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고산, 채수동 (옮긴이) | 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1220쪽, 2004-03-01,  29,800원,



나름대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군생활을 하여, 책을 읽을 기회가 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랬지만, 참 진지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편집하지 않고, 그냥 남깁니다.


'04.6.11의 메모

성석제는 소설가의 아들이고 나는 철학자의 아들이다.
성석제는 즐거운 인생을 살지만 나는 아버지의 채무를 떠맡았다.
그것은 비단 철학자의 채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知者(지자)들의
채무라는 점을 기억하라.
철학의 변천을 봤을 때 철학은 온몸이 녹아버리는 학문이다.
하나의 존재를 형성하다 여러 존재들에게 몸을 할애하면서
생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생명은 더더욱 배가 고프며
그것의 책임은 철학에 있다. 철학은 하나의 뚜렷한 개체로서
내세울 학문이 아니다. 세상 안에 온전히 녹아들어가지만
철학 자체는 없고 철학은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아마
철학의 사명인 것 같으며, 그것이 철학의 아들이 물려받은
"채무"의 책임이 아닌가 생각든다.
※ 철학은 충분히 녹아들어가지 않았다.
- 상병 오승주


04.6.25의 메모
故 김선일씨 피살사건이나 닉 버그의 참수 등의 사건의 무서움은
무엇보다도 테러의 표적이 敵(적)의 주요시설 혹은 수장이 아니라
선량한 보통사람에 있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번번이 일어나는 '일상적 테러'와도 맥이 닿는다.
그들은 다수이다.
내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해 보자.
상대의 수장을 공격하는 것보다 불특정한 시민 한 명을 공격하는 것이
비용면이나 효과면에서 크게 이로울 수 있다.
그것은 상대편의 지형을 분열시켜
적의 움직임을 더디게 혹은 둔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다.
- 상병, 오승주

04.7.29
한 권의 책이 단순한 문자의 나열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남녀의 사랑으로 태어난 결실이
단순히 정자와 난자의 교배로 얻어진 산물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우리들 보이는 세계의 배후에는 심오한 안 보이는 세계의 배려가 심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우리의 만남과 만남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다.

04.8.1
현명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유일한 차선책이 서 있다.

04.8.22
그들은 버리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
그것은 그들의 소유가 아니라 그들을 소유한 자들의 것이다.


04.8.12
연애의 생산자/소비자 이론
연인들의 실패의 원인은 대개 서로가 생산자인지 소비자인지 혼동하는 것에 있다.
사랑을 불완전한 것이고, 소비자는 당연히 완제품을 바란다.
그것이 끝이다.
그러나 생산자는 소비자를 위해 세심히 만들면서 애정도 쏟고
실패와 아픔의 쓴맛도 여러 번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는 소비자나 제품의 의미보다는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것에 대한 희열과
독특한 애정이 생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정'이 견실한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한쪽은 생산자이고 한쪽은 소비자인 경우
생산자는 소비자에게 끌려다니다 결국 실패한다.
둘 다 소비자일 경우
서로에 대한 애정보다는 호감 수준에서 사랑은 쉬이 식는다.
- 00의 '~~는 고리타분하고 지겹다'는 말을 새기며


04.8.23 完(책을 다 읽었다는 말)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이 책 한 권을 붙들고 있어서 화가 나기는 했지만,
내 정신을 단순 명쾌하게 씻겨준 이 책에 감사한다.
언제나 정신은 지고한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며,
나머지 것들은 견뎌내는 것이다.
나는 견딜 것이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유익하다.
원시의 건강한 사고와 지고한 이성의 단순 명료함.
그 두 샘물을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군대에서 맘 편히 먹고 읽은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책이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지.
자정이 곧 된다.
23:50분 昇柱(화장실에서 붉밝히며 읽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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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대서 끄적 거리는거 잘했는데. 대개는 거기서 보고 들은 소위 군대 문화의 찌꺼기들에 대한 거였죠. 지금은 다 어디있으려나.

책속에 책 2007-02-0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에서도 이런 사고가 가능하단 말이에요???!!! 오옷!!!

승주나무 2007-02-0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 님 안녕? 군대 문화에서 건질 것은 별로 없는데.. 남겨둔 메모는 재밌군요.
데이드림 샘 안녕하세요. 아프 님에게 물어봐요. 가능하답니당~
 

내게 리뷰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사서에 대한 리뷰는 좀 달라야 하겠기에 전에 한창 했던 '심층독법'을 적용했습니다.

심층독법은 지금 생각해도 토가 나오는 방식인데,

일단 책을 읽어가며 중요한 부분을 체크하고,

일독 후에 체크 부분을 워드로 정리하고,

워드의 오탈자를 검증하며 3독하는 것이 심층독법의 대강입니다.

 

특히 논어에 비해 맹자는 분량도 2배가 넘고,

주장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mp3를 자꾸 들으면서

각 장의 요지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맹자가 추구한 것이 '공자를 배우자'이기 때문에

논어에서 확충한 부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논어와 맹자를 대조하며 읽어야 합니다.

 

근데 매우 귀찮은 일이군요.

 

거기다 노자보다 3~4배는 긴 장자를 함께 읽은 것은 미친 짓인 것 같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여,

맹자, 장자를 함께 읽기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좀 조잡한 예지만,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것을 풀어낸 칸트를

저는 '위대한 대타협'이라고 합니다. 동양도 이 지점에서 대타협이 필요합니다.
동양철학은 체질적으로 대타협을 이루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인데,
혹시 조예가 있으신 분은 대타협의 모델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학설이 난무하고 제자백가가 격론을 벌이던 시기의 두 거봉인

장자와 맹자는 서로의 지면에서는 한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리뷰에서 다루겠습니다만,

둘 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의 논의를 끝간 데까지 확충시켰다는 점이고,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변화에 대응한 문장의 조우라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이 철학자들의 시대에 날리던 사람들은 양주와 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한미했지만, 맹자는 주류를 향해 포화를 날리고,

장자는 겉으로는 공자를 집중 포화했지만, 맹자를 향해 날선 비판을 보입니다.

다만 장자의 비판 대상이 유가에 국한되지 않고 제자백가 전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릅니다.

 

장자와 맹자를 함께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큰 수확은 역시 '포지션'입니다.

내가 이들의 철학을 접한 것은 어떤 형태든지 제3자의 논지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나마 원전을 확인하고 보니 그 요지가 잡힙니다.

다만 맹자는 일상적으로 읽어오던 것이라 원문을 대조했지만,

장자는 학식의 폭만큼 한문이 너무 어려워 원문을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장자와 맹자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궁극의 지점뿐만 아니라, 대상을 향하는 구체적인 시선도 같은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장자와 맹자는 관심사가 각기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같은 지점에서 확인하려 하므로 '본의 아닌 대립'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특히 유학은 그 성질상 배타성을 극복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 번째, 장자의 위치와 맹자의 위치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대등적 관계가 아니라, 장자가 형식적으로는 맹자 등을 포함한다고 보는 게 좋습니다.

네 번째, 두 사람은 비주류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전국책에 맹자는 2회, 장자도 이것을 넘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종횡가 등 권모술수가에게 헌납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비주류'라는 것은 중요성을 갖습니다. 전국시대는 중국 전체의 사상사가  엄청난 농도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자연스럽게 포개집니다. 대개 내가 접한 장자서와 맹자서는 주류의 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이 주류가 된 것은 제3자의 시대일 뿐입니다. 이들을 주류로 다룬다면 당시의 시대와 주파수가 맞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입니다.

 

이런 점을 다두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추후에 장자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모질게도 신문 스크랩을 해왔는데, 장자를 읽다 보니 신문이 재미없어졌습니다.

장자를 다 읽었으니 이제는 또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마음이 허합니다~~~ 장자보다 재미없는 세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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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2-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가 그리도 좋나? 난 요즘 청소년용 대학, 중용 읽고 있는데 좋드라! ㅋㅋ

승주나무 2007-02-0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누님// 장자 좋아요. 정식으로는 처음 읽었는데.. 대학 중용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책^^
 

한땀한땀 채워진 책 한 권을 다 먹고,
뜨끈뜨근해진 가슴으로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게 될 때,

바로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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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7-02-02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로서는, 아그새퀴들이 방학한 이래 진득하게 독서를 못해본 저로서는, 가장 부러운 순간이기도 하지요^^

승주나무 2007-02-0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님//오랜만입니다. 아그새퀴들이 없는 저로서는 이 포지션을 온몸으로 즐겨야 할 수밖엔 없군요. 부러워도 할 수 없다구요^^
 

sonia
안녕하세요, 알라딘 마케팅팀 박진경입니다. 예전에는 출판사 홍보용 책갈피가 나올대 종종 넣어드리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출판사의 책갈피 제작도 뜸하네요. 의견 주신 것을 계기로 해서, 올해는 알라딘에서 한번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계획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가능한 그렇게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 2007-01-11 11:38 삭제

 

빼이부릿
안녕하세요~ 알라딘 마케팅팀 강미연 입니다.
2월부터 책갈피 배포가 시작됩니다.
책갈피 배포는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항상 풍족하게 책갈피 받아 쓰시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알라딘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2007-02-01 10:06 삭제



ㅋㅋ 알라딘 책갈피 달라고 떼를 썼더니 2월부터 배포를 해준다고 하더라구요.

기념으로 지름신이나 불러볼까?

자축합시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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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7-02-0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후후

마늘빵 2007-02-02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승주나무님 건의가 먹혔군요. 전 사실 책갈피 잘 쓰지는 않지만 예전에 취미삼아 모아본적은 있어요.

stella.K 2007-02-0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정말! 그런 한번 나도 지름신을 불러봐? 축하한다! 승주나무의 쾌거닷!^^

물만두 2007-02-0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많은 책갈피가 사라져서 책띠를 사용하고 있는데 잘됐네요^^ 만쉐이!!!

승주나무 2007-02-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바안사~ 축하드려욧!!
아프 님//저도 한 건 올렸어요. 요즘은 책띠도 없는 책들이 많아서 책갈피가 항상 부족이에요.
스텔라 누님//누나의 지름신은 무섭지 않나요? 나중에 원망들을까 무섭소~~
물만두 님//책띠는 간편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아요. 글을 보면 알라딘 책갈피인지, 출판사 책갈피인지 모르겠지만, 예쁜 알라딘 책갈피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진주 2007-02-0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쒸 나는 귀찮은데 그래서 이번에 2개나 들어왔었구낫~잇힝~~~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요런 것두 염장질 ㅋㅋㅋ)

*예쁜 건 기대하지 마세요. 그저 그래요..

마늘빵 2007-02-0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띠도 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ㅋㅋ

승주나무 2007-02-04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님//안녕하세요. 알라딘 공식 책갈피인가요, 혹시 협찬 출판사 책갈피는 아니겠죠.
아프 님//솔직히 저는 책띠가 뭔기 잘 모르겠어요. ㅋㅋ
 
 전출처 : 로쟈 > 네가 읽은 건 장자가 아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것은 뜻밖에도 가장 오래된 고전 <장자>의 재번역본이다. 한겨레의 기사 타이틀은 아예 "왜곡·오역의 ‘장자’는 불태워라"인데, 그간에 나온 <장자>의 번역들이 왜곡과 오역으로 도배돼 있으니 다 불태워 마땅하다는 것. 역자인 기세춘 선생의 일갈을 옮기면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장자는 장자가 아니다.” 나도 몇 권의 번역서를 갖고 있는지라(비록 지금은 다 박스에 들어가 있지만),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동양 고전인지라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내가 처음 접한 건 허세욱 선생이 옮긴 범우문고판 <장자>였다), '네가 읽은 건 장자가 아니다!'란 소리니까 더 없이 도발적인/충격적인 발언임에 틀림없다. 소위 '전문가들'의 신뢰할 만한 리뷰들을 읽어봐야 상황판단이 가능할 듯싶지만, 일단은 역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책은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아마도 내일자 신문에 게재되는 모양이다.

경향신문(07. 01. 27) ‘장자’ 재번역한 기세춘씨

“노·장자의 기본 ‘캐릭터’가 완전 변질됐습니다. 저항성이 사라지고 지배 담론으로 윤색됐어요. 그 본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고증학적 작업을 거친 재번역이 필요합니다.”

기존 학계에 기세춘씨(72)는 ‘불편한 존재’다. “시중의 동양고전 번역서를 모두 수거해 불살라 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동양고전 번역서가 왜곡과 변질, 오역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게 기씨의 주장. 그가 “칠십 노인의 망령기와 당돌함으로 만용을 부려” 나선 재번역의 첫 결실로 ‘장자’(바이북스)를 내놓은 건 이때문이다.



“학계에선 아무도 경종을 울리지 않습니다. 저야 강단학계의 학맥이나 스승이 없어 자유로우니까 욕 좀 하겠다는 겁니다.” 기씨에 따르면 노장사상은 도교가 일어나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으면서 신비학으로 왜곡됐고, 정치권력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는 은둔과 청담의 사상으로 변질됐다. 왜곡의 뿌리는 2~3세기 중국 위진(魏晉)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조에 의해 등용된 왕필이 당시 반란의 중심이었던 도교 세력의 민중성을 거세하기 위해 ‘노자 도덕경’과 ‘장자’에 나타난 반체제성과 저항성을 제거해 체제순응적이고 권력친화적인 내용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국내에 출간된 노장 주해 및 해설서들은 왕필의 주해를 근간으로 삼은 탓에 이러한 왜곡을 답습한 것들”이라고 비판했다.

번역자의 오역도 ‘장자’의 본 모습을 훼손했다. 시대와 문화, 언어 등의 차이로 인한 변질과 오해 가능성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번역했다는 것이다. 기씨는 “은미하고 철학적인 담론이 치졸한 처세훈이 되고, 서사적인 우화는 그 핵심을 놓치고 초점을 그르쳐 다른 길로 빠져버린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그가 ‘장자’의 오역으로 꼽는 예를 살펴보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죽일 자를 풀어주는 것이오(綽乎其殺之)’로 해석해야 할 것을 ‘여유있게 죄인을 죽이는 것이다’로, ‘잘못을 행해도 형벌로 다그치지 말라(爲惡無近刑)’로 해석되는 부분을 ‘어쩌다 악한 일을 하더라도 형벌에 저촉되지 않게 하라’로 옮긴 게 대표적. “권력 저항적이고 무정부주의인 노장 사상에서 어떻게 이런 해석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게 그의 분노 섞인 한탄이다.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혁명적 담론인 ‘동심론(童心論)’도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올 김용옥 교수가 동심론을 기공술(氣功術)로 해석해 어린아이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꾸어 젊음을 되찾자고 한 것은 “한심하다”고까지 말했다.

기씨는 “중국 고전의 경우 수천년 묵은 고문자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뜻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고전은 내용이 포괄적이므로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등 광범위한 소양이 요구된다”며 “자기 깊이가 그걸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밥술이라도 먹게 됐으니까 적어도 동·서양 고전은 우리가 제대로 번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문은 비판정신이 생명입니다. 그냥 그대로 답습하려면 왜 합니까.”(김진우 기자)

07. 01. 26.

 

 

 

 

P.S. 참고로, 교수신문에 연재됐던 고전번역비평 <최고의 고전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서는 안동림과 오강남 역주의 <장자>가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표플 얻었지만 반론도 만만찮은 것으로 소개돼 있다. 지난 1963년 최초의 완역본이 출간된 이래 60여 종 이상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문학자와 종교학자의 번역이 가장 '읽힐 만한' 번역으로 추천되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거기에 '재야' 고전학자의 새 번역본이 보태진 셈이다. '정역본'으로 공인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장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하여 전문가의 조언을 같이 옮겨둔다.

교수신문(05. 07. 04) 장자,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장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고전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해석의 다양성은 모든 고전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특징이기는 하지만, ‘장자’의 경우 이 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따라서 ‘장자’를 펼칠 때는 먼저 어떤 시각에서 읽을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각박한 현실로부터 삶의 거리를 두게 만드는 번득이는 지혜로 가득 찬 우화집으로 읽힐 수도 있고, 특유의 도가적 상상력으로 포장된 신화적인 사유의 보고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또 그런 주제들을 탁월한 레토릭으로 버무려낸 한 편의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형형색색의 얼굴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들의 면면을 감안한다면 ‘장자’의 본령은 역시 철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자’의 뼈대를 이루는 사유들이 조형된 시기가 중국철학의 황금기인 ‘戰國’ 시대라는 점도 이런 판단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므로 ‘장자’에 대한 제대로 된 독법은 그것을 한 권의 철학서로 읽는 것이다.

‘장자’를 철학서로 읽고자 할 때 그 종잡을 수 없는 사유의 늪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한 선이해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첫째, ‘장자’에서 구사되는 언어적 표현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통상 ‘장자’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구사 방식은 크게 ‘우언(寓言)’과 ‘중언(重言)’과 ‘치언(癡言)’, 세 가지로 나뉜다고들 말한다. ‘우언’은 말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른 말 속에 은폐시켜 전달하는 방식이고, ‘중언’은 사회적으로 그 권위가 이미 확립된 사람의 입을 빌리는 이중의 방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이며, ‘치언’은 마치 내용물이 일정 기준 이상 차오르면 저절로 기울어져 쏟아지도록 고안된 술잔처럼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고착되는 것을 시종일관 거부하는 표현법이다. 이와 같은 언어구사 방식은 언어의 본성에 대한 특유의 통찰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이런 까닭에 ‘장자’를 읽을 때는 언제나 이른바 ‘행간’을 읽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장자’는 연대기를 달리하는 복수(複數)의 저자들이 만들어낸 집단 저작물이라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현재까지 가장 일반화된 견해에 따르면, ‘장자’에는 적어도 너댓 가지의 사상적 성향들이 혼재되어 있다. 장자 본인의 사상에서부터 그를 비교적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자후학들의 사상, 한비자류의 법가적인 경향성이 강한 사유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아나키즘적 색채가 농후한 사유 그리고 이런 정치적인 관심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탈속적인 개인주의적인 성향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혼재된 생각의 갈래를 개략적으로라도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장자’는 고작해야 잡다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끌어 모아 놓은 단편들의 모음집에 지나지 않게 된다.

셋째, ‘장자’에 스며들어 있는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의 성격을 간파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장자’에 담겨 있는 사유의 폭과 깊이는 ‘전국’이라는 시대가 제기한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나름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고뇌하고 소화해낸 결과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전국시대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이후의 동서양 철학사에 등장하는 모든 철학적 주제들의 원형이 제시된 시기이다. ‘장자’는 바로 이와 같은 지적 분위기의 중심을 관통하며 형성된 고전이다. 장자 본인의 사상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내편에서 다뤄지고 있는 문제만 보더라도, ‘자연’과 ‘인간’을 비롯해 ‘주체’, ‘타자’, ‘언어’, ‘소통’, ‘실재’, ‘몸’ 등 그야말로 현대 철학에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주제를 아우를 정도로 다양하다. ‘장자’는 이런 주제들이 특유의 탈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심미적 세계관 속으로 수렴된 결과다. 이점이 또한 현대의 포스트모던적인 지적 상황에서 ‘장자’가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자’를 읽을 때는 이런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먼저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자’를 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요소들이 중층적으로 얽히며 구축해내는 철학적 사유의 정수와 대면하는 작업이다. 몇 번의 두레박질로 모두 길어 올리기에는 그 사유의 깊이가 너무 깊은 책, 그것이 ‘장자’이기 때문이다.(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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