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천진난만함과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 버릴까!" (故이오덕 선생)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며 어버이"라는 말은 내게는 진리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린이날'은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시간을 내서 놀아주거나 문구점에서 선물을 사다가 바치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에게 반성문을 쓰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안에서 막내로 자라서 철이 없었는데, 지금도 철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것은 나에게 단점이기보다는 자랑이다. 어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어린이의 시체를 안고 있는 어른과, 살아있는 어린이를 안고 있는 어른이다.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의 어린이가 몇 살때 죽었는지. 그때는 어린이가 죽어야만 어른이 된다는 이상한 상상이 만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을 자주 접했고 더러는 어린이들도 접했다. 이들을 접하면서 내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어린이 역시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죽은 어른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어린이와, 살아있는 어른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가는 어린이다.

내 마음속에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죽어야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야말로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맨 마지막에 찾아온다. 때로 어린이 시절부터 간직해온 꿈을 잃지 않은 어른들은 육체적인 죽음'만' 찾아오기도 한다. 그것은 사실상 살아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앞선 시대를 살다간 성인이나 지성인들은 인사치레로 어린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가능성으로서 어린이를 염원했다. 그들이 어린이에게 가졌던 관심은 '인간'에 대한 절실한 관심이었다.

● 천재성이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 튼튼한 기관과 제멋대로 축적된 재료들을 모두 정리해 주는 분석적 정신을 갖춘 마음껏 되찾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다. (보들레르, 꿈꾸는 알바트로스)

● “대인이란 그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맹자, 이루하)

● 만약 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처럼 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다. (예스 그리스도)

● 중후한 덕을 품은 이는 갓난아이와 같으니, 독충이 쏘지 않고, 맹수도 덮치지 않으며 독수리도 할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나는 이번 어린이날을 특별한 어린이날로 삼으려고 한다. 조카들에게 선물이나 사줄 걱정을 하지 않고, 나의 어린이정신은 온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서 어린 시절의 나에게 배움을 얻어야겠다. 시골에 태어난 나에게는 유년시절의 원형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방학이 되면 아침 먹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해변에서 잘 생긴 짱돌을 하나 쥐고 썰물이 만들어놓은 신천지를 걸어서 갔다. 신천지에는 언제나 소라며 성게, 굴 같은 것이 가득했는데 점심은 그걸 깨먹으면서 해결하고 해가 빨갛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의 이름이 세 개 있었는데 각각 오정께, 통밭알, 수메밑이었다. 수메밑과 오정께는 일출봉을 빙 둘렀다. 일출봉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는데, 수메밑으로 해서 일출봉을 삥 둘러서 걸어봐야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출봉 뒤쪽에는 돌고래들이 둥지를 틀었다는데, 직접 보고 싶었다. 오정께는 아침의 바다였다. 물질하는 우리 엄마는 수메밑에서는 해삼물을 캐다가 오정께 옆에 있는 우뭇개에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 엄마가 바다에 갔다가 벗어놓은 몸빼바지에서 나는 바다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새 그것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바다 냄새와 엄마의 살내음이 땀내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야릇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수메밑으로는 멸치떼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까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잔치라도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멸치떼를 잡아갔다. 가끔 밀물에 밀려왔다가 바위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린 고기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고기떼들은 쪼로롱 쪼로롱 떼를 지어 가다가 가끔 한번씩 몸을 비틀어서 은빛 비늘을 뽐냈다. 한번은 새끼 복어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뜰채로 홱 낚아채니 화가 단단히 난 듯 삐익~ 소리를 내며 몸을 한껏 부풀리는 거다. 나는 겁이 몹시 나서 물가에 던져 버렸는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통밭알은 내가 노을바다 또는 설핏바다라고 별명을 지어 주었다. '설핏'(부사)이란 "해의 밝은 빛이 약해진 모양"을 뜻한다. 이 바다는 우리집 마당에서 올레(입구)로 향해 있었기 때문에 저녁마다 마당에 나가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아침바다는 이글이글 해를 팔팔 끓일 정도로 거세지만, 설핏바다는 국이 식는 모양처럼 잔잔하고 온기가 배어 있다. 그것은 물만 짰지 거의 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몰은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어린 시절에도 일몰을 바라보는 것은 슬프기도 하고, 하루 동안 수고 많았던 해가 한숨을 쉬는 듯한 대견한 모습까지 보였다. 이것은 나의 유년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었다. 해질 무렵마다 마당에 나가서 설핏 바다에 해가 기울어지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봤으니 그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아쉬우면 바다까지 직접 가서 수면 위로 길게 늘어져서 하늘거리는 빨간 해님을 오랫동안 배웅한 적도 있다.

이러한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마음 속의 어린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단단히 신경을 썼다. 힘들었던 시절은 중고등학교 때였는데, 어린 남학생들의 치기를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공부를 못해서 상고를 나왔는데, 상고의 녀석들을 3년간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육두문자와 쌍욕을 거의 달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언어가 존재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않지만 나의 어린이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어린이를 살해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당신의 어린이는 건강한지 안부를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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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글이에요.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도 철들지 못한 나를, 나름으론 동심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거든요.^^ 내 마음속의 어린이가 천진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앞으로도 신경써야겠어요. 님 덕분에 멋진 어린이날의 의미를 새로 발견하듯 합니다!

승주나무 2008-05-06 00:01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감사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순오기 님이 제 글에 응원댓글을 자꾸 달아주신 덕분입니다 ㅎ

마노아 2008-05-0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어린이를 살해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당신의 어린이는 건강한지 안부를 물어보았으면 좋겠다.'에 감동먹었어요. 승주나무님은 시인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참으로 뜨거운 정서가 느껴져요.

승주나무 2008-05-06 00:05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과찬이십니다.
아는 친구가 예전에 제게 "너는 천상 산문이다"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시인은 동경의 대상입니다. 가끔 소설가 중에 시인처럼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참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새벽세시에는 누구든 정서가 달아올라 있을 겁니다. 자지만 않는다면요^^;
 

서중석 선생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못내 아쉬웠다.
정리한 분량도 짧지 않지만,
문맥에 따라 내용을 맞추다 보니,
문맥에 들지 못하는 내용들이 많이 실리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67년의 선거 이야기는 꼭 담아야 했던 것인데, 담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67년경부터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베트남 파병이나 각종 차관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선거가 엉망이 되었다.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전국은 향락의 도시가 되었다.
서중석 선생은 그때의 선거를 최악으로 꼽았는데,
그것은 '돈으로 영혼을 산 선거'이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민주화 세력들이 분열되어
지역구도가 고착화되기 시작했지만,
67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2007년의 대선과 2008년의 총선에서
67년보다 더 영혼에게 미안한 선거를 남기고야 말았다.
사실 이명박의 '경제'는 어떤 경제인지 살펴 보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BBK 스캔들은 검증의 기회를 동시에 날려버린 셈이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이 되었으면'이라고 적은 어느 취업희망생의 메모가 떠오른다.

영혼이라는 게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지만,
그 자체로 돈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돈이 순식간에 거덜날 수도 있고, 돈이 순식간에 나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돈의 처분'에 따른 것으로, 우리는 돈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영혼을 팔아먹었을 때는 그렇게 된다.

영혼은 뚝배기 그릇이 참 어울린다.
천천히 끓지만, 한번 끓면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오래도록 온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
당장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점이 뚝배기와 참 닮았다.
이번에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냄비가 아니라 뚝배기입니다."
사실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은 정치선동에 의한 동원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들에 대한 민심은 오래 전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아내를 위해서 한우로 만든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냄비로 끓이면 편리하지만,
뚝배기를 꺼내서 정성을 들여 끓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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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5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뚝배기로 살자고요~
부인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이신건가요? ^^

승주나무 2008-05-0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역국 끓이기를 취미로 해서 자꾸 끓인답니다. 저도 먹을 요량으로요^^
얼마 전 처제가 곰탕을 고와 줘서 곰탕미역국을 끓이고,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좀 사다가 소고기미역국을 끓였는데, 소고기미역국이 더 맛있다고 하네요.
나는 소고기 맑은미역국을 만들고 싶었으나, 초짜라서 뿌연색 미역국이 되더라구요 ㅎㅎ

Mephistopheles 2008-05-05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뚝배기는 절대.절대. 세재로 닦으면 안된다네요. 숨쉬는 그릇이라 틈틈히 세재가 잠입한 후 열을 가열하면 다시 밖으로 배출된데요..^^

승주나무 2008-05-05 03:38   좋아요 0 | URL
네~ 예전에 아는 선배네 집에서 좋은 사기 그릇이 왔다길래 구경갔었는데, 서제로 설거지 하는 이야기를 했더니 막 팰려는 눈으로 보더군요 ㅋㅋ
 

 








4월 29일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공개한 날이다. 그 날 서중석 교수는 그 자리에 함께 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기자와의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할 만큼 급한 인터뷰는 아니었는데 괜히 역사에 죄를 짓는 것 같아 속상했다. 서중석 교수는 전날 밤늦게 요청전화가 와서 불가피했으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오히려 기자를 달랬다. 인터뷰는 오전에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했고, 그날 저녁 역사비평사가 주최하는 서중석 교수 강연회의 내용을 묶어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 기자주

 

인간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 소묘

 

성균관대 교수연구실에서 서중석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나는 지식인의 인상적인 유형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인간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이며, 둘째는 지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이다. 첫째 유형에 걸맞는 인물은 스피노자를 들 수 있는데, 그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 일관된 삶의 방식에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철학자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저서 <서양철학사>에서 스피노자를 "가장 고귀하고 또 존경할 만한 대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하며 "지적인 면에서 그보다 탁월한 철학자가 몇몇 있기는 하였지만, 윤리적인 면에서는 그를 따를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둘째 유형에 걸맞는 인물은 '루소'를 들 수 있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교육학이나 사회학에 영감을 준 바가 컸으나, 사생활에 있어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신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을 모조리 고아원에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격변기를 살았던 그의 신상을 생각하면 봉시불행(逢時不幸), 즉 시대를 잘못 만난 탓도 있었겠지만 그가 남긴 지적 성과는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이렇게 지식인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서중석 교수에 대한 인상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다. 서중석 선생은 대한민국 헌법과 같은 해(1948년)에 태어났다. 현대사의 주요한 변곡점과 마디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1975년 2월 17일 석방되었고, 당시 '정치 신문'과 동의어였던 <동아일보>에서 약 10년간(1979~1988) 기자 생활을 했다. 현재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의 상임공동대표와 '제주 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위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강연회에서 "역사의 방향에 맞춰서 진지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밝혔는데, 나는 그런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강연을 하는 동안,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표정에서 현대사가 생생하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타까운 순간을 말할 때는 아쉬운 표정, 화가 나는 순간을 말할 때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신명나는 순간을 지나가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처럼 화색이 돌았다. 나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그와 같이 일체화시킬 자신이 없다. 그가 일궈낸 역사적 연구성과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그를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했다. 현대사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동시대인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 이성에도 '온기'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서중석 교수와 인터뷰를 나눈 주제는 현대사, 선거, 교과서 문제 등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의 내용이다.

 

서중석 교수,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현대사를 불편하게 보고 피하려 하는 경향 안타까워

 

개성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다. 북한의 분위기는 어떤가?

-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동안(24,25일) 북한의 학자들과 학술토론을 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 남북역사용어사전을 공동편찬하기로 협의한 데에 따른 모임이었다. 모임의 성격은 민간교류이므로 남북 당국에서 막으려 하지도 않고 필요성도 느끼고 있지만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민간교류 성격이지만 사전편찬 등으로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을 때는 또 다른 것 아니겠나. 북쪽에서는 "남쪽의 태도를 '이해'하겠다"는 입장이라는 데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정부 또한 남북관계가 안 좋게 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남북이 안 풀리지는 않을 거 아닌가.

 

요즘 드라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사와 관련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반면 현대사에 관한 책은 너무 적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 독자들이 고대사나 조선사는 좀 친근함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지 않나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보였고 강토를 넓혔다는 주장들은 일반인들에게 고대사에 대한 흥미와 유혹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부정확한 내용이나 과대하게 포장된 부분이 적지 않다. 조선사도 마찬가지로 왕실의 이야기나 애정관계, 권력투쟁을 주로 다루며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지만 일반 서민의 모습이 그 안에 얼마나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을 보면 대중들이 현실과 관계있는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그것을 피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일제시대에 최초로 나라를 빼앗겼고, 6.25로 최초로 분단현실을 맞은 것과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나라를 빼앗긴 것이 비단 일제시대만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삼전도 굴욕에서 보듯이 청나라에게 항복한 경험이 있으며 삼국시대도 일종의 분단현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삼전도 굴욕사건을 예로 들면 청나라는 곧바로 철수하고 '조공형태'로만 지배관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기보다는 일종의 외교관계의 재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 역시 엄밀한 분단국가가 아니라 역사가 통합ㆍ진전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분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들이 현대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수강신청률 같은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근현대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때문에 자기 자신조차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이를 불편하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뭔가 잘못했다는 자괴감 같은 거다. 그것은 현대사의 부정적인 면이 너무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분명히 사회ㆍ문화적인 면에서도 발전하고 있고 동태성ㆍ능동성ㆍ활기가 분명히 포착되는데, 이런 점이 부각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예전에 강의를 받던 학생이 "현대사는 고통과 비관에 차 있는 것 같다"고 한탄을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지금도 강의당 학생 수는 좀 줄었지만 꾸준히 등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현대사 시험을 보고 나면 성적이 참 좋지 못하다. 그것은 초중고등학교 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온통 박정희 찬양만 들어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현대사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란 결국 반복효과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대사 강의에서는 이제까지 들어서 알고 있는 것과 거꾸로 된 것을 일러주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거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크거나, 내가 너무 현대사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학생들을 짓누르는 면이 있다. 때문에 나는 학생보다 오히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수를 하는데, 골자는 교사들이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면에 비중을 두어서 학생들의 기를 펴줘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을 전달해주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이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수를 가 보면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같은 질문들만 해서 토론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무슨 예언자인가? 그런 걸 알게.

 

서중석 교수, <역사비평사> 주최로 열린 <풀로엮은집>의 대중강연에서 

 

새역모 교과서 채택률은 저조하지만 대중서는 반향 엄청나 

 

교사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겠다. 이번에 새역모가 출판사를 지유샤(自由社)로 바꿔서 문부과학성에 검정 신청을 했고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만약 내년 3월에 검정에 합격하고 4월에 채택전이 시작되면 또 시끄러워질 것 같다.

- 새역모가 내홍을 통해 두 파로 갈라진 것으로 안다. 그것은 미국에 대한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거기도 책을 팔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수요자가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게 이번에는 더 부드럽게 만들 거라는 말이 들린다. 내용이 달라지고 좀더 교묘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이전 교과서는 내용에서 문제가 많고 독자들에게 극단적인 주장을 강요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교과서 치고는 얇은 두께인 데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에서는 무려 4쪽을 할애하였고, 소화천황에 대한 내용도 불필요하게 길다.

2001년도에는 0.03%, 2005년에는 0.4% 정도로 미미한 수치이지만, 이 수치에 안심하기는 이르다. 새역모의 위상을 생각해 보자. 일본 자민당 의원의 다수와 민주당의 상당수가 사실은 새역모 교과서와 사관을 똑같이 한다고 보면 된다. 새역모의 일반용 단행본은 넉달만에 50만부가 팔렸다. 그것의 만화판은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것은 일본 대중이 군국주의 사관에 호응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시장에서의 성공과 대중의 지지, 정치세력으로서는 의회의 다수파가 우군이 받쳐준다는 것이 새역모의 실상인데 0.4% 채택률로 위안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일본에 과거 사죄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대일정책을 선언했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문제가 생긴다면 그 태도를 바꿀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최근의 대통령들은 처음에는 모두 그렇게 시작한 거 아니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일본과의 협력·우호를 강조했지만,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의 망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강경 발언을 했고, 김대중 정부는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통해 조심스러운 출발을 했으나 교과서 파동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초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양국 정상 셔틀회담이 마련될 정도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지만 독도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단숨에 일본과의 ‘외교전쟁’을 거론하는 단계까지 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예만 들어도 2005년 86돌 삼일절 기념사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약속했고, 정부는 ‘외교 문제보다 독도 문제를 상위개념으로 두겠다’고 정책 전환을 선언하는 등 능동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지지가 올라갔거든. 때문에 일본에서는 정략적이라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사를 말할 때는 독일과 일본의 예를 든다. 독일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달라.

- 일본 대중들은 자신들이 침략을 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참화'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구나 자기가 당한 것을 오래 기억하는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못하고 오히려 육성해준 것이 지금까지 역사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독일 역시 나치에 협력한 세대들은 반성을 안했다. 하지만 68혁명을 주도한 진보적 학생을 중심으로 독일에서는 자기반성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68혁명 40돌 되는 해이다.) "희생자의 편에서 역사를 보아야 진실이 보인다. 우리 아버지, 부모 세대 잘못을 반성하자"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었고, 스스로 반성하고 후학들을 가르침으로써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무척 노력을 했다. 독일 총리가 희생자에게 사죄를 하거나 엄청난 비용을 관련 사업에 후원한 것은 본질이 아니다. 독일의 시민과 학생, 청년 사이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반성이 있었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지금도 독일에서 과거사와 관련한 세미나가 있을 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듣는다.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작년에 의미 있는 전시회가 있었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진재(관동대지진) 학살사건(일본 정부에 의해 조작된 유언비어에 의해 살인자와 약탈자로, 강도와 성폭행범으로 몰린 재일조선인들이 일본 경찰과 자경단들에 의해 6천여 명이나 학살되었던 사건) 84주기 전시회할 때 수십일간 전시회를 열었지만 그곳을 방문한 시민들은 많지 않았다. 이 대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을 '국민성'의 차이로 볼 수 있는가?

- '국민성'으로 접근하면 결정론과 흑백론에 잘못 빠지기 쉽다. 그보다는 시민의 의식이 얼마나 성숙했는가 하는 차이가 큰 요인일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는 여전히 부국강병의 사고가 만연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현재까지 아직도 천황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없는 것 같다.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다. 한국은 활기라도 있는데, 일본은 그게 없다. 무엇보다 자기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시민의식이 자라나기 힘들다.

 

그래도 68혁명의 대표지성인 샤르트르가 일본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지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고(이 강연은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걸작으로 출간됐다) 전공투 세대가 활약하지 않았나?

- 전공투의 활약은 평가할 만하다. 미일신안보조약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1960년 기시정권을 무너지게 한 주역들이다. 하지만 1970년대 엄청난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일본은 당시 '경제동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즉 도덕성, 가치관, 민주주의, 과거사와 함께 이뤄낸 경제발전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을 계기로 일본인의 의식이 멈추고 보수화ㆍ우경화로 나타나고 말았다. 과거사 반성은 더욱 약화됐으며, 고이즈미가 신사참배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는 절정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경제살리기'에 치중하고 있어서, 우리나라도 10년 후에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된다.

- 우리나라 역시 삶의 질은 따지지 않고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쳐 왔다. 이렇게 가치관 없는 발전을 이룩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크게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일본 보수세력은 일본인에게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점, 에도 정부와 도쿠가와 막부, 30년대 군국주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역사관이 일본인에게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비판적으로 보는 측면이 많다. 말뿐 아니라 몸으로 저항하다가 다들 감옥소 갔다온 역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 역사를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렇게 볼 만큼 나쁜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서중석 교수, 합정역 근처 풀로엮은집 강의실에서 

 

진보세력조차 현대사 공부 너무 안 한다.

 

선거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의 결과를 어떻게 보나?

-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막판에 혈전 비슷하게 나타났다. 민심 동향이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역사상 최하인 50%의 투표율이 안 되었다는 점이고, 특히 젊은층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뼈아프다. 서울ㆍ경기권에 사는 젊은이 2~3%만 투표했어도 한국사회가 더욱 동태적으로 되고, 국회가 논의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권의 판도와 양상이 달라질 수 있는 득표율이었는데 참 아쉽다. 이 역시 현대사의 역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도 '현대사의 역설'이 작용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 보수세력은 젊은이나 여성, 노동자 등이 투표장으로 오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들이 어디에 투표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거연령의 변천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 남조선 과도입법부에서 보통선거법을 통과시켰을 때 이승만은 선거연령을 아주 높여 놨다. 피선거권을 25세, 선거권을 23세로 규정한 것이다. 미군정이 이 법안을 보고 무척 놀랏다. 이건 안 된다. 요새 이런 나라 없다고 설득할 정도였다. 당시 유엔감시위원단의 선거방식을 담당한 대표국가는 프랑스였는데, 프랑스 대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18~20세에서 선거권이 정해지는 데, 이러한 '터무니없는' 선거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3월 중순 발표된 보통선거법에 의하면 선거권은 21세, 피선거권은 23세가 되었다. (대한민국 유권자로서 프랑스 대표에게 감사(?)한다) 선거권이 20세로 낮아진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인 1960년대였다. 여기서 또 1년이 낮아지기 위해서는 4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싸워서 얻어낸 선거권 연령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투표하지 않았다. 이것이 현대사의 역설이 아니고 무엇인가?

 

<선거이야기>에서는 역설적 현상, 또는 '이성의 간지(奸智)'라고 표현했는데, 다른 역설도 몇 가지만 소개해 달라.

- 지방자체제, 정당제, 공천제를 소개하면 될 것 같다. 52년 정부통령 선거 당시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승만의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국회에는 이승만의 반대세력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내각책임제가 민주주의의 보증수표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이승만이 짜낸 묘안은 자유당을 만든 것이다.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집단을 만든 것이다. 이를 관제여당이라고 하는데,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대표적인 관제여당이었다. 최초의 공천제 역시 그 의도가 불순한데,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을 허용할 것"이라는 개헌 각서에 사인하는 사람에게만 공천을 준 것이 최초의 공천이 된 것이다. 지방자치선거는 더 기가 막히다. 이승만은 처음에는 지방자치 제도 자체를 거들떠도 안 보다가 전쟁 중인 1952년에 뜬금없이 지방자치선거를 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압도적으로 이승만을 반대했는데, 이승만은 "읍면도의원도 민의를 대변하는 선량이다"고 주장하며 지방의원들을 자신의 권력유지용도로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의도는 나빴지만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한국정치에 공헌한 바가 크다. 하지만 역설적인 변화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두 번의 선거로 인해 선거제도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선생님의 <선거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하고 있는데, 간단히 소개해 달라.

- 4.19혁명이 일어난 과정을 살펴 보자. 먼저 3.15 부정선거가 있었다. 그에 대항해 3월 학생운동이 바로 일어났고 100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이것을 발화로 해서 4.19혁명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결국 이승만이 퇴진하게 되었다. 결국 '선거'는 4.19를 이끌어낸 동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0.26 역시 사건 자체보다는 문맥을 살펴야 한다. 10.26 직전인 1978년 12월 12일에 선거가 있었는데, 야당 득표가 1.2% 앞섰던 것이 결정적이다. 이런 민의를 의식해서인지 1978년 대통령 취임식에는 세계 어떤 나라도 축하사절을 보내지 않았고, 일본 역시 비공식 사절단만 12명 보냈을 뿐이었다. 80년대는 더욱 빠르다. 살얼음같은 서울의 봄이 12.12와 5.17에 의해 좌절되었지만, 85년 2.12총선에서는 세상이 뒤집어지려는 분위기를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다. 여당인 민한당 의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한 한민당 후보는 "'이거 큰일 났다. 이거 큰일 났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2.12총선은 그야말로 폭풍이 불어닥친 선거였다. 이로 인해 6월 대항쟁으로 나아가는 대도가 뚫린 것이다. 당시 정치인들은 이런 민의를 잘 대변했다. 정치는 이런 거다 하는 기백이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마지막 코너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조봉암의 경우 한때 주먹으로 날렸다는 시라소니조차도 무서워서 곁을 떠날 만큼 배짱이 있었다. 그 배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 때, 민중과 일체될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정치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 정치의 국면으로 따지자면 한국정치는 갈 데까지 갔다.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지금 시류에 맞지 않은 주장들을 하는가 하면 아마추어리즘을 노출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진보세력조차 현대사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것 같다. 만약 그들이 현대사 공부를 조금만 했더라면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총선 직전에 분열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 그들을 '학습미달 정치인'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 학습미달이 맞다. 이런 나쁜 정당정치는 고통 속에서 정리될 것이다. 박정희 18년 정치가 부재했던 것이 가장 큰 영향일 것이다. 정치부재의 사회, 중앙에 의한 중앙정치의 사회. 박정희 시절은 현대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는데, 성장제일과 근대화 지상주의에 빠지는 등 그 시절이 보인 패착이 주는 그림자가 매우 길고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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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5-0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중석 선생님 얼굴이 너무 붉게 상기되셨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술 한잔 걸치신 줄 알겠어요 ㅎㅎ

승주나무 2008-05-03 15:07   좋아요 0 | URL
서중석 선생님이 현실에 대해서 갖는 애정으로 읽혔어요^^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이렇게 일체화시킬 수 있는지~~~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표정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요^^

순오기 2008-05-0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사^^
우리딸이 대학입학 후 두달만에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애들이 현대사를 너무 모른다.'는 한탄이었어요.ㅠㅠ 이 글을 읽으니 훨씬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이 책 방학에 오는 딸을 위해 찜합니다!

승주나무 2008-05-03 15:07   좋아요 0 | URL
저도 2000년까지 현대사의 현 짜도 모르는 형편이었어요. 현대사는 자기가 스스로 찾아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영원히 멀어지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08-05-0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중석 선생님은 지식인의 인상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인터뷰 잘 읽었어요. 오늘 근현대사 시험 채점했는데 가장 점수가 좋은 반만 평균 59점이었고, 2등반이 47점이었어요.
수능에서 선택과목으로 채택한 학생들이 한 반에 다섯 명 정도인데, 그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관심이 전무하다고 봐야 하더라구요. 가심이 쓰렸습니다. ㅜ.ㅜ

승주나무 2008-05-04 02:49   좋아요 0 | URL
당연히 인간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상이었습니다.
<선거이야기>는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난 책인 것 같습니다. 일관된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도전일 텐데, 그것을 잘 이겨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민히한테 또 지적을 당했습니다.

뭐 쓸데없이 자꾸 많이 찍냐며~
나는 말도 많고 사진도 많다나~ 흥!!
이게 다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이지 원~~
이를테면 저는 다다익선입니다. 스크롤로 쭉 내리시고 시간 남으시면 글도 읽어보시압^^

 

처음에는 이렇게 셋이서 출발했습니다.
우중충한 날씨에 우중충한 사내 셋이서 편의점 앞에서 포즈를 취합니다.
승주나무는 또 잘난척 '전집질'을 하고 있네여~ 

왼쪽부터 승주, 멜기(세덱), (라)주민히(주미힌)ㅋㅋ

호드기를 구성지게는 아니고 칭얼대듯 불렀던 멜기.. 수작부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암튼 소리가 나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작년에 해봤다더군요 ㅋ

 

동백꽃의 소품들을 책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책이 좀 젖기는 했지만 운치가 좀 있었지요. 설정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ㅎㅎ

 

김유정역에 도착해서 단체사진을 찍는데, 저는 앞으로 휭 도망나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많이들 왔지요~ 왼쪽에 멜기를 간신히 잡았습니다. 화사한 동백꽃(동박꽃)색 점퍼를 입으신 분이 유인순 선생입니다.

김유정이라는 역의 이름이 참 기분 좋습니다. 2004년에 마을주민 전체가 모여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해요. 격조 있는 마을인 것 같아요. 공자님은 이인(里仁)이라고 했겠죠^^ 근데 뉘신지?

 

 

 

김유정의 이름을 딴 식당이 많았습니다. 결국 답사를 땡땡이치고 유정마을에서 춘천닭갈비와 막국수, 동동주를 기울였습니다. 한잔만 먹어도 벌개지는 그 사내들이 생각나네요^^

 

꼬마농악대의 길트기가 흥겨웠습니다. 개중에는 귀치않은 듯한 사내들도 보였으나 그런 게 올망졸망하고 더 보기 좋지요

 

역시 트로트 청년이라 그런지 멜기는 '울고 싶어라'의 가수 이남이 씨를 얼른 알아채리고 사진을 훌떡 한장 찍었답니다.

 

김유정상입니다. 내가 아는 김유정은 서간치가 아니라 저잣거리를 굴러다니며 따라지들과 어울리고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모습이 표현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마침 유정문학상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참 많이 왔습니다. 생각나는 사람들을 찍었습니다. 카메라가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오늘 그를 보니 '익덕'이 떠올랐습니다. 저렇게 벌건데 눈은 부리부리하여 가까이 있으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 간만에

 

쑥쓰런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김훈 작가입니다.

 

윤대녕 작가입니다. 생각보다 소탈하게 생기신 아저씨 같았습니다.

 
오정희 작가입니다. 김유정문학상에 올라온 최종 심사작품 3작품 중 본상을 심사했습니다. 지금은 심사평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오정희 작가의 심사평은 앞서 올린 페이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로쟈 님의 댓글을 보니 오정희 작가를 따로 소개하지 않은 듯해 추가합니다^^

 

그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제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은희경 작가입니다.

 

지나가는 그 분을 붙잡고 '반협박'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입니다.

 

귀한 사진을 하나 잡았습니다. 미소천사 윤성희 작가입니다. 감기조심하세요~~

 

그의 모습을 찍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제 사진기와 마주친 모습은 앵글이 한참을 빗나간 것이었죠. 김애란 작가입니다.

 

전경린 작가입니다. 쑥쓰러운 미소가 그래도 활짝 피었네요~

 

제2회 김유정 문학상을 받은 김중혁 작가와 결선 심사위원을 맡은 김유정문학촌장 전상국 작가입니다.

역시 큰작가의 행사에 갔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심지어는~

 

한컷에 네 명의 작가를 담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참 예민한가 봅니다. 아까 은희경 작가도 그렇고, 김애란 작가도 카메라의 '살기'를 느꼈을까요~ 자꾸봐~~^^;; 

 

증1리와 증2리에서 준비한 장터는 활기찼습니다.

 

아이들이 김밥에 소머리국밥을 많이 먹겠다고들 다투고 있네요.

 

동네 어르신들도 술 한잔 들이키며 정답게 상에 모여앉았습니다.

 

닭잡이가 시작됐습니다. 닭을 잡아봤어야죠~ 그래서 다들 신기한가 봅니다.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그래도 기분은 째집니다~~!!

 

 

 

김유정 문학관에서 귀여운 인형들을 만났습니다. 대개는 봄봄과 동백꽃을 형상화한 것이겠지요. 한눈에 어느 장면인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유인순 교수님과 뒤늦게 합류한 웬디양과 김유정을 떠나는 역에서 한컷 찍었습니다. 유인순 선생님은 저에게 김유정에 대해서 많이 일깨워 주셨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었고, 김유정에 대한 편견을 녹이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서울에 가자마자 두꺼비를 읽고 저도 전율을 했답니다. 감사합니다.

 

 

 

김유정으로 오던 길의 설렘을 갈무리하고 다시 김유정을 떠납니다. 돌아가도 한동안은 김유정 언저리에서 맴돌겠지요. <소낙비>의 어린 안해처럼 간만에 남편과 정을 바꾸고 나서 희색이 떠도는 것처럼, 어느 때에는 맺적게 생글생글 웃음도 나겠지요. 그런데~

 

많이 놀았는지 참~ 피곤합니다. 안녕 여러분~ 안녕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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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4-2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흣 사진보내줘요 승주나무님~~ ^_^
사진찍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막누르는 컷이 그래도 생생하긴 하죠~

승주나무 2008-04-29 14:14   좋아요 0 | URL
네~ 따로 정리해서 메일로 보낼게요.
이번에는 정말 공개를 자제했습니다.
주민히는 멜기 사진 막 올리던데 ㅡㅡ;

마노아 2008-04-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기가 느껴져요. 모두가 생생히 살아있네요.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

승주나무 2008-04-29 14:14   좋아요 0 | URL
네~ 힘께 갔으면 더 재밌었을 거에요^^
나중에 기회 만들어서 함 꼭 가보세요~

로쟈 2008-04-2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 작가 옆은 오정희 선생 아닌가요? 김애란씨 옆에는 항상 편혜영씨가 있군요.^^

승주나무 2008-04-29 14:13   좋아요 0 | URL
네~ 로쟈 님.. 오정희 선생도 왔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개를 따로 안 했군요. 사진이 따로 있었는데 추가해서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작가까지 포함하면 열 명도 더 온 것 같더라구요^^;

순오기 2008-04-2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작가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니~ 부럽군요.
역시 여기서도 붉은 멜기님이 문을 열고 닫았군요.^^

승주나무 2008-04-30 09:45   좋아요 0 | URL
네~ 붉은 멜기님은 어딜 가도 인기이지요 ㅋ
 











"<동백꽃>의 남녀관계는 마름과 소작인이라는 계급구조에 가려진 빛바랜 사랑이거나 짝사랑이다."
"그건 너무 확대해석 아이가. 점순이와 머스마(사내아이의 강원도 방언)의 애틋한 사랑이 본질이제."

청량리역에서 김유정역까지 가는 전세 기차 안에서 일행과 김유정 작품에 대해서 데퉁스런 토론을 하던 중에 진행요원에게 '지적'받았다. 4월 27일 일요일 아침잠을 달래고 부랴부랴 9시에 청량리역에서 집결하여 다시 청량리역으로 돌아온 시간이 저녁 8시 반이었으니 11시간 넘는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김유정 문학촌에 찾아가는 길에는 유난히 미복행색의 인물들이 많았다. 인하대 국어교육과 김영 교수가 그 중 한 사람이다. 제2회 유정문학상을 받은 김중혁 작가의 시상소감을 듣고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며 매우 흥분하는 눈치다. 중국과 일본에서 찾아온 교수도 따로 소개를 하기 전에는 존재를 숨기려고 하였다. 나도 이참에 '시민기자'라는 명함을 감추고 '문청(문학청년)'으로 김유정을 맞고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윤리강령 첫줄에 "시민기자임을 당당하게 밝히라"고 되어 있는데, 운치 있는 문학기행 아닌가. 올해로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서 그런지 손님이 워낙 복작거렸다.  


 

333 : 청량리에서 김유정으로 향한다는 기차표의 표시가 한결 운치가 있다. 김유정 작가를 오랫동아 연구해온 유인순 교수에 의하면 작가의 이름으로 역명을 지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일본에도 사람 이름을 딴 역명이 있지만, 문인이 아니라 무사의 이름이라고 한다. 유인순 교수의 책 위에 열차표를 살짝 포개보았다.

 

 

열차 안에서 동백가지 꺾고 '호드기'를 직접 불다

 

김유정역으로 찾아가는 열차에는 문학적 격조가 넘쳐났다. 김유정은 당대의 작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프리미엄을 얹지 않고도 흥미롭게 읽힌다. 그것은 당시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따스하면서도 치밀하게 관찰해내 그들의 삶을 밀착된 언어로 농도 있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인순 교수에 의하면 당시의 방언과 비속어, 육두문자, 관용어 등을 가리지 않고 문학 작품 안에 담고 있다. 예컨대 '낙엽'(落葉)이라는 한자어를 쓰지 않고 '떨잎'이라는 우리말을 구사하며, '추수'(秋收)라는 말 대신 '가을걷이'를 사용했다. 이는 의도된 우리말의 채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표준발음기호와는 다르게 춘천의 당시 말들을 그대로 소리나는 대로 옮겼기 때문에 사전에 잡히지 않는 낱말이 많았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해독하기 어렵다는 일반의 비난이 적지 않았으나, 한국문학전집의 김유정 편 <동백꽃>(문학과지성사) 책임편집을 맡은 유인순 강원대 교수는 "띄어쓰기와 문법구조를 전혀 무시하고 작품을 썼던 작가 이상은 관용하면서 김유정의 실험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유 교수는 전집 편집 당시 구절 하나, 기호 하나를 가지고도 출판사의 편집자와 매일같이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그래서 김유정의 텍스트는 반드시 원본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현재 도서출판 '강'에서 <원본 김유정 전집>이 출간된 상태다.
김유정으로 가는 열차는 '동백꽃 열차'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동백꽃은 가수 이미자가 부르는 붉은 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에서 나는 노란 꽃이라는 것이 김유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소양강 처녀>에 나오는 동백이 바로 그 노란 동백이다. 이 같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 그들은 '동백가지'를 방문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가지를 잡고 그 끝을 깨물었더니 강한 향기가 풀풀 올라와 코를 확 찔렀다. 작품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점순이'와 '나'가 '노란 동백꽃 속으로 함께 뒤섞여 파묻히는 장면이 나오는 데, 그때 정신을 아찔하게 했던 '알싸한 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점순이가 머스마에게 수작을 부릴 때 사용하던 '호드기'도 직접 불어 보았다. 대개 '서울 촌놈'들이어서 '픽 픽'하는 바람 소리만 났지만, 개중에는 제법 구성진 가락으로 호드기를 뽑는 이들도 있었다. 당찬 계집 점순이가 무척 궁금했다.

 

19 : 알싸한 향의 동백가지와 호드기를 김유정의 책 위에 올려놓았더니 퍽 어울렸다.  


'김유정' 이름이 들어간 상을 받는다는 것

 

39 : 김유정역은 1914년 신남역으로 불렸으나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2004년에 김유정을 기리기 위한 마을 주민의 성원으로 김유정이란 이름을 찾았다.

 

 

강원도 춘천에 소재한 김유정 역에 도착했다. 김유정 역은 경춘선이 개통된 1914년 당시의 행정지명인 신남면의 이름을 따라 '신남역'이라고 불렀으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작가를 기리고 작가의 고향인 실레마을을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꾸기 위해 2004년 마을주민 전체의 협의에 따라 역명을 '김유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단체사진을 찍고 역사를 나섰더니 색동 차림의 꼬마 농악대가 손님을 맞았다. 흥겨운 길트기를 따라 김유정 문학촌으로 들어가자 마침 '제2회 김유정문학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  

김유정문학상은 한국수력원자력(주) 한강수력발전처가 재정지원을 약속해 김유정 소설의 문학사적 가치 전승은 물론 한국소설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우수한 작품을 시상하고자 지난해 제정했다. 상금은 3,000만원인데, 이 유래 또한 매우 문학적이다. 김유정 문화행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상금을 후원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전 사장이 남긴 말이 일품이다.

"북한강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지원한다." 

 김유정문학상은 원래 11월에 시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축제일에 맞춰 일부러 6개월 안의 작품만 가지고 평가를 했다. '변경된 룰'에 의해서 행운의 주인공이 된 작가는 펭귄뉴스를 쓴 김중혁 씨다.  

근작 10편 중에서 이승우의 <실종사례>와 임철우의 <봄비는 내리고>, 김중혁의 <엇박자D> 세 작품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 심사는 문학평론가 김치수 씨, 소설가 오정희 씨, 김유정 문학촌장 전상국 씨가 맡았다. 김유정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유정 문학상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평가 대상작품이 "작가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야 하며, 김유정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와 삶의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하며, 출품작 중에서 걸작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으로 각 작품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오정희 씨는 심사평에서 임철우의 경우 마지막 결말의 구성전개는 인정할 만하지만, 자위적 설정이 노출되어 설득력이 약하다는 점을 탈락 이유로 밝혔다. 이승우의 작품은 지하철 사고를 계기로 평범한 부분의 관용과 이해관계 등을 잘 표현했으나 작가의 평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중혁의 작품은 "자칫 소홀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에 천착하여 따뜻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합창에서 엇박자를 낸 사람을 포착해서 삶의 모습과 연결시키려는 참신성과 구성의 치밀성, 주제의 현대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심사위원 전원의 동의를 얻어 본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수상자인 김중혁 씨의 당선소감은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었다. 소감문의 내용 또한 '수작'이므로 내가 듣고 적은 전문을 옮겨 본다.

 

김유정 선생 덕분에 아름다운 계절에 아름다운 곳에서 뜻깊은 상을 받게 되었다. '김유정'이란 이름이 들어간 상을 받게 되어 좋겠다는 동료 작가들의 시샘을 많이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 기쁨을 실감했다. 10대 후반 나는 보일러 수리공이 되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었는데, 엉뚱하게도 전국 도로에 보일러를 깔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차가운 눈을 녹이고 그보다 더 차가운 노숙자의 '등어리'를 데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바꾸거나 수리하여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내가 쓰는 소설이 실질적 도움을 주는지 의심을 많이 했다.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이 대단하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들에게 소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콧노래나 낙서, 좀전에 길트기를 구경하던 아이가 흥얼거리던 노래 자락 순간순간이 예술이 아닐까?

나는 게으르다. 늦게 일어나고 빈둥거리고 빈번이 약속을 깨고 중요한 것을 방치하기 일쑤다. 2,000년에 소설가로 등단하고 올해에 겨우 두 번째 책을 냈다. 하지만 게으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었고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느려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상이 큰 응원이 될 것이다. 나는 게으르기 때문에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속도는 계속 유지할 것이다. 기분 좋아서 빨리 내달리거나 부담스러워 미적거리지도 않겠다. 나는 내 속도로 가겠다.

 

143 : 제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자로 <펭귄뉴스>의 작가 김중혁 씨가 선정됐다. 당선작은 <엇박자D>

 

 

'작가 이름'의 문화 행사 퇴색되어 가고 있어 아쉬워

 

한편 이번 시상식에서는 김훈, 은희경, 윤대녕, 전경린, 김애란, 김연수, 강여울 등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작가들이 모두 모였다. 때문에 나의 사진기는 매우 즐거웠다.

김유정 문학기행에서는 이 밖에도 이팔 청춘들이 두 명의 점순이가 되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일명 "점순이를 찾아주세요" 행사를 가졌다. <봄봄>의 '참새만한 점순이'와, <동백꽃>의 '당찬 점순이'에게 각각 30만원의 거금이 상금으로 쥐어졌다. 뿐만 아니라 <동백꽃>에서 벌였던 '닭싸움'(투전)을 재현했다. 실제로 고추창을 듬뿍 먹여 싸움을 벌이는 맛이 여간 매콤하지 않다. 직접 닭을 잡는 '닭잡이'를 했다. 가장 화끈하게 닭을 잡는 손님들에게는 '토마토' 한박스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모두들 흥겨운 '닭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닭을 잡으려고 날뛰고 날아다니고 하는 통에 사람이 닭을 잡는지 닭이 사람을 잡는지 헛갈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른 팀들은 김유정 작품에 실렸던 장소들을 답사했다. 유인순 교수와 전상국 촌장이 안내를 맡았다.

이번 행사의 실무를 맡은 뮤지엄뉴스(www.mnews25.com)의 곽교신 편집국장과 열차를 기다리며 잡담을 나누다가 '인터뷰'가 되고 말았다. 나는 문학행사를 누리며 행복했지만, 운영을 맡은 그는 썩 개운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세한 부분에서 운용상의 미진함을 보인 점을 아쉬워했다. 예컨대 '닭잡이'를 위해 준비한 비용이 100만원에 달하지만 닭이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르는 점 하며, 닭을 '처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상품권'으로 교환해달라고 사전에 제안했으나 결국 준비가 되지 못했다.

그보다 그는 문화행사의 취지를 점점 퇴색돼 가는 세태에 안타까워했다. 예컨대 효석문학상은 얼마 전 지방자치단체가 행사를 접수하면서 경제적 효과는 톡톡히 얻었으나 최초의 취지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한 학교 선생님이 학교 내에서 백일장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행사까지 키워놓았지만, 그는 현재 지쳐서 손을 놓으려고 한다는 전언이다. 다행히 '김유정 문학행사'는 김유정의 높은 작품성과 이를 아끼는 격조 높은 독자들 덕에 현재의 풍모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일행 중 한 명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실용정부가 섰으니 그 다음은 알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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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시민기자'님 덕분에 안방에서도 분위기를 충분히 맛보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강원도쪽은 못 가봐서...김유정이나 이효석 관련된 곳 다 가보고 싶어요.
동백꽃은 강원도에선 '동박꽃'이라고 불렀다죠. 작년에 어머니독서회에서 '동백꽃'토론하고 올렸던 리뷰가 있는데, 부시럭부시럭~

승주나무 2008-04-28 15:46   좋아요 0 | URL
잘 키운 시민기자 열 기자 안 부럽다 ㅋ 이런 건가요^^
눈이 즐거우셨다면 다행입니다. 리뷰를 찾으면 제에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늘빵 2008-04-28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었겠군요! 아쉽.

승주나무 2008-04-28 15: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쉬워요~ 먹고살기가 쉽지 않죠^^;;

2008-04-2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04-28 15:47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지적 고마워요~

프레이야 2008-04-2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여름에 가족과 함께 갔었어요.^^
강원도 동백꽃의 알싸한 향은 맡아보지 못했지만 사춘기 남녀의
그 마음은 아뜩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승주나무 2008-04-28 15:48   좋아요 0 | URL
네~ 온통 봄봄과 동백꽃에 대한 이미지였던 것 같아요~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그 작품들이니까요.
저는 그보다 그의 도시적인 작품들에 더 관심이 가더라구요~
시간이 되면 그에 관한 리뷰를 좀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Jade 2008-04-2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엄청 재밌으셨겠어요~~~~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ㅜㅠ

승주나무 2008-04-28 15:48   좋아요 0 | URL
진짜 아쉬워요~ 제이드 왔으면 누구보다 더 즐거워했을텐데~
웬디양 님이 더 아쉬워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