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대한민국 헌법 제21조)


나의 언론운동 소회

1년이 안 되는 시간이지만 전 시사저널 기자(현재의 <시사IN> 기자)들과 독자들 틈에 들어가 언론운동을 하는 동안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2007년을 내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변화가 있었다. 

지금도 교육, 법률, 언론, 문화 이 네 가지가 나아진다면 대한민국에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고 믿으며, 그 중에서 나는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매진한다는 초심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여러 갈래로 갈려 있어서 단지 교육의 토양 위에서만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언로(言路)라고 해서 수많은 주체와 관점이 부딪쳐서 격렬한 토론과 감시가 오가는 생생한 현장이다. 하지만 시사저널 언론운동을 하면서 우리 시대의 언론은 단지 언론사와 자본에 상당 부분 종속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와 언론사가 오롯하게 언론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시사저널 언론운동에 독자가 주된 주체로 급부상했듯이 언론에는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출판계'에 들어갔다. 출판사가 아니란 점이 중요하다. 출판사는 왜곡된 출판구조에 일정 부분 봉사할 수밖에 없고 그 구조 자체를 깨뜨리는 데에는 그만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관심사가 언론의 독자에서 출판의 독자로 넘어간 것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헌법 21조에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묶어서 읽도록 기록되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전까지 반쪽의 자유(언론자유)를 외쳤다고 생각한다.


언론과 출판, 서로의 문을 두드리다


출판이 출판의 영역에 갇혀 있고, 언론이 언론의 영역에 갇혀 있는 것만큼 보기 싫은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 닫혀있던 두 경계에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향신문사가 기획특집기사를 출판화한 일과 시사저널 기자들이 만든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출판한 일을 무척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비록 파업 자금을 위해 급히 출판되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경향신문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다시피 기획연재가 가장 탄탄한 신문 중의 하나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취재하고 연재한 기사는 애초부터 출판을 계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특집기사로서도 책으로서도 지적할 점이 별로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언론과 출판이 서로의 닫힌 문을 줄기차게 두드려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출판과 언론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출판은 시의성을 좇지 못한다는 데서, 언론은 논의의 깊이와 형식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둘째, 독자들의 요구가 매우 까다롭고 심도 있다는 데 있다. 언론의 독자는 출판의 독자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이유는 앞서 밝힌 언론과 출판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꾸 이동한다. 독자는 더 이상 의도적인 언론 호도와 왜곡을 받아줄 만큼 어리석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셋째, 언론과 출판은 사회적 문제제기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있으며 의제를 교환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라는 단행본은 <김앤장>에 대한 취재의 방향과 문제점을 포함한 의제를 언론에 제시해 주었다. 언론 역시 정체된 출판계에 활력과 자극을 줄 능력과 사명을 모두 갖고 있다.

일단 출판으로 성립되면 독자들의 검증을 받으면서 쇄를 거듭할 수 있다. 리영희 선생의 저작집은 언론과 출판에 골고루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선생은 3월 27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책이 팔린다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내가 매진하는 것에 대해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역설적으로 내 책이 안 팔린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와 같이 언론에서 제기된 최초의 문제는 출판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씩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출판은 언론에게 문제제기의 시발을 제공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언론답지 않은 언론이 활보를 치는 현실에서는 '출판'이라는 검증의 장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제가 채택되어야 한다. 언론의 출판화 과정 속에서 쓸데없는 문제제기는 모두 걸러질 수 있다.


사회적 독서

이것이 언론과 출판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땅히 독자들은 '사회적 독서'로 화답할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적 독서를 한다는 것은 '불편한 독서'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편한 일이 많은 시대를 만난 독자가 불편하지 않고 편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책이나 신문 앞에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불편한 독서'를 계속 하기로 했다.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나는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독자들과 함께 '경제민주화 읽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라는 화두가 '선진화 논리'에 심각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반드시 '경제민주화'는 언론계와 출판계 모두의 의제가 되었을 것이고, 출판이라는 문을 통해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후로 현재까지 좋은 책들이 독자들을 찾아오고 있다. 




 

 

 

첫 번째 책은 <한국경제 새판짜기>(미들하우스)이다. 『한국경제 새판짜기』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주요 경제정책을 입안한 경제학자와 경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경제학자, 대기업 전문기사 들이 좌담의 형식을 통해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점을 구체적인 실증 사례로 버무렸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분량 대부분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건'보다는 '경제민주화를 방해하는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올인하고 있던 '경제'는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는데, 오히려 '실패'라는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도서정보 유통매체 리더스가이드에서 독자들과 함께 서평단을 구성해서 책을 읽고 함께 리뷰를 썼다.

두 번째 책은 <법률사무소 김앤장>(후마니타스)이다. '김앤장'은 IMF 이후에 국내의 알짜 기업들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는 법률자문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이뤄낸 일명 '법률 전문 거간꾼 집단'인데, '변호사'라는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인권을 지키는 사람들이 이런 존재근거를 배반하는 행태를 일삼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 책이 바로 <벌률사무소 김앤장>이다. 이 책은 단지 리뷰어를 모아놓고 리뷰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와 직접 만나 '김앤장 문제'의 거대한 뿌리와 사회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2008년 3월 18일 오마이뉴스 기사"<법률사무소 김앤장> 공저자 장화식씨와 함께한 토론회")

세 번째 책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프레시안북)이다. 이 책은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일곱 팀을 다루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상조 교수, 노회찬, 심상정 의원, 이상호 MBC 기자,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그들이다. <김앤장>과 마찬가지로 탐사보도의 틀을 출판에 맞췄기 때문에 기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도 있고, 시의성을 잃었거나 깊이와 천착에 한계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도서포털에서 ‘삼성’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읽을 만한 몇 안 되는 텍스트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레시안 기자들과 게릴라 몇 팀, 그리고 독자들과 만나 5월 초, 삼성특검이 최종보고서를 발표할 즈음에 맞춰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한다.취재의 어려움이나 삼성 사건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한다.

 

출판사와 언론사가 경제민주화 의제에 호응해 좋은 책을 출간해준 덕분에 독자들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책으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사회적 독서의 정점이며 언론ㆍ출판의 연대의 이와 같은 모델이 자꾸 생겨나 광고탄압과 고소고발로 억압된 언론계와 처세서, 재테크 등 신자유주의 책에 가위눌린 출판계가 함께 활로를 모색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시사저널 사태라는 동굴을 뚫고 탄생한 <시사IN>이 한주의 기사를 넘어 단행본으로 출간될 수 있는 중장기 기획을 고민하여 독자들이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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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디의 비밀

조사해본 결과
예스와 알라딘에서 주소창 한글과 영문에 대한 암투가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먼저 예스이십사에서 한글도메인을 선점했군요.
예스 도우미들이 수백 차례 임상실험을 한 결과
알라딘 고객들이 'n'자를 자주 빠뜨린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aladdi.co.kr'을 접수했습니다.

수세에 몰린 알라딘은 그래도 한글만은 지켜야겠다고 판단해
'aladdi' 대신 '알라디'를 사수합니다.
그래서 주소창에 '알라디'를 치면 알라딘으로 접속할 수 있는 거구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알라딘'은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알라딘에서도 역시 도우미들을 통해서 임상실험을 한 결과
알라딘 고객들은 좀처럼 한글로 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알라딘'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고..
(그래서 검색창에만 올려 놓았죠, 그게 싸게 먹히니까)

또 한 가지는 '알라디'를 사수하느라 출혈이 심해서
정작 '알라딘'을 살 수가 없었던 거겠죠~

그렇다면 왜 '알라딘'이 '알라디'를 고수했을까요?
그것은 두 회사 오너의 일종의 자존심 대결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암튼 'aladdi'를 선점한 예스로서는 알라딘으로 갈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는 반면
별로 효용가치가 없는 '알라디'를 붙드는 통에 알라딘은 정작 한글주소 '알라딘'을 못 찾고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한 모양입니다.

한편 예스이십사의 경우 '예스이시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알라딘이 '알라디'를 산 것처럼 '예스이시사'를 사버릴까 하다가,
검색창에 띄우는 선에서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검색 전쟁은 예스가 일단 선봉을 빼앗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이 몇 일인가요? ㅋㅋㅋ

<정리>

aladdi.co.kr => 예스24로 연결
알라디 => 알라딘으로 바로 연결
aladin.co.kr => 알라딘으로 바로 연결
예스이십사 => 예스24로 연결
예스이시사 => 엠파스 검색 "예스24"가 상위에 뜸
알라딘 => 엠파스 검색 "알라딘"이 상위에 뜸
yes24.co.kr => 예스24로 연결


<유사 도메인>

aladdin.com => 외국사이트
aladin.com => 외국사이트
yes23.com => 예스23 따른 서점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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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8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8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8-03-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소설이죠? -_-a

승주나무 2008-03-28 11:35   좋아요 0 | URL
리얼리티에요.. 쳐보면 아실 거 아니삼 ㅋㅋ

다락방 2008-03-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승주나무 2008-03-28 14:49   좋아요 0 | URL
힛힛^^;;

조선인 2008-03-2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씩 도메인전쟁이 벌어지는군요. 몇년전에 우리홈쇼핑이랑 농수산홈쇼핑 간의 도메인 전쟁도 정말 흥미진진했었는데. ㅋㅋ

승주나무 2008-03-28 14:49   좋아요 0 | URL
우리홈쇼핑과 농수산홈쇼핑이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암튼 도메인의 세계는 참 재미있군요..

무스탕 2008-03-2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 막 믿고싶어져요 +_+

승주나무 2008-03-28 14:48   좋아요 0 | URL
믿으세요~~ 믿습니다.
이게 다 쳐보고 말하는 거라서..
믿지 않기도 어려울 걸요 ㅋㅋ

L.SHIN 2008-03-2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핫, 이런 귀여운 싸움이라니.(웃음)
그나저나, '예스24'는 자존심도 없는가. 그렇게까지 해서 손님을 끌다니.
남의 간판을 달면 자신들의 간판에 대한 긍지도 없단 뜻 아닌가.쯧쯧..

승주나무 2008-03-28 20:27   좋아요 0 | URL
'aladdi.co.kr'을 가져간 것은 분명 예스의 꽁수라고 볼 수밖에 없네요 ㅎㅎ

물만두 2008-03-28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요? 우와~

승주나무 2008-03-28 20:26   좋아요 0 | URL
제가 물만두님한테만 속삭이는 글로 말씀드립니다.
맨 만지막 한줄 보이시죠?
"그건 그렇고.. 오늘이 몇 일인가요? ㅋㅋㅋ"
오늘이 4월1일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4월1일 아시죠 ㅎㅎ

그렇지만 도메인 치면 나오는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랍니다.
제가 좀 각색해서 꾸며본 거에요.. 어디가서 말하지 마세요~~

라로 2008-03-29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정리세요~.^^;;;
전 aladdin.com => 외국사이트, 로 연결 된적 몇번 있었어요~, 초기에!ㅎㅎ
그래서 믿습니다, 압니다.ㅋㅋ
아참 첨 인사드려요~,^^

승주나무 2008-03-29 11:18   좋아요 0 | URL
나비 님 안녕하세요. 저는 나비님 존함을 익히 들어왔는데, 인사를 드리는 것은 첨인 것 같네요.
웬디양 님이 재미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그 끄트머리에 좀더 매달린 것 뿐이지요
재밌으셨다면 저도 즐겁네요^^

누구엄마 2008-03-2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웬디언니이름이 제목에 떠있길래 와봤는데
요런 재미난 글이 있네요.

히히히히히히 ^▽^

웽스북스 2008-03-29 21:23   좋아요 0 | URL
엄훠뭐뭐 부끄럽구나 흐흐
(승주님 어른아이는 저의 대학 후배랍니다 ㅋㅋ 제가 알라딘으로 꼬셨어요)

승주나무 2008-03-30 22:38   좋아요 0 | URL
어른아이 님..반가워요~
웬디 언니의 동생이라면 어른아이 님도 참 좋은 분이실 것 같아요.
친하게 지내요..히히히히히^^

웽스북스 2008-03-2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는 알라디 한글로 치면 왜 알라딘이 안나올까요 ㅋㅋ

승주나무 2008-03-30 22:39   좋아요 0 | URL
잘못 친 거 아니에요? 알롸디..처럼 ㅋㅋ

2008-03-3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1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당에서 밥 먹고 나면
어떤 곳은 나보고 돈내고 커휘 뽑아먹으라는 데가 있고,
어떤 곳은 자동으로 커피가 나오고
어떤 곳은 주인이 직접 100원짜리를 챙겨 준다.

나야 자동으로 나오는 곳이 가장 편하지만..
이번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자동으로 나오는 식당에서 밥먹고 커휘를 눌렀는데,
안 나오는 거다.
주인아저씨(김치를 '짐치'라고 하고, 네 개를 '니 개'라고 하는 구수한 아저씨)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벌금 먹었다"고 한다.
구청에서 단속 나온 모양이다.
분명히 옆 식당에서 신고를 했겠지~

그래서 그 후로 식당커휘는 못 마시게 됐다..
식후땡이 참 좋은데...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뽑아준 50만원짜리 커휘가 생각난다~~

요즘에는 참 이상하다..
10억원짜리 책을 읽지 않나..
50만원짜리 커휘를 마시지 않나...
아픔이 너무 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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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3-27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식당에서 커피 자판기 놓으면 안되는 거에요?
돈 받는게 아닌데도 뭔가 걸리는 건가요? '이중영업 안돼' 뭐 이런식..?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레스토랑에서 아이스크림, 커피 등도 디저트로 별도판매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그것도 엄연히 따지면 그런 것만 파는 가게가 따로 있으니까.
뭐야~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되는 그런 법이라면 미워할거에요. =_= (불공정 제일 싫어)

승주나무 2008-03-27 20:06   좋아요 0 | URL
일단 고발이 들어가면 빼도박도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어떤 규정에 의해 불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쌍한 아저씨 50만원 벌려면 도대체 몇 상이나 더 팔아야 할까 ㅠㅠ

L.SHIN 2008-03-27 21:50   좋아요 0 | URL
흐음...오늘 저녁 회식한 곳에서도 미니자판기 있던데.
100원 넣고 빼먹었어요. 이 글이 떠오르더군요.(웃음)

웽스북스 2008-03-28 01: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커피자판기 놓여져있는 곳 많은데....
으흠....;;;; 안되는건가?

승주나무 2008-03-28 10:10   좋아요 0 | URL
^^

승주나무 2008-03-28 10:11   좋아요 0 | URL
웬디양 님.. 지난번에 커피자판기에 돈을 넣으라고 해서 안내문을 보니까..
커피 재료값이 많이 드니까 양해 바란다고 하던데..
따른 규정이 생겼나 봐요..
일단 고발이 오면 공무원들은 어떤 식으로든 답변을 해야 하거든요~
암튼 좀 거시기하더라구요~~

세실 2008-03-29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안녕하세요~~ 헤헤~
식당 자판기는 돈 주고 빼먹으려면 아깝지요.
치사하게 그런것도 찔르는군요.
커피 아니죠~ 커휘 맞습니다~~(요즘 변기수가 제일 재밌네요~)

승주나무 2008-03-30 22:41   좋아요 0 | URL
세실 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원음발음 안 하면 성토되는 분위기라 ㅎㅎ
저는 '쭌~나'가 재밌더군요~

보물섬 2008-05-2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왈, 일회용 종이컵때문에 그렇다고 하네요. 동생이 가는 식당에 그런 비슷한 문구로 일회용종이컵을 판매하지않고 무상제공 어쩌고 하니 무료로 커피를 드릴수 없다고 써있다고 하던데..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일회용봉투 공짜로 주면 안되는거랑 마찬가지법률 적용이 아닌가 싶어요.

승주나무 2008-05-29 11:11   좋아요 0 | URL
네.. 자판기마다 그런 게 붙어 있더라구요.
근데 이상하게 돈 내고 먹으면 운 없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인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 - 왜 교육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이득재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불편하고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저자 ‘이득재’가 누군인지 찾아봤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공동 소장, 계간지 『문화과확』의 편집위원이다. 책 제목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와 같이 그의 글은 ‘도전적’이다. 이렇게 단언적이고 도전적인 말을 하는 저자라면 분명히 그 맥락과 내력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미 언론지면을 통해서 ‘이득재 식 논평’들을 만들어오고 있었다. 2005년 계간지 <문화과학> 가을호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여론의 삼성비판을 대표하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수사가 오히려 삼성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 어떤 이름이 어울린단 말인가? 그는 삼성‘참주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정과 달리,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에 따라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 참주정”이다. “그러므로 삼성 공화국을 응당 삼성참주정이라 바꿔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X-파일 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시국이었으니 삼성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과 격앙된 감정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지만, 3년 가까이가 지난 오늘 ‘대한민국 교육’을 화두로 들고 온 그가 궁금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고 그 안에 그려진 현실이 서글펐지만, 불행히도 이를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없앤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들’

선생님, 학부모, 학원(사교육) 관계자, 대학교수, 대학총장, 교육관료, 정치인, 대통령, 기업인…….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정답은 ‘학생’이다. 이때의 학생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쓰인다. 장애인, 노약자, 사회적 소수자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초중고등학생은 그들 나름대로, 대학생은 역시 그들 나름대로 ‘관리자’들이 쳐놓은 그물을 따라 무리지어 가고 있는 곳은 교육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학생들이 비교육적인 시스템에서 점점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비판을 재구성해 봤다. 

“우선 학생들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된다.(7쪽) 그들은 어디서든 자신이 상품화되어서 잘 팔려야 한다는 사실을 주입받는다. 마치 한우 1등급처럼 학생들도 1등급에 목매달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44쪽)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데도 없다.  학습의 결정권은 학교나 국가 등 상급자들에게 있고, 그들은 선택하는 대신 ‘선발’될 수 있을 뿐이다.(29쪽) 이 모든 질서는 ‘대학입시’에서 나왔다.  대학입시에서 낙오돼 폐기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유일한 이유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에 매달린다.(71쪽) 교사들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양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항상 반복된다.(77쪽)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구를 사귀는 방법 대신 친구를 짓밟고 누르는 방식을 먼저 익히고 그것을 내면화하게 된다.(94쪽) 대학에 가서도 일한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벌기 위해 ‘알바’하는 데 모든 시간을 빼앗겨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126) 결국 돈 많은 1등급 자제들이 의사, 변호사 등 사회의 지도층이 되지만, 이들의 소득세 탈루 비율은 55%나 되며 교수가 된 이들은 제자의 논문과 돈을 삥땅치는 일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진다.(63쪽)

글쓴이는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가 자신에게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준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며 무용지식에 불과한 입시제도를 혁명적으로 폐지해야 하며, 현실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을 축출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자들이 학문의 대중화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사들도 국가를 대신에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에 저항하여 학생이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앵무새처럼 뻔한 정보를 선생님이나 시험지 앞에서 재현하는 정도로 점수를 주는 정보 전달 방식이 아니라 정보를 스스로 가공해 지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가 제시하는 ‘수영’의 예가 흥미롭게 와 닿는다. 즉, 헤엄치는 인간의 신체와 물결 사이에는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가 존재하는데, 교육은 물결과 자신의 몸을 일치시키거나 기존의 수영 방법을 재현시키려는 몹시도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물이라는 대상과 대면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지 물결을 해쳐나가는 해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답은 직접 부딪치면서 본인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교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영법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생에게 ‘눈 깔아’ 하고 명령하며 학생의 ‘문제제기’를 원천 봉쇄한다. 오직 시험문제를 맞혀야 한다는 생각, 즉 정지된 ‘물결의 모습’이나 전에 누군가 물결을 헤쳐 갔던 방법을 가르치며 이것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한다. 학생이 물에 빠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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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늘의 개념글 2
    from 일체유심조 2008-03-25 10:51 
    하다 보니 1 회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는 긴박감이 생겨 이유를 붙여가며 포스팅을 늘리고 있다.'이유를 붙여가며' 하는 일들은 사실 호킨스라면 자신의 은밀한 즐거움을 위하여 하는 짓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는...
 
 
드팀전 2008-03-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를 쓴 그 이득재씨 같군요.^^ 가국체제라고 해서 한국의 근대가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방식을 비판했던 걸로 기억납니다.분석의 틀이 들뢰즈의 철학이었는데-너무 대입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말이지요. ..'수영'이야기나 '주름'에 대한 예들도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리뷰만으로 보면 그의 분석과 대안은 교육을 바꾸는게 아니라 교육을 구성하는 더 거시적인 체계를 바꾸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리뷰 잘 봤습니다.

승주나무 2008-03-25 09:42   좋아요 0 | URL
네~ 드팀전 님.. 이득재 씨의 이 책에서 방점은 대안제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곳곳에 대안제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대한민국의 현재 교육을 형성하는 구조의 모습을 낱낱이 까발리고 나서 거기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5월10일 경에 이득재 씨 등을 모시고 간담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나중에 댓글 남겨드리죠^^;;

2008-03-26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8-10-2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원에서 중국 동포는 불타죽고, 이건희는 멀쩡하게 풀려나는 걸 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옳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요? 아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지 무섭습니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장면1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과 미군이 무더기로 몰살당하는 위기 상황을 맞아 해결책을 고심하던 당국은 바이러스의 치료약을 만들 수 있는 숙주원숭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생존한 환자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줄거리)

#장면2

2차 세계대전은 암호와의 전쟁이었다. 일본군의 암호 해독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고심하던 미군은  절대 깨지지 않는 암호 ‘윈드토커'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나바호족 암호병과 그들을 보호할 특수부대원들을 사이판 전투에 투입시켜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영화 <윈드토커>의 줄거리)

#장면3
2007년 7월 분당 샘물교회 신도들이 탈레반에 납치되었을 때 아랍 문화를 이해하는 아랍어 전공자를 찾지 못한 당국은 외교협상에 매우 불리한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었으며 조속한 시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언어는 근육처럼 수축, 팽창하고 못 쓰게 되기도 한다.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109쪽) 때문에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중(言衆)들의 전체 삶의 모습을 살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아 바라보는 생태학적 사회관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언어의 소멸현상을 추상화시켜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언어학자들의 주장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를 써야 한다거나 경제성장을 위해서 경쟁력 있는 언어를 일제히 사용하자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철저히 기능이며 언중은 절대로 추상적이지 않다. 이기적이고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언중이다. 만약 그들에게 당신은 왜 자랑스러운 자신의 언어를 버리느냐고 따져묻는다면 그것은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언중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먼저 언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마치 생물학 책이나 경제학 책, 환경학 책, 사회학 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면 옳게 보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사용하고 전달해줄 수 있는 사회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18쪽) 하지만 일반적인 언어학자들이나 언어 사용자들은 '문법'과 '사전'을 먼저 생각한다. 저자들은 언어에 있는 문법과 사전은 다분히 인위적인 환경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다양한 측면 중 한 부분만 반영할 뿐, 끊임없이 변화하는 언어의 본성을 담아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298쪽) 언어는 일상이기 때문에 마치 근육과 같다. 쓰지 않으면 지방으로 쌓였다가 당뇨병에 걸려서 잘려나가는 것이다. 오늘날 언어의 소멸은 잘려나간 지방덩어리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서 두 가지 논점이 생긴다. 첫째는 그것이 잘려나가는 것을 막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며, 둘째는 그것이 잘려나가서는 안 된다면 어떻게 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언어를 지켜낸다는 것은

#장면1은 신종 바이러스라는 대 재앙이 찾아왔을 때 백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숙주를 찾아내는 상황이다. 인류의 재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해야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것을 오늘날의 불치병에 대한 치료약재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현대 과학문명이 풀지 못한 문제의 해결책이 엉뚱하게도 산간오지에서는 전통적인 처방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러한 일은 적지 않았다. #장면3으로 옮겨오면 좀더 의미심장해진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군대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군대란 단 한번의 전쟁에 소용이 되는 것이니 그만큼 불필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에 필요 불가결하다" 이것을 현실에 적용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 잘난 '영어'만을 몰입할 것이 아니라 '만국어'에 몰입시킬 것을 제안한다. 세계의 모든 언어와 문화에 능숙하다는 것은 엄청난 경쟁력이다. 지구촌은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와 엮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에 대한 비용을 들여서 대비를 하는 나라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득을 독차지한다. 우리 국민 수십명이 탈레반에 포로로 잡히고 처형까지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고 김선일 씨 피살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를 적절히 했다면 반복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세계를 '스캔'한다. 한국인들이 세계를 바라본 저마다의 '스캔파일'은 일정한 성격을 가진 파일로 압축이 된다. 세계의 곳곳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관점으로 세계를 스캔할 것이고 이 파일들을 온전히 모으면 그것은 지구가 지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가 온전히 담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스캔파일들이 자꾸만 삭제된다는 데 있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나 심각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 인류는 스캔파일 더미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상황에서 그 파일이 소멸되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힘들게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자꾸 파일이 삭제되는가? 아마도 가장 서열이 높은 언어는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되고 그렇지 않은 언어들은 내팽개쳐지다가 끝내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의 서열은 누가 결정하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들의 정치경제적 힘의 논리에 따라 가치판단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주변적이냐 도회적이냐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언어 자체가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이다. (219쪽)

역사를 헛된 피로 물들게 한 유럽이나 중국 등 소위 '세계의 중심'이라는 나라들이 타 언어에 대해서 가한 정신분열적 행태를 살펴보았을 때(257쪽), 만약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인간에게 두 개 이상의 언어는 어울리지 않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수천 개의 언어가 너무 과분하다. 우리는 그것을 관리할 수준이 되는지 냉정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언어는 과거의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경험세계라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만약 세계의 모든 언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설을 세워 보자. 그들은 언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제야 우리 이외의 많은 언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개별 언어의 운명을 걱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회의적이다. 따라서 나의 결론은 '언어의 소멸 방지'로는 절대로 갈 수 없고, 기껏 해야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정도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사실 그것만 달성하는 것도 엄청난 변혁이다. 언어 사용자들의 삶의 수준을 보존해주고,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언어가 자라나는 길을 보살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어정책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배려, 환경보호적 관점, 인권과 권리의 보장, 모국어나 공식적 언어로의 격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생의 기미가 없는 언어들은 포기하더라도, 가능성 있는 언어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게 해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언어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생활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쓰임'이지 세력이 아니다. 나에게 언어의 사전적, 문법적, 추상적 관점 외에 생물학적, 환경적, 물리적, 사회적 관점들을 환기해준 무척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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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가 말을 짓는가?(말이 사는 힘을 가지려면…!)
    from 깨몽 누리방 2012-02-09 12:07 
    말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국어학자입니까? 아닙니다! 말을 만드는 이는 바로 그 말을 쓰는 뭇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 좀 앞선 이들이 길을 잡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말글사는 이[언어대중]들과 함께 갈 때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것이 좋으니 앞으로는 이것을 쓰시오’하듯이 말을 던져놓는 것은 뭇사람들을 깔보는 권위주의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저는 결코 국립국어원을 적(敵)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깨몽 2012-02-09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옳은 말씀입니다.
사투리는 우리말 뿌리를 되짚을 수 있는 좋은 유산이라 봅니다.(저는 가끔, '우리말이 보석이라면 사투리는 원석'이라 견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투리를 엉터리 표준말 뜻매김으로 다 죽여놓았습니다.
제가 보기로는 일제가 우리말을 죽인 것보다 국립국어원이 우리말을 죽인 것이 더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물론 거기에 세월 흐름도 한 몫해서...)
특히 입말을 깔보지 않고 그것이 우리말글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물론 편하게 쓰다보니 낮잡아 쓰는 말들도 많지만, 그것도 역시 말이 가지는 여러가지 속내 가운데 하나겠지요...)
http://2dreamy.wordpress.com/2011/12/25/우리말을-살리려면-사투리부터-살려야/
http://2dreamy.wordpress.com/2011/12/17/고을말을-깔보고-죽이는-표준말-잣대-어느-우스개/
http://2dreamy.wordpress.com/2012/01/21/5월을-사투리-살려-쓰는-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