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까지는 난 기온이 여름 날씨인 27~8도에 육박해 반팔을 입어도 땀이 줄줄 났었는데 어제 오늘 하루종일 비가 내리나 갑자기 기온이 급감해 버렸습니다.

더위가 너무 일찍 찾아와서 반팔을 모두 끄내고 긴팔이나 점퍼등은 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패킹해서 한데 모아났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니 할 수 없이 박스를 다시 뜯어 긴팔을 꺼내옿았네요.


중국도 100년만의 장마가 왔다가 얼마전까지 난리였는데 올 여름 우리나라도 기상이변의 피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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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초에 작은 할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시골로 문상을 간 적이 있습니다.코로나가 해제전이라 관혼상제가 제약을 받다보니 장례식에 많은 손님들이 오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상객들은 대부분 친척들인데 시골이다보니 서울에서 보기 ㅎ미든 먼 촌수의 친척들까지 모두 모였습니다.요즘은 사촌간도 왕래가 없는 집안이 많다보니 먼 친척들은 그냥 안면만 있을 정도죠.그때 안면이 있던 오촌 아저씨도 오셨는데 그때 숙모님하고 육촌 여동생,남동생과도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그때 숙모님은 육촌 여동생이 선균관대학에 입학했다고 엄청 자랑스러워하시더군요.아마 그쪽에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처음이어서 더욱 자랑스러웠나 봅니다.그때 숙모님은 여동생이 서울에 가면 자취를 해야하는데 혼자 보낼수 없으니 자신도 같이 올라가겠단 말씀을 하시더군요.그러면서 서울고 올라가면 여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하지만 눈이 안좋아 거의 외부출입을 하지 못하다보니 만나질 못했네요.


그런데 그제 일이 있어 오촌 아저씨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안부를 여쭈면서 여동생은 서울에 잘 지내냐고 물어보니 숙모가 남동생(현재 고등학생인데 서울로 전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여동생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하시더군요.아저씨는 시골에 자그마한 사업체를 혼자 하시기에 같이 올라갈수가 없어 따로 혼자 자취하고 게신다고 합니다.

사실 여동생의 실력이면 지역 국립대도 갈 수 있지만 이제는 지방에서도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보낸다고 합니다.따로 살다보니 등록금과 생활비등을 보내줘야되서 경제적으로 무리가 많이되지만 숙모님이 원하셔서 힘들지만 그렇게 하신다고 하시네요.


옛말에 말은 제주에 사람은 서울에 보낸다고 했느네 지금은 무조건 다 서울로 보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아무래도 지방에 대학 졸업생들이 가고싶은 회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죠.그러다보니 지방은 게속 젊은 층이 수도권으로 빠져 지방이 소멸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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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간단한 외식 한끼 하기가 너무나 두려울 정도입니다.몸이 안좋아 집에 있을적에 가끔 먹었던 6천원짜리 제육정식도 어느샌가 9천원으로 올랐고 안오르던 순대국도 만원이 디니 정말 나가서 먹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자주 가는 곳이 집 근처에 있는 버거킹 입니다.장우산을 지판이 삼아 천천히 운동겸 지나가곤 하는데 가끔 와퍼 주니어 1+1이 5천원 와퍼가 3,900원으로 할인 행사를 할 경우 얼른 구매를 합니다.이경우 와퍼는 잘라서 주니어 와퍼는 한개씩 먹으면 두끼를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와퍼도 1~2년 사이에 기격이 대폭 올랐습니다,와퍼는 행사시 3천원,주니어 와퍼는 1+1에 3천원인지 한 것 같은데 비교해보면 급격히 가격이 오른것을 알수 있지요.

하지만 다른 음식값이 평균 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행사 구매시 저렴한 가격에 두끼를 해결할수 있는 버거킹이 개인적으로 참 혜자스럽단 생각이 듭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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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에 글을 다시 쓴지 한달이 채 안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그 어느때보다도 론나리 글을 열심히 쓰는 것 같습니다.


개인사정상 한 일년 반 남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다보니 바깥생활이나 인터넷등도 못하고 참 암울하고 암담한 생활을 하였지요.그러다보니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되고 마치 늪속에 빠진것 같은 기분을 하루하루 느끼면서 지냈습니다.

알라디너 모님의 경우 육체적 질병으로 외부와는 단절되었지만 알라딘 서재를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졌지만 전 그것도 안되다보니 정말 울적한 나날들 이었습니다.이당시 유일한 낙은 오로지 라디오뿐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다행히 한 눈이나 희미하게 보이기에 세상과 소통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알라딘 서재에 글을 올리니 정말 그간 울적했던 것이 확 날아길 정도입니다.일년 반동안 머리속에 있던 생각들을 서재에 계속 올리고 있는데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론라리 많습니다.

제 병의 특성상 다시 시신경의 실핏줄이 터져서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재에 글을 올릴 수 있을때 정말 원 없이 글을 써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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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눈 상태가 한쪽은 거의 시력이 노이지 않고 있어(교수님과 수술상담을 했는데 전공의 사직문제로 일정을 전혀채 잡질 못하고 있네요),책을 읽는 것은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잘 안보이기도 하거니와 흰 바탕에 검을 글씨가 아른 아른 거려 가독력이 무첨ㄱ 떨어지기 때문이죠.그래 요즘은 유투부를 많이 보는데 눈에 가까이대고 볼수 있거니와 컬러이기에 그나마 보기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서재에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다행인것은화면 확대기능이 있어서 크게 볼수 있기에 글을 쓸수있네요.다만 위에 썼듯 글자가 이른거려서 후에 있어모변 상당한 오타를 발견하게 되는데 수정하는라 틀린 글자 찾기도 힘들어 그냥 놔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눈이라도 보여서 서재에 글을 쓰는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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