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동네 1000원샵'이라는 글에서 서민경제가 어려워 1,000원짜리 상품이 급증했던 사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슬픈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시장을 보러 까치산시장으로 갔습니다. 과일도 사고 반찬도 사다가, 야채 파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야채 파는 할머니라면 전봇대 아래 대충 좌판을 깔아 놓고 직접 따온 야채를 파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할머니의 야채 가게는 그래도 조그마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배추 하나에 1,000원이어서, 고기에 싸먹고 국도 끓여 먹을 겸 배추 하나를 샀습니다.
할머니는 계산을 마치고 손을 가져가더니 푸른 풋고추를 함줌 쥐어서 비닐봉지에 넣어주시는 겁니다.
참 오랜만에 보았던 시장 인심이었죠.
그것도 서울에서 한줌의 인심을 맛본 게 얼마만입니까.


▲ 시장 할머니가 배추 위에 풋고추를 한 줌 쥐어주었습니다. 오늘 고기 싸먹을 때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슬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님이 많이 오나요?"
라는 물음에
"아이구 말도 마~ 감자 한 알을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니까."

'감자 한 알'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감자 한 알은 원래 규모가 너무 적어 팔지 못합니다.
감자 한 예닐곱 정도는 돼야 봉지에 넣어서 1,000원을 받든 2,000원을 받든 하는데,
감자 한 알은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 할까요.




2008년 들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MB물가가 허탕치면서 정부는 물가정책에 아예 손을 놓고 있습니다.
강만수 장관은 '유동성을 풀어서 환율을 잡겠다'는 말만 합니다.
환율대란 다음에는 서민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입니다.
중소기업은 아마 절반이 망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6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봤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6월은 7월과 8월에 비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가장 낮은 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2008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서울신문 자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지금의 상황이 그래도 그나마 나은 상황이 아닐까.
1년 후에, 아니 6개월 후에는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주식시장에서는 바닥 아래, 지하 1층, 2층, 3층 이렇게 내려가는 흐름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장에서는 지금이 지하2층인지 지하3층인지 알 길조차 없습니다.
금융강국인 미국에서도 현재의 상황은 2년 후쯤에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민경제도 지금이 지하 2층인지 지하3층인지 모르는 상황이 아닐까요.
서민들의 공포심이 '감자 한 알'에 고스란히 배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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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남 좌파에게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다.

시사IN 55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이른바 '강남 좌파' 이야기.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강남아줌마', '변호사의 아내', '내과의사' 같은 닉네임을 가진 논객들은 강남 부유층에 속함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 수준은 강남 못지 않다"는 게 강남 좌파의 정의이다. (강준만, <한국생활문화사전>)
폴로 셔츠에 CP컴퍼니 재킷, 45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 고급일식집과 룸살롱 한 달 접대비만 2억원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와 나 사이에 명확한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 몇 천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면서도 군복을 입고 광화문에 나가 정부 지지 농성을 벌이는 할아버지들이 더 낯설다.
우리나라에는 돌연변이가 많다. 가난하고 비정규직이면서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후보보다는 착취자들을 대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도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환경에 의해 억눌린 삶이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는 가만히 있어도 기득권 안에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데도, 그곳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온 사람을 말한다. 강남 좌파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돌연변이다. 교수나 자본가, 정치인, 사회 지도층은 대체로 기득권의 이익을 수호하며, 약자들에게는 몹시도 인색하다. 이것이 계급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이다.
기득권 복종자들이 많으면 그 사회는 활력이 떨어진다. 역설적으로 돌연변이들은 기득권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득권이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제어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기득권과 약자들 사이에 교량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도합 10% 넘는 득표율을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와 민주노동당 김재연 후보는 강남 지역이 고학력층이 많은 만큼 논리적 설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맹자는 '사람이 항산(恒産, 일정한 벌이)이 있으면 항심(恒心)이 생기게 마련이다'고 했는데, 강남 사람들이야말로 항산이 있으니 당연히 항심이 생길 터이다. 지식과 문화를 쌓아가는 사람은 지식과 문화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 중의 부자인 재벌들은 하나같이 멍텅구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변화할 역동성의 한 축을 잃은 상태다. 어떻게 재벌들이 이토록 멍청할 수 있을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 정도뿐인데, 그 정도로는 한국 사회는 끄떡없다. 이 분야에서는 애초에 기대를 접었다. 

 

▲ 연설 중인 아룬다티 로이(위키백과)

인도 부유층에 사랑과 찬사를 받던 작가, 부유층의 주적으로 돌아서다.

한국사회를 바꾸는 '돌연변이'를 언급하며 한국 작가의 예를 들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이번 촛불 국면에서 눈에 띄는 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계급배반을 할 만큼 돈이 많지도 않고 그들이 보여준 활동량 역시 일반인들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은 점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인도의 작가를 예로 들고자 한다.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데뷔작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된 아룬다티 로이는 그 후로 단 한권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핵실험, 대형댐 건설 프로젝트, 다국적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는 정치칼럼을 써왔다. 한때 인도 중산층이 총애하던 존재에서 이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로이는 인도의 힘있는 이권세력의 아픈 곳만 골라서 찌르며 격분을 사더니 결국은 법정모독죄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그가 사회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99년 인도 대법원이 중부 인도의 '나르마다' 강에서 반쯤 지어진 상태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에 대해 4년간 계속되어온 법적 건설중단 조치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뉴스를 보면서부터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새만금 사업의 판결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사건 속에서 '나르마다 바차오 안돌란(NBA)'의 열정적인 활동가들을 만나고 나서다. 이 판결은 한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스고, 국가이익이라는 이름 밑에서 이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한 로이는 톨스토이 문학집 대신 댐 건축에 관한 책, 관개업에 관한 책, 핵폭탄에 관한 책, 법정 진술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며 현장의 투사답게 싸웠다.
로이 덕분에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인도의 댐 건설과 핵폭탄에 투자하기를 꺼려하여 점점 발을 빼게 되었다.

로이에 의하면 인도는 수 세기가 공존하는 나라다. 수천 년 동안 숲에서 한발자국도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가 하면, 도시에서는 세계 일류의 유행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나르마다 강은 3,500개의 크고 작은 댐을 건립할 예정인데, 30개의 초대형 댐과 수백 개의 대형 댐, 수천 개의 소형 댐이 강을 완전히 분해하면 최소 5천만명 정도가 숲과 강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똥을 싸는 일에서부터 하루 생계를 벌기 위해 남들 앞에서 굽신거리는 일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로이는 말했다. 이 약자들의 운명을 걱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작가가 있다는 것이 부럽지만, 작가의 힘만으로는 이들을 지키기에 턱이 없어서 위태롭기 그지 없다.

로이는 자신이 약자들의 고통을 끌어안는 '계급 배반'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보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그것을 본 이상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로이가 보았던 장면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배워서 똑똑한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장면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이런 장면들을 외면하는 사회라면 누가 우리 사회를 책임질 것인가.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는 사회과학자의 분석력과 작가적 상상력이 환상적으로 조합된 정치평론집이다. 때문에 사회과학자의 분석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무미건조함도 없고, 문학 작가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패배감이나 허무함이 없다. 작가다운 조롱과 해학이 매우 날카롭다. 그가 염원하는 것은 작은 풀벌레와 나무숲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 한 마리이다. 9.11이 일어나고 이라크 전쟁이 터진 전장에서 작은 풀벌레가 날아다니는 상상이란 몹시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그만큼 우리가 멀리까지 왔음을 차분히 말해준다. 지적인 작가들의 사회 분석이나 비판보다 한 발짝 정도 나아간 사유에 이르러서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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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사in의 기사는 저널리스틱한,섹시한 것이었지요...마치 가십기사를 보듯 봤습니다.
왜인가 하면...
'계급은 동일하지 않다.' 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요. 강남에서 진보신당10% 넘었다고 놀라는 분위기에서는 사실 약간 웃음도 낫습니다. 간남에 온통 사모님,사장님만 사신다고 생각했던 걸까요.전 오히려 기사 내용에 한달 접대비로 1억 쓴다는 강남 좌파의 경제규모에 사실 약간 놀랐습니다.저 같은 월급쟁이는 생각해보지 않은 판공비여서.^^

제가 보기에 '강남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우파',어떤 의미에서 클래식한 의미의 '보수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맞는 듯 합니다. 그들이 자신과 선긋고 있는 것이 '천민적인 강남 땅부자'들인 것도 그때문입니다. 즉 어느정도 가진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지와 사회 공공성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번 걸쳐 이야기하는 거지만, 좌파의 척박성만큼이나 부족한 한국 우파의 얇은 선수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사실 수구)들에게 없는 '관용의 정치'인데...^^ 언젠가 그 '관용'이 얼마나 허약하고 취약한 것인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던것 같군요. .

승주나무 2008-10-10 20:3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들은 강남좌파가 아니라 강남우파라고..
좌파가 워낙 죽을 쑤니까 강남좌파, 심지어는 '한나라당 좌파'라는 말까지 나도는 것 같습니다. ㅎㅎ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났던 촛불남매


세계적인 촛불, 세계적인 공간 광화문, 청계천


적절한 동기와 도구가 주어졌을 때 그룹 행동이 갖는 힘은 폭발적이다. 촛불문화제의 적절한 동기는 '쇠고기 협상'이었고, 절적한 도구는 '촛불'이었다. 그리고 이 이면에 흐르는 문맥이 있는데, 그것은 변화이다. 10년 전만 해도 촛불문화제는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의 저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택시 뒷자리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에반'의 이야기를 통해 5년이나 10년 전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한다. 에반의 휴대폰을 주은 인물은 사샤. 그는 에반이 휴대폰을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자신이 경찰에 의해 붙잡힐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에바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에 대한 글을 올리자 유저들은 관심을 제공함으로써 에반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했고, 에반은 그 관심을 잘 이용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이 사건은 유수의 신문사들에게까지 알려져 보도되었고 한 동안 사회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지역적 사건이 순식간에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옳은 대의를 위해서라 그룹 동원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촛불 이야기에 적용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녀린 여중생 십여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때만 해도 50만의 촛불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부당하며, 우리 아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수처럼 사람이 늘어났다.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로 인해 청계천과 광화문은 단지 서울의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된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 국제적인 촛불이 타오른 사건에도 달라진 시대적 상황과 대중들의 역동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로운 대중은 '조직'이 다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자세히 알수록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미 할 의향이 있는 일도 더 쉽게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면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것이 인센티브의 법칙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경제학에서 이견이 없는 몇 안 되는 법칙 중 하나가 바라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끌다, 27쪽)
기존의 조직과 새로운 조직 사이에는 '관리비용'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그룹이 스스로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노동력을 관리한다. 직원들은 자유와 봉급을 맞바꾸고 직원의 생산물을 감독하고 모니터하는 비용을 부담한다. 조직이 수백, 수천으로 커지면, 그 관리자들까지 관리를 해야 하고, 결국에는 관리자들의 관리자들도 관리해야 한다. 종국에는 그 조직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엄청난 관리비용이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돈'인 까닭이다.
조직의 달라진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저자 클레이 서키가 직접 경험한 AT&T와의 파트너십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사이트 스페시픽(site specific)라는 작은 웹 디자인 회사에서 기술 책임을 맡고 있던 저자는 AT&T라는 거대 기업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의 회사는 대부분 20대 청년이었으나 AT&T의 파견직원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이 논쟁하게 된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채택 때문이었는데 저자의 회사는 펄(perl)이라는 언어를 쓰는 데 비해, AT&T는 C++을 고수했다. 그들은 '펄'이 '상업적 지원'을 어디에서 받느냐고 물었지만, 펄은 '필 커뮤니티'로부터 지원을 받을 뿐이다. 그것도 무료로.
대기업의 파견 직원들은 이 사고방식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돈을 지불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커뮤니티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생각해내 comp.lang.perl.misc에 올리자 AT&T와의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답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국 실패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펄 커뮤니티는 규모를 더욱 키워간 반면 AT&T는 거듭된 대규모 정리해고와 대체 전략 개발에도 불구하고 회사 몸집이 보잘것 없을 정도로 줄었고, 결국 2005년에는 10년 전에 비해 규모가 1/5의 가격으로 매각되고 말았다. 펄 커뮤니티는 오늘도 펄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이 펄로부터 하루를 시작해 펄로 하루를 마감하기 때문에 건재하다.
이렇게 새로운 조직이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낌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됨으로써 시간을 영속하는 것이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두 번째 촛불의 길을 열어라

1989년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는 시민들과 청년들이 동독에 대한 반체제 시위를 시작했다. 500명이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은 50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기세가 꺾이지 않고 매주 시위를 열었다. 처음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때문에 정부로서도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태를 주시하기만 했다. 솔직히 청계천에서 촛불을 든 여중생의 숫자보다 적은 군중들을 탄압해서 무슨 이익을 보겠는가. 그런데 매주 시위를 진행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시위가 떡잎 단계를 지나 만개를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 기반'이란 시위 참가자 수가 아니라 시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잠재적인 사람들의 수로 측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순식간에 시위대는 수십 수백만으로 불어나 베를린장벽은 허물어졌다. 이것을 정보의 폭포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시위대의 숫자로 일희일비를 한 셈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시위를 하면서 50회를 넘긴 시점에서 피로도가 발생했다. 이것은 몇 가지 법칙을 위배한 셈이다. 앞서 말했던 '용이성의 법칙'을 어겼다. 내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루 하루 시위에 가세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은 며칠 동안 시위에 참여하느라 직장에서 졸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두 번째 실수는 너무 자주 시위를 한 것이다. 로테이션이 되면서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집단행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식의 3단계를 통해야 하는데, 촛불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해야만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인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30억원이라는 자본금이 모인 것은 그들이 언론자유를 실천하면서 1년 내내 싸워왔고 독자들이 도왔고, 다른 언론이 지원하면서 인식의 3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사인의 경우 집단행동은 '지갑을 열기'였다. 촛불 역시 마찬가지다. 쇠고기 협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주장하면서 인식은 2단계로 넘어갔다. 매일같이 촛불시위가 진행됐고 경찰들이 진압에 나서며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향하고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불이 났다. 아마 가장 짧은 시기에 인식의 3단계로 도달한 것이 촛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인식의 3단계가 당장 정부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한다. 인식의 3단계가 반복되면서 규모가 커지면 정부 역시 자세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곳에서 두 번째 촛불을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두 번째 촛불이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최근의 촛불국면과 광고주압박운동 등 역사적인 대중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파악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고>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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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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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꼭꼭 숨은 제주의 여성성을 살려낸 제주 여성 서명숙


서명숙(존칭생략)은 내가 아는 제주 여성 중에서 우리 엄마 다음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시사저널 파업기자들을 돕기 위해 싸움판 한복판으로 들어가던 때다.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필화에 연루된 상황을 가볍게 떨쳐버리고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떠나는 먼발치에서 위태롭게 지켜보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 후로 소송에 말미암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기자들은 회사와 결별수순을 밟고 있었다. 마침내 먼 순례길을 마치고 그가 돌아올 때는 기자들과 독자들이 세상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새매체를 일으켰을 시점이었다. 와인과 현지의 치즈를 한아름 들고 나타난 티없이 맑은 자태의 거무스름한 아줌마는 과연 이국의 정취를 한껏 안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아줌마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좀 풀려고 갔구나' 정도만 생각했지, '제주 자연길'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들고 온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주는 '여성'의 섬이다. 모든 자연 경관과 사람들의 마음이 섬세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제주를 방문해서 '여성'의 이미지를 찾기는 매우 힘이 든데, 그것은 남성적인 힘에 지배를 많이 당해서 '보이는 부분'은 이미 남성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탑동 부근에 이마트가 생겨난 이후로 제주 동문시장과 재래시장 등 상권이 거의 붕괴되었는데, 얼마 전 신제주에 이마트 2호점이 생겼고 롯데마트도 생겼다. 성산일출봉의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볼 수 있는 신양리 해수욕장에는 삼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보광이라는 회사에서 대규모 호텔단지를 조성해서 순식간에 '인스턴트 관광지'가 되고 말았다. 이 외에도 제주는 '패키지'라는 치밀한 괴물에 산채로 잡혀 여성성은 아주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그것을 서명숙이 찾아낸 것이다.


▲ 성산포와 서귀포는 형제다. 그 구비치는 주상절리는 서귀포의 전매특허지만, 주상절리보다 높게 솟구치는 파도는 성산포가 일품이다. 이것은 서명숙도 인정해야 한다.



서명숙은 서귀포 바당(바다) 출신, 나는 성산포 바다 출신


서명숙과 나는 유년이 겹친다. 비록 사회적 경력으로 따지자면 내가 '삼촌'(제주에서는 부모 외에 어른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이라고 불러야겠지만, 이 책에서 '소녀 서명숙'을 만나면 왠지 맘먹고 싶어진다는 거다.

<서명숙의 유년>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와랑와랑(이글이글)한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흙길을 팬티와 수건이 담긴 세숫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던 여름날이, 바닷속 날카로운 돌멩이가 여린 발바닥을 찢어놓는데도 우린 아랑곳하지 않았다. 짠물을 너무 들이켜 목이 다 쉬고 귀가 멍멍해질 때까지, 우린 몇 번이고 물속에 들락거렸다.
입술이 새파래지고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면 내팡돌에 엎드려서 꼬치처럼 몸을 굴려가며 햇볕에 말리곤 했다. 그러다 몸이 덥혀지면 다시 바닷물에 뛰어들고, 운동신경이 젬병인 나는 개헤엄이 고작이었지만, 내 또래인데도 자맥질을 해서 미역이랑 소라 따위를 건져 올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여태껏 내가 먹어본 가장 맛난 성게는, 소낭머리 맞은편 너럭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 친구가 잡아와서 나눠먹은 것이었다. 새까만 성게를 돌멩이로 내리치는 순간 터져나온 노오란 속살! 갯내음 물씬한 그 맛을 어찌 잊을까.
지치도록 놀다가 타박타박 돌아오는 길, 그제야 지구리로 오던 동무들이 다시 돌아가자고 붙든다. "맹숙아, 자구리 가게." 집에 서둘러 가야 하는 날에는 도리질치지만, 대부분은 동무를 따라 바다로 되돌아가곤 했다.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제야 "어멍(엄마)한테 욕들으키여" 하면서 서둘러 머리를 말리곤 했다. 제주 바당은 그렇게 우리의 어린 영혼을 살찌우고, 여린 근육을 다져주었다.
- <제주 걷기 여행>, 본문(23~25쪽) 중에서

<승주나무의 유년>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는 방학이 되면 아침 먹고 바닷가로 뛰어갔다. 해변에서 잘 생긴 짱돌을 하나 쥐고 썰물이 만들어놓은 신천지를 걸어서 갔다. 신천지에는 언제나 소라며 성게, 굴 같은 것이 가득했는데 점심은 그걸 깨먹으면서 해결하고 해가 빨갛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바다의 이름이 세 개 있었는데 각각 오정께, 통밭알, 수메밑이었다. 수메밑과 오정께는 일출봉을 빙 둘렀다. 일출봉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는데, 수메밑으로 해서 일출봉을 삥 둘러서 걸어봐야겠다는 나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출봉 뒤쪽에는 돌고래들이 둥지를 틀었다는데, 직접 보고 싶었다. 오정께는 아침의 바다였다. 물질하는 우리 엄마는 수메밑에서는 해삼물을 캐다가 오정께 옆에 있는 우뭇개에서 관광객들에게 파는 일을 했다. 엄마가 바다에 갔다가 벗어놓은 몸빼바지에서 나는 바다내음이 너무 좋아서 밤새 그것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바다 냄새와 엄마의 살내음이 땀내음이 함께 전해져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야릇한 구석도 있을 테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수메밑으로는 멸치떼 같은 것들이 모래사장까지 밀려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잔치라도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멸치떼를 잡아갔다. 가끔 밀물에 밀려왔다가 바위 웅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어린 고기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고기떼들은 쪼로롱 쪼로롱 떼를 지어 가다가 가끔 한번씩 몸을 비틀어서 은빛 비늘을 뽐냈다. 한번은 새끼 복어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뜰채로 홱 낚아채니 화가 단단히 난 듯 삐익~ 소리를 내며 몸을 한껏 부풀리는 거다. 나는 겁이 몹시 나서 물가에 던져 버렸는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 5월 5일- 어른에게 더 절실한 어린이날


이처럼 느리고 게으르고 낭만적인 소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수십 년을 굴렀다. 서울사람보다 더 깍쟁이가 되었고, 서울 기자보다 더 날카롭고 빠르고 까칠했다. 그를 물가에, 아니 서울 한복판에 보낸 제주의 바다는 그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맑은 바람을 어김없이 선사해 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제주로 돌아갈 것이다. 서명숙은 가슴속에서 청순한 소녀를 귀환시키고 연륜과 인맥을 이용해 제주의 길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큰 빚을 진 느낌이다. 나의 '제주'는 제주 올레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낮은 구름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오름 한켠에 앉아서 제주의 격정적인 바람을 맞고 있는 소녀는 서명숙의 분신으로 보인다.

 

이 책은 여행서, 아포리즘, 자서전, 에세이의 종합판이다.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제목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다. 얼핏 보면 '여행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랜 세월 감정의 앙금이 쌓인 동생과의 재회 과정과 서명숙의 유년을 살지게 했던 '길'이 주는 성찰적 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들에 대한 회상이 저널리스트의 대중적인 문체로 기록돼 있다. 가끔 서명숙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 동향 출신이라 그런지 금방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카페에서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사유가 듬뿍 담긴 문체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 책이 다소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책의 한줄 한줄은 모두 돌담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듯 신천지를 펼쳐낸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슬로우'라는 개념을 환기할 수 있었다. 속독과 속보에 익숙한 나에게 '게으른 독서'를 선사해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처음 쓴 기사는 '엄마를 인터뷰하다'이다.

단순히 제주를 '패키지'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다. 하지만 제주가 주는 비유와 은유의 '와랑와랑'(이글이글)한 땡볕을 한껏 쬐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권할 만하다. (책이 잘 팔리면 현재 6코스까지 개발한 제주올레의 속살이 더 드러날 수 있다. 속살을 속속들이 보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책을 많이 알릴 요량이다^^)

걷기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 발로 추구하는 선(禪)이다.(143) 두 발은 인간의 철학적 스승이자, 걷기는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제주올레를 걸음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당신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치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당신이 얼마나 약하고 여리고 아파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 구릿빛으로 검게 그을른 데다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왼쪽의 아줌마가 바로 서명숙.



※ 서명숙은 어떤 사람인가?

<시사저널> 창간멤버 서명숙은 1989년 6월부터 2003년 4월까지 15년 동안 정치부 기자·정치부장·취재1부장·편집장을 역임했다. 금창태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던 당시 사장과 한 차례의 면담 후에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의 불길한 예감은 100% 적중돼 <시사저널>은 매체가치보다는 '돈'으로 급격하게 방향추가 쏠리더니 2006년 6월 16일 '기사삭제 사태'를 계기로 시사저널 기자들의 길거리 생활이 시작됐다. 서명숙은 2007년 1월 9일 오마이뉴스에 올린 칼럼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로 인해 사측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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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9-30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어요. 제주를 좋아하니까...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님의 행적으로 봐서 서명숙씨와 인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흐흐 .삼촌이군요.

승주나무 2008-09-30 15:35   좋아요 0 | URL
네~ 맹숙이누나라고 부르는 사이입니다 ㅎㅎ
 

우리 동네(화곡동) 공원에 놀러 갔습니다.
주말에 너무 많이 먹어서 일찍 자려고 했지만 살이 찔까봐 산책을 하고 잘 요량이었죠.
그런데 공원 입구 계단에서 재밌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입구 담위 모퉁이에 하얀 물체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고양이가 주무시고 있는 거였습니다.
사람들이 바로 옆을 지나면서 신기한 듯 멈춰서 구경하다 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디카를 가져가지 못해서 좀더 선명하게 찍지는 못했지만 그것도 재밌었습니다.
더군다나 '폰카'는 찍을 때 소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고양이가 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멀리서 찍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에.
마눌님은 공격할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했죠.

 


고양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겁이 없어져서 점점 다가갔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고양이의 잠자는 얼굴을 찍기 위해 고양이 바로 앞까지 전진 또 전진했습니다.



 



플래시를 드디어 터뜨렸습니다.
플래시가 터지면 당연히 고양이가 깜짝 놀랄 거라 생각했는데,
플래시가 터지고 '찰칵' 하는 굉음이 들려도 고양이는 요지부동입니다.
저도 막말로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해서 고양이 바로 앞까지 다가갔습니다.
 이놈의 고양이는 얼굴에 카메라를 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녀석이란 것을 안 거죠.
마눌님은 멀리서 재밌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찍은 고양이의 자는 모습입니다.
성능이 좋지도 않은 폰카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명하게 나온 것은
고양이 바로 앞에 다가가서 찍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의 단잠을 방해해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잠이 깨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좀 다행이군요.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남긴 댓글에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난 뭐 누가 인형을 갖다 놓은 줄 알았네"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진 고양이로세."
"이야~ 정말 대단한 놈이구먼"

간만에 대단한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마치 자기 안방인듯 너무 편안하고 연륜이 묻어난 듯 나이 많은 터줏대감 고양이를 만나서
저녁이 참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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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9-2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세를 전문용어로(?) 식빵자세라고 합니다.
하이드는 위와 같은 고양이를 만났을때, 적절하게 턱밑이나 귀뒤를 긁어줍니다. (뭐, 그렇게까지 내비두는 길고양이들은 잘 없습니다만) ^^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아하~! 그게 식빵자세였군요. 이렇게 초연한 고양이는 처음봤어요. 길고양이는 아니겠지요~ 완전 말년병장고양이 ㅋ

무스탕 2008-09-2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선명해지는 사진이 참 재미있어요 ^^
정말 초월한 냥이네요. ㅎㅎ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네~ 선명해지는 만큼 제 간도 커지는 장면이지요 ㅎㅎ

바람돌이 2008-09-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숙면을 취하면 피부가 고와지는거 맞아요. 저 고양이 털좀 보라구요. 어디가 길냥이인가 말입니다. ^^

승주나무 2008-09-30 15:36   좋아요 0 | URL
요즘은 길냥이들도 웰빙쓰레기 먹어서 털이 제법 곱답니다 ㅎㅎ

Koni 2008-10-0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김새도 이쁜걸요. 늠름한 길냥이군요.

승주나무 2008-10-05 14:07   좋아요 0 | URL
아~ 길고양이를 길냥이라고 하는군요 ㅋㅋ
오늘 하나 배웠습니다^^