1933~) 등이 이에 속하는 작가다. 특히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1977)은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혼란상을 잘 묘사하여 순수문학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도 받고 있다.
김성종도 <어느 창녀의 죽음>에서 6.25 전쟁에서 비롯된 비극의 한 토막을 중편소설로 다루었으며, 이상우도 <모두가 죽이고 싶었던 여자>에서 80년대 민주화 투쟁과 노동운동의 치열한 면모를 소재로 장편을 썼다.

(7) 순수 문학형: 예술적 소재를 부각하면서도 추리 기법 골격 유지
불가사의한 사건을 다루되 예술적 소재를 더 부각시킨 소설이다. 범죄 동기의 휴머니즘적 분석,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 등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추리의 기법은 골격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일즈(Francis Ils, 1893~1971), 프랑스의 조르쥬 심농(Georges Simenon, 1903~1989)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가이다.
일생동안 2천 편에 가까운 경이적 다작을 남긴 프랑스의 조르쥬 심농 같은 작가는 살인이 없는 추리소설도 써서 이 장르의 새로운 모습을 개척하기도 했다. 심농의 문학성에 대해서는 앙드레 지드도 감탄했다. <계속>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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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청소년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 글틴에 추리 작가 권경희님이 쓰신글을 갈무리하여 올리는 글입니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창작법-추리소설”
“추리소설이 별거야? 사람 하나 죽여 놓고 형사 몇 명이 왔다 갔다 하다가 어리숙하고 욕심 많은 범인 하나 잡아내면 되는 거지.”
추리소설을 얕잡아보는 일반 소설가들이 가끔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려도 한참 틀린 이야기다.
추리소설은 우선 엄격한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 문예 소설은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일 때 더 매력적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 소설은 한 치도 현실에서 어긋나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영미의 추리소설 비평가들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창작법이 추리소설이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실제로 추리소설가가 수사에 도움을 준 케이스도 있다. 의사 출신인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과 역시 의사 출신의 작가 프리맨(Austin Freeman, 1862~1943)의 작중 기법이 실제 수사에 원용되어 범인을 잡아낸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독자를 안달나게 만드는 추리 작법
그렇다고 해서 추리소설을 범인을 잡는 수사 실화와 같은 수법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단순한 수사소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소설은 추리소설 독자들이 요구하는 스릴과 잠을 못 이루게 할 만큼 강한 궁금증을 펼쳐내지 못한다.
추리작가들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공식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추리 작법을 잘 알고 있다는 차이뿐, 작가들의 두뇌가 독자보다 훨씬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추리작가들의 장사 밑천인 ‘추리소설의 공식’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이 수사 스토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수사 스토리도 수사소설이라는 추리 속의 한 장르로 존재한다. 그 외에도 추리소설은 그 발달 과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셜록 홈즈 시리즈라든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1890~1976)의 소설은 어떤 종류에 속할까? 추리소설의 종류를 살펴보면서 추리소설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 보자.

(1) 고전파 추리소설: 수수께끼 풀이
이 형식은 정통파(正統派), 또는 본격(本格) 추리라고도 하며 추리소설 태동기에 등장하여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주 중요한 형식이다. 160여 년 전인 1841년,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의 소설 <모르그가의 살인(Murder in the Morgue)>이 이 형식의 시조로 꼽힌다. 어떤 평론가는 이러한 종류의 추리소설을 수수께끼 풀이, 혹은 퍼즐형 추리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장르의 추리소설은 이 형태에 근거를 두고 있다. 비록 주요 특징이 다른 종류의 추리소설에 속한다 할지라도 추리라는 이름이 붙으면 이 정통파의 요소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르가의 살인>은 파리를 무대로 쓰인 작품이다. ‘뒤팽’이라는 탐정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이 탐정이 추리소설 역사상 최초의 사립 탐정이다. 미국 사람인 포우가 왜 살인 사건의 무대를 파리로 삼았으며, 탐정 이름을 프랑스 이름인 ‘뒤팽’이라고 했는지는 정말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포우 연구가들은 늘 프랑스식 복장을 하고 다니던 포우 자신의 모습을 ‘장자끄 뒤팽’으로 표현했다고도 한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뒤팽’이라는 라스트 네임을 쓴 유명 인사는 백과사전에 오른 이름만 12명이나 된다고 한다.
어쨌든 포우로부터 시작된 이 고전파, 또는 본격 추리 소설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살인 사건이 서두에 일어나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둘째, 탐정이 등장하여 사건을 추적한다.
셋째, 범인에 대한 추리가 계속되며 여러 명의 용의자가 계속 드러난다.
넷째, 독자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범인을 알지 못한다.
다섯째, 작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저질러진 범인의 범죄 수법을 통쾌하게 밝혀내 독자의 감탄을 자아낸다.

대체로 이러한 요소를 갖춘 플롯을 정통파로 분류한다.
여기서 독자를 흠뻑 빨려 들게 하는 것은 연속되는 미스터리의 발생이며, 말미에서 드러나는 반전의 놀라움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아로 탐정 시리즈, 엘러리 퀸, 일본의 마츠모토 세이쵸(松本淸張), 한국의 노원 등이 이에 속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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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서 추리소설 2천 권을 읽은 반 다인
일반 문학과 순수 문학의 장르적 경계를 말하는 데 추리문학사상의 실례가 있다.
예술 평론가이며 저명한 추리작가인 반 다인(1888~1936)이 중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순수 문학의 독서 금지령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병석에 누운 3년 동안 2천여 권의 추리소설만을 읽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추리소설의 지적 요소와 재미와 논리성을 재발견했고, 추리소설의 작법 및 이해를 위한 책을 썼다(The Great Detective Stories, 1927).
그는 최초의 추리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The Murder in the Morgue)>(1841)을 쓴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보다 훨씬 앞서 추리문학 이론을 정립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도의 기법으로 보다 고도의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리소설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추리소설로 벌어들인 수입이 과거 순수 문학이나 예술 평론으로 번 돈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반 다인의 성공 요인과 추리소설의 특징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째는 환자인 그에게 순수 문학 서적을 읽지 못하게 하면서도 추리소설은 읽게 했다는 것이다. 즉, 추리소설이 다른 장르에서 볼 수 없는 흥미와 논리의 편안함을 실감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2천 권이라는 방대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추리소설의 작법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 우선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추리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고전파, 혹은 전통파 추리소설은 작품마다 고유의 트릭을 가지고 있는데 이 트릭은 절대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읽고 그 사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이런 전문적인 문제는 다음에 세부 항목에서 다루기로 한다.)
저명한 추리평론가인 키팅이라는 사람이 쓴 유명한 추리문학 이론서의 제목이 ‘침대 곁의 동반자, 범죄’(Bed side companion to crime)이다. 이를 보더라도 병상에 있는 사람이나 잠들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제공하는 것이 추리 소설임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철저히 현실적으로, 완벽한 논리로
흔히 추리소설이라면 극도의 공포나, 가장 잔혹한 형태의 살인을 묘사하여 사람의 마음을 폭발 직전에 이르도록 긴장시키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런 것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위의 책들은 설명하고 있다. 추리소설이 범죄 소설처럼 독자로 하여금 스릴을 느끼게 하고 센세이셔널리즘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지적 바탕 위에서 논리성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공포소설이나 괴기소설도 추리소설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학자도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선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논리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선 논리성은 철저한 현실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철학과 미의식의 추구를 주된 임무로 하는 순수 문학은 어느 정도 비현실성이나 환상적인 요소도 용납된다. 또한 스토리가 인과 관계로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재미와 논리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은 그러한 요소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지적 게임인 추리소설은 철저한 현실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전개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어야 하며, 우연히 일어난 기적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단어 하나 지명 하나에도 현실성이 없다면 그 논리를 독자가 수긍하지 않는다. 살인의 방법이나 흉기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하고, 법률 제도도 실제 응용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바탕 위에서도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야만 추리소설이 된다. 추리소설을 미국에서는 미스터리(mystery) 소설이라고 한다. 즉, 보통의 독자들은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하지만, 작가는 논리적으로 해결방법을 세워 놓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소설 속에 제시된 방법은 실제 수사에서도 가능한 해결방법이어야 한다. 실제 수사와는 동떨어진 허구로만 소설이 구성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추리소설이 아닌 것이다.
추리소설의 플롯을 초자연적, 환상적인 것에 두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추리소설도 소설인 만큼 물론 실제로 일어난 사건만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픽션이라도 스토리의 전개만은 실제의 수사와 같아야만 한다.
범인을 잡지 못해 헤매던 형사가 예언가를 찾아가 조언을 들어 범인을 잡는다거나, 우연히 길에서 주운 봉투에 범인의 핸드폰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근거로 범인을 잡았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또한 ‘전설의 고향’처럼 조상이 꿈에 나타나 범인이 도망간 곳을 가르쳐 준다거나, 육감으로 찾아간 곳에 시체가 있다거나 그러한 것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추리소설이다.
저명한 추리작가 중에는 논리를 냉정하게 추구하는 변호사라든가, 수사 장면에 풍부한 의학 상식을 동원하는 의사 출신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쓴 소설이 바로 ‘현실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계속>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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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 글틴에 추리 작가 권경희님이 쓰신글을 갈무리하여 올리는 글입니다.

추리문학의 세계 <1>

“입시 공부 중에 추리소설 가장 많이 읽었죠.”
수능 점수 발표가 나면 언론에는 으레 전국 1등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다. 얄미울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은 1등 수험자, 인터뷰 내용은 더욱 얄밉다.
“과외 공부는 전혀 안 했어요. 오직 학교 공부만 충실히 했어요.”
정말일까? 그럴 리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내가 미련할 게야, 하면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보곤 한다.
내가 만약 수능 전국 1등이 돼서 고3 때 어떻게 공부했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과외 공부는 수학 단과반 한 번 들어봤고요, 주로 혼자 공부했어요. 공부하다 지치면 추리소설 보면서 머리를 식혔죠.”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는데, 이건 사실이다. 고3이 어떻게 추리소설 읽을 여유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여유가 없었기에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여유를 찾았다고 답하겠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인 고3 시절, 나는 어느 때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추리소설의 합리적인 논리 체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두뇌 싸움, 통쾌한 반전은 수험생으로서 겪고 있는 불안과 긴장감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추리소설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덕분에 고3 때 추리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풀어가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공부 진도는 안 나가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에라, 하는 심정으로 코난 도일의 단편 하나를 읽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꿈에 그 수학 문제가 나타나고, 꿈속에서 해결법을 찾은 것이다. 바로 잠에서 깨어 꿈에서 푼 대로 공식을 대입해 보았더니 정말로 맞는 답이 나왔다.
그때의 신기한 경험 덕분일까? 내 첫 추리소설(저린 손끝, 1996)의 주인공인 박민기 순경 역시 수사가 미궁에 빠져 머리가 아플 때마다 수학 문제를 푼다. 취미로^^.

왜 추리소설인가?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자신이 가장 즐겨 읽는 책은 추리 소설이라고 했다. 추리 소설의 마니아급 독자인 그는 마침내 추리 소설을 직접 쓰기도 했지만 자기 말대로 재능이 없어서인지 별로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가 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간명하게 답하고 있다. ‘지적인 논리성의 재미’ 때문이라고 했다.
많은 추리 소설 평론가들은 다른 장르의 소설과 구분되는 추리 소설의 특징으로서 ‘지적 논리성’을 들고 있다. 소설이란 인간사를 다루면서도 논리성보다는 휴머니즘이나 감성적인 요소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그에 대칭시킨 이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 예로 추리소설을 탐독하거나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쓰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지적 수준을 갖추고 충분히 자기 논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도 추리소설을 탐독한 사람들이 많았다. 링컨, 루스벨트, 클린턴 등이 대표적이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추리소설을 쓰기도 했다. 루스벨트도 직접 추리소설을 쓴 대통령중의 한 사람이다. 클린턴은 미국 추리소설 독자상까지 받았다. 이들이 한결같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추리소설이 지니고 있는 지적인 흥미와 논리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적(知的)’이라고 하는 것과 ‘흥미’와 ‘논리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3요소는 서로 이율배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논리성에 치중하다 보면 딱딱해져서 소설로서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지적인 요소에 너무 치중해도 지루해진다.
이 세 가지의 모순된 요소를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가가 추리소설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며, 추리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비법이 된다.
대개의 순수 문학은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고민을 요구한다. 그러나 독자를 고민에 빠트리거나 골치 아프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추리 소설이 아니다. 추리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편안한 이야기여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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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도서관이란 인터넷 서핑도중 발견한 쟝르 소설이나 기타 여러 내용중 읽을 만한 것들을 내 PC에 그간 갈무리한 것들중에서 일부를 올리는 것입니다.글쓴이에게 일일히 허락을 받지는 못했으나 출처가 확인되는 것은 밝혀둘 예정입니다.많은 참조 바랍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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