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 공부를 하고, 소설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지 않는다.

시 공부와 소설 공부와 같은 습작을 하지 않는 것이 내내 괴롭고, 책밭서점이라는 제주도의 허름한 헌책방 아저씨와 같이 신춘문예만 되면 가슴 한켠이 시리다.

연말 성석제씨 펜클럽에 성석제씨(우리는 '성아저씨'라고 부른다. 이하 '성아저씨, 또는 아저씨')가 와서 분위기를 한껏 돋궈주었다. 모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가 늦게 참여한 것이었다. 단연 이야기의 주제는 신춘문예였고, 성아저씨는 응모작들의 수가 적지 않음과 그에 따라 작품의 질적 수준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도로 전문적인 소재를 가지고 쓰는 글에 대해서도 '풍자'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작품들의 '기술성'이 읽힌다. 사실 신춘문예작의 기술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문문예용 작품이라는 오명도 굉장히 오래된 역사이다. 1920년대부터 해묵은 논쟁이 아닐까 한다.

나는 이런 세간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지극히 개인적인 물음을 던졌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경험'과 '습작'의 중요성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 습작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소설을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한지 '습작'이 중요한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성아저씨로부터 선문답 또는 논어에 나올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

순간 분위기가 '쌩뚱'해졌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 결과 나의 답을 얻었다.

비단 '좋은'과 '작품'과 '써야' '한다'는 형태소의 의미를 세부적으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또는 성아저씨가 어떤 의도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그것은 나의 대답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도' 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소설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텍스트나 습작이라는 개념을 매우 한정적으로 본 것이 아닌가. 이것은 철학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매우 무책임한 생각일 수 있다. 후배의 비난처럼 그 '감수성(?)'을 '논술 따위'에 쏟아붓는다는 것이 자본에 굴복한 것일 수도 있다. 습작을 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형식'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말장난'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장난'인지 아닌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성아저씨의 선문답과 아래의 칼럼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1101821371&code=99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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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혼생활은 어떠세요? ^^ (쌩뚱)

승주나무 2007-01-1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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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소쉬르와 언어학 참고문헌

국어학을 공부하시는 어느 분이 소쉬르 관련 문헌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해오셨다. 아마도 이번에 <일반언어학 강의>가 재간된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서평꾼'이 아닌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구하여 마땅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정중히 마다하지 못한 것은 그간에 이런저런 아는 체를 많이 해온 탓에 무작정 발뺌하는 것도 볼썽사나운 듯하기 때문이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예전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원래는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라캉182님이 소개한 내용에 몇 글자 더 보탠 글이기에 필자는 두 사람으로 해야겠지만('비평고원'은 어제 언론의 '직격탄'을 맞고 신입회원이 600여명 가까이 늘어났다. 나도 즐찾이 16명 늘어나긴 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겠다. 한겨레의 힘(?)을 보여주는 일례일 텐데 후유증(?)은 없으려나 걱정된다), 일단은 임의로 올려둔다. 이미지는 이번에 새로 붙인 것이다. 

 

 

 



1. 그의 저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샤를르 발리, 알베르 세쉬에 편집, 최승언 역(민음사, 1990 초판)(샤를르 발리(Bally)는 (불어식으로) '바이이'라고도 표기됩니다.) 오원교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형설출판사)도 번역돼 나왔는데, 역시나 도서관에 의존해야 할 듯싶고,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 경악한 얘기는 제가 다른 글에서 썼습니다. 최승언 역의 <일반언어학 강의>에는 서두에 마우로 교수의 강의 주석본도 곧 번역돼 나오는 것으로 예고돼 있는데, 12년이 지나도록 아직 안 나오고 있습니다...

 

 

 



2. 입문서
조더선 컬러, <소쉬르>, 이종인 역(시공사, 1998). 조나단 컬러는 영미권에 소쉬르와 구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로서(<구조주의 시학>이 대표작) 신뢰할 만한 비평가입니다(<바르트>와 <문학이론>도 그의 책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이 책의 증보판을 옮긴 것인데,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지만,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서는 소쉬르 입문서로서 많이들 추천하는 책입니다...

C. 샌더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김현권 역(도서출판 만남, 1996)는 말 그대로 일반언어학 강의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김현권 교수의 번역. 저는 이 책으로 <일반언어학 강의> 읽기를 때웠었는데, 요즘 다시 소쉬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그랬지만, 저도 랑그 연구자로서의 소쉬르보다는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더 흥미를 갖게 됩니다. 랑가주 연구자로서의 소쉬르에 대해서 그래도 가장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은 마루야마 게이자부로의 <존재와 언어>(민음사, 2002)입니다. 원제는 '생명과 과잉'이고, 저자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소쉬를 연구자의 한 사람입니다. 1장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2장부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단행본 연구서
요하네스 페르, <소쉬르 언어학과 기호학 사이>, 최용호 역(인간사랑, 2002) 저도 아직 구입하진 않았지만(2만원!) 서점에서 몇 번 들춰보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언어학자이면서 (퍼스와 더불어)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인 소쉬르를 다루고 있습니다(*퍼스의 기호학에 대해서는 <퍼스의 기호사상>(민음사, 2006)을 참조할 수 있고요).

김현권 외 편역, <비판과 수용:언어학사적 관점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연구 제1권)>(도서출판 역락, 2002) 마침 오늘 산 책이네요. 제목대로 소쉬르에 대한 그간의 비판(1부)과 각국의 수용(2부)에 대한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2부에는 일본과 한국에서의 소쉬르 수용에 관한 장들도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 여구> 총서는 4권으로 기획돼 있는데, 2권은 "비교역사언어학: <논고>를 중심으로"이고, 3권은 "일반언어학: 일반어어학 이론, 문헌비판적 연구"이며 4권은 "기호학: 아나그람, 전설, 기호학, 철학 등"입니다. 제가 제일 기대하는 건 역시나 4권입니다.

프랑수와 가데, <소쉬르와 언어과학>, 김용숙 역(동문선, 2001). 라캉 182님이 "소쉬르 연구의 결정판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큰 연구서..김성도 교수가 자주 인용한 저자. 부담없는 가격과 두께! 내용은 두께에 반비례할 수도 있음!"라고 상찬하셨는데, 저로선 너무 비싸보이는 책이어서(!) 소쉬르 '쇼핑'을 나간 오늘도 사지 않았습니다...

 

 

 

 

김방한, <소쉬르>(민음사, 1998). 작고한 김방한 교수는 우리나라 1세대 언어학자입니다. 제자인 김현권 교수와 방통대의 언어학 강의를 맡기도 하셨고, 그 강의를 TV에서 몇 본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반언어학 강의>를 평이하게 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2차 일반언어학 강의'가 발췌지만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김방한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한 언어학자의 회상>(민음사, 1996)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김성도,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한길사, 1999). 고대 김성도 교수는 외대 최용호 교수와 함께 본토에서 소쉬르를 전공한 '전문가'입니다(*김현권 교수는 국내에서 소쉬르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아직까지는 국내 소쉬르 연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군요. 한길사에 다니던 후배의 부탁으로 이 책을 절반쯤 읽고 서평을 쓴 바 있습니다...

김현권 외, <소쉬르의 현대적 이해를 위하여>(박이정, 1998). 국내 소쉬를 학자들의 논문과 번역모음입니다. 아마도 모여서 스터디를 하는 모양인데, 그 결과를 묶어낸 책입니다. 오래전에 산 책인데,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듯하군요...

로이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역(도서출판 보고사, 1999) 라캉182님에 의하면, "저자 Roy Harris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1983년 영역과 주석을 출판한 저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은 책입니다.

미셀 아리베, <언어학과 정신분석학:프로이드, 소쉬르, 옐름슬레우, 라깡을 중심으로>, 최용호 역(인간사랑, 1992) 아리베는 최용호 교수의 지도교수입니다. 최교수가 유학중에 번역한 책인데, 한동안 미뤄두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최교수는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라캉과 소쉬르'란 논문을 싣고 있기도 합니다.

 

 

 



루이 옐름슬레우, <랑가쥬 이론 서설>, 김용숙/김혜련 역(동문선, 2000) 흔히 '언어이론 서설'로 알려진 책인데, 주의할 것은 이때의 언어가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란 것입니다. 불어에서는 이 둘을 구별하는데, 영어나 독어, 그리고 우리말에도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냥 랑그/랑가주를 언어/언어활동 정도로 옮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테바의 <언어, 그 미지의 것>(민음사, 1997)도 원제는 '랑가주, 그 미지의 것'입니다. 어쨌든 엘름슬레우의 이 책은 얇지만, 그레마스가 '이 한권의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그레마스의 책과 연구서로는 <의미에 관하여>와 <구조에서 감성으로>가 있다).

 

 

 



에밀 벤베니스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 2>, 황경자 역(민음사, 1993) 한불문화출판에서도 김현권 교수의 번역으로 1권이 번역돼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습니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해서 말하려면, 소쉬르와 야콥슨 그리고 벤베니스트를 읽어야 합니다. 참고로 벤베니스트는 A. 메이예의 제자이고, 메이예는 바로 소쉬르의 제자입니다. 메이예의 책으론 <일반언어학과 역사언어학>, 김현권 역(어문학사, 1997)이 번역돼 있습니다.

벤베니스트, <인도 유럽사회의 제도 문화 어휘연구 1,2>, 김현권 역(아르케, 1999) 작년에 맘먹고(!) 산 책중의 하나입니다(*러시아어본도 구했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고 고급 교양서 정도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 그냥 '사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을 거 같군요.

앙투안 아르노/클로드 랑슬로, <일반이성문법>, 한문희 역(민음사, 2000) 얇은 책이지만, 저도 아직 사지는 않은 책입니다. 참고로 언어학 관련서 중에서 욕심이 나는 책은 훔볼트 관련서들입니다. 그의 책들과 그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혹시 읽으신 분이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4. 영어
<초보자를 위한 소쉬르('Saussure for Beginners)>, W.Terrence Gordon, Abbe Lubell, Writers & Readers, 1996.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데리다가 한 얘기들은 실제로 소쉬르도 다 한 얘기다라는 지적이 들어 있습니다. 평이하기 때문에 번역 소개되면 좋을 거 같군요. 단, '정치적인' 소쉬르 얘기는 없습니다.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Saussure and Contemporary Culture', Francoise Gadet, trans. Gregory Elliott. 라캉182님 덕분에 알게 된 책이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책은 정말 많고도 많습니다(하지만, 없는 책들은 더 많습니다!).

 

 

 



덧붙임: 서정철 교수의 <기호에서 텍스트로>(민음사, 1998)는 평이한 구조주의/기호학 입문서이다. 소쉬르에서부터 옐름슬레우, 바르트, 그레마스 등에 이르는 언어학/기호학 사상을 해설하고 하고 있는 책이다. 서교수의 후속작으로는 <인문학과 소설텍스트의 해석>(민음사, 2002)가 있다. 여타 구조주의/기호학 참고문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03. 01. 30./ 07.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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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정성껏 리뷰를 썼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26891

리뷰의 제목이 파격적이기도 했을 뿐더러 꼼꼼히 읽고 감히 정민 선생의 글에 대해서 포폄한 것도 효과를 얻은 것일까. 다들 나에게 '감사인사'를 해주셨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문에서 책 이야기 보고 얼른 읽고 싶었는데, 요즘 알라딘이 미는 책 중의 하나라서 '전략적 리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른 했었다. 아니나다를까 '전략적 리뷰'들이 불법리뷰의 경계를 간신히 견뎌내며 올라와 있었고, 추천을 많이 따내고 있었다. (사실 나도 땡스투를 받기 위해 그들 중 하나와 야합하고 말았다)

벌컥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리뷰를 써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리뷰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알라딘 고수들에게 보여주기는 민망하지만, 리뷰로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간만에 쏠쏠한 일이다.

마침 땡스투가 마일리지에서 적립금으로 전환되었는데 어떨 때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불편한 것 같기도 하다.
1. 땡스투가 바로 '현금화'되어서 좋을 때가 있다. 그만큼 구매할 때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근데 너무 '자본'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열경쟁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이..ㅋㅋ
2. 땡스투가 '적립금'으로 되면서 모든 마일리지는 '구매'를 통해서만 올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니까 나쁘게 말하자면 알라딘이 '구매'를 부추기는 것이다. 만약 9,900원의 마일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리뷰를 잘 쓴다고 하더라도 책을 구매하지 않으면 '땡스투'만도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알라디너에게 참으로 딜레마이다. 근데 개인적으로 '2'의 시절을 나는 선호한다.

암튼 이렇게 올린 땡스투 수입으로 그 비싼 동양철학 서적이나 하나 사련다 ㅋㅋ

2007-01-04 [마이리뷰] 매너리즘에 빠진 논술선생에게 +230 0 230
2007-01-03 [마이리뷰] 매너리즘에 빠진 논술선생에게 +230 0 230
2007-01-03 [마이리뷰] 매너리즘에 빠진 논술선생에게 +230 0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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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31 [마이리뷰] 매너리즘에 빠진 논술선생에게 +230 0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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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마이리뷰] 매너리즘에 빠진 논술선생에게 +230 0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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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1-04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효자네요 저는 어린이책을 주로 봐서 기껏해야 50원 60원씩 올라가는데 멋집니다

하늘바람 2007-01-04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인사를 못드렸던것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셔요.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요

마늘빵 2007-01-04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 저거 무슨 책인데 마일리지가...

stella.K 2007-01-0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에 내가 한 것도 있다.^^

승주나무 2007-01-04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 님//저도 대개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알라딘의 스폰서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글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직접 찾아가서 새해인사 드려야 하는데.. 요즘 통 정신이 없어서.
아프 님//아프 님도 땡스투 킬러라는 소문이...
스텔라 누님 // 복받으실 거에요. 하루에 한 장씩 봐도 좋고, 일사천리로 보아도 좋지요. 정민선생 꺼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 ㅋㅋ
 

아이들의 속물근성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생각도 못했다.
생각을 더해보니,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집값 따라 끼리끼리···“니네 집은 얼마니” 동심에도 거품

입력: 2006년 12월 29일 17:21:18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 온 나라를 뒤흔든 ‘부동산 광풍’은 어린이들에게까지 전염되고 있다. 집 평수를 비교해 친구를 사귄다. 부동산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아이들마저 있다. 너무 일찍 속물근성에 물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친구는 평수대로=1년전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46평형 아파트로 이사한 원모군(11)은 예전에 살던 28평형 아파트보다 2배 가까이 넓어진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 과제물 준비 등을 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졌다. 원군은 “옛날에는 내 방이 따로 없고 비좁았는데 이제 내 침대에서 자니까 편하고 너무 좋다”며 “친구들도 놀러오면 집이 넓어서 좋겠다며 많이들 부러워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평수는 친구들을 사귀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48평형 아파트에 사는 한모군(10)은 같은 단지내 12평형에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지 않는다. 좁기 때문이다.

한군은 “우리 단지는 우리 단지에서 놀고 12평형 단지는 그쪽에서 따로 논다”고 말했다.

강동구에 사는 임모군(14)도 “집이 넓으면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넓고 비싼 집 사는 게 장래 희망=아이들 사이에서는 넓고 비싼 집을 사는 것이 ‘장래희망’이라는 식의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기도 한다. 서초구에 사는 김모양(12)은 “나중에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대치동 삼성 래미안 아파트에 살겠다”고 말했다. 장모군(14)은 “엄마 아빠가 집 얘기 많이 하고 집 바꾸려고 하는 것이 솔직히 나는 싫지 않다”면서 “집이 넓으면 밖에서도 집 안에 사는 사람도 고급스러워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남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매매물 벽보 앞에 서 있는 초등학생들이 종종 눈에 띈다. 도곡동에 사는 공모군(12)은 “학교에서 도곡렉슬 최고평수가 얼마이고 얼마에 팔린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강남 등 집값이 비싼 곳에 사는 아이들일수록 부동산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엄마, 우리 집은 몇십억원짜리야?’라고 물어 부모들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우리 집은 전세로 하면 얼마고 매매로 하면 얼마야?
’ ‘우리는 얼마나 더 모으면 아이파크 53평짜리로 이사갈 수 있어?’ ‘저 집은 갑자기 10억원이 됐는데 우리 집도 그렇게 올랐어?’ 등도 일상적인 대화의 한 부분이 됐다.

◇매체와 부모 탓=집 평수와 집값에 민감해지는 아이들 뒤에는 부모가 있다. 임모군(14)은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커가면서 집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됐다”며 “엄마 아빠도 소파에 앉아 뉴스 보면서 집 얘기를 하고 집 넓혀서 가야겠다고 얘기하니까 자연스럽게 집을 의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25)는 “집값이나 평수를 비교하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고 간혹 친구들과 분쟁을 일으킨다”며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마치 행복의 기준이 되는 양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의 속물근성이 엿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아이들보다는 집값 얘기에 몰두하는 부모의 행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부동산 뉴스를 쏟아내는 방송이나 화려한 아파트 광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윤경·김다슬·김기범·강병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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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1-04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답니다 ㅠㅠ

마태우스 2007-01-0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들 따라하는 거겠지요 우리 모습을 아이에게서 본다고나 할까요..

Koni 2007-01-0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의 일만도 아니지요. 지금 대학생인 우리 막내동생이 초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걸요. 어른들은 애들 앞에서 별생각 없이 마구 그런 얘기를 떠벌이지만, 아이들은 다 듣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어쩌면 많은 어른들은, 그게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도 아이 친구의 집, 부모님 직업 등등을 꼬치꼬치 물어보고는 못 놀게 하는 부모님이 없지 않았잖아요. 그러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 또 내 친구의 부모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승주나무 2007-01-0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 님 // 안타까운 일이죠.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더욱...
마태 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을 주시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나 봐요. 유년의 상상력이 마모돼서 그런 것 같아요.
냐오 님// 안녕하세요. 정말 그러지 않고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계셨던 부모님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우리 엄마는 내가 기죽지 않게 항상 라면을 남겨두셨죠. 복숭아나 토마토 같은 것도 그렇고요. 도둑질해서 먹지 말고, 기죽지 말라고.
하지만 비싼 것은 사주지 않으셨어요. ㅋㅋ
 

서재를 간만에 웹핑하다고 아프락사스 님의 오래된 페이퍼를 발견하고 마음이 동해서 글을 남깁니다.

서재에는 교육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으므로, 정식으로 논재에 부치고 싶습니다.

아프 님의 페이퍼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9150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611/27/pressian/v14858179.html

"나는 왜 사교육으로 돈 벌기를 포기했나"

[인권오름]"진보도 '학벌'의 기득권 버려야 하지 않나"

 [프레시안 임재성/'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요?"
  
  사회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다. 활동가들 역시 생계 문제를 회피할 수 없는데, 사회단체들이 그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이 흔히 택하는 수단 중 하나가 입시 과외다.
  
  물론 사교육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현직 활동가들의 경우만은 아니다.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 중 상당수도 졸업 후 사교육 시장에 진출했다. 수감 경력 등으로 인해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다. 이들 중 일부는 시장에서 꽤 성공했다. 게다가 최근 대학 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들은 날개를 달았다. 운동권 동아리에서 사회과학 세미나를 하며 훈련한 글쓰기 및 토론 능력을 바탕으로 논술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이제 흔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언론은 "386 운동권 출신이 논술 시장을 장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입시열에 편승해 돈을 버는 게 그다지 떳떳하지만은 않다는 자책이다. 또 최근 심화되고 있는 교육 불평등도 이런 자책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쉽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힘든 이들이 생계를 위해 택한 일에 대해 함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행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 하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이라면 사교육으로 돈 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출소한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임재성 씨다. 임 씨도 수감 전에는 입시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수감 생활 도중에 얻은 깨달음이 그의 생각을 바꿨다.

  
  노동자 한 명의 죽음에 대해 분노했던 이들이 해마다 입시 때문에 100여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모순이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학벌 기득권에 안주하여 편하게 밥 벌이를 하다보면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을 갖기 어려우리라는 것.
  
  이런 생각으로 그는 입시 경쟁에 편승한 사교육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사회단체 활동과 병행하기에 가장 손쉬운 생계 수단인 입시 과외를 포기하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임 씨 혼자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입시 경쟁과 학벌지상주의가 사라질 리도 없다.
  
  하지만 애당초 임 씨가 수감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한 것 역시 당장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누구라도 먼저 총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 씨가 사교육으로 밥 벌이를 하지 않기로 선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임 씨는 "진보도 '학벌'의 기득권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글에 자신의 결심을 담아 인권운동사랑방에 보냈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 실린 임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서 '양심적 사교육거부자'로
  
  수감시절, 출소 이후 활동을 하면서 돈을 어떻게 벌지를 고민하면서 사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수감되기 전까지 열심히 했던 사교육의 기억들을 감방 안에서 곰곰이 반추해보면서 그렇게 낯 뜨거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현실적인 금전적 이해에서 조금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그런 성찰의 시간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어쨌든 밥과 잠을 법무부에서 해결해 주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좌파'랍시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가 자신의 학벌을 밑천 삼아서 그 학벌에 목 매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다니.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 사실 별 대단한 결심도 아니건만 감옥에서 "양심적 사교육 거부"라는 글을 써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싣게 되었다. (당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실렸던 글, "양심적 사교육 거부"를 보려면 다음 주소를 클릭하면 된다. http://www.withoutwar.org/bbs/view.php?id=www_letter_11&no=6 )
  
  그 글에서 나름대로 노렸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광고. 왜 성공적인 금연을 위한 조언 중 하나가 '주변에 금연 사실을 알려라'이지 않은가. "생각해보니까 이거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나 앞으로 사교육 안 할 거야." 당시 글의 내용은 길었지만 핵심이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명의 욕심이었다. 사교육을 하면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맘 속의 무거움을 알기에, 그러나 그 무거움을 가지면서도 사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나름의 자극이 되고 싶었다. 이러한 내부적 비판은 당시 내 주변의 활동가들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글 일부를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페미니스트파시스트건 집에서 설거지 안하는 것은 똑같다는 이야기를 진보건 보수건 사교육 시장에서 학벌주의 조장하는 것은 똑같다고 대유(代喩)하면 비약일까. 페미니스트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학벌을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혹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밖에서 후원을 해주었던 친구에게서 대안교육잡지인 '민들레'에서 연락이 와서 글을 그 잡지에 싣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투박한 글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권들의 사교육시장 장악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게 여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답답함에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면 정말 기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광고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입시학원가 풍경. 출처: 청소년 인터넷뉴스 <1318바이러스>

  학벌주의와 떨어질 수 없는 사교육 거부…쉽지 않은 결정
  
  지난 5월 충주에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를 했다. 사람들을 만나며 나누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사교육 정말 안 할 거냐는 질문이다. 별것도 아닌데 글까지 쓴 것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 화제다.
  
  사교육 아니면 돈 어떻게 벌거냐는 질문도 이어진다. 뭐, 계획은 있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사교육은 절대 안하련다. 이렇게 답을 하고나면 좀 어색해진다.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여전히 사교육을 통해서 생활비를 벌고,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다. 다 안다. 그 사람들, 그 동지들 다 안다. 내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내가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다들 힘들게 살고, 어렵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급진적 사상과 주장을 가지고 늘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다.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교육만큼 적당한 게 별로 없다.
  
  과외를 10개 가까이 하면서 대학원 학비를 만들고 집에 생활비를 보내며 공부와 활동을 하는 한 선배는 나에게 그런다. 이것이 치열한 나의 삶이며 자신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교육 어쩌고 하는 비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또 어떤 선배는, 그럼 공교육이 대안이냐고, 사교육 안하는 것이 대안이냐고 묻는다.
  
  함께 평화운동을 했던 이는 그런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나 사교육 아니면 활동 못한다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거 보다는 나은 거 같다고.
  
  
그 이후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자부심은 있지만 유혹도 있다. 사교육, 참 매력적인 돈벌이다. 스트레스야 좀 받겠지만 이만한 돈벌이가 어디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만 좋으면 한 달에 얼마 일하지 않아도 최저임금에 준하는 돈을 벌 수도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선생님' 소리도 듣는다. 이것저것 '왼쪽'의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근데 그 돈, 애들이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내는 돈이다.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돈이다.
  
  입시 때문에 일 년에 백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노동자 한 명이 자살하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살인정권이라 외치는 우리가 왜 그 백여 명의 죽음에는 이리도 무감각한지.
  
  최소한 운동권이라면, 진보주의자라면 현상 이면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속에서 불편해야 한다. 비록 당장은 계속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렵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강남 논술시장의 대부분을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교육 중에서도 논술 같은 경우는 운동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요즘 논술의 추세가 조금 진보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라는 이야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런 강사를 찾기도 한다고 한다. 곧 '한국판 소피스트들'이라는 타이틀 안에 운동권 출신들의 논술강사들이 다뤄질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트럭을 몰며 배추장사를 하는 선배가 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3일 정도 일하고 한 달에 백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번다고 한다. 운동하며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그리고 이 사회에서 돈은 번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인데 너무 고민이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이 쉬워 보이지만 그건 운동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운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럼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역시 어렵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음에도 아예 생각이나 시도조차 없는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활동가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현실이 열악하더라도 삶의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고자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서 '운동권'이라는 호칭의 일차적 지칭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가 먼저 놓겠다는 신념으로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늘 자랑스러운 결정이자 가치가 되었다.
  
  수감 시절, 병역과 마찬가지로 사교육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사교육을 거부한다는 것은 병역거부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회 속에서 그 매력을 거부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사교육 거부자로서 스스로를 다잡아본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임재성/'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이에 대한 승주나무의 견해

사교육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 싶지만, 제가 볼 때 이 글을 쓴 사람은 '사교육'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은 '사교육적'인 것과 '교육적'인 것 두 가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교육적'인 것은 자본주의와 신분상승욕구 등 입시양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교육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에 정진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교육을 거부하는 이유가 된다면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제가 보았을 때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사교육에서 시작해서 사교육의 '사교육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교육과의 모색을 고민하여 '교육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학생들이 사교육에 손을 내미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구조의 문제가 담겨 있는 사안에 대해 단지 '거부'만 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군 생활 2년여 기간 동안 고민과 성찰을 거듭하며 '본격학문' 대신 '논술'(사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나름대로 서양의 철학자와 철학사, 사서삼경에 침잠하고 성찰하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한국사회을 감싸는 유령의 근원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교육'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포지션이 문제가 됩니다. '공교육'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공교육은 '관료화'를 극복하기가 참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강의 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어느 정도 틀거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다소 유연하다 할 수 있는 사교육과 학생들이 많이 믿고 의지하는 곳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교육은 진정한 문제를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사교육을 죄악시하지 마시오. 사교육에는 신분상승의 욕구 외에 현행 입시구조에 고통받는 학생들의 신음소리가 담겨 있고, 이곳에 진입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욕구불만까지도 담겨 있는 슬픈 성이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사교육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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