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과 국민토성은 2008년 현재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저마다 조형물에 뜻을 담았다.

명박산성은 물리력에 의존한 반면, 국민토성은 그 상징성에 방점이 찍혔다.
물리적으로 국민토성은 청와대는커녕 전경버스조차 제대로 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주머니를 애써 옮겨 가며 토성을 쌓은 것은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읽어주지 않기 때문에 조형물로서 마음을 기탁해본 것이다.

쌓는다는 행위 또한 의미가 있다.
7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2차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한승수 국무총리는 뜬금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39만표, 노무현 전 대통령은 57만표, 이 대통령은 500만표 차이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받은 표는 중요하게 보면서, 국민이 하나하나 쌓아놓은 분노는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토성의 높이가 아니라 토성을 받친 모래주머니 하나하나의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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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아놓고 국민을 한껏 조롱하자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래주머니를 날라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6월 26일 광화문에 길다란 인간띠를 만들어 모래주머니를 옮기고 있다.

토성을 쌓은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토성이 어긋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논의를 하며 어디에 모래주머니를 둘지를 정하였고, 토성 쌓는 벗의 손이 다칠까봐 손수 장갑을 사다가 공수하기도 했다. 장정뿐만 아니라 노약자, 어린이까지 토서 쌓는 데 동참했다. 심지어 외국인도 거들었다. 특히 두 줄로 늘어선 길다란 인간띠가 모래주머니를 하나하나 나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맹자에 "무력으로 사람을 진압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단지 힘이 부족해서 굴복할 뿐 마음으로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마음속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하게 된다."(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 공손추 상)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도덕적으로 치명상이 있어서 이 말이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지만, 권불십년이라. 권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가진 거라고는 '도덕성'밖에 없다. 도덕성이라는 것은 고도의 실천이 요구되는 무기다.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정교하게 다듬고 부자신문들이 트집을 잡을 수조차 없도록 해야 한다. 다급하다고 빈틈을 보이면 다시 진흙탕에 빠질 뿐이다. 차분히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 앰네스티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은 촛불집회에 대해 평화의 집회, 신개념의 집회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 세계시민의 보편적인 평가다. 이들의 지지를 계속 받고 측면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도덕성의 유리그릇을 깨뜨리지 않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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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정진국 지음, 생각의나무 


책의 속도로 천천히 걷다


키보드 몇 번에 세상 모든 정보가 일렬종대로 모이는 세상이 왔다.

책의 속도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가 온 것인가?

출판사의 영업자들을 만나 보면 출간 1달 내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이미 책의 운명이 결정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책은 많지만 '스테디셀러'에 오르는 책은 점점 줄어든다. 책 정보는 넘쳐나되 책은 없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인류의 정보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책 읽는 속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는 한장 한장 걷듯이 읽지 않고 방법이 있을까?

이번 주의 책글모둠은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정진국 지음, 생각의나무)였다. 총 21명의 리뷰어가 참여했다. 책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헌책방 등 책에 관한 향수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도 보였다. 하지만 결국 리뷰어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우리들의 책마을'이다. 도서축제니 출판도시니 우리나라에도 많은 책 콘텐츠들이 있지만 그것이 '문화'와 '공동체'로 수렴되지 못하다 보니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리뷰어들의 글을 읽으면서 덩달아 향수에 빠져 허우적대고 탈출하고를 반복했지만,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는 맛은 언제나 기분좋다.


'파주 헤이리'와 '유럽 책마을'의 다른 점


책마을도 같은 책마을이 아니다. 우리가 '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아이디 '바지런'의 말처럼 "자그마한 책방들이 일상 속 주민들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 자체로 하나의 풍경"(파란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들의 책마을은 어떤가? 몇 번이나 파주에 다녀온 아이디 '행인'은 "특이하고 예쁜 건물이 있는 곳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고 썼고, 아이디 'NO-buta'는 "출판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사고싶은 책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 '책마을'의 현주소다. 하긴 그곳의 정식명칭은 '파주 출판단지'이다. 공업단지의 틀에 '출판'이라는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디 '롤러코스터'는 출판단지의 지나치게 깔끔하고 획일적이고 커다란 건물들에게 "그다지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유럽의 책마을은 어떨까? 잘 사는 동네니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화려한 색색의 건물과 온통 책들로 도배된 마을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장사하기가 녹록치 않고 우리네 삶처럼 고민이 깊다.(파란흙) 저자의 말마따나 "담배 가게나 빵집이나 카페처럼 책방 또한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럽의 책마을 역시 그 역사가 오래진 않았다. 러시아 마피아라고 부르는 부동산 업자들이 도시의 땅값을 죄다 올려놓는 바람에 소박한 서점들이 하나둘 도시에서 쫓겨났다. 농촌 역시 상황이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유령처럼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세태에 버텨낼 재간이 있을소냐? 하지만 유럽은 책과 농촌의 결합이라는 상상력으로 '책마을'을 만들어냈다. 유럽의 책마을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수백년 된 돌집을 개조하여 서점으로 만들거나 선조들의 오래 전 만들어 놓은 돌바닥에 책을 올려놓고 파는"(바지런) 등 오랜 전통과 소박한 옛 모습에 책이라는 오색 물감을 입힌 것뿐이다. 일상을 뒤엎으려면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문화'를 잃게 된다. 유럽인들에게 '문화'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책마을은 1962년 영국 웨일스 '헤이 온 와이'다. 이 모델이 성공하자 유럽 전역은 물론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등 전 세계에 책마을이 만들어졌다. 책마을은 이제 문화상품이나 관광상품의 영역을 넘어섰다. 아이디 '양화소록'의 말처럼 "지방문화의 활력을 도모하는 '정치실험'이자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동참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이다.


24개의 책마을을 수십 번이나 둘러본 집념의 역작


"수십 년 전부터 책마을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이번 기회에 여기 수록한 마을 전체를 다시 주파했다."(331쪽 저자후기)

단지 책마을을 훑어보고 나서 쓴 여행기가 아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꼼꼼히 살펴본 '순례기'다. 이런 특징은 책 곳곳에 묻어난다. 그래서 아이디 '현지공주'는 "유럽의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썼고, 아이디 '책방꽃방'은 "책마을에 직접 다녀온 것처럼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아릿향 향수에 젖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썼다. 독자들은 이 책의 차별성도 강조했다. 아이디 'treasure'는 "유럽의 휘황찬란한 문화를 걷는 여행기가 판을 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곳을 소개하는 책을 만났다는 것이 기쁨"이라고 썼다. '발로 쓴 순례기'여서 그런가? 책마을에 대한 아름다움을 볼수록 마음 한켠에서는 작가의 진한 아쉬움이 읽힌다.

"'역사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던 신도시 건설에 편승한 각종 문화관광 단지가 되레 몰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77쪽)

"아직도 20년 전의 원고료와 저임금 속에서 인문학도 출신의 수많은 젊은 여성이 출판의 수레바퀴를 사명감 같은 의협심으로 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와 그 정가로 미루어볼 때 분명 어려움을 무릅쓰고 번역하고 교정을 보느라고 청춘을 불사르는 아까운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100쪽)


저자는 우리의 현실로 줄기차게 돌아온다. 유럽의 책마을을 다니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의 책마을을 자꾸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 '파란흙'은 "정작 책마을 소개는 그리 박력 있는 문체로 하지 않는데, 우리의 책 업계 사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침이 튈 정도로 강한 어조를 구사한다"한다며 글끝을 흐렸다.


저자의 '순례기'를 여행하면서 드는 아쉬운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리리시즘이(lyricism, 시간 ·공간의 한정, 사상 등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내면적 감상을 서정적으로 서술하는 예술 표현의 기법)이라고나 할까?  책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리지 않는다. 물론 아이디 '책방꽃방'의 말처럼 "이런 저런 책마을의 상황"이나 "책마을을 추진하고 일구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생생하지는 않다. 그래서 아이디 '오로지관객'은 "보아야 할 것을 다 보지 못해서 마을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취재만 하고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여행할 권리>에서는 '사람'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전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느낀 장벽이라든지, 사람 때문에 혼난 이야기 때문에 정감이 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유럽의 책마을도 좋지만 '유럽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7월 18일 영풍문고 종로점에서 저자 정진국씨의 펜사인회(오후 5시)와 강연회(오후7시)가 펼쳐진다.


※  '책글모둠'은 20여 명의 리뷰어가 써놓은 리뷰를 모아놓은 글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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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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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0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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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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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전선과 세가지 시나리오

촛불의 전선이 '일상'으로 옮겨졌다. 쇠고기가 동네 정육점까지 들어오고 소비자의 판단에 촉각이 곤두섰다.

세 가지 길이 있다.
1. 동네 정육점과 고기집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매출이 활발할 경우 지금까지 정부의 논리가 맞았고 촛불을 들고 모였던 시민들은 불량세력으로 매도될 확률이 많다. 어느 식당 주인의 이야기처럼 광화문의 촛불이 대한민국의 민심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결과에 직면한다.
2. 적지않은 식당에서 쇠고기 관련된 상품 자체를 포기하는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와 한우 쇠고기가 동시에 몰락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는 쇠고기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논쟁에 대한 혐오감의 표출로 해석될 수 있다. 승자 없는 전쟁이다.
3. 한우농가의 어려움을 보듬어주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현명한 소비자의 탄생이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로 이명박 정부는 촛불에 담긴 민심의 엄정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이 일상의 전투에 비하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워밍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제 국민들이 심판대 위에 올라갔다.


광고주 압박 운동과 식당 거부 운동

<죽음의 밥상>을 쓴 피터 싱어는 "이제는 식탁을 먹거리도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내 배를 채우는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식자재가 정당한 방법으로 생산되었는지, 비인간적인 과정을 통해서 동물을 학살하지는 않았는지, GMO 조작 식품 등 소비자에 대해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광고주 압박운동에 대입해 본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이 왜곡언론의 광고주인지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상품에 대한 투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용하는 식당에서 왜곡언론을 구독할 경우 그 식당을 거부하는 행위 역시 투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광고주 압박 운동의 경우 상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넘어서서 기업에 대한 협박이나 영업방해까지 확대되었다는 검찰과 조중동의 논리가 궁색하기 짝이 없지만, 압박운동 측도 논란에서 벗어날 만큼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회사 홍보부서에 전화를 해서 항의하거나 게시글을 남기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소시민에게 이 미션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식당'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문'이 가장 활발하게 소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식당에 들어가면 대개 널브러진 신문을 찾는다. 하루에 2~30명은 족히 된다고 할 때 어떤 신문이냐에 따라 여론의 왜곡과 확산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우리 동네 식당들을 조사해본 결과 대체로 식당은 조중동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조중동에서 경향이나 한겨레 신문을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얼마 전 식당 아저씨와 논쟁을 했을 때도 조선일보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것은 '언론소비자운동'에서 '식당'이 매우 중요한 전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동네 식당 조사하기와 식당 지도 만들기

우리 회사에서 자주 가는 식당 3곳을 조사했다.
A식당은 조선일보, B식당은 한국일보와 스포츠조선, C식당은 중앙일보와 일간스포츠를 구독하고 있었다. 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회사 주변에 갈 만한 식당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구독한다고 해도 아예 발을 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만약 강경하게 소비자운동을 전개하고 싶다면 도시락을 싸고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조중동 구독 식당의 이용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도 언론소비자운동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식당에서 "어떤 신문을 구독하느냐"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식당주인은 압박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주의할 점이 있는데, 식당주인을 설득하거나 어떤 신문을 구독하도록 강요한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식당주인도 나와 같은 동등한 선택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다. 나는 다만 그 식당의 출입을 줄이거나 거부함으로써 식당주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광고주 압박운동의 댓글까지 조사한다는 검찰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한 나의 권리에 대해 위법이라는 허울을 씌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광고주 압박 운동과 이 운동을 비교했을 때 '일상'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적인 차이이다. 우리는 대다수가 생활인이며 일상의 지배를 받는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것은 일상이 아니라 비상시라고 할 수 있고, 광고주 압박 운동 역시 비상시이다. 일상은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것이므로 촛불의 뜻을 펼치기에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공간이다.

이 운동의 포지티브도 가능하다. 광고주 압박운동은 조중동의 광고주 전화번호 등 정보를 공유해 압박을 하는 것이지만, 경향이나 한겨레 등 정론매체를 구독하는 식당의 목록을 공유하는 것은 위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사는 동네를 조사해서 정론매체를 구독하는 곳을 공유하고 이 식당을 이용해준다면 다른 식당주인들이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식당과 조중동의 오래된 침묵의 카르텔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러한 캠페인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이것이 포지티브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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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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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드디어 나와바리에 도달하다

 

 
88만원 세대로 유명한 우석훈은 우리 시대에 '현장의 문제'에 가장 민감한 촉수를 들이대는 지식인이다. 본의 아니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서 유명한 구라꾼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마 그는 이 시절 후배들을 괴롭히며 내공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는 헛소리를 좋아합니다. 헛소리란 게 참 놀라운 거거든요. 백마디 헛소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리에 도달하게 되지요." - <죄와벌>의 라주미힌

얼마 전 개마고원 출판사의 영업자가 한탄을 늘어놓았다. 우석훈의 한국경제대안시리즈 제1권인 <88만원세대>(레디앙)의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중요하기로는 그보다 밀리지 않는 제2권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와 제3권인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가 부각을 못 받고 있어서다. 인터넷 서점이 주최한 간담회에서도 다른 출판사 책(88만원세대) 이야기만 하니 죽을 맛이었을 거다. 나는 다른 의미로 울상이다. 88만원세대의 프레임이 비단 출판사의 이해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우석훈의 진면목을 붙잡는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진짜 전공은 통상협상과 기후협약 등 국제적인 문제이다. 그는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를 쓰면 논쟁의 한가운데에 들어갔다. "한미 FTA가 강행된다면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봉급생활자와 그 4인 가족들은 이민을 심각해 검토해 봐야 한다"는 유명한 말은 이 책의 결론이다. 그리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를 번역하며 세계 기아의 실상과 구조를 쉽고 명쾌하게 소개했다. 대안시리즈 1,2단계는 국내문제에 제한된다.

3권에서 처음으로 그는 '국제적 문제'를 이야기했다. 대외의존도가 80% 넘는 우리 사회에서 국내 문제란 곧 국제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석훈은 처음부터 국제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희망인 10대'만'을 위하여

우석훈의 4부작(4부는 현재 집필중)이 대체로 현재인을 무시하고 쓴 경향이 있지만,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현재적 가치는 거의 제로(0)에 가깝다. 그것은 철저히 의도된 방향설정에서 기인한다. 쉽게 말해 우석훈의 이 책은 30년 후에 보내는 편지이다. 우석훈은 386 세대에 위치해 있지만 386을 가장 미워하는 386 중의 하나이다. 동시에 386 친구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작가일 것이다. 이런 반감이 아니더라도 386 이상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우석훈이 기다리는 30년 후의 지도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들이 말아먹는다면 사정이 또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갈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서문에서도 작가는 이 책을 10대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구성에서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우석훈 강연회에 좇아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항상 '통계'나 '도표'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듣게 된다. 도표를 불가피하게 넣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지만, 도표를 넣는 것과 책의 판매가 정확하게 반비례하기 때문에 도표 처리가 가장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도표를 최소화했다. 분량도 최소다. 300쪽을 거뜬히 넘는 이전의 시리즈(대체로 330쪽 내외)보다 50쪽 이상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취지를 따라서 나도 리뷰를 좀 쉽게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불만이 있다면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설명이 썩 개운하게 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소 간단하고 쉬운 예를 덧붙여 본다. 고우영 화백의 '십팔사략'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십팔사략(十八史略)'이란 사마천의 '사기'를 필두로 중국 각 시대의 정사로 꼽히는 18가지의 역사서를 간추려 편집한 다이제스트판 역사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제는 '고금역대 십팔사략(古今歷代十八史略)' 몇 번째 권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흉노나, 동호, 동월, 갈족 등 중국의 이민족(오랑캐라 불리는)은 처절한 흥망성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약소국 백성의 정부인을 함부러 빼앗아 아내로 삼는다든지 욕을 보이고, 파리목숨처럼 쉽게 죽인다든지 약육강식의 결정판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강국의 입장에서는 재미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절치부심하며 뼛속까지 치욕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때 약소국 젊은이의 가슴 속에 담겨 있는 생각은 폭력 없는 세상이 아니라, '얼른 힘을 길러 저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이다. 때문에 약소국이 강대국이 되더라도 인권유린과 겁간, 약탈 행위는 영원히 반복되었고 그만큼 오랑캐라는 편견도 쌓여 갔다. 너무 멀리 간 듯 하다면 군대생활을 한 병사들의 예를 들 수도 있다. 쫄병 때는 선임병에게 시달리며 '내가 선임병 되면 괴롭히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다들 한번쯤 하게 된다. 그런데 선임병이 되었을 때 이전보다 더 후임병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선후배 군기가 좀 있는 남자 학교라면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자신이 아픈 부분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선임병이 후임을 괴롭힌다면, 힘 센 족속이 약한 족속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괴롭히는 구조'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다. 단지 마음이 나빠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계급차이든 상황의 차이이든 대립적인 관계가 펼쳐지는 패턴을 관찰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사실 이것은 지적인 능력은 물론 개혁에 대한 열의와 성실성이 담보되어야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인데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이든지 굴종이든지 피억압자는 억압자를 닮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기 마련이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라는 책에는 이러한 과정이 세심하게 소개돼 있다.

체험의 특정한 단계에서 피억압자는 억압자와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강렬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생활방식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소외 상태에 있는 피억압자는 어떻게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 억압자를 닮고자 하며 모방하고 추종하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중산층 피억압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상류층의 저명한 인물들과 동등해지기를 갈망한다. <페다고지, p79>

우석훈이 말하는 '빌어먹을 386'과 기득권, 보수세력들은 약자인 십대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따라오게끔 유혹하며, 착취하고 패고 억압하는 구조 자체를 이식시키려 한다. 그것이 '교육 파시즘'의 기본 방향이다.


평화와 욕망의 밀월관계를 꿈꾸며

이 책의 부제는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다. '평화'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다름아닌 우리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점과 함께 '평화'라는 의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석훈은 사람들이 평화에 투자하지 않고 그 대신 전쟁에 투자하게 되는 과정을 명쾌하게 풀어냈다. 자기 울타리에서만 아니라면 전쟁은 큰 돈을 벌게 해주므로 환영할 만하다는 것이다. 결국 남의 울타리가 자기의 울타리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단견이기는 하지만,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문제와 군대가 민영화되고 있는 문제(블랙워터라는 용병그룹은 이라크에서 무고한 인명을 파리처럼 살상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일로 법정에 오르는 일도 많았다)를 특히 우려했다.

평화에 투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고 본질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물이나 공기, 가족과 같은 가장 고맙고 소중한 존재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다. 성폭력이나 폭력사건 피해자 10명 중의 1명이 친족에게 당하며 80% 가까이가 동료나 친구 등 아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최근의 보도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참다 못한 맹자가 이렇게 한탄했다.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이를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이 달아났는데도 찾을 줄 모른다."(맹자, 고자상)

이런 예도 들었다. 사람이 손가락 하나가 구부러지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사방 천지, 외국까지 안 가는 곳 없이 찾아다니지만, 마음이 구부러지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중을 알지 못하고 본질을 알지 못하는 세태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고담준론에 기대며 이런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인간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석훈은 결론에서 '파토스'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는데, 이는 '욕망'을 뜻한다. 대학 시절 이성과 감정의 우위에 대해서 친구와 늦도록 토론했던 기억이 나는데, 결론은 감정의 절대적 우위였다. 물론 처한 상황에 따라서 하는 역할이 다르지만,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것은 대개 감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거지 같은 상황이 어떻게 연출되었나. 왜곡된 이성과 무식한 욕망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이성은 무식한 욕망에 논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상호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이성'이라는 초라한 무기로 대항했다는 점에서 비극이 있다. 그에 비해 우석훈은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맞불'을 놓으려고 한다. 지금은 흘러간 개그 코너인 '사모님'에서 사모님은 민망한 자세로 서 있는 김기사를 보며 '난 이 각도가 너무 좋드라~~'라고 희롱하는데, 우석훈의 욕망이라는 결론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 글을 밤새도록 쓰고 있다. 전쟁에 대한 욕망 못지 않게 평화에 대한 욕망도 강렬하다는 것쯤은 우석훈의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면 알 수 있다.

"평화의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잘 잊지 않는다"(261쪽)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 지음ㅣ개마고원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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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8-07-1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호 시사IN에 우석훈씨 글이 실렸던데, '386을 가장 미워하는, 386에 가장 미움받는'이란 부분이 이해가 가는군요.^-^

승주나무 2008-07-16 18:21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시사인에서 우석훈씨의 글을 자주 보게 되는데,
발랄한 글을 맛에 계속 길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한번 버럭을 해봐야겠어요
386부분은 만날 때마다 그가 강조하는 내용이었지요.

마노아 2008-07-16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88만원 세대를 지금 읽고 있어요. 보니까 출간 1년 정도 됐더라구요. 지각생이에요^^;;
근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우석훈씨 번역이 아닐 텐데요. 앞에 '해제'만 쓰지 않았나요?

승주나무 2008-07-16 18:21   좋아요 0 | URL
아~! 글쿤요.. 근데 왜 저는 번역을 했다고 생각했을까요.
해제가 너무 강렬해서이거나..
아니면 제가 진짜로 '우빠'겠죠?
우왂!!ㅎ
 

수정안(7/18)

일단 신문사의 광고가격에 대해서 정리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는 생각보다 비싸서 모금액에 따라서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문광고 가격 협상 내용(최종확인)

1. 한겨레의 경우

지난번 '인사회(인문사회과학출판협의회)' 의견광고의 경우 출판단가를 적용해서 150만원에 게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적용을 받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모금액에 따라서 협의를 할 수는 있으나 최소 200~300만원 정도 금액이 모여야, 데스크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성명서'라고 불리는 한겨레 하단통 의견광고의 경우 가격이 740만원(부가세 포함 814만원)이라고 합니다.

2. 경향신문의 경우

10면 이하의 하단 통으로 갈 경우 150만원 정도 선에서 협의를 했으며, 150만원이 안 되더라도 실무자와 협의가 가능합니다. 130만원 정도까지 모금액이 모이면 협의가 가능할 듯합니다.

3. 시사IN의 경우

판매팀장에게 다시 확인한 바에 의하면 50면 이하의 한면광고의 경우 100만원에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정상적인 가격은 아니나, 협박 끝에 얻어낸 것이라고나 할까요.
광고가 나간다면 그 주의 시사인은 제가 확보를 해서 배송을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가격의 경우 시사IN-경향신문-한겨레 순으로 가능합니다.
얼마 전 투표 결과 한겨레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실제적인 가격 협상 결과 한겨레가 가장 비싼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듯합니다.


연대/연합과 관련해서


복수의 커뮤니티에 제안글을 올렸습니다.
뜬금없이 글을 올린다는 게 쑥스럽기는 하지만, 다행히 인사회와 청출협 쪽에서 반응이 있었고, 나머지는 반응이 없네요.
그쪽에 조금 더 접근을 하면 몇 개 출판사 담당자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예스쪽은 이미 출혈이 많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조금의 도움은 될 듯합니다. 확실한 연대 결과는 추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문안은 건조기후 님이, 재정은 아프 님이 관리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본의 아니게 널널해졌네요^^(히히 좋아라) 널널해졌다기보다 개념이 없어진건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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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의견 광고 문구 투표
    from 자유를 찾아서 2008-07-15 23:35 
      건조기후님께서 멋진 안을 제시해주신 뒤로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온 의견을 대략 추려서 정리해봅니다. 일단 기본 컨셉은 위 그림과 같습니다. 위 그림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책제목과 문구에 관해서만 의견을 모아 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아래 "촛불의 마음을..." 이하는 최종적으로 입금이 완료되는 시점에 제가 정리할 것이고요. 인원수와 닉네임.   일단 속닥님께서 "그
  2. 알라딘 2차 의견광고 긴급공지
    from 자유를 찾아서 2008-07-18 12:28 
      연대가 여의치 않습니다. 알라딘 단독으로 가야겠습니다. 현재 모은 금액이 약 100만원입니다. 1차 때 남은 돈과 이번에 걷힌 금액을 포함해서 그 정도 되는데, 한겨레로는 하단통이 안될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보다 조금 저렴한 경향신문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많이 모자랍니다. 15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그보다 조금 안돼도 가능할거 같긴 합니다. 130-150만원은 만들어야 하단 통으로 갑니다. 참가하고픈데 망설이시는 분, 또는 돈
 
 
순오기 2008-07-1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널널해졌어도 신문사와 연대 부분 맡아서 수고하시잖아요.^^
경향에 하면 제일 먼저 스캔받아 올릴 수 있는데...ㅎㅎ

마늘빵 2008-07-14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이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 통으로 간다면 아직 턱 없이 모자란 금액이지만, 광고 효과를 봤을 때는 시사인보다는 경향이 낫겠다 싶네요. 갠적으로는. 한겨레가 젤 표가 많이 나왔지만 글케 비싸다면... -_ㅠ 일단 그럼 청출협과 인사회를 한번 접촉해보시길.

건조기후 2008-07-15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야 가격차가 너무 나는데요. 투표결과는 한겨레였지만 부득이하게; 경향으로 가야겠네요;;ㅋ

하양물감 2008-07-16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시는데 도움을 별로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네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 2008-07-1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또 좋은 언론을 돕자는 취지이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하단 통을 구집할 필요는 없다봅니다. 개인적인 모임에서 지금 알라딘에서 협의하는 수준의 돈이 모였는데 한 신문사 하단 통으로 가는 스타일을 택하지않고 나누어서 했거든요. 즉 이번엔 굳이 하단통이 아니여도 한겨레에 실어주었으면한다는 요지입니다.

승주나무 2008-07-19 10:29   좋아요 0 | URL
노피솔 님~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이 번쩍 뜨이네요
의견광고를 선동해서 진행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의 열망의 무게에 생각이 좀 억눌렸나 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