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전화해서 협박한 선거관리위원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놀러 갈 기회가 있어서 잠시 들렀는데,
편집팀장님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연락이 와서
"O승주라는 기자가 오마이뉴스 소속이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편집팀장님은 "회사 소속 기자는 아니고 시민기자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선관위 말이 기사를 편파적으로 써서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오마이뉴스 편집국 기자였다면 선관위로부터 법적 제재나 경고를 먹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지나간 일이지만 황당했습니다.
지난 6일 보도에서 JIBS는 김 소환대상자에겐 세 꼭지에 4분 10초를 할애한 반면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보도분량은 한 꼭지 23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에서 경고를 받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네티즌 님들이 보시고 직접 판단해 주십시오. 문제의 기사들입니다.(클릭하시면 글을 볼 수 있어요)

 

바보야, 문제는 10월 재보선 아닌 8월 소환투표야!

도지사님, 제주도민을 잘 모르시는군요

택시기사 인터뷰로 본 제주도 '소환 민심'

 

오마이뉴스에 올린 주장글입니다. 하나는 메인에 올라갔고 나머지는 잉걸로 하단에 쳐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주장글에 대해서 기사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글에서 양측의 주장 모두를 담아내는 것만이 기사는 아닙니다.

물론 선관위는 그런 기사를 좋아하겠지만, 모든 뉴스에는 관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오마이뉴스가 언론사이고 책임 편집을 하기 때문에 김태환 씨에게 유리한 보도를 다른 기사로서 채택하거나 다뤄주면 될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에게 문제제기한 선관위가 참으로 불쌍해 보입니다.

게다가 기사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하려거든 제게 직접 하십시오.

오마이뉴스가 제 기사를 반려하지 않고 메인에 올렸다고 앙탈을 부린 것입니까???

 

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주도민인 쌍둥이아빠 님은 "투표독려"를 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로 불려갔습니다.
선관위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투표독려"를 할 수 있지만,
유권자가 유권자에게 투표독려를 하는 것은 선거법상 위반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누구를 찍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민주시민으로서 선택을 해라고 말하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라니 참 황당합니다.

 

선관위의 이 같은 비헌법적인 처사 때문에 제주도지사 소환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소환 찬성이라도 되는 양 취급받으며 온갖 불이익 협박을 당했습니다.

선관위는 한나라당 부속기관도 아니고 정부기관도 아니고, 더욱이 김태환씨 사조직도 아닙니다. 헌법에 규정된 헌법기관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 있게 경고를 하던 기백은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줄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선거관리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법 대로 하면 될 것입니다.
형평성을 잃은 선관위는 이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반장선거만도 못한 도지사선거가 된 데는 선관위의 직무태만과 위헌적인 선거관리가 제1원인입니다.

 


11% 투표율, 김태환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기적 같은 참여율

 




▲ 홈페이지에 버젓이 투표 하지 말 것을 적어 놓은 김태환씨. 선관위는 소환본부와 시민들의 무수한 항의를 수십번 받은 후에야 할 수 없이 제재조치를 했습니다. 소환본부 사람들은 김태환 도지사 외에도 서관위를 감시하러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선관위가 정말 일을 안 했거든요. 국정감사라도 해서 이번 선관위의 직무유기를 조사해야 합니다.

 

김태환 도지사는 제주도의 문어발입니다.
모든 인맥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40만 유권자에 공무원 수가 5,000명에 달하며,
공무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회단체나 기관들이 엄청나고,
또 그 기관들의 직원과 그 가족들이 엄청납니다.
공무원 1인당 수십명 정도만 커버해도 유권자 30만명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입니다.
게다가 제주도청은 제주도의 삼성처럼 1대 광고주입니다.
제주도민은 조선, 중앙, 동아 못지 않게 한라일보, 제민일보, 제주일보 같은 지역신문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소환투표 관련해서 단 한줄도 취재를 하지 않고 보도자료의 내용만 반복했습니다. 신문인지 관보인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투표를 할 것이냐 인생을 걸 것이냐의 문제에 봉착해서
투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만그만한 결단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11%가 인생 대신 투표를 선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전후사정을 안 후에 제주도민의 투표행위를 평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 선관위 여러분 할 말이 있으면 저한테 와서 직접 하시지 애꿎은 오마이뉴스에 전화해서 협박을 하는 일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표독려를 했다고 해서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명백한 위헌적 발상입니다. "투표합시다"와 "누구를 찍읍시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당신들은 선거를 관리할 자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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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09-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정신인 것이 있나요? 도무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여의도나 삼청동이나. 이럴 때 이렇게 주문을 외워보세요. "이런 젠장."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책질합니다.
 

민준이 이야기로 벌써 다음에만 2번 올라갔네요.






요새 우리 아기 민준이 때문에 파워블로거가 됐습니다.
맨날 전투적인 글만 쓰고 시사만 쓰다가 블로그 방문객이 뚝 떨어져 버렸거든요.

어렵사리 태어난 민준이 탄생기와,
탄생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다음 메인에 2번 올라가면서
단숨에 200만 블로거가 되었네요.

민준이 얼굴을 너무 팔아서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빠의 마음이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민준이 관련 포스팅 모음

산전수전 다 겪은 신생아의 포스



눈 뜨면서 태어나는 아기 난생 첨 봤어요


10만명한테 아기 자랑한 팔불출 아버지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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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민준이)를 낳은 지 한 달이 지나자 사진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진을 찾아가라고요.
산부인과와 계약이 된 사진관이었는데,
주로 신생아의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 낳느라 정신이 없는데,
사진기를 들고 현장을 찍어줘서 고맙더군요.

그런데 사진을 받아보고 두둥~ 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뜨거운 물로 씻기고 모자와 보자기로 덮은 우리 아기사진인데,
신생아의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상처보다 더 두둥~했던 것은 신생아의 표정.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장한 표정, 포스 작렬입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신생아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어떻게 저렇게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것도 하나도 없었을 텐데..






분만실 들어가기 전에 밤새도록 응급실에서 태동검사를 체크했습니다.
오래 기다렸지요.
태동검사 데이터가 나오고 있는데,
태아의 호흡이 불안정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경고를 하셨을 정도로.
아빠의 긴급 태담 이후에 호흡이 돌아오기는 했지만,
태아로서도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한 네티즌 님이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아기가 태어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눈을 뜨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눈 뜨고 태어난 아기를 보면 어른들이 "스트레스 많이 받았구나 고생했다" 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산전수전 다한 아기에게 "고생했다"고 말한마디 못해주고
못난 아빠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또 다른 네티즌 님은 눈을 뜨고 태어난 사람 중에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소크라테스,갈릴레오,칸트 등이 눈뜨면서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기도 큰 인물로 키우고 싶어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려면 두 배 세 배 더 노력해야겠죠^^

왼쪽 이마뿐 아니라 입술 가, 오른쪽 광대뼈, 양쪽 눈두덩이에 스크래치가 있어요.
엄마 뱃속을 지나 세상의 빛을 보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를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생후 40일이 지난 모습입니다.
이후로도 민준이의 눈빛 포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엄마 맘마를 앞두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40일 된 아기이지만 매섭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네요.
그래서 우리는 민준이한테 "눈빛왕자"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아기 낳고 어머니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생명 하나 봉그는 게 겅 힘든 일이여"
("생명 하나 얻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란다"의 제주 사투리)

아기도 가족을 찾아 좁고 긴 터널을 정신없이 건너왔고,
엄마 아빠도 우리 아기 힘내라며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태담으로 응원도 하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 뚝 떨어지는 생명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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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9-02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 닮아서 저런 눈빛이.... 정말 포스가 장난 아니네요. ^^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때 엄마도 정말 힘들지만 아이들도 정말 엄청난 고통과 함께 나온대요. 그러니 저렇게 얼굴이 상처 투성이네요 에그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집 애는 나온다고 머리를 얼마나 치댔는지 머리쪽 반이 퉁퉁 부었더라구요. 걱정되서 의사선생님께 물어보니 그게 아이가 엄마 몸에서 나온다고 용을 써서 그렇다더군요. 아 정말 저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또 이렇게 포스 작렬하면서 커가는 모습의 감동이라니요.

승주나무 2009-09-03 11:39   좋아요 0 | URL
제가 눈빛을 좀 착하게 만들려고 안경도 쓰고 했는데 아기에게 안경을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말 누구 아들이라고 ㅎㅎ
머리가 풍선처럼 눌려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먹고 싸고 있을 민준이가 느껴지네요.
잘났다 진짜 ^^

승주나무 2009-09-03 11:55   좋아요 0 | URL
눈을 뜨면 먹는 일에 일중하고 있어요. 싸는 일은 주로 자면서 이루어진답니다^^

조선인 2009-09-0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전수전! 실감나네요.

승주나무 2009-09-03 11:55   좋아요 0 | URL
정말 산전수전이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말이 표현된 것 같아요^^

무스탕 2009-09-0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나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네!!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래요~ ^^

사진을 보니 왜 제가 울컥할까요? 울 애들도 저렇게 힘들게 태어났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봐요.

승주나무 2009-09-03 11:56   좋아요 0 | URL
정말 고생많아요.
그래서 우리도 민준선생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답니다^^

paviana 2009-09-0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사진 정말 좋네요. 정말 포스도 느껴지고,왠지 진정성이 확 느껴져요.

승주나무 2009-09-03 11:56   좋아요 0 | URL
포스와 진전성이 느껴지는 사진으로는 아기사진이 최고인것 같아요^^

순오기 2009-09-0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는 건 엄마와 아기의 생사를 건 사투지요~
고생하셨습니다, 눈빛왕자님!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오퍼스 9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질병의 잠재력과 가공할 만한 위력


질병이나 고통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준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공포'의 대상이다. 정치적 선동가들이 '암세포' 같은 병을 비유하고, 히틀러가 전체주의를 강요하면서 대수술 같은 처방을 비유로 든 것은 병이 주는 공포의 은유를 알기 때문이다. 질병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데, 수술이라는 더욱 강력한 고통을 통해서 삶을 유지하느냐, 더 큰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질병이 안내하는 죽음의 길로 가느냐라는 두 개의 선택지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들 부시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했던 앨 고어는 <이성의 위기>(중앙books)에서 공포가 이성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공포와 이성은 모두 인간을 행동으로 이끄는 강력한 동인이 되지만 권력자는 '공포'에 유혹을 받는다.

한편 질병의 상태는 그 자체로 인간을 고양시킨다. <은유로서의 질병>(이후)이라는 한 권의 책을 통해 내 평생의 의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나의 경우 '열정'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했는데, 그것은 오랜 질병 상태를 통해서 고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사로 보는 질병(고통)과 열정의 상관관계

비록 신생아라고 할지라도 질병에 오래도록 둘러싸여 있다면 성숙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목숨을 건 싸움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생아와 유아기 동안에만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맞았다. 부모님은 세 번이나 각서를 썼다. "아기가 죽어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당시로서는 일상적인 각서라고 한다. 그리고 내 옆에 언제나 '삽'을 준비하셨다. 내일 당장 하늘나라로 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명은 급성폐렴, 임파성 결핵, 동맥절단 등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과다한 항생제를 쓴 탓에 신생아 때 머리가 홀랑 다 벗겨졌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땜통'이라는 어감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지 내 유년시절의 상처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아 있다. 무서운 질병들로 인해 나의 체질과 성격은 스무살이 될 때까지 완전히 주눅들어 있었다.

감기에만 걸려도 꼬박 두 달간 병원에 다녔다. 병원에서 <보물섬>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를 즐겨 봤는데, 의사 선생님이 부를 때마다 <보물섬>에게 "다음에 병원오면 또 봐야지"하고 말을 걸곤 했다. 병원에 오는 패턴이 5일장처럼 지속되다 보니 연속성이 생긴 것이다.

그 당시 얼마나 민감해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그때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딜레마가 하나 있었다. "만약 지옥에서 누군가 엄마의 목숨과 1,000명의 목숨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나?"였다. 어린 나이에 왜 이 문제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때로는 엄마의 목숨을, 때로는 1,000명의 목숨을 선택하며 마음속으로 괴로워했다.

"폐병은 자네처럼 멋진 시를 쓰는 사람들을 특히 좋아하는 병이라네..."(시인 셸리가 키츠를 위로하며)
나는 계속 기침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침 때문에 내 모습이 추해지기는커녕, 내게 매우 잘 어울리는 우수 어린 분위기가 생겼다. (마리 바쉬커체프)

도스또옙스끼는 평생 간질에 시달렸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이 질병이나 고통과 직접 관계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를 연구한 수많은 비평가들은 '간질'이라는 키워드가 도스또옙스끼라는 인물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양에서 '벼락'이 치면 엎드려서 하늘에 죄를 비는 것처럼, 중국에서는 '질병'에 걸리면 역시 엎드려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신에게 용서를 비는 풍습이 있었다. 질병으로 통해서 신이 인간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32년 동안 질병 상태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거의 없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합친다면 아마 모든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을 때, 어떤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매우 이상해하면서도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행복해해하고 괜히 고마워했던 기억이 많이 나아 있다.

오장육부가 다 안 좋고, 왼쪽 팔은 오십견 걸린 것처럼 아프고 치아는 씹는 것을 두려워한다. 눈은 예전부터 안 좋아 안경을 썼다. 왼쪽 다리는 수술 때문에 걸음걸이에서 묘한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오장육부 신체기관 마디마디 중에서 괜찮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부모에게 받은 건강복도 없을 뿐더러 신생아 때 죽음의 문턱을 넘어오면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질병 마디마디, 고통 순간순간마다 내 감정은 고양되었고 내면은 거의 여성에 가까울만큼 섬세해졌다.


질병에 시달리는 고통과 견뎌내는 고통의 어마어마한 차이

그 사망자의 수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많고, 별다른 치료도 먹혀들지 않은 주요한 질병일수록 그 질병은 무수한 의미들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다. (88쪽)

질병과 고통이 인간에게 주는 자극이 엄청나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질병의 비유는 단련되거나 악용될 것이다. 하지만 질병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님은 시민들을 향한 감사 인사에서 "제 남편은 평생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히틀러의 독일 국민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좋은 비교 대상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통은 하나의 시험이기도 했다. 불의에 타협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고통에 처해지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모함과 저주의 고통에 시달렸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런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사실 질병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히틀러의 독일 국민들은 고통에 시달렸고 고통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제시한 허무맹랑하고 위험천만한 수술방식을 지지했다. 애꿎은 독일국민 탓할 것이 아니라 작년의 대한민국 국민만 하더라도 정체모를 고통을 없애주는 만병통치약 '뉴타운 처방약'에 열광해 한나라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병이 환상이 되고 약장사의 영업 대상이 될 때 불행한 운명과 만난다.

나는 신념적으로 병과 고통은 일종의 메시지를 머금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 때로는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려 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고 한다. 심지어는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약물을 먹고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런 태도가 바로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 스캇 팩 박사,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일부


고통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자에게는 최고의 재앙이 뒤따르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그 메시지를 얻으려는 자들은 한 단계 성장한다. 사실 수전 손택이 이 책을 통해서 던지려는 메시지도 이것이다.

손택은 자신의 책이 에이즈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에이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를 다룬 책-그러니까, 에이즈를 다룬 또 다른 책이 아니라, 그저 에이즈를 주요 사례로 들고 있는 책"이라고 설명해 줬다. - 부록, 수전 손택과의 대화 일부(243)

질병에 관한 주제선별도 그렇고 이를 통해 추구한 메시지도 그렇고, 영감을 주는 작가의 특징은 어떤 주제로 출발하건 간에 인간의 주요한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질병이라는 주제어가 생뚱맞았지만,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 주제가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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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8-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도 질병이 얼마나 문학적으로 미화되는지를 깨닫고 정말 놀랐어요. 그때부터 생명을 담보한 고통보다도 고통이 주는 실루엣을 그린 문학작품을 경계하게 된것 같아요. 리뷰 잘읽었습니다.

승주나무 2009-08-30 20:12   좋아요 0 | URL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을 제대로 그린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대체로 고통은 판매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린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한 분향 의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이런 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 서울광장 추모를 못 드렸는데,
그분의 고향인 전라도에서 헌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주 21일부터 23일까지의 일정으로 여수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여수에는 대형 전광판에 김대중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추모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경건했습니다.





아침이라 조문객이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헌화와 조문을 마치고 나서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저도 눈시울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저들끼리 뛰어놀았지만,
그 현장에 있는 것이 큰 체험일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 사촌형이 돌아가셨을 때 사촌형의 어린 딸이 또래 친척들과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조문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향소에서 아이들을 보는 기분이 남달랐습니다.




차라리 국민장이었으면 나았을 것을...

국장이라 그런지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조기가 개양돼 있었습니다.
여수에 사는 지인들이랑 이야기를 하던 차에 "국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행안부에서 장의보고를 할 때 국민장을 기정사실화하자 아고라 등 네티즌 사이에서 국장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의 과업과 위상, 특히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를 들어 '짧은 국장'으로 결정했습니다.

국장은 장의에 관한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관여할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여수의 예만 들어도,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간에는 시민성금이 6,000만원 이상 걷혔다고 합니다. 장의를 다 하고 나서도 돈이 많이 남아 노무현 재단에 기부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화에서부터 영정사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손으로 꾸미던 국민의 장이었던 반면,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공무원들이 주축이 되고 국가비용으로 부담해서 그런지 시민들의 참여가 전만 같지 못하다고 합니다.

저도 서거 당시 "국장"을 지지하던 사람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국민장"을 치러서 국민의 품과 돈을 보태 치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한줄기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수의 섬마을에서 만난 김대중꽃 인동초

여수에는 섬이 참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2개밖에 없는 해상국립공원이 여수에 걸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사도라는 곳에 갔습니다.

처음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상 2마리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곳에는 공룡 발자국들이 무더기로 있었습니다.
주민들도 해초를 캐면서 그거이 공룡 발자국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공룡 바위도 있고 거북 바위도 있고, 갖가지 기암괴석이 많이 있었습니다.
더 행복한 것은 이곳이 인적이 드물어 보존상태가 최상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행복할 뿐이겠죠.




설핏한 낙조햇살을 쬐고 있는 늙은 거북바위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의 주름과 등껍질이 선명해 마치 살아 있는 거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돌아가다가 "인동초"라는 꽃을 봤습니다. 실제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꽃 박사인 "실비단안개" 님이 이것이 인동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핏 보면 갯벌에 방치된 듯보이지만, 저 혼자 살아서 꽃을 피워낸 게 대견합니다.
위태롭게 길가에 피어 있지만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집념이 전해집니다.
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은 그는 스스로 “겨울을 견디고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 인동초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술회한 것이 계기가 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여수의 명소라고 하는 사도지만, 기반 시설은 그야말로 '안습'이었습니다.
그 흔한 대중화장실 하나 없었습니다.



여수시와 사도가 야심차게 게 모양의 화장실을 건립했지만,
화장실 용수 공급이 여의치 않아 닫아놓은 실정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의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고향이 이렇게 낙후되었나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습니다.
34.6㎢나 되는 작지 않은 면적에 2100여명이 살지만 담배소매점은 고작 4군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다방은 구경할 수 없고 택시 2대와 소형버스 한대가 대중교통의 전부입니다. 게다가 전국 면단위 가운데 약국이 없는 곳은 하의도가 유일할 것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들은 권좌에 앉자마자 경상도를 서울로 만들려고 몹시나 애를 쓰면서도 전라도 출신 김대중 대통령이 직에 올랐을 때 경상도를 후퇴시키고 전라도를 편애할 것이라는 악담을 하고 다녔고, 경상도에서 조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마을을 '감시차'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은 영광이 있을 때나 영광이 없을 때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사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동초를 보고 나오지 않은 눈물이 방치된 게 화장실을 보면서 또 쏟아집니다.

논어에서 읽었던 증자의 임종 유지가 한자락 떠오릅니다. 전전긍긍하고 마치 살얼음판을 밟듯이 살아왔다는 말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증자가 병환이 깊어지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말하였다.
“<이불을 헤쳐>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戰戰(전전)하고 兢兢(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나는 <이 몸을 스스로 해칠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노라. 제자들아!”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논어 태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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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8-28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글입니다.행여나 전라도만 끼고 돈다는 욕먹을까봐 굉장히 조심했지요.서글픈 역사였습니다.

승주나무 2009-08-29 00:3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님~ 공감하셨다니 기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광주 시민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를 담뿍 느끼고 나니 이 또한 역사의 짓궂은 장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서도 어쩌지 못할 것이 있었겠죠. 노무현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 것이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