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pin번호와의 첫 만남



구글 adsense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pin 번호를 받았습니다.
pin번호란 광고액을 받을 수 있는 100달러에 육박했다는 일종의 '첫 신호'인데요.
영문으로 쓰는 주소란 뒷면이 잘려 있어서 여태까지 번호를 부여받지 못하다가
어제 우편함 주변을 서성거리는 pin 번호 우편물을 직관적으로 발견했죠. (역시 뒷부분이 잘려 있었습니다)

블로그 광고와의 첫 만남 - 광고공부

제가 블로그광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촛불집회 취재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밤늦게까지 집회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취재하고 나서 돌아와
잠자기 전에 새벽까지 포스트를 작성해서 블로그뉴스에 올리고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제 블로그에 난리가 났더군요.



<[히트작>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 어른들이 많이 미안하구나

아마 다음날이 인사청문회인지 무슨 청문회였는데, 블로그뉴스 메인에 오전 내내 뜨면서 한 1~2년 동안의 방문자보다 더 많은 방문자가 찾은 겁니다. 77866명. 이 기사로 블로거베스트상금 10만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저도 오마이 시민기자입니다) 이 얘기를 했더니 애드센스를 깔았냐고 물어보더군요.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블로그에 소액광고를 깔고 클릭에 따라서 비용을 받는 거라고 하더군요. 만약 에드센스를 깔았다면 한 1~20만원 정도는 되지 않았겠냐며 아쉬워했습니다.
그 기자는 자신도 동영상 기사 하나가 2~30만명 조회수를 기록했던 적이 있는데 30만원 정도 됐다고 했습니다. 구글의 기세가 많이 약해져 그만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뭔가가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미디어2.0>(한빛미디어)라는 책을 읽으면서 '광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미디어2.0은 기존의 고전 미디어가 누리던 지위를 깨뜨리며 판도를 바꾸고 있는 일인미디어와 차세대미디어의 현주소와 전망을 다룬 책입니다.여기서 '광고'는 일인미디어에게 계속 포스팅을 생산하도록 만드는 동력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미디어의 판도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변수로 작용합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신문, TV, 라디오, 잡지 등 고정식 광고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통 매체에 비해 인터넷 매체는 무한히 변형되고 진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 주기나 확산 속도도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그 중심에 윈-윈의 광고 기법이 있다. (234쪽)


저자는 구글의 성공 요인을 소개하는데, 일간지나 방송사 위주의 대형 광고가 아니라 개미기업들의 소액광고 시장을 구글이 점령하였기 때문에 광고계의 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장의 불안이 가중될수록 사업규모가 줄어든다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구글의 소액광고주 전략은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관련기사>애플 도전에 구글 ‘흔들’…사상 처음 시가총액 추월(경향신문)

말이 딴 데로 샜습니다만, 이 일을 계기로 다음 블로거를 휴업하고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겼습니다. 공교롭게 다음에서 티스토리를 인수하여 블로거뉴스 등 다음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점과 오픈 블로그의 서비스를 모두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티스토리는 매력적인 저의 블로그 프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드센스를 달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알라딘에서는 ttb2라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오픈형 블로그와 알라딘의 리뷰 서비스를 연동시켜 RSS라는 블로그 검색, 연재 서비스에 콘텐츠와 광고를 포함시키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출범한 ttb1(정식 명칭은 ttb)는 한 단계 진화해서 기존의 ttb 서비스에 구글과 같이 cpc 광고(클릭 당 수익)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cpc 방식은 예스24 등 경쟁사에도 도입했지만, 예스24는 네이버와 함께 전형적인 웹1.0 기업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전형적인 예로 아직도 네이버와 예스24는 '스크랩 서비스'가 매우 비중 있는 서비스 중에 하나죠. 스크랩은 전체 트랙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똑같은 내용을 복제하고, 새로운 포스트가 끼어들 공간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웹2.0에서는 퇴출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알라딘 역시 스크랩 기능을 알라딘2.0에서 퇴출시키고 '찜별'로 대신했습니다.

첫 히트작 - 7월 26~28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 


블로그 광고에 대한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달콤한 히트작이 필요했는데 마음처럼 히트작이 쉽게 나오는 건 아니죠. 히트작이 많이 나온다면 누구나 부자가 되게요?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낚시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겁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없는데, 제목을 섹시하거나 선정적으로, 혹은 혹하게 지어서 클릭을 유도하는 거죠. 블로그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서 블로그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글을 쓰면 이전에 블로그를 자주 찾았던 분께는 역차별을 하는 꼴이 되므로 블로그의 외연을 조금씩 넓혀간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는 인기가 없는 '책 리뷰'와 조금 더 인기가 있는 '기사'(블로그기사)가 주 메뉴인데, 실생활의 소박한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서 최근에 '생활글'이라는 메뉴를 추가했습니다. 히트작은 생활글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동네 1,000원샵'이라는 블로거뉴스는 고물가 문제가 한창 언론에서 떠들던 7월 27일 즈음에 시장에 갔다가 1,000원짜리 상품이 많길래 사진으로 찍고 글과 함께 올린 것입니다. 왜 이 글이 이렇게 인기를 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공감을 주었을 수도 있고, 시의성에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히트작은 결정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기사 이후로 다시는 히트작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ㅠㅠ

우선 7월 26~28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이 3일간 벌어들인 수익은 60,366원+146.85달러입니다. 환율이 오른 것으로 따지면 하루에 20만원 정도 됩니다.
전체 수익을 보면 이 날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구글은 클릭이 발생한 2008년 5월 9일부터 오늘까지의 총 수익이 US$251.67입니다. ttb2는 66,158원입니다.
알라딘 ttb2는 조금 운이 좋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이번달은 ttb2 개시 기념으로 수익을 무조건 두 배로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효클릭수가 50건만 넘으면 5,000원의 보너스 마일리지를 주고 있습니다. 유효주문건수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아마 오픈 이벤트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블로그 광고에 도전하는 자의 변명..

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이번 달은 지갑에 부담이 좀 덜할 것 같습니다. ttb2가 비록 나에게 현금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책을 자주 사는 나에게는 현금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결국 블로그 광고해서 돈 번 이야기라는 '생활글'이 되어 버렸지만, 본질은 '변화'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롤 모델로 삼는 사람은 공자의 제자 자공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주소도 jagong를 씁니다. 사기열전의 '화식열전'은 논어에서 나온 말인데, 다름아니라 공자가 자공을 꾸짖던 대목입니다.

논어 선진(先進)편에 보면 공자가 제자들을 평가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공자는 엄격한 스승이라 제자들을 함부로 칭찬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가혹할 정도로 평가합니다. 논어의 실질적 저술가이자 경전 저술의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증자(曾子)' '참(參)에게는 '느려터졌다'(魯 노둔할 '노')는 평가를, 평생을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도맡아준 자로에게는 '거칠고 속되다'는 평가를 내렸고, 최고의 수제자로 평가한 안연 회(回)에게만 '도에 가깝지만 굶기를 밥먹듯이 한다'고 평했습니다. 굶기를 밥먹듯이 한 죄로 안연은 단명하고 맙니다. 자공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참 오묘합니다. 증자나 자로처럼 한 글자로 평가받은 것도 아니고, 안연만큼 극찬은 아니었지만, 안연만큼 많은 단어를 썼습니다. 이는 자공이 다른 제자와는 남달랐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평가는 이러합니다.

賜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자공은 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행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재물을 모으는 데 매우 능숙하며, 때려맞추는 것 같지만 신기하게 적중한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high-risk high-return 스타일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평가를 덜 받은 사람은 자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과 조선이 동양적 사고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발의 원리를 일삼는 서양의 눈으로 이 대목을 다시 본다면 자공이 재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촛불도 곧잘 들지만 재테크도 하고 블로그 광고도 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겠습니다만, 그것도다 더 짜릿한 것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촉수의 자극입니다.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면, 한적한 시골에나 들어가 경서의 글줄이나 외우고 있어야지 사서삼경을 숙독하고 철학사를 즐겨 읽었던 내가 세상으로 나올 이유는 없겠죠.

이렇게 한다고 엄청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합니다. 외벌이인 입장이고, 최근에 치과 치료를 받아서 매달 카드값 매우기도 어려워서 블로그로 얻는 수입은 모두 거기에 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유가 좀 된다면 비자금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지만... 그래도 알라딘 마일리지는 책을 사야 하니까 거기에 위안을 삼는 수밖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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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8-19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뭔가 머리가 어지럽군요. 아무튼 승주나무님 심(?)봤군요. 축하해요!

승주나무 2008-08-20 02:31   좋아요 0 | URL
네.. 쓰고 보니 저도 그렇군요.. 조금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을 듯^^

하늘바람 2008-08-1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셔요

승주나무 2008-08-20 02:3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복잡해서 그런 것 같아요..띵띵~~

Koni 2008-08-20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구가 짠합니다. ^-^
요즘 블로그 수익에 대해 여러가지 시도들이 많은 것 같은데, 뭐 하나 쉬운 건 없더라고요.
 
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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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가 사라진 하루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은 현대사가 사라진 하루였다. 아니, '인간'이 사라지고 '국가'만 남았거나, '생명'(국민)이 사라지고 시체(이승만, 박정희)만 남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디디에 앙지외(1999년 76세로 사망)는 ‘피부 자아(moi-peau)’라는 정신분석학 개념을 고안했다. 곧 “자아는 피부다”는 것이다. 우석훈은 이를 독특하게 풀이하는데, 나 자신을 나의 피부로 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회사나 집단을 피부로 대신 빌려오기도 하지만, 가장 불행한 경우가 '국가'라는 피부를 빌리는 것이다. '국가는 곧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정체성이라는 피부를 못만든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 증거는 헌법 제1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의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인데, 헌법 첫머리에는 '민주'라는 정치체제와 '공화국'이라는 국가체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의 헌법 1조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이며 네델란드는 "네델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종교, 신념, 정치적 의견, 인종 또는 성별 등의 어떠한 배경에 바탕을 둔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모든 제도와 법률을 뛰어넘는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대한민국 헌법정신에서는 국가 다음 순서다. 그러나 이것이 주된 비판점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체(國體)와 정체(政體)를 헌법1조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그리스는 의회권한 강조, 일본, 태국은 왕의 존재가치 부여(일본은 상징적 가치, 태국은 실질적 가치), 쿠바는 인권, 국체, 정체 가치부여)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의 주인공은 이승만과 박정희다. 국민행동본부·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청계광장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사 한마당’ 행사를 벌였고, 거리는 온통 태극기와 함께 박정희의 상징 새마을기가 나부꼈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끝없는 불법과 농단으로 국민적 분노를 자초한 끝에 1960년 4월 19일에 역사에서 퇴출당한 인물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뿐 없다. 반민특위에서 처단될 위기에 처한 자신들을 '테러'로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가 지켜주었듯이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광복절을 '친일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데 있다. 자신의 정파적 위치가 어떻게 됐든 간에 광복절은 전국민이 축하할 자리인 만큼 '국민통합'을 위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할 자리에 편파적인 의견에만 귀를 기울인 것은 두고두고 악수가 될 수 있다. '건국절'과 '새출발'이라는 미명에 '현대사'가 정면으로 부정된 몹시도 슬픈 하루였다.

 

 

대한민국 60년을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책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작년에 87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광복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60년에 걸친 현대사의 큰 흐름을 <한국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에 담았다. 민주화운동 특집 저작물인 만큼 학생운동,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등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세계 정세와 현대사를 교접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예컨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좌절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한 것은 미군정의 대한민국 점령정책과 궤를 같이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미소공동위원회는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으로 끝내 좌절돼 10세기 고려왕조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분단돼 전쟁상황으로 치달은 상황은 당시의 한반도가 냉전의 최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규식과 여운형 등 중도세력은 미소공위보다 내부결속에 의한 좌우합작을 역설했기 때문에 친미정부가 들어서기를 원했던 미국에 배제됐고 이승만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 또한 한국현대사가 세계현대사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4월 혁명 이후 통일이나 자주국가의 문제가 활발히 논의된 것도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나 인도, 이집트,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의 움직임, 쿠바 카스트로 집권, 알제리와 콩고 등의 반제국주의투쟁으로부터 영향받은 바 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가 있기 직전까지도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대리대사는 장면 정부를 지지했으나, 쿠바 침공 실패 등으로 쿠데타 지지로 돌변했다.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도 일본과 미국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히지 않는다. 특히 5.17쿠데타는 일본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게 확실한데, 국군의 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군지휘관들의 공공연한 쿠데타 결의나 20사단 이동 등은 미국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은 대놓고 신군부를 돕는데, 5.17 쿠데타 이전까지 최소 6차례에 걸쳐 출처가 의심스러운 북의 남침설 정보를 주기도 했고 광주학살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타국의 민주주의보다 자국의 이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과 거대자본이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경우는 대개 이런 사정이 함의돼 있다.

 

 

한국의 현대사 덮어놓고 '새출발' 불가능

 

이명박 대통령은 소위 '광복 63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새로운' 등과 같은 단어를 12번이나 사용하며 새출발을 강조했지만, 덮어놓고 새출발을 강조한다고 제대로 된 출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사의 상처를 위로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을 해야 통합도 되고, 새출발도 된다.

극심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6.25 당시 1,800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미 대사관 문서, 책 40쪽)이나 최소 5만 혹은 10만에 달한다는 보도연맹 학살, 노근리, 거창 양민학살이나 좌익과 우익 간의 보복학살 문제 등을 밝히고 그 역사적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국민들을 달래는 순간 새출발은 시작된다.

우익이 정권을 잡았으니 우파(사실은 극우파)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그러면 '건국 60주년' 행사와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한국사연구회나 한국역사연구회 등 14개 역사학회가 모두 좌파에 함몰돼 있는 단체란 말인가? 역사에 관한 정파적 논쟁은 학계에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한쪽 입장을 들어주고 이를 국민 앞에 버젓이 내놓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도 정파를 초월하는 위치에 있는 '정부'가 아닌가. 현대사의 새출발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새출발이 점점 요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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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8-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혈청년 승주나무님....
부산에 잘내려왔습니다. 안그래도 오늘 TV 책을 말하다에 우석훈과 진중권이 나오데요. 승주나무님이 생각이 납디아.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ㅋㅋ
다음번에 또 뵐 수 있길....

승주나무 2008-08-18 17:33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의 소중한 휴가가 다 끝났나 보네요.
저도 드팀전 님을 봐서 해원했습니다^^

오늘 티비 봐야겠습니다. 다들 올림픽 본다 압박을 하겠지만...
즐거웠어요~~
 


▲ MB의 정책이나 스타일을 보면 50년 전의 이승만이 다시 살아돌아온 듯하다.

MB가 건국 6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건국절로 이름을 바꾼다 공무원들을 동원한다 기를 쓰고 있다.
왜 '건국'이라는 말에 그렇게 올인하나 했더니 극우들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승만을 드높이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광복절을 기념해 기념식장에는 나가지 않고 태극기도 걸지 않았지만,
<한국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이라는 책으로 현대사 60년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는 중이다.
이승만과 관련된 부분을 보다 보니,
이명박과 이승만이 닮은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언론에 대한 인식도 50년 전 그대로다. 인용하자면

이승만과 자유당은 선거에 나타난 뚜렷한 민심이반 현상이 야당성향의 신문보도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때까지의 국가보안법보다도 독소조항이 많이 포함된 국가보안법 개정안에다 언론규제조항을 첨가했다. - 52쪽

MB와 한나라당이 방송사를 먹어치우려는 상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세월은 50년이 흐르지만 사람의 생각은 하나도 흐르지 않을까 신기할 뿐이다.

이승만은 제헌의회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에는 나이가 많은 순으로 대통령을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미 연로한 나이이기는 했다.  
당시 나이가 73세였는데, 79세나 되는 이시영을 부통령에 앉혔다는 점이다. 과연 증조할아버지 정부통령이다.
대통령에 물러나던 1960년은 85세였으니 오래도 드셨다.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할 때마다 이승만은 대통령 입후보를 포기하겠다고 립서비스를 하고,
수십 만의 추종자들을 동원해서 관제데모를 하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민의를 수락하는 모양새로 다시 대통령직을 덮썩 받아드셨다.
그런데 대통령에서 쫓겨날 즈음에 그가 남긴 말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 대통령은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것을 알았다. 군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미국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았다. 믿었던 김정열 국방장관과 허정 외무장관도 사임을 권고했다. 이승만은 비서한테 사임서를 받아쓰게 했다. 10시경 송 계엄사령관이 데리고 온 학생과 시민대표에게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하야성명서를 보여주었다.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문구가 묘한 여운을 풍겼지만, 당시 상황에서 그의 사임은 결정적이었다. -70쪽

"국민인 원한다면 통령직 사임하겠다." - 이승만

"국민인 원한다면 운하를 파지 않겠다." - 이명박


책을 읽는데 이명박이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승만에게는 '어청수' 같은 사람도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게 최인규다.

최인규는 취임하면서부터 이승만의 기대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행동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경찰관과 일반 공무원은 이 대통령 각하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면서 공무원의 선거 간여를 독려해 물의를 빚었다.  - 58쪽

이미 최인규 등은 부정선거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는 치안국장 등을 대동하고 1959년 11월부터 12월에 걸쳐, 그리고 1960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각 시,도 경찰국장 및 사찰과장, 경찰서장,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을 소집해 공무원선거운동이 위법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처벌하지 않겠고, 징역을 살아도 내가 살겠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4할 사전투표, 3인조, 9인조 공개투표, 완장 착용, 민주당 참관인 매수와 축출 등을 지시했다. 1960년 1월 23일 치러진 영주, 영일 을구 보권선거에서 무더기투표, 3인조 공개투표, 대리투표, 민주당 측 참관인 추축 등이 발생했고, 자유당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 60쪽


최인규에 비하면 어청수는 얌전해 보이기까지 한다. 광화문에서 "어청수는 물러가다"라는 말을 1,000만번도 더 했지만, 어청수가 끝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다.

MB 무리들은 50년동안 뇌가 멈춘 상태여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뻔하다.
50년 동안 공부하고 진화한 다른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은 점점 밥이 된다.
세계에서는 이미 대한민국을 '글로벌 호구'로 본다고 하질 않나...






한국 국민의 불만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전세계는 이명박 정부에 '환호'한다는 비아냥거림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노무현 정부(와 이전 김대중 정부)가 보여준 '이념외교'의 무능함을 이명박 정부가 '실용외교'로 전환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글로벌 호구'로 전락해버렸다. - 시사IN48호 "시사IN-희망제작소 공동기획 - 미국의 싱크탱크2"



▲ <한국현대사 60년>은 정부수립 당시부터 6.15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기록된 현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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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8-1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안 뽑았다고 하는데,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걸까.

승주나무 2008-08-17 02:49   좋아요 0 | URL
뽑은 사람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ㅠㅠ

글샘 2008-08-16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사진 보셨어요? ㅠㅜ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861443

글샘 2008-08-16 20:19   좋아요 0 | URL
이승만과 이명박의 공통점...
1. 이씨다. 농담이 아니다. 자기들이 이씨 조선의 후예라고 착각한다. 쥑일 넘들...
2. 친일파가 자기들의 지원군임을 명확히 한다.
3. 돈욕심이 졸라 많다.
(4.예정... 혁명을 부르고, 헬리콥터 타고 하와이로 도망가서 뒤질 것이다.)

승주나무 2008-08-17 02:49   좋아요 0 | URL
mb퇴진할때까지 님//썩 그럴듯한데요^^

2008-08-17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석훈과의 첫만남

내가 우석훈을(교수, 박사 등의 직책을 생략하는 것은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석''훈'이라는 브랜드를 생각해서다) 처음 만난 것은(책에서) 한창 한미FTA를 하네 마네 독소조항이 어떻네 하면서 FTA  담론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던 시절이다. 나도 한권 정도 보고 공부를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전같은 책이 아니라면 책을 고를 때는 쪽수가 우선하기 마련인데 <국민보고서>는 726쪽에 달해 감히 접근하기 어려웠다. 우석훈의 책은 272쪽이라 부담이 없었다.

UN이나 대기업, 공기업 등 많은 주류현장을 돌아다닌 데서 나오는 연륜과 경제학적 지식이 담겨 있는 단행본에서 얻는 바가 많았다. 워싱턴 컨세서스니 다자회담과 2자회담의 특징들이니 하는 개념적 이해는 대부분 우석훈의 책에서 얻었다.

<88만원 세대>를 읽은 것은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 때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경제대안시리즈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4부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우석훈 강연회가 한때 인기였고 나도 두어 번 정도 놀러 갔다.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다 그렇듯이 친화력보다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분위기를 타면서 말을 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완성하는 스타일이었다. 가까이서 말을 할 기회, 정확하게는 술을 먹을 기회도 두 번 있었다. 블로거로 알고 지내는 지승호 씨의 인터뷰집 작업을 그때쯤 하고 있었는데 술을 한잔 함께 하고 나서 써준 친필 사인에는 "000님 술 좀 살살 드세요~"라고 돼 있었다.



우석훈과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화

한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도스또옙스끼 이후로 처음이 아닌가 싶다. 벌써 5권 정도 읽은 것 같다. <FTA...>,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를 포함해서 경제대안시리즈 3권. 그리고 블로그 임시연습장을 들락날락하기.

이번 작가와의 대화는 3권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88만원 세대>의 담론에서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이번 간담회에서는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를 뺄까 하는데, 3권의 방향성이 미래 세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10대~20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장화식, <친절한 조선사>의 최형국, <삼성왕국의 게릴라>의 심상정, 김성환, <ESC>의 고경태,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의 정진국 씨와 간담회를 하면서 형식도 많이 바꿔었다. 일반적인 간담회 형식에서 토론 부분을 강화해서 온라인/오프라인 질문을 넣어 보았다가, 독자가 직접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번 우석훈 간담회에서는 진행자 2명이 우석훈에게 질문을 하고 청중의 질문을 받는 방식이다. 진행자가 따라붙는 방식은 한겨레 독자프리미엄 서비스인 '하니누리'에서 얻은 발상이다.

이때 질문은 독자들의 긍금함을 대변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심도깊음'이 있어야 하는데, 질문 뽑기가 장난이 아니다. 공동 진행자와 한 30개 정도의 질문을 뽑았는데, 인간적인 면모와 미래세대를 위한 이야기 부분, 에라스무스 모델에 대한 부분, 한중일 전쟁위기에 대한 부분, 4권을 포함한 경제대안시리즈와 못다한 이야기에 대한 부분으로 항목을 나누고 질문을 넣었다.

내일이 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작가에게 질문지가 전달될 텐데, 그 때 '엥?' 하는 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오마이뉴스에 출판관련 기사를 보내고 리뷰를 써오고, 작가간담회에 자주 다니면서 많이 배우고 있지만, 직접 작가를 만나 2시간 남짓의 간담회를 진행하는 입장에 서 보는 건 처음이다. 며칠 간 마음이 불편해서 잠도 잘 안 오고, 간담회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지만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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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08-08-1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일이네요.. 꼭 가고 싶은 곳인데..;;
 

※ 평소 부끄러움을 잘 타 선동은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명박이 저를 선동가로 만드네요.

언소주  NGO 발기인이 8월 11일 현재 1,000명의 발기인이 모인 것을 보았습니다. 좀더 활력을 띄기 위해 선동가를 자처합니다.

블로거뉴스, 오마이, 각종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계획인데...

선동가가 몇 분 더 계시면 좋겠습니다. 언론소비자운동을 해봐서 아는데, 이런 지속가능한 실험은 최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박 언론유린의 맞상대가 되려면 세를 더 모아야 하니,

각자 선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언론소비자들이 함께했던 시민단체 생활 1년

시사저널 사태 때 생계 위협을 무릅쓰고 회사와 싸우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시사모' 활동을 했습니다. 일종의 게릴라 시민단체였습니다. 매일 매시간을 기자들과 함께 해주지 못했지만, 생업을 하면서도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투쟁기자들을 지원하기도 하고, 별도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자발적 구독 운동입니다. PD수첩에 시사인 창간에 관한 방송이 나가고 나서 독자들의 후원과 구독 예약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습니다. 덕분에 초기 창간자금 30억원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시사모(후신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줄여서 '독자단'))는 광화문 일대와 전국 20곳에 걸쳐서 6,000부 이상의 판촉물과 기념품(휴대폰 고리, 파일철)을 배포했습니다.

사업자금은 회원들의 소액모금으로 충당했습니다. 시사모 1년 동안 가입한 회원은 2755명입니다. 하지만 2천7백여 명이 모두 정력적으로 활동한 것은 아닙니다. 운영위원 8인이 핵심이 되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전체 회원에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1년간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즉 시간을 쪼개면서 열정적으로 활약하는 8인의 운영위원과 이들을 받쳐주는 2천7백여 명의 시사모 회원들, 시사인을 지지하는 얼굴 없는 수많은 독자들이 창간자금 30억원을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시사인을 지탱하는 굳건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 독자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시사인 독자판 판촉물과 휴대폰 액정클리닉, 파일철을 만들어 전국 20개 지역에 6,000여 부를 배포했습니다. 독자로서 시사인의 창간에 조그만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시사모의 명백한 한계

시사모는 창립한 지 딱 1주년 되는 2007년 10월 13일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이 활동을 인정받아 민주시민언론연합은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의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번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선정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자면 예년보다 추천된 후보가 줄었기 때문입니다만 속을 들여다보면 <민주시민언론상>의 선정 규약과 한 치의 오차 없이 딱 들어맞는 후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의 선정 규약은 “언론개혁과 시민언론운동의 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한 개인, 단체를 선정하여 수상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1년여의 파업투쟁으로 자본과 치열한 싸움을 펼치고 있던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구독자들이 2006년 10월에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사모는 거리 캠페인과 문화제 등,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독자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또한 기자들이 ‘시사저널’과 결별한 후 ‘시사IN’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시사모는 자본금 모금과 정기구독 캠페인 등을 통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된 독립언론 ‘시사IN’의 산파역을 완벽하게 수행한 ‘시사모’는 바로 민언련이 꿈꾸는 민주시민의 전형이 아닐까 합니다. 더 이상의 수사는 사족일 뿐입니다.

- 민주시민언론연합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수상자 선정 근거(수상자 '시사모')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시사모는 시사저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1회용 시민단체였습니다. 때문에 문제의 해결과 함께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의제를 만들어낼 의지도 동력도 소진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 1년은 참으로 긴 세월입니다.



▲ 각종 의견광고에 참여하기 위해 적지않은 돈을 썼지만, 언론소비자로서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 발기인 신청을 했습니다. 다음 차례의 주인공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NGO 단체에 지갑을 열어야 하는 이유

하지만 사회는 언론소비자들의 각성과 연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MB의 방송사 장악 행태를 보십시오. 조중동의 후안무치 안하무인 작태를 보십시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독자는 바보 멍청이다'라는 전제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몇몇 독자들이 아무리 자신을 희생해 민주언론을 외친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독자를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그들에게 엄중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언소주 카페의 활동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숙제'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언론소비자운동 성공의 관건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적절한 조합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다행히 언소주는 NGO 비영리단체로 거듭나 다양한 언론소비자운동을 전개하겠노라고 대중에게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숙제하기를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효율적인 운동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만이 왜곡언론을 올바른 언론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창립발기인 선언문 중에서


언소주 카페는 현재 카페 도우미 19명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연일 강도 높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중 2명은 미성년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축되지 않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나서고 있습니다. 언론소비자운동을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지속가능한 언론소비자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사모 활동을 하고 출판사, 독자를 선동(?)해 정론매체 의견광고를 진행했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활동이었을 뿐 '일용할 양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지갑을 여는 길입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창립자 휘텀 스미스 씨는 시사IN 창간 특집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No Profit, No Independence(이윤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독립언론뿐만 아니라 언론소비자운동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조중동이나 집권당과 극우세력에게 더 이상 바보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정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을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활동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격려해줘야만 그들이 언론소비자들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넉살 좋게 당신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갑을 열어 주십시오. 혹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모아 주십시오. 단지 조중동의 행태에 불평불만하는 차원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조중동과 극우 기득권의 잘잘못을 따져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 힘을 보태 주십시오. 누군가를 선동하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지만, 내팽개쳐진 민주주의와 민주언론을 위해서, 숨이 다 끊어져가는 언론자유를 위해서 손을 맞잡아 주십시오. NGO 출범이 언론소비자운동의 바른 대안이 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언론소비자주권의 대실험에 동참해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창립 발기인 안내(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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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08-08-1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참여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승주나무 2008-08-12 12:51   좋아요 0 | URL
갈매기 님~ 안녕하세요. 깊은 관심 감사합니다. 아래의 안내 링크를 클릭하면 발기인 선언문과 신청서 양식이 있습니다.

그 전에

http://cafe.daum.net/stopcjd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줄여서 '언소주')에 들어가면 이에 대한 소개가 잘 되어 있으니 소개내용을 들으시고 선택을 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L.SHIN 2008-08-1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님, 안녕~
그냥..오랜만에 인사..

승주나무 2008-08-12 12:51   좋아요 0 | URL
엘신 님~ 안녕^^

순오기 2008-08-1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이 없으면 독립도 없다~ 결국 경제적이 독립이 진정한 독립이군요.
추천~~~

승주나무 2008-08-12 12:52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고맙습니다. 이윤이 있어야 좋은 뜻도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