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은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역 부근의 상황을 잘 아실 겁니다. 구름다리 입구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그 너머에 손기정체육공원 부근 봉래초교 육교는 광고판이 앞뒤로 막혀 마치 감옥을 연상시켜 답답했습니다. 그냥 놔둬선 안 되겠다 싶어, 이를 취재해서 광고판을 바로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과잉진압 문제 때문에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사제단이 집회의 방향을 바꿔놓는 큰 일을 했다는 소식과 이 조그마한 소식이 생활의 청량제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서부역 주변 손기정체육공원 부근의 육교에 부착된 광고물. 지나가는 행인(보통 어른) 평균 키를 넘길 정도로 높이 부착돼 있다.
 

 

감옥이 되어 버린 육교


육교의 목적은 차도를 건너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육교라는 조형물이 주변 경관과의 조화, 육교 위에서 풍경을 바라볼 권리 등은 단지 감성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때문에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개정안(일부개정 2008. 03. 21) 제4조(광고물등의 금지 또는 제한 등)에 의하면 "각호의 지역·장소 또는 물건중 미관풍치·미풍양속의 유지 또는 공중에 대한 위해방지와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의 조성을 위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지역·장소 또는 물건에는 광고물등(대통령령이 정하는 광고물등을 제외한다)을 표시 또는 설치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6월 29일 기자는 서울 서부역 손기정체육공원 부근의 봉래초교 앞 육교를 지나며 마치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광고판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사방이 막혀 있어서 육교 안을 보면 마치 커다란 박스를 갖다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용산구 관할인 봉래초교 육교는 완전한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상행선뿐만 아니라 하행선을 향한 광고판이 모두 보통 어른보다 머리가 하나에서 두 개 정도 더 높게 설치된 것이다. 광고판을 설치한 쪽에서 볼 때 절박한 문제이지만, 육교를 향유하는 시민의 절박함 역시 중요하므로 이를 취재했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과 '서울특별시육교사용료징수조례'로 본 육교 광고판


 

2002년 1월 5일에 개정된 '서울특별시육교사용료징수조례'>의 부칙 중 별표1(허가조건(제3조 제5항 관련))에 따르면 "홍보물은 현판으로 제작하여야 하며, 홍보물의 규격은 육교의 길이와 일치되고, 높이는 난간 높이로 하여야 한다."(제1조)고 되어 있다. 앞서 보도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조례로 볼 때도 위법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의 건설관리과에 문의해 보니, 옥외관리규정은 '미관'이나 '미풍양속' 따위의 추상적인 선에서 명시돼 있기 때문에 현장 조사를 통해서 과태료 부과와 시정 조치 등을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자는 관련 사진을 담당자에게 보내 주었다.


담당공무원은 이메일 답변을 통해서 봉래초교 육교의 광고판 건은 "옥외광고물법 개정(시행일 : 2008. 6. 22)되기 전 허가된 사항"이며 서울특별시육교사용료징수조례 제6조(금지사항) 2항 중 "다만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예외조항을 들어 금지사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별표1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옥외 광고물 등 관리법이 개정됐고, 법에 맞춰 조례가 개정중이기 때문에 7월은 옥외 광고물 부착 허가는 교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봉래초교의 광고판 역시 오늘(7월1일) 내로 현판을 제거한 후 현장사진(현판이 제거된 현장)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만약 공무원이 답변 내용과 같이 신속하게 민원을 처리해준다면 분명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겠지만, 현재 명시된 조례나 법률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법률이 시행됐다고 바로 지켜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기자가 서울역에서부터 구름다리를 지나 봉래초교 육교까지 지나는 동안 주변 경관은 매우 황량했고, 특히 구름다리 입구에는 심한 악취로 인해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곳곳에는 이렇게 행인을 위협하는 곳이 너무나 많다.


★ 보도이후

기사 보도 이후 담당자(용산구청 건설관리과 가로정비2팀)로부터 메일을 보내 왔다. 담당자는 기자를 민원인이라 불렀는데, 생각해 보니 민원은 민원이었다.
반가운 사진 하나를 보내주었다.


취재기사를 내보낸 직후 용산구청으로부터 반가운 사진이 도착했다. 1일 오후 2시 현재 두 개의 광고판으로 꽉 막혔던 육교에서 광고판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이 조처로 용산구청은 전국 지자체 중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을 가장 신속하게 적용한 곳으로 남게 됐다.



위의 사진에서 보았던 답답한 광고판이 제거되었다.
공무원에 따르면 7월1터 육교광고판에 대한 개정법률이 시행돼 취재를 하지 않더라도 제거를 했을 거라는 뉘앙스를 보여주었지만, 기사를 통해 답답한 현판이 제거되니 기사쓸 맛이 난다. 기자의 의견을 경청해준 용산구청 측에 감사를 표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당국이 정당한 의견에 경청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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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0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승주나무님을 행동하는 지성,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 추천합니다!
광고가 제거된 육교를 보니 시원하네요~~ 참 잘했어요. 도장 꽝!!^^

승주나무 2008-07-03 17:04   좋아요 0 | URL
요즘 순오기 님께 칭찬 많이 들어서 기가 막 사는데요!!ㅎㅎ

paviana 2008-07-03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도배된 육교는 밤에 건너기가 너무 무서워요. 될수 있으면 피하게 되지요. 범죄의 온상이 될 듯 해서요. 잘하셨어요.

승주나무 2008-07-03 17:0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습니다. 밤에는 정말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돼 있더라구요. 차 달리는 소리만 쌩쌩 나고~
늦게나마 치워져서 다행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시집을 들었다.

광화문 광장에 벗들과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도

나는 쓸쓸했다. 친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시위라는 것은 사람에게 하는 인간의 고귀한 행동이지만,

벽에다 대고 시위를 하는 쓸쓸함이랄까.

신문기사를 봐도 나의 쓸쓸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 기사를 클릭했고,

책의 활자를 억지로 꾸역꾸역 넣었다.

컴퓨터 앞에서 쓰러져 자다가 아침에 보면 불도 켜져 있고 컴퓨터도 켜져 있고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 '검색'이 되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갑자기 기형도의 <밤눈>이라는 시와 시작메모가 들어왔다.


<밤눈>은 광화문과 거리의 쓸쓸한 시민들을 가장 잘 위로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보도한 한 언론사는

"따뜻한 어머니 품에 안겨 실컷 운 느낌"이라고 제목을 땄다.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아이이다.

유년시절은 인간 감성의 원천이기 때문에

권력과 경찰의 무차별한 폭력에 물러서지 않았던 용감한 사람도

영혼의 위로 앞에서는 스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밤눈' 전문, 기형도전집 91쪽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밤눈같은 존재인 우리들은
저마다 고유한 온도를 가지고 빛을 내뿜으며 녹는다.
눈이 쌓이는 광경은 마치 해병의 진격 같다.
선두에 달리는 눈은 땅에 닿자마자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가 죽은 자리는 터전이 되어 다음 눈이 죽지 않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수백의 눈 알갱이가 터를 닦은 곳에
무릎보다 더 높은 눈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밤눈>이라는 시는 나의 전투력을 앙양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면서 처음으로 강원도에 있는 오마이스쿨에 갔다.
거기서 백창우 씨를 처음 만났다.
고무신을 신은 그는 어린이 노래를 잔뜩 준비해 왔는데,
관객이 모두 어른이라 레파토리를 급변경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곡은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라는 시였다.
백창우 씨는 '작곡가'가 아니라 '잡곡가'라는 세간의 평이 그럴듯하다.
내가 들었던 백창우 씨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풍을 만나 반가웠고,
기형도의 빈집을 노래로 들어서 더욱 반가웠다.

기형도의 <빈집>은 시인들의 존경을 받는 작품이다.
빈집에 갇혀 시를 쓰는 시인을 그려보게 된다.
단어들이 종이에서 기어나와서 시인을 괴롭히거나
시인에게 고단한 인생사를 늘어놓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시인은 아직도 빈집에 갇혀 나오지 못했지만,
나는 기꺼이 빈집 문을 두드린다.


※ 중간에 카메라맨으로서는 금기인 효과음이 끼어들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기형도-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을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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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0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백창우씨. 알아주는 보석이죠! ^^

승주나무 2008-07-02 12:25   좋아요 0 | URL
정말 보석같은 음률과 가사였습니다. 그 자유분방함이 반짝반짝했습니다^^

연두부 2008-07-0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클하네요...위로 받고 갑니다,,,,

승주나무 2008-07-02 12:25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승주나무 2008-07-0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오른쪽 양말 빵꾸났씨요 ㅋ

승주나무 2008-07-02 12:2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 씨~ '빵꾸난 양말과 고무신'ㅋㅋ 토속적이네..

순오기 2008-07-04 19:38   좋아요 0 | URL
ㅋㅋ 두분 얼굴만 보느라고 빵구난 양말은 못 봤는데~ㅎㅎㅎ제발이 저리셨군요.^^
 

'유모차 부대'가 촛불문화제에서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아기엄마가 살수차 2대를 끝내 되돌리기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둔 엄마와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마냥 뭉클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 대해서 엄마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엄마의 경솔함에 대해서 누군가 매질을 한다면 자신은 거기에 반대할 말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편의상 저는 '승주나무'로 아이 엄마는 '엄마'로 했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분은 A로 표시했습니다.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6월 26일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승주나무 : 아이 엄마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살수차 앞을 막아서 2대를 결국 돌려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대단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그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오죽하면 이랬겠냐'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군요.
엄마 : 그 소식을 저도 접했어요. 같은 엄마로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엄마가 아이를 그런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온 점에 대해서 많은 비난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엄마는 아이를 위험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여야 하는데,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거든요.
승주나무 : 유모차 엄마들의 인터뷰 보도를 보면 아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에 데리고 왔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경우 아이의 의사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엄마의 주장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일 수도 있고.
엄마 : 그런 면이 적지 않습니다.
A : 이전에 유모차에 대해서는 경찰이 강력하게 막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확신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승주나무 : 사례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장에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예를 들면, 제 형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어려서 무덤 앞에서 사촌오빠와 장난을 하며 놀았거든요. 아이 엄마는 아빠 무덤 앞에서 절을 하게 하고 흙을 뿌리게 했지요. 아이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과 이미지들이 분명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광우병 문제 역시 1~2년 안에 완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간다면 당사자인 아이들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엄마 : 그것은 승주나무님이 아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엄마는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를 보호해야 하며,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의 상황을 조금만 환기해볼게요. 살수차가 물을 뿌려대기 시작하고, 소화액을 뿌리죠. 그것이 아이에게는 무척 치명적인 거랍니다. 몸에 조금만 닿아도 세포에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오래 가거든요.


소화액이 유모차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유모차 안의 아이는 당연히 소화액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A : 사실 소화액이나 살수차뿐만이 아니죠.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신문에 보면 촛불시위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에 노출된 아이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트라우마)에 빠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이와 촛불시위 현장은 어쨌든 만나서는 안 될 궁합이 아닌가 생각해요.
승주나무 : 그러면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과 아이가 직면할 가공할 만한 위험의 책임 문제, 이성적 판단이 없는 아이에게 현장을 강요한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겠군요.
엄마 :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 역시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문제가 안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파장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엄청날 수 있습니다.

아이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저는 어떠한 것이든 균형을 잃는다면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좌초하고 만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촛불시위를 당연시하기보다는 촛불시위 곳곳에서 보이는 이런 맹점이나 불균형들을 찾아내고 걷어내지 않는다면, 촛불은 경찰이나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민심에 의해 진압될 수도 있다는 오싹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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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6-2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모차와 전경, 소화기만 생각했지. 그 속에 아이들이 탔을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정답은 없지만, 바르게 가고자하는 의지만 있다면, 의지와 실행력이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요.

Arch 2008-06-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다른 분이 댓글을 다셔서 공부하는 중에도 계속 생각해 다시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지우셨네요. 그 부분은 차처하고. 제 생각에는 우선 평화적인 시위였기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나올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폭력 진압으로 상황이 변질되면 엄마, 아빠의 입장도 달라질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신의 아이들만 챙기는 이기주의로 보이지는 않구요. 앞서 '엄마'님의 말씀처럼 아이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양육자에게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보호자의 양육 가치가 있다면 그걸 함부로 계모니 경솔하다느니로 평가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상황에 따라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대처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만으로 모든걸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요. 옥찌들에게 소화기를 살포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면 저 역시 시위 현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 없을 것 같네요. 아이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냐의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더라구요. 물론 이곳은 교통경찰 동행하에 평화로운 시위를 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승주나무 2008-07-01 18:15   좋아요 0 | URL
시니에 님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아주머니의 행동은 분명 용감하고 위대하지만, 충분히 논쟁적이기도 해서 이렇게 올려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08-06-3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찰들의 양식을 믿고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것이죠. 실제로 경찰들이 폭력을 쓰지 않고 있었구요. 그렇지만, 이제 유모차 부대는 사절이죠. 시국미사 같은 자리라면 모르되... 신부님들이 이미 단식을 선언했고, 순사들이 신부님들을 패거나 연행하진 않겠지만 시위대에서 분리할 순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폭력을 들이밀겠지요. 어차피 전쟁이니까... 우리가 봐라, 평화다. 비폭력이다... 이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거예요. 쟤들은 법 없이 폭력 잘 쓰거든요. 영장 없이 잡아가고, 괴롭히고...

승주나무 2008-07-01 18:16   좋아요 0 | URL
글샘 님~
유모차 부대가 다닐 때가 좋았던 시절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전쟁 상황에서 올바른 의견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패배감이 자꾸자꾸 밀려오지만, 그럴수록 저는 의견을 자꾸 남겨보려 합니다..

비로그인 2008-07-01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나도 아이엄마로서, 유모차 엄마가 존경받을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모차 엄마는 자기 아이만 걱정한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도 보호를 한 셈이죠. 크게 생각하면 자기 아이의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아이들을 광우병이라는 위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이죠. 저도 겁이 나서 밤에는 있을 생각을 못했는데... 유모차 엄마라고 해서 소화기 등...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감안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저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 힘은 매우 큰 것이죠. 나는 개인적으로 엄마 대 엄마로서 존경심을 갖습니다.

승주나무 2008-07-01 18:17   좋아요 0 | URL
사라진 님~ 충분히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해서 존경을 표합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고, 그럴 의도로 글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이런 사례를 통해서 생각할 지점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8-07-0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댓글을 달면서 승주나무님과 이야기를 나눈 그 엄마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위해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부모 개인의 역량에 맡겨진,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영역의 일에 불과하게 되지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간 것은 두번 밖에 안됩니다. 그것도 밤이 어두워지고 행진 이후엔 피하듯이 데리고 들어왔지요.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나왔을 때 놀란 것은 간혹 아이들이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고 엄마는 그 옆에 앉아서 졸기도 하는 모습에 대해서였습니다. 초등생 자녀는 엄마나 아빠와 함께 걸어다니고, 혹은 같이 판지 깔아놓고 자는 모습을 보았지요. 물론 저는 그런 부모를 존경하기는 하지만, 전체 시위를 위해선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이용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런 모습들을 보았을 때, 부모가 이 일로 한번이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갈등을 겪었다면, 그 갈등을 던져놓은 이명박은,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그런 갈등의 언저리라도 한번 가본 그런 아빠였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건설'하느라 자지도 못하고 마누라나 아이들 자라는 모습은 볼 겨를도 없었을 그런 가장이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손자 손녀는 있을 것 아닐까요. 어떤 할아버지인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어떤 부모됨을 가진 사람인지, 애초에 그런 것은 있지도 않으니까 이 일에 대해 부모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게 될런지도 생각을 해보지 못하겠지요.
 



우병국민대책회의가 25일 오전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여의도 KBS 앞에서 벌어진 '보수단체'의 테러에 관한 조선일보의 날조,왜곡보도를 규탄하고 있다.

요즘 광고주 압박 운동뿐만 아니라
'식당주 압박 운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시죠?
어떤 분들은 식당에 들어가서 조선일보가 보이면 바로 나와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당 사장님들이 굉장히 긴장하신다고

제가 다니는 식당은 90% 이상이 조중동을 읽고 있기 때문에
식당을 건드린다면 조중동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만큼 식당 사장님들의 보수세가 강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다니는 식당에도 조선일보를 받고 있습니다.
아저씨에게 슬슬 작전을 폈습니다.

"아저씨 이거 조선일보 아니에요? 요즘 조선일보 있는 식당에 안 가자는 운동 벌어지고 있는데, 모르세요?"
- 어. 그거 잘 모르겠는데~

아저씨 웃으시며 넘어가려 하십니다.

"이 동네가 출판사가 밀집된 지역(서교동)이잖아요. 출판인들은 신문 많이 보고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장사에 지장이 있지 않으세요?"

아저씨가 드디어 촛불에 대한 입장을 내놓습니다.

- 나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국민을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요즘 돼지고기 값이 얼마나 하는 줄 알아?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거든.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식당에서는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논점이 조선일보의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환기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촛불에 대해서 지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70%를 넘어요. 그리고 쇠고기, 돼지고기를 수입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할 수 있도록 검역권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만약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는 거 아세요? 미국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게 말이 안 되죠."

아저씨가 수긍을 하는 눈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작전을 폈습니다.
가지고 있던 경향신문을 보여주면서
 
"아저씨 제가 이거 선물로 드릴 테니 조선일보랑 비교해보고 판단을 해보세요"

아저씨는 조선일보를 가리키며

- 안 그래도 이 신문을 보지 않으려고 했어. 좀 이상하더라구.

그러면서 기막힌 반전..

- 중앙일보를 볼까 해

허걱!!

아저씨는 경향신문을 마다하였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 작전을 고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조중동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식당 아저씨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환기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실패 사례지만, 성공 사례를 좀 배우고 싶네요.
식당을 한 달 정도 안 가고, 한 달 후에 한번 다시 가서
"아저씨 아직도 조선일보 읽으세요?"라고 물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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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28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강추!

승주나무 2008-06-29 19:04   좋아요 0 | URL
^^

앨런 2008-06-2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화이팅!

승주나무 2008-06-29 19: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순오기 2008-06-2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정말 굉장하겠는데요~ 조중동 비치한 곳은 무조건 거부하고 불매한다. 부라보!!
한달 뒤에 가면 너무 늦잖아요. 일주일 후에 가시죠~

승주나무 2008-06-29 19:20   좋아요 0 | URL
일주일 후에 가면 미용비 많이 나오는데 어떡하죠~~
저도 미용실 가면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승주나무님께 2008-06-2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승주나무님, 조중동신문에 대한 님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 알겠지만 타인이 보는 신문까지 보지말라고 하시는 것은 본인 의견을 타인에게 너무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조중동의 실체를 모르니까 그걸 알려주고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장사..'까지 운운하시는 건 좀.

지난번 몽둥이를 두고 혼자 일인시위를 하는 듯한 어떤 이의 사진에, 그 몽둥이가 스스로 자철한 폭력이라지만, 이렇게 대세 속에서 혼자 반대를 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취약해서 자기보호라고도 (맨처음 시청에선가 촛불반대 시위을 한 한사람에게는 맨처음 위협 등등을 한 일부 부분도 있습니다. 결국,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서 놔두긴 했지만요) 해석을 할 수도 있지않을까요?

맨처음의 촛불시위는 지지하지만, 알라딘에서도 점점 더 하나 이외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강요만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떠나고있습니다. 가끔은 님의 생각만이 모두 다 옳지않고, 타인에 대해서도 한번 더 물러서서 생각도 해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건필하십시오.

승주나무 2008-06-29 19:50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께 님..
아이디에 제 아이디를 겹쳐 쓰는 기분이 좀 이상하군요^^
제 의도와 마음과 감정은 분명히 글에 적은 바와 같지만, 식당 아저씨께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끼리끼리 알라디너'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분이 많았고 저 역시 그런 점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선을 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그것이 타당하다면 문제제기를 하면 되는 것이지 알라디너 운운 하는 것은 알라디너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억울한 측면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체주의 블로거가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사고틀을 조금씩 깨나가려고 하고 반대의 사고를 거부할 만큼 꽉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실명으로 입장을 세우시기를 바라며, 알라디너의 생각에 님의 생각을 더해 주기를 바랍니다^^

yjko 2008-06-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독선적이군요.
님이 증오해마지 않는 조중동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어요.

승주나무 2008-06-29 19:54   좋아요 0 | URL
어떤 점이 독선적인지 모르겠네요. 그 사이에 담겨 있는 문맥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증오해 마지 않는 조중동이라고 하신 부분은 어디서 나왔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저는 '안티 조중동'이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안티 반언론'입니다. 언론정신을 추구하는 매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그것을 허물어뜨리는 언론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이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행동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엉성하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남에게 강요가 되지 않도록, 증오로 비치지 않도록 조금 더 신중하게 다가가겠습니다.
어쨌든 님의 지적은 달게 받겠습니다

........ 2008-06-29 21:4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언론정신이 뭔지 설명 좀 주시죠.

승주나무 2008-06-30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 제가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PD수첩 700회 특집에서 한승호 CP가 마무리 멘트한 내용을 인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취재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권력, 자본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시청자만 두려워하는 방송입니다."
조선일보가 독자를 두려워하는지, 청와대나 삼성을 더 두려워하는지 살펴보면 좀 나올 것 같습니다.
 

 

 

 


갑자기 기형도의 시와 시작메모가 생각났다. 「밤눈」이라는 시였는데, 현재 나의 상황과 감정을 잘 표현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생각이 났나 보다.

거리에서 시 쓰기

제50차 촛불문화제다.
이곳에 몇 번째 걸음인지 헤아리기 힘들어졌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것을 인터넷에 신속하게 올렸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들뜬 상태'였다는 뜻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분노했고, 갈망했고, 불안했고, 애가 바싹 탔지만 나의 글에는 그런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러한 열망을 번번히 묵살했던 것이다. 이명박이 국민들의 열망을 묵살했던 것처럼.

이 '묵살'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묵은때와 같은데, 앞선 2번의 선거 때도 나는 나에게 투표하지 않고, 나보다 강하고 독한 자들에게 권력을 허락했다.
김현진이라는 칼럼니스트는 내 마음 속에 이명박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시사IN 40호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 사실 나는 좀더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해서 고성능 카메라를 원했고 이를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컴퓨터를 더럽혔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펜과 종이 한 장, 시집 한 권만 들고 거리로 나갔다. 기형도의 시집이다. 요절한 젊은 시인 기형도는 '밤눈'이라는 시를 쓰면서 '시작메모'를 남겼는데, 메모에는 거리에서 시를 쓰는 것이 고통이라고 썼다. 이것은 정제된 시적 감수성과 난폭한 거리의 소음이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고통만 안겨줄 뿐인 거리에서 계속 머물러 시를 썼을까? 그의 메모가 지금의 상황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전문을 인용한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으로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밤눈」은 그 즈음 씌어졌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삶과 존재에 지칠 때 그 지친 것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비유는 자연(自然)이라고.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앚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밤눈」을 쓰고 나서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밤눈」의 시작메모 전문, 기형도전집 333쪽



나의 옹졸한 수백 개의 문장은 한 시민이 길바닥에 흘린 한덩어리의 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경찰이 던진 벽돌은 선량한 가게의 간판을 찢고 무고한 시민에게 중상을 입혔다. 돌을 맞아 피를 흘린 시민은 급히 후송되었다.


부조화 선언

시인처럼 나도 부조화를 자청하려고 한다. 시민들이 목청껏 요구사항을 외칠 때 나는 그 외침들을 듣기 위해 침묵할 것이고, 촛불과 외침이 허공과 주위를 가득 매울 때 나는 모든 신경을 작은 종이 한면에 쏟아넣으려고 한다. 거리에서 나는 예외적인 인물이자 잉여인간이 되었다. 나의 급조된 글, 남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성정, 그리고 이를 통해 회피하려는 나의 유약함을 모두 털어내고 '부조화'라는 깃발을 든 이유는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이 '나'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나'는 급조된 자기배반으로 치달을 수 있고, 맹자의 무서운 예견과 만날 수 있다. 맹자는 무서운 소리를 한다. 만약 이명박이 너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네가 먼저 스스로를 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밤눈」이라는 짧은 시를 읽으며 나는 거리의 시민들이 밤눈과 닮았다는 생각을 헀다. 이 시는 도시에 내리는 위태로운 눈을 시인이 포착해서 쓴 글이다.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 「밤눈」 전문, 기형도전집 91쪽

몇 번이나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밤눈의 온도, 죽음도 다가가지 못하는 온도를 품은 생명은 먼지 크기의 극히 사소한 얼음알갱이일 뿐이며 금세 녹고 말겠지만, 쫓겨나면서도 자꾸 허공을 향해 춤을 추고 빛을 반사하는 격정을 시인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래서 나도 거리에서 시를 쓰기로 했다. 나는 거리의 촛불들과 부조화를 선언한다.


큰무덤

부덤보다 차가운 길바닥에 매달려 있던
촛불의 주인이 사라졌다.
그가 죽었다
새로운 촛불의 주인이 나타나 또다시
곤봉과 방패에 살해됐을 때도
사람들은 자꾸 나타나 기꺼이 죽었다
내가 기꺼이 죽을 테니
촛불을 더 달라고 성화다

무덤에는 사연이 많다.
더러는 너와 몸을 섞었던
치욕스러운 겨울밤을 잊고 싶어
죽음을 자청하기도 했고
물론 그보다 사소한 죽음도 있었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무덤이 하나씩 세워졌는데
금세 사연 많은 큰 무덤이 만들어졌다

큰무덤 위에 누가 초를 꽂았다
촛불에도 사연이 많다
불나방처럼 촛불을 품에 안으려다 날개가 다 타버렸다
사람들이 촛불 앞에서 쓰러질 때마다
빛은 사연을 더해 갔다.
만 가지 사연을 가지고 애타게 타고 있는 촛불이
곧 꺼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서 촛불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민들이 인간의 띠를 이루어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날랐다. 내게는 그것이 큰무덤처럼 보였다. 모래 알갱이 하나마다 남다른 사연을 머금은 큰 무덤. 거기에 촛불 하나를 올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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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7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무겁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