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누나의 화장실 문화

우리집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뀐 것은 작년이다. 언제나 우리집 화장실은 밑이 뚫려 있었고, 돼지는 없었지만, 똥을 떨어뜨리면 밑에서 '퐁' 하고 똥물이 튀어오르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로 '쉬아'는 밭에다 하거나, 아니면 '싱크대'(아~ 이거까지 밝혀야 되나?), 목욕탕 같은 데다 하는 편이었다.

'검정고무신'에 보면 '기영이'도 그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엉덩이를 손으로 막을까. 그네를 타면서 타이밍에 맞춰 떨어뜨릴까. 참 공감이 가는 만화였다.

먼저 나의 이야기다. 아마 국민학교 2학년쯤의 일일 것 같다. 나는 화장실에서 주로 머리를 잘랐다. 조금씩 조금씩, 어쩌다가 그런 '요망한' 습관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티는 잘 안 났다. 그 때는 뭔가를 자르는 게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해에 내 친구 녀석이 가위를 가지고 품바처럼 '철렁 철렁'하면서 놀았는데, 거기다 손을 댔다가 잘라먹을 뻔한 일도 있다. 암튼 그 때 그 시절은 엉뚱하면서도 참으로 '위험한' 시기이다. 그런데 문제의 그 날은 좀 많이 잘랐다 싶었는데, 학교에 가자 애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내 사촌형도 내 반에 오더니 '완전 원숭이'라며 웃어댔다. 그냥 원숭이도 아니고, 완전 원숭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둘 것. 어린이가 거울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머리를 자르면 '원숭이' 모양이 나온다. 그 별명은 국민학교를 졸업해야 떼어낼 수 있었다.

우리 누나는 참 이상하다. 화장실 갈 때마다 맨날 나를 데리고 간다.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거 하고 있을 때는 더 짜증났다. 그것은 누나가 읍내로 유학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누나는 화장실 갈 때마다 손전등 큰 걸 들고 갔다. 그 전까지 우리 집에서는 손전등을 쓸 일도 없었고, 쓴 적도 없었는데, 순전히 누나 화장실용으로 산 것 같다. 화장실에 맨 처음 가면 손전등을 켜고 화장실 구멍 안을 구석구석 비춘다. 안에서 귀신이 나와서 손을 내민다는 것이다. 내가 두 학년 어렸지만, 어린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암튼 그렇게 한 5분 정도 확인을 한 후, 일을 보는데.. 나는 밖에서 기다리는 편이다. 달도 보고, 쥐새끼 소리도 듣고,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도 들리고, 어쩔 땐 파도가 모래를 쓸어담는 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승주야', '승주 있니', '승주 안 갔지' 하는 소리를 1~2분 간격으로 듣는다. 나는 그때마다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어느 날은 못 미더웠는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누나는 완전 미쳐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난 항상 그 좁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누나가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도 궁금한 것은 내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느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에는 제목을 '누나와 똥 이야기'로 하였다가, 누나와 똥을 함께 쓰는 것은 아니다 싶어 제목을 위와 같이 바꾸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나의 어린 시절과 '화장실'에 얼킨 이야기이므로, '똥'은 2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미식가 돼지를 돋통(통시,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함께 쓰는 제주도 특유의 양식)에 두지 마라

우리 삼촌네 집에는 돼지를 키웠다. 그런데 화장실은 '없었다'가 아니라 있긴 있었다. 그러니까 돼지우리에 돌담으로 구멍을 만들어서 거기 앉을 수 있게 만든 것이 화장실이다. 우리들이 쓰는 수세식 화장실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승만 정권 시절이었는데, '고려호텔'이라는 곳과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두 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좌변기가 차가워져 일 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눈치 빠른 한 정치인이 미국 유학 갔다가, 좌변기 커버를 가지고 와서 이승만 대통령한테 바쳤는데, 굉장히 흡족해 하였다고 한다. 그 사람은 후에 장관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를 '변기통 장관, 좌변기 장관' 하였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이 놈의 돼지와 나의 신경전이다. 녀석이 '똥맛'을 아는지, 돼지우리에 떨어진 '식은 똥'보다는 '갓 데운' 인분을 또 그렇게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돼지놈이 그 구멍과 좀 떨어져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날도 급했지만, 돼지가 구멍 가까이 있어서, 돌멩이를 던져서 거리를 좀 떨어뜨렸다.

그래서 겨우 구멍 위에 앉을 수 있었는데, 밑이 축축하고 뜨끈뜨근한 것이었다. 이 '느낌'은 상상만 했지, 실제 경험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이 놈의 돼지가 혀로 넬롬 내 엉덩이를 핥는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거의 비데 수준이었겠지만, 녀석은 이빨로 내 '똥'뿐만 아니라, 엉덩이도 씹어먹을 태세였다. 나는 하마터면 우리로 떨어질 뻔했고, 거의 졸도 직전까지 갔다. 지금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으면 그 때의 공포가 몰려온다.

공교롭게도 '돼지의 공포'는 그 일뿐만이 아니다. 주위가 바다여서 여름이면 가까운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나는 그렇게 헤엄을 잘 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모래사장하고 가까운 바다, 그러니까 내 목 정도 오는 곳에서 놀고 있었다. 가까운 언덕에서는 어른들이 '돼지'를 잡고 있었다. 그 때의 장면은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 '공포'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낮은 절벽에서 돼지를 떨어뜨린다. 돼지가 기절을 하면 몽둥이로 살짝 다듬어 주고, 용접공이 쓰는 그 센 불로 돼지를 '그을린다.' 물론 이것은 '돼지 잡기 시나리오'다. 그날은 당연히 '시나리오'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돼지는 낭떠러지가 낮았는지, 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것도 내가 설레설레 헤엄치고 있는 곳을 향하여, 나를 향하여 정면으로 헤엄쳐 왔다. 그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끔찍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고, 울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사람들이 돌을 던졌다. 다행히 돼지는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웰컴투 동막골'을 보았는데, 멧돼지가 신하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장면을 보고 또 그 '공포'가 떠올랐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깍두기 2006-01-2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데....ㅎㅎㅎ 우리 조상들은 현명했다니까요^^

승주나무 2006-01-2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그 느낌을 유추해보면, 돼지의 혀는 굉장히 깨끗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휴대폰을 거울삼아 잇바디의 고추가루를 남김없이 제거하듯, 그 놈도 입청소는 깔끔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 느낌을 유추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구요^^
 

안 보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뭐 웃음도 나고.. 웃다가 괜히 중얼거리고.. 또 혼자 쑥쓰러와지고

 

사랑에 관해 가슴 뭉클하게 표현한 시 한 편을 보는 것 같았다.

정재영 다음으로 황정민을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황정민 다음으로...

암튼 색깔있는 굵은 배우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황우석 사태에 거리로 나와서 서울대 조사위를 성토하는 사람들과 애간장을 태우는 아이의 서글픈 사연에 머뭇거리지 않고 손을 건네는 이들의 마음이 둘이 아님을 알 것 같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가를 수 없는 것 같다. 이성으로 가르면 소중한 한 쪽 면이 잘려져 나가고, 감성으로 가르면 그 반대 쫌 면이 잘려져 나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일단은 노코멘트다.

[함께 가는 대한민국] 1. 방학중 굶는 아이들

입력: 2006년 01월 16일 07:21:15 : 180 : 1
 
대전 서구 이혜리양(중1·가명) 삼남매는 겨울방학 들어 늘 아침 11시까지 잠을 잔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집에 쌀 한 톨 없어 아침을 굶어야 하는데, 일찍 일어나면 배고픔을 참기 어렵다. 아침은 이들 남매에게 ‘금지 용어’다. 누구도 아침을 말하지 않는다. 아침만 생각하면 다들 우울해진다. 귀찮아서 아침 안 먹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삼남매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어 서글프다.

혜리 삼남매가 도시락집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도시락을 고르고 있다. <윤희일 기자>
막내 우석군(초등 3년·가명)은 “어쩌다 일찍 깨면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배고프지만 누나들이 눈치챌까봐 자는 체해요”라고 말했다.

대신 점심을 빨리 먹는다. ‘고마운 동사무소 언니’가 준 3,000원짜리 쿠폰 2장으로 도시락 전문점에서 도시락을 타 해결한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동네 교회에서 평소 꿈도 못 꾸는 떡을 먹을 수 있어서다. 가끔은 점심·저녁도 굶는다. 혜리양이 몸이 아파 전문점에 못 갈 때다. 일요일 저녁도 거를 때가 있다. 도시락집이 쉬어 중국집에서 시키는데, 다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해 그냥 굶는다.

도시락집에선 또다른 기쁨을 맛 본다. TV다. 둘째 혜지양(초등5년·가명)은 “아줌마가 도시락을 준비하는 15분간 TV를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집에는 TV가 없다.

지난해 9월 지금의 연립주택 지하 4평짜리 단칸방으로 이사오면서 대부분의 가재도구를 처분했다. 우석군은 “TV를 보다보면 배고프다는 걸 잊는데…”라고 말한다.

지난 11일 낮 12시30분 혜리남매 단칸방.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서둘러 열며 아빠 이모씨(46)를 챙겼다. “같이 드세요.” 하지만 아빠는 “너희들이나 먹어”라며 방 한 편으로 물러앉았다. 혜지양은 “아빠는 늘 우리가 남긴 것을 드세요”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아쉽지만 일부러 조금씩 남긴다고 했다. 처음엔 혜리만 남겼지만 동생들도 곧 따라 했다.

막노동을 하던 아빠 이씨는 지난달부터 40일 넘게 일을 못 나갔다. 폐렴 후유증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데다, 허리와 다리 관절이 안 좋다. 엄마는 7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다. 혜리 집에는 돈 한 푼, 쌀 한 톨이 없다. 지난해부터 아침을 굶기 시작했다. 전자제품이라고는 쓰지않는 전기밥통이 전부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도 끊겼다. 어쩌다 이웃어른들이 밑반찬을 주지만 냉장고가 없어 며칠 지나면 먹지 못한다.

혜지양은 일기쓰기를 좋아한다. 일기장에는 온통 ‘먹을 것’ 얘기다. ‘모처럼 밥이랑 찌개랑 김이랑 함께 먹으니까 정말 맛 있다’(1월2일자), ‘병원에서 따뜻한 오룡차를 먹었다’(1월3일), ‘교회에서 맛있는 떡을 먹었다’(1월8일) 등등. 일기에는 호떡, 라면, 음료수, 사탕, 김치찌개, 귤 등이 자주 오르내린다. 또래 어린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하나같이 귀한 음식들이다.

도시락 분량이 적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있다. ‘오늘은 아빠가 자고 계셨다. 언니가 팍팍 먹으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서로 챙기고 사랑을 엮어가는 풍경도 나온다. ‘언니가 오늘 코피가 났다. 너무 불쌍하다’, ‘아빠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그래서 아빠가 잔다’(1월5일) 등이 그것이다.

삼남매의 취미는 독서다. 일본 작품을 번역한 ‘만화 우동 한 그릇’을 즐겨 읽는다. 식당 주인이 가난한 세 모자가 찾아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하자 딱하게 여겨 한 그릇에 1.5인분을 담아 준다는 내용의 만화다. 이웃의 따스한 인심을 갈망하는 속마음이 드러난다. 혜지양의 꿈은 요리사다. 무슨 음식이든 맘껏 먹을 수 있어서다. 혜리양의 꿈은 소박하다. “나라에서 급식 주는 것만도 무척 감사해요. 더 바라는 게 있다면…TV 생기고, 아침밥도….”

〈대전|윤희일기자〉
이 기사에 꽃을 던지시겠습니까? 돌을 던지시겠습니까?  
제목 :
내용 :
놀라운거울님 의견
제목 :이땅에 산다는 게 정말 부끄럽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빠다.배고픈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음에...폐지라도 주워야 입에 풀칠을 하는 허리 휜 할머니가 추운 골목을 뒤지고 있음에 나는 이따끔 '이 나라, 이 정권이 대체 그토록 절박하게 거둬간 세금을 대체 어디다가 쓴단 말인가?'라고 의문한다.최소한의 생존권도 지켜주지 못하는 한심한 나라에 살고있다는 자괴감에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럭을 뜯어놓고 '보도블럭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라는 친절한 안내문을 써붙여 놓는 국민의 충복(?)들의 기지에 할 말을 잃는다.
Jan 17 2006 0:27:56
용용이짝꿍님 의견
제목 :저도 느끼고 갑니다...

삼남매가 즐겨 본다는 우동 한그릇.. 저도 그걸 보면서 느낀점이 참 많았었는데..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작게나마 돕고 싶네요 도와줄 수 있는 방법도 좀 가르쳐주십시요 아.. 메일 주소는 hyun35274@nate.com
Jan 16 2006 20:32:40
함께살자님 의견
제목 :맞는지는 모르나 일 글을쓰신 윤희일 기자님 e메일을 찾아보았습니다.

yhi@kyunghyang.com 확실치는 않으나.. 찾아본 e메일 입니다.

이곳으로 메일을 한통씩 보내어서 가르쳐달라고 해보세요..

이런기사 많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내용에 도움을 줄수있는방법도 같이 실어주세요.
Jan 16 2006 17:42:24
함께살자님 의견
제목 :저두 보탬이 되어드릴수 있도록 .....

조금이라두 보탬이 되고 싶은데. 연락처나 주소좀 알려주세요

kmj00sd@hanmail.net 011-458-7253

위에 줄 섰습니다. 빨리 도움줌 줄수있도록 중간 매개체역할 부탁드릴께요.. 윤희일기자님
Jan 16 2006 17:30:22
한빛지기님 의견
제목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싶습니다. 연락처 알려주세요..
ㅜㅜ
Jan 16 2006 15:37:36
칼리지브란님 의견
제목 :작은 도움이 될수 있도록

연락처 알려 주세요!
Jan 16 2006 15:18:36
용이는또라이님 의견
제목 :도와줄수 있는 방법좀 알려 주세요1

다달이 얼마라도...
Jan 16 2006 15:08:03
스카이애플님 의견
제목 :연락처나 주소좀 알려주십시요...

Jan 16 2006 14:33:58
방배포돌이님 의견
제목 :조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계좌번호좀 남겨 주시길....
저도 점심때라 배고픈데..어린것들이 넘 안됐네요....
Jan 16 2006 13:30:23
대성님님 의견
제목 :조금이나마 힘이되고 싶읍니다

저도 중1 초등3학년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최소한 밥은 굶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형편이 좋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너무대견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연락처나 주소를 알려주시면 조금이나마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고싶읍니다 2006.1.16 대성님
Jan 16 2006 13:07:39
깡호님 의견
제목 :이런 상황이...

이 아이들뿐만이 아닐텐데...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한테 많은 도움은 못 되더라도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수 있을까요...???
익명으로해서 돕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Jan 16 2006 12:57:54
후니용이맘님 의견
제목 :돕고 싶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연락처나 주소를 알수 있을까요??... 꼭꼭 부탁 드릴께요.....
Jan 16 2006 11:50:58
처리와봉이님 의견
제목 :돕고 싶네요~~

어쩔까나요? 맘이 짠한디....도와야 하는거 아닌가요~~~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디....어린것들을.....
Jan 16 2006 11:30:03
다선님 의견
제목 :돕고 싶습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 역시 어렸을적 배고픔을 겪어봤기에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꼭 도움을 줄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Jan 16 2006 11:09:25
성이군님 의견
제목 :마음이 아프내요~~~

연락처나 주소 좀 알수 있을가요,기자님 부탁드립니다,,,
Jan 16 2006 11:08:13
게르만님 의견
제목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정말 마음이 아퍼 옵니다. 주의를 생각하지 않고 너무 앞만 보고 달려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 봅니다. 못 먹고 사는 아이들은 없어야 하는 바램과 소망을 가져 봅니다.
Jan 16 2006 11:03:47
겨울그리고봄님 의견
제목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기적으로 현금 또는 현물(쌀)을 조금이나마 보내고 싶읍니다 단,저의 신상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고
Jan 16 2006 11:02:47
올리브2님 의견
제목 :주소좀......

가슴아픈 사연으로.... 혹시 주소좀 알려주시면 참고하고 싶습니다..
Jan 16 2006 10:41:18
후치네드발님 의견
제목 :하아~ 슬프네여

거기 비해서 전 아무일도 없엇다고...몸만 약간‥ㅜㅜ;; / 그런이들 도와줄꺼라고...^^*
Jan 16 2006 9:27:09
키스킨님 의견
제목 :이나라에는 아직도 이런 어린이들이 있는데....

이기사를 보고 정부 국회의원들은 무슨생각을 할까..?///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는 이런 아이들이 있는데...
Jan 16 2006 9:16: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싯적 이야기는 처음에는 '유년 회상'이라고 구상했다가 당장 바꿨다. 유년은 내 머리가 돌아가기 전의 시간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이십 년이나 된 그 당시의 순간순간을 좇는다. 그 때의 생각들은 대개 물음표로 소중히 보관돼 있기 때문에, 나와 소싯적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에는 물론 어느 정도의 '가필'이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리얼리즘'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라고 꼭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소싯적을 좀더 근사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자꾸 연재를 올리면서 5회를 넘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실은 전혀 안타깝지 않다. 나의 '지속 가능한' 연재 정신을 본다면 여러분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작품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끝내는 것이다.'

라는 보들레르의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 아닌가.

아마추어 산문 정신과 연재 정신이 결합된 합체로보트의 발랄한 댄스를 보여주고 싶다.

1. 최초의 응원가

오늘 갑자기 '국민학교'(그 시절은 국민학교였음, 아마도 국민학교 마지막 세대일 듯) 2학년, 운동회 때마다 부르던 '응원가'가 생각났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보아라 이 넓은 광장에서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청군과 백군이 싸우며는 틀림없이 청군(백군)이 이긴다.

청군(백군)이 날쌘 두 주먹을 백군(청군)의 앞장선(?)*을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때렸다 틀림없이 청군(백군)이 이긴다.

*앞장선

어휘에 대한 체계가 갖춰지지 못했던 그 시절. 나는 위 단어를 가지고 심히 고심을 하였다. 친구들이나 응원단장 모두 '앞장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일까. 나는 별 문제를 느끼지 않고 지금까지 '앞장선'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앞가슴'이나 '안면부'라는 말은 심의상 초등학생이 쓸 어휘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 말을 쓰려면 '때렸다'가 아니라 '후려쳤다'가 되어야 마땅하다. 혹시 이 부분에 들어갔던 말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속히 제보를 주기 바란다.

운동회는 기억나지 않지만, 응원가는 참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응원단장이 '삼삼칠 박수'('기차 박수'라고도 했다.) 동작을 크게 펼치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마 '노래'와 '행위'가 결합돼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반했으리라.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압도하는 그의 동작은 격조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 나이에 '격조'란 걸 알 리가 없다.

나는 청군이고 내 친구는 백군이었다. 우리는 서로 멀지 않은 위치, 그러니까 바로 옆에서 서로의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특히 '청군(백군)'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서로가 큰소리를 지르며 상대방의 음성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과열된 경쟁은 화를 부른다고, 각자 '청군'이니 '백군'이니를 빽빽 소리지르더니, 점점 화가 났고, 그 화는 서로를 향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잔디밭을 구르며 치고박고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단순하다. 나는 '청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었고, 녀석은 '백군'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었는데, 옛 문헌의 이야기처럼 '불사이군' 즉 두 해를 섬기지 않으며, 승자의 자리에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싸움판의 법칙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일까. 나는 녀석의 '백군'이라는 소리가 나의 '청군'이라는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나는 녀석의 '앞장선(?)'을 가격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깍두기 2006-01-1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렇게 불렀어요.

힘차게 뻗은 청군의 주먹 백군의 아구창을 날렸다^^;;;

승주나무 2006-01-1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 님 '아구턱'은 어떨까요. 분명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세 음절 모두 받침이 있었다는 겁니다. 잘 모르면서 글자를 때려맞추는 것은 대학 시절에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기형도 시에 나오는 한자를 그렇게 읽었으니까요. 나중에 보니 전혀 말도 안 되는 유추였습니다.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은, 다음 편에 '우리 누나와 똥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봐도 너무 엽기적인 경험이어서.. 우리 누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두기 2006-01-1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라니....전 여자분인 줄 알고 있었어요. 왜 그랬지?
누님의 명예는 제가 지켜드릴 터이니, 꼭 써주세요. 기대되어요^^

승주나무 2006-01-16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문체가 좀 부드럽기는 하죠. 깍두기 님 '알라디너 인물열전'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하늘바람 2006-01-1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응원가 아주 낯익어요

승주나무 2006-01-1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앞장선'에 들어갈 말이 뭔지는 잘 모르시겠나요?

승주나무 2006-01-1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1은 '엉덩이'라고 하는데요..

승주나무 2006-01-1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2는 그보다 더 세밀한데,
'청군의 억센 두 주먹으로 백군의 얼굴을 날렸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틀림없이 청군이 이겼다'
이것 같기도 하고... 계속 수소문중입니다요^^

ㅇㅇ 2018-07-3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넓고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운다.
~~~~~
청군의 날쌘 주먹으로 백군의 아구창을 날려버렸다.
틀림없이 = 랄랄랄라라라라라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