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뉴스 첫 번째 기획으로 특별한 인터뷰를 선보인다. 인터뷰어는 당신의 '아들'이며, 인터뷰이는 아들의 '엄마'다. 지금까지 해본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의미 있지만, 부끄러운 인터뷰가 될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오랜 증언자라면 가장 중요한 인터뷰이가 되어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뷰'란 '나'보다는 '우리' 혹은 '남들'에게 더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오래도록 나에게 여운을 남길 나와 엄마를 위한 인터뷰를 슬로우 뉴스의 첫 번째 기획으로 삼은 이유다. - 기자 주


해녀 일을 하는 제주 토박이 고순자 씨(63세)는 자식 셋을 키운 평범한 어머니다. 1남4녀의 넷째 딸로 태어났지만 제주 4.3으로 부모를 잃어 어려서부터 받을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9세에 해녀 일을 시작해 26세에 시집을 갔고, 남의 집 살이 13년 만에 집을 장만했으며, 작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인터뷰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추석에 맞춰 낙향한 13~14일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산포 집과 슈퍼 가는 길목, 부둣가 해녀의 집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제까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응한 인터뷰는 바로 아들과의 인터뷰다.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들의 생환'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은 태어난지 3개월 만에 급성폐렴과 임파성 결핵 등 생사를 위협하는 굵직한 병마만도 대여섯 차례나 맞았다. 장기입원 등 수술을 한 것은 두 자리가 훌쩍 넘어갔다. 대학 시절 폐종양 수술을 마지막으로 병마의 기나긴 위협이 한풀 꺾였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아기가 자신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금방 하늘나라로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다가 내일 없어져버리지 않을까 하다가 다음날 잠에서 깨면 살아있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어머니가 45년 동안 입고 다녔던 고무 해녀복. 해녀복은 오래 입으면 5~6년 입는데, 이 옷은 6년도 넘은 옷이다. 제주 해녀들은 모두 검은 고무옷을 입고 바다에 다닌다.


45년 해녀 인생

- 해녀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소라공장에서 7년 일하고 23세에 육지(제주도에서는 한반도 대륙을 '육지'라고 부른다)에서 몇 년 살다 왔지만 대체로 19세경부터다. 할머니는 가정살림하면서 해녀 일을 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그 일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시작이 늦었다.

- 아기를 배고 나서 물에 들면 위험하지 않나? 해녀병 같은 것은 없나?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뇌선'이라는 약을 달고 다닌다. 식품영양사인 작은딸은 약 자체가 고 카페인이기 때문에 당장 끊으라고 성화다)
"큰 아이 가졌을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바다에 들어가니 손발이 춥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애를 가지면 바다에 잘 안 들어갔지만, 그때야 그럴 여유가 있었겠나."

- 해녀 일을 너무 오래하는 거 아닌가. 환갑도 지난 나이인데.
"나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통 70이 넘도록 하고 80까지 하는 분도 있다. 해녀들은 노인정책의 중요한 모델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은 복지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해녀들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80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경제활동을 남보다 더 많이 하고 복지비도 그만큼 적게 들어간다. 제주도가 해녀를 관광사업화하면서 보일러비며 각종 공과금 혜택을 주고 물질을 하러 오가는 때 photo time 같은 것을 하며 지원금도 주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옛날에는 해녀를 천대했지만 가장 정년이 긴 것이 해녀 아닌가. 이렇게 따지면 나도 아직 많이 남았다."

- 한달에 몇일이나 쉬나.
"물에 들어가는 날은 한달에 보름 정도다. 옛날에는 한달 30일을 물에 들어갔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파도가 세면 장사를 나간다. 장사는 18일이다."

- 물에 가는 거 15일하고 장사가는 거 18일을 더하면 33일 아닌가?
"물에 가는 날은 장사를 빠지고 물에 가기 때문에 그렇다. 어떨 때는 한달에 하루도 안 논다. 노는 날은 물에 안 가는 날이다. 물에도 가지 않고 장사도 나가지 않는 날은 조개 파러 간다. 조개 파러 가는 날이 노는 날이다." (웃음)



▲한달 내내 물에 들거나 장사를 하다가 쉬는 날에도 바다에 조개파러 다닌다는 해녀 엄마. 악천후에도 제주의 해녀들은 바다에 가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여자들을 존경한다.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는다

- 제일 속썩인 자식은 누구였나?
"제일 속썩였다기보다는 가장 걱정스러웠던 자식이 막내였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태어나서 3개월때부터 급성폐렴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100일도 되기 전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이 15~16년 병을 바꿔가며 앓았다. 마지막 수술을 했던 것이 대학교 때니까 20살이었다. 그때는 의료보험도 없을 때니 돈도 적잖이 들었고. 당시에는 대학도 돈 없어 못 보낼 때라 이웃들이 '당신 아들은 나중에 대학 안 보내줘도 섭섭하지 않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는
"막내가 수술로 살아나고 소아마비처럼 다리를 절뚝이지 않도록 수술이 성공했을 때. 3살 때 유리창에서 떨어져서 동맥이 잘려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신경을 상해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30%밖에 성공확률이 없다고 했다. 칼을 대야 하는 곳도 3군데나 됐다. 다행히 60% 정도 성공을 해서 지금은 정상인처럼 걷고 군대도 다녀 왔다."

- 아픈 자식을 너무 편애해서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딸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아픈 자식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막내가 건강하고 딸들 중 하나가 아팠다면 정을 그쪽으로 쏟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고, 내가 아프면 네가 웃음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 아픈 아들이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던데.
"군청(당시 남제주군청)에서 해마다 장애인봉투가 날아왔다. 신경을 잃어서 절뚝거리고 다니니까 신고가 들어갔나 보지. 작은딸이 화가 단단히 나서 '내 동생이 왜 장애인이냐'며 봉투를 박박 찢어버리기도 했다. 친척들은 나를 위로하는 뜻에서 옛날에는 아들이 군인가면 집안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데 군인 안 가게 되서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현역으로 전역했다."

-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건강' 한마디뿐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거 아닌가. 특히 막내아들은 병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는 절대적으로 해로우니 주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에 있다는 핑계로 친구들의 대소사에 신경쓰지 않고 명절 때 고향 내려와도 한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들을 잘 살펴주기를 바란다.


▲ 20여년 동안 엄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본인도 죽다 살아난 아들(승주나무, 왼쪽)과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이 기울어버린 엄마.


동네에서 항상 회자되는 말이 있다. 당시 이웃에 살던 아무개는 사소한 병이었는데도 부모가 챙기지 않고 약만 쓰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나리라고 생각한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옥 입구에서 되살아났다. 나의 생명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게 던져진 '삶의 물음'에 대답하려면 한 사람의 생을 갖고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댓글(12) 먼댓글(1) 좋아요(3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슬로우 뉴스(slow news) 운동
    from 승주나무의 책가지 2008-09-17 23:53 
    slow news가 요청되는 시대 slow와 news를 함께 쓰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모순이다.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기성의 언론들에게는 슬로우 뉴스를 기대할 수 없다. 사건이 생긴 날 저녁에 이미 뉴스의 생명이 기울어지며, 다음 날 저녁이 되면 그 뉴스는 완전히 사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도한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관성일 뿐 뉴스란 반드시 ‘속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성찰부재'이
 
 
마노아 2008-09-1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이 어머니를 많이 닮았네요. 한 사람의 생으로 모두 답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생의 주인공이셨군요. 인터뷰 잘 보았어요. 추천 버튼 더 누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감동이에요.

승주나무 2008-09-18 00:00   좋아요 0 | URL
히히..속살을 드러낸 것 같아서 심히 부끄럽사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기획이 떠올랐는지^^;;

웽스북스 2008-09-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승주나무님... 이 인터뷰 정말 좋아요
승주나무님 이렇게 귀한 삶을 살고 있는 줄 몰랐네요

승주나무 2008-09-18 10:24   좋아요 0 | URL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딨겠어요.
"아우슈비츠에서 역사상 가장 유머가 빛났다"는 말이 생각나요.
제가 삶에 대한 지나친 낙관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지요^^

순오기 2008-09-18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정성으로 우리가 승주나무님을 만날 수 있었군요. 위대한 모성에 경배합니다!

승주나무 2008-09-18 10:24   좋아요 0 | URL
네..어머니의 정성으로 제가 순오기 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거지요^^

드팀전 2008-09-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이 '일신우일신' 하고 계신 모습이 보이네요..^^
김동춘 교수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우리 가족이 겪은 한국전쟁' 이란 제목으로 인터뷰 리포트를 내라한 적이 있었다는군요.
이런 인터뷰들이 갖는 세계와의 관계성을 포착한다면...그게 바로 '살아있는 역사책' 아니겠습니까.
승주나무님은 고향 제주와 관련된 어떤 일에서 빛을 보실 것 같아요.^^
전 고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ㅋㅋ

승주나무 2008-09-18 10:26   좋아요 0 | URL
아~ 일신우일신..제 양파 껍질은 그 수가 무수히 많아서 얼마나 더 벗어야 사람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길에서 얻은 소중한 깨우침에서 나왔으니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고향이 없다니..혹시 니북에서 오셨나요^^?

드팀전 2008-09-19 09:19   좋아요 0 | URL
ㅋㅋㅋ...껍질이 이미 양파에요...양파 안먹어보셨남.

메르헨 2008-09-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웃음으로 글을 대합니다...^^
어머니께 진심으로...박수를 드리고 싶어요.^^

소나무집 2008-09-18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동입니다.
다정한 모자지간이 정말 아름다워요.
어머님이 제주도 사투리를 쓰면서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
표준말로 번역(?)을 해놓으셔서 제주도라는 실감이 좀 안 나네요.
제 시댁이 제주도라서 우리 어머니의 말투가 막 떠올랐거든요.
전 기자도 뭣도 아니지만 우리 엄마를 인터뷰해보고 싶은 마음이 물씬물씬입니다.

울보 2008-09-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너무 멋져요
그냥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멋진데,
 








설, 단오, 추석은 우리나라의 3대 명절로 꼽힙니다. 어릴 때 많이 놀아서 그런지 '명절'이라는 생각만 했지, 각자 어떤 의미가 있고 무엇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윷놀이는 언제 하고, 연날리기나 씨름 같은 것은 언제 하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추석 특집으로 온고지신 우리문화그림책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책읽는곰)이 나옴으로써 설, 단오, 추석에 대한 어린이 그림책이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들의 내용을 토대로 각각의 명절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놀이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홀수가 좋아요

1월1일, 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

우리 조상들이 좋아한 숫자입니다. 홀수는 모든 것이 활발하게 살아나는 기운, 곧 '양기'를 뜻하는 데 좋은 기운의 숫자가 두 개나 겹쳤으니 그 날을 길일로 삼은 것이지요. 1월1일부터 순서대로 설날, 삼짇날, 단오, 칠석, 중양절이라고 합니다.

설날의 '설'은 아직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는 뜻이죠.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처음은 익숙하지 않은 법이지요. 영어로 1월을 january라고 하잖아요. 고대 로마신화에 나오는 문(門)의 수호신을 야누스라고 하는데, 흔히 두 얼굴을 가진 이중적인 모습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죠. 야누스의 묵은해의 얼굴과 새해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서 1월을 상징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1월1일은 다른 말로 '정월초하루'라고도 합니다.
5월5일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돌아오는 태양의 축제로, 오랫동안 우리 겨레의 가장 큼 명절이었습니다. 양의 기운 그 자체인 태양의 날이니까 오죽하겠어요.


명절놀이 - 명절에 맞게 놀아보자


윷놀이는 설에 가장 많이 하는 놀이입니다. 나무 막대기 넷을 던져서 몇 개가 뒤집히고 누웠는지에 따라 도개걸윳모를 매기고 그 만큼 윷판을 움직이는 데 도에서부터 돼지, 개, 양, 소, 말을 뜻한다고 해요. 뒤로 갈수록 걷는 속도가 빨라지니 도개걸윷모가 된 것이죠. 윷놀이를 하다 보면 윷을 던지는 사람과 말을 움직이는 사람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윷을 던진 사람은 말을 겹쳐서 가고 싶은데, 윷을 옮기는 사람은 위험하니 앞선 말을 빨리 움직이자며 시비를 겁니다. 이런 실랑이들이 모두 재밌습니다.


연날리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했다고 합니다. 연날리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하지만, 연싸움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해요. 연싸움에서 이기려면 연줄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연줄에 날카로운 사금파리 같은 것을 발라서 상대방 연줄을 끊어놓는 게 관건이죠. 하지만 연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연이 훨훨 높이 잘 날아야 합니다. 연을 만들 때 균형을 잘 맞추지 못하면 바람을 제대로 탈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단옷날에는 씨름을 많이 했습니다. 씨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다양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힘 쓰는 일이 좀 많겠어요. 전쟁도 해야 하고 논밭도 일궈야 하고. 원시시대에도 맹수(猛獸)나 기타 종족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자기의 힘과 체력으로 싸워서 이겨야만 했으니 씨름은 가장 원초적이며 인간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씨름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잦은 전쟁에 시달린 조선시대에는 시험과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씨름은 개인과 개인 간의 겨루기를 떠나 마을 대항전의 성격이 강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추석에는 역시 강강수월래죠. 강강술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논란이 있어서 정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을 지경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투를 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에서부터 남편들 고깃배 타고 바다에 가면 아낙네들이 만선을 기원하며 췄다는 설도 있고, 도둑을 잡으려고 하던 행위라는 설도 있죠. 설도 좋지만, 보름달을 보면 싱글벙글 입가에 웃음이 나잖아요. 모두가 손을 맞잡으면 보름달처럼 동그란 모양이 될 테니 동그란 달을 보며 동그란 표정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는 놀이라고 생각하면 딱인 것 같습니다.


가마싸움은 주로 서당 다니는 학동들이 많이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가마에 바퀴를 달아 서로 부딪쳐서 부서지는 편이 지는 놀이인데, 이긴 편 서당에서 그 해 과거 시험에 붙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의 목숨걸고 다투곤 했습니다^^

명절의 먹거리와 풍습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째도 조상, 둘째도 조상이었습니다. 햇과일이 나오면 조상에게 가장 먼저 바치고, 추수 전에도 풍작이 나도록 음식을 제대로 차려놓고 기원을 하곤 했습니다.



연이(<연이네 설맞이>의 주인공)네는 가래떡을 빚었네요. 떡국은 가래떡을 짧게 썰어서 만든 음식입니다. 먼저 쌀가루를 반죽하여 찐 뒤에 떡메로 쳐서 차지게 하고 양초 가락처럼 길게 비벼 가래떡을 만들어 가래떡을 말려 꾸덕꾸덕해지면 타원 모양으로 얇게 썰어서 떡국을 끓입니다. 가래떡의 흰색은 새해 첫날의 밝음을 나타내고 둥그런 모양은 해의 모양을 나타낸 거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연이가 가래떡으로 '무엇'(?)을 만들었네요^^



추석에는 온 식구가 밝은 달을 보며 송편을 빚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방 안에서만 빚었는데, 다음부터는 유리창이라도 열어놓고 빚어야겠네요. 송편 속에는 콩이나 팥, 밤, 대추 같은 소를 넣어서 맛을 내는데 모두 그 해에 새로 거둔 곡식들입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잘 생긴 짝을 만나고 밉게 빚으면 못생긴 짝을 만난다고 해서 처녀 총각들은 또 송편을 목숨걸고 예쁘게 빚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은 모두 시집 장가를 잘 가셨겠죠^^



연이네 옆집에 사는 덕이네가 달걀 꾸러미를 갚았습니다. 지난 봄 햇병아리를 내느라 꾸었던 달걀인데, 묵은해에 진 빚은 섣달그믈이 가기 전에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참 좋은 풍습이죠.



한가위를 전후해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햇곡식의 이삭을 한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에 걸어 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 합니다. 내년에도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비는 거지요.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이웃을 불러 술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경제사정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명절 분위기는 잘 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기분을 전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릴 때 그랬지만, 아이들은 명절날을 그야말로 손꼽아 기다렸을 테니까요. 신문을 보니 노인정이나 요양원 같은 데에서 이런 명절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음식이 있으면 이웃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언제 한번 풍족한 적이 있겠습니까마는, 마음만은 넉넉했죠. 옛날보다 사람들의 '욕심'이 과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마음을 넉넉하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명절 그림책을 가지고 이야기꽃을 피워보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보 2008-09-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책 모두 가지고 있는데 류가 너무너무 재미있어하는 그림책들이예요,,

승주나무 2008-09-17 13:18   좋아요 0 | URL
울보 님~ 안녕하세요. 추석에 고향 갔다 와서 이제야 댓글 남겨요^^
반갑습니다~

순오기 2008-09-12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데요. 어느분이 제가 이런 페이퍼 올릴거라고 기다렸다는데~ 귀찮아서 관뒀거든요.^^승주나무님이 올린거로 대신할까봐요.ㅋㅋ

승주나무 2008-09-17 13:1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순오기 님 판 페이퍼가 더 좋은데 ㅋㅋ
저를 수제자로^^
 


▲ 충남의 아파트를 돌며 시사IN 창간호를 열심히 알려준 빛의 잉칼 님의 두 공주님

시사IN 창간과 함께 한 달 동안 전국의 독자들과 알리기에 나섰는데,
소녀들의 참여가 두드러졌습니다.
충남에 사시는 독자분은 두 따님과 함께 창간호와 기념품을 곱게 포장하고
아파트마다 돌아다니며 배포를 해주셨습니다.
두 공주님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다니며 씽씽 날라다녔습니다.
두 공주님의 아버지인 빛의 잉칼 님이 이 과정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아주셔서 가끔 찾아보며 혼자 미소를 짓습니다.

또 한 소녀가 있습니다.
천안여고 2학년생인 그는 아이디 'sunbi'로 활동하며 배포운동은 한 부분을 맡아 주었습니다.
배포 신청자를 받는데 그가 300부를 보내달라는 겁니다. 300부면 박스 두 개가 넘는 분량인데, 여고생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50부만 싸서 보냈는데, 며칠 후에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돌리는 데만 동이 나 버렸어요. 왜 이렇게 조금 보내셨어요?"
문자로 야단을 맞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150부를 또 보냈습니다.
그 소녀는 혼자서 천안여고 교무실과 각 교실, 천안시 중앙도서관 앞과 백화점 등 천안시 일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다 돌렸습니다.
장정도 하지 못할 일을 혼자 해낸 것이죠. 특히 선생님의 주선으로 학급 친구들 앞에서 시사저널 사태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사 인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죠.


오랫동안 그 일을 잊어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에게서 메일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작년 수능날 안일님이 제게 문자 보내주셨었죠ㅋㅋ
그 때는 2학년이었고 이제 정말 3학년, 85일 후에는 수능도 보겠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00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특기자전형으로 지원하거든요.
자기소개서에 시사인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증빙자료를 포함해야 한다고 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후회가 되네요.
천안시 중앙도서관 앞과 백화점 앞에서 배포했었는데
혼자 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시민들 반응이 시원찮아서
사진을 남길만한 여유가 없었지요."


자발적 구독운동은 온라인을 통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실명을 쓰지 않고 아이디를 썼다는 점에서 그의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고, 게다가 그는 혼자서 300부를 다 배포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틈도 없었죠. 그렇다고 셀카를 찍을 수도 없고. 그의 선행을 어떻게 증명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게 '확인서'입니다.


 

자발적 구독운동은 온라인을 통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실명을 쓰지 않고 아이디를 썼다는 점에서 그의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고, 게다가 그는 혼자서 300부를 다 배포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틈도 없었죠. 그렇다고 셀카를 찍을 수도 없고.
그의 선행을 어떻게 증명할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온 게 '확인서'입니다.

확인서에는 그간 시사모가 했던 일과 창간과정에서 자발적 구독운동을 했던 일, 그 중에서 sunbi 님이 했던 역할 등을 기록하고 이 의미를 밝혔습니다.
확인서는 썼지만 그래도 두 가지 어려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인을 해줄 것인가, 그리고 확인서의 효력이 있을 것인가.

모든 고민을 키핑하고 일단 막무가내로 시사인 편집국에 쳐들어가 고재열기자의 사인을 끝내 받아냈죠.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익일특급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이번 미션이 쉽지는 않았고, 논란도 있을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시민운동을 대입을 위한 도구로 쓴다고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아닐까요.
궁극적으로는 '언론'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기에 서로 돕고 공유하면서 가치를 더욱 키워나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시 활동했던 내용을 재탕삼탕 자꾸 떠벌리는 것도 이런 가치를 더욱 강화하는 방편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옳은 일을 옳은 일이라고 평가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의 선행을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사IN 창간주역 고재열 기자는 오늘도 '블로그질'을 한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은 현재 총방문자가 240만명이 넘었다.
고재열 기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시사저널 파업 당시 기자들이 지쳐 있을 때 혼자 문제집을 들고 다니며 '퀴즈왕'에 도전해 당당히 '퀴즈영웅'에 등극했다. 그는 오래 전부터 1인미디어를 꿈꿔왔다고 했다. 기자라는 직함에 안정된 지면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일반 블로거와 마찬가지로 계급장을 떼고 누리꾼과 맞장을 뜨는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독설닷컴은 기자 블로그 사상 최초로 인턴 블로그를 모집했고, 현재 1명의 블로그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인터뷰는 시사인 편집국 근처 '도가니탕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 집은 편집국의 큰형님들이 개척하고 후배 기자들에게 전파한 장소다. 편집국장과 발행인이 모두 여기를 자주 찾았다. 젊은 기자들은 큰 길에 있는 통닭집을 즐겨 찾는데, 만난 시간이 낮이었던 관계로 도가니탕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인터뷰의 형식이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적을 게 많아졌다. 간단히 근황을 묻는 분위기에서 본격적인 인터뷰로 스펙트럼을 바꿔갔다.




▲ 2007년 4월 12일 한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해 퀴즈영웅이 되었다. 생계형 출연자는 미션을 완수했다.


나는 롯데백화점의 고급브랜드에 불과, "미디어몽구가 진정한 파워블로거" 

작년에 창간호가 추석합본호였는데, 드디어 시사인 추석 합본호 2호가 나왔다. 축하한다. 그런데 요즘 블로거들이 고재열 기자의 안부를 자주 묻는다. 그러다가 '잡혀가는 거' 아니냐고 걱정이다. 혹시 외압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은가?
- 그런 것은 아직까지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잡혀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은 편하다.

짧은 시간 동안 파워블로거가 됐다. 미디어몽구와 기사공유를 하는가 하면 블로거세계에서의 연대활동도 활발하다.
- 방문자 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는 '롯데백화점'에 입점했을 뿐이다. 총 방문자 수에서 다음블로거뉴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다. 그런 점으로 따지면 미디어몽구는 진정한 파워블로거다. 동영상 기반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몽구의 방문자 유입경로 중 블로거뉴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50% 이하다. 이렇게 다양한 분포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롯데백화점의 고급브랜드에 어울린다고 해야 하지 않나?

독설닷컴이 블로그스피어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 나는 주로 미디어에 관한 담론을 생산해 왔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인 방법으로. A4 20장 분량을 사진 하나 없이 그대로 올린 적도 있다. 문제의식은 충만하지만 편하게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게 아쉽다.
하지만 내가 제기한 문제를 다른 블로거가 다른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모습을 볼 때마다 독설닷컴이 일정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블로거가 그 문제를 다뤄 주면 재밌다. 특히 언론사나 언론학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인지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것은 좀 슬픈 이야기인데, KBS, MBC, YTN 등 방송사 관계자들이 매우 많은 관심을 보인다. 제보를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뤄줄 매체가 하나라도 아쉬운 것이다.

마치 예전에 시사저널 파업할 때 다른 언론사에서 어떤 기사를 올려 주었는지 아쉬워한 것과 같은 건가?
- 그렇다.



고재열 <시사IN> 기자가 27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오마이뉴스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시사IN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다


시사IN에 저널리즘 스쿨을 도입하려 했던 과정을 알고 있다. 지금도 유효한가.
- 그렇다. 다만 블로그를 통해 실험을 해야 할 것이 많다. 블로그 인턴제도 그 중 하나이며, 언론사를 꿈꾸는 예비 기자들의 글을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일의 과부하가 있기 때문에 크게 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취지는 언론사 기자를 꿈꾸면서 기사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접수된 기사는 데스킹을 거쳐 독설닷컴에 노출된다.

일종의 오마이뉴스와 같은 방식인가?
- 그 정도의 규모화는 불가능하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첫째는 기사를 직접 써보는 것이며, 둘째는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독설닷컴에서 간간히 외부기고자들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 그렇다. 최재혁 님(세상박록)이 쓴 "내가 조선일보 기자가 되려는 이유"가 가장 최근의 기사다. 이 외에도 사회인사나 언론인 대선배들을 꼬셔서 블로거로 데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안병찬 기자(시사저널 초대 편집인)의 "안병찬의 기자질 46년"을 밀고 있다. 이외에 재야 구라꾼이나 기생 이야기, 대만 배우 데뷔기 등 다양한 인사들을 블로거로 등극시켜서 다양한 목소리를 전파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시사IN도 블로거시스템을 탑재한 시사IN2.0을 기획하고 있지 않은가?
- 안 그래도 시사인 블로그 T/F팀장인 남문희 기자가 편집국장에 당선됐다. 남문희 기자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열정이 많이 있다. 앞으로 시사인이 많이 달라지리라고 본다.



▲ 시사저널 파업 당시 짝퉁시사저널을 들고 시위하는 고재열 기자(사진 : 시사IN)


고재열 기자와의 짧은 도가니탕 인터뷰는 진한 국물이 목구멍에 축축히 적신 것처럼 포만감이 있었다. '꿈꾸는 기자'라니. 세상에 이런 인간문화재, 아니 '기자문화재'가 있단 말인가.
MBC의 한학수 PD(전 PD수첩 담당)는 "기자에게 '전문성'이나 '출입처'는 동일어이며, 그것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출입처에서 공무원들을 만나다 보면 고급정보를 곧잘 얻지만, 혹시라도 출입처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사를 내보내면 고급정보에서 제외된다. 때문에 기자는 출입처 공무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게 된다. 조중동의 월급 많이 받는 의학전문기자나 과학전문기자가 절대로 황우석 사건을 보도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들은 모두 한패이기 때문이다. 고재열 기자는 '기자'를 버림으로써 '기자'가 된 얼마 안 되는 케이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사IN 창간 선포식 시사IN의 전신인 참언론시사기자단은 2007년 8월11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시사IN’ 창간선포식을 열고 새 매체 창간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시사인 1년사와 2년사의 차이

2007년 9월25일 시사IN 추석합본 신간호가 나오고 꼭 1년이 지나 두 번째 추석합본호가 나왔다.
시사IN은 9월 11일(목요일)에는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창간 1주년 기념회를 성대히 치를 예정이다.
작년의 창간 선포식과 멤버는 다르지 않다.
최광기 권해효가 사회를 맡고, 손병휘(가수), 연영석(가수), 정태춘(가수) 허클베리핀(록밴드) 등 시사IN 홍보대사들이 출연한다.
금요일에는 이에 대한 기사가 몇몇 매체에 뜰 텐데, 언론식으로 표현하면 "시사IN 1년만에 착근에 성공"이라거나 "시사인의 다사다난했던 1년사" 같이 1년이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언제나와 같이 나는 언론과 생각이 다른데, 1년사가 아니라 2년사로 보아야 한다. 창간 후 1년은 사실 창간 전 1년의 결과물일 뿐이다.



왜 2년사가 중요한가를 보려면 미국 대선을 생각하면 된다. 오버마와 힐러리의 경선과 오버마와 맥케인의 대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실상 1년 전에 대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시사IN은 1년 동안 독자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언론노조사무소에서,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끝에 지금의 교북동 보금자리에 입주할 수 있었다.

시사인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PD수첩 방영 이후 독자들이 시사인을 열렬히 구독하기 시작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PD수첩 방영은 1년 동안 싸워왔던 결실의 마침표일 뿐이다.


▲ 거리편집국에서 기사를 쓰던 당시.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은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거뉴스를 전전하면서도 특종을 터뜨렸다. JU그룹의 다단계 비리나 JMS 비리 등이 그것이다. (사진 : 한겨레21) 


인식공유의 3단계로 본 시사IN 2년

인식의 공유(shared awareness)란 각기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나 그룹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인식의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행동'에 도달하게 된다. 행동에 도달하기까지는 3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는 인식의 1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방역권 포기 방침은 인식의 2단계를 넘어서 3단계로 도달했다. PD수첩이 고발하고, 청계광장/여의도에서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위험을 알렸기 때문에 3단계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다. 6월10일의 촛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시사IN에도 인식의 3단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시사저널의 사장이 부당하게 기사를 도려냈다. 편집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이 편집권을 먹어버렸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식의 1단계이다.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회사는 중징계와 고소 폭탄을 던졌다. 독자들이 가세헤 힘을 보태 주었고, 시사저널의 부당성을 꾸준히 알렸다. 인식의 2단계이다. 인식의 2단계에서 인식의 3단계는 사실 뚜렷한 구분이 없지만, 직접행동이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식의 3단계로 갈 수 있는 우호적인 환경은 꾸준히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이와 관련된 보도를 분석해 보면, 대학신문 포함 총 73개의 매체에서 821개의 기사를 쏟아냈음을 알 수 있다. 하루에 2개 이상 시사저널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독자들의 눈물겨운 지원도 큰 힘이 되었다. 시사저널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시사모, 후에 참언론실천시사독자단으로 개칭/해단)이 결성돼 기자들과 투쟁을 함께 했고 검찰에 조사까지 당했다.
진품시사저널구독운동과 문화제, 일일호프, 시사IN 창간과정에는 전국적으로 '자발적 구독운동'을 추진해 전국 20곳에 6,000여 부의 '독자판' 시사IN과 기념물을 뿌렸다. 6천부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충남에 사는 아이디 빛의 잉칼님이 두 공주님과 함께 아파트 곳곳을 돌며 창간호를 배달하는 등 전국적인 배포 활동을 벌였고 이 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였다. 뿐만 아니라 충남의 고등학생은 학교와 백화점 등 대전시 곳곳에서 배포활동을 벌였으며, 특히 선생님의 배려로 친구들 앞에서 시사저널 사태와 언론자유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의를 했던 일은 흐뭇한 화제로 남아 있다.

배포 부수는 수천부이지만, 배포활동을 인터넷에 공유하며 이 일을 알게 된 사람은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에 달한다. 시사IN은 이미 인식의 3단계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창간선포식과 PD수첩 방영이 있었다.
방영 다음날 서포터스로 시사인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매우 역사적인 순간에 그곳에 있게 된 것이 지금도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는 중국집에 요리를 시켜 놓고 전화기 옆에서 식사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에 갈 짬도 못 내고 전화를 받았다. 후원계좌번호와 정기구독 예약을 받았다.

소액후원금, 벌써 2억원이 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거액의 후원금과 투자금을 제외한 순수 소액후원금만 이틀 만에 1억이 모이더니, 하루만에 또 1억원이 찼다. 지방의 유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독자는 선친이 남긴 유산 20억을 기증할 용의가 있다며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배구조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1대 주주의 지분은 17%로 제한한 상황이다. 창간기금 30억원이 모이는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앞으로 1년이 더 중대한 고비가 될 것

창간 이후에 대해서 평가하라면 한마디로 "결호 안 내르라 수고 많았습니다"이다.
시사인은 특종과 함께 화려하게 창간했는데, 이른바 신정아 단독 인터뷰다. 이 건은 뉴스데스크에서 다뤄지기도 헀다. 그 이후에 삼성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고발 건이라든지 김경준 씨의 메모 단독 보도와 에리카 김 인터뷰 등 1년 사이에 3번이나 특종을 터뜨렸다. 물론 이것은 언론에서 더 자세히 다뤄질 사안이다.

  • 인식의 3단계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명박의 언론장악 시도에 방송사가 모두 쓰러진 상황에서 언론사도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 중에서 시사IN이 가장 든든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자유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사인이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도, 혹은 해야 한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시사IN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된다면 이미 시사IN은 두 번째 인식공유의 3단계로 이어질 것이며, 그 행동은 시사인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에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으로서의 시사IN이 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식공유의 3단계 이론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를 참조했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주권운동 등 현재의 시민운동 일련의 흐름과 현상을 가장 정확히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고착화된 현재의 상황에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어이없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키려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9-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추석호에 승주나무님 사진이 실렸더만요. 혼자는 아니고 단체사진이지만서도... ㅎㅎ

승주나무 2008-09-17 13:19   좋아요 0 | URL
네~! 개인사진이나 기사는 다음 기회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