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나는 일단 계획이 성립되면 떠벌이고 다니는 편인데, 그것은 순전히 '완결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취재는 책에서부터 시작될지 몰라도, 사람에게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전 처음 술자리에서 만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관계자에게 귀중한 정보를 듣게 될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나카지마의 문학의 바탕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한학의 전통에 있다. 일례로 '제자'라는 작품의 전거는 공자가어, 논어, 사기, 춘추좌씨전 등 내가 주목하는 원전이다. 내가 소개를 받은 작품은 공자의 제자 자로를 중심으로 한 '제자'라는 작품이었는데, 아쉽게도 '제자'라는 작품은 작품집에 게재된 네 편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월기(山月記)'와 '명인전(名人傳)'은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 욕망이 서로 다른,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세로 그려져 있다. 산월기는 절대적인 문장을 좇다가 인간세를 벗어나 아예 짐승이 되었고, 명인전은 활의 고수가 되려다 활을 잊었다.
지고지순한 경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진배없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헤아린다면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산월기류로 분류될 것이고, '타원형 초상화'(에드거 앨런 포)는 아마 중간쯤에 위치할 테고, '달과 6펜스'(서머셋 몸)은 명인전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나카지마의 서술 방식이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은 '장자식 우화'라는 모양새를 따르고 있다. 우화라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명확히 하거나, 과장되게 만들어 호쾌한 담론을 이끌어낸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인간형'을 지향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나마 '산월기'라는 작품은 우화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예쁘게 보인다.

문제의 걸작은 '제자'와 '이능'(혹은 이릉)인데, 이들은 모두 명백한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문학적 형상화이다. 그만큼 이 작품들은 실망과 만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제자'라는 작품은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와 가장 근접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야기의 대상이 공자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이며, 포스트 공자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자'라는 작품에도 역시 '자공'이라는 인물이 비중 있게 소개되는데, 자로와 자공을 한마디로 비교해서 '가슴과 머리'의 차이라고나 할까. 자로를 도드라지게 만들려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자공이 주는 아우라를 상당 부분 제거했기 때문에 '제자'라는 작품은 대부분의 '시대'를 잃어버렸다.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포스트 공자'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의 신격화와 공자라는 하나의 '타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공자가 함유하고 있는 내적 모순의 양상을 '장자'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측근'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은 우리가 왜 '공자'를 직접적인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공자가 아직까지 '신화'의 태를 벗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도 '공자 이후'에 대해서 의제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공자 이후'를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이 작품이 '내적 성취'에 집착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은 '자로'라는 불립문자의 인물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려는 데서 오는 부조화일 수도 있다. 작품에서는 희미하게나마 '공자 - 공자제자', '자로-자공'의 대립구도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펼쳐보였다면 '산월기'나 '이능'보다는 '제자'가 돋보였을지도 모른다. (작품집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은 '산월기'와 '이능'이다.) 그리고 '포스트 공자'에 대한 내용을 대폭 생략한 나머지 흔적으로만 남게 만든 점 역시 아쉽다.

그러나 자공은 또 한 번 골탕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책 103쪽)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의문을 던지고 넘어간 점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공자 시대의 불가피한 '이견'으로 치부될 뿐이다. 만약 이것이 중요한 '의견'이 되지 못하고, '이견'으로 정리된다면 공자의 신화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제자'라는 작품이 '유림 류'의 단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데 있다. 평전과 소설의 영역을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뜻인데, 비록 작가적 상상력과 문학적 형상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스케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지적 작가'의 개입이 너무 심해서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 읽었나 해서 한번 더 읽었지만,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아마 당장 이야기의 시점을 선택하라면 나는 '관찰자 시점'을 택할 것이다.

이에 비해 '이능'은 왜 대표작인지를 보여준다. '시대'가 흥미롭게 버무려졌으며 '인물의 대비'가 완숙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열전'의 문체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심심하게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을 나는 현대어에 대한 일종의 승리라고 보고 싶다. 사실 실존 인물, 그것도 역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인물을 현대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열전체나 우화체의 단순한 필체와 '전지적 시점'으로 펼치는 것이 현장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능'은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능'에게서 배울 점은 등장인물이 역사적 인물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인물들의 '값'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거를 최대한 기울여 인물에 대한 분석을 완성한 후에 집필을 했음을 증명한다. 내가 유의할 대목이다.

이 작품으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는 피와 살을 더하게 되었으니, 이 책을 쓴 작가와 이 책을 추천해준 분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이제까지 그려진 '역사의 인물들'은 대체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들이었다. 이 작품은 '걸어나온' 인물들을 그렸다고 하였는데, 이 점에 동의한다. 역사 속의 인물들은 반드시 '길'을 따라 걸어와야 할 것이다.

 

ps : 작품에는 신영복이 추천과 감역을 했으며, 이철수가 그림 작업을 했다. 이 또한 좋은 양념이 될 것이다.

 

※ 타이틀이 [자공리뷰1]이라고 되어 있는데, 전에 썼던 '자공리뷰1'은 이야기의 직접적 소재가 될 수 없으므로 '자공리뷰 외전1'로 바꾸었다. 그래서 '자공리뷰1'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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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1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 나를 놓지 않는다~
서재 서포터스 모집관련2

오래 전에 즐겨 읽었던 책 중 '사기열전'에 떠올리는 구절이 있네요. 오자서라는 사람이 오나라 왕에게 집안이 몰살되자,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오나라를 떠납니다.
"나는 오나라 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온 인생을 걸 것이네."
그 친구가 단호히 대답합니다.
"나는 자네의 시도(복수)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네."

저는 알라딘의 직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기획에 관여한 사람처럼 '나댄' 구석이 있습니다.
마을지기(김성동 님)도 역시 저와 대등한 이웃 알라디너는 아니지만, 마치 이웃 알라디너와 같이 가면을 벗고 마음의 이야기를 한 면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은 알라딘의 '특이한 내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내력이 좋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러한 내력이라는 것은 '영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수익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운영진이 불특정하 다수가 아니라 다소 명확한 '소수'와 커뮤니티를 이룰 때, 그만큼 기대이익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알라딘의 철학이 이런 상황을 감수한 것이라면 제가 알라딘을 좋아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거겠지요.

지기님이라고 해야 할지, 김성동 님이라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하지만,
김성동 님이 개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주셨기 때문에 김성동 님을 향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장문의 댓글을 아마도 그저께 새벽에 쓰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자리에서 실은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다른 분들의 생각을 수렴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제주도에서 조카들이 올라와서 '봉사'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이 밤에 남깁니다. 제가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제가 전해드렸던 의견과 김성동 님의 입장 이외의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때문에 별다른 내용은 각설하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좋은 리뷰에 관한..

좋은 리뷰가 가지고 있는 전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전제를 하나 더 이야기했으면 좀더 명확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전제는 '나에게 있어(My)'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리뷰가 좋은 리뷰입니다. 그리고 나는 알라딘이나 책을 읽는 사람 중 1사람 이상의 위상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육아에 관한 리뷰이거나 중학생이 작성한 리뷰 역시 나와 동일한 값을 갖는 '좋은 리뷰'입니다. 김성동 님은 제가 말하는 좋은 리뷰를 '글솜씨 있는 리뷰'로 한정하지는 않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추천단의 공신력' 부분에서 그러한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든 노동자든 진솔한 리뷰라면 누구에게나 통하지 않을까요. 그런 리뷰를 좋은 리뷰라고 느끼는 '가슴' 쯤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발굴 혹은 '리뷰활용'

현실성 운운에 관한 부분이 어떤 점인지 저는 대략 인지하고 있고, 또 수긍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입장 차이도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논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작성된 리뷰에 대한 투자 혹은 재투자'의 지점인데, 알라딘의 리뷰가 다른 인터넷 서점이나 포털에 비해서 양질이라는 평가는 어느 정도 공론이 된 것 같으며, 저도 그 점에 대해서 자랑스러워마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복리뷰에 관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알라딘의 정체성이 형성돼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우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알라딘을 아낀다는 알라디너조차도 '리뷰효과'를 별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리뷰를 쓰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흥미 있는 책을 검색했을 때 '보물'을 주은 것처럼 주옥같은 리뷰를 만나는 행운을 가끔 만나기는 합니다.

"'마이리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셨죠. 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알라딘의 리뷰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이주의 리뷰'가 대표적인 리뷰 소개의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그 외에는 생각나는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알라디너의 서재에 방문해서 챙겨 읽지 않는다면 저는 리뷰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추천수'에 의한 리뷰는 '베스트셀러'와 같습니다. '발굴'이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알라딘의 책이 아니라 '리뷰'에 대해서 애정을 가져달라, 또는 이에 대한 기술적인 고민을 해달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요구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인터넷 뉴스보다 종이신문을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인터넷에서라면 영원히 '클릭'하지 않았을 뉴스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라딘에 적용해 본다면, 알라딘이 소개해주는 '내가 영원히 찾지 않았을 책에 관한 리뷰'를 읽게 된다면 인생의 좋은 책을 만난 것처럼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에 관한 영업적인 판단도 의뢰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만약 이런 게 있다면 저의 도서 목록표, 또는 다른 독자들의 도서목록표가 좀더 다양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포터스가 만약 이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격분해 장문의 글을 썼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저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카데믹'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리뷰를 읽고 싶은 것이 제 소망이고, 알라딘에는 그러한 리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는 좋은 리뷰를 접할 때마다 이러한 확신은 더 커졌기 때문이죠.

제 글 중 '논조' 관련 부분과, 구구절절하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제안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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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서재 서포터스 모집관련2

최근 서재 서포터스 모집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찬성을 넘어 적극 참여하시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나 분석적인 비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분들에게 이 현상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어느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의견들을 적극 수렴하여 반영해야 내실 있는 작품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젝트와 '리뷰 평가 제도'에 관한 몇 가지 지적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매너 님은 이 사업 자체가 폐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주셨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매우 필요하며,
오히려 늦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너 님의 의견도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바랍니다.

일단 전체적으로 알라딘은 자신이 보유한 서평에 대해서 활용도가 지극히 떨어진다는 단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서재 서포터스 모집 역시 방대한 양의 리뷰에 대해서 적절히 활용코자 기획했다고 판단하지만, 방법적인 측면보다 '철학의 부재'에서 오는 실책이 더 큽니다.

<문제점>

1. "이주의 마이리뷰"라는 이름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문기사도 아니고 리뷰는 기본적인 시의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양서'라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오히려 '스테디 셀러'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이주의 리뷰'는 이러한 책의 특징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주의 마이리뷰를 심사하려면 심사 기간 안에 제출된 리뷰라는 전제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심사 기간을 벗어나거나 파악되지 못한 리뷰는 어떻게 합니까?

2. 서재 서포터스를 모집한다고 하셨는데, 참여 툴이 단순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하던 대로 '추천' 등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는 공지를 얼핏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참여할 수 있는 '재미'가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한 장의 종잇장일 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깊은 반성을 촉구합니다.

3. 2번의 비판과 상통하는 부분인데, 영역화와 전문화에 대해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포터스나 심사단이라면 일반 알라디너가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신력이 갖춰져야 할 텐데, 이 부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네요.

4. 평가기능에 대한 내용입니다. 내부적으로는 1기 서포터스 활동 분야를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시고 있겠지만, 그것을 일정 정도 공개하여 2기 서포터스를 할 때는 좀더 진화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처방을 한다면

<대안>

1. 전방위적인 2원화 시스템 구축
(1) 평가 대상 리뷰와 심사 기간의 2원화
"이주의 리뷰"를 평가할 때는 그것이 반드시 심사 기간 내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으로 그러한 의지를 반영해야 합니다.
예컨대 서평 평가 작품이 5개라면 그 중에 4개는 심사 기간 내에 작성된 리뷰로 하고, 나머지 1개는 서평 기간과 상관 없이 작성된 리뷰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알라딘 내에서 작성된 모든 리뷰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추천 수'에 의한 서평과 '발굴'에 의한 서평의 2원화
'좋은 서평'이라는 말에 전제된 의미는 '인기가 좋다(추천을 많이 받았다)'거나 '인기는 없지만 참 좋다(알려지지 않았지만 좋다)'는 점입니다. 알라딘 '이주의 리뷰'에는 전자는 있지만, 후자는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후자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순기능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의 원칙을 세운다면 서포터스의 운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포터스 활동 기간에 60회나 되는 추천권을 소모해야 하는 조건 대신, 알려지지 않은 좋은 서평 몇 건을 발굴하는 미션을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서평 중 일부를 가려 '이주의 리뷰'에서 선정한다면 현재의 서평 평가 제도보다 광범위한 지지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이 지적하신 것처럼 일본 소설 일색이 될 수도 있는 우려를 씻을 수 있습니다.

(3)알라딘 서평 심사위원과 서재지기 서평 추천단의 2원화
오해의 여지가 많은 대목인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도 '이주의 리뷰' 선정을 서포터스에게 일임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을 받아들입니다. 알라딘 측에서 나름대로의 평가 척도를 가지고 있겠죠. 그렇지만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포터스 추천단이나 일반 알라디너의 추천 수가 일정 부분 반영되고, 내부 평가 위원의 판단이 일정 부분 반영되어 그 '총계'로 '이주의 리뷰'를 선정한다는 공식을 명확히 하면 좋겠습니다.

2. 서포터스 참여툴과 영역화 구축
서포터스 참여툴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천권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서포터스 자체로서도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제안한 몇 가지 건만 활용해도 적잖은 참여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추천 리뷰"와 "스테디 리뷰"를 2원화시켜 운영한다든지, 평가 영역을 구분하여 참여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회문화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그 분야에 해당하는 서평의 목록을 알라딘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나 정치, 역사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무가내로 추천만 누르라는 식의 캠페인은 성의부족이 아닐 수 없군요.
서포터스가 영역화되고 전문화되고 다양한 참여툴 안에서 활동할 수 있을 때 서로서로 얻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은 캠페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3. 평가시스템 구축
서포터스 1기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진화'는 필수적입니다. 진화가 되기 위해서는 '반성과 성찰'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평가 기능을 올바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A라는 알라디너가 1기 서포터스에 지원했다고 합시다. 그가 활동한 영역이나 그가 추천하거나 발굴한 리뷰의 목록을 기록하고 평가의 시점에서 그것을 공개하여 다른 알라디너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알라디너는 서포터스를 평가할 수 있고, 그 자료는 2기 서포터스 활동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알라디너에게 평가를 받은 서포터스인 만큼 지금보다 좀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비용과 효과의 함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속가능성과 효과성을 위해 캠페인을 섬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좋은 서포터스를 알라디너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라딘이 보유한 좋은 리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한데,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할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에 있는 주옥같은 리뷰들이 썩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을 지켜보는 알라디너로서 한말씀 드렸습니다.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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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2원화라는 것이 좋은 것 같군요. 전에 어떤 분의 문제제기에서 본 내용은 현재의 "이주의 마이리뷰"가 추천수가 거의 없더라도 좋은 리뷰들을 선정하고 있었으나, 추천수만으로 "이주의 마이리뷰"를 뽑는다면 인기 알라디너의 리뷰나 서평단의 리뷰들 위주로 뽑히고 알려지지 않은 좋은 리뷰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에 추천수만으로 "이주의 마이리뷰"가 뽑히는 변화를 반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대로 '추천수'와 '발굴'이 이원화되면 좋을 것 같군요. 또 기한이 없는 리뷰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고요. 잘 읽고 갑니다. 알라딘에서도 이 글을 심사숙고해서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승주나무 2007-07-3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winpix님//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혹시 말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했죠. 다들 반응들이 없으셔서.. '발굴' 부분은 알라딘에서도 관심을 좀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웬 자회사가 이리도 많아~~

이랜드의 회사들입니다.

이랜드 회장은 골수에서부터 노동자를 파리만도 못하게 보더군요.

이렇게 해서 '가치주' 되겠습니까.

목록 올립니다. 혹시 자주 가시는 곳이면, 재검토 바랍니다. 오늘 여직원들 경찰에 한 쪽 팔, 한 쪽 다리씩 잡혀서 나오는 장면 보고 울지 않을 수 없더군요.

요즘 시사저널 사태에 집중하느라 관심 갖지 못해 미안합니다. KTX는 벌써 수백일째인데...

조합원들 팔짱 끼고 눈물저항… 경찰 순식간에 작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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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고민 있으세요?



헬로우, 캐리돌(caridoll)

- 삐끼 돼지 돈돈이와 캐리돌의 모험


몸하나 겨우 뉘일 만큼의 한뙤기 터전을 빼앗겨 구천을 떠돌던 인형들이 있었다. 이미 저잣거리에는 대목 장이 서서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인형들이었다. 인형 주인은 인형을 창고에 놔둔 채 1년이 넘도록 한뙤기 터전을 찾으러 다녔다. 바로 시사기자단 양한모 기자의 이야기이다. 양한모 기자는 시사저널의 표지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표지에 온몸을 불살랐다. 아줌마 모델을 구하지 못해 직접 뽕 만들어 붙이고 몸빼 바지를 입고 촬영에 임했던 적도 있었고, 손에 직접 수갑을 차서 표지사진을 찍었던 적도 있었다.

양한모 기자의 시사저널 표지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두 개 있는데, 그것은 검찰보다 먼저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시사주간지에게 보기 좋게 복수를 해준 일화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제일 먼저 구속한 것은 김영삼 정부가 아니고 바로 시사저널이다. 구속 영장이 발부되기도 전에 그를 표지(제319호) 사진 속 철창에 가둔 것이다.
당시 시사저널이 가판에 깔리자 전 전대통령 보좌진들로부터 서슬 퍼런 항의가 이어졌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마음만 먹으면 초상권 침해 및 명예 훼손으로 시사저널을 걸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잡지가 발행되기 직전 편집국장과 담당 데스크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전 대통령에게 분노하던 사회 분위기와 국민 정서를 '빽' 삼아 지면상의 구속 집행을 단행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항의가 있던 다음날 실제 구속이 집행되어 편집국 성원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 중에서


금창태 사장이 경영진으로 있었다면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거액의 소송을 당한다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표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외환위기 때를 생각하면 미국의 한 유력 시사 주간지가 떠오른다. 당시 이 잡지는 한국이 처한 위기를 형상화한답시고, 경회루가 물 속에 가라앉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디자이너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그 뒤로 적절한 이슈가 생기면 '복수를 해 주마' 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 한 번은 미국의 독립을 상징하는 주요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으로, 또 한 번은 달러(제789호)가 무너지는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 중에서



<양한모 기자가 디자인한 역대 시사저널 표지그림, 319호에서는 정부보다 먼저 지면구속을 단행한 위험천만한 표지가 실렸고, 789호에는 한국의 외환위기사태를 조롱한 미국에 대해서 달러를 깨뜨리면서 통쾌한 복수를 가했다. 캐리돌의 등장을 알린 최초의 작품은 473호 표지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그룹 로고가 찍힌 화투패를 들고 있다. (출처 :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출판사))>

양한모 기자가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서 미국에 당한 조롱을 되값아준 장면을 읽고 오랫동안 통쾌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다. 지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사기자단의 기자들은 저마다 이러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 곁에서 안타깝게 이를 지켜보던 독자들이 팔을 걷어붙여 이들을 돕기로 했다. 재미 소설가 이충렬씨를 필두로 예술인들이 하나둘 그림을 보태고 (사)민족예술인협회와 갤러리 '눈'이 이를 뒷받쳐 '굿바이 시사저널展'이 성립됐다. 거기에는 여러 미술인들이 정성껏 그리고 정성껏 기증해준 그림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그리고 양한모 기자의 캐리롤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삐끼'가 된 이 돼지를 기억하십니까?


전시장 입구에는 왠지 눈에 익은 돼지인형이 서 있다. 가슴에는 "저는 돈 밝히는 돼지 돈돈( don 豚)입니다. 저도 시사기자단을 돕고 싶습니다."라는 푯말을 달았다. '삐끼 돼지 돈돈이'는 예전에 창간 선언식 때 고사상에 올라왔던 바로 그 돼지이다.



 
 
<신매체 창간 당시 돼지머리로 승화했던 삐끼 돼지 돈돈이.  이날 돈을 많이 먹었지만 배탈은 나지 않았다고 한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40)s F3.5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40)s F2.8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25)s F4.5

<돈돈이가 이름을 얻은 것은 7월 18일 '굿바이시사저널전'을 하면서이다. 마스코트로 이용하자는 의견에 의견이 덧붙어 아예 삐끼로 고용되었다>


엄마 찾은 행복한 캐리돌, 주위의 부러움 사다


양한모 기자는 정치인과 각종 유명인들을 기탁해 만들어진 캐리돌을 선보이며, 반드시 주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실제로 주인이 와서 캐리돌을 상봉하는 유쾌한 일도 있었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10)s F4.0


<대선 주자 선언을 한 한명숙 전 총리가 자신의 캐리돌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한모 기자는 한총리의 실물을 보지 못해 감히 색을 넣지 못했다며 반드시 예쁘게 도색해 줄 것을 약속했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10)s F4.5

<최근 대선 주자를 선언한 신기남 의원이 자신의 캐리돌 옆에서 쑥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13)s F2.8

<두 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근엄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특유의 표정을 보이고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론의 따가운 창날을 막아서는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Canon] Canon Canon PowerShot S30 (1/40)s F2.8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시의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스포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고, 박근혜 전 대표는 다소곳한 자태로 서 있어서 이미지의 대비를 보여준다.>

 
  
 
 


<범여권 유력 주자인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김근태 후보(왼쪽 상단에서 시계방향으로)의 캐리돌도 이날 전시회를 찾았다.>



사회 각계의 유명인들도 전시회장 빛내


이날 전시회장에는 정치인 캐리돌뿐만 아니라 재계, 연예계 등 각계의 유명인사들도 함께 모였다. 이건희 삼성회장, 이승엽 선수, 박지성 선수, 이천수 선수, 월드스타 비, 연예인 김제동 씨 등이 이날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외에도 미술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행사는 밤 10시까지 갤러리 '눈'에서 개관하며, 7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시사기자단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바쁜 가운데 자리에 참여했다. 월드스타 비, 요미우리 이승엽 선수, 이천수, 박지성 등 스포츠 스타들도 함께 했다. 이천수 선수가 세레모니로 배에 새겨 넣은 문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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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30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7-07-3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아직이요 ^^ 벙개 좋죠~~

2007-07-31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