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서평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참 애매하다. 혹자는 인터넷 서점 한군데에 서평을 올려야 한다고 믿는 반면에 혹자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한 곳에 올려야 한다는 것은, 충성소비자론 같은 것인데,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그보다 책을 위한 리뷰 혹은 서평, 혹은 끄적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서점’이 아니라 ‘책’을 위해 쓴다. 아주 황당한 책이 아니라면, 책을 위해 쓴다. 어느 곳이든 책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혹은 정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것에 관해 엉뚱한 이야기까지 붙어있는데.. 즉,


박쥐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주 약간의 끈기만 갖고 최신 서평을 예스24와 알라딘을 통해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한 5분 동안 신간들의 서평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랬더니 이게 나왔다. Yes24 서평 기준 2004년 9월 12일부터 여태까지 726개의 서평을 썼다. 2년 4개월 동안 쓴 갯수다. 하루에 하나 약간 안되는 정도다. 이 사람은 책을 다 읽고 쓴 걸까? 일하면서 혹은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읽으면서 서평까지 작성해서 올리는 게 가능할까?


->이 사람은 책을 다 읽고 쓴 걸까? 그렇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은, 서평에 관해서는, 첫 번째, 베끼는 사람이고 두 번째가 읽지도 않고 쓰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경멸하지 않는다. 시간적으로 그게 가능하냐고 할지 모르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가능하다. TV를 안 보고, 싸이월드를 뜸하게 하고, 잠을 좀 줄이니까 되던데, 왜 안 된다는 거지? 시간이 부족해서 읽은 책 다 못 쓰는 것이 안타까운데.


어쨌든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제도의 헛점을 보란듯이 파고 들어서 자신의 이익을 철저하게 확보하고 있다. 알라딘 Thanks To를 이 사람은 얼마나 확보했을까?


->또 한가지를 말하자면, 원래 서평을 쓰는 것은 오마이뉴스 책동네 때문이다. 제도 언론에 소개되지 못하는 책이 조금이나마 알려지고자 하는, 나름대로 소박한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쓰곤 했는데, 이곳의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계속 쓴다. 이익이라.. 알라딘 땡스 투, 백번 받는 것보다, 오마이뉴스에서 연극기사 하나 쓰는 것이 이익 면에서 더 크다는 사실을 말하면 될런가?


그리고 서평쓰는 분들도 양심껏 하자. 책을 읽으려고 사는(live) 거니? 알차게 살려고 책을 읽는 거 아니냐?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지는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책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비판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거다. 눈으로만 "진보성향 책"읽고 정작 손가락으로는 온갖 서점에 서평 퍼 나르면서 머릿 속으로 받아먹을 포인트 계산하면서 살지 말자. 쪽팔리잖아? 입으로는 "자본주의 비판" 어쩌구 하면서 정작 실제 하는 짓거리라고는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잖아? 하긴 그러다 약빨 떨어지면 다들 쉽게 배신하더라. 다들 그랬지.


-> 누가 그러는지 제발 좀 말해줬으면 좋겠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사는 마음 편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나도 좀 그렇게 살아봤으면 좋겠으니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도 서평 쓰기 위해 책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



중복리뷰가 언짢은 분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글쎄,


고백하자면, 나는 알라딘도 좋고, YES24도 좋고, 인터파크도 좋고, 교보문고도 좋고, 영풍문고도 좋고, 서울문고도 좋고, 대동문고도 좋고, 이마트도 좋아하고 공항도 좋아한다.


 

내가 읽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이, 조금이라도 팔리는 것을 나는 아주 좋아하고 그럴 방도를 지금도 찾고 있다.


어느 한 서점에 서평 올리며, 그 서평이 누군가에게 책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있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책은 너무 안 팔린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막연하게 들리시는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 갖다 놓은 서점 망하는 걸 여러번 본 지라 심각하다.


책이 너무 안 팔리고 나는 그것이 미칠 정도로 속상하다.


당신은 그런 생각 해봤는가?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 정보 본 뒤에 인터넷서점에서 싼값에 구매했다고 좋아하는 사이에,

오프라인 서점은 어떤지 생각해봤는가? 합리적인 소비를 떠나서, 그것이 책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과 나의 차이를 부디 진지하게 생각하시기를. 서평 쓰기 위해 책 읽느냐는 이상한 소리는 집어치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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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iamX > 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 - 1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겁니다만, 알라딘에도 다시 올려봅니다. 알라딘 운영진 측의 반성과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오프라인 서점들 입장에서는 조금 얄미워 보일지 몰라도, 나는 거의 일주일 단위로 살 책들을 눈여겨 봐뒀다가 서점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고 나서 괜찮으면 인터넷 서점에서 사곤 한다. 몇 년 째 이런 것은 아니고, 제대하고나서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식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은 아닐 거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직접 서점에서 구매하기 보다는 인터넷 상에서 책을 구매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매를 결정하기까지는 주위의 추천, 책 광고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이 중에 한 가지가 바로 해당 책에 대한 다른 이용자의 서평이 될 것이다.


인터넷 서점 입장에서는 책 내용을 몽땅 웹에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독자들의 서평에 책 홍보를 내맡기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주의 서평 같은 걸 뽑아가며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서점이 어떤 책의 서평에 점수를 주느냐-개인의 서평 작성 능력 이전에-에 따라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류의 서적의 서평에 더 적극적인 양상을 보일테니, 이는 곧 해당 인터넷 서점이 타 서점과 다른 그 무엇을 드러내는 "개성"이며 "차별성"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차별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인터넷 서평 제도를 유지하고 있느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에 자신이 쓴 하나의 리뷰를 중복해서 온갖 동네에 다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를 꼽아볼까 한다. 욕먹어도 좋을 박쥐들의 서평을 공개하고자 한다. 혹시 지울까봐, 스크린 캡춰를 했다.




박쥐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주 약간의 끈기만 갖고 최신 서평을 예스24와 알라딘을 통해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한 5분 동안 신간들의 서평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랬더니 이게 나왔다. Yes24 서평 기준 2004년 9월 12일부터 여태까지 726개의 서평을 썼다. 2년 4개월 동안 쓴 갯수다. 하루에 하나 약간 안되는 정도다. 이 사람은 책을 다 읽고 쓴 걸까? 일하면서 혹은 학교 다니면서 이렇게 읽으면서 서평까지 작성해서 올리는 게 가능할까? 어쨌든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제도의 헛점을 보란듯이 파고 들어서 자신의 이익을 철저하게 확보하고 있다. 알라딘 Thanks To를 이 사람은 얼마나 확보했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다. 알라딘의 이주의 마이리뷰 중에서 한 편 뽑아봤는데, 놀랍게도 Yes24에서도 똑같은 서평이 있었다. 하다못해 제목이라도 바꿔치기 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제목도 똑같이 달았다. (하긴 앞의 사례에서도 그 박쥐는 똑같은 제목 똑같은 글을 무지막지하게 달아대긴 했다) 예스24, 알라딘 순이다.




이 사람이 리뷰한 책은 "불량의학"으로, 알라딘의 12월 4주차 이주의 마이리뷰에 뽑힌 서평이다. 누군가 한 명이 베꼈거나, 동일인물일 것이다. 알라딘 마이 리뷰를 기준으로 2006년 10월 27일부터 쓰기 시작해서, 28개의 서평을 올렸다. 앞의 사례보단 좀 낫다. 80여일 간 올린 거니 3일에 하나 꼴이다. 혹시나 싶어 이것도 캡춰했다.


내가 왜 예스24하고 알라딘 스토킹을 해야 하나? 도대체 이 담당자 들은 일을 하긴 하는 걸까? 혹은 운영자라고 일 시켜놓고는 고용주가 딴 일 시키나? 그래, 그렇겠지. 운영자 욕하지 말고 예스24하고 알라딘을 욕하자. 뭐 그렇다고 내가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좀 이렇게 이용자가 직접 나설 때까지 방치하지 말고 잘 좀 하라는 얘기다.


그리고 서평쓰는 분들도 양심껏 하자. 책을 읽으려고 사는(live) 거니? 알차게 살려고 책을 읽는 거 아니냐?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읽지는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책을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비판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거다. 눈으로만 "진보성향 책"읽고 정작 손가락으로는 온갖 서점에 서평 퍼 나르면서 머릿 속으로 받아먹을 포인트 계산하면서 살지 말자. 쪽팔리잖아? 입으로는 "자본주의 비판" 어쩌구 하면서 정작 실제 하는 짓거리라고는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는 것에 불과하잖아? 하긴 그러다 약빨 떨어지면 다들 쉽게 배신하더라. 다들 그랬지.

그나저나 이거 뭐하려고 썼더라? 아, 완전히 모님 한테 낚였다. ㅠ ㅠ…

ps. 제목에 '1'을 붙인 이유는 앞으로도 심심하면 이주의 마이리뷰 중심으로 캐볼까 한다. 가끔 적발하면 2탄도 나올거다. 기대하시라. 정말 온 세상이 다 막장이로구나. 책이 무슨 마음의 양식이야? 내 지갑의 포인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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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경학(經學 : 중국 유가(儒家) 경전의 글자 ·구절 ·문장에 음을 달고 주석하며 연구하는 학문)의 '시작'이자 동시에 '끝'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유년을 보냈던 성산포의 통밭알 같은 바다와 같다. 넓게 펼쳐진 해변과 언덕을 넘으면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바다가 펼쳐진다.

거기에 동네사람들은 폐수도 버리고 발바닥을 문질러 가며 조개도 파고 바위를 깨뜨려 낙지도 잡고는 했다. 문학도가 되고부터는 시를 쓰러 자주 갔다. 군대 휴가 때는 시 쓰던 추억이 떠올라 다시 갔다. 지금도 성산일출봉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은 인적 드문 통밭알 바다이다.

그냥 리뷰도 아니고 '논어'에 대한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봤다. '시작과 끝' 내게 주는 당혹감은 대개 다음과 같다. 논어를 다시 찬찬히 읽었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편린들을 이름짓고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논어'를 읽고 기가 질리고 말았다. 젠장! 대체 논어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논문을 쓰지.

 

그래서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논어 바다에 들어가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기로 작전을 짰다. 그것도 알려진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즉 내가 읽은 부분, 밑줄친 부분을 중심으로 재구성해보겠다 이말이다. (내가 원래 사설이 좀 길다)

 

우선 논어를 '공자'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편견을 버릴 것을 권장한다. 논어는 선생님을 위한 제자들의 제문(祭文)이다. 논어가 공자의 소유물이었다면 '子'라는 호칭이 무색할 것이다. 따라서 논어는 선생님을 보고 배우고 느낀 제자들의 관점에 매우 충실하다. 그것은 마치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대화편' 위에서 뛰어논 것과 일치한다.

1. 다양한 층위


논어를 경학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는 이유는 논어가 가지고 있는 매우 다양한 층위 때문이다. 그러니까 논어는 독서를 할 줄 아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인생의 온축이 묻어나는 달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느끼는 맛이 제각각이다. 휴대폰 MP3에 넣고 다니면서 거의 매일같이 논어를 '청취'하는 내가 논어를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층위 때문이다. 어릴 적 멋모르고 썼던 동시에서부터 시를 알고 어려워하던 습작시와 시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시에 이르기까지 '시'는 변함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논어'도 변함이 없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옹야6편의 18절, 이하6-18>
싹은 돋았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꽃은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苗而不秀者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9-21>

함께 배울 수는 있을지라도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확립할 수는 없으며, 함께 확립할 수 있을지라도 함께 시의적절한 중용과 권도(權道)는 행할 수 없다.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9-29>


문제는 일이독 가지고는 층층의 맛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한문에 빠져든다면 그 중독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우려된다.


 

2. 논어의 감정처리

 

논어의 감정처리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감정을 못되게 쓰고 있으며, 그것이 세상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포용과 관용'이라는 말 역시 세상을 거꾸로 뒤흔들 만한 치명타를 숨기고 있다. 대권 주자들이 전직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다녔던 이른바 '세배정치'가 사회적 물의가 된 적이 있다. 특히 광주항쟁을 계기로 운동권의 길을 걸었다던 원희룡 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올리는 장면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포용이라는 미덕은 얼마나 변색되기 쉬우며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공자의 의견을 들어보자.  

 

혹이 물었다.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는 것은 대승적 차원에서 어떨까요?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은혜는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은 곧음으로 갚고, 은덕을 은덕으로 갚아야 한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14-36>

 

공자의 비타협 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우리는 갈등을 너무 쉽게 풀려고 한다. 일본에게 외자 유치 좀 받아서 풀려고 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용서하고 풀려고 한다. 비타협 정신이 만능은 될 수 없으나, 감정처리에 미숙하거나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 한다면, 해악은 피할 수 없다.

 

논어의 동양학이 다른 동양학이나 여타 철학과 특이하게 다른 점은 바로 '차등애'(差等愛)를 설파했다는 점이다. 이 차등애는 '맹자'에서 맹자와 묵자의 간접 논쟁으로 비화될 정도로 경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세계 모든 철학이 '사랑'을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두고 있음을 생각할 때 유학이 말하는 이러한 '사랑'에 대해서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음에 정직함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아들이 그것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우리 고을의 정직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니, 정직함은 이 안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13-18>

 

이와 비슷한 예시가 맹자에 나온다. 유가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순 임금에게는 고수라는 못된 아버지가 있었는데, 맹자의 제자가 '만약 순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면 순은 어떻게 할까요'하고 묻는다. 맹자는 왕이라도 법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말하자, 제자는 순이 아버지에게 사형을 집행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맹자의 대답은 '순은 임금이기 때문에 법을 버릴 수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임금직을 버리고 아버지와 멀리 도망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다.' 논어의 차등애는 성경의 박애와 더불어 사랑에 대한 신선한 향기를 준다.


 

3. 개념의 종합, 퓨전의 달인

 

하나의 미덕에는 여러 개의 키워드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 키워드는 그 미덕에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덕에 참여한다. 그렇게 해서 키워드의 그물망이 만들어진다. 그물망 안에서 '미덕'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공자는 일상적인 의미의 도덕가가 아니다. 유학 역시 도덕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요 개념들을 재구성해서 온전한 의미의 미덕과 철학을 제시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지만, 말을 잘하는 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14-5>

공자가 말했다. "자로야 너는 육언(六言)과 육폐(六蔽)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느냐",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앉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마. 仁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림은 '어리석음'이요, 슬기를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림은 '방탕함'이요, 믿음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림은 '박절함'이요, 용맹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림은 '어지러움'이요, 강인한 것을 좋아하고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가림은 '조급함'이다.

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 對曰:  「未也. 」   「居! 吾語女.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17-8>


 

돌턴 이후로 우리는 혼합물과 화합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각각의 화학 원소는 각각의 원자를 가지며, 원자들이 일정한 비율로 결합하여 분자(돌턴은 분자를 ‘합성 원자’라고 불렀다)를 이루듯, 각각의 개념들은 자신의 고유한 값을 가지고 다른 개념과 또는 다른 미덕과 연결되는데, 우리는 공자의 퓨전 개념법을 통해 실질적인 개념에 가까워질 수 있다.

 

 

4. 정제된 인생

 

한때 김윤식과 김현의 문체를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안도현과 기형도의 시를 사랑한 적도 있었으나 '백석'의 시를 발견하고 나서 옛사랑이 모두 식었다. 내가 겉멋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가 관념에 경도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나를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읽는 '논어' 앞에 고백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전통을 잇는 경학은 '이륜(彝倫 : 보통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을 근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형이상학적이나 고차원적인 논변을 거부하고, 백성들의 언어 혹은 백성들이나 어린아이라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통해 철학을 표현한다. 따라서 실생활의 현실적 언어가 주를 이룬다. 서양이 행위에서 관념을 분석해낸다면, 이 동양학은 관념을 행위 또는 일상생활에 적용시켜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메시지를 분석하면 여러 개의 키워드와 키워드의 연결 등으로 분석되지만 이 동양학은 분리된 키워드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하나의 근사한 인간형에 도달하기 위해 그 인간이라면 하기 마련인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로 책의 곳곳을 뒤덮었다. 이러한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건강하고 원시적이며, 시적 압축률이 굉장하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이 인식론의 함정에 빠진 것에 비해 동양의 철학은 언제나 현실과 직면하고 있는 그 자체였다.

사실 경서는 모두 정제된 시이다. 2~3000년의 세월을 견뎌온 리듬이다. 그리고 2~3000년을 살아온 동양인들의 견뎌야 할 일상이었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일상의 안내서였던 것이다.

정제된 인생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제된 언어를 넘어야 하며, 정제된 철학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 역경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품었던 애정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공자가 교과서적이라거나 신적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다만 자기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고 제자들을 사랑한 어리숙하고 어눌한 선생일 뿐이다.

 

5. '논어' 텍스트

 

교수신문이 펴낸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에서는 성백효 씨의 '논어집주'를 추천한다. 원문과 주해가 상세한 이 책은 무리가 없지만 구글의 번역기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기계어 번역이 많다. 경향신문의 '책읽기 365일'에서 이해인 수녀님이 추천한 '논어'는 서문문고본으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학부 다닐 때 남명서당에서 사서특강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교수님 졸라서 텍스트를 하나 추천받았다. 그것을 지금도 보고 있는데, 현음사에서 나온 '주주금석(朱註今釋) 논어'이다. 주자의 주해에서부터 정약용의 주해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고 번역에 옛투가 나오기는 하지만 대체로 깔끔하다.

   




6. 하고 싶은 말

 

무엇이든 손을 붙이면 '괴롭게' 하는 스타일 덕에 작정해서 쓴 리뷰는 길이가 매우 길다. 이번에도 간만에 매우 긴 리뷰를 손댔다. 사서의 맨 첫머리로서 '논어'를 소개하는 것은 무엇보다 논어가 유학의 진수를 담고 있는 원전 중의 원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있고, 무엇보다 시가 있다. 제목의 뒷부분에 해당하는 '철학적 시와 시적 철학'의 이야기는 글자수가 너무 미어터저서 생략했다. (지금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할 지경인데...쯧쯧)
서양의 논리체계에 비해서 동양의 우월성을 애써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동양 역시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내가 논어를 주목하는 이유는 논증의 형태가 아니라 '완결된 인생'의 형태로 보존된 철학이 드물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대화조차도 주제에 너무 천착하기 때문에 종합적 판단을 자꾸자꾸 환기시켜주지는 않는다.

나는 논술선생으로서 대입논술만 하다가 재미도 없고, 중등논술 '창작'이라는 미션이 걸려서 더욱 열심히 논어를 읽고 있다. 논어에서는 매우 많은 등장인물들이 강력한 캐릭터를 뽑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공자가 있다. 공자한테 개기는 제자들이 매우 일상적일 정도로 논어는 철학 교과서라기보다는 '학문생활 르포'에 가깝다.

 

논어와 유학, 공자, 경학에 대한 '유교전통적 편견'이 사라지고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논어'를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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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1-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잘하지만, 말을 잘하는 이라고 해서 반드시 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와닿은 오늘입니다.

승주나무 2007-01-1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말의 상처에 찔리셨나 보군요. 저는 자주 찔려서 면역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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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들이 남긴 글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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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스크랩 블로그 "신문여행" (http://blog.khan.co.kr/97dajak)
    그리고 알라딘 서재(http://my.aladin.co.kr/booknamu)

    글구 이번에 만든 다음 블로그

    차별화를 주어야겠다.

    이런 손님들하고만 놀 수는 없지 않은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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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2007-01-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재밌어요 ^^

    승주나무 2007-01-1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딸기 님// 반갑습니다. 재밌죠^^
     

    논어 리뷰의 제목임..

    그냥 써봤음..

    이제부터 동양의 고전철학을 정리해보기로 했음..

    얼른 정시가 끝났으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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