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평소처럼 다음에 접속했다.
다음에서 타먹은 캐쉬라고는 1만원이 전부였는데,
블로그에서 애드클릭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클릭을 할 때마다 몇 십원에서 몇 백원 정도씩 올라가는데,
10만이 좀 넘는 역대 회원수에 비해서 좀 작다 싶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갑자기 10만원이 떡하니 생긴 거다.

떨어진 돈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다음에서 잘못 입금한 게 아닐까?
10만원이 들어온 이유는



얼마전 썼던 블로그 기사 때문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블로그 특종상!!!




아프 님과 멜기세덱 님과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에 가서
촛불 안 들고 딴짓만 했는데,
예를 들면 아프 님한테 자리 챙겨달라고 하고 앞줄부터 인터뷰 대상을 물색해서
들이대는 일 등이다.
거기서 기웃거리다 안희태 기자의 문자를 받고,
용달차 위에 올라가 사진도 찍어 보고 현장교육도 받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촛불만 들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 많았다.



쇠고기 청문회가 있던 날 블로거기사 메인에 올라가 조회수 7만여 회와 추천 232회, 댓글 509개와 엮인글 18개..
소박한 블로그를 꾸려오던 내게는 처음 있는 일.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간만에 자랑질하며 소리질러 본다~ 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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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5-1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촛불 안 들고 딴짓햇다구? 너 답다. ㅋㅋ

승주나무 2008-05-16 14:02   좋아요 0 | URL
네~ 그림이 보이시죠 ㅋㅋ

순오기 2008-05-1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추천수 232 중에 제가 누른것도 하나 있어요~ 메인에 떴길래 들어갔었죠!^^
축하합니다~~~~ 수고의 댓가에요!!

승주나무 2008-05-16 14: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의 블로그에는 언제 다녀가셨나요. 순오기 님 덕분에 상금 탔습니다^^

마노아 2008-05-1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쉬로 주나요 통장으로 주나요? ^^ㅎㅎㅎ
축하해요. 더 열심히 뛰라고 주는 건가봐요^^

승주나무 2008-05-16 14:03   좋아요 0 | URL
캐쉬로 주는데, 통장으로 환급이 가능합니다. 환급을 할 때는 세액공제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현금성으로 받기는 처음이네요 ㅋㅋ

L.SHIN 2008-05-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멋지다.
옳고 정당한 일을 하는 것에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것을 스프링 삼아 더 멋진 기자님이 되어주세요.^^

승주나무 2008-05-19 22:04   좋아요 0 | URL
Lud-S 님//감사합니다. 스프링을 제대로 달아야겠는걸요 ㅎ

하늘바람 2008-05-1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축하드려요

승주나무 2008-05-19 22: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자유주의학파라고도 부르는 '시카고 보이스'(Chicago Boys)를 중용해 완전한 금산결합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해 거대한 복합투기자본이 되었지만, 마침내 1980년대 초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3년 만에 GDP가 15%쯤 축소되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져내렸다. 결국 가장 극단적으로 시장정책을 시행했던 나라가 역설적이게도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하여 은행이 다 국유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통해서 사실상 모든 나라들이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한국경제 새판짜기 302~303쪽


칠레이야기의 해피엔딩은?

국유화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났을 때 남미에서 여러 번 금융 불안정이 야기되었을 때 칠레는 영향을 가장 덜 받고 안정을 유지했다. 혹자는 이것이 1980년대 초의 끔찍한 경험으로 금융을 함부로 자유화하면 안 돤다는 걸 알게 되어 규제를 비교적 잘했기 때문이라고도 얘기한다. 단기성 국외자금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외화 가변예치의무제가 칠레가 발명한 유명한 정책상품이다.

★ 가변예치의무제
외국에서 핫머니가 급격히 유입돼 국내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장치로, 반입되는 외화의 일부를 외국환평형기금에 강제로 예치시키는 제도, 가변유치 대상은 거주자나 비거주자나 들여오는 외자로, 증권투자 또는 부동산투자 등 핫머니성 자금에 국한되고, 수출입대금 등 기업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외자는 제외되는 게 보통이다.


가변예치의무제라..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삼성에서 칠레까지의 거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칠레행 열차를 타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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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5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87년 민주항쟁에는 거대한 승리와 거대한 착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87년은 시민의 형식적인 승리와 노태우의 실질적인 승리를 모두 함의하고 있다. 때문에 87년을 진행형으로 보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87년을 과거형이나 완료형으로 보려는 관점들이 착각을 일으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우석훈 씨에 의하면 87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금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거나 사교육 열병을 주도하는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나, 첫 술에 배가 부르다고 하는 현상. 이것을 87현상, 또는 87의 법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87은 박제된 현대사이며, 87 이후는 또다른 슬픈 현대사다.

2. 4.3특별법이 발의되던 2000년 벽두에 나는 제주도에 있었는데, 당시 작가들과 문학비평가 등 지식인들이 4.3의 이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했다. 4.3은 아직도 이름이 없는 상태인데, 나는 그때 4.3특별법 발의 이후에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나 시원스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4.3을 내게 처음으로 '학습'시켜주고 특별법 발의를 간절히 기원했던 선배는 특별법 발의 이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니 이제 다 해결된 거 아니냐?" 나는 참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4.3특별법은 아직도 보수 세력의 폐지 압박을 받고 있다.

3. 시사IN은 전직 시사저널 기자들이 사장의 편집권 전횡에 항거해 거리로 나오면서 독자들의 지지를 모아 발간한 자유언론의 완충지대다. 나는 거리에서부터 기자들을 응원했다. 극적인 과정을 통해 시사IN이 창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더러는 함께 하였다. 하지만 첫 깃발만 세웠을 뿐 독자들의 염원에 대해서 시사IN은 아직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시사IN은 아직 빚을 갚지 못한 상태다.

4. 김용철 변호사는 다소 진보적이고 정론지라 평가되는 신문사를 떠돌고 있었다. 하지만 제보를 실어주는 용감한 신문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김 변호사와 그의 친구들의 시선에 시사IN이 들어왔다. 언론에 크게 실망한 김용철 변호사는 처음에는 시사IN을 특별히 보지 않았지만, 시사IN이 창간되는 과정을 듣고 제보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삼성의 압력으로 벼랑 끝까지 갔다가 독자들에 의해 구조된 시사IN의 특종으로 인해 삼성 문제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언론사는 일제히 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87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뜻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삼성문제의 시작으로 보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삼성문제의 끝으로 보고 말았다. 삼성문제는 삼성쇄신안이라는 조삼모사로 일단락이 되어 쇠고기에 가려졌는데, 이 국면이 당장 어떻게 될지 바람 앞의 촛불이다.


시사인이 세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시사저널 투쟁을 첫 번째 이야기, 시사인 창간을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사인 제2 창간은 세 번째 이야기쯤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는 '독자'가 들어가는데, 독자 대표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전쟁의 한 줄기를 전선이라고 하는데, 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 살점과 무수한 피가 희생되어야 한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독자들이 호응하면서 '전선'이 성립됐다. 기자들은 위험과 생계를 희생했고, 독자들은 십시일반으로 시간과 약간의 돈을 할애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선은 아직 미약하게나마 유지되고 있다. 전선에서 구를 만큼 굴렀다는 내가 다시 전선으로 뛰어든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면, 87법칙의 결계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다.

천착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시대정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천착해서, 그 문제가 87법칙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시사IN의 세 번째 이야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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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가 되는 길은 고되고 길다. 길어서 길인가부다 ㅋ

1. 동시 쓰기


어려서 병약했다. 한달에 여러 번 병원에 갔던 것으로 기어하는데, 나는 보물섬 세대여서 병원에 비치된 최신 보물섬을 보았다. 누가 그 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아픈 데가 더 아픈 것만 같았다. 보물섬에서 즐겨 보던 부분은 뒤에 나온 사컷만화, 독자가 허접하게 그린 그림이라 애정이 갔다. 나도 집에서 종이에 십자를 그어 놓고 그림을 그려 보았으나 포기했다. 의사가 부르면 마음 속으로 '다음에 아프면 또 와야지'하고 의사방에 들어가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처럼 뛰놀지는 못하고 동시를 썼다. 그때 쓴 시를 생각하면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못 되는 것 같다. 이오덕 선생에게 내 시를 직접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뭐 이런 식이다.
5월은 / 어린이 달 / 우리의 푸른 세상 //들로 산으로 / 뛰쳐 나가자...노래하자 다 함께 / 얏호
이에 대한 이오덕 선생의 평은 "이것은 초등학교 1학년이 아니라 6학년이 썼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말이 아니다. 이 글에는 어린이의 마음이 없고 삶이 없다. 어른의 말이요 구호요 개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시절 반공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국군 아저씨가 공산군의 탱크 아래나 적군의 바위 기지에 바싹 다가가 수류탄을 던져 깨뜨리는 장면에 아주 통쾌해하던 아이, 대응댐에 모금을 해야 한다며 엄마를 조르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요즘도 자주 는실난실 끼어든다. 그리고 7.5조라는 이상한 법칙에 매여 제대로 내 생각을 풀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기쁨을 처음으로 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지.


2. 백일장 시 쓰기, 시인과의 만남, 축시 쓰기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갔다. 책읽기를 싫어해서 단 한 권의 시집도 보지 않았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시 실력이 형편 없었다. 도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가면 가작 이상은 입선할 수 없었다. 그때 부모님에 관한 시를 썼는데, 지금도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추상어 투성이었지만, 이모는 그 시를 보고 우셨다고 한다. 엄마도 매우 흡족해 하셨는데, 그 시가 어떻게 사람을 울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내가 시인이 아니라 우리 이모와 엄마가 시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지금도 시인이다.
대학은 공대를 들어갔지만, 문학동아리에 발을 붙였다. 전공을 비실비실하다가 국문학과로 전과를 했다. 그때 선배들의 영향으로 많은 책과 시집을 읽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참 내 이야기와 같아서 감명을 받았다. 박노해 식 시쓰기의 세례를 받고 사회문제에 관한 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도현을 만났다. 안도현의 감성적인 시들은 나를 흥분시켰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같은 시는 당시 산문시 중심으로 썼던 나의 시 쓰기에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하면 빼뜨릴 수 없는 시인이 그로테스크의 요절 시인 기형도가 있었다. 기형도는 하나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특히 메모하듯 써내려가는 시어들이 시가 되는 모습이 환상적이어서 그와 비슷한 시를 쓰려고 막 흉내를 냈던 것 같다. 천상병의 아이 같은 시도 좋았다. 천상병의 출세작을 보고 우연히 천상병 주제의 연극(최초로 본 연극)을 보았는데, 시인의 인생이 마음에 들어오는 듯했다.


 

 

 

그때 매문이라는 것을 처음 썼다. 문학동아리의 집행부를 맡고 있었는데, 항상 자금이 바닥이다. 그러면 주요 전략은 '축시 비지니스'
나도 결혼을 해봐서 알지만, 결혼식 이벤트로 축시는 제격이다. 제법 운치도 있고, 손님들도 부러운 눈치로 본다. 대충 노래부르거나 하는 것보다는 훨씬 격조 있지 않느냐.
축시를 쓰면서 시 쓰기에 대한 회의를 많이 느꼈다. 나의 시 쓰기는 그래도 엄격했던 모양이다. 둘은 좀처럼 섞이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든 축시든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소용이 된다면 외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최근에 썼던 축시는 돈 안 받고 마음으로 쓴 가족축시였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일본인 손윗동서"(허걱~길다)와 일본으로 시집가는 처형을 위해 일본의 개국신화를 바탕으로 시를 지었다. 내가 시를 쓰고, 처제는 그림을 입히고, 큰 처형의 가족들은 열심히 낭송을 연습했다. 큰 처형이 시낭송 모임의 회원이기 때문에 그 가족은 시적인 향취가 대단하다. 조카 둘은 일본인 손님들을 감동시켰고, 처형은 일본에서 잘 지내고 있다. 시 하나로 가족이 하나되는 경험은 그 전의 시 쓰기에서는 보지 못한 체험이었다. 만약 내가 축시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었다면 이런 체험에 도달하기는 어려웠겠지. 암튼 대학 때 만났던 시인들이 지금은 다른 시인에 의해서 모두 헤어지게 되는데, 그 시인은 다음 회차에 공개한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아이들


시작 : 승주나무 (손아랫동서)
낭송 : ***, *** (조카)
시화 : *** (처제)






        처음에는 파란 하늘이 마냥 좋아
        거기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차분한 마음이 땅에 닿았고
        또 한 사람은 뜨거운 열정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둘 사이로 지난 여름처럼 뜨거운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힘센 태풍이 혼돈의 바다 같은
        두 사람의 마음을 쓸어내는 동안
        그들은 파란 하늘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방울로 땅과 섬들을 만들던 그때의 기억으로
        섬처럼 튼튼한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동안
        파란 하늘은 감귤빛으로 익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아직도 거기 서 있습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아이들이 서 있던 땅에는
        오늘도 잘익은 하늘이 비추고 있습니다.



- 2008년 1월 27일 둘째 처형과 손윗동서 형님의 결혼을 축하하며

※ 이 시는 일본인 가족을 위해 일본 개국신화를 토대로 재구성했으며,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부부를 상징하는 개국신이며 우리나라의 단군왕검에 비유할 수 있다. 부부는 음양을 상징하므로 뜨겁고 차가운 이미지를 대비시켰고, 이들이 물방울로 땅과 섬을 만들었다는 모티브를 활용해 가족의 번성을 기원했다. 감귤빛 하늘은 제주 특허이므로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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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요즘 책세상 문고에서 나온 <한국정치 웹2.0에 접속하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적 쟁점이 집중되는 시기(선거나 국회 회기 등)가 아니라도 인터넷이 우리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터넷을 사용하며 소통하는 일상 자체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사소통의 구실이 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강원택 교수는 경향신문에 필자로 자주 모습을 보여 익숙한 인물이라 더 믿음이 갑니다.

 

 

 

 

1. 한국 정치 웹 2.0에 접속하다(책세상 문고, 강원택 저)

이 외에 인터넷 민주주의에 관한 책(사실은 인터넷과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소개받고 싶습니다.

책세상 문고의 부록면에는 이 외에 관련 도서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네요. 제가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소개말만 요약해서 올립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셨던 분들은 평가를 바라며, 이 외에 다른 좋은 책이 있다면 댓글이나 먼댓글로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런 콘셉트의 책에 관한 리뷰를 쓰셨던 분들은 리뷰를 게재한 주소를 댓글이나 먼댓글로 소개해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혹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즐공유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강원택, <인터넷과 한국정치 : 정당정치에 대한 도전과 변화>(집문당, 2007)
이 책의 관점은 정당이 인터넷을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나라 정당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3. 김용철, 윤성이, <전자민주주의 :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모색>(오름,2005)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검토부터 의회, 정당, 선거 운동, 투표, 시민운동 등 정치 과정에서 인터넷이 어떻게 활용되고 또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고 있는지 분석하여 한국 정치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조명한다.


4. 김종길, 김문조, <디지털 한국 사회의 이해>(집문당, 2006)
우리나라 정보 사회의 변화에 대해 사회학의 시각에서 분석한 연구서. 전자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 현상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기업 문화, 안티사이트, 붉은 악마, 사이버 공동체, 아바타 등 흥미로운 사회 현상에 대한 연구도 포괄하고 있다.

 

5. 노리스, 파파,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 : 정보불평등과 시민참여>(후마니타스,2007)
인터넷으로 말미암은 정보 격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정보 활용의 격차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전 세계에 걸쳐 179개국의 경험적 자료를 대상으로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6. 빔버, 브루스, <인터넷 시대 정치권력의 변동 : 미국 민주주으의 역사적 진화>(삼인, 2007)
정보화가 미국 정치 제도와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정치세력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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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5-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깜찍한 승주나무님 같으니라구!!
그런데 이 분야에 대해 아는게,,,ㅠㅠ

승주나무 2008-05-14 12:35   좋아요 0 | URL
아니 벌써 신호를 ㅋㅋ
한 번 필 받으면 막 들이대는 성미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