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 소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1일 열린 지역투자박람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 때는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7만6904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부를 선관위에 제출한 지 3일만이었다.

MBC PD수첩은 해군기지 무제를 취재하면서 입수한 소위 ‘해군기지 유관기관 회의록’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제주도와 해군, 국정원, 심지어 경찰 등이 ‘짬짜미’로 주민들의 분열조장에 관여해왔음이 밝혀졌다. 물론 이것을 지시한 최종 결재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거기서 나온 증언들과 유관기관이 보여준 행태들을 보면 얼마나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여론을 왜곡했는지 알 수 있다.

‘분열은 좋은 상황’
‘걸림돌은 제거하고 가야 한다’

실제로 2007년 5월 이후 강정마을 내에서 발생한 고소.고발이 30여 건에 이를 정도지만 이처럼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국방부, 해군, 제주도정 어느 곳도 적극적인 갈등 해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상 고소 고발을 부추긴 셈이다.

국가안보와 국책사업이라는 국가과제 그 자체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충분히 설득과 타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명박과 김태환은 주민의 갈등을 부추기고 강요를 하는 악의적인 방법으로 이를 관철시키려 했기 때문에 이번 주민소환투표라는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소환투표에 따라 직위가 완전히 정지되면, 이명박 역시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도지사 소환투표의 요건은 33%의 투표율이다.
결국 투표함을 열어보느냐 열어보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실천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이명박의 사주를 받은 제주도지사 하나 소환하지 못한다면,
이명박의 일방주의와 제주도지사의 일방적 정책, 예컨대 부자들을 위한 제주도 병원의 영리병원화 사업 등을 더욱 가속할 공산이 크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집단 타살이 시작되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잔인한 폭거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10월 재보선이 아니라 8월 26일 제주도지사 소환투표다.


제주도지사 소환에 관한 일정과 홍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정부기관의 직무유기를 꾸짖고 이를 대신 홍보해야겠습니다.

1. 선거관리위원회를 압박해 소환일정을 잡고 소환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확정할 것을 주장해야 합니다.
2. 제주도에 사는 친구나 친척들에게 메일이나 전화, 문자메시지를 띄워 소환투표에 꼭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3. 자신의 블로그 등에 제주도지사 소환의 의미에 대한 포스팅을 적극적으로 해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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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한림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입소 노인들과 '말벗' 봉사활동 중인 김태환 주민소환대상자. (사진 : 오마이뉴스)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법률(2007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주민소환에 부쳐지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소환투표는 26일에 실시되는데, 이것 역시 공직자의 선거법에 의해서 진행된다. 때문에 선거법을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김태환 직무정지 도지사의 경우 사회복지단체를 다수 방문하면서 동정표를 구하는 등 선거법에 위배된 행동을 했다가 선관위로부터 '위법' 결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태환 도지사는 선관위에 문의 한 번 안 해보고 선거법을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환 도지사는 1964년 제주시 재무과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남제주군수, 제주도 내무국장·기획관리실장을 거쳐 1991년 관선 제주시장에 올랐고, 1998~2004년 민선 2·3기 제주시장을 역임했다. 2004년 제주도지사에 선출됐으며,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북제주군과 제주시가 통합되면서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 임기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국책사업인 해군기지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조작하고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분열시켰다. 제주도민 전체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고 제주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사안을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밀실에서 진행시키고 설득을 게을리하고 절차를 무시한 것이 제주도민 전체의 공분을 샀다.

이에 제주지역 29개 단체와 정당, 종교계로 구성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결성됐고 이들은 지난 5월6일 기자회견과 함께 주민소환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제주도 유권자중 7만7367명(중복 제외 5만1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고 선관위 유권자의 10분의 1(4만2000여명)의 서명을 받을 경우 주민소환투표를 발의한다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지난 6일 투표를 발의하면서 도지사로서 직무가 정지됐다.

김태환 도지사의 주민소환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환 도지사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도지사를 소환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소환투표에 영향을 미쳤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반감을 샀다. 소환투표 요건인 제주도민의 1/10인 4만 2천명을 훨씬 뛰어넘는 7만7367명이 소환투표에 동의했으며, 선관위가 엄밀히 조사한 바에 따라도 1만명이 더 서명을 했다.

이로 인해서 10월 재보선 전에 김태환 도지사의 소환투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안 통과로 인해 직무가 정지됐을 때를 돌아보면, 김태환 도지사는 위법을 저질러 소환을 받았으면서도, 또다시 위법을 저지르며 주민의 심기를 계속 불편하게 하고 있다. 마치 김태환 도지사가 김태환 도지사 소환본부의 일원인 듯 행동하는 것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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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훈련을 이미 끝내고도 남았을 때 마지막차 훈련을 받는다.
항상 받는 예비군 안내문에는 작년과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바로 휴대불가 품목 중에 <불온도서>가 있다.

불온도서란 국방부가 국 장병의 정신을 몹시 괴롭힌다는 책 23권을 선정해 일선부대에 배포한 금서 리스트다.
이 중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를 포함해 전혀 불온하지 않은 도서가 대거 포함돼 있다.
이런 몰상식에 대해서 군 법무관들이 헌법소원을 제청하자 파문이 확산됐고,
법무관들은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 중에서는 변호사 자격까지 정지돼 앞길이 막막해진 법무관도 있다.

불온도서 리스트 배포 소식을 들으며 군 장병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게 나한테까지 제한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예비군훈련을 받으러 가면서 내 책가방까지 뒤지겠다는 거 아닌가.
이쯤 되면 불온도서는 단지 군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까지 해당된다.

국방부한테 이런 명령을 받는 게 참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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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09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군에까지... 참 대단해요. 국방부 불온서적이란게 효과가 있었나요? 저렇게 확대하게 참 내...

panda125 2009-08-09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나쁜사마리아인들? 그게 왜요?;; 맙소사, 우리집에 고이 모셔놓은 책인데 그책이 불온서적인줄은 차마 몰랐네요. 앞으로는 법을 어기지 않도록 가능하면 책을 읽지 말도록 노력해야겠군요. 흥

마늘빵 2009-08-0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런. 뚜껑 열리네요 또. 가서 지휘관들이 하는 야기 녹취해서 공개해버리삼. 아주 이것들이 정신이 나가서.
 

제주는 샤머니즘의 땅이다.
이국적인 정취에다 토양에 깃들어 있는 기운이 무척이나 신령스럽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제주 사람들은 샤머니즘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우리 엄마만 해도 내가 어릴 적에 다치고 오거나 잦은 사고가 나면
넋이 달아날 수 있으므로 '넋 들이러' 다니곤 했다.

한라산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바위마다 촛농 자국이 심하게 남아 있었다.
무당들이 넋을 들였던 흔적이다.
나는 어릴 때 넋을 들이고 나서 엄마와 무당으로부터 혼자 어둠 속을 뚫고 나가라는 명령을 듣고,
무서움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마라"라고 충고했다. 나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모들이 병원에서 각서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도 세 번 이상 각서를 썼다.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죽음의 문턱에 다녀왔다.
급성 폐렴, 임파선 결핵, 동맥 절단... 각종 결핵과 종양들...

너무 어린 시절(유아기)에 혹독한 병마를 견딘 덕에 아기 때 울음 한번 시원하게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학교 다니면서 철이 다시 없어져서 식구들 마음고생을 심하게 시켰지만...

"승주"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당시 돈으로 5만원인가 쓰고 지어온 이름이다.
나중에 점쟁이에게 들은 말이라며 어머니는 이름 덕에 목숨을 건졌다고 하셨다.
하기야 동네에 나처럼은 아니지만 앓이를 하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는 부모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방치했다가 하늘나라로 갔고,
나는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어머니가 부여잡아서 붙들어 놓았다.

작은누나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는 아기 승주 옆에 항상 삽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늘나라로 가면 묻어주기 위해서다. 항상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그 때는 아기였지만 "죽음의 언어"를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항상 무슨 "알"을 품고 있지 않았는가 상상했다.
나는 욕망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는데,
중학교 때 성욕을 느꼈는지 큰 배개를 안고 <흉내내기>를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욕망 덩어리는 살인이나 성욕 등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 속에서는 아직도 끔찍한 행위가 도사린다.
아무튼 이 "알"을 관리하기 위해서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사람들은 승주의 열정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 했는데,
"죽을 아이"의 시기를 거쳐 "죽음의 언어"를 느끼고 그와 관계가 깊은 "알"을 조합하면
열정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누구보다 큰 욕망 덩어리다.
큰 욕망이라고 해도 이건희 따위의 욕망이나 이명박 따위의 욕망은 아니다.
그들의 욕망은 너무 작고 소박한 거 아닌가. 그들의 욕망이란 오히려 '팔자'에 가깝다.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 아닌가.

민준이라는 이름을 얻으러 작명가에게 갔는데,
마침 내 사주를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거다.
75살까지 현역을 일을 하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거다.
그래도 75살까지 치매에 안 걸린다니 다행이다.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나는 가끔, 보다는 조금 더 자주 "영적 판단"을 할 때가 있다.
논리와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직관과 가까운 판단인데,
이런 판단을 내릴 때면 어김없이 수호천사들이 나타나 판단을 도와준다.
지금의 나의 상황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처지 중 하나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인사하듯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돈은 언제 버냐"고...

그것을 서양에서는 "서클"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기도한다.
때로는 논리가 앞설 때도 있고, 때로는 상식이 앞설 때도 있으며,
직관이나 영적 판단이 이를 압도할 때도 있다.

거창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과 삶을 떠난 상태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피부에 와닿는 죽음의 공포는 아직 이겨낼 정도는 아니지만,
추상적 의미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나는 죽음의 반은 이겨낼 자신이 있다.
이명박은 단지 계기를 강화시켜준 물건일 뿐이다...

"환퇴가 나를 어찌 하겠느냐?"(테러 위협에 빠진 공자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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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8-0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머니즘 영향이시라면...팔꿈치..혹은 대퇴부 도사로 겸업을 하시는 것도...=3=3=3=3
 

아기를 낳고 나서 좀 더 과묵해지고, 현실 처세에 따라야 하건만..
불온한 승주나무는 그렇게 하질 못하겠습니다.

자식에게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겠지요.

물질적인 보호자, 육체적인 보호자는 내가 보호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니 별다른 의미를 붙일 게 없겠지요.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것을 물려주어야 나는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돈 벌 궁리, 분유값 벌 궁리를 하면서 사람이 현실 친화적으로 변한다는데, 저는 오히려 더 불온해지고 사회 비판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봐주십시오. 제가 아기와 가정을 다 포기하고 사는 파렴치한 놈은 아닙니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생활은 견디는 것"이라는 진리를 무척이나 존중합니다.

저는 아기의 시대에 여전히 "공포의 언어"가 활개를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경찰이 쌍용차 노조원에게 실탄을 제외한 모든 공격수단을 쓴 것은 국민에 대한 전쟁선포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공포의 언어"가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접수했다고 생각합니다.


엘 고어 씨의 <이성의 위기>는 "이성의 언어"와 "공포의 언어"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포는 이성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공포와 이성은 둘 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둘의 관계는 무척 불안정하다. 때로는 이성이 공포를 해소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독립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 에드먼드 버크가 영국에서 썼듯이 "어떠한 열정도 공포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에서 행동과 이성의 힘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빼앗지 못한다"
- 이성의 위기, 43쪽



저는 개인적으로 "공포의 언어"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대치동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논술강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입시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죠. 전교 1등 하는 친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부모님과 사장의 방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나오는 친구는 사색이 다 됩니다. 그리고 좀비처럼 이 강좌 저 강좌를 등록하는 데 수표를 남발합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돈을 세고 있습니다.

전교 1등하는 친구가 사색의 좀비가 된 것은 간단합니다. 사장이 "공포의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매뉴얼이죠. 그 친구에게 <전국 석차>를 들이대면 됩니다. 학교가 1500여 개가 되는데, 그 중에서 1명씩만 추려도 그 학생은 전국에서 1500등이 됩니다. 서울대 입학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국에서 잘 하는 친구의 내신성적과 이런 저런 실적표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모범답안지>인데, 이런 모범답안지를 소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널렸다고 말하면 학생은 사색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팔 다리 다 잘리는 신세가 됩니다. 아주 순식간에 학생의 자긍심은 산산히 무너집니다. 이 학생에게는 약간의 오만함만 눌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색의 좀비가 되고 나면 값비싼 강좌(강의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에 다급하게 등록을 합니다.

이런 행태를 1년 넘게 지켜보면서 나는 영혼이 개먹어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어떻게든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하다가 영혼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포의 언어"입니다. 나는 내 자식에게 "공포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알려주기 싫습니다. 역사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그 언어가 사실은 아버지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도록 세상을 "이성의 언어"로 바꿔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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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0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만일까요? 이런 세상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왜 세상은 이다지도 가혹한 것일까 생각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아이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도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